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생이 애틋했으면”...‘눈이 부시게’가 노년과 청춘을 담는 방식

저 스스로 목숨을 저버린 샤넬 할머니(정영숙)는 절망적이었을 그 때 기다리고 있는 준하(남주혁)를 보고는 애써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거짓말을 했다. 손주가 많이 컸고 그래서 자기 이름을 스스로 얘기했다며 대견해했고, 집까지 팔아 미국에 갔던 아들이 사업 실패에 돌아와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걸 죄송해하고 있다고 했다. 늘 무표정이었던 샤넬 할머니가 그토록 웃으며 준하 앞에서 거짓말을 했던 건 왜였을까.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담아낸 샤넬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은 제목처럼 ‘눈이 부셨다’. 할머니는 끝까지 자신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아들과 손자를 챙겼고, 무엇보다 그 빈자리를 채워줬던 준하를 아들처럼 아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는 준하를 굳이 공항까지 배웅해주겠다고 했던 것. 어쩌면 샤넬 할머니와 준하는 그렇게 아무도 지지할 데 없어 절망적으로 서로를 끌어안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국에 있다고 여긴 아들에게 편지를 부쳐달라고 부탁했던 샤넬 할머니의 그 마음을 준하는 아들 대신 답장을 써주는 것으로 채워주려 했다. 아무도 없이 버려진다는 그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던 두 사람인데, 샤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그 말은 준하에게는 얼마나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을까. 마지막 순간에 환하게 웃고 밝게 얘기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프게도 그의 눈을 찌르는 이유다. 

보험수령인이 준하로 되어 있었다는 건 샤넬 할머니가 그를 진짜 아들처럼 여겼다는 걸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니 그 마지막 순간 아프지 말라며 공항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은 어머니가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전혀 알 수 없는 이들이 보험수령인이 된 준하를 오히려 용의자로 몰았지만 그것까지도 배려해 편지를 남긴 샤넬 할머니에 준하는 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또 만난다면 그때는 내가 꼭 이준하씨 엄마로 태어날게요.’

<눈이 부시게>는 어쩌면 뉴스의 한 대목으로 사라져버릴 어느 한 어르신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온전한 한 회로 채워 넣으며 거기 담겨진 삶의 쓸쓸함을 얘기했다. 샤넬 할머니를 통해 “칠십 해가 넘게 살면서 온갖 일을 다 겪었을 텐데 결국 사진으로만 남았어”고 말하는 혜자(김혜자)는 삶의 ‘애틋함’을 깨달았다. 

“난 말야 내가 애틋해. 남들은 다 늙은 몸뚱아리 뭐 기대할 것도 후회도 의미 없는 인생이다 뭐가 안쓰럽냐 하겠지만은, 난 내가 안쓰러워 미치겠어. 너도 네가 네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다.” 혜자가 자신을 빗대 위로하는 그 말에 준하는 오열하며 무너져 내린다. 너무 힘겨운 현실에 부닥쳐 갑자기 100년은 늙어버린 듯 아무런 희망도 꿈도 의욕도 없이 살아가는 준하에게 스스로를 애틋하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위로를 해준 것이니 말이다. 

혜자에 대해 준하는 “내 인생을 끌어안고 울어준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괴롭게 했던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었는데, 그런 자신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었다는 것. 이것은 <눈이 부시게>가 이 애틋한 노년과 청춘을 담는 방식이다. 그 인생들을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는 것. 오랜만에 가슴 뜨거워지는 드라마를 만났다.(사진:JTBC)


주말극 같은 장르물, 이건 ‘열혈사제’의 진화인가 퇴행인가

분명 장르물의 색깔을 지녔는데 어딘지 주말극 같다. 나쁜 놈들 때려잡는 전직 요원 출신의 신부. 동료애 하나만큼은 분명히 갖고 있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트라우마 때문인지 조폭들에게 휘둘리는 형사. 마음 한 구석에 살해당한 신부님을 외면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성공하고픈 욕망 때문에 흔들리는 검사. 이들이 정치인에서부터 경찰, 검찰, 조폭들까지 결탁해 구담시를 좌지우지하는 악의 카르텔과 대적해가는 이야기.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는 분명 액션이 더해진 장르물의 구조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된다기보다는 캐릭터 중심으로 자잘하고 일상적인 코미디에 더 집중하는 이 드라마는 어딘지 전형적인 주말극을 닮았다. 

시청률표를 보면 금토에 SBS가 새롭게 시간대를 마련해 들어온 이 드라마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국시청률이 16.1%(닐슨 코리아)에 이르고, 특히 타깃시청률이라고 할 수 있는 2049시청률 또한 9.4%를 달성하고 있다는 건 실구매층으로 여겨지는 젊은 세대들 또한 이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딘지 변종이다. 지금껏 시청자들이 OCN이나 tvN 등에서 자주 봐왔던 장르물과는 너무나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OCN에서 방영됐던 <나쁜녀석들> 같은 드라마와 <열혈사제>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사실 <나쁜녀석들>이나 <열혈사제>나 그 이야기 설정과 구조만 보면 그리 다른 장르물은 아니다. 현실을 대변하는 악의 무리들이 존재하고(이들은 대부분 권력과 결탁해 있다), 검찰이나 경찰 같은 법집행기관은 부패해 있다. 그러니 더 ‘나쁜 놈들’이 나서 그들과 싸우거나, 참다못한 열혈신부가 나서 그들과 대적해나간다. 그리고 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비슷한 부류의 소외된 이들과 함께 팀을 이룬다. 

<나쁜녀석들>과 <열혈사제>는 이야기 구조는 비슷해도 장르물의 색깔은 완전히 다르다. <나쁜녀석들>은 긴장감 넘치는 대결구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또 언제 어떤 반전이 생겨날지 알 수 없는 그 이야기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반면 <열혈사제>는 정반대다. 시청자들은 이미 이 전직 요원 출신의 신부와 지금은 악의 무리들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는 형사와 검사가 이 구담시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선량한 이들과 힘을 합쳐 결국은 정의를 세울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이야기 전개도 전혀 빠르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동어반복적인 같은 상황이 빙빙 도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 드라마의 전제가 되는 이영준 신부(정동환) 살해사건은 일찌감치 벌어졌지만 아직 그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대신 악의 세력들과 결탁한 불량급식업체의 비리를 캐나가는 김해일(김남길) 신부의 이야기가 몇 회에 걸쳐 이어진다. 대신 이 드라마는 느린 전개 속에 자잘한 캐릭터 코미디를 채워 넣는다. 마치 만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우스꽝스런 장면들이 연출되고, 실제로 태국인 출신 노동자인 쏭삭(안창환)이나 배부르게 먹으면 놀라운 청력을 발휘하는 요한(고규필)이 보여주는 코믹한 캐릭터 플레이는 의외의 정감과 재미를 더해 넣는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또 다른 의미의 ‘시간 순삭(순간삭제)’을 경험한다. 뭐 별 이야기도 아직 진행된 게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경험. 하지만 그건 긴장감 넘치는 전개 때문에 생겨나는 ‘시간 순삭’과는 사뭇 다르다. 이야기는 실제로 별로 전개되지 않지만 대신 깨알 같은 캐릭터들의 유머 코드들이 채워져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는 그런 의미에서의 ‘시간 순삭’이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봐야할까. 장르물이 지상파 주말극이라는 시간대를 공략하기 위해 시도된 새로운 의미의 진화일까. 아니면 본래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로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장르물의 퇴행일까.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지점에 서 있는 <열혈사제>지만 그 느린 전개에도 남다른 몰입감을 느끼며 젊은 시청자들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건 이런 장르의 변종이 그 안에 들어 있어서다. 

장르물은 이제 드라마의 중요한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들은 여전히 그 플랫폼이 지금껏 유지해온 색깔과 시청층들(신구세대를 모두 아우르려는)을 겨냥해 본격 장르물보다는 변종들을 시도해왔다. 멜로에 가족까지 더한 이른바 ‘복합장르물’ 같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열혈사제>는 또 하나의 변종 장르물이라 여겨진다. 장르물이지만 주말극 같은 느슨함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어내고 있는.(사진:SBS)

복합장르 ‘빙의’, 인간미 넘치는 배우 송새벽의 진가

OCN 수목드라마 <빙의>는 섬뜩한데 웃기고 한편으론 짠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연쇄살인범이 등장하고, 여기에 빙의 소재의 귀신이 등장한다. 그러니 스릴러와 공포 장르가 섞여 긴장감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송새벽이 연기하는 강필성이라는 이른바 ‘영이 맑은 불량 형사’라는 캐릭터는 어딘지 코믹하다. 살인현장을 누비며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범인을 잡기 위해 뛰는 열혈형사지만, 편의점 바닥에 떨어진 구미를 벌레로 오인하고 깜짝깜짝 놀라는 새가슴이다. 밤마다 혼자 자는 밤이 무서워 영어회화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자는 통에 간단한 영어회화를 구사하기도 하는 그런 인물.

그러니 그가 갑가지 영을 보는 눈이 열려 귀신을 마주하게 될 상황이 우습지 않을 수 없다. 귀신을 보고 오금이 저려 쓰러지고 소리 지르는 강필성은 그가 하는 형사라는 직업의 강인함과 상반된 면을 드러내며 웃음을 만든다. 그런데 이 강필성은 그저 새가슴인 겁 많은 형사 그 이상의 면모를 갖고 있다. 그것은 타인의 입장을 들여다보는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 행상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단속 나왔다며 피하라 알려주는 형사이고, 하다못해 제 집에서 보게 된 귀신 부녀에게 무서워 쫓아내려 하다가 슬픈 눈빛을 보고는 오히려 제사를 지내주며 먹을 걸 주는 그런 인물. ‘영이 맑다’는 건 그의 이런 남다른 감수성에서 비롯된 착한 심성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니 이 지점에서는 그 인간적인 면모에 짠한 감정이 생겨난다. 

이건 <빙의>라는 형사물이 가진 독특한 특징이다. 기본적으로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형사 스릴러 장르를 갖고 있지만, ‘빙의’ 소재라는 오컬트적 요소가 들어가 있고 여기에 코미디와 휴먼드라마가 더해져 있다. 살해당한 엄마가 아이에게 인형을 사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귀신이 되어 슬퍼하는 모습을 본 강필성이 아이에게 인형을 대신 사다주며 엄마가 보냈다고 말하는 장면은, 이 복합적으로 얽혀진 장르와 그래서 감정 또한 복합적으로 만들어지는 <빙의>라는 드라마가 가진 색깔을 잘 보여준다. 심지어 이 드라마는 강필성과 영매인 홍서정(고준희)이 함께 수사를 하게 되는 과정과 더불어 두 사람 사이의 멜로까지 겹쳐놓았다. 이토록 자유자재로 장르가 뒤섞여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잘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 강필성이라는 독특한 인물을 연기하는 송새벽이라는 배우의 진가가 보인다. 송새벽은 어떤 역할도 자신의 색깔로 소화해내는 독보적인 자기 세계를 가진 배우다. <방자전>에서 변학도라는 인물을 완전히 자기 스타일로 곱씹어 표현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이후 그는 웃기면서도 섬뜩하고 때론 인간미 넘치는 그런 다양한 역할들을 자유자재로 선보인 바 있다. 지난해에는 <나의 아저씨>를 통해 화 많지만 그만큼 따뜻한 박기훈이라는 인물을 매력적으로 연기하기도 했다. 

그가 가진 독보적인 연기 세계의 핵심은 아무래도 ‘인간미’가 아닐까 싶다. <빙의>에서 어딘지 불량해보이지만 우스꽝스럽고 그러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건 한 인물을 단면적으로 연기하지 않고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면모들(그것이 반전요소를 갖고 있을 지라도)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그의 인간미 넘치는 연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국 한 가지의 얼굴만 갖고 있는 게 아니고 다양한 얼굴의 복합체라는 걸 송새벽은 연기를 통해 보여준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빙의>라는 작품은 송새벽에게 맞춤인 드라마로 보인다. 결국 이 드라마가 ‘빙의’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건 단지 형사물에 오컬트적 요소를 더하는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이 형사물을 통해 담으려는 주제의식까지도 거기에 담겨져 있어서다. 우리가 흔히 ‘빙의된다’고 표현하는 건 어찌 보면 강필성이라는 인물이 그러하듯이 ‘타인의 입장을 들여다보고 되어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강필성이 그토록 겁이 많은 형사지만 사건에 열정적으로 뛰어드는 그 힘은 ‘빙의되듯’ 피해자의 입장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일 수 있다. 

반면 연쇄살인범은 살해현장에 거울을 놓아 피해자가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하는 걸 즐긴다. 또 과거 끔찍한 연쇄살인범이었던 황대두(원현준)는 자신을 추적하던 형사 김낙천(장혁진)의 아내와 아이를 죽여 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그런 살인자였다. 그건 어찌 보면 빙의의 가학적인 활용처럼 보인다. 타인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느끼며 즐거워하는 살인범. 

<빙의>는 그래서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살인범과 그 고통을 이해함으로써 이를 막으려 뛰어드는 형사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진다. 송새벽이 강필성이라는 인물을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피해자의 고통을 들여다보며 더더욱 범인을 잡기 위해 뛰는 ‘인간적인’ 캐릭터로 그려내는 건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고리가 된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건 이 복합적인 감정들의 롤러코스터를 한 인간적인 형사를 통해 빙의할 수 있게 해주는 송새벽이라는 배우가 있어 가능해진 일이라는 점이다.(사진:OCN)

정신없이 몰아치는 '해치', 정일우가 있어 몰입된다

SBS 월화드라마 <해치>는 ‘신세대 사극’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기존의 사극의 틀에 젊은 감각을 더했다. 그 단적인 증거는 이 사극이 가진 남다른 속도감이다. 끊임없이 사건들을 몰아치는 <해치>는 우리가 흔히 미드를 통해 보던 그런 몰입감을 선사한다. 과거 <이산>과 <동이> 등을 통해 이병훈 감독과 사극의 묘미를 맛보던 김이영 작가는 이제 미드적인 장르의 틀을 가져와 자기만의 색깔을 세우고 있다. <해치>는 그 성취가 보이는 작품이다.

<동이>를 통해 숙종에서 영조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이미 체득하고 있고, 거기서 영조가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인가를 잘 알고 있는 김이영 작가는 이번 <해치>를 통해서는 그 영조가 연잉군 이금(정일우)으로 방황하던 시절부터 스스로를 왕좌에까지 올리는 그 입지전적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동이로 불린 숙빈 최씨의 아들이 바로 영조다.

연잉군이 흥미로운 소재가 되는 건, 천민 출신 무수리의 소생으로 태어나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그 처지 속에서 임금의 자리까지 올랐다는 그 성장담 때문이다. 여기에 <해치>는 당대의 파당정치로 인해 왕권은 땅에 떨어지고, 노론에 의해 농단되는 정치현실 속에서 아무런 당파조차 없는 연잉군이 어떻게 빈손으로 이 파란의 세파를 뛰어넘었으며 결국에는 왕권을 틀어쥐고 민생정치를 할 수 있게 되었는가가 더 흥미로운 스토리로 더해졌다.

당대의 사헌부를 상징하는 ‘해치’가 제목으로 세워진 건, 아무 것도 없던 연잉군이 그나마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노론 세력의 비리를 그냥은 두고 볼 수 없는 ‘정의 실현’이나 ‘진실 추구’ 같은 가치들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뜻을 갖게 된 박문수(권율)나 여지(고아라) 그리고 달문(박훈) 같은 중요한 인물들이 그를 따르게 된다. 과거비리로 늘 낙방의 고배를 마셨던 박문수가 그 비리를 캐면서 잡게 된 노론의 약점이 그들을 분열하게 만들고, 그 틈을 비집고 연잉군이 세제(왕좌를 이을 아우)가 되는 과정은 그래서 이 아무 것도 없는 인물이 가진 ‘비전’의 힘을 보여준다.

중요한 건 <해치>가 역사적 인물이나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의 새로움과 세련됨이다. <해치>는 정치사극에서 늘 중시되던 ‘명분’보다는 저마다의 욕망을 이야기의 동력으로 삼는다. 즉 연잉군은 왕좌에 대한 뜻이 전혀 없다가, 자신이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함으로써 소중한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걸 직접 경험하고는 각성한다. 경종(한승현)은 노론의 수장 민진헌(이경영) 앞에서 말을 더듬을 정도로 유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구와도 손을 잡으려 하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분열된 노론의 이이겸(김종수) 같은 인물이 자신이 살기 위해 연잉군을 세제로 삼으라고 경종에게 주청을 올리면서, 노론과 소론 그리고 경종으로부터 모두 배척당할 위기에 놓인 연잉군이 이를 기회로 바꾸는 모습은 저마다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어 흥미진진해진다. 당파가 없는 연잉군이 역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경종을 독대하며 자신에게는 오히려 당파가 없기 때문에 결코 노론의 개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설득시킨다.

그리고 내금위장을 연잉군에게 보내는데, 이것은 어쩌면 경종이 연잉군을 시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진짜 역적이라면 도주했을 테지만 연잉군은 기꺼이 내금위장을 맞음으로써 그가 경종에 충성한다는 걸 보여준다. 반면 연잉군을 세제로 삼았다는 소식을 들은 민진헌이 경종에게 반발하자, 경종은 오히려 더 자신의 선택을 믿게 된다. 결국 노론과 연잉군이 결탁한 게 아니라는 게 밝혀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디테일한 인물들의 욕망들을 세우고, 이들이 부딪치며 내는 다양한 양상들을 빠른 속도감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해치>는 남다른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긴 하지만 그 과정이 어떤 방식으로 튀어나갈지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건 여러 인물들의 욕망들이 잘 살아있어서다. 알다시피 복잡하게 권력과 이해로 얽힌 관계란 한 사람의 변화만으로도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복잡한 양상을 굳건히 하나로 모아 끌고 가는 인물이 바로 연잉군이다. 연잉군과 그를 위시한 박문수, 여지, 달문 같은 인물들은 그래서 복잡한 상황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준다. 시청자들이 결코 쉽지 않은 이 사극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이유다.

결국 그 중심축을 쥐고 있는 연잉군을 연기하는 배우 정일우를 칭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는 폭풍전개 되는 상황의 반전 속에서 확실히 흔들림 없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간간히 긴장을 풀어주는 여유까지 자연스럽다. 물론 발성이 아직 명쾌하지 않다는 지적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 건 그가 보여주는 무거움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진지한 연기다. 흥미진진한 입지전적인 영조의 행적을 따라가는 이야기 <해치>에서 정일우가 마땅히 박수 받아야 될 이유다.(사진:SBS)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