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캐슬', 염정아·김서형 같은 괴물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네 비뚤어진 교육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리 사회 전반의 부조리들이 보인다.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이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건 여기 등장하는 ‘SKY캐슬’이라는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한민국의 축소판처럼 여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이 드라마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보면 영재(송건희)네의 비극이 과연 이 SKY캐슬이라는 곳에서 벌어졌던 사건인가가 무색해질 정도로 아무 변화도 없는 이 곳의 현재에 놀라게 된다.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며 축하파티가 열렸지만, 그 지옥 같은 삶에 복수하듯 가출해버린 영재로 인해 그의 엄마 이명주(김정난)가 자살함으로써 한 집안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나버렸다.

가장 가까이서 이명주를 따르고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까지 이어받아 자신의 딸 예서(김혜윤) 또한 서울대로 보낼 꿈에 부풀었던 한서진(염정아)은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김주영의 뺨을 때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에게 무릎을 꿇는다. 그래서 다시 예서의 입시 코디가 된 김주영은 보란 듯이 아이를 전교회장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이를 반대하던 한서진의 남편 강준상(정준호)까지 설득시킨다.

한 집안이 박살나는 비극을 보면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불나방처럼 그 속으로 다시 뛰어드는 이 이야기는, 잘못된 부조리한 경쟁시스템들에 의해 그토록 많은 비극들이 벌어지고 그 때마다 큰 충격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금세 잊어버린 채 다시 그 비극을 반복하는 우리네 사회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사람이 죽어나가도 시스템은 건재하다. 그래서 비극은 반복된다.

<SKY 캐슬>은 입시라는 문제를 전면에서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이 드라마가 다루려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이 어디서부터 비롯되고 있는가를 들여다본다. 한서진의 둘째딸 강예빈(이지원)이 편의점에서 도둑질을 하는 그 증상은 그걸 입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법으로 허용하는 그 엄마 한서진이 있어서다. 한서진은 교육의 목적이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도둑질은 그 과정으로서 허용되는 것이다. 어른들의 비뚤어진 가치관과 세계관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서가 전교회장이 된 걸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열린 파티에서 영재네의 비극을 소재로 이수임(이태란)이 동화를 쓰려 한다는 사실을 끄집어내자 이에 대해 보이는 반발은 우리 사회가 가진 일그러진 얼굴들을 드러낸다. 이 곳에 사는 이들은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비극을 끄집어내는 일을 “명예가 손상되고 품위가 실추되는” 일로 여긴다. 지진희(오나라)는 이런 일이 알려지는 게 “집값부터 떨어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강준상은 그래서 이수임이 하려는 일을 “남의 비극을 소재삼아 돈벌이를 하려는 짓”이라 폄하한다.

이에 대해 이수임은 자신이 글을 쓰려는 진짜 의도를 밝힌다. “영재네에서 있었던 엄청난 비극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절망스러워서요. 입시경쟁으로 해마다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데도 우리 사회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게 비통하다 못해 참담해서요.”

하지만 이들은 비극을 멈추려 하기보다는 비극 자체가 없는 것처럼 치부하며 그 경쟁시스템에서 살아남으려 몸부림친다. 그건 입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일하는 일터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촌극처럼 그려지는 우양우(조재윤)가 끊임없이 강준상의 눈치를 보며 대학병원 내 서열극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고, 이런 경쟁시스템이 만들어낸 김주영 같은 사실상 사설 불법정보원 같은 일까지 하는 입시 코디네이터 괴물이 그렇다.

이들은 끊임없이 그 시스템이 야기하는 비극들을 보고 있고 가까이서 겪고 있지만 그걸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사건은 없는 것처럼 여기려 한다. 게다가 그 비극의 주인공들을 심지어 이 경쟁시스템의 낙오자 정도로 취급함으로써 그 부조리한 시스템을 더 공고하게 만든다. 결국 아이들은 죽어나가거나 그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괴물이 되기도 한다. 한서진이나 김주영 같은 어른들만이 괴물이라 여겨졌던 <SKY 캐슬>에 엄마가 죽은 후 자신이 강준상의 딸이었다는 걸 알게 된 혜나(김보라)가 또 다른 괴물처럼 등장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도대체 이 비극은 어째서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걸까. <SKY 캐슬>에 시청자들이 집중하게 되는 건 이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부조리를 축소판처럼 담아내고 있어서다. 경쟁시스템 안에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경쟁하듯 살아가다 보니 제대로 그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들여다보지 않았던 우리들은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그 축소판을 통해 새삼 그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부지불식간에 모르는 것처럼 지나치곤 했던 그 현실과.(사진:JTBC)

‘붉은 달 푸른 해’가 되돌아보게 만든 교육문제와 아동학대

“난 달라. 당연히 다르지. 난 우리 빛나가 잘되라고 한 거잖아. 조금만 참으면 미래가 달라지는 데. 애가 자꾸 다른 짓을 하니까.” MBC 수목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에서 민하정은 자신이 딸 이빛나(유은미)를 학대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이가 더 잘되라고 한 행동이라는 것. 

모든 것들에 이유를 달고 있었지만 그 행동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명백한 아동학대였다.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이유를 내세워 아이를 감금하고, CCTV까지 달아서 아이의 행동을 감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아이에게는 ‘사랑의 매’라며 체벌을 가했다. 그 사실을 차우경(김선아)에게 고백한 빛나는 온 몸에 난 상처들을 드디어 보여줬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는 차우경의 질문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니깐. 엄마가 하는 일은 다 옳고, 다 날 사랑해서 하는 거니까요. 회초리로 맞는 것도 상처가 나는 것도 대학만 가면 다 끝나는 일이니깐. 근데 그 전에 내가 죽을 것 같아요.” 아이는 그 모든 학대조차 엄마이기 때문에 감내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아동학대가 가진 특별한 지점을 드러낸다. 

아동학대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지만, 그 관계가 부모 자식 간이라면 안타깝게도 피해자 스스로 이를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실제 학대가 벌어져도 사건화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특히 ‘교육과 미래를 위해서’ 같은 명분이 붙을 때는 그것이 학대인지조차 가해자도 피해자도 인지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민하정이 자신의 행동을 아동학대라 여기지 못했다는 건, 그가 “짐승”이라고 했던 해찬이 아빠가 한 짓과 자신이 한 짓이 다르지 않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동학대를 하는 누군가에 분노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 짐승이라 부르던 아동학대자였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결국 뒤늦게 자신이 해왔던 짓이 아이를 학대해온 거라는 걸 깨달은 민하정이 그래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논리적이다. 그는 아동학대자에게 분노한 바 있고, 그게 바로 자신이라는 걸 확인하게 되고는 이제 자기 자신이 그 분노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처단하는 선택을 하게 된 것.

<붉은 달 푸른 해>는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지만, 뚜렷한 일관된 메시지를 제시해왔다. 그건 바로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민하정과 이빛나의 이야기에는 <붉은 달 푸른 해>가 바라보는 아동학대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다. 아동학대라고 하면 그저 특별한 범죄자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그저 평범해 보이는 집안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 특히 치열한 경쟁체제에 내몰리고 있는 잘못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어쩌면 아이들은 저마다 학대당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다 너 잘되라고 한 일이라거나 사랑해서 그랬다거나 하는 그럴 듯한 합리화를 들이대지만 잘 들여다보면 우리네 교육이 ‘미래를 위해서’라며 감내하라 말하는 그 보이지 않는 체벌이 지금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돌이켜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는 호랑이를 그래도 가면을 쓴 엄마라고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실상 이런 비뚤어진 경쟁시스템 속에서 어른들은 엄마 가면을 쓴 호랑이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사진:MBC)

'남자친구'가 담은 직진하는 사랑과 지켜주는 사랑

“저 돈 좀 있습니다”라며 당돌하게 모두가 듣는 자리에서 차수현(송혜교)과 자신의 관계를 드러낸 김진혁(박보검)은 현실을 잘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제 사회 초년생으로 하나하나 현실을 겪으며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씩 그것이 만만찮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그가 다소 엉뚱하게도 “돈 좀 있습니다”라고 말한 건, 스캔들로 포장된 관계 때문에 차수현이 처한 곤혹스런 상황에서 잠시 동안 두 사람만의 기억 속으로 그를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그 말은 쿠바에서 차수현이 처음 김진혁에게 “돈 좀 있어요?”라고 물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니까. 맥주 한 병을 마실 수 있는 돈. 그거면 사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질 수 있었던 기억. 그래서 그 순간 차수현은 만만찮은 현실 때문에 눈물이 차오르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날 수 있었다.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가 담아낸 이것은 김진혁의 사랑법이다. 그는 서툴고 현실을 모른다. 하지만 그걸 굳이 부정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는다. 차수현에게 솔직하게 자신은 사랑을 “책으로 배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차수현을 통해 그 책으로 배운 사랑을 몸소 느끼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현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무모하게 차수현 같은 존재에게 직진할 수 없었을 게다. 가진 것의 차이나 회사 내에서의 관계 같은 것들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져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

하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보이는 김진혁은 동화호텔의 연말 행사로 가면무도회 콘셉트의 파티를 기획하면서 거기에 차수현과 가졌던 추억을 더해 넣는다. 쿠바의 어느 뒷골목에 자리한 라틴 댄스를 추는 곳에서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었던 추억. 그러고 보면 가면무도회도 그 시간만큼은 공적인 얼굴을 숨기고 솔직한 자신의 모습으로 즐기라는 김진혁의 천진한 상상이 더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 곳은 동화호텔의 공적인 행사 자리지만 차수현과 김진혁은 두 사람만의 사적인 추억 속에서 만나 첫 키스를 나눈다.

김진혁의 사랑법은 그래서 흔히 말하는 현실(공적인 의미가 강한)을 살짝 벗어나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게 만드는 사랑이다. 무수히 많은 이름을 가진 관계들이 존재하지만 사랑은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경험과 기억으로 충분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김진혁은 믿는 것 같다. 그러면서 김진혁 또한 현실을 조금씩 알아간다. 속초로 발령이 난 사실이 그 현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걸 되돌리려는 차수현을 막으며 자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돌아오는 걸 봐달라고 한다. 그는 현실을 모른 채 무모하게 이 사랑에 뛰어들었지만, 사랑이 깊어지면서 조금씩 현실을 실감하고 그 속에서 성장해간다.

김진혁이 현실을 몰라 그 순수함으로 직진하는 사랑이라면 정우석(장승조)의 사랑법은 정반대다. 현실을 너무나 잘 아는 정우석은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차수현을 불행하게 만들 거라는 걸 알고는 가짜 불륜까지 만들어 이혼을 함으로써 그를 놓아준다. 정우석의 마음을 알고 있는 그의 어머니 김화진(차화연)은 그래서 다시 아들과 차수현을 재결합시키려 하지만 정우석은 그래선 안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은 다시 차수현을 불행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우석은 이것을 ‘오빠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사랑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리는 두어야 상대방이 행복해질 수 있는 그 관계 속에서 ‘지켜주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멀리서 바라보며 차수현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김화진의 행동들을 정우석이 막고 있는 건 그래서다.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그가 말했을 때 차수현은 그 진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만큼 정우석은 차수현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물론 차수현과 김진혁의 사랑을 담은 드라마지만, 정우석이라는 인물의 사랑법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면면이 있다. 다소 동화적인 느낌을 주는 차수현과 김진혁의 사랑과 대비되는 현실의 무게가 드리워진 그의 사랑 또한 주목되는 면이 있어서다. 과연 차수현과 김진혁의 현실을 뛰어넘는 사랑은 어떻게 될까. 이를 위해 정우석은 또 어떤 자신만의 사랑의 방식을 보여줄까.(사진:tvN)

'알함브라'가 현빈이 겪는 증강현실로 말하려는 건

점점 빠져들더니 어느새 게임과 현실이 중첩된 이 세계가 불러일으키는 긴장감과 공포, 설렘, 흥분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되었다. tvN 주말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이 마법 같은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과정은 우리가 게임에 몰입해가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간다. 돌이켜보면 이 세계를 만든 정세주(찬열)가 스페인 그라나다로 들어오는 열차에서 갑자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기타음악이 흐르며 먹구름에 비가 내리기시작하더니 누군가에게 총에 맞는 장면은 일종의 게임 오프닝에 해당했다.

그리고 그 게임에 투자하기 위해 유진우(현빈)가 정세주가 만나자 했던 그라나다의 보니따 호스텔에 오게 되고 그 날 밤 광장에서 현실과 가상이 겹쳐진 증강현실 게임을 밤새도록 하는 과정은 튜토리얼이다. 그리고 본 게임은 이 증강현실 게임에 대한 투자를 두고 라이벌 관계에 있는 차형석(박훈)과 유진우가 게임으로 연결되어 한 판 승부를 벌이면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그 장면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지만, 사실 이들이 왜 현실에서 만나 대화나 주먹질로 싸우지 않고 하필이면 증강현실 게임 속에서 대결을 하게 됐다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한 때는 친구이자 동료였지만 회사를 나가 독립하고 심지어 전처까지 빼앗아간 차형석에게 아마도 유진우는 살의까지 가졌을 게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살인을 한다는 게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니 게임 속에서 캐릭터와 칼을 들고 이들은 한 판 대결을 벌인다. 그것이 실제적인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않을 테지만 마치 실제 같은 복수심이나 통쾌함을 대리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즉 이 부분은 우리가 어째서 이 가상의 게임을 진짜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단서가 들어있다. 우리는 그것이 진짜라서가 아니라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어떤 것을 대리해 얻을 수 있으리라 여기기 때문에 진짜처럼 받아들인다. 가상은 그래서 현실이 된다. 하루 종일 우리가 실제처럼 게임에 빠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그렇게 컴퓨터 모니터에 혹은 스마트폰의 액정을 들여다보고 열중하고 있는 게임하는 이들은 그래서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정작 그 게임을 하는 이들은 실제처럼 그 세계에 감정을 쏟아넣는다.

유진우와 차형석이 어느 공원에서 증강현실 게임으로 대결을 벌이고, 결국 차형석이 처참하게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짐으로써 패배하자 승리에 기쁨에 차 그 자리를 떠나는 유진우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이것이 그저 게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날 그 차형석이 진짜 죽은 채 발견되고, 며칠 후 기타선율과 비구름 속에서 그가 마치 좀비처럼 다시 나타나 유진우를 공격해 죽을 위기에 몰렸을 때 그는 자기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다. 사실 차형석을 죽인 건 바로 자신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게임 속 세계와 현실이 중첩되며 벌어지는 사건은 실제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가상의 공격이 물리적 타격을 줄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을 하면서 그 가상 세계에서 실제처럼 감정의 오르내림과 그래서 생겨나는 호흡과 심장박동을 느껴본 이라면 그걸 그저 비현실로만 말하지 못할 게다. 가상의 작동은 이렇게 현실의 감정과 더해져 가능해진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그리는 판타지의 세계가 특별하게 그려지는 건, 그것이 이 곳에서 저 곳으로 넘어간 세계가 아니라 이 곳과 저 곳이 겹쳐진 세계라는 점 때문이다. 유진우는 병실 바깥에 나타나 있는 사이버 좀비 같은 차형석을 피하기 위해 정희주(박신혜)에게 다급하게 문을 열지 말라고 외친다. 하지만 정희주에게는 그 차형석 같은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흔히 현실 위에 글자 같은 게 더해지며 올라오는 증강현실의 세계를 우리는 막연히 신기하게만 바라봤지만 누군가에게는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건 사실 오싹한 일이다.

차형석의 칼에 맞고 쓰러져 이제 죽을 위기에 처한 유진우 앞에 갑자기 정희주가 등장함으로써 그 위기를 벗어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건 정희주라는 인물이 이 빠져나올 수 없는 세계로부터 유진우를 구원해줄 존재라는 걸 암시하면서, 동시에 가상의 세계를 가로막는 현실적 존재의 의미가 더해져 있어서다. 유진우는 정희주를 끌어안고 가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자신을 그가 현실의 감각으로 이끌어 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펼쳐놓은 가상과 현실이 중첩된 세계에서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는 예측하기도 어렵고 또 예측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 겹쳐진 세계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건들을 들여다보며 마치 실제처럼 몰입하고 긴장감과 이완 그리고 피어나는 감정들을 경험하면 될 뿐이다. 어쩌면 이 기상천외한 드라마는 그 과정 자체가 메시지라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이상한 세계를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고, 그 속에 빠져버린 유진우에게 몰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증강현실의 세계 속에 들어와 있는 우리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니.(사진:tvN)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