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을 보편으로 풀어내는 그들의 능력

드라마계의 두 거장이 돌아왔다. 김수현 작가는 주말 밤 가족드라마로 돌아왔고, 이병훈 PD는 월화의 밤 사극으로 돌아왔다. 드라마 초반부 시청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관계로 혹자들은 이 거장들의 귀환이 "소리만 요란했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그런 성급한 판단은 일주일도 채 안돼서 뒤집어졌다. 3월20일 14.7%(agb 닐슨)로 시작한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4월11일 17%의 시청률을 올렸고, 3월22일 11.6%로 시작한 '동이' 역시 4월12일 17.9%로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역시 명불허전!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거장이란 이름에 걸맞게 만드는 걸까.

물론 이것은 단지 시청률의 수치만을 근거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늘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수상한 삼형제'의 문영남 작가에게 거장이란 이름을 붙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문영남 작가를 거장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시청률은 가졌으되 작품의 완성도를 통해 늘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그 작가정신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반면 김수현 작가와 이병훈 감독은 다르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현재의 변화에 귀 기울이는 자세는 그들의 작품을 늘 선구적인 위치에 서게 만든다.

이병훈 PD가 들고 온 '동이'에는 지금껏 사극에서는 좀체 보기 어려웠던 가벼운(?) 임금이 등장한다. 때론 경망스러울 정도로 깨방정을 떠는 이 임금은, 과거라면 용납되기 어려웠을 캐릭터. 하지만 모든 것이 대중들의 시선으로 재편되는 작금의 상황에 이런 파격적인 왕의 재해석은 오히려 신선한 것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오히려 서민들을 보다 이해하려는 왕의 노력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허준', '상도'를 거쳐 '대장금'을 통해 퓨전사극의 틀을 완성한 그는 여전히 사극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나가고 있다.

한편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동성애 같은 파격이 등장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나 '바람의 화원' 같은 드라마가 이미 동성애 코드를 선보여 왔기 때문에 이 작품 속의 동성애 역시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의 동성애는 그 의미가 다르다. 이것은 동성애 코드가 아니라 동성애 자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은 장르가 가족드라마다. 그만큼 파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파격은 김수현 작가의 가족드라마로 들어오면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소해진다. 그것은 작가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시선과 거의 동일하게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작가는 이 모든 사랑을 인간애의 하나로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속으로 들어온 동성애에조차 담담한 시선이 담겨질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김수현 작가가 가진 힘이다. 그녀는 작금의 현실 속에 담겨진 파격을 가족드라마 속으로 끌어오지만, 그것을 또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낼 줄 아는 작가다.

이 파격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은 김수현 작가나 이병훈 PD 같은 거장들이 가진 특징이다. 깨방정 떠는 파격적인 왕을 서민들에 대한 애정이 깊은 보편적인 왕으로 풀어내는 이병훈 PD나, 동성애자인 장손과 그의 파격적인 사랑을 가족애로 대변되는 보편적인 인간애로 풀어내는 김수현 작가나 모두 거장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다. 파격이 당대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섬세한 관찰에서 나오고, 보편이 그 변화를 대중적으로 설득시키는 힘이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작품은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명불허전. 거장이 거장으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동이’, 그 깨방정 숙종이 가진 의미

"여깁니다. 게중 가장 낮은 곳입니다. 냉큼 넘으세요." 동이(한효주)는 범인들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숙종(지진희)에게 담을 넘으라고 한다. 하지만 "난 담을 한 번도 넘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숙종. 그런 숙종에게 변복을 한 그가 왕인 줄 모르는 동이는 "아니 다른 나으리께서는 글공부도 하기 싫어 담을 넘고 다니시는데, 나린 대체 뭘 하십니까?“하고 채근한다. 그러자 숙종은 ”내가 있는 곳은 담을 넘기엔 너무 높았다“고 말한다. 결국 ”담은 제가 넘을 테니 잠시 엎드려 주십시오“하고 청하고, 동이는 왕의 등을 밟고 담을 넘는다.

‘동이’에 등장한 이 짧은 에피소드는 이 사극의 초반 부진을 털어내며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왕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사극에서 보던 근엄한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이와 함께 도망치다가 이내 “달려본 적이 없다”고 주저앉고, 칼을 들고는 “배우긴 배웠으되 실전은 처음이다”고 말하는 왕. 그 모습에 ‘허당’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항간에는 이 깨방정(?) 왕의 모습이 지나치게 희화화되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

하지만 이 동이가 감히 왕의 등을 밟고 담을 넘는 이 장면은 우스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낮게 웅크린 왕의 모습과 ‘담을 넘는다’는 그 행위가 마치 ‘왕과 낮은 자들과의 소통’으로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이 덕분에 사건을 해결한 왕은 그녀가 일하는 장악원에 어식(御食)을 내리고 동이에게 상을 내린다. 왕과 노비가 함께 일을 해결하고 왕이 내린 상에 장악원 사람들이 함께 포상 받는 이 장면을 통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가슴 한 구석에 바로 이런 ‘소통의 욕구’를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숙종은 훗날 장희빈이 될 장옥정(이소연)을 부를 때, “옥정!”하고 이름을 부른다. 이것 역시 여타의 사극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 왕은 옥정에게 전날 있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말하면서 “이건 절대 풍(거짓말)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전날 동이에게서 배운 서민들이 쓰는 ‘풍’이란 말을 옥정에게 써먹은 것이다. 그러자 옥정은 방긋 웃으며 저잣거리에서 쓰는 말을 어떻게 왕이 아시냐고 반색한다. 왕의 낮은 자들과 소통하려는 욕구를 ‘풍’이라는 말 하나로 보여준 것이다.

사실 왕의 깨방정은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바로 이러한 소통의 몸짓이라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한껏 낮아지고 한껏 소탈해진 왕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동이와 왕의 로맨스가 단지 사랑놀음이 아니라 이러한 통(通)에 대한 사극의 메시지로 확장해낼 수 있다. 이것은 ‘동이’가 단순한 사극판 신데렐라 이야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가능성이다.

여기에 이병훈 사극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명랑한 분위기’는 이러한 통(通)하는 세상에 대한 판타지마저 꿈꾸게 만든다. 왕이 서민과 함께 고개를 맞대고 똑같은 눈높이로 얘기하는 것. 그것은 때론 우스워 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숙종의 등을 밟고 동이가 담을 넘는 그 순간, 우리는 어쩌면 현실에서는 쉬 찾기 힘든 그 통(通)하는 세상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 숨은그림찾기, 드라마만큼 재밌네

‘추노’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까메오로 출연한 개그맨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했던 드라마. 이 드라마에 장동건, 이병헌, 송강호, 한석규라는 이름에 이어 유재석과 박명수의 이름이 소현세자의 추종세력 명단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은 네티즌들에 의해 찾아내져 화제를 만들었다. ‘개인의 취향’에 갑자기 등장한 구준표(?)는 ‘추노’가 주었던 이 숨은그림찾기의 재미를 재발견해주었다. ‘살인의 추억’에서 “향숙이!”를 연발하던 백광호 역할의 박노식씨가 소라 머리를 하고 가슴에 ‘구준표’라는 명찰을 단 채 등장했던 것. 시청자들은 반색했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의 숨은그림찾기는 ‘구준표’에만 머물지 않는다. ‘추노’에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왕손이 역할로 나왔던 김지석은 이 드라마에서도 한창렬이라는 바람둥이로 나온다. 그는 주인공 박개인(손예진)과 사귀었지만 결국엔 그녀를 버리고 그녀의 친구인 인희(왕지혜)와 결혼하려던 사내다. 재미있는 건 이 한창렬이라는 바람둥이의 아버지 역할로 나오는 안석환이다. 그는 ‘추노’에서 방화백으로 출연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뜻이 그렇다는 거여?”, “그게 말이여 당나귀여” 같은 감칠맛 나는 대사로 시청자들을 배꼽 잡게 만들었던 인물.

자세히 보면 그는 얼굴에 난데없는(?) 칼자국을 하고 있는데,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추노’에서의 대길이를 떠올리게 만든다. ‘추노’에서는 손바닥을 삭삭 비비며 서민들의 처세술을 보이던 그가, 이 드라마에서는 대길이처럼 마초 중의 마초로 변신한 것. ‘개인의 취향’에서 안석환이 맡은 한윤섭이란 캐릭터는 진호(이민호)의 아버지를 배신해 현재의 사업기반을 이룬 인물이다. ‘추노’에서 대길의 칼자국은 본래는 없다가 연기자인 장혁의 제안으로 된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번 한윤섭 캐릭터의 칼자국 역시 안석환의 제안일까.

한편 결혼식장에서 방송이 연결된 지도 모른 채 남자친구를 빼앗긴 것에 대해 넋두리를 한 것으로 인해, 오해를 사게 된 다른 결혼 커플로 등장한 송선미와 정찬은 다름 아닌 주말 드라마 ‘민들레 가족’의 부부. ‘민들레 가족’에서 아내의 몸매가 망가지는 것이 싫어 일일이 식단까지 간섭하는 완벽주의자 민명석(정찬)과 그로 인해 겉으론 화려해보여도 속으로는 망가지는 지원(송선미)의 결혼식 장면이 삽입된 것.

물론 드라마 속의 숨은그림찾기는 의도된 것도 있지만, 의도되지 않은 것들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처럼 숨겨진 그림들을 네티즌들이 찾아내는 과정이 주는 쏠쏠한 재미는 이제 드라마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재미가 분명하다. 그만큼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깊어졌고, 그로 인해 대중들이 드라마에 참여하려는 욕구도 커지고 있다. 이 숨은그림찾기는 그런 면에서 그 상호작용으로서의 욕구를 채워주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또한 이것은 드라마 간의 상호텍스트성의 재미를 느낄 만큼 우리네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깊은 이해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개인의 취향' 속에서 발견한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추노'의 대길. 그 숨은그림찾기의 색다른 재미는 계속 이어질까. 아마도.

'신데렐라 언니' 문근영 어디까지 변신할까

신데렐라 집에 들어간 신데렐라 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문근영이 연기하는 신데렐라 언니 은조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을 가족으로 살갑게 대하려는 새 가족들을 계속해서 밀쳐내는 중이다. 끝없이 재잘거리며 언니를 따르는 동생 효선(서우)에게 "너 원래 그렇게 말이 많니?" 하며 금을 긋고, 키다리 아저씨마냥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기훈(천정명)에게 "나한테 뜯어먹을 거 있어? 왜 웃어?"하고 쏘아댄다. 기훈의 말처럼 웃을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하필이면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는다"는 아이. 그만큼 은조는 행복이라고 여겼던 것들에 지독히도 배신을 당해왔다. 그러니 아예 행복의 접근을 막는 중이다.

이런 신데렐라 언니 옆에서 자신이 문자를 보내면 절대로 씹히지 않을 거라는 행복에 대한 신념을 가진 신데렐라 효선의 늘 방글방글 웃는 얼굴은 오히려 그녀에겐 상처가 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호의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완벽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신데렐라 언니 은조에게 차분히 다가와 "나도 너 같았다"며 "너 같았는데 여기서 지내다가 나 같아졌다"고 말하는 기훈은 어쩌면 또 빼앗길 지도 모르는 이 행복을 조금은 믿고 싶게 만드는 인물일 것이다.

이처럼 신데렐라 언니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신데렐라 이야기 속의 은조는 전혀 악역이 아니다. 오히려 이 불행한 상황 속에 던져진 은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효선의 행동이 악역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이 드라마가 뒤집어놓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이다. 늘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있는 은조가 측은해지고, 늘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재잘대는 효선이 오히려 미워지는 이 캐릭터 설정. 그리고 그 상반된 캐릭터의 축성을 통해 만들어낸 악역의 역전은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따라서 악역으로 시작하지만 차츰 이해가 되고 오히려 그 악역의 상황에 몰입되게 만드는 은조를 연기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워할 수 없는 악역'에서 이것은 한 차원 더 나아가 '악역이 아닌 악역'을 연기한다는 것. 문근영은 이를 위해 몇 가지 얼굴표정에 말투를 이어 붙였다. 절대로 웃지 않는 얼굴, 말하거나 들을 때면 약간 삐뚤어진 반항적인 입 매무새, 불만이 가득하지만 왠지 허무한 눈, 마치 가리려는 듯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에 반쯤 가려진 눈, 무심한 듯 하지만 사실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몸을 반쯤 빼고 있는 자세로 틀어진 몸... 한 마디로 말하면 상처받은 짐승의 몸짓에 "아니요" 혹은 "싫어요"를 반복하는 대사를 연결시켰다.

쓸쓸하지만 때론 독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 눈빛은 '선덕여왕'에서 악역이지만 미워할 수 없었던 미실을 연기한 고현정을 닮았다. 그러고 보면 문근영의 연기자로서의 행보는 여러 모로 고현정의 그것을 닮은 구석이 있다. 청춘스타로서 맑고 순수한 이미지의 대명사였던 고현정은 세월이 흐른 뒤, 복귀하면서 '여우야 뭐하니'로 털털한 노처녀의 이미지로 변신했고, 몇몇 영화들('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같은)을 통해 스타의 이미지를 털어버렸다. 그리고 '선덕여왕'의 미실은 그녀를 온전한 연기자로 세워주었다.

문근영은 '어린신부', '댄서의 순정'을 통해 국민여동생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후, 성인 연기자로 변신하려 했지만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바람의 화원'의 남장여자 신윤복 역을 통해 더 이상 국민여동생에만 머물지 않는 그녀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미실이 고현정에게 완전한 연기자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해준 것처럼 '신데렐라 언니'의 은조는 문근영에게 또 한 번 연기자로서의 그녀의 입지를 탄탄하게 해줄까. 살짝 돌려 내리 깔아보는 문근영의 눈에서 고현정의 기운을 느끼는 것은 섣부른 생각일까. 기대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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