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2>의 박명수, <불후2>의 전현무

 

<나는 가수다2>의 박명수와 <불후의 명곡2>의 전현무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기성가수들이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MC라는 것이고, 안타깝게도 어느 정도 정착되어가고 있는 이 두 프로그램에서 유일하게 비판받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또한 내외적인 문제들과 겹쳐서 심지어 '위기'라는 얘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도 비슷한 점이다. 박명수는 그의 캐릭터의 근간을 세워주고 있는 <무한도전>이 장기 결방하면서 힘겨워졌고, 전현무는 초반 밉상 캐릭터가 캐릭터에 머물지 않고 비호감으로 돌아서고 있다는데서 어려워졌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박명수와 전현무는 모두 네거티브 이미지를 쓰는 예능인들이다. 박명수는 특유의 버럭 캐릭터를 구축하고 나이나 성별을 넘어서 전천후로 공격하는 특유의 개그 스타일을 갖고 있다. 전현무 역시 깐족을 넘어서 밉상 캐릭터를 통해 이른바 '미운 짓'으로 웃음을 주는 스타일이다. 네거티브 방식을 쓰는 개그는 그것이 캐릭터로 포장될 때 용인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실제 진심이라면(진심처럼 느껴진다면) 그 개그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박명수의 이 네거티브를 중화시켜주고 그것을 캐릭터화 해주는 존재는 유재석이다. 그래서 박명수는 유재석과 함께 콤비를 맞출 때 최고의 기량을 보여준다. <무한도전>은 그런 점에서 박명수에게는 캐릭터 이미지의 텃밭과 같은 곳이다, 이 곳에서 생겨난 캐릭터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프로그램에서의 공격형 개그 역시 그의 독특한 캐릭터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최근 <무한도전> 장기 결방은 박명수의 이런 중화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아버렸다.

 

그런 그에게 <나는 가수다2>의 MC는 더 무거운 짐을 얹은 셈이다. 박명수가 버럭 캐릭터를 유지하려면 그것을 상대방이 받아주어야 하는데, 알다시피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수들은 그런 여유가 없다. 그들이 오로지 생각하는 건 최고의 무대를 선사하기 위해 자신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박명수가 툭툭 던지는 공격형 멘트는 호응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그렇게 뚝뚝 멘트가 끊기기 시작하면 토크는 썰렁해진다. 당연히 진행은 덜컥거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박명수의 이미지가 배려 없는 캐릭터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특성 상 가수들이 최대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당연할 텐데, 박명수가 툭툭 던지는 멘트들은 몰입을 방해하는 인상을 준다(실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시청자들에게 느껴진다는 얘기다). 결국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에서 박명수는 도움을 주기보다는 방해꾼의 이미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방해꾼의 이미지는 <불후의 명곡2>의 전현무도 마찬가지다. 김구라가 잠정 은퇴한 그 빈 자리를 채우게 된 전현무는 출연한 가수들이나 음악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이야기를 툭툭 던지거나, 난데없는 자신의 개인기를 선보임으로써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연출한다. 즉 이 대기실에서 주목되어야 할 이들은 가수들이어야 하는데, 전현무 스스로 자신을 주목시켜려 노력하는 인상을 만든다는 점이다.

 

이것은 김구라가 하는 방식과는 정반대라는 점에서 전현무에게 더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김구라는 토크쇼 같은 데서 개인기를 선보이는 MC들(여기에는 박명수도 들어있다)에게 "왜 그런 짓을 하는 지 모르겠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MC는 오로지 게스트와의 관계에서만 존재해야지 스스로 자신을 부각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당연한 얘기다. 음악 프로그램에서는 가수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을 돋보이게 하고 그날의 노래를 더 기대하게 하는 방식으로 토크가 이어져야지 당장 개인기로 자신이 웃기려는 건 프로그램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가수다2>의 박명수나 <불후의 명곡2>의 전현무, 두 사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말하는 입이 아니라 듣는 귀다. 자신의 멘트를 조금 더 하려는 욕심보다 게스트를 돋보이게 해주는 배려의 마음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이 두 프로그램에서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박명수나 전현무가 제 위치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치고 들어가는 공격형 멘트나 깐죽댐으로서 웃음을 주는 밉상 짓과 함께, 때론 진심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1박>, 당장의 웃음보다 중요한 것은

 

'이게 진짜 뭐하는 건지...' <1박2일>이 인제로 떠난 예능인 단합대회에서 코끼리코를 열 번 돌고 바늘에 실을 꿰는 예능올림픽(?)을 이수근이 할 때 깔리는 자막. '예능인 단합대회'라는 기치를 내건 것처럼, <1박2일>은 아예 대놓고 몸 개그로 웃음을 만들어보겠다 작정했다. '이게 뭐하는 건지' 하는 자막에는 웃음을 주기 위해 이런 짓까지 하고 있다는 '노력'의 의미와, 이런 짓까지 해야 한다는 '자조'의 의미가 섞여 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실제로 이런 대놓고 하는 몸 개그가 웃기긴 하다. 뭐 그다지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저 무너지는 출연자들을 보며 웃기만 하면 되니까. 어지럼증에 몸을 비틀대면서도 열심히 바늘을 꿰려는 이수근의 모습이나, 아예 바늘을 찾지 못하는 김종민의 모습은 우습다. 뒤로 삼단 뛰기, 손에 신발을 꿰고 손으로 제기를 차면서 발을 동시에 들어 올리는 예능 제기차기도 모두 재밌다. 하지만 어딘지 부족하다. 한참 웃긴 웃었는데 별로 남지가 않는다.

 

의미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 웃음이 맥락이 되어 그 날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스토리라인이 없다는 얘기고, 또 그런 스토리 속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캐릭터가 없다는 얘기다. 캐릭터와 스토리가 생기지 않는 게임은 반복되면 질릴 수밖에 없다. 당장의 웃음의 허기는 채울 수 있지만, 앞으로의 지속적인 웃음 텃밭을 만드는 데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많은 게임의 덫에 걸려버린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이 바로 당장의 웃음의 허기를 채우려다 결국 무너져 내렸다. '패밀리가 떴다'는 그 형식의 특징 상 게임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시즌1이 꽤 괜찮은 흐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유재석이라는 발군의 캐릭터 발굴 MC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즌2에 와서 그 중심이 사라져버리자 캐릭터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러자 스토리 없는 게임만 반복됐다. 결국 종영되고 말았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괜찮은 소재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였다. 초반 캐릭터가 잡혀나가는 단계는 그 어느 예능 프로그램보다 그 뛰어난 성장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야구경기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스토리가 점점 사라졌다. 결국 예상보다 일찍 종영되었다. '청춘불패'는 시즌1에서 꽤 괜찮은 호응을 얻어냈다. 한 시골마을에 정착하면서 그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가는 스토리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즌2에 와서 점점 추락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시골 이야기는 없고 시골 게임 버라이어티가 되어가는 중이다. 위험한 상황이다. '청춘불패' 시즌2는 재미뿐만 아니라 명분도 잃었다.

 

그렇다면 <1박2일> 시즌1의 게임은 뭐가 달랐을까. 먼저 시즌1은 게임을 하는 이유부터가 자연스러운 스토리 위에 놓여 지기 마련이었다. 그저 자 이제부터 게임합시다, 하고 모여 게임을 하는 인위적인 상황이 아니고, 먼저 게임을 하게 되는 동기를 만들어낸다. 강호동이 나영석 PD와 팽팽한 대결구도를 갖는 것은 이 스토리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함이다. 제작진의 압제(?)에 한번 이겨보자는 연기자들의 의기투합이 이어지고 나면 게임은 그 맥락 위에서 보이게 된다.

 

경기 자체나 결과가 뭐가 중요할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경기의 흐름에 따라 생겨나는 캐릭터와 이야기들이다. 족구 경기를 하나 해도(심지어 그게 저질이라도) 시즌1에서 더 주목도가 높았던 건 단지 복불복이란 설정 때문이 아니다. 그 게임을 하면서 계속 제작진과 연기자들 사이에 쌓여진 스토리가 전제되기 때문에 게임은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을 수 있었다. 이것은 시즌2의 '예능인 단합대회'가 보여준 게임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게임 하나를 하더라도 인위적인 느낌이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려면 누군가 이를 촉발할 수 있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악역'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1박2일> 시즌1에서는 강호동이 그 역할을 했고, 또 때로는 나영석 PD가 그 역할을 했다. 강호동이 짜증을 내고, 나영석 PD가 얄미울 정도로 "땡!"을 외칠 때, 게임은 그저 게임이 아니라 그 안에 스토리를 갖게 되었다.

 

결국 <1박2일> 시즌2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악역을 자처할 캐릭터다. 그것이 연기자들이든 아니면 제작진이든 누군가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미션 구조로 되어 있는 이 버라이어티쇼의 이야기 흐름이 자연스러워진다. 이게 없으면 그저 해야 하는 게임을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또 게임을 하더라도 게임 자체의 결과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끊임없이 캐릭터를 뽑아내는 자세가 요구된다. 예능인 단합대회에서 연기자와 제작진이 한 족구대회가 밋밋했던 것은 이 자세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족구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건 경기를 한 연기자나 제작진보다 오히려 본래 심판 캐릭터(?)를 갖고 있던 조명감독이었다.

 

<1박2일>은 시즌2에 들어와 안타깝게도 많은 외적인 악재를 겪었다. 그러면서 시청률도 뚝 떨어졌다. 최재형 PD는 인터뷰를 통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피력했다. 그간은 뭐든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뭐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 하지만 뭐든 하는 것이 게임 같은 보다 편한 웃음 만들기가 돼서는 안 된다. <1박2일>만이 가진 여행의 묘미를 제대로 가져올 수 있는 스토리를 발굴해야 되고, 게임에서도 게임 자체보다는 캐릭터에 몰두해야 한다. 당장의 웃음보다 장기적인 관점의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야 <1박2일>은 본래의 궤도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가수2> 새롭고 젊어져야 산다

 

<나는 가수다2(이하 나가수2)>에 첫 출연한 국카스텐이 쟁쟁한 선배 가수들과의 경연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실 순위가 가창력이나 음악성을 말해주는 건 아니다. 다만 청중들과 시청자들이 지금 <나가수2>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는 말해준다. 그것은 선배들을 챙겨주는 예우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래 좀 한다고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가 "나 나가수 출신 가수야"하는 거들먹거림도 아니다.

 

 

'나가수2'(사진출처:MBC)

물론 <나가수2>의 가수들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이 가수들을 대하는 과도한 시선이(심지어 신들 운운하는) 그들을 좀체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나가수>의 존재증명은 음악과 관객들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지, 스스로 권위를 세운 프로그램에 의해 생겨나는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국카스텐의 등장은 <나가수>가 스스로 세워놓고 버거워한 권위를 상당 부분 깼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미 밴드 음악을 즐겨듣는 애호가들에게 국카스텐의 미친 존재감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현재 <나가수2>에 출연하고 있는 다른 가수들에 비해 한참 후배다. 게다가 방송 경험도 일천하다(물론 무대경험은 다르지만). 그런데 그들이 무대에 서자 기존 틀에 박힌 모습을 보여주던 <나가수>의 무대가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가수들이 여전히 <나가수>표(?)의 편곡과 음악을 보여주고 있었던 반면, 국카스텐은 확실히 기존 <나가수>와는 다른 창의적이고 신선한 면모가 도드라졌다.

 

청중과 시청자들, 심지어는 함께 출연한 선배가수들까지 모두 국카스텐의 그 도발에 신선한 충격을 느끼며 반가워했던 것은 그것이 <나가수>의 무거운 패턴 반복을 깨주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부쩍 많아진 전설들(?)을 모셔놓고 스스로 상찬하고 감동하는 그런 회고적인 무대가 아닌, 지금 현재 도마 위에서(?) 펄떡 펄떡 뛰고 있는 한 마리 고등어 같은 젊은 밴드(이렇게 실력은 넘치지만 방송의 조명을 못 받고 있는 가수들이 얼마나 많은가!)의 등장.

 

<나가수2>가 <나가수1>과 어떤 차별점을 가질 것인가를 고민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했던 것은 생방송이나 경연방식 같은 단지 형식만이 아니었다. 결국 <나가수>는 가수들이 만들어가는 무대가 아닌가. <나가수1>과는 다른 <나가수2>만의 얼굴을 드러내려면 거기 세우는 가수들의 면면이 달라졌어야 한다. <나가수1>이 기성가수들 중 비교적 얼굴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숨은 실력자들을 발굴해냈다면, <나가수2>는 국카스텐처럼 실력은 넘치지만 조명 받지 못한 비교적 젊은 가수들로 채웠더라면 어땠을까.

 

<나가수>는 제목에 가수의 존재를 증명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많은 가수들과 가요계 관계자들이 지적했던 점은 <나가수>가 가진 폐쇄적인 느낌이었다. "<나가수> 안 나가면 가수도 아니냐"는 일부의 지적은 그런 점에서 타당하다. 그만큼 가수들에게 <나가수>는 권위로서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가수의 범주까지 만들어내는 <나가수>는 좀 더 다양한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여야 하지 않을까. 나이든, 세대든, 장르든, 그 어떤 것이든 간에 상관없이 가수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국카스텐의 <나가수>무대 등장과 그 첫 출연에 떨어진 대중들의 호응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는 고무적인 일이다. 선배라고, 또 미친 가창력으로 불린다고, 권위를 스스로 세우기보다는 대중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극대화해줄 수 있는 무대를 선보임으로써 없던 권위도 세워지는 그런 무대. 국카스텐은 <나가수2>의 그런 가능성을 열어보였다. 이것은 또한 자꾸만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는 <나가수>의 시청층을 낮추는 데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가수>는 계속 새로워져야 한다. 그런데 그 새로움은 음악 자체의 새로움이다. 생방송이나 경연 방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에만 집착할 일이 아니다. 새로운 가수 발굴, 기성 가수의 지끔까지 몰랐던 새로운 면면의 발견이 없다면 <나가수> 무대는 기존 음악 프로그램과 아무런 차별성을 갖지 못할 지도 모른다. 국카스텐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 다른 출연 가수들도 국카스텐이 열어놓은 작은 숨구멍을 통해 저마다의 새로운 무대를 연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가수2>는 이 변화가 보일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고쇼>가 보여준 <나는 가수다>, 그 의미

 

'지금만 참고 나면 될 것이다.' <고쇼>에 출연한 김범수가 밝힌 데뷔 전 아버지와 얽힌 이야기는 가수의 탄생이 그냥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프로듀서에게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당하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때, 문득 보게 된 아버지의 평온한 얼굴에서 무언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는 것. 김범수는 이 경험을 통해 가수로서의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현정을 비롯한 출연 가수들은 이 사연에 눈시울을 붉혔다.

 

 

'고쇼'(사진출처:SBS)

백지영, 김범수, 박정현, 아이비를 게스트로 초대해 '기적의 보이스'라는 타이틀로 꾸려진 <고쇼>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게스트에 대한 집중이 돋보였다. 그간 고현정에 지나치게 주목됐던 시선이 게스트로 옮겨간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시선 변화를 통해 <고쇼>는 출연한 가수들이 여타의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가수로서의 새로운 면모들을 끄집어냈다.

 

아이비가 트레이닝의 한 방법으로 보여준 이른바 스프링 창법(점프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은 가수들이 그 가창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점프를 하며 앨리샤 키스의 'if i ain't got you'를 소화해내는 아이비에게 윤종신은 그 노력이 배어난 이 모습이 "지금까지 그 어떤 모습보다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고현정은 댄스가수로 생각해 이처럼 노래를 잘 할 줄 몰랐다며 자신의 오해를 미안해했다.

 

김범수가 겪은 힘겨웠던 데뷔시절의 이야기는 박정현의 어려웠던 시절로 이어졌다. 좁은 방에서 생활하며 작은 창에 낀 성에로 불투명하게 보이던 창밖을 자신의 미래처럼 암담하게 생각했던 시절, 창에 끊임없이 사각형을 그리며 작곡에 열중했던 그 때의 이야기를 그녀는 먹먹하게 들려주었다. <고쇼>는 우리가 무대에서 봐왔던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와는 또 다른 그녀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솔직한 면모들을 끄집어냈다.

 

김범수와 박정현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터트린 아이비는 자신의 힘겨웠던 우울증을 고백했다. 힘겨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살아가던 어느 날, 무대에서 노래를 하며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 심지어 수없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떠오르지 않는 경험은 조금씩 곪아 안으로 터져버린 우울증의 징후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비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는 백지영은 특별히 다른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고쇼>는 '기적의 보이스'라는 콘셉트를 통해 가수들이란 존재를 새롭게 보여주었다. <나는 가수다>가 노래를 통해 그 존재증명을 했다면, <고쇼>의 이번 무대는 가수가 되기 위해 겪었던 수많은 노력과 가수생활을 하며 힘겨웠던 사연 같은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그 뒤안길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음으로써 가수라는 존재를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게스트들에 주목한 결과였을까. <고쇼>는 그 오디션이라는 형식에 지나치게 매몰되지도 않았고, 또 고현정에게도 MC로서 필요한 질문과 경청할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이것은 지금껏 출연한 게스트들이 오디션 형식 속에서 어딘지 연기하는 톤을 보여주면서 가려졌던 실체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만들었다. 토크쇼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게스트들과의 진솔한 대화가 가능했던 것. 가수라는 존재의 진면목을 보여준 <고쇼> '기적의 보이스'편은 그런 점에서 이 토크쇼가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조건 하나를 보여준 가능성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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