'마우스'의 질문,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

 

희대의 범죄자가 심신장애를 주장하고 그래서 감형 받아 만기 출소한 후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른다. 사이코패스 살인범은 체포된 후에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후회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가슴을 치고, 그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 안타깝지만 이런 일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조두순의 만기 출소를 두고 벌어진 대중들의 공분을 보라.

 

tvN 수목드라마 <마우스>에 등장한 성범죄자 강덕수(정은표)는 그 현실의 인물을 드라마 속으로 고스란히 옮겨왔다. 만기 출소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피해자였던 오봉이(박주현)는 공포에 질려버린다. 오래도록 갖가지 무술을 익힌 건, 그 범죄자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건 어쩌면 피해 후유증으로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안간힘이었을 게다.

 

법이 잡아넣어도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고, 심지어 다시 풀어주어 또 다른 잠재적 범죄를 야기하게 만드는 현실. <마우스>는 아마도 이런 현실에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일침을 가하고 싶었던 듯하다. 사이코패스 성요한(권화운)의 뇌를 이식받고 점점 사이코패스의 본능이 살아나는 정바름(이승기)이라는 문제적 인물은 그렇게 탄생했다. 사이코패스 잡는 사이코패스의 탄생.

 

이 설정은 마치 연쇄살인마를 사냥하는 소시오패스 덱스트 모건을 다룬 미국드라마 <덱스터>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마우스>는 <덱스터>처럼 다소 경쾌하게(?) 이 사안을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더 무겁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법은 정의로운가. 죽어 마땅한 이를 살해하는 건 과연 잘못인가.

 

사이코패스의 뇌를 이식받은 정바름이 강덕수를 추격해 그가 범행했던 대로 똑같이 그를 처단하는 이야기는 이런 질문들을 통해 탄생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그의 살인을 감춰주거나 덮어주려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강덕수에게 끌려갔던 아이는 다리 밑 버려진 캐비넷 속에 자신을 숨겨주고 그를 살해한 인물이 정바름이라는 걸 알면서도 묵인한다.

 

강덕수와 사투를 벌였던 오봉이는 그의 사체 옆에서 천 원짜리 지폐를 발견하고 그를 죽인 인물이 고무치(이희준)라 생각하며 그래서 자신이 범인으로 몰려도 입을 다문다. 한 피해자 아이가 고무치에게 그 지폐를 주면서 가해자를 죽여 달라고 의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지폐는 정바름이 증거보관소에서 꺼내 갔다가 현장에서 흘린 것이었다.

 

현장 근처에서 피투성이가 된 오봉이를 발견했던 최홍주(경수진)는 그를 차안에 옮겨놓은 후 그가 강덕수를 살해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손에 칼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 밑에서 강덕수가 죽어가고 있는 걸 확인한 최홍주는 그러나 오봉이의 부탁대로 앰블런스를 부르지 않는다. 대신 최홍주의 칼과 피묻은 옷을 숨겨 놓는다. 그 역시 강덕수의 죽음이 정당하다 여긴 것.

 

<마우스>가 정바름을 사이코패스 뇌에 잠식당해 점점 사이코패스화 되어가는 인물로 세운 건, 법이 처결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에 대한 날선 비판을 담고 있다. 정바름은 과연 잔인한 사이코패스인가, 아니면 법이 행하지 못하는 정의를 비로소 수행하는 인물인가. 최란 작가는 정바름이라는 문제적 인물과 그의 살인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에둘러 말하고 있다. 법은 과연 정의로운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충분히 헤아릴 정도로.

 

애초 먹구렁이가 들어있는 상자 속에 쥐가 들어가, 오히려 쥐가 먹구렁이를 공격하는 장면은 그래서 정바름의 변신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불안한 사회를 은유한 것이라 보인다. 먹구렁이가 버젓이 활보하는 세상, 쥐들은 그저 두려움과 공포를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선량한 이들을 상징한다. <마우스>는 그 쥐의 반격을 통해 우리네 사법 정의의 현실을 묻고 있다.(사진:tvN)

'낙원의 밤', 박훈정 감독이 느와르로 풀어낸 사랑과 삶의 은유

 

우리에게 낙원은 어디에 있을까. 지옥 같은 현실을 매일 같이 버텨내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낙원은 삶 속에 존재한다기보다는 삶 저편에 있다고 여겨질 법 하다. 흔히들 말하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의 농담 섞인 한숨 속에 담겨지는 쓸쓸한 현실 인식처럼. 박훈정 감독의 영화 <낙원의 밤>은 감독 특유의 유혈이 낭자한 느와르 장르지만, 그 안에 사랑과 삶에 대한 은유를 통해 묻는다. 우리에게 낙원은 어디에 있느냐고.

 

여기 지옥 속에 살아가는 남녀가 있다. 태구(엄태구)는 유일한 피붙이인 누나와 조카가 살해당하자 상대 조직의 보스에게 치명상을 입힌 채 제주도로 피신한다. 그런데 태구를 보호해줘야할 조직의 보스가 제 목숨을 상대 조직에게 구걸하며 태구를 배신한다. 결국 태구는 자기 조직 보스와 상대 조직 모두의 타깃이 되어버린다.

 

재연(전여빈)은 태구가 내려간 제주도에서 인연을 맺게 되는 여자다. 그는 과거 조직에 몸담았다 나와 총기 밀매를 하며 살아가는 삼촌과 함께 살아가지만, 고통 속에 죽어가는 시한부인생이다. 태구와 재연은 그렇게 지옥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이지만, 제주도에서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낙원을 경험한다. 물론 그 낙원은 멜로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런 달달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처절한 삶 속에서 그저 물회를 같이 먹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것 같은 순간의 한숨 같은 낙원이다.

 

이야기 구조만 보면 <낙원의 밤>은 우리에게 익숙한 박훈정표 느와르라는 걸 알 수 있다. 조직이 등장하고, 그 알력다툼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복수극이 액면이다. 하지만 <낙원의 밤>의 매력은 이런 액면의 익숙한 느와르 이야기에 있지 않다. 그것보다는 느와르 사이사이를 채우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 안에서 마치 지옥을 살아가는 남녀가 잠시 서로를 쳐다보는 그 잠깐 동안의 정서적 훈훈함이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다.

 

"괜찮아?" "내가 괜찮아 보여? 난 딱 봐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괜찮냐고 묻는 게 싫더라." 영화 속 남녀가 농담처럼 주고받는 이 대화는 <낙원의 밤>이 보여주는 역설 속에서 그저 웃고 넘길 수 없는 여운을 만든다. 이들은 결코 괜찮지 않은 삶을 마주하고 있고, 그걸 서로 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괜찮냐고 묻는다. 그렇게 물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지는 게 사랑이고 삶이기도 하다는 것처럼.

 

박훈정 감독은 <낙원의 밤>이라는 제목에 대해 "낙원은 우리가 생각할 때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인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담는다"는 그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어 붙였다고 말한 바 있다. 태구와 재연이 제주도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잠깐이지만 강렬하게 마주한 낙원과 그 파국을 담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건 거꾸로 이야기하면 삶 자체가 지옥이지만, 그 안에서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아주 사소한 일상들이 낙원일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느와르라는 장르를 통해 사랑과 삶에 대한 은유를 담으려 한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엄태구는 작중 이름이 태구인 것처럼 마치 제 옷에 딱 맞는 옷을 입은 양 '태구를 했다'. 전여빈은 tvN 드라마 <빈센조>에서 보던 그 과장되고 유머러스한 모습이나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봤던 사랑스러운 모습과는 전혀 다른 무표정한 얼굴에서 나오는 강렬한 액션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그 흔한 키스신 하나 없이도 그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절절하고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보여줬다는 건 엄태구와 전여빈 두 배우의 공이 아닐 수 없다.

 

뻔한 느와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느와르의 핏빛 장면들 사이사이에 채워지는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들과 그 위에 서 있는 남녀 주인공의 감정 속을 들여다보길 바란다. 거기에 낙원이 존재할 테니. 비록 현실은 지옥일지라도.(사진:넷플릭스)

'강철부대', 김성주도 말문 막히게 만든 해병대수색대의 완주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가 조금 잘못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승부를 내는 경기, 중계를 많이 했기 때문에 1등이 누가 되느냐가 중요한 중계를 많이 했고 이기는 승부만 했었는데, 군인들의 삶은, 군인들의 승부는 끝까지 하는 게 있네요."

 

채널A <강철부대>에서 탈락 팀이 결정되는 데스매치에서 해병대수색대가 끝까지 미션을 완수하고 깃발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난 후 김성주는 그렇게 말했다. 그간 미션 대결에서 그 흥미진진한 승패 과정을 보며 환호하던 스튜디오의 출연자들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그 모습에 모두가 말문이 막혀버렸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IBS(구명보트) 침투 작전 미션에서 패배한 해병대수색대, SDT(군사경찰특임대), 특전사팀에게 주어진 데스매치 미션은 보기에도 위압감을 주는 250kg의 타이어를 계속 뒤집어 300미터 거리에 있는 최종지점까지 먼저 도착하는 것이었다. 스튜디오에 가져온 타이어는 출연자들 6명이 함께 힘을 써도 들어올리기가 버거운 무게였다. 그걸 뒤집어가며 300미터를 간다는 건, 타이어 반경이 1미터라면 무려 300번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사실상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이 미션을 그러나 세 팀은 '악으로 깡으로' 밀어붙였다. 처음에는 체력으로 어느 정도 전진해나갈 수 있었지만, 중간 지점에 채 도착하지도 않은 상황에 이미 체력은 고갈되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는 정신력과의 싸움이었다. 혼자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 타이어는 네 사람이 모두 힘을 동시에 써야 넘길 수 있었고, 그것은 팀 미션다운 협동을 요구했다.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는 미션처럼 보였지만, 마치 마라톤이 그러하듯이 그렇게 힘겨워도 앞으로 조금씩 나가는 미션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선두에서 치고 나가는 특전사팀이 먼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해 깃발을 흔들었고, 탈락 팀을 결정짓는 해병대수색대와 SDT의 대결에서 초반에는 밀리던 SDT가 이를 뒤집는 역전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미션이 만든 드라마는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힘이 빠져 체력만으로는 더 이상 타이어를 들 수조차 없는 상황. SDT가 2등으로 최종 목적지에 도착함으로써 해병대수색대는 탈락이 확정됐다. 그 정도면 포기해도 될 법했지만, 이들의 미션 도전은 승패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모든 팀이 그렇지만 자신의 부대 마크를 붙이고 나선 대결이기 때문에 지더라도 포기하는 모습은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끝내 최종 목적지까지 도착한 해병대수색대는 서로를 토닥이며 "잘했다",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쏟아 놓았다. 함께 미션 대결을 펼친 특전사팀과 SDT팀도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탈락하게 된 해병대수색대 팀은 그 결과에 대해 해병대 선후배들에게 미안해했고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진 것일뿐 해병대는 강한 부대라고 강변했다.

 

<강철부대>가 데스매치를 통해 보여준 건, 김성주가 얘기했듯 이 프로그램이 여타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스포츠중계와도 다른 면이 있다는 점이다. 승패와 당락 같은 결과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고 그 모습이 얼마나 명예로웠는가 하는 점이었다. 바로 이 지점은 <강철부대>라는 군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갖는 덕목이 아닐 수 없다.(사진:채널A)

'나빌레라', 칠순의 알츠하이머 박인환도 꿈을 꾸는데

 

"날이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나 화창한데, 내가 왜, 도대체 왜, 엄마 아버지 나 어떡해요." 칠순의 어르신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 아버지'라는 말은 그 자체로 짠하다. 그건 순간 이 어르신의 70년 인생이 가진 무게가, 저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목소리를 통해 느껴지기 때문이다. 버티지 못할 정도로 힘겨울 때 우리는 모두 저도 모르게 어린아이가 되어 부모님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tvN 월화드라마 <나빌레라>의 덕출(박인환)처럼.

 

칠순의 나이에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추는 덕출을 보는 주변의 시선은 '주책'이다. 나이 들어 '춤바람' 났다는 소문까지 들려온다. 발레연습실에서 채록(송강)이 그 아름다운 동작으로 새처럼 가볍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덕출은 순간 자신을 초라하게 느낀다. 늙고 볼품없는 자신이 꿈이라며 하고 있는 발레가 실로 '주책'은 아닐까 싶어진다. 덕출이 발레라는 꿈을 꾸는 일은 그래서 청춘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일이다.

 

게다가 덕출은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됐다. 그건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꿈을 향해 나가는 그에게는 더욱 더 큰 좌절감을 주는 판결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꿈을 지워내고 살았던 삶이 그의 한 평생이었고, 이제야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알츠하이머라니. 그건 꿈이 아닌 자신이 지워지는 병이 아닌가. 이보다 큰 절망이 있을까.

 

하지만 덕출은 기승주(김태훈)가 데리고 간 김흥식 발레단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휠체어를 탄 무용수의 아름다운 발레를 보면서, 발레가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서 서툰 동작이지만 정성껏 배운 대로 자기 느낌을 담아 발레를 선보인 덕출은 무용수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건강한 몸이 아니어도 발레를 좋아하는 그 마음이야말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발레가 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기승주가 덕출에게 말하는 '자기만의 발레'라는 표현은, 이 드라마가 단지 발레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걸 드러낸다. 젊건 나이 들었건, 건강하건 병이 들었건, 누구나 어떤 꿈을 꾸는데 있어서 '자기만의 발레'를 하는 것이고, 그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덕출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칠순의 알츠하이머 어르신도 '자기만의 발레'를 할 수 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나빌레라>에서 덕출이 하는 말 한 마디, 동작 하나가 감동적인 건, 툭 던져져 나온 말 한 마디와 눈앞에서 보이는 어설픈 동작 하나에도 이 어르신의 칠순의 삶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할 것은, 이 '자기만의 발레'는 덕출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연기자 박인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칠순의 이 연기자가 발레복을 입고 발레를 배우는 역할에 도전한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나. 이제는 가족드라마의 평범한 아버지 역할로 자리하고 있는 노배우의 발레 연기라는 새로운 도전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다.

 

그래서 무용수들 앞에서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발레 동작들을 하나하나 선보이는 이 노배우의 연기는 덕출이라는 인물의 도전을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전해준다. 굉장히 고난도의 점핑이나 회전 같은 게 전혀 없는, 작은 손 동작 하나만으로도 이토록 아름다운 발레를 표현할 수 있다니. 박인환의 연기에서는 그의 인생의 무게가 느껴진다. 덕출이 발레 동작 하나에 자신의 삶을 담아내듯.(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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