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 투하츠', 이 시뮬레이션의 동력은

'더킹 투하츠'는 기묘한 멜로드라마다. 남남북녀. 상투적인 설정이라고 말할 지 모르겠지만, 남측을 상징하는 왕제 재하(이승기)와 북측을 상징하는 북한특수부대 여자1호 교관 김항아(하지원)가 서로 부딪치고 싸우면서 차츰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런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이 멜로의 과정은 그래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처럼 보이지만, 갈라진 남과 북이 이루었으면 하는 멜로 같은 관계(통일을 결혼처럼 꿈꾸는)처럼 읽히기도 한다.

 

'더킹 투하츠'(사진출처:MBC)

서로 다른 정치적, 문화적 환경 속에 살아온 이 두 남녀가 부딪치는 장면에서 흥미로운 두 가지 소재가 보인다. 그것은 '빨갱이'와 '소녀시대'다. 세계장교대회(WOC)의 단일팀으로 묶인 남북 장교들은 같이 훈련을 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하지만, 그 과정에서 넘을 수 없는 상대방의 금기를 건드리기도 한다. 남측이 그토록 '빨갱이'라고 세뇌시켰던 북한사람과 북측이 그토록 미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배척했던 자본주의 문화가 그것이다.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를 접한 북한의 리강석(정만식)이 그 매력에 빠져들자, 대단한 약점이라도 잡은 듯 재하는 그 사실을 갖고 짓궂은 장난을 친다. 하지만 남측에서는 작은 농담일 수 있는 이 이야기는 리강석이라는 북한 장교에게는 치욕으로 다가온다. 그만큼 머릿 속 깊숙이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의식적인 반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강석은 결국 재하를 죽이려 들고, 그 상황은 모든 남북의 장교들이 서로 총을 겨누게 되는 상황으로 비화된다.

북측에 소녀시대라는 금기가 있다면 남측에는 '빨갱이'라는 금기가 있다. 마치 남북 간에 갑자기 교전상황이 벌어진 것처럼 실제상황으로 꾸며진 마지막 미션에서 김항아는 재하와 일행들을 데리고 남측 군사분계선까지 탈출시키려고 하지만 재하가 이를 믿지 못하는 것은 이 뿌리 깊은 '빨갱이'에 대한 세뇌가 작용한 탓이다. 자신을 납치해 남측에 무언가를 요구할 거라고 판단한 재하는 결국 김항아를 향해 총을 쏘고 자신도 자결하려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미션이라는 것이 밝혀지지만, 결국 '빨갱이'라는 장벽은 소녀시대라는 장벽만큼 남북 사이를 갈라놓는 금기였다는 게 드러난다. 물론 결국 이 남남북녀는 최종 미션으로 새벽 행군을 함께 함으로써 서로의 마음에 그어진 선을 넘고 단일팀을 유지하지만.

'더킹 투하츠'는 그 설정 자체가 그렇지만 하나의 시뮬레이션으로서 재미를 만들어낸다. 국제정세로서의 남과 북의 관계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로 치환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총을 겨누기도 하지만 차츰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 그 과정에서 '빨갱이'와 '소녀시대' 같은 문화적 금기를 두고 벌어지는 대결과 그 선을 넘는 장면은 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진 벽 하나씩을 허무는 장면처럼 시뮬레이션 된다.

멜로란 결국 남녀 간의 사랑과 그 사랑을 막는 장애가 필수적인 요소로 등장하는데, 이 남북관계를 남녀관계로 치환해 만든 멜로는 그래서 남북의 대중정서가 그 장애로 작용한다. 재하와 항아가 결혼할거라는 소문이 뉴스로 발표되자, 북한군 특수부대 장교와 어떻게 남측의 왕제가 결혼을 하냐는 남측 국민들의 반감이 바로 그 장애 요소다. 재하는 이 부분을 연설을 통해 남북의 문제가 아니라 한 남자의 한 여성에 대한 진심으로 되돌려놓는다. "제가 사랑했습니다. 국민들의 마음까지는 생각 못했습니다. 적을 사랑해온 나의 마음에 침을 뱉고 돌을 던지고 꾸짖어주시길 바랍니다."

'더킹 투하츠'가 그리는 것은 물론 시뮬레이션일 뿐이다. 결국 이 두 사람이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은 우리가 갖고 있는 통일에 대한 지지만큼 바람직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 시뮬레이션은 힘을 얻게 된다. 여기에 김봉구(윤제문) 같은 외부적인 위기상황(남북을 갈라놓으려는)은 이 두 사람이 하나로 뭉치는 또 다른 명분과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실 시뮬레이션 하나만 보면 그 흐름이 뻔하게 나와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래도 눈을 떼기가 어렵다. 그 팽팽한 재하와 항아 사이의 긴장감 있는 멜로의 과정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그 결과를 못내 보고 싶은 마음도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멜로를 남과 북의 상황으로 시뮬레이션한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동력이다.

'사랑비' 시청률 5%가 전부는 아니다

'사랑비'의 시청률은 5%에 머물러 있다. 배용준을 잇는 차세대 한류스타라는 장근석과 K팝의 중심에 서 있는 소녀시대의 윤아, 그리고 1세대 한류의 선봉장 역할을 한 '겨울연가'의 윤석호PD와 오수연 작가, 게다가 방영 전 이미 일본에 80여억 원의 외화를 벌어들였다는 성과까지. 이렇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성공요소로 지목되는 것들이 많은 드라마로서 5%라는 시청률은 가혹할 정도다.

 

'사랑비'(사진출처:KBS)

그러나 더 가혹한 건, 5%라는 시청률이 아니다. 그 5%라는 수치 정도의 작품성으로 이 작품이 치부되는 현실이다. 시청률 추산이 대중적인 호불호를 드러내는 것은 맞지만, 이미 TV시청률이 중장년층들에게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얘기이고, 또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작품성이 좋다는 등식은 이미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사랑비'에 대한 비판 여론을 보면, 5%라는 시청률에 지나치게 경도된 느낌이 있다. 이것은 거꾸로 '해를 품은 달'이 실제 작품의 완성도는 한참 떨어졌지만 40% 시청률을 넘어선 것만으로 마치 작품성이 좋았다는 착각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실제 작품은 어떨까. '사랑비'의 드라마 전개는 느리다. 그래서 마치 한참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이야기가 폭주하게 된 드라마들(언제부턴가 이런 자극이 우리 드라마의 시청률을 견인해왔다)을 보던 눈에 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완행열차를 탄 풍경 같은 드라마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작품 전개가 빠르다고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건 아니다. 그건 자극의 문제다.

'사랑비'는 그런 점에서 자극이 별로 없는 드라마다.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보면 여타의 폭주하는 드라마들이 다이내믹한 서사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사랑비'는 서사가 아닌 서정에 더 집중하는 드라마다. 멜로드라마로서 이야기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이런 전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사랑비'는 그래서 서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별 얘기가 없는 것 같다(혹은 그 얘기가 그 얘기인 것 같다). 하지만 서정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르다.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의 고저와 강약을 섬세하게 느낄 때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마치 서사 중심의 소설과 서정적인 시의 차이라고나 할까.

70년대식 첫사랑이 주는 느낌도 답답하게 다가올 수 있다. 왜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을까. 왜 당장 전화해서 마음을 전하지 못할까. 하지만 이것은 2012년 현재적 관점에서의 생각이다. 휴대폰으로 언제든 전화하고 문자를 주고받는 시대의 정서와 아직도 편지를 쓰던 시대의 정서가 같을 수 없다. 그런데 왜 그 답답한 70년대식 첫사랑을 보여줄까. 그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멜로'라는 장르가 사망선고를 받은 것은 어쩌면 바로 이런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미디어들이 쏟아져 나오면서부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이 가진 우연성과 운명적인 느낌들은 미디어들에 의해 지극히 현실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인스턴트식 사랑의 시대에 '멜로' 같은 운명적인 사랑을 다루는 장르는 어딘지 잘 맞지 않아 보인다. 멜로가 사극 같은 이야기(운명적 사랑이 가능하다) 속으로 자꾸만 도망치거나, 로맨틱 코미디처럼 유머로 바뀐 것(운명적 사랑이 유머처럼 그려진다)은 다분히 이런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사랑비'는 이 사라진 시대의 멜로를 마치 서랍 속에 구겨 넣었던 편지처럼 꺼내 읽는다. 시청률 5%와, 그 시청률 수치만큼으로만 곡해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 대한 혹평들은 그래서 이 시대가 얼마나 사랑을 달리 읽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언젠가부터 사랑은 소리치고 대놓고 말하고 주장하고 쟁취하는 그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 아닐까. 4회까지 다뤄진 이 아련한 70년대식 구식 첫사랑은 그래서 2012년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유적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비'가 단순히 그 70년대식 구식 사랑에 대해 추억만을 담은 드라마는 아니다. 5회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2012년식의 사랑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70년대 식 구식 사랑과 2012년식의 신식 사랑 사이에 표현은 달라졌어도 그 바탕에 깔린 비슷한 정조를 찾아내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이미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디지털 환경 속에 내던져져 있지만(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아날로그를 희망하기도 한다. 빈껍데기 같은 허무한 즉석 사랑의 연속 속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추억하기도 한다. 마치 시대는 달라졌어도 여전히 내리고 있는 '사랑비'처럼.

'사랑비'는 느리지만 바로 그 느림의 미학이 지금 2012년 우리네 속도에 경도된 드라마들에 오히려 의미를 던져주는 드라마다. '사랑비'의 사랑은 구식이지만, 바로 그 구식이기 때문에 작금의 인스턴트식 사랑 속에서 하나의 판타지이자 희망이 되기도 한다. '사랑비'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내뱉는 대사들,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그 말은 비트로 쪼개지는 이 시대의 삶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사랑비'에 내려진 5%라는 시청률은 제작자들 입장에서는 차분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작품성 이외의 문제들이 뒤엉켜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 같은 시적인 영상의 드라마는 그 매체적인 차이 때문에 오히려 집중이 안 될 수가 있다. 영화라면 집중해서 보겠지만 드라마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달라진 매체 환경과 멜로의 관계에서 전술했듯이, 어쩌면 정통 멜로라는 장르 자체가 우리에게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렸을 수 있다. 또 한류를 너무 강조하는 것은 거꾸로 반감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한류가 거의 일본의 소비자들에게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현실은 드라마가 그들만을 겨냥하고 있다는(그래서 국내 팬들은 소외되었다는) 곡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5%라는 시청률로 '사랑비'라는 드라마를 전부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70년대가 초반 4회를 차지하고 또 그 정조가 후에도 이어질 것이지만, 그렇다고 70년대에 주저앉아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이제 2012년의 시점에서 이어질 드라마는 그 70년대를 추억하면서도 그 시절이 주는 아날로그가 지금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길 것이다. 그 질문이 혹시 우리 중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든다면, 자극과 속도에 경도된 우리들에게 조금은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사랑비'를 뿌려줄 지도.

 '패션왕', 가슴 먹먹한 청춘들의 자화상

'패션왕'은 우리네 출구 없는 청춘들의 자화상 같은 드라마다. 비는 마치 그들의 처지처럼 추적추적 내리고 가영(신세경)과 영걸(유아인)은 우산도 없이 길바닥에 내쳐진다. 얼굴에 훈장처럼 상처를 달고 그들은 지금 맨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중이다. 살아남기 위해. 모욕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버린 조마담(장미희)의 부띠끄에 의탁한 가영을 찾아온 영걸이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버스 안. 주머니에 있는 단돈 몇 천원.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 그 막막함. 아마도 지금의 청춘들이라면 이들이 흘리는 그 눈물에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을 것이다.

 

'패션왕'(사진출처:SBS)

'패션왕'의 가영과 영걸이 태생으로부터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 있는 인물이라고 해서 이 드라마를 단순히 계급적 차이에 의한 빈부의 대립이나, 그 빈부를 뛰어넘는 신데렐라 스토리로 오해할 필요는 없다. 전혀 다른 계급에 속해보이는 재혁(이제훈)과 안나(유리) 역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니까. 겉보기엔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재혁이지만 그는 바로 그 태생의 덫에 걸려 있는 청춘이다. 그는 부모라는 이유로 재혁의 삶에까지 관여하는 정만호(김일우)와 윤향숙(이혜숙)의 그늘에서 숨 막혀 한다.

재혁은 엄마인 윤향숙을 CEO처럼 생각한다. "CEO 전에 네 엄마야."하고 말하는 윤향숙에게 재혁은 "엄마면 이래도 되는 거야?"하고 되묻는다. 그들은 편의에 의해 때론 부모 자식임을 내세우지만 재혁이 사업에 실패하자 가차 없이 뺨을 날리고는 "내 돈 함부로 굴리지 말라"는 엄포를 놓는 그런 CEO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인물들이다. 과장된 면이 있지만 돈과 물질 만능은 때론 자식마저 하나의 물건처럼 보게 만들기도 하나 보다. 그런 부모일수록 출신성분에 집착하는 법. 마치 물건 고르듯 출신성분을 따지는 그들에게 안나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일찍이 부모가 이혼하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 안나는 어떻게든 노력해 그 기득권자들의 세계로 들어가려 하지만 그것은 출신성분이라는 꼬리표에 의해, 또 부족한 실력에 의해 좌절된다. 마치 내세울 거라곤 그것밖에 없다는 듯 끊임없이 마이클이라는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을 인정했다는 것을 자랑하는 영걸에게 안나는 "좋겠다. 마이클이 인정해줘서..."라고 자조 섞인 푸념을 내뱉는다.

'패션왕'이 태생적으로 갈라진 두 개의 삶, 즉 영걸과 가영의 가난한 청춘과 재혁과 안나의 부유한 환경의 대립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두 삶 모두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참을 보다 보면 재혁의 그 까칠함 이면에 놓여진 우수와 힘겨움이 보이고, 안나의 꼿꼿함 이면에 숨겨진 안간힘이 보인다. 이 네 명의 청춘은 지금 모두 현실에 질식 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숨 막히게 하는 것은 뭘까. 그것은 기성세대로 대변되는 부조리들이다. 실력이 아닌 태생으로 결정되는 삶,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물질 만능주의,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당연하다는 듯 밟고 서는 사회 시스템, 심지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 관계의 굴레 혹은 폭력... 이것이 진짜 '패션왕'이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태생과 빈부가 다른 네 명의 청춘들이 각자 위치는 달라도 마치 한 배를 탄 듯한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영걸이 은행에서 자금 대출을 하려 하자 대뜸 "담보 없어요?"하고 물으며 난색을 표하는 은행 직원. 그러자 영걸이 "중소기업 지원자금도 7천억이 풀렸다고 하는데 어디로 간 거예요?"하고 묻자 돌아오는 "고객님은 해당사항 없습니다" 라는 절망적인 답변. "그럼 저 같은 사람은 고리사채나 쓰라는 겁니까?"라고 외치는 영걸의 항변이 예사롭지가 않다. 또 정반대로 "엄마면 이래도 되는 거야?"하고 묻는 재혁의 목소리도 남달리 들린다. '패션왕'이 특별한 지점은 이 서로 다른 계급적 위치에 서 있는 청춘들이, 바로 그 청춘이라는 지점 하나로 기묘한 연대의식을 가질 때다. 재혁이 가영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이나, 영걸이 술 취한 안나의 신발을 벗겨주는 장면이, 가영과 영걸의 그 깊은 절망감을 보여주는 버스에서의 장면만큼 깊은 감흥을 주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연기력 논란 없는 그들, 캐릭터가 답

도대체 이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더킹 투하츠'의 이승기와 '옥탑방 왕세자'의 박유천 얘기다. 흔히 가수들의 연기 도전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것이 연기력 논란이다. 하지만 이승기와 박유천의 경우, 논란이 아닌 호평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연기를 대단히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캐릭터에 대한 몰입은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고, 또 상대적으로 적은 연기경력에도 불구하고 매 편마다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그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옥탑방왕세자'(사진출처:SBS), '더킹 투하츠'(사진출처:MBC)

'찬란한 유산'에서 정극연기를 경험하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코미디를 거친 이승기에게 '더킹 투하츠'의 재하라는 캐릭터는 코믹함과 진지함을 둘 다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도전이면서도 발전의 기회가 된다. 사실 상대 배우들을 톱스타 반열로 올려놓을 정도로 연기호흡이 좋은 하지원과 함께 하는 연기는 이승기에게는 부담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하지원을 주목할 것이기에 자칫 그녀의 보조 역할로 전락하거나, 혹은 끌려가는 인상을 지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드라마 속에서 이승기의 존재감은 하지원과 거의 대등하게 나타난다. 두 사람은 팽팽하게 대립하면서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오고가는 상황들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특히 조금은 가벼운 듯 보이는 껄렁함 속에 왕재로서의 진중함과 그 굴레의 힘겨움을 숨기고 있는 재하라는 캐릭터는 이승기에게는 딱 맞는 옷처럼 잘 어울린다. 왕자 같은 귀공자 이미지이지만 '1박2일' 같은 예능 속에서는 한없이 천진한 장난꾸러기의 모습을 보이던 이승기 아닌가. 정극과 코미디를 넘나들 수 있게 된 점은 이승기가 이 작품을 통해 얻은 분명한 수확으로 보인다.

한편 '성균관 스캔들'로 첫 등장해 첫 연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몰입을 보여준 박유천은 '미스 리플리'의 정극을 경험한 후, '옥탑방 왕세자'라는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고 돌아왔다.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고, 코미디와 멜로를 넘나드는 연기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박유천에게는 다른 것 같다. 그는 본인이 진지해짐으로써 상황에 의해 웃음을 줄 수 있는 캐릭터 연기에 능수능란함을 보이고 있다.

사극 속에서 현대극으로 뛰어 들어왔지만, 여전히 자신이 사극 속의 왕인 줄 알고 있는 '옥탑방 왕세자'의 이각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마치 박유천의 연기 과정을 얘기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옥탑방 왕세자'는 '성균관 스캔들'을 연기하던 박유천이 현대로 뛰어넘은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박유천 역시 한지민이라는 든든한 상대역을 맞아 너무나 자연스러운 코믹 멜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둘 다 가수 출신이면서 연기력 논란이 없다는 점(아니 나아가 보통 연기자들보다 오히려 연기력이 좋게도 보인다)은 이들이 가진 특유의 연기에 대한 몰입에서 비롯된다. 아직 연기가 섬세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완전히 그 인물에 동화되는 몰입이 좋기 때문에 보는 이들도 연기자보다는 캐릭터를 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것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전적으로 노력에 의한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캐릭터다. 연기자가 연기를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승기가 선택한 재하라는 캐릭터와 박유천이 선택한 이각이라는 캐릭터는 자신들이 도전하고 소화할만한 가장 적합한 선택으로 보인다. 가수와 연기자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두 사람. 이러다가는 가수와 연기자라는 본말이 전도될 지도 모르겠다. 혹시 이제는 거꾸로 '가수 맞아?' 하는 질문이 나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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