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으로 모든 걸 다 잃고 팡틴이 부르는 이 노래.

아프고 힘겨운 삶을 얘기하지만

그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노래.

그래서 위로가 되는 노래.

수잔 보일이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모두의 냉소적인 시선을 단박에 눌러버린 이 노래.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모두에게 위안이 되기를.

 

I Dreamed A Dream

 

I dreamed a dream in times gone by
난 흘러간 시간에 꿈을 꿨네
When hope was high
희망은 높았고
And life worth living
삶은 가치가 있었을 때
I dreamed that love would never die
난 사랑이 절대 안 죽을 거라 꿈꿨네
I dreamed that God would be forgiving
난 신이 용서할 거라 꿈꿨네
Then I was young and unafraid
그리고 나는 어렸고 두려움이 없었고
And dreams were made and used and wasted
꿈들은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버려졌네
There was no ransom to be paid
지불해야 할 몸값이 없고
No song unsung
불러지지 않은 노래가 없고
No wine untasted
맛보지 않은 와인이 없네
But the tigers come at night
하지만 호랑이는 밤에 오지
With their voices soft as thunder
그들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부드럽고
As they tear your hope apart
그들이 너의 희망을 찢어 버릴때
And they turn your dream to shame
그리고 그들이 너의 꿈을 부끄러움으로 만들어 버릴때
He slept a summer by my side
그는 내 옆에서 한 여름을 잤지
He filled my days with endless wonder
그는 내 삶을 끝없는 놀라움으로 채웠지
He took my childhood in his stride
그는 내 어린 시절을 그의 걸음에 넣었고
But he was gone when autumn came
하지만 가을이 오자 그는 가버렸지
And still I dream he'll come to me
그리고 여전히 난 그가 돌아오기를 꿈꾸지
That we'll live the years together
우리가 오래오래 같이 살기를
But there are dreams that cannot be
하지만 이뤄질 수 없는 꿈들이 있고
And there are storms we cannot weather
또 견딜 수 없는 폭풍도 있지
I had a dream my life would be
난 꿈을 꿨지, 내 삶이
So much different from this hell I'm living
지금 살고 있는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정말 많이 달라지기를
So different now from what it seemed
그것이 어떻게 보이던가는 지금 너무 많이 달라졌지
Now life has killed
이제 삶이 내가 꾸었던 그 꿈을
The dream I dreamed.
없애 버렸네

포럼에 나간다는 것보다 수펄스와 함께 한다는 것에 더 관심이 갔던 게 사실입니다.

'서울 디지털 포럼'에서 '<K팝스타>와 엔터테인먼트의 공존'이라는 주제로 세션을 꾸리는데

함께 나가자는 박성훈 PD의 제안에 잠시 망설였었죠.

그런 경험도 없는 데다가 또 무슨 얘기거리가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수펄스도 나온다고 하더군요.

단박에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수펄스'(사진출처:SBS)

수펄스가 포럼에 나온 이유는 이번 포럼의 주제가 '공존'이었기 때문입니다.

수펄스는 <K팝스타>에서 경쟁하면서도 하모니를 통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사실 그 어떤 강연보다 수펄스의 하모니를 한번 들려주는 것이

공존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세션 발표일 당일, 연사대기실에 별도로 마련된 방에서 수펄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연예인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은 별로 없는 편인데

수펄스는 그래도 기대하게 만들더군요.

그래도 얘기를 나눠보니 천상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연습을 하며 맞추는 하모니에서는 소름이 돋아 올랐죠.

이래서 가수는 가수구나 했습니다. 노래할 때는 '그 분'이 오셔서 돌변하는 거죠.

 

그날 발표일에 YG의 수펄스 재결성에 대한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박지민 양은 JYP로 결정된 상황이라,

그 빈자리는 YG행이 이미 결정되었던 이하이양이 채우게 되었죠.

수펄스 친구들은 그 사실을 그 현장에서 알았던 모양입니다.

뉴스를 확인하고 뛸듯이 기뻐하더군요.

물론 박지민 양은 조금 아쉬운 표정도 있었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얼굴로 기뻐해주었습니다.

 

 

맨 왼쪽이 저고 그 다음이 박성훈 PD, 그리고 수펄스(사진출처:SBS)

강연은 "수펄스의 노래를 듣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그래도 세션이니 지루한 토크를 좀 하겠습니다"하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다들 이야기보다는 노래에 더 관심이 있었죠.

공존에 대한 의미를 한참 얘기하고는 수펄스가 노래하는 시간에는

저도 밑으로 내려와 박수를 치며 노래를 들었습니다.

수펄스가 부른 'fame'에 각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일제히 호응을 해주더군요.

비로소 '공존'이란 의미의 이번 포럼이 완성되는 느낌이랄까..ㅎ

 

하여간 제게는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수펄스도 만나고 포럼 경험도 하고

'공존'이라는 새로운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갖게 되었죠.

아이들처럼 즐거워 하며 퇴장하는 수펄스를 보면서

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의 하모니를 선사할 것인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부쩍 커버린 진짜 K팝스타를 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죠.

어린 시절, 형은 가끔씩 수수께끼를 내고는 하루 종일 답을 알려주지 않곤 했다. 답이 뭘까 곰곰 생각하며 답답해하는 내 모습이 자못 재밌었던가 보다. 하루가 꼴딱 지나고도 답을 몰라 묻는 내게 형은 적선하듯 답을 알려주곤 했다. 그런 형이 미웠던 걸까. 언젠가부터는 형에게 묻지 않고 혼자 문제를 풀려고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 고등학교 수학 문제를 풀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어려워 문제풀이를 결국 들여다봐야 할 때마다 형의 장난스런 얼굴이 떠올라 괜스레 약이 오르곤 했다. 어쨌든 세상사에 다 그럴 듯한 이유가 있고 또 모두 어떤 답이 분명히 있다고 착각하게 됐던 건 아마도 이 어린 시절 체화된 문제 풀이 경험 때문일 게다. 하지만 어디 사는 게 수학문제 같을까. 때론 답이 없는 게 삶이고, 어쩌면 그저 문제만 던져진 것이 삶이라는 것을 후에야 알게 되었다.


 

'하이킥'(사진출처:MBC)

수학공식 같은 드라마를 볼 때마다 "저건 거짓말이야"라고 생각하게 된 건 그래서일 게다. 첫 회를 보면 마지막 회를 예감할 수 있는 공식적인 드라마들이 마구 쏟아져 나올 때마다 이건 어딘지 아니다 싶은 마음에, 언젠가부터는 마지막 회를 안보는 습관까지 생기기도 했다. 그 예정된 결말이 과정들을 너무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곤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늘 그런 결말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지붕 뚫고 하이킥' 같은 의외의 결말도 있으니까.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교통사고. 멈춰버린 시간. 희극과 비극이 겹쳐지는 그런 결말. 그래서 보는 우리들에게 수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는 결말. 수학문제처럼 답이 있다고 여기는 우리들의 단순해진 생각을 단번에 뒤집어놓는 충격요법.


그래서일 것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마지막을 수놓은 신세경에 대한 수많은 해석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장면 장면의 디테일 속에 숨겨진 것들을 끌어 모아, 신세경이 애초부터 귀신이었다거나 연년생 동생이 있었다는 해석은 얼마나 대중들이 그 충격으로부터 그럴 듯한 답을 구하고픈 욕망이 강했던가를 잘 말해준다. 수수께끼 같은 결말을 던져주고 답을 주지 않을 때, 이제 그 남은 빈 여백은 온전히 각자가 채워 넣어야 할 것이 되어버린다. 어린 시절, 알려주지 않는 수수께끼의 답을 내 상상력으로 채우려 했던 것처럼.


삶이 답 없는 문제의 풀이과정 같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중년의 나이에 도달해서였다. 사실 그저 널려진 자연 속에 어떤 법칙이나 흐름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 건, 그 해석이 삶에 유리함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별 그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다만 그 별들을 바라보며 별자리를 그리고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인 사람들의 해석이 있었기에 그 별에 의미가 생긴 것이리라. 우리는 날 때부터 커다란 빈 도화지 한 장을 받았고 아무런 법칙도 흐름도 물론 답도 없는 저 마다의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 운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니 갑작스럽게 삶의 흐름이 생각했던 답에서 멀어진다고 하여, 슬퍼하거나 당황해하지 말라. 그것이 우리네 삶의 본질이니. 다만 주어진 것을 해석하고 풀이하라. 그것이 우리 삶을 저마다의 의미로 만들 것이다. '하이킥'의 결말이 우리에게 던진 숙제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이렇게 시작하는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를 들을 때마다 나는 호주에서 1년 간 지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 생각해도 '전혀 다른 나'였던 그 시절. 나는 통기타 하나 들고 캠퍼스 잔디에 앉아 노래 부르는 베짱이의 삶을 구가했었다. 어쩌면 그리도 걱정이 없었고, 어쩌면 그리도 자유로웠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아할 지경이다. 해외여행을 나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또 다른 자신을 만나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공간에서 언어마저 다를 때 느끼는 그 당혹스런(?) 자유로움이란 때론 숨겨진 또 하나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 때 나는 마치 연기자들처럼 그 자유로운 캐릭터에 빠져있었고 그 전혀 다른 내 모습이 주는 반전을 짜릿한 쾌감으로 즐기고 있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이 몰입과 반전은 내게는 익숙한 경험이다. '아테나'를 통해 그 가녀린 몸에서 폭발적인 액션을 보여준 수애가 '천일의 약속'에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을 보여줄 때,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그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던 김영철이 '공주의 남자'에서 추상같은 수양대군으로 변신할 때, 나는 그 몰입과 반전이 주는 소름끼치는 경험을 하곤 한다. 가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이미 촬영은 끝났지만 그 캐릭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여전히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연기자를 보며 이 직업은 마치 '빙의'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어떤 것에 몰입하고 있을 때, 그들은 숨겨진 또 다른 반전의 얼굴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그 무심하게 쳐다보는 카메라 렌즈 때문에 도무지 몰입할 수 없었던 시간이 떠오른다.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는 그 이물감 때문에 잔뜩 긴장해서 이마에서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질문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 지 머뭇대던 그 기억들. 하지만 차츰 카메라가 익숙해지면서 이런 이물감을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어떤 질문들이 쏟아져 나올 때 마치 내 속에서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또 다른 얼굴이 고개를 내밀고 열심히 답변을 토해내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촬영된 방송분을 TV를 통해 확인하면 또 그 기분이 묘하다. 저런 얘길 과연 내가 했나 싶다. 그건 아마도 몰입된 순간에 튀어나온 내 속의 평론가라는 반전의 얼굴이 한 얘기일 것이다.

가끔은 그 때 호주에서 슬쩍 얼굴을 내밀던 그 자유로운 캐릭터가 그립다. 사막을 횡단하고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던 그는 이제 이 도시라는 사막에 앉아 꼼짝없이 노트북에 매여 버린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11시간 정도를 날아가면 겨울이 여름이 되는 호주라는 섬이 있다. 비록 노트북 바탕화면에 펼쳐진 어딘지 모를 바닷가를 쳐다보고 있지만 내 속에 숨겨진 캐릭터는 벌써 그 섬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언젠간.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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