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2>, 출연자의 진가를 찾아주는 예능

 

그 사람의 진가는 위기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정글의 법칙2(이하 정글2)>가 발견한 건 야생의 정글만이 아니다. 그 야생의 환경 속에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진가다. <정글2>에 출연한 이들은 그들이 이 프로그램에 나오기 전과 후에 확실한 이미지 변화를 갖는다. '이 사람에게 저런 면모가 있었어?' 하고 묻게 되는 예능, 바로 <정글2>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김병만의 야생 적응력이 남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높은 야자수를 타고 올라가 야자를 따는 모습은 그렇다 치고, 뭐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뚝딱 뚝딱 만들어내는 야생 맥가이버 같은 면모는 달인과는 또 다른 풍모였다. 특히 <정글1>이 거의 모든 걸 김병만에 의지했던 것과 달리, <정글2>로 넘어와 추성훈 같은 인물이 투입되자 김병만만의 장점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힘이 아니라 요령이 남다른 김병만은 추성훈과 비교해 '도구의 인간(?)'이었다. 물고기를 잡는 것도 처음에는 작살 같이 뾰족하게 만든 나무로 찌르다가 잘 안되자 이른바 퍼 올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빗물을 모으기 위해 특별한 기구를 고안해내기도 하고 매번 지형지물을 이용해 집을 짓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글2>가 보여준 김병만의 새로운 진가는 그가 묵묵하게 행동으로 가족(?)을 챙기는 모습이다. 그에게서는 어느새 족장의 풍모가 풍기고 있다.

 

추성훈은 몸이 앞서지만 특유의 매너로 똘똘 뭉쳐 있는 캐릭터다. 뭔가 일이 안될 때 신경질을 내기도 하지만 악의나 뒤끝은 없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 강인해 보이는 단단한 몸 뒤편에 숨겨진 부드러운 면모를 추성훈은 <정글2>를 통해 보여주었다. 의외의 예능감의 소유자로 어색한 한국말은 그를 근육질의 초딩 같은 반전 캐릭터로 만들어주고 있다.

 

리키 김은 <정글2>를 통해 재발견된 캐릭터. <출발 드림팀>을 통해 그 강인한 승부욕은 정평이 나 있었지만,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바른 모습과 의외로 넘치는 정은 그의 새롭게 발견된 면모다. 파도에 제작진들이 바다에 빠졌을 때 제일 먼저 바다로 뛰어든 리키 김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가족에 대한 정서를 갖고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노우진은 <정글>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달인의 보조 정도로밖에 인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은 이 프로그램이 예능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줄 정도였다. 또 상대방을 위해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은 역시 달인이 있기 위해서는 노우진 같은 인물이 옆에 있어야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불을 피울 때 김병만과 추성훈이 정작 대결하듯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 나무를 모기를 물려가면서도 놓지 않고 버텼던 것은 바로 그였다.

 

포기의 아이콘이라는 캐릭터를 갖게 된 광희 역시 <정글>로 인해 존재가치를 한껏 높인 인물이다. 그저 개념 없이 웃기려고만 하는 아이돌이라고 여겨졌었지만, <정글>은 그런 막내 같은 광희를 한 차원 성숙되게 만든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사실 모두가 김병만이나 추성훈이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아마도 광희 같은 어찌 보면 우리를 닮은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가진 야생성은 더 부각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정글2>에 새롭게 투입된 유일한 여성 출연자인 박시은은 의외의 털털한 모습과 때론 누나 같고 때론 엄마 같은 편안함을 보여주었다. 여성으로서 정글이라는 환경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는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게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여성만이 가진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박시은은 여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위기의 순간에 가봐야 그 사람의 진가가 비로소 보인다고 한다. 정글이라는 야생의 환경은 그래서 그 속에 던져진 인물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김병만의 성실성이나 추성훈의 매너, 리키 김의 정이나 노우진의 배려심 그리고 황광희의 성장과 박시은의 편안함은 그렇게 발견된 것들이다. <정글2>는 그래서 야생의 적응과정이 주는 재미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발견되는 인물들의 새로운 면모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이다.

<무걸>이 살 길과 <무도>에 대한 예의

 

<무한걸스>의 지상파 입성은 과연 약일까, 독일까. 첫 방송에 쏟아지는 반응들은 <무한걸스>가 앞으로 갈 길이 평탄치 만을 않을 거라는 걸 예상케 한다. 호평과 혹평이 갈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것은 그 이면에 <무한도전>이라는 거대한 예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무한걸스'(사진출처:MBC)

<무한도전>을 무려 20주 동안 보지 못한 팬이라면 <무한상사>를 그대로 패러디한 <무한걸스>의 첫 방송인 <무걸출판사>가 반가웠을 수 있다. 즉 <무걸출판사>를 보면서 <무한도전>의 공백을 잠시나마 채울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제 아무리 내놓고 패러디하는 것이라고 해도 <무한걸스>가 <무한도전>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 또한 실망할 수밖에.

 

<무한걸스>는 <무한도전>의 여성판으로 기획된 전형적인 케이블형 프로그램이다. 즉 <무한걸스> 독자적으로 서 있다기보다는 본래 <무한도전>의 패러디 성격이 짙기 때문에 지상파, 그것도 주말 저녁이라는 황금시간대에는 어울리기가 어렵다. 어디서 본 듯한 아이템들을 여성판이라는 미명 하에 반복 생산하는 것을 경쟁이 치열한 주말 저녁에 굳이 챙겨볼 시청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케이블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한도전>의 팬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무한걸스> 역시 <무한도전>의 곁가지로서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무한걸스>를 보면서 우리는 <무한도전>을 늘 떠올린다. 이것은 <무한걸스>가 가진 가장 큰 힘이지만, 또한 가장 약한 단점이기도 하다. <무한걸스>는 <무한도전>을 업고 있을 때 도드라지지만, 홀로 서야할 때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무한도전>은 내용 그 자체보다도 그 매번 시도되는 소재나 형식 실험에 더 열광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무한걸스>의 첫 아이템이 <무한도전> 패러디라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이 프로그램이 가진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새로운 도전이나 실험이 아니라, 이미 <무한도전>이 시도했던 것들을 가져와 여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 <무한도전>을 비교점으로 가진 팬들에게 지상파 프라임타임대에 들어온 <무한걸스>가 좋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무한걸스>가 지상파에 발을 딛는 그 시기도 좋지 않았다. <무한걸스>가 <무한도전> 20주 결방으로 인한 팬들의 갈증을 채워주기보다는 마치 빈 자리에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는 듯한 인상을 만든 것. 물론 <무한걸스>의 제작진이나 출연진에게 그런 의도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편성이란 그 자체로 때론 모든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는 법이다.

 

기왕에 <무한걸스>가 지상파에 들어오겠다고 했다면 더 도전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무한도전>이 시도하지 않았던 아이템들을 갖고 와 마치 짝퉁이 진짜를 넘어서겠다는 자세를 보였다면 오히려 흥미로웠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케이블에서 보여주었던 <무한걸스>를 싹 잊게 만드는 좀 더 과감하고 도전적인 면모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현재 <무한걸스>는 두 가지 시선에 붙잡혀 있다. 하나는 <무한도전>의 공백이 주는 갈증을 채워줄 수 있다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것도 없이 대충 따라하면서 <무한도전>의 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시선이다. 그러나 이 두 시선 어느 것도 <무한걸스>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무한걸스>는 좀더 <무한걸스>만의 세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무한도전>에서 빠져나온 프로그램이지만 그렇다고 <무한도전>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본래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도전'이라는 하나의 주제만 같을 뿐, 매번 거의 완전히 다른 형식들을 실험하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한도전>을 제대로 여성판으로 만들어내는 입장에서도 지상파에 입성한 <무한걸스>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독자적인 형식과 소재의 실험에 도전해야 한다. 그것이 <무한걸스>가 살 길이고, 또한 <무한도전>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고쇼>, 예능늦둥이 김응수 돋보인 이유

 

도대체 이런 끼를 어떻게 숨기고 살아왔을까. 이미 <라디오스타>를 통해 가능성을 보였던 김응수였다. <고쇼>에 출연한 그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특유의 예능감을 보여주었다. '감수성의 제왕'이라는 부제로 이종혁, 이경실, 조권이 함께 출연한 자리에서 김응수는 단연 발군이었다.

 

 

'고쇼'(사진출처:SBS)

사실 '감수성'이라는 키워드로 모아 놓긴 했지만 이들 네 사람은 서로를 어색해했다. 이경실과 조권은 같이 예능을 했던 경험이 있었지만, 예능 경험이 별로 없는 이종혁이나 김응수에게 이들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이종혁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침묵을 깨려고 노력한 건 역시 예능이 익숙한 이경실이었다. 관계의 어색함을 풀기 위해서인 듯 그녀는 좀 더 공격적으로 다른 게스트들을 밀어 붙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약술을 많이 담근다는 김응수가 '약술'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이경실이 "인간성 더럽네"라고까지 쏘아부친 것은 사실 조금 불편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대해서 김응수는 약술을 안주겠다는 이유가 대부분 남자들에게만 좋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김응수는 어색함 때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종혁을 '동문서답'의 캐릭터로 만들기도 했다. 질문과 상관없이 엉뚱한 답변을 한다는 것. 이런 캐릭터가 부여되자 이종혁은 더 편안하게 토크를 이어갈 수 있었고 내놓고 자기 자랑하는 모습으로 '자화자찬'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종혁과 김응수가 주말 저녁 동시간대에 방영되고 있는 <신사의 품격>과 <닥터 진>을 놓고 자기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서로 낫다고 말하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김응수가 <신사의 품격>의 제목이 막연하다는 애매한 이유로 몰아붙이고, 여기에 대해 다른 MC들이 "<신사의 품격>에는 장동건이 출연한다"고 말하자, 김응수는 "<닥터 진>에는 내가 출연한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또 그가 들려준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큰 웃음을 주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종혁이 캐스팅될 수 있게 감독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얘기나, 복도를 내달리는 신을 찍으며 마신 오토바이 배기가스 때문에 폭삭 늙었다며 임상수 감독에게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눙치는 모습은 김응수라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물론 김응수가 '예능늦둥이'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것은 단지 그가 엉뚱한 발언이나 '개나리송' 같은 노래로 스튜디오를 발칵 뒤집어놓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격적인 발언을 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을 캐릭터화 함으로써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는 점이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상대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기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그러면서도 조권이 특유의 깝으로 춤을 출 때면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는 그런 포용력이 그를 돋보이게 하는 이유다.

 

초반에 이경실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강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고쇼> '감수성의 제왕'편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김응수였다. 그리고 김응수의 때론 괴팍해보이고 때론 엉뚱하며 때론 공격적으로 보이는 모습 속에서도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면모는 이경실 같은 베테랑 개그우먼조차 배워야 할 덕목으로 보인다. 예사롭지 않은 예능늦둥이가 탄생했다.

<무도> 외주화 검토 후폭풍이 말해주는 것

 

공식적인 발표도 아니다. 아마도 회의석상에서 잠깐 나온 얘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MBC 김재철 사장이 <무한도전>을 외주화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대중들은 공분했다. 외주화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무한도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무려 19주째 결방을 참으며 파업에 들어간 <무한도전>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그 마음. 그 마음이 간단히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사실 <무한도전>의 외주화는 현실성이 거의 없다. 물론 물리적으로는 가능하다. 김태호 PD 대신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아마도 김태호 PD가 없는 <무한도전>에 참여하지 않을 MC들을 역시 대체인력으로 채우고 대충 도전이랍시고 흉내 내서 무늬만 <무한도전>으로 꾸려서 방영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무한도전>인가. 그건 아무 것도 아닌 프로그램일 뿐이다.

 

이것은 그간 <무한도전>이 어떻게 성장해왔는가를 생각해보면 간단히 이해되는 일이다. <무한도전>은 대중들과 함께 커왔다. MC들도 <무한도전>을 통해 성장했고, 프로그램도 같은 성장곡선을 그렸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였던 그들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의 최고 연예인들이 되었다.

 

그만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능이라는 틀을 깨고 나와 끝없이 이어진 도전들. 단 몇 분 간의 실력을 보이기 위해 엄청나게 해온 보이지 않는 노력과 준비들. 그들은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전혀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댄스 스포츠를 했고 봅슬레이를 했으며 심지어 프로레슬링을 했다. 때론 다치기도 하고 너무 힘겨워 눈물이 쏟아지면서도 애써 웃으며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왜? 그것이 시청자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이었다. 시청자들은 도전함으로써 조금씩 성장해가는 그들을 보며 위안을 받았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지지는 스스로에 대한 지지이기도 했다. 도전하면 반드시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만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 적어도 그 진심은 전해진다는 전언. <무한도전>의 도전정신은 어찌 보면 그저 포기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던 대중들을 각성시킨 면도 적지 않다.

 

<무한도전>이 걸어온 이 길은 어쩌면 MBC가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걸어왔던 길과도 다르지 않다. 갖은 외압 속에서도 꿋꿋이 할 말을 하는 MBC의 도전정신에 대해 많은 대중들이 지지했고 그래서 MBC는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MBC를 보라. 과연 대중들이 지지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외주로 대충 채워지고 있는 프로그램들에 대해 대중들은 지지를 거두고 있다. <무한도전> 외주화에 대한 생각은 MBC가 현재 걷고 있는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한도전>은 따라서 일개 프로그램 하나가 아니라, 대중들과의 약속이고 대중들이 함께 참여하고 움직이는 유기체 같은 존재다. <무한도전>이 뭔가 도전하면, 대중들은 거기에 맞춰 호응해준다. 심지어 제작진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의미조차 예리한 대중들은 발견하고 부여하며, 프로그램은 그것들을 모두 끌어안는 열린 자세를 유지한다. 이 대중과의 공조는 <무한도전>이 프로그램 그 이상인 이유다.

 

<무한도전>은 방송사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적어도 그 방송사가 대중들과의 공감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래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무한도전>만의 일이 아니다. 그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방송사가 대중들을 무시하고 휘두르기 시작한다면 그 방송사는 존재 의미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한도전>의 파업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는 그래서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MBC의 파업을 생각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무한도전>에 대한 외주화 발언만으로도 일파만파의 공분이 일어나는 것은, 작금의 MBC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정서가 무엇인가를 잘 말해준다. 대중들의 지지가 없는 <무한도전>이 <무한도전>이 아니듯이, 대중들의 공감 없는 방송사도 방송사로서의 기능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한도전> 외주화 발언의 후폭풍은 현재 외주화되고 있는 MBC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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