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비서 역할 새 장 연 민진웅 이대로 하차는 아쉽다

이제 드라마에서 주인공만큼 주목받는 역할이 바로 그 옆 자리를 지키는 비서 역할이 됐다.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김비서 역할로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대세 배우로 주목받게 된 조우진이 그렇고, <미스터 션샤인>의 거의 부모 같지만 비서 역할이나 다름없는 행랑아범과 함안댁 역할을 한 신정근과 이정은이 그렇다. 아예 비서와 대표 간의 로맨스를 다뤘던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김미소(박민영)은 물론이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남자친구>의 차수현(송혜교)을 보좌하면서 친구 역할도 보여주는 장미진(곽선영)도 빼놓을 수 없는 주목받는 비서다. 

시청자들이 지지하고 몰입하게 되는 주인공을 돕는 인물인데다, 또 드라마에서는 살짝 긴장을 풀어주며 웃음을 주는 인물이기도 하며 때로는 주인공의 멜로를 이어주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멜로의 주인공이 되는 존재이니 비서 역할의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tvN 주말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서정훈(민진웅)은 비서 역할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죽어서도 주인공을 돕는 비서라니.

이런 독특한 비서 역할이 가능해진 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가진 남다른 모험담 덕분이다. 게임 속 경험이 현실과 중첩되는 이 마법 같은 판타지 드라마는 주인공 유진우(현빈)가 게임 속 대결에서 죽인 차형석(박훈)이 실제로도 죽음을 맞이하고, 마치 사이버 좀비처럼 계속 부활해 그를 죽이러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게임이 현실이 되는 이 세계 속에서 유진우는 그래서 이 게임을 만들고 사라진 마스터 정세주(찬열)를 찾아가는 모험을 하게 된다. 

그러니 비서 역할인 서정훈 역시 자연스럽게 기사가 된 유진우를 보좌하는 또 다른 기사가 될 수밖에 없다. 유진우와 게임 속 동맹을 맺으면서 그가 겪는 현실과 중첩된 게임 세계를 똑같이 겪게 되는 서정훈은 마치 돈키호테 옆의 산초 같은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미친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 세계 깊숙이 들어가게 되는 것. 하지만 정세주를 구하기 위해 그라나다로 들어가던 중 서정훈은 갑자기 등장한 나사르 왕국의 전사들의 공격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서정훈이 가진 비중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걸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지만,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세계관은 이를 허용하게 만든다. 정세주를 구하기 위해 나사르의 지하감옥 던전 속으로 들어간 유진우가 계속 등장하는 좀비들에 의해 지쳐갈 때 동맹이었던 서정훈이 사이버 좀비로 나타나 그를 돕는 장면이 그렇다. ‘위기 때마다 다시 나타나’ 그를 도울 수 있다는 설정은 앞으로도 어떤 특정 상황에서 다시 그가 등장할 거라는 걸 예고한다. 

이것은 유진우와 대결구도를 만들던 차형석이 드라마 초반에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매회 빠지지 않고 등장해 드라마에 긴장감을 부여했던 것을 통해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드라마의 독특한 세계관 때문에 인물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등장해 막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적으로 죽었던 차형석이 적이 되어 계속 등장하듯, 동맹이었던 서정훈은 앞으로도 동맹으로 계속 등장하지 않을까.

물론 웃음보다는 비장하고 슬픈 정조를 가진 사이버 좀비 비서가 되겠지만, 서정훈이라는 캐릭터는 그 어떤 비서 캐릭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독보적인 인물로 남을 것 같다. 그 죽음이 주는 아쉬움과 그래도 계속 부활해 나타날 기대감. 게다가 슬픈 정조를 부여하는 비서 캐릭터라니. 이 역할을 연기하는 민진웅이라는 배우에게도 인상적인 존재감을 부여할 것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분명하다.(사진:tvN)

‘붉은 달 푸른 해’, 아동학대자들에 대한 응징 그 양가감정

누가 봐도 아동학대를 해온 부모라는 게 뻔해 보이지만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그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그 광경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 MBC 수목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학대를 당해온 하나를 친딸이라며 개장수 고성환(백현진)이 굳이 데려가는 그 모습을 보는 차우경(김선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사 강지헌(이이경)은 위험할 때 누르면 자신이 찾아가겠다며 아이의 손목에 스마트워치를 채워주며, 고성환에게 자신들이 항상 주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장면은 <붉은 달 푸른 해>라는 문제작이 제기하고 있는 질문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동학대는 그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는 가해사실을 부인하기도 하고, 그걸 은폐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은 다시 그 부모에게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과연 이런 부모들을 부모라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를 차에 태우고 가는 길에 고성환은 “그걸 말했냐”고 물었고, 아이는 얘기하지 않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하면 어떻게 될 거라고 했냐고 되묻는 고성환에게 아이는 “목을 비틀어 죽여 버린다”는 끔찍한 말을 했다. 아이가 당한 학대와 그걸 숨기려던 이유가 이 대화 속에는 들어 있었다. 

하나가 어떤 학대를 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놀이터에서 놀다 아이들이 발견한 죽은 새를 하나가 묻어주는 장면은 그 학대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예감하게 해준다. 하나는 죽은 무언가를 묻어주었거나 묻는 장면을 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죽은 새를 그렇게 묻어줬던 게 아닐까. 

결국 개장수 아빠와 집으로 가게 된 하나는 그 날 밤 끔찍한 소리를 듣고는 차우경에게 전화를 건다. 차우경은 아이가 또 학대를 당하는 게 아닌가 싶어 그 밤에 차를 몰아 하나의 집까지 달려오지만, 아이가 들은 소리는 개장수 아빠가 끔찍한 응징을 당하는 소리였다. 그걸 보게 된 차우경 또한 그 응징자에 의해 납치됐다. 강지헌은 과연 차우경과 하나를 구해낼 수 있을까. 

아동학대를 하는 부모와 그 부모를 응징하는 누군가를 보는 감정은 그래서 복합적이다. 그런 부모도 부모냐며 공분을 일으키지만 그가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에서는 시원하다기보다는 끔찍함을 느끼게 된다. 이건 어쩌면 우리가 뉴스 등을 통해 아동학대 사건을 들여다볼 때 느끼게 되는 양가감정이다. 심지어 죽이고픈 살의까지 느껴지는 분노가 피어오르지만, 그런 살의가 갖는 불편함 또한 느껴지기 마련이다. 

‘부모 같지 않은 부모’들을 응징하는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보면 <붉은 달 푸른 해>라는 제목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붉어서 해인 줄 알았는데 달이었다는 것이고, 푸르러서 달인 줄 알았는데 해였다는 의미. 부모인 줄 알았는데 끔찍한 아동학대범이었고, 반대로 잔혹한 연쇄살인범인 줄 알았는데 끔찍한 아동학대범들을 처단하고 아이를 구해내려는 이였다는 것. 차우경은 과연 어느 쪽일까. 또 미스터리한 인물인 이은호(차학연)는?(사진:MBC)

‘땐뽀걸즈’, 혹독한 현실 우리에게 판타지가 필요한 까닭

KBS 월화드라마 <땐뽀걸즈>가 종영했다. 종영했지만 이 작품이 남긴 여운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최고 시청률은 고작 3.5%(닐슨 코리아). 평균 시청률이 2%대지만 시청률 하나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드라마다. 올해 KBS 드라마들을 통틀어 봐도 이 작품만큼 예쁘고, 가슴을 울리게 하는 감동과 함께 삶의 의미까지 담아낸 작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땐뽀걸즈>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걸까. 

실제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 동아리와 이 동아리를 이끈 이규호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드라마화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점이 만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실제 사실을 이기는 허구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서 별다른 극적 구성없이 이규호 선생님의 헌신적인 교육자로서의 삶과 그가 보듬은 댄스스포츠 동아리의 아이들의 현실을 담담히 담아낸 다큐멘터리의 감동을 드라마가 그대로 재연해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드라마 <땐뽀걸즈>는 그 소재를 드라마적인 메시지로 재해석했다. 결국 다큐멘터리가 담은 메시지이기도 했지만, 드라마는 왜 거제여상에서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내는 이 아이들이 댄스스포츠 같은 별 현실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열심히 빠져 들었는가를 질문한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고, 대학을 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 이 아이들은 겨우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으로 뛰어드는 걸 당연한 삶처럼 받아들인다. 

청춘이 가진 특유의 발랄함이 가려서 일견 아무 고민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하고 싶었던 일들을 스스로 접게 된 나름의 아픔들이 숨겨져 있다. 영화감독이 꿈인 김시은(박세완)이 그렇고 모델이 꿈인 양나영(주해은), 한 때는 유도 유망주였지만 부상을 핑계로 꿈을 접은 이예지(신도현) 또 본래 춤에 관심이 있고 소질도 있지만 아버지 권동석(장현성)에게 그걸 드러내지 못하는 권승찬(장동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냥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주어진 일들을 하며 살아내지만, 이규호 선생님(김갑수)은 이들에게 댄스스포츠를 통해 무언가를 이뤄내는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물론 학교를 졸업시키기 위한 선생님의 유인책이지만 댄스스포츠 같은 전혀 현실에는 무익하다 싶은 일이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그 순간 아픈 현실을 잠시 잊고 빠져들게 되고, 그렇게 대회에 나가 노력을 인정받으면서 그것이 잠시 간의 판타지였을 지라도 그들이 앞으로 살아나가는데 오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복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땐뽀걸즈>는 애초 다큐멘터리가 보여줬던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반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확장되어 ‘우리는 왜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꿈을 꾸는가’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영화감독이 꿈인 김시은이 대학 면접에서 왜 영화를 하려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내놓은 답변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보편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고 싶어서요. 영화는 가짜잖아요. 현실은 진짜고. 전 사람들이 현실을 잊기 위해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저는 그렇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작업 자체가 환상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제가 더 좋아하는 것도 있고. 뭐 그 환상이 가짜고 사탕발림에 불과하다고 해도 전 그거를 보는 사람들이 순간만큼이라도 행복을 느끼면 그 영화만큼 진실한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순간 만큼은요. 그래서 저는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고 싶어요.”

김시은이 말한 건 다름 아닌 현실에 치여 꿈꾸지 않던 자신들을 댄스스포츠라는 환상(?)을 통해 순간만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이규호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익한 환상처럼 보였지만 그 순간의 행복들이 있어 그 어려운 현실들을 버텨내고 통과해낼 수 있었다는 것. 그건 어쩌면 이 작은 드라마가 서 있는 지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현실적으로는 낮은 시청률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꿈을 꾸었던 그 순간들만큼은 충분히 행복감을 주었던 드라마가 바로 <땐뽀걸즈>이기 때문이다. 꿈은 사치라고 말하는 현실에 꿈이 있어 비로소 버텨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사진:KBS)

‘알함브라’, 송재정 작가의 세심한 노력에 폐인들이 늘고 있다

게임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를 하는 데는 1차적인 장벽이 존재한다. 그건 게임을 잘 아는 이들과 잘 모르는 이들 사이의 확연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세계에 있어서 너무 초보적인 이야기를 다루면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지만 게임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시시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너무 복잡하거나 어려우면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마니아들은 열광해도 보통사람들은 감흥을 느낄 수 없는.

그런 점에서 보면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신기한 드라마다. 증강현실이라는 낯설 수 있는 게임의 세계 깊숙이 들어가지만 어찌된 일인지 게임을 잘 모르는 이들도 어느새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든 자신을 발견한다.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싶지만, 그간의 전개 과정을 보면 이 작품이 그 게임이라는 낯선 세계에 조금씩 우리를 빠져들게 하기 위해 얼마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왔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활용한 방법은 충분한 튜토리얼과 여행, 멜로 같은 당의정을 더해 최대한 친숙한 느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전혀 게임과는 무관한 듯한 느낌을 준다. 현빈과 박신혜가 주인공들이니 누가 봐도 달달한 멜로가 떠오른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풍광까지 더해지면 이보다 좋은 그림이 없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편안하게(?) 시청자들을 유입시켰다. 유진우(현빈)와 정희주(박신혜)가 그라나다의 보니따 호스텔에서 만나 툭탁거리며 조금씩 케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실제로 이 멜로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유진우는 IT투자회사인 제이원 홀딩스 대표가 아닌가. 누가 봐도 이 구도는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던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렇게 편안하게 접근시켜놓고 갑자기 유진우는 그라나다의 한 광장을 나가 증강현실 게임을 시작한다. 나사르 전사의 석상이 살아 움직이고 어느 카페에서 얻을 수 있는 녹슨 철검으로 밤새도록 그 전사와 싸움을 반복하는 장면이 다소 코믹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이 코믹한 시퀀스는 사실상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게임의 세계로 들어가는 튜토리얼의 역할을 해준다. 증강현실의 게임 세계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거기서는 레벨을 높여나가야 하며, 그래서 더 좋은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룰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차츰 이 세계가 익숙해질 즈음 게임 안에 만들어진 디지털 이미지들과의 대결만이 아니라 다른 유저와의 대결 또한 가능하다는 걸 유진우의 라이벌 차형석(박훈)의 등장을 통해 보여준다. 이처럼 게임의 세계에 발을 조금씩 깊게 들어가면서도 동시에 시청자들이 본래 기대했던 유진우와 정희주 사이의 케미 역시 이어간다. 보니따 호스텔을 100억에 팔라는 유진우의 제안과 조금씩 호감을 갖기 시작하는 정희주 그리고 두 사람 사이를 사랑의 메신저처럼 이어주는 귀여운 여동생 정민주(이레)가 낯설 수 있는 이 게임 속 모험 속에서도 편안한 느낌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갑자기 게임 속에서 유진우의 칼에 맞아 죽은 차형석이 진짜 죽은 사체로 발견되고, 그가 그 후에도 유진우에게 계속 게임 속 캐릭터로 나타나는 상상하지 못한 전개를 보여준다. 놀랍고 믿기 힘든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미 이 단계가 되면 시청자들은 그 세계 깊숙이 자신이 들어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유진우에 몰입하게 된 시청자들은 사이버 좀비가 되어 그를 공격해오는 차형석에게 죽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을 대변하듯 정희주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차형석을 가로막아 유진우를 구한다. 증강현실의 게임 이야기와 멜로가 절묘하게 이어지는 순간이다. 

송재정 작가의 작품이 가진 특징인 것처럼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어느 가상(판타지)의 세계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과감하게 전개하고 있지만 여타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조심스럽고 세심한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 게임 자체를 잘 모르는 이들도 빠져들 수 있게 적절한 멜로 코드와 캐릭터들의 매력을 당의정처럼 끼워 넣고 그 힘이 증강현실 게임이라는 세계의 낯설음조차 익숙해지게 만들어낸다. 

굳이 스페인 그라나다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점과, 거기서 주인공 남녀가 만나 관계를 시작하는 건, 그래서 게임이라는 마법 같은 공간을 좀더 친숙하게 이해시키기 위한 중요한 장치로까지 여겨진다. 여행이든 연애든 빠져들수록 비현실도 현실처럼 여겨지게 되는 건 게임의 세계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처럼 그라나다를 배경으로 충분한 튜토리얼을 마친 드라마는 이제 서울로 돌아와 그 환상적인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나간다. 아들인 차형석이 제이원 홀딩스를 나갈 때도 또 그라나다에서 사체로 그가 발견됐을 때도 냉철한 모습을 보인 차병준(김의성)은 마치 유진우를 아들처럼 여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낸다. 

제이원 홀딩스의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경영이사로 있는 그는 알고 보면 자식을 내치거나 그 죽음도 선선히 받아들일 정도로 무서운 사업가다. 유진우를 아들처럼 대한 것도 그 사적인 관계 때문이 아니라 사업적인 선택이었을 뿐이다. 증강현실 게임에 엄청난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고 이를 파헤치며 해결하기 위해 게임 출시를 막고 있는 유진우를 이제 그는 대놓고 끌어내리려 한다. 이는 향후 유진우와 차병준의 회사경영을 놓고 벌어질 한 판 대결을 예감하게 만든다. 

한편 유진우가 더더욱 게임에 빠져 들어가는 과정은 게임 마니아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다. 보다 좋은 무기를 얻어야 계속 나타나는 차형석 좀비를 이겨낼 수 있다는 설정 속에서 유진우는 계속 업그레이드된다. 또한 비서인 서정훈(민진웅)이 그와 동맹을 맺게 되면서 차형석이 그에게도 보이고 그 또한 공격받게 된다는 새로운 룰이 등장하는 점도 그렇고, 레벨 90에 도달하면서 나타난 시타델의 매가 마스터인 세주의 메시지를 갖고 오는 장면도 게임 마니아들을 열광시킬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레벨을 높이려는 그 의도가 사라진 정희주의 동생 정세주(찬열)를 찾기 위함이라는 설정은 게임을 모르는 이들까지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다. 동생이 실종된 걸 알고 무슨 일이든 하려는 정희주와 유진우가 함께 동생을 찾아가는 긴장감 넘치면서도 로맨틱한 모험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게임 마니아들은 물론이고, 게임을 잘 모르는 이들까지 빠져들게 만드는 치밀하고 세심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송재정 작가의 파격적인 세계가 보편적인 열광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이유다. 한 주를 기다리기가 힘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폐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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