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보다 공존의 의미를 더한 수펄스

 

우리에게 수펄스는 어떤 의미였을까. 'K팝스타'라는 서바이벌 오디션 현장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 네 명의 존재는 우리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사실 경쟁자들이 아닌가. 누군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떨어지는. 하지만 경쟁이 무색하게도 네 명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하모니는 그 어느 각각의 소리보다 더 아름다웠다. 'K팝스타'라는 최후의 1인을 뽑는 오디션에서 대중들이 수펄스의 무대를 그토록 원했던 것은 그것이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상기시키면서 하나의 염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쟁사회라고 하더라도 그 위에 피어나는 공존의 하모니를.

 

 

'수펄스'(사진출처:SBS)

공식적으로 이승주와 이정미의 YG행이 결정되었을 때, 수펄스는 <서울디지털포럼 2012>라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 행사의 올해 주제가 '공존'이라는 것과 관계가 있다. 공존(coexistence). 기술의 발전과 그럼으로써 커진 산업에 대한 관심을 이제는 이런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 함께 공존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해보는 시간. 수펄스는 그 자체로 충분히 공존의 의미를 더해주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수펄스의 맏언니인 이미셸은 인터뷰를 통해 "수펄스는 가족이다. 'K팝스타'에서 가장 감사한 것이 수펄스를 만난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K팝스타'의 경험에 대해서 "경쟁 구도 속에서 내가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식만 가지고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많이 배울 수 있고 공존하는 모습이 많이 있었던 거 같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일찍 떨어진 이승주와 이정미에게 오디션 최종전까지 올라간 박지민이나 이미셸을 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냐고 묻자, 그녀들은 이구동성으로 "응원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행사 말미에 그들은 'Fame'을 불렀다. 네 목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 절정의 하모니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연사들과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오디션은 끝났지만 수펄스는 여전히 존재했다. 대중들이 그들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YG의 공식적인 발표는 수펄스의 부활을 공식화한 것이었다. 이미셸과 이승주, 이정미는 한껏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한 얼굴이었다. 이미 JYP행이 결정된 박지민 역시 아쉬운 한편 진심으로 그들의 YG행과 수펄스의 부활을 축하해주었다.

 

최근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리얼리티쇼 같은 서바이벌 콘텐츠들이 봇물을 이루면서 서바이벌과 경쟁은 하나의 트렌드가 된 양상이다.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 서바이벌과 경쟁적인 요소가 이들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을 낳은 것은 아니었다는 게 분명하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경쟁적인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현실 속에서도 드러나는 공존의 감동적인 광경이었을 것이다. 서바이벌의 자극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공감의 감동이었던 것.

 

서바이벌의 현실 문제를 환기시키며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허각도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 존박과의 우정이 있었고, 합숙생활에서의 맏형 같은 모습이 있었다. '나는 가수다1'에서 논란이 되었던 김건모의 재도전은 그만큼 선후배 사이의 관계가 끈끈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나는 가수다2'가 살풍경한 생방송을 선택하면서 경쟁적인 분위기를 얻었지만 결국 잃은 것은 어쩌면 이러한 관계의 끈끈함을 포착할 여유가 아니었을까. '정글의 법칙' 같은 극단의 공간에 가서도 우리가 찾는 것은 결국 가족적인 분위기다. 서바이벌? 그것은 성공요인의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지긋지긋한 경쟁사회에서 그것을 재현하는 듯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서, 거기서마저 경쟁만을 보고 싶은 시청자는 없을 것이다. 경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하모니와 공존의 모습. 어쩌면 이것이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나 극한의 리얼리티의 공간을 찾아가는 프로그램들의 진짜 성공 요인이 아니었을까.

 

우리에게 수펄스는 절정의 가창력을 가진 누군가의 독주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음을 맞춰나가려는 그 하모니로 다가온다. 특유의 고음이 매력적인 박지민은 "독창으로 가창력을 뽐내는 것보다 전체가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재밌다"고 말했다. 그것이 자신의 가창력을 스스로 낮춰야 할지라도.

응원하고 싶지만 응원할 수 없는 <탑밴드2>의 문제

 

<탑밴드2>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간 홀대받았던 밴드들이 지상파에 대거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환영받을 만하다고 여긴다. 실제로 방송 출연은 없었지만 밴드 활동 그 자체만으로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팀들이 <탑밴드2>에 대거 참가했다. 피아, 트랜스 픽션, 슈퍼키드, 몽니, 네미시스, 내 귀에 도청장치, 프리다칼로, 예리밴드 등등. 한 팀 한 팀의 면면을 보면 이것이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탑밴드'(사진출처:KBS)

<탑밴드>에 대한 지지는 시즌1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시즌2가 가능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이 대중들의 지지 덕분이었다. 공영방송으로서 소외된 밴드 문화를 소개한다는 그 명분이 좋았고, 참가하는 밴드들이 만들어낸 화제도 풍성했다. 그래서 시즌2는 제작진들에게 숙제를 남겼다. 지지율만큼 시청률이 따라오게 해줘야 한다는 것. 그래서 '악마의 편집'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던 밴드들이라는 훌륭한 자원들과, 밴드 문화를 살린다는 좋은 명분, 심지어 '악마의 편집'을 한다고 해도 공감해주는 지지도까지, <톱밴드2>는 거의 모든 걸 갖춘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시청률 2%대. 기대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먼저 '악마의 편집'을 내세웠던 그 연출이 얼마나 주효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제작진 말대로 '악마의 편집'이 갖는 빠른 화면 전개나 좀 더 자극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연출은 효과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악마의 편집'이 과연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는지는 미지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악마의 편집이란 그저 자극적인 상황 자체만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편집을 통해 거기 참가하는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만들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탑밴드2>의 악마의 편집은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인 출연자들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에서 주로 벌어졌다.

 

트리플 토너먼트를 하는 과정에서 신대철과 김경호의 대립이 두드러졌다. 사전 기자간담회를 통해서 김광필EP는 심사 중 심사위원이 뛰쳐나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대립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거기 참가한 밴드들이 너무나 출중해서 누구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악마의 편집은 시선을 밴드들이 아니라 심사위원쪽으로 집중하게 만든다. 좀 더 밴드들을 부각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편집으로서의 '악마의 편집'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밴드에 열광하는 마니아층이 아닌 일반 시청자들에게 여전히 밴드 문화란 낯설다는 점이다. 즉 <탑밴드>의 존재의의는 마니아층들만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밴드 문화의 저변을 알린다는데 있다. 하지만 <탑밴드2>의 '거두절미하고 토너먼트로' 이어지는 연출방식은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밴드 마니아들에게 피아라는 존재는 출연 그 자체만으로 흥분되는 일이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저 오디션 참가자의 하나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피아 같은 좋은 밴드의 필모그라피를 좀 더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알려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사실 밴드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그다지 쉬운 것은 아니다. 밴드 음악을 이해하고 제대로 감상하려면 각 악기들이 내는 소리의 특장점이나 주법 같은 것들을 알아야 하고, 또 그 어우러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탑밴드> 같은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이 밴드 문화를 제대로 이해시키려면,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교육적인 차원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었다. 예를 들어 유명한 베이스 주자 하나를 데려다놓고 베이스 기타가 갖는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면, 대중들은 밴드 오디션에서 베이스가 갖는 힘을 제대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모든 오디션이 다 그렇지만, <탑밴드2> 역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디션이 주는 서바이벌 그 자체보다 음악이 주는 감동이 우선해야 한다. 오디션은 결국 이 밴드 음악을 더 집중해서 듣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일 뿐이 아닌가. '악마의 편집'도 좋지만 우선 밴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대중들을 선도하는 편집적인 장치들이 필요하다.

 

이 교육적인 장치(?)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건 결국 심사위원들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은 마치 참가자들의 음악을 듣고 심사하는 일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중들에게 그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하는 포인트를 일러주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탑밴드2>에서의 심사위원들은 감상 포인트를 알려주기보다는 자신들의 밴드 성향을 드러내고 부딪치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시청률이 고작 2%에 불과하고, 프로그램이 효과적으로 제작되지 않았다고 해도 여전히 <탑밴드2>에 대한 지지율은 높다. 이유는 첫 회에 출연해 '봉숙이'를 부른 후 단박에 화제에 오른 장미여관 같은 팀에서 찾아질 수 있다. 지지율은 다름 아닌 밴드들이 스스로 내뿜고 있는 매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대중들은 이 매력적인 밴드들을 응원하고 싶다. 이것은 프로그램이 2%의 시청률이라도 고무적인 일이다. 그 매력을 부가시킬 수 있는 오디션 방식이나 편집방식 혹은 심사방식을 고민해야 할 때다.

허각, 버스커, 울랄라까지 대중문화 장악한 <슈퍼스타K>

 

<불후의 명곡2>의 첫무대에 오른 울랄라세션은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보여주었다. 박지윤이 불렀던 '성인식'을 흥겨운 퍼포먼스와 절정의 하모니로 보여준 무대에 선배 가수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홍경민은 '멘탈 붕괴'의 느낌을 받았다며 바로 다음 무대에 서지 않기를 기원하는 모습이었고, 이런 분위기는 거기 있는 모든 가수들의 공통된 느낌이었다.

 

 

'불후의 명곡2'(사진출처:KBS)

<슈퍼스타K3>의 우승자이지만 가요계로 보면 이제 첫 발을 내딛는 신인일 뿐인 이들을 보는 관객과 가수들의 시선은 남달랐다. 마치 슈퍼스타가 <불후의 명곡2>라는 무대에 드디어 입성한 것을 반기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울랄라세션의 지상파 첫무대는 그 어느 신인의 무대보다 파괴력이 넘치는 것이었다.

 

허각이 <불후의 명곡2>에 처음 등장했을 때도 반응은 비슷했다. 절정의 감성적인 목소리는 관객들을 빠져들게 만들었고, 선배 가수들 역시 그런 허각을 신인 그 이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한편 방송 출연은 거의 하지 않고 있지만, 음원 차트로 돌풍을 일으킨 버스커 버스커는 또 어떤가. 봄날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면, 또는 혹 여수 밤바다를 거닐게 될 때면 아마도 이제 우리는 버스커 버스커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음악이 가요계 전체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대중문화 전반에 <슈퍼스타K>가 배출한 가수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케이블 오디션 출신으로 어려웠던 지상파 방송 출연의 금기가 깨지면서 그동안 억눌려 있던 기운이 폭발했다고나 할까. 그들은 지금 가요 프로그램, 가요 차트,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심지어 드라마에서도 맹활약 하고 있다.

 

<슈퍼스타K> 시즌1의 우승자인 서인국은 <사랑비>를 통해 연기자로서도 꽤 괜찮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본래 4회 출연하고 빠질 예정이던 서인국은 감독의 권유에 의해 지금도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최근 <슈퍼스타K> 출신 가수 중 처음으로 MBC <라디오스타>에 허각과 함께 출연했다. 이것은 지금껏 KBS가 홀로 열어놓았던 이들의 무대에 MBC도 동참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사실 이들의 문호를 제일 먼저 활짝 연 것은 KBS다. KBS는 <뮤직뱅크>에 허각과 존박, 장재인을 세웠고, <불후의 명곡2>에 허각에 이어 울랄라세션을 세웠다. 울랄라세션은 토요일 저녁 토크쇼인 <두드림>에도 출연해 그들의 독특한 음악세계는 물론이고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까지 드러냈다. 고정 출연 무대에서 토크쇼까지, 본격적인 지상파 활동을 선언한 셈이다.

 

그간 <슈퍼스타K>의 아킬레스건은 케이블 오디션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지상파 출연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아마도 이런 편견은 이제 깨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슈퍼스타K> 출신 가수들의 지상파와 가요계 활동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나오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사이익까지 얻고 있다. 대중들은 지상파에 나온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열광을 보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열광은 그저 지나가는 한 순간의 열기가 아니다. <슈퍼스타K> 출신 가수들만이 갖고 있는 그 헝그리하고 독특한 느낌은 기성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버스커 버스커와 울랄라세션 같은 아티스트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가수들은 역시 <슈퍼스타K>가 오디션의 슈퍼 갑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지상파 출연을 본격화한 <슈퍼스타K> 출신 가수들의 맹활약은 결국 <슈퍼스타K>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으로 다시 이어진다.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온 오디션 프로그램의 피로감 속에서도 진정한 슈퍼스타의 출연을 목도한 대중들에게 <슈퍼스타K>는 남다르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슈퍼스타K4>는 또 어떤 슈퍼스타들을 배출해낼 것인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름 건 토크쇼, 왜 잘 안될까

<고쇼>의 시청률을 갖고 벌써부터 난리들이다. 프로그램에서 시청률은 여러 가지 이유로 떨어질 수도 있고 올라갈 수도 있다. 나들이가 많아지는 봄철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작용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너무 많아진 토크쇼들로 인해 토크쇼 자체에 대한 매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또 이렇다 보니 생겨난 높아진 게스트 의존도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잘 나가는 <힐링캠프>도 게스트에 따라 어떨 때는 12% 이상의 시청률을 내다가도 단번에 7,8% 대의 시청률로 떨어지기도 했다.

 

 

'고쇼'(사진출처:SBS)

그러니 시청률 등락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시청률과 상관없이 <고쇼>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고쇼>는 그 이름으로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그 순간부터 어쩌면 어려운 길을 자초한 면이 있다. 본래 특정 인물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는 그만큼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인지도 있는 유명인이 MC로 자리한다는 것은 물론 큰 장점이지만, 그것을 간판에 버젓이 내거는 건 다른 문제다.

 

이것은 토크쇼에서 대중들이 어디를 먼저 집중하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고쇼>를 예로 들어 얘기하면, 이 토크쇼가 고현정쇼로 인식되는 점 때문에 대중들의 시선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먼저 고현정이 토크쇼를 한다고 하니 얼마나 잘 하나 보자는 대중들의 시선이 있다. 그렇게 고현정에게 집중된 시선은 고현정 당사자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제 아무리 편안하게 진행해보자 마음먹어도 그녀에게 떨어지는 다양한 시각들을 모두 받아들이는 건 정말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고현정으로 분산되는 시선 때문에 정작 주목되어야 할 그날의 게스트에 대한 집중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 점은 치명적이다. 토크쇼는 기본적으로 MC라는 상수와 게스트라는 변수로 유지되는데, 변수에 대한 주목도가 사라지면 토크쇼는 매번 그게 그거인 비슷한 것으로 인지될 수밖에 없다. 결국 토크쇼라는 정체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박중훈쇼>나 <주병진 토크콘서트>가 모두 힘겨웠던 것은 물론 그 토크쇼들이 작금의 대중들의 화법을 따라가지 못한 점이 가장 크지만, 근본적으로는 거기에 이름을 걸었을 때 생겨나는 MC와 게스트로 분산되는 집중력이 작용한 탓이기도 하다. 결국 토크쇼에는 자기 이름을 걸 때 그만큼 불리한 지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을 빗겨나간 지혜로운 토크쇼들도 있다. 예를 들어 <강심장>은 누가 봐도 강호동을 전면에 내세운 쇼였지만, 제작진은 한사코 강호동쇼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김승우의 승승장구>도 처음에는 김승우를 전면에 세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자 <승승장구>라고 이름을 바꾼 후 김승우를 MC들 중 한 명으로 위치시켰다. 어느 정도 부담감이 사라진 현재 김승우는 <승승장구>에서 과거와는 확실히 나아진 토크쇼 진행을 선보이고 있다. <무릎팍 도사>도 결국은 강호동 혼자 했던 것이지만 강호동쇼라 지칭하지 않았고 캐릭터를 사용했다. 이것은 사실상 유재석이 모든 걸 이끌고 있는 <놀러와>나 <해피투게더>도 마찬가지다.

 

실제적으로는 토크쇼 전체를 이끄는 MC라고 하더라도 그의 이름을 내걸지 않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것은 단지 이름을 거는 문제가 아니다. <무릎팍 도사>를 굳이 강호동쇼라고 했을 때는 강호동이 뭔가 보여줘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하지만 <무릎팍 도사>로 세우면 그의 역할이 달라진다. 그는 그를 찾아온 게스트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게스트를 중심에 세워두고 자신은 살짝 비껴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쇼>의 문제는 고현정에 너무 집중된 시선에서 생겨난다. 결국 토크쇼의 주인은 MC가 아니라 게스트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고현정이 주인이라도 그녀의 역할은 게스트의 이야기를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스스로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토크쇼라는 형식에서 심지어 자신이 중심이라도 MC가 해야될 역할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고쇼>는 토크쇼 본질에 가깝게 고현정의 역할을 다시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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