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국민 예능으로 거듭나고 있을 때, 또 그 여파를 몰아서 '해피선데이'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남자의 자격'이 하모니 특집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때, 그 뒤에서 실질적으로 이 남자들의 예능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 있었다. 프로그램 전면에 나와 있는 이명한 PD나 나영석 PD가 한창 주목을 받을 때, 그들 옆에 앉아 있던 인물. 바로 이우정 작가다. 그녀는 당시 이 두 남성적인 예능의 14명의 남자 MC들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안방마님으로 알려져 있었다. 2008년 KBS 연예대상 쇼 오락부문 방송작가상, 2010년 한국방송작가상 예능 부문을 거머쥐면서 그녀는 예능 작가계에서는 드물게(드물지만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새로운 스타 작가의 탄생을 알렸다.


 

오른쪽부터 이우정,모은설,이현희 작가(사진출처:시사저널)

하지만 업계에는 이처럼 이미 스타 작가로서 자리매김한 이우정 작가였지만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예능의 대세였던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성격상 예능 작가라는 존재는 어딘지 드러나면 안되는 비밀스러운 어떤 것이었으니까. 당시 터졌던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 논란은 리얼 예능에 있어서 그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해 대본의 존재를 숨겨야만 하는 상황이었고(그것이 그저 가이드라인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도), 따라서 대본을 쓰기 마련인 예능 작가도 숨겨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또 달라졌다. 이제 예능에 있어서 대본은 반드시 필요한 가이드라인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고, 예능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대중들의 선망도 생기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예능 작가의 세계. 도대체 이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스타 작가들은 어떻게 그 위치에 오르게 되었을까.


이우정 작가는 무역학과 출신으로 사회의 첫발은 광고 카피라이터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MBC아카데미에서 작가 교육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이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에 방송작가들의 등용문은 MBC아카데미 같은 방송사 산하 교육기관이나 방송작가교육원 같은 곳이 하나의 거쳐 가는 길로 정해져 있었다. 아카데미 같은 교육기관으로 방송사에서 인력을 요청하면, 예비 작가들이 자신의 이력서와 간단한 포트폴리오(대본구성안)를 제출하고 거기서 발탁되면 일을 하는 식이다. 그렇게 이우정 작가는 2000년도에 MBC의 파일럿 프로그램인 '백만 송이 장미'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 세계적인 추세였던 서바이벌 형식을 따와 만든 연예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을 쌓은 이우정 작가는 '21세기 위원회'로 사실상 입봉(?)을 했고, 후에 KBS로 와서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운명(?)적인 두 PD와의 만남을 갖게 된다. 바로 이명한 PD와 나영석 PD다. 그 후로 나영석 PD의 '여걸파이브', '여걸식스' 작업을 했고 후에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으로 우뚝 섰다. 현재는 이명한 PD와 '더 로맨틱'을 하고 있고 또 '남자의 자격'을 함께 했던 신원호 PD와 시트콤 '응답하라 1997'을 준비 중이다.


어찌 보면 이우정 작가의 성공은 좋은 PD를 만났던 것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 예능 작가의 성공이 어떤 PD를 만나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우정 작가의 경우는 어떤 면에서는 PD들을 확실히 뒷받침해줌으로서 오히려 돋보이게 하는 작가로 이름나 있다. 같이 작업을 한 PD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이 한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으로 서슴없이 이우정 작가를 지목하곤 한다. 그만큼 확실한 자기 역량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우정 작가가 주로 리얼 예능쪽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점도 그녀의 성공에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마침 리얼 버라이어티가 예능의 대세로 자리하면서 예능 작가들에게도 새로운 자질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이우정 작가는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예능 작가들이 하는 일이 다르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주로 하는 일이 게임을 개발하는 거였어요. 그게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거의 하는 일이 PD와 비슷해요. 물론 PD의 고유영역이 분명 존재하지만 기획에서부터 심지어 편집에까지 예능 작가가 들어가지 않는 곳은 없죠." 또 리얼 예능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대본을 쓰는 일보다는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일과 후반작업이 더 중요해졌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대본은 분명 존재하지만 대본을 상세하게 쓰거나 아니면 느슨하게 쓰는 것은 작가와 프로그램의 성향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했다.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의 경우 작가들은 대본을 쓰기 보다는 현장을 읽고 발견하는 작업에 더 집중한다고 한다. 예능 작가라고 하면 '작가'라는 타이틀이 의미하듯이 무언가를 집필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리얼화된 예능의 트렌드 속에서 이런 역할은 변화를 겪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리얼 버라이어티 같은 예능이 아니라 토크쇼 같은 주로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예능작가들은 어떨까. 작년 KBS 연예대상 방송작가상 쇼 오락부문을 수상한 '김승우의 승승장구'의 모은설 작가는 이 분야에서 베테랑이다. 96년도에 기자시험을 준비하던 그녀는 선배의 권유로 'TV는 사랑을 싣고'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이 길로 들어섰다. 당시에는 아르바이트였어도 너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이 길을 계속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프로그램 성격 때문에 재연대본(과거 이야기를 재연하는 대본)과 추적대본(실제 과거 인물을 쫓아가는 대본)을 써내는 게 당시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프로그램을 관장하시던 PD분이 바로 개그맨 김준현의 아버지인 김상근씨였는데, 대단한 능력을 가진 워커홀릭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알던 분들이 연결이 되어 그 후로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 '뮤직플러스', '감성채널' 등을 한 후 '비타민'과 '미녀들의 수다'는 기획부터 참여했다고 한다. 여기에도 역시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부터 인연이 된 이기원 PD와 줄곧 같이 작업을 했다고. 그 후로 윤현준 PD와 '상상플러스', '승승장구'를 하게 됐다고 한다.


스튜디오물에 있어서 작업은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예전과 그렇게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즉 과거에도 섭외와 대본 작업이 주였던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토크쇼라면 특히 섭외, 조사, 큐시트 작업이 거의 주라는 것. 하지만 연차가 달라지면서 하는 일은 거의 전방위적인 것이 되었다고 한다. 기획에서부터 편집 자막 작업에까지 관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방송국이 파업을 하는 와중에도 방송이 그나마 나갈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이런 모든 작업에 관여했던 예능작가들이 있기 때문이죠. 방송사에서는 그 작업 자체를 외주를 주겠다는 생각이지만 그렇게 하면 방송 자체가 망가질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예능작가들이 그 편집 작업까지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죠."


사실상 거의 모든 일을 하는 등 전방위에서 뛰어야 하는 고충이 있지만 그래도 예능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과 관계된 것이라 한다. 결국 예능의 핵심은 그 안에 담겨진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토크쇼 같은 경우에는 섭외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데, 모은설 작가는 심지어 쇼에 나오기로 하고 대본 작업도 다 끝났는데 촬영 하루 전에 게스트가 못나오겠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유가 황당했죠. 작업한 대본을 보냈더니 자기 인생이 이렇게 초라한 줄 몰랐다며 이렇게 자신이 비춰지는 게 싫다는 거였어요. 결국 밤새 설득해서 다음 날 촬영을 할 수 있었죠." '안녕하세요'의 이현희 작가는 그래도 연예인들은 준비된 이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는 낫다는 말한다. '안녕하세요'는 일반인들이 게스트로 출연하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그들이 나중에는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모든 걸 다 체크할 수가 있겠어요. 사실 증명서 같은 걸 떼어서 보자고 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현재 tvN에서 일반인들의 러브 리얼리티쇼인 '더 로맨틱'을 하고 있는 이우정 작가 역시 일반인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고 말한다. "프로그램 성격상 그들의 속내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방송으로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점에 있어서 늘 고민을 하게 되죠."


예능작가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그들의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궁금증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예능작가들은 현재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고 있으며 또 이들의 직업은 향후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99년 스크립터로 시작해 2001년 '동물농장'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스펀지', '상상플러스', '미녀들의 수다', '안녕하세요'를 작업해온 이현희 작가는 최근 예능 작가들의 활동 영역이 과거에 비해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주변에도 예능작가출신의 드라마 작가, 시트콤 작가, 뮤지컬 작가까지 다방면에서 예능작가의 영역이 많아지고 있죠." 실제로 예능작가 출신으로 현재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전체 시청률 1위(36%에 육박)를 기록하고 있는 박지은 작가도 예능작가 출신이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작가도 초기에는 '사랑의 스튜디오'의 예능작가를 해던 인물이다. 이현희 작가의 경우 네이버와 합작으로 '환타스틱 어른백서'라는 책을 쓴 적도 있고, '서태지 8집 다큐' 작업을 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된 것은 여러 모로 다양한 분야에서 예능작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우정 작가가 시트콤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예능작가의 영역이 거의 음지에서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에만 국한됐다면 요즘은 범위가 거의 무한대로 넓혀지고 있다는 것. 이렇게 된 것은 예능작가라는 특성상 다방면에 대한 경험이 많다는 점과, 또 늘 대중들과의 공감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 자질로서 중요하게 어필되는 지점이다. 물론 이것은 현재 방송 트렌드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즉 '드림 소사이어티'로 접어들면서 삶의 가치로서 펀(fun)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고, 따라서 모든 콘텐츠가 펀을 지향하는 흐름이 방송에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드라마들은 상당 부분 코미디를 필요로 하고 있고, 대다수의 교양 프로그램들은 이른바 인포테인먼트로 전환되고 있다. 모은설 작가는 이런 변화 때문에 예능작가들의 영역이 점점 넓혀지고 있는 반면, 교양작가들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교양작가들이 했던 것들을 지금은 예능작가들이 하고 있죠. 예를 들어서 '비타민' 같은 경우 이제는 교양이 아니라 예능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점점 교양작가들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예능작가들의 처우는 하는 일에 비한다면 결코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확실히 좋아진 게 사실이고, 그 비전은 앞으로 방송 전체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장밋빛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이 분야에 뛰어든다고 처음부터 이런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 이우정 작가나 모은설 작가 그리고 이현희 작가 모두 '적어도 10년'을 버틸 수 있는 예능에 대한 열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세상과 인간과 사물에 대한 호기심은 필수이고, 사람들과 서슴없이 친근해질 수 있는 친화력도 중요하며, 또 예능이라고 해서 그저 웃고 떠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름의 철학과 생각을 갖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펀 사회로 접어들면서 예능의 시대의 문은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존재들로서 그간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되었던 예능작가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나갈 드림 소사이어티는 어떤 세계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예능작가 얼마나 벌까-------------------------------------------------------
예능작가의 벌이를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마치 연예인들 중에도 A급의 수입과 B급의 수입이 천지차이인 것과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프리랜서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그 능력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의 반향에 따라서 예능작가들의 수입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충의 기본적인 수입의 수준은 분명 존재한다. 보통 처음 들어온 예능작가의 경우에는 주당 30만 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한 주에 한 프로그램을 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10년차 정도가 되면 주당 100만 원 이하의 수입을 벌고, 메인급이라면 100만 원 이상 200만 원 이하의 수입을 번다고 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예능작가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메인급 작가들은 한 주에 한 프로그램만 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두 탕을 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물론 한 편에 집중하는 것만큼의 수입보다는 낮게 책정되지만 두 편을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수입이 많아진다는 것. 이런 기본적인 수입 구조를 통해 볼 때 최고로 잘 나가는 작가들은 연봉 1억을 넘긴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물론 이것은 예능작가의 메인 잡이라고 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버는 수입만을 추산한 것이다. 여기에 때때로 들어오는 강연 수입이나 책 출간으로 생기는 인세수입, 혹은 각종 원고료를 더하면 수입은 더 많아진다. 게다가 시트콤 같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면 수입의 단가가 달라진다. 시트콤은 드라마의 영역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쳐주기 때문이다. 향후 예능작가들의 비전은 아이디어에 대한 저작권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는 방송사와의 문제 같은 풀어야할 여러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법률적인 조항이 생긴다면, 향후 예능작가들은 이른바 '포맷' 장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까지 자신이 만든 포맷과 아이디어를 팔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게 되면 예능작가들처럼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분야의 향후 비전은 훨씬 좋아지게 되는 셈이다.

 

예능대본 과연 어떤 걸까----------------------------------------------------
리얼 예능으로 접어들면서 대본의 존재는 그 자체로 마치 리얼리티가 없는 것처럼 오인되곤 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예능대본은 모든 방송대본이 그러하듯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심지어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나가도 미리 사전 인터뷰를 통해 대본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대부분 현장에서 작업하면 대본대로 가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리얼 예능에서 대본이란 하나의 설계도 같은 것이다. 그 안에 목적이 있고 목표도 있지만 거기에 집착해서는 리얼 예능의 재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예능 작가들은 대본대로 움직이는 방송분량은 사실상 건진 게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프로그램의 경우 PD의 성향이나 프로그램의 성격 상 좀 더 상세한 대본이 만들어지고 실제로 행해지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토크쇼 같은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좀 더 상세한 대본이 만들어진다. 물론 충분한 사전 인터뷰를 통해서다. 이렇게 대본이 충만해야 토크쇼도 다양한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해진다. 예능 작가들은 이처럼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에 따라 보다 상세한 설계도를 만드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예능대본이 반드시 존재하고 또 있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대로 방송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라디오스타>, 차 떼고 포 떼도 괜찮은 이유

김구라의 빈 자리는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라디오스타>가 갖고 있는 특유의 색깔이나 스피드, 분위기가 달라진 건 없었다. 김국진은 여전히 <라디오스타>의 전체 분위기를 정리했고, 윤종신은 게스트들이 던지는 말을 잡아채서 제 멋대로 이리저리 부풀리고 덧붙이면서 재미를 만들었다. 김구라의 멘티(?)로 자리한 규현은 독한 질문을 천연덕스럽게 툭툭 던졌고 유세윤은 특유의 콩트 감각으로 대화 중에 나온 상황을 연기로 재현해내면서 웃음을 만들었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빈 자리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껏 꽤 여러 차례 MC들이 빠져나가는 상황을 겪은 터라 이런 상황에 대한 적응력도 남달랐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꽤 오래 호흡을 맞췄던 신정환이 하차하고 김희철이 군 입대 문제로 빠져나간 후, 규현과 유세윤이 들어와 적응단계에 접어들 때, 김구라가 하차하게 된 상황이었으니까. 무엇보다 김구라는 <라디오스타>의 스타일 그 자체였기 때문에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규현의 말 대로 "너무 잘하면 서운할거다"라는 말은 그저 농담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구라의 빈 자리를 놓고 남은 네 MC가 서로 헤게모니 싸움을 하듯 서로를 견제하고, 그러면서도 김구라가 해왔던 역할, 즉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을 서로 분담하듯 하는 모습은 <라디오스타>가 얼마나 형식적으로나 구성원들로나 견고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아마도 규현의 말 대로 김구라가 봤다면 서운했을 정도로, 이들은 빈 자리를 잘 메워나갔다.

 

게스트로 <슈퍼스타K>의 서인국과 허각, 그리고 <위대한 탄생>의 손진영과 구자명이 같이 출연한 것도 적절했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MBC 출연이 처음이었을 서인국과 허각의 소회도 그렇지만, 이렇게 두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이색적인 조합이었다. 그들은 팽팽한 신경전을 보여줌으로써, 자칫 김구라의 공백이 가져올 수도 있는 <라디오스타>의 느슨함을 허용하지 않았다.

 

손진영은 탁월한 예능감으로 이 대결구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그는 나머지 세 명이 모두 오디션에서 1위를 차지한 이들이라는 사실과 대척점에 서서 '열등감' 운운하며 이들을 쏘아붙였다. 또 허각과 계속 대립각을 세우고, <슈퍼스타K>와 <위대한 탄생>의 비교점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허각을 추종하는 구자명에게는 "너마저도..."하는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조금은 독할 수도 있는 이런 멘트들이 손진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하자 구수하고 순수한 느낌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손진영이라는 새로운 예능감의 발견은 그 동안 수없이 차 떼고 포 떼면서도 굴하지 않고 달려온 <라디오스타>가 여전히 그 동력을 잃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라디오스타>는 그 특유의 몰아붙이는 분위기 속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게스트의 예능감이 발견되는 지점에서 가장 빛나는 토크쇼가 아닌가.

 

김구라의 미니어처를 규현이 꺼내놓을 정도로 여전히 김구라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중간에 전화 연결로 김태원이 말한 '용서'의 의미가 짠하게 다가온 것도 그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렇게 비어있는 자리가 있어도 여전히 팽팽 돌아가는 저력, 이것이 밟으면 밟을수록 더 잘 자라는 잡초 같은 예능, <라디오스타>만의 매력이 아닐까.

<정글2>, 무엇이 그토록 끈끈한 가족애를 만들었나

 

<정글의 법칙2>에서 리키 김은 앞뒤 재지 않고 옷을 벗고는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이어 김병만과 추성훈도 그 뒤를 따랐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그 장면은 마치 <어벤저스>의 슈퍼히어로들이 출동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모든 걸 완벽하게 계산했고 준비했지만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자연 앞에서는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지원 PD를 포함한 스텝들은 갑자기 덮친 파도에 배가 전복되었고 조류에 휩쓸리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그 때 상황에 대해 이지원 PD는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파도에 휩쓸렸다는 그 사실 때문이 아니라 연기자들이 일제히 자신들을 구하겠다고 바닷물로 뛰어들었다는 그 사실이 두고 두고 그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는 것. "사실 직업적으로 보면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잖아요. 화면 안에서. 그런데 연기자들이 제 가족이 당한 것처럼 물속으로 뛰어드는 걸 보고는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었죠." 실제로 리키 김은 그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딱 그 순간에 친한 형, 친한 누나, 친한 사람들... 내 가족들 배 가라앉았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들어갔어요. 저도 모르게 제 몸이 먼저 갔어요."

 

무사히 배 위로 구조된 이지원 PD는 또한 먼저 연기자들과 스텝부터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배가 전복되면서 배와 바닥의 산호 사이에 깔려 오른쪽 팔이 쓸리면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것조차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노우진이 그 피가 흐르는 팔을 가리키며 어떻게 하냐고 하자, 이지원 PD는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냐" 하고 말했다. 가족 같은 연기자들과 스텝들의 안전이 우선이었던 것.

 

제작진과 연기자라는 직업적인 경계를 뛰어넘어 끈끈한 가족애를 보여줬던 장면들은 이미 활화산 야수르를 등정하면서도 드러난 적이 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제작진들과 연기자들이 흩어지게 되었을 때, 리키 김은 거꾸로 제작진을 찾아 나섰다. 결국 후발대 제작진과 연기자들이 만나게 되고 함께 정상의 선발대를 향해 갈 수 있게 되었던 것.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이 <정글의 법칙2>라는 프로그램 속에서 연기자들과 제작진들 사이에 놓여진 끈끈한 관계를 실감케 해주는 장면이었다.

 

당연하게도 연기자들과 제작진들마저 그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하는 이유는 그 곳이 생존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할은 구분되어 있지만, 급박한 상황이 되면 그 역할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이지원 PD는 이 '가족적인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스텝들은 뭐라 하지 않아도 모두 한 몸처럼 제 할 일을 알고 있고, 연기자들 역시 뭘 해야 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어서 말 그대로 척하면 착하는 그런 관계죠."

 

이 가족적인 분위기는 실제로 <정글의 법칙2>만의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무 것도 없는 오지의 환경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가족애는 더 깊어진다. 시즌1에서 리키 김과 김병만이 초기에는 의견 충돌을 일으키다가 끝에는 마치 생사고락을 함께 한 형제 같은 관계가 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은 시즌2에서 김병만과 추성훈 사이에 초반 살짝 보였던 팽팽한 긴장감이 차츰 가족적인 분위기로 바뀌는 것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정글의 법칙>은 감히 도전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자연 앞에서 도전이란 자칫 무모한 일이 될 수 있죠. 자연과 대결을 벌이는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것이 <정글의 법칙>이죠." 결국 이런 환경 속에서 가족애는 더 중요할 수 있다. 정글이라는 상황에서 여성 출연자인 박시은의 존재는 그런 점에서 중요하다. 여성성이 갖는 힘은 우리가 가족 내에서 늘 느끼듯이 그 어떤 물리적인 힘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정글에 간다고 힘쓰는 마초들만 간다면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요?" 이지원 PD는 이렇게 되물었다.

 

<정글의 법칙2>는 그래서 정글이라는 오지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 안에서 가족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마도 극한의 상황에서라면 우리가 늘 편해서 의식하지 못했던 가족의 소중함을 더더욱 느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지원 PD는 "그 곳에 있으면 이 곳의 모든 것들이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더라구요" 하고 말하며 웃었다. 그의 왼팔에는 가족 같은 팀원들의 따뜻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산호에 긁힌 상처가 훈장처럼 남아 있었다.

<나가수2>, 일주일동안 무슨 일이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가수다2(이하 나가수2)>의 두 번째 생방송은 첫 번째 그것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첫 번째 생방송이 너무나 어수선하고 생방송이라는 부담감이 지나치게 프로그램을 짓눌렀었다면, 두 번째 생방송은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은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진행은 매끄러웠고, 출연자들은 훨씬 담담해졌다. 당연히 무대도 안정감이 있었다. 과도한 부담감이 음악 자체를 질식시킨 듯했던 첫 번째 생방송과는 달리, 두 번째 생방송은 그래서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가수>가 가진 본 모습을 비로소 찾은 느낌.

 

 

'나는 가수다2'(사진출처:MBC)

파격적으로 인피니트의 '내꺼 하자'를 선곡한 박상민은 특유의 걸쭉한 창법으로 아이돌과는 또 다른 흥겨운 무대를 선보였고, 조덕배의 '꿈에'를 부른 정엽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가성 창법으로 노래가 담은 감성을 제대로 전해주었다. 박완규는 박인수의 '봄비'를 절규하듯 토해내 그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가 전하는 진한 울림을 느끼게 해주었고, 발라드의 신 김연우는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담담하지만 단단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고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른 김건모는 특유의 편안함으로 노래 자체가 주는 감동을 잘 전달해주었고,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를 부른 정인 역시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개성 있는 무대를 연출해주었다.

 

선곡에 있어서 록에서 발라드까지 장르도 다양했고, 그것이 단지 고음 지르기 같은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은 점도 좋았다. 다소 잔잔하게 부른 김건모가 상위권에 들어간 것은 <나가수2>의 무대가 좀 더 다양한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나가수>에서 가장 불편한 지점은 바로 '가창력 뽐내기'식의 경연으로 치닫는 상황일 것이다. 노래를 잘 한다고 뽐내는 식으로 흘러가게 되면, 자칫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이 소외될 때가 생긴다. 관객들과 노래를 통해 소통하고 소소하지만 그 작은 소통이 주는 감동을 전할 때 <나가수>는 비로소 제목에 걸맞게 가수라는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셈이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나가수2>의 두 번째 생방송은 첫 번째 생방송이 보여준 불안감을 상당부분 떨쳐 내주는 무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결국 경연이라는 서바이벌의 지점을 상당 부분 지워낸 데서 온 결과이다. 역시 경연은 MC들의 진행에 따라 분위기가 좌우될 수 있다. 이은미는 그런 점에서 <나가수2>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진행은 첫 생방송보다 더 안정적이었고, 가수들의 노래 한 곡 한 곡에 저마다의 의미를 더해주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또 노홍철도 특유의 긍정적인 분위기로 프로그램에 활력을 더해주었다. 다만 박명수의 조금은 과도해 보이는 질문들은 무대를 준비하는(오르기 전부터 감정몰입을 하는) 가수들과는 조금 어색한 지점이 있다. 특히 "긴장했냐?"고 자꾸 부추기는 듯한 질문은 가수들을 진짜 긴장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나가수2>는 결국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MC들의 역할도 그것을 어떻게 하면 최대치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시청률은 첫 번째 생방송보다 조금 떨어졌지만, 그것이 두 번째 생방송이 첫 번째 것보다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두 번째 생방송은 <나가수2>의 가능성을 보게 해준 무대였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가수의 정체성이란 다양한 노래들이 갖고 있는 감동적인 요소들을 대중들에게 최대치로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경연과 생방송의 부담감이 그것을 해주지 못한다면, 이런 장치들은 본래 목적과는 달리 음악 자체를 질식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가수의 정체성은 그저 '노래 잘 한다'는 것이 아니라(그래서 1등을 했다는 둥), 듣는 이들과 음악적인 소통을 제대로 해낸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결국은 음악이다. <나가수2> 두 번째 생방송이 보여준 가능성은 그것을 다시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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