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정 작가가 ‘붉은 달 푸른 해’의 미로에 시청자들을 가둔 까닭

역대급 문제작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MBC 수목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는 사실 쉽게 다가오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도현정 작가가 아동학대라는 이 특수한 범죄를 그리 쉬운 방식으로 다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게다. 가장 흔한 스릴러의 문법으로 아동학대를 당하는 피해자가 등장하고, 그 가해자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 이어지는 그 고전적인 방식을 도현정 작가는 쉽게 취하지 않았다. 

대신 작가가 선택한 건 미로였다. 의문의 사건들이 터지고, 각각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동일한 패턴이 담긴다. 그것은 살해된 자가 있는 곳에 시가 있고 아이가 있다는 공통점이다. 보통 스릴러는 병렬적인 사건을 다루는 형사에 집중하거나, 범인과 형사 간의 끝없이 쫓고 쫓기는 과정을 담는 방식을 취하곤 한다. 하지만 <붉은 달 푸른 해>는 각각의 사건들이 관련 없는 듯 터지고, 작가도 쉽게 그 전말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볼수록 미로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여기에 어린 시절의 충격적 경험으로 그 때의 기억을 지워버린 채 살아가는 차우경(김선아)과 이 사건을 추적하는 강지헌(이이경) 형사의 시점이 더해지면서 이 미로는 더 복잡해진다. 차우경은 녹색 옷을 입은 소녀를 계속해서 환영으로 보게 되고, 그 소녀가 이끄는 곳에서 연쇄적으로 터지는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흔한 고구마와 사이다를 반복하는 시청자들로서는 이 드라마에서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복잡한 미로 방식의 전개다. 

하지만 이 미로는 기묘하게도 시청자들을 잡아 끌어당긴다. 그것은 일련의 사건들이 아동학대와 관련이 있다는 게 조금씩 드러나고, 그 뒤에 붉은 울음이라는 조종자에 의해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살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여기서도 복잡한 감정에 휘말린다. 그것은 범인이라고 하면 응당 잡혀야할 악역이어야 하지만, 이 드라마 속에서 악역은 범인이 아니라 범인에게 살해당하는 어른들이다. 그들은 끔찍한 아동학대를 해왔고, 결국 붉은 울음에 의해 응징되는 것. 

한울센터에서 일하던 이은호(차학연)가 범인이라는 게 밝혀지고 차우경에게 총을 겨눠 결국 강지헌의 총에 맞아 죽게 되면서 그 감정은 복잡해진다. 범인을 잡아 통쾌하기는커녕 차우경과 강지헌이 그러하듯이 그에 대한 연민과 슬픔의 감정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윤태주(주석태)가 이은호의 형이었고 그가 당한 지옥 같은 학대를 듣고는 붉은 울음이 되어 저 비정한 어른들을 응징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형사 강지헌이 윤태주가 “당신이라면 용서할 수 있었겠냐”는 질문에 “용서 못했을 것”이라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시청자들 또한 공감하는 대목이다. 

어느새 시청자들은 이 미로를 헤매며 여러 사건들을 겪고, 그 과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벅찬 책임감’이라는 걸 실감한 강지헌의 변화를 그대로 느끼게 된다. “용서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응징하지는 않는다”는 강지헌의 이야기는 또한, 차우경이 기억을 되찾고 새엄마인 허진옥(나영희)이 죽게 한 친동생이 바로 녹색 옷을 입은 소녀라는 걸 알고도 응징하지 않는 이야기와 연결된다. 차우경이 격분하여 허진옥을 향해 망치를 들었을 때, 그의 손을 잡고 그를 끌어안아 이를 막은 건 바로 그 ‘녹색 옷을 입은 소녀’의 환영이었다. 

사이다도 없고 그렇다고 고구마도 아니다. 다만 미로 속에서 헤매다 그 미로의 구조를 다 알게 된 마지막에 이르러 그걸 설계한 도현정 작가의 진심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이 작가가 얼마나 아동학대 문제가 야기하는 가해자는 물론이고 피해자들의 지옥을 깊이 들여다보려 했고, 한 마디로 표현해낼 수 없는 그 복잡한 감정을 미로를 통해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껴보게 하려 애썼는가가 느껴지는 데서 오는 뭉클함이다. 작가는 미로에 시청자들을 가뒀고,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 미로에 빠져들었다. 도현정 작가에 입덕했다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허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느껴지게 하는 드라마였다.(사진:MBC)

‘왕이 된 남자’는 여진구에게 제대로 연기의 판을 깔아줬다

영화 <광해>로 연기력 확장을 입증했던 이병헌을 보는 듯하다.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의 여진구 이야기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이 그저 우연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왕이 된 남자>가 가진 이야기가 여진구라는 연기자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는 특별한 힘을 발휘하고 있어서다. 그건 바로 여진구가 연기하는 하선이라는 광대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하선(여진구)은 가면을 쓰고 당대의 시국을 연기로 풍자하곤 하던 광대다. 얼굴이 왕 이헌(여진구)과 같다는 이유로 암살위협을 받는 왕 대신 왕좌에 앉아 왕을 연기한다. 하선을 그 자리에 앉힌 건, 점점 잔혹해지고 정신을 놓고 있는 이헌에게 그래도 충성하던 이규(김상경)다. 이규는 이헌을 모처에 옮겨 놓고 마약에 중독되고 환청에 시달리는 그를 회복시키려 한다. 

하선과 이헌은 그 성격이 극과 극이다. 이헌은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신을 따르던 경인대군마저 죽게 만들고, 그것은 내내 그의 악몽으로 되돌아온다. 심지어 장인마저 죽이라 명하는 포악함을 보이지만, 그 포악함은 그의 유약함이 만들어내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하지만 하선은 이헌과는 달리 죽을 지라도 ‘인간다운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그건 어쩌면 광대라는 직업과 무관하지 않을 게다. 광대는 결국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 감정이입을 통해 연기를 하는 이가 아닌가. 

물론 1인2역은 같은 연기자가 얼마나 상반된 모습을 연기해내는가를 통해 그 연기공력을 드러내게 해주는 장치일 수 있다. 하지만 <왕이 된 남자>에서 여진구의 연기가 남다르게 보이는 건 단지 1인2역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하선이라는 광대의 직업적 특성이 여진구의 연기에 대한 몰입을 더 극대화시켜주고 있어서다. 

영화 <광해>에서 이병헌이 그랬듯이, <왕이 된 남자>에서 여진구는 왕을 연기하다 점점 왕이 되어가는 광대를 연기한다. 그것은 연기자가 어떤 역할에 빠져들어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궁에 들어와 이헌의 역할을 연기하던 하선은 차츰 왕이라는 자리가 만들어내는 역할들을 조금씩 해나간다. 자신의 누이동생 달래(신수연)가 신치수(권해효)의 아들 신이겸(최규진)에게 욕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생겨난 복수심은 그 몰입을 더 강화시킨다. 또 궁에서 만난 중전(이세영)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를 지키려는 행보 역시 하선을 그저 왕 연기에서 점점 왕처럼 몰입시키는 힘을 부여한다.

즉 <왕이 된 남자>는 폭군을 대신해 왕이 된 광대가 궁에 적응해가며 진짜 왕이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여진구라는 연기자(광대)가 왕 역할에 조금씩 빙의되어가며 나중에는 온전한 왕에 몰입하는 그 과정을 담고 있기도 하다. 중전을 구할 증좌를 갖고도 그를 구하기보다는 대비를 몰아낼 생각을 하는 이규에게 하선이 “비단옷 차려입고 권세를 누리면 뭐합니까? 짐승만도 못한 생각만 가득 차 있는데! 사람다운 생각은 조금도 못하는데!”라고 일갈하는 장면은 하선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자신이 죽게 한 경인대군의 목소리가 자꾸만 들린다며 제 귀를 찔러버린 이헌을 보고 그가 다시 왕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 이규는 결국 하선을 벼랑 끝으로 데려가 칼을 꽂고 “광대 하선은 죽었다. 이제 네가 이 나라의 임금이다.”라고 선언한다. 이제 온전히 하선이 왕의 위치에 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서는 장면이다. 연기의 관점으로 보면 여진구라는 배우가 한 걸음 더 왕 역할 깊숙이 들어가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진구는 <해를 품은 달>, <뿌리깊은 나무>, <무사 백동수> 등에서 아역으로 등장해 주목받은 배우다. 사극과의 인연은 그래서 그 후에도 <대박>이나 영화 <대립군> 같은 작품으로 이어진 바 있다. 하지만 아역이 성인역으로 넘어오는 과정은 모든 연기자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성인 역할을 하며 출연했던 드라마들에서 여진구는 도전적이었지만 그만한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런 그에게 <왕이 된 남자>는 확실한 한 판 무대를 열어주고 있다. 잘하면 살판이고 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남사당패 광대들의 대사들이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연기의 절절함 또한 그만한 진정성으로 전해진다. 그는 이렇게 깔린 판 위에서 광대가 왕이 되는 신명 나는 한 판 연기의 세계 속으로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하고 있다.(사진:tvN)



'SKY캐슬', 김서형의 비정상적 행동들이 받아들여진다는 건

혜나(김보라)의 죽음 이후, 매 회 폭발적인 사건들의 연속이다.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은 마치 이전까지 여러 개의 폭탄들을 설치해 놓은 다음, 혜나의 죽음이라는 기폭장치를 눌러 놓은 듯하다. 그 죽음 하나로 이 곳에 살아가는 이들은 그간 숨기고 있던 욕망의 실제 얼굴들을 드러낸다.

한서진(염정아)은 혜나의 죽음이 혹시 딸 예서(김혜윤)가 저지른 일은 아닌가 불안해하며 증거를 인멸하고 입시 코디네이터인 김주영(김서형)과 함께 이수임(이태란)의 아들 우주(찬희)를 희생양으로 내몬다. 한서진은 같이 살았던 혜나가 죽고 우주가 용의자로 잡혀갔으면서도 오로지 예서의 입시만을 걱정한다. 3학년 1학기까지만 내신을 쌓으면 서울대 의대에 간다는 김주영의 한 마디는 한서진이 이 엄청난 범죄적 행위를 저지르게 만드는 뱀의 유혹이다.

차민혁(김병철)은 누군가에게 밟히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가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인물. 그는 혜나가 죽고 우주가 잡혀간데다 이 문제로 예서 또한 흔들리고 있다는 말을 듣자, 그 아이들을 걱정하기보다는 자기 자식들이 등급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다. 결국 아이들이 그 말을 참지 못한다. 역시 참다 못한 노승혜(윤세아)의 “아빠를 밖으로 모시라”는 말에 아이들은 차민혁을 집밖으로 내쫓는다.

죽은 혜나가 자신의 숨겨진 딸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강준상(정준호)은 ‘출신’ 운운하며 왜 그런 애를 들였느냐고 한서진을 비난한다. 결국 혜나의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고 골프를 치고 들어온 그는 그 사실을 알게 된 둘째 딸 예빈(이지원)으로부터 혜나가 딸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출신을 따지며 혜나를 천대했지만 그것이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 것.

한편 이수임(이태란)은 아들 우주가 용의자로 몰려 잡혀간 후 혜나와 예서가 이복자매라는 사실과 그것 때문에 다퉜다는 이야기를 진진희(오나라)로부터 듣고는 이를 은폐하려 한 한서진을 찾아가 맞붙는다. 그런데 여기서도 한서진은 “내 딸 건드리지 말라”는 자기 자식만 우선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결국 이수임은 이 사건의 배후에 뱀 같은 입시 코디 김주영이 있다는 심증을 갖게 된다. 김주영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예서가 혜나가 가방에 달고 다니던 인형을 갖고 있는 걸 보게 된 이수임은 혜나와 김주영이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김주영이 있다는 게 조금씩 드러나고, 혜나가 남겨 놓은 김주영과의 대화 녹음 속에서는, 김주영이 예서를 전교1등 만들기 위해 시험지 유출을 했다는 사실을 혜나가 알고 있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것은 협박 받은 김주영이 혜나를 죽음으로 내몬 용의자 중 하나라는 의미였다.

김주영은 점점 선악과를 먹게 유혹한 뱀의 실체를 드러낸다. 혜나의 죽음으로 흔들리는 예서는 엄마보다 어느 덧 김주영을 더 의지하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가 해주지 못하는 것들을 김주영이 해주고 있어서다. 달콤한 말로 예서를 유혹하고, 마치 자기 자식이나 되는 듯 쓰다듬는 김주영의 모습은 우리가 성폭력 사건에서 종종 등장하는 ‘그루밍’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그루밍은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아동과 사전에 친밀한 관계를 맺어두는 행위’를 뜻한다. 물론 예서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건 아니지만, 정신적으로 조종하려는 의미에서 이 행위는 그루밍이다.

SKY캐슬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 일련의 사건들은 비정상적이다. 입시라는 지상과제 속에서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공간에 김주영이라는 뱀의 혀를 가진 입시 코디가 등장하면서 그 비정상적 행위는 더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드라마 초반부터 등장했던 영재네의 비극(아이는 가출하고 엄마는 자살하는)이 그렇고, 그가 예서를 코디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나는 사건들이 그렇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애초에 끊어버렸어야 하는 인물이 바로 김주영이다. 실제로 한서진은 김주영의 실체를 조금씩 알게 되고 급기야 남편 살해 용의자였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예서 코디를 중단시키려 하지만, 결국 부정한 방법까지 써서 아이를 전교 1등 시켜버리자 서울대 의대라는 그 유혹에 넘어가 버린다. 엄마보다 코디를 더 찾는 상황 또한 비정상적이지만, 그것이 아이의 공부를 위해 좋다는 김주형의 말에 한서진은 또 넘어간다. 김주영이라는 비정상적인 뱀의 행동이 용인되는 건, 역시 비정상적인 입시경쟁 속에서 비정상적인 선택에 휘둘리는 부모들 때문이다.

김주영이 예서와 대화를 나눌 때 카메라는 그 얼굴을 마치 뱀의 형상처럼 잡아낸다. 음영과 김서형의 소름끼치는 연기가 만들어내는 그 형상은 마치 한 아이의 영혼을 달콤한 말로 유혹해 조종하려는 뱀을 닮았다. 과연 서울대 의대만 들어간다고 한서진이 생각하는 아이의 미래가 장밋빛으로 펼쳐질까. 어쩌면 엄마보다 코디의 말을 더 따르게 된 아이는 이미 그루밍의 조종 속에서 피폐되어가고 있는데. 이를 한서진은 어떻게 감당해낼 것인가.(사진:JTBC)

'SKY캐슬' 염정아가 그리는 겉만 번지르르한 저 괴물들 실체

안타깝게도 혜나(김보라)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혜나의 죽음으로 인해 JTBC 금토드라마 <SKY캐슬>은 본격적으로 이른바 대한민국 0.1%라는 이들의 겉만 번지르르한 실체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머리를 다쳐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했지만, 병원장 손자의 수술을 해야 한다며 혜나를 타 병원으로 이송시키라 명령한 강준상(정준호). 그는 환자를 보는데 있어서도 권력이 우선이었다. 의사 가운을 입고 잔뜩 위세를 떨고 있지만 그 실체는 당당하지 못한 욕망덩어리라는 것.

강준상이 죽음에 이르게 만든 혜나는 그러나 다름 아닌 자신의 숨은 딸이었다.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그런 선택을 한 강준상은 향후 이 진실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이미 혜나가 강준상의 딸이라는 걸 알고 있는 시청자들로서는 이 아이러니한 선택을 보며 혀를 끌끌 찾을 게다. 제 욕망이 제 발등을 찍는 강준상의 모습이 아닌가.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겉만 번지르르한 저들의 실체를 그려내는 인물은 다름 아닌 한서진(염정아)이다. 그는 잘 나가는 의사 아내에 전교 1등 하는 아이의 엄마지만, 그 실체는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욕망을 위해 뭐든 하는 인물이었다. 본명인 곽미향을 버리고 한서진이 된 것도 그런 이유. 그는 그렇게 속인 채 강준상이 사귀던 혜나의 엄마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한서진이 딸의 입시 코디네이터인 김주영(김서형)을 위험한 인물이라며 경계하면서도 결국 전교 1등을 만들어내자 그를 믿는다고 말하는 모습에서도 그가 얼마나 표리부동하며 또 욕망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인물인가를 잘 드러낸다. 그는 김주영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딸을 다시 맡아달라고 하고서, 그게 성사되자 나오며 입가에 미소를 띠우는 인물이다.

혜나의 죽음은 한서진의 이런 면을 또다시 드러내게 만든다. 그 날 혜나가 딸 예서(김혜윤)와 다퉜다는 사실을 알고는 혹 딸이 혜나를 죽인 게 아닌가 의심하는 한서진은 증거가 될 수 있는 혜나의 핸드폰과 노트북을 망치로 때려 부숴 청소차에 버리는 ‘증거인멸’을 했다. 그리고 그 날 혜나가 이복자매라는 사실을 말하며 예서와 싸우는 장면을 목격했던 진진희(오나라)를 찾아가 괜스레 살갑게 굴며 그 사실을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

게다가 김주영과 만난 한서진은 이 사건에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나누고, 엉뚱하게도 황우주(찬희)가 용의자가 되어버린다. 자신의 아이가 살 수 있다면 다른 아이의 희생은 당연한 듯 선택하는 한서진. 이 모습은 한 명의 어른이 아니라 경쟁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의 모습이었다.

혜나의 사망 때문에 모인 SKY캐슬의 부모들이 모여 집단으로 머리끄댕이를 잡고 드잡이를 하는 풍경은 그 괴물의 실체를 제대로 드러낸 풍자적 장면이 되었다. 평소 근엄한 척, 우아한 척 했던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아이만을 지키겠다는 이기심에 다른 집 아이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그게 드잡이로 이어진다. 저만 살아남기 위해 하던 볼썽사나운 짓들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수임(이태란)이 “아이가 죽었는데...” 어른들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하는 일갈은 그들의 실체를 실감하게 만드는 통쾌한 면이 있었다.

한서진은 필요하면 악마와도 손을 잡기도 하고, 다른 아이를 희생양으로 삼기도 하는 모습으로 <SKY캐슬>이 겨냥하고 있는 저들의 실체를 제대로 풍자하는 인물이다. 번지르르한 말들로 포장되지만 화가 나면 불쑥 튀어나오는 “아갈머리를 찢어버린다”는 상스러운 말이 그 실체인 괴물. 그가 어디까지 밑바닥을 보여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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