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오해영>, 로맨틱 코미디의 또 다른 진화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가 등장한다. 그 장애는 연적이 되기도 하고 부모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너무 다른 빈부 격차가 되기도 하고 아주 가끔씩은 사회적 편견이 되기도 한다. 달달하고 웃긴 코미디로 시작하지만 중반 이후로 흘러가면서 조금씩 무거워지고 심지어 비극을 향해 달려가기도 하는 흐름을 보인다.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에 대한 논의들이 오갈 때 드라마는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며 끝을 마무리한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그 많은 로맨틱 코미디들이 보여줬던 공식들이다. tvN <또 오해영> 역시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전개과정은 사뭇 다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지만 그것은 인연이 아닌 악연으로 시작하고 그 악연이 다름 아닌 같은 이름때문에 빚어진 오해로부터 비롯된다는 건 그 많던 공식들과 비교해보면 새롭게 다가온다.

 

그렇게 꼬이며 만나게 된 남녀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며 벌이는 알콩 달콩한 시트콤적 상황들은 여지없이 로맨틱 코미디의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하지만 소리를 채취하고 만들어내기도 하는 음향 감독이라는 직업적 특성이 이 전형적 상황들을 변주시킴으로써 드라마를 새롭게 만든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살짝 보인 직업의 세계지만, <또 오해영>의 도경(에릭)이 들려준 창문을 열면 들려오는 햇볕의 소리같은 건 확실히 참신한 소재들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시도한 새로움은 도경이 갖고 있는 독특한 능력(혹은 병)을 통한 것들이다. 다름 아닌 오해영(서현진)과 관련되어 미래를 보는 능력은 이 로맨틱 코미디의 갈등 양상을 독특하게 만들었다.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들이 도경의 눈에 비춰지면서 드라마는 굉장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즉 자꾸만 보이는 도경의 죽음을 암시하는 미래의 풍경들은 드라마 속에서 도경이 해영과 거리를 두려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랑하자는 의지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더 간절해진다. 혹여나 이 달달한 커플이 새드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은 마지막회까지도 이어진다.

 

로맨틱 코미디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는 이야기의 소재로 기능할 수 있었지만, 너무 많이 다뤄지면서 식상해지고 긴장감도 흐트러진 면이 있다. <또 오해영>이 흥미로운 건 이렇게 흐트러진 긴장감을 미래를 보는 능력이라는 정신 병리학적 상황을 투입함으로서 다시 팽팽하게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오해라는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사건이 수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든다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가녀린 존재인가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낸다. 사랑은 굉장한 운명적 사건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사소한 실수와 오해가 만들어낸 신의 장난같은 것이다. 도경과 해영의 만남이 그렇고, 수경(예지원)과 진상(김지석)이 관계를 맺는 과정이 그렇다.

 

비극이 운명 앞에 그 가녀린 존재로서의 인간을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보게 만들어내는 것처럼 <또 오해영>은 그 사소한 부딪침들에 대해 웃음이 나다가도 어느 순간 그것들이 엮어내는 무거운 삶 앞에서 그들을 연민과 동정의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아마도 도경이 가진 미래를 보는 일은 그래서 그것이 능력이라기보다는 극복해야할 질병처럼 느껴지는 것일 게다.

 

그렇게 모든 게 꼬일 대로 꼬인 사소한 오해를 통해 우리는 만나게 되지만 그 운명을 뛰어넘는 건 두 사람의 의지라는 점에서 사랑은 위대하다. <또 오해영>에서 도경이 보던 미래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가 해영을 더 깊게 사랑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다른 미래를 선택하는 것으로 미래를 바꾸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정해진 운명과 그걸 뛰어넘는 의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또 오해영>이 로맨틱 코미디라는 가벼울 수 있는 장르를 가져와 얻어낸 적지 않은 성취다. 사실 어찌 보면 로맨틱 코미디는 그 장르 자체가 식상해진 게 아니라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줬다. 그 틀이 마치 운명처럼 정해진 노선으로만 달렸던 것이 그 흔한 로맨틱 코미디들이 가진 한계였다면, 그 노선 바깥으로 슬쩍 방향을 돌려놓음으로써 그 밖에도 무한한 가능성의 로맨틱 코미디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건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의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다. 마치 도경이 정해진 미래를 벗어난 선택으로 미래를 바꾸었던 것처럼.

<닥터스>, 한 명의 좋은 사람은 어떻게 탄생하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에서 혜정(박신혜)은 길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진 임산부를 돕는 지홍(김래원)을 보며 속으로 그런 결심을 하게 된다. 불우한 가정사 속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자신을 망가뜨리며 살아가던 그녀였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홍을 만난 후 자신도 세상에 좋은 사람으로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닥터스(사진출처:SBS)'

좋은 기억과 좋은 사람을 만나면 변화될 수 있다.’ <닥터스>는 의학드라마가 가진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오히려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우리네 삶의 문제로 고개를 돌린다. 돈의 논리에 의해 사람이 억울하게 죽어도 돈 몇 푼으로 합의되고 덮어지는 세상이고, 사고로 불이 나도 집안 좋은 아이들은 피해자가 되고 가난한 아이는 가해자가 되는 세상이다. 이런 비정한 세상에서 희망을 갖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혜정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좋은 사람좋은 기억이 있다. 아버지에게 버려지다시피 할머니 댁에 맡겨지지만, 그 할머니 강말순(김영애)은 상처 입은 그녀를 꼭 껴안아준다. 퉁명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밖에서 사고를 치고 들어와도 일단 집에 오면 밥부터 챙겨 먹이는 그런 할머니. 그 툭 던져놓는 국밥 한 그릇에 할머니의 따뜻한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화재사고로 모든 걸 뒤집어쓰고 구치소에 들어간 혜정에게 강말순은 도시락을 싸와 먹고 힘내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재수 없는 년으로 치부하며 살아가는 혜정은 할머니에게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라고 말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살뜰히 도시락을 챙겨와 먹이며 정작 자신의 위암 수술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는 할머니. 할머니는 죽을 수도 있는 위암 수술을 밝히는 것조차 혜정이 어떤 의지를 갖게 하려는 의도로 이야기한다.

 

혜정의 친구 순희(문지인)는 경찰서를 찾아와 자신이 진짜 방화범이라고 밝힌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모든 걸 뒤집어쓴 혜정을 그녀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끝내 혜정 대신 구치소로 들어가는 순희는 자신도 그녀를 두고 도망치지 않았다며 그걸 기억해달라고 말한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혜정의 이야기는 그렇게 다시 좋은 사람이 되려는 순희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그것은 또한 혜정에게 꺼져가는 작은 희망의 불씨를 다시금 피울 수 있게 해준다.

 

혜정의 담임선생님인 지홍은 교사로서 그녀를 자극하고 보듬으며 인생의 목표 같은 걸 갖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와 혜정의 좋은 관계를 보고 질투한 서우(이성경)가 루머를 만들어내자, 그는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가장 피해를 입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선생보다는 학생이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피해를 입을 것이라 말하며 그는 결국 학교를 떠나게 된다.

 

다행히 화재사건이 해결되고 구치소에서 나오게 되지만 위암 수술을 받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자 혜정은 다시 절망한다. 그런 그녀에게 지홍이 찾아와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자신과 지홍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애써 그를 밀어낸다. 결국 그녀가 괜찮은 의사가 될 수 있었던 데는 그녀를 둘러싼 많은 이들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사랑과 아픈 죽음 그리고 지홍에 대한 존경과 연정, 친구의 의리 같은 것들이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던 그녀를 성장시킨 자양분이 되었던 것.

 

<닥터스>는 이처럼 한 사람의 좋은 변화와 성장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드라마다. 물론 혜정과 대비되는 금수저들이 만들어내는 극적 갈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드라마는 그들과의 직접적인 대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좋은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그녀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갖게 만든다. 갈등이 만들어내는 힘보다는 한 사람의 성장을 보는 그 흐뭇함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

 

실로 한 명의 좋은 사람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좋은 관계와 영향이 필요하다. 그것은 결코 돈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이 있고 또 누군가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다. 영화 <변호인>의 인권변호사 송변의 경우처럼, 때로는 국밥 한 그릇의 온기가 그 사람을 변화시키게도 만든다. <닥터스>는 이런 선의들의 가치가 그 많은 허울 좋은 스펙들과 환경들의 힘보다 훨씬 더 세다고 말하는 드라마다. 그래서 그 어떤 드라마보다 <닥터스>가 강력해지는 건, 선의의 가치가 무시되는 우리네 현실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뷰티풀 마인드> 장혁, 싸이코 패스 같은 현실을 닮은 까닭

 

KBS 월화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에서 주인공 이영오(장혁)는 현성병원에 부임한 천재적인 신경외과의사다. 하지만 그는 또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인물이다. 감정 중추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타인의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한 마디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는 의사.

 

'뷰티풀 마인드(사진출처:KBS)'

공감 능력이 부재한 의사라는 사실은 섬뜩한 느낌을 준다. 이런 의사가 메스를 들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 칼끝에는 감정이라는 것이 없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것은 수술이라기보다는 마치 사이코 패스가 칼을 들고 인간의 몸을 해부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영오는 아버지이자 의사인 현성병원 센터장 이건명(허준호)으로부터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즉 타인의 감정을 얼굴 표정이나 제스처 등을 통해 읽어내는 이른바 감정 훈련을 받은 것. 그래서 이영오는 상대방의 표정을 보며 그가 어떤 마음 상태인가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감정은 못 느끼지만 타인의 마음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 것.

 

공감 능력의 부재는 최근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많은 강력범죄들 속에서 발견될 정도로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하지만 <뷰티풀 마인드>의 이영오는 어째서 이런 위험천만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그것은 이 의학드라마가 던지고 있는 중대한 메시지를 이 캐릭터가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감 능력이 가진 힘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점점 공감이 아닌 성공이나 실적에 더 치열해진 사이코 패스 같은 사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영오는 공감 능력이 없기 때문에 위험천만한 수술을 아무런 감정적 동요도 겪지 않고 성공시킨다. 아버지 이건명조차 손을 부들부들 떨며 긴장했던 수술. 정치인의 공개수술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병원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그 수술에서 이영오는 무심한 마음으로 마치 기계처럼 정확하게 수술을 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수술을 성공시킨 이영오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이미 알아버렸어요. 내 의사로서의 재능은 텅 비어 있는 마음이라는 거.”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 없이 하는 수술이었기 때문에 그가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건, 공감 능력이 없는 것이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기능적으로는 더 효과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결국 이 이야기는 이건명의 아들에 대한 노력이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걸 말해준다. 그 위험천만한 텅 빈 마음은 때론 의외로 냉철한 수술을 통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생명에 대한 아픔과 고통을 인지하지 않고 하는 수술만큼 위험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뷰티풀 마인드>는 이영오라는 인물이 가진 이 양면성을 통해 현재 우리네 사회를 해부한다. 실로 돈이 있다면 사람의 목숨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게도 여기지 않는 사이코 패스 같은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 부유해보일지 몰라도 그 안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이영오는 그 공감 능력 없는 수술로 성공할지 몰라도 그것이 야기하는 결과는 생명에 대한 간과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뷰티풀 마인드>가 추구하고 있는 건 이 이영오라는 인물에게 꼭 필요한 아름다운 마음을 어떻게 부여하고 그를 통해 세상을 조금 더 살만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과현 이영오는 장애를 극복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생명을 살려내는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병원에 이익을 가져다 줄 성공과 실적만을 추구하는 무심한 의사가 될 것인가. 이 질문이 현실에 던지는 울림이 큰 것은 우리 사회가 저 공감 능력이 부재한 이영오라는 인물을 빼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디마프>에 망라된 노희경 작가의 작품 세계

 

워낙 대단한 작가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노희경이라는 작가의 색깔이 원숙미까지 얹어져 이처럼 빛나는 작품이 있었던가.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드라마 작가라면 꼭 한 번 써보고 싶지만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노희경 작가의 인생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노희경 작가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노 작가는 멜로를 그려도 남녀 간의 사랑 그 이상의 인간애를 담는 작가다. 가족드라마를 해도 가족의 차원을 넘어 사회의 양태를 잡아내는 작가다. 그런 그에게 <디어 마이 프렌즈>는 거의 모든 것들이 망라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물론 어르신들의 삶이라는 굵직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가족의 이야기, 사랑, 우정 같은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며 겪게 되는 거의 모든 경험들이 녹여져 있다. 희자(김혜자)와 정아(나문희)의 둘도 없는 우정, 정아와 남편 그리고 부모와 자식으로까지 얽힌 한 집안의 가족사, 희자와 성재(주현)의 노년에도 피어나는 사랑, 희자와 충남(윤여정)의 친자매 이상으로 느껴지는 자매애, 난희(고두심)와 영원(박원숙)의 우정, 난희와 완이(고현정)의 자매 같은 모녀 사이, 완이와 연하(조인성)와의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 게다가 노년을 맞아 갖게 된 치매나 암의 이야기까지...

 

생각해보라. 이 많은 이야기들이 이렇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녹여져 있는 이 드라마의 면면들을. 그 중 한 가지 이야기만 갖고도 꽤 무거운 한 편의 드라마가 나올 것만 같은 무게감이다. 하지만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렇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노희경 작가는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입으로 꼭꼭 씹은 음식을 넣어주듯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가볍게 건넨다.

 

그 각각의 소재들이 갖는 극적 상황들이 놀랍도록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면서도 전체를 꿰뚫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놓지 않는다. ‘친구의 관점으로 들여다본 인생은 그 많은 아픔들을 긍정할 수 있을 만큼 따뜻하다. 드라마 곳곳에, 장애의 문제, 가부장제가 갖고 있는 폭력의 문제, 남녀 성차의 문제 등등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들이 번뜩이지만 그 양상은 갈등을 갈등으로 풀어내기보다는 그것이 죽음이라는 인생의 극점을 전제하여 얻어지는 어떤 통찰들을 통해 해결점을 제시한다는 점도 놀랍다.

 

이런 작품은 결코 단기간에 쓰일 수 없는 것이고, 단지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그려질 수도 없는 것이다. 그건 오랜 세월 동안 작품을 해오고, 또 스스로도 많은 인생의 경험들을 쌓아오면서 갖게 된 진지한 궁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디어 마이 프렌즈>를 감히 노희경 작가의 인생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점들이 이 작품 하나에 망라된 느낌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작품이 가능했을까. 최근 tvN에서 유독 드라마 작가들의 많은 인생작(?)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시그널>을 쓴 김은희 작가가 그렇고 <응답하라> 시리즈를 쓴 이우정 작가가 그러하며 <기억>의 김지우 작가 그리고 <디어 마이 프렌즈>의 노희경 작가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역작들을 연속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일까. <미생><시그널>을 연속적으로 성공시킨 김원석 감독은 필자에게 잘 하는 것을 해보고 싶은 대로 끝까지 하게 내버려두는작가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얘기한 바 있다. 곱씹어볼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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