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사제’, 위풍당당행진곡 ‘킹스맨’ 패러디를 이렇게 쓸 줄이야

 

영화 <킹스맨>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은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에 맞춰 세상을 망하게 만들고 자신들만 살아남겠다고 모인 이들의 머리가 차례로 날아가는 장면이다. 잔인한 장면일 수 있지만 영화는 이것을 음악에 맞춰 마치 꽃 봉우리가 터지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해냄으로써 19금 섞인 코믹한 스파이액션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그 장면이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고스란히 패러디된다. <킹스맨>에 비하면 어딘지 B급처럼 보이는 이 패러디에서 장룡(음문석)과 그 패거리들은 김해일(김남길)이 중국으로 구해온 ‘설사초’를 넣은 도시락을 먹고 결정적인 순간에 한 명씩 넘어지며 설사를 터트리는 장면을 연출한다. <킹스맨>을 본 분들이라면 위풍당당행진곡에 맞춰 꽃봉우리 CG가 곁들여진 그 장면을 보며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을 게다.

 

<열혈사제>는 이제 본격적인 패러디 드라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날 방송된 내용 중에는 ‘나쁜 놈, 얍삽한 놈, 엊그제 뉘우친 女ㄴ, 멋지지만 화가 많은 놈’ 같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패러디한 장면에 맞춰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고, 장룡과 패거리들이 함께 걸어오는 장면에서는 ‘풍문으로 들었소’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한 장면이 그대로 패러디되었다.

 

<열혈사제>로 화제의 주인공이 된 쏭삭(안창환)과 김인경 수녀(백지원)도 결국은 패러디의 공을 톡톡히 봤다. 외국인 노동자로 핍박받던 쏭삭이 갑자기 과거 태국의 왕실경호원이었고 무에타이 고수를 등장하는 장면은 <옹박>을 패러디한 것이었고, 평택에서 십미호로 이름 날린 타짜였다는 게 밝혀지며 맹활약하는 김인경 수녀의 반전도 영화 <타짜>를 패러디한 것이었다. 수녀님이 던지는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같은 대사가 빵빵 터졌던 이유다.

 

이밖에도 패러디는 넘쳐난다. 김남길과 이하늬가 서로의 입을 가린 채 얼굴을 쳐다보는 <미스터 션샤인> 패러디도 있고, 위기에 처한 서승아 형사(금새록)를 박경선(이하늬) 검사가 갑자기 엑스칼리버 같은 검을 들고 나타나 도와주면서 “미션 클리어”라 외치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패러디도 있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김해일 신부라는 캐릭터 자체도 영화 <검은 사제들>의 패러디처럼 보인다.

 

<열혈사제>가 이처럼 다양한 패러디들을 쏟아낼 수 있게 된 건 그 기조를 풍자 코미디로 명쾌하게 세워 놨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그래서 진지해지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나쁜 짓 하는 권력자들을 혼내겠다는 그 단순명쾌한 이야기 속에 다양한 캐릭터들의 패러디 전시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무엇보다 웃음을 주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보여준다.

 

<열혈사제>가 금토 시간대에 새롭게 들어와 무려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내면서, 화제성도 좋고 또 평가도 좋은 이유는 그 작정하고 웃기겠다는 패러디들을 통해 보이는 명쾌하면서도 확고해 보이는 작품의 진정성이 느껴져서다. 어차피 답답한 현실, 한번 시원하게라도 웃어보자는 그 명확한 목표를 향해 <열혈사제>의 다양한 패러디 웃음폭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사진:SBS)

‘그녀의 사생활’이 그리는 성덕의 세계, 그 기대와 우려 사이

 

tvN 수목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에는 이른바 ‘덕후’라 불리는 이들이 쓰는 그들만의 용어들이 일상적으로 등장한다. 첫 회의 부제로 붙은 ‘덕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이나 2회의 부제인 ‘미안하다 일코한다’라는 제목부터가 그렇다. ‘오타쿠’라는 용어에서 비롯된 덕후라는 우리식의 단어가 또 줄어서 ‘덕’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일코’ 같은 ‘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이 더해진다. 아는 이들이야 이런 용어 자체가 익숙하고 나아가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이를 잘 모른다면 이런 용어들이 어떤 장벽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녀의 사생활>이라는 드라마는 바로 그 ‘덕질’을 소재로 가져왔다. 주인공의 이름이 일단 ‘성덕미(박민영)’라는 것부터가 그렇다. 그것은 ‘성공한 덕후’를 뜻하는 ‘성덕’에서 따온 이름이다. 성덕미는 채움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로 프로페셔널한 커리어우먼이지만, 숨겨진 ‘사생활’이 있다. 아이돌 그룹 화이트오션의 차시안을 최애하는 덕후라는 것. 아이돌을 싫어하는 엄소혜 채움미술관 전 관장 때문에 성덕미는 이른바 ‘일코’하며 지내왔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나면 카메라로 중무장하고 얼굴을 가린 채 시안을 덕질하는 비밀스런 삶을 살아간다.

 

그런 그가 새로 관장으로 오게 된 라이언 골드(김재욱)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과 사랑의 이야기가 <그녀의 사생활>이다. 만나는 순간부터 악연으로 엮이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그렇게 밀고 당기면서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관계의 진전을 보여준다. 독한 말만 하고 차갑게만 보이던 라이언 골드가 어린 시절 상처를 가진 인물이라는 게, 그가 카페인 알레르기인 줄 모르고 장난으로 음료에 커피를 넣었다가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는 에피소드를 통해 그려진다. 성덕미가 미안한 마음에 손에 묻은 커피를 닦아주려 할 때 그 손을 꼭 잡는 라이언 골드는 어린 시절 자신의 손을 놓던 누군가(아마도 부모인)를 떠올린다.

 

악연을 갖게 된 남녀가 관장과 큐레이터라는 직장 내 상하관계로 엮이며 벌어지는 로맨스의 이야기는 사실 좀 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색다른 지점으로 삼고 있는 건 바로 성덕미라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그 ‘성덕’의 아름다운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뭐가 아름다울까 싶지만 사실 ‘덕질’에 내포된 열정은 일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발현되기도 한다. 성덕미가 채움미술관에서 보여주는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건 어쩌면 그 덕질을 하며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 애정이 열정이 되던 그 경험들 때문일 수 있어서다.

 

지금은 이른바 ‘덕후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저마다의 취향이 그 삶을 규정하는 시대다. 한 때는 ‘마니아’라 불리며 조금은 이상한 사람 취급받던 덕후들이 실제로 ‘전문가’가 되어 그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일들이 이제는 익숙하게 벌어진다. 그것은 어떤 취향에 대한 애정이 그를 실제로 전문가 수준으로 만들어내고, 또 그런 정도의 열정이어야 그 분야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공한 덕후라는 ‘성덕’은 그래서 우연히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이 일련의 과정이 만든 결과일 수 있다.

 

남는 문제는 <그녀의 사생활>이 그리는 이러한 덕질의 이야기가 얼마만큼 드라마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까 하는 점이다. 물론 웹툰이라면야 덕질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드라마는 그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공감대가 필요한 장르다. 특히 <그녀의 사생활>의 로맨스는 보편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익숙해 식상할 정도로 틀에 박힌 면이 있어 이 드라마만의 차별성을 만들지는 못한다.

 

덕질의 세계를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그것을 시청자들과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건 그래서 이 드라마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다. 물론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통해 확고한 자기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는 박민영이나 등장 자체가 덕질을 하게 만드는 김재욱의 연기는 더할 나위없다. 하지만 결국 이 드라마의 관건은 덕질의 세계를 잘 모르는 이들까지 그 세계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데 있다고 보인다. 과연 이들의 덕질 로맨스는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도 통할 수 있을까.(사진:tvN)

‘더 뱅커’, 은행은 늘 고객을 최우선으로 한다 하지만

 

MBC 수목드라마 <더 뱅커>에서 노대호 역할을 연기하는 김상중은 특유의 목소리 톤을 드라마 안에서도 그대로 보여준다. 김상중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그런데 말입니다” 같은 유행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자신이 캐릭터화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특유의 목소리 톤에서 나온다. 이 톤으로 그는 여러 차례 광고를 찍었고, 그 중에는 새마을금고 같은 은행도 있다. 물론 그 톤이 주는 이미지는 ‘신뢰감’ 같은 것이다.

 

아마도 <더 뱅커>가 김상중을 캐스팅한 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 이미지와 새마을금고 광고가 주는 이미지(실제로 이 드라마는 새마을금고의 광고가 붙어 있다)의 결합이 좋은 시너지를 낼 거라는 예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초반에는 그 특유의 톤이 어딘가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 강했지만, 차츰 지속되면서 그 캐릭터의 겹침이 오히려 드라마에도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김상중의 이미지와 <더 뱅커>의 노대호 캐릭터가 시너지를 내기 시작한 건, 이제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 <더 뱅커>에서 노대호라는 인물은 은행의 경영자들의 입장이 아니라 은행의 고객 중에서도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고의 부도를 여러 차례 냄으로써 그 회사에 피해를 입는 서민들이 생김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그런 이들을 VIP로 관리하는 행태는, 은행이 그저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경영자들의 마인드를 잘 보여준다. 노대호는 이런 은행의 부실대출 같은 문제들을 감사라는 직함을 통해 조사하고 해결해나간다.

 

채용비리 문제를 다룬 9,10회 분은 이런 노대호 캐릭터에 대한 판타지가 제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노대호의 운전기사인 박광수(김규철)의 딸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해 대한은행 공채에서 시험을 잘 봤지만, 인사의 전권을 쥐게 된 도정자 전무(서이숙)가 의도적으로 청탁받은 한 지원자를 밀어줌으로써 떨어지게 된 에피소드가 그렇다.

 

겉으로 보면 도정자 전무가 개인적인 비리를 저지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강상도 은행장(유동근)이 그 윗선이라는 걸 은연 중에 드라마는 드러낸다. 즉 강상도 은행장은 국회의원 막내딸의 취업청탁이 들어오고 금용감독원장까지 압박을 해오자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본래는 없었던 신입사원 채용을 진행하게 한다. 그리고 인사총괄 자리에 도정자 전무를 앉힌 것.

 

가진 것 없는 서민의 입장에서는 이런 채용비리가 얼마나 한 가족의 삶 자체를 뒤 흔드는가 하는 문제일 수 있다. 그래서 노대호 같은 감사가 나서고, 채용비리를 전면적으로 파헤친다. 실제 현실에서 가능할까 싶은 이야기이고, 사실상 노대호 같은 전권을 쥔 감사 같은 인물이 비현실적이지만, 드라마는 그래서 이 부분을 판타지로 그려낸다. 물론 그의 감사는 도정자 전무에게 그 칼끝을 향할 것이고,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은행장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지만.

 

<더 뱅커>가 그리고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은행장이나 노대호 같은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움직이는 감사는 우리네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판타지적 인물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적지 않은 건, 실제로 은행을 비롯한 기업들의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걸 갖기 위해 저지르는 비리가 적지 않은 현실 때문일 게다.

 

그래서 저 <그것이 알고 싶다>의 톤을 그대로 가져온 김상중의 연기와 노대호라는 캐릭터가 의외로 잘 어울리게 느껴진다. 서민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당해왔던 어떤 것들을 이 인물이 파헤쳐 그 진실을 드러내주고 있어서다. 몹시도 그것이 알고 싶었던 대중들에게는 그 실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어떤 면에서는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되니 말이다.(사진:MBC)

‘닥터 프리즈너’, 어느새 우린 장르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장르물들은 퓨전을 거듭 시도해왔다. 의학드라마 같은 경우는 특히 그렇다. <허준>이나 <대장금>은 이미 고전이 된 의학 사극이지만, 그 후에도 사극과 퓨전된 <제중원>이나 <마의> 같은 드라마가 있었고 타임리프가 더해진 <닥터진>이나 <명불허전> 같은 드라마도 있었다. 또 <카인과 아벨> 같은 드라마는 응급의학을 소재로 야전에서 수술을 시전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고, <골든타임>이나 <낭만닥터 김사부> 역시 응급의학과의 전쟁 같은 상황을 소재로 다뤘다. 도서 지방 같은 의료 소외지대를 다룬 <병원선>이나 생명을 다루는 곳이자 사업체로서의 병원이라는 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대립을 다룬 <라이프>도 있었다.

 

이 정도면 우리네 의학드라마는 일정한 계보와 장르적 틀마저 갖추고 있다고 봐도 될 만하다. 그 계보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라는 소재는 시대와 공간과 각 과가 갖는 특징들을 변주하고 퓨전하며 진화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닥터 프리즈너>는 여기에 감옥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우리가 미드 등을 통해 익숙히 알고 있는 감옥 장르물들의 특성과 의학이 만나는 지점이 특이하다. 교도소 재소자들 중 이른바 VIP들을 담당하며 그들에게 갖가지 질병 진단을 덧붙여 ‘형 집행 정지’를 내리는 비리 의사들이 바로 그 접점이다.

 

드라마 속에서 이들은 재소자들을 치료하는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재소자들을 병들게 만든다. 시작과 함께 나이제(남궁민)가 여대생 살인교사 혐의로 수감된 재벌사모님 오정희(김정난)를 ‘형 집행 정지’로 만들기 위해 몸을 망가뜨리는 장면은 이 독특한 의학드라마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흔히 의학드라마에서 의사의 칼은 ‘살인검(殺人劍)’이 될 수도 있고 ‘활인검(活人劍)’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 관점에서 보면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가 들고 있는 칼은 활인검이라기보다는 살인검에 가깝다.

 

그것은 태강병원에서 잘 나가던 응급의학센터 에이스 나이제가 하루아침에 그 병원의 주인인 태강그룹 회장의 망나니 아들 이재환(박은석)에 의해 추락하게 되면서 생겨난 반전이다. 자신이 치료하던 장애인 부부가 이재환 때문에 사망하게 됐지만 오히려 그 의료사고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게 된 나이제는 자신의 엄마 또한 수술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면서 복수를 계획하게 된다. 그것은 사적 복수지만 또한 가진 자들이 누군가를 살해해 검거돼도 버젓이 형 집행 정지로 교도소를 빠져나가는 그 공적인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을 담아낸다.

 

<닥터 프리즈너>는 그래서 가진 자들이 그 돈의 힘으로 주무르는 병원과 감옥 두 공간에서 이 카르텔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이제의 안간힘을 다루고 있다. 여러모로 그 거대한 카르텔 앞에서 그는 여전히 미약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 인물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건 순진하게 선을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거악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손에도 피를 묻혀야 한다는 걸 알고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복수과정은 그래서 흥미로워진다. 선민식(김병철)이라는 서서울 교도소 의료과장과 각을 세우며 그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는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자신의 비리를 정의식 검사(장현성)가 추적하는 것조차 이용하려 한다. 마치 이 거악을 줄줄이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 또한 그 악의 한 줄기가 되어 그들과 함께 기꺼이 무너지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의학드라마는 그래서 감옥을 소재로 덧붙여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회극적인 면모를 갖게 된다.

 

이제 장르물에 멜로나 가족드라마적 요소를 끼워 넣지 않으면 어딘지 성공하기 어렵다는 드라마업계의 편견을 사라진 듯하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 중 주목받고 있는 <닥터 프리즈너>나 <열혈사제> 그리고 <자백> 같은 일련의 장르물들에서는 이런 요소들 없이도 시청자들이 충분히 몰입한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멜로의 틈입 같은 것이 이제는 장르물에 있어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까지 치부되고 있다.

 

이미 넷플릭스 등을 통해 미드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 현실 속에서 이제 우리네 장르물들도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됐다. 지금껏 오랫동안 만들어져 왔던 의학드라마의 진화과정을 보면 지금의 변화가 뚜렷이 드러난다. 이제 장르 자체가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여러 장르들이 퓨전되는 걸 오히려 즐기고, 그 장르적 문법들이 새롭게 해석될 때 더 열광한다.

 

그런 관점에서 <닥터 프리즈너>는 대표적인 사례다. 장르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시청자들은 다소 복잡하고 시시각각 상황이 반전하면서 감옥과 병원을 넘나들고 때로는 사회극의 면모를 드러내는 이 작품에 열광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서 마치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심지어 KBS 드라마에서 이런 본격 장르물을 넘어서는 퓨전 장르물의 묘미를 느낄 줄이야. 우리네 드라마에 장르물 트렌드가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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