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성장, <정글2>의 진면목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과 그 동료들은 정글 한 가운데서 최소한의 생존 장비만 주어진 채 살아남아야 한다. 특정한 상황 속에 출연진들이 놓여지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가감 없이 포착해내는 이런 형식은 물론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무한도전>에서 무인도에 던져진 출연진들이 생존하기 위해 몸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야자수를 따는 장면을 기억한다. 또 알래스카에 김상덕씨를 찾기 위해 갔다가 그 혹한의 얼음 밭 위에서 말도 안되는 간이 올림픽 경기를 상처를 입어가며(?) 했던 장면들을 기억한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우리네 리얼 예능의 계보에서 <무한도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토록 크다. <무한도전>은 이미 그 야생의 낯선 지대로 뛰어 들어가 생존하기 위해 갖은 날것의 도전을 하는 그 예능의 형식적 틀을 이미 실험해 보여주었다. 물론 이것은 또한 서구의 리얼리티쇼들이 이미 선취했던 것들이기도 하다. 다만 <무한도전>이 의미 있는 것은 이러한 서구의 리얼리티쇼들의 형식을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풀어냈다는 점일 게다.

 

어쨌든 <정글의 법칙>에는 그 근간에 도전이라는 코드가 들어가 있다. 그들은 정글 깊숙이 들어가 문명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존법칙을 하나하나 체득해간다. <무한도전>의 초창기가 그러했듯이, <정글의 법칙>의 초반부는 역시 이 정글에 놓여진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도전이 되었다. 사실상 첫 번째 미션 장소였던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악어 섬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늑할 정도로 야생 가운데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된 공간이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파푸아에서 진행된 두 번째 정글 미션은 말 그대로 진짜 정글이었다. 이광규는 벌레들의 습격(?)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결국은 중도에 귀국했고, 코로와이족을 찾아가는 길은 극도의 한계를 시험하는 진정한 정글로드로서 출연자들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에는 정글을 탈출하다 제작진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 진짜 정글 경험은 또 다른 도전의 자양분이 되었다.

 

남태평양 바누아투에서 찍은 <정글의 법칙2>는 그런 점에서 또 한 번의 업그레이드된 도전이다. 이번엔 그들을 위협하는 물이 있고 화산이 있고 정글이 있다. 이렇게 보면 <정글의 법칙2>는 <무한도전>이 그런 것처럼 정글의 무한 도전이 되는 셈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 목표를 세우고 그 안에 인물들이 투입된다. 그리고 도전을 겪어가면서 인물들의 생존능력 또한 성장한다. 이 프로그램이 계속 방영된다면 아마도 몇 년 후의 김병만과 그 동료들은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잔 비슷하게 되어 있을지도.

 

진짜 리얼 프로그램의 특징은 그 안의 캐릭터들이 점점 실체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그 멤버들은 초창기에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캐릭터로 시작했지만, 차츰 도전과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최고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이렇게 실제로 성장한 출연진들 때문에 미션과 프로그램의 방향조차 바꿔야 했을 정도. 특히 유재석은 도전의 아이콘이 되었다. 방송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그저 방송을 위해 보여주는 도전의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로 대단한 도전정신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출연자와 만나 허구가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병만 역시 그런 야생과 정글의 달인이 되지 않을까.

 

흥미로운 건 <무한도전>이 저 해외의 리얼리티쇼를 한국화해서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을 만들었듯이, <정글의 법칙> 또한 해외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를 상당 부분 한국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날 것의 정글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팀원들이 하나의 유사가족을 형성하는 점이 그렇다. 자칫 힘겨운 자극에만 매몰될 수 있는 정글의 경험이 때론 웃음이 피어나고 때론 감동적인 눈물이 연출되는 건 바로 이 지극히 한국적인 가족이라는 틀이 있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은 시즌을 거듭하면서 과연 <무한도전> 같은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김병만의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장난기 가득하며 때론 놀라운 달인의 면모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앞에서 끌어주는 한, 이러한 성취가 꿈만은 아닐 것이다. 김병만의 성실과 도전정신을 보며, 정글판 <무한도전>처럼 보이는 <정글의 법칙>에서 제2의 유재석을 예감하는 건 섣부른 일일까.

<나가수2>, 신들의 축제 한다더니...

 

신도 없었고 축제도 없었다.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무대라기보다는 검투사들이 한 명씩 올라와 벌이는 스포츠에 가까웠다. 애초 <나는 가수다1>이 '신들의 전쟁'이었다면, <나는 가수다2(이하 나가수2)>는 '신들의 축제'라고 했지만, 이것은 더 지독한 전쟁이었다. 생방송이라는 칼날 위에 선 가수들은 잔뜩 긴장해 제대로 노래할 수조차 없었다. 음정은 불안했고, 심지어 음 이탈도 있었다. 더 지독해진 경쟁으로 인해 신들은 평범한 인간으로 추락했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여타의 생방송 오디션들과 비교해도 이들의 무대를 신들의 무대라 상찬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예를 들어 <보이스 코리아>의 생방송과 비교해보면 <나가수2>의 생방송이 가진 허술함은 단번에 드러난다. <보이스 코리아>의 아마추어들의 무대가 더 폭발력 있고 완성도 있게 여겨지는 건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나는 그만큼 생방송임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군더더기 없는 짜임새를 갖고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나가수2>처럼 과도한 긴장을 피하게 하여 가수들 저마다의 실력을 100% 발휘할 수 있게 한다는 것. <나가수2>는 이 두 가지 중 그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당연히 <나가수1>에서처럼 방송이 끝나고 나면 폭풍처럼 몰아치던 음원 돌풍도 잠잠한 편이다. 첫 경연에서 최고의 가수가 된 이수영이 부른 이선희의 노래 '인연'이 차트에 홀로 올라와 있을 뿐, 가수들이 부른 노래에 대한 화제도 별로 없다. 오히려 음원차트 10위권에 올라온 <탑밴드2>에서 장미여관이 부른 '봉숙이'란 노래가 더 화제다. 대중들이 생방송 무대에서 겨우 치러진 완성도 떨어지는 거친 라이브를 굳이 찾아서 들을 까닭이 있을까. <나가수1>의 진짜 성공은 시청률이 아니라 음원 돌풍이라는 실제 시장에서의 반향에 있었다고 볼 때, 이것이 <나가수2>의 성공을 쉽게 점치기 어려운 지점이다. 결국 가수들을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었던 무대는 <나가수2>의 노래마저 잠식한 셈이다.

 

가수들이 이 정도니 MC들은 오죽할까. 가수들의 불안한 음정만큼, MC들의 불안한 진행도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했다. 첫 단독 MC로 선 박명수는 발음 실수를 연발했고, 너무 쉴 새 없이 멘트를 날리는 바람에 가수들의 응답마저 편안하게 이끌어낼 수 없었다. 노홍철 역시 비슷한 특징을 보여서인지 프로그램은 불안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무대 앞과 무대 뒤를 오가며 실시간으로 나눠지는 MC와 가수들 사이의 대화는 툭툭 끊어지기 일쑤였고, 심지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방송사고까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나가수2>의 이번 첫 번째 생방송이 만들어낸 긴장감은 가수들의 놀라운 실력대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방송사고에 가까운 완성도 부족에서 생겨난 것이다.

 

모든 것이 첫 생방송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가수2>의 새로운 시스템을 두고 볼 때, 가수들의 무대는 좀체 편안하기가 어려워질 듯하다. 가장 기대되는 가수와 가장 안타까운 가수를 뽑아 둘 다 탈락시키고 가장 기대되는 그 달의 가수를 연말결선으로 붙이는 방식은 부분적으로만 보면(순위 발표를 모두 하지 않는 것) 가수를 배려한 듯 보이지만, 전체 흐름으로 보면 끝없는 경쟁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다.

 

총 12명이 6명씩 나뉘어 상위그룹 3명씩과 하위그룹 3명씩 이른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전을 펼치는 이 구조는 상위그룹의 대결은 누가 1등이 될 것인가를 보는 편안함이 생길 수도 있지만, 하위그룹의 대결은 이미 하위로 떨어진 상태에서 또 누군가는 탈락을 겪게 되는 이중의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다. 물론 최고의 1인 역시 탈락을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상위그룹 또한 편안하기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그 불안하기만 한 생방송에서 치러진다.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된 음악을 대중들에게 선사하기는 정말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나가수2>가 '신들의 축제'를 벌인다고 했을 때만 해도, 서바이벌의 생존경쟁보다는 음악이 우선이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생방송으로 진행된다고 했을 때부터 불안감이 생겼던 게 사실이다. 생방송은 결국 리얼리티는 강화하는 반면, 최고의 음악은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예외는 있을 수도 있다. 거의 완벽한 리허설을 통해 프로그램의 짜임새를 만들고, 가수들이 최고의 무대를 보여줄 수 있도록 최대한의 편안함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MC들 역시 준비되어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가수2>의 첫 생방송은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나가수2>가 굳이 '신들'을 운운하는 음악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한 프로그램의 질이 뒤따라야 한다. 물론 생방송이 갖는 장점(스포일러 방지, 실시간 투표참여 등등)이 있지만 그것이 음악 예능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음악 자체의 질을 떨어뜨리게 한다면 결코 장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일부 팬덤에 의한 인기투표의 양상을 띠고 있는 실시간 투표참여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결과적으로 <나가수2>의 첫 번째 생방송은 안타깝게도 신도 없고 축제도 없는 무대가 되었다. 그것이 단순히 첫 번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지나친 날것의 경쟁 구도가 갖는 이 하드코어적인 상황의 불편함은 제아무리 베테랑 가수들이라고 해도 쉽게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나가수2>는 좋은 가수들이 선별된 만큼 좋은 음악을 최대치로 듣는 무대여야 한다. 좋은 가수들을 살벌한 무대 위에 올려놓고 벌벌 떠는 모습을 즐기는 악취미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 정글의 법칙2 > 김병만, 추성훈이 있어 든든하다

 

< 정글의 법칙2(이하 정글2) > 가 내세운 건 '진화'다. 생존과 공존을 내세운 시즌1이 일종의 적응 기간이었다면, < 정글2 > 는 이제 '본 게임'에 들어간 셈이다. '진화'를 내세운 < 정글2 > 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추성훈이다. 시즌1은 김병만과 병만족들(류담, 리키김, 노우진, 황광희 등)이 정글이라는 상황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했지만, 시즌2는 무언가 다른 진화된 이야기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추성훈 투입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이종격투기 선수로서 추성훈이 갖는 이미지는 '야생' 그 자체. 검게 탄 피부와 터질 듯한 근육, 게다가 강인한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인상은 카메라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 정글2 > 에 야생의 느낌을 부여한다. 아마도 외모와 인상만으로도 이처럼 < 정글2 > 의 콘셉트에 딱 맞는 '그림이 되는' 출연자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 마리 야수 같은 그 이미지는 그 자체로 < 정글2 > 의 리얼리티를 강화시켜 준다.

 

바로 이 점은 추성훈과 김병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박시은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살짝 엿보인 일종의 대결과 경쟁 구도는 아마도 '진화'라는 콘셉트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일 게다. 맛보기로 편집되어 보여진 영상 속에서 추성훈과 김병만이 물고기 잡는 것 하나 갖고도 대결의식을 갖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지금껏 혼자 병만족을 이끌어온 김병만에게 추성훈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갖는 의미는 그래서 남다르다.

 

이 두 사람은 방송을 통해 서로의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다. 추성훈이 몸을 쓰는 스타일이라면 김병만은 머리를 쓴다는 것. 아마도 이 말은 추성훈이 힘을 내세운다면, 김병만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뜻에 더 가까울 것이다. 정글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힘도 중요하지만 환경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도 중요하다. 추성훈과 김병만의 서로 다른 스타일이 부딪치고 상생하는 건 성장을 위해 중요하다. 진화란 바로 그런 부딪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추성훈은 야생의 강인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캐릭터가 리얼리티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 추성훈은 의외의 허당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의외로 무서움을 많이 타고 낯선 음식(?)에 몸서리를 치는 추성훈은 그 자체로 이 본질이 예능인 < 정글2 > 에 웃음을 준다. 강이 사실 굉장히 얕은 줄 모르고 거대한 나무를 징검다리로 만들려고 옮기려 하거나, 좀더 건너기 쉬운 길을 찾으러 다니는 추성훈은 후에 상황을 알고는 멋쩍게 "앞으로는 하기 전에 좀 생각하고 합시다"라고 말해 큰 웃음을 주었다.

 

자존심 강할 것 같은 야생의 이미지를 가진 그가 김병만의 등에 업혀 아이처럼 강을 건너는 모습은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다. 이것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웃기는 장면을 연출해내는 김병만과는 또 다른 < 정글2 > 의 새로운 웃음이 아닐 수 없다. 그 두 사람이 조합을 이룬다면 < 정글2 > 의 예능으로서의 위치 또한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화산을 오르면서 노우진이 "앞에서는 김병만이 맨 뒤에서는 추성훈이 있어 든든하다"는 말은 그대로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진다. 시즌1에서 거의 모든 짐이 지워졌던(그래서 그는 프로그램 말미에 "너무 힘들었다"며 오열하기도 했다) 김병만에게 < 정글2 > 의 추성훈은 그 든든함을 주는 존재처럼 보인다. 시즌1에서 류담이 공존의 의미를 담아냈듯이 과연 추성훈은 < 정글2 > 에서 진화의 한 축을 만들어낼 것인가. < 정글2 > 에서 조커처럼 여겨지는 추성훈에 대한 기대는 그만큼 크다.

프로그램 살리자는 명분, 왜 자가당착일까

 

최재형 PD가 잠정 복귀를 선택했다. 명분은 프로그램이 망가지는 걸 더 이상 못 보겠다는 거다. 실제로 '1박2일'은 최재형 PD의 파업 이후 파행으로 치달았다. 2회 분량 내용을 3회로 늘려서 편집해 내보냈고, 그러니 본래 '1박2일'만이 가졌던 색깔도 상당 부분 희석되었다. 게다가 최재형 PD의 파업에 대해 사측에서는 중견 PD를 투입해서라도 촬영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시스템이 우선이고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는 지극히 KBS적인 사고방식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그러니 최재형 PD 입장에서는 답답했을 수 있다. 파업의 와중에도 프로그램은 버젓이 나가게 되고, 그 프로그램은 본래 의도와 상관없이 망가지게 되니 그걸 보는 게 편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잠정 복귀를 결정하면서도 파업 불참에 대해 껄끄러운 마음이 없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복귀하면서 "파업 불참은 전혀 아니며, 사측의 회유나 설득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또 "대체 인력이 투입되면 프로그램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아 잠정적으로 연출 복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파업에서 나오게 되는 상황이지만 '파업 불참'이 아니며, 또 복귀하는 것이 맞지만 그저 '잠정 복귀'라는 표현에는 최 PD의 고민이 묻어난다(요즘은 '잠정'이라는 표현이 유행이라도 되는가 보다). 하지만 고민 끝에 선택한 이 '잠정 복귀'가 과연 묘수가 될 지는 미지수다. 물론 제 자식 같은 프로그램이 망가지는 걸 보기 힘든 부모 같은 PD의 마음이 이해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결국 그 자식이 잘 되려면 그 자식이 잘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방송 프로그램은 그것이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방송사의 환경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방송사의 풍토 내에서는 당연히 좋은 프로그램들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관제적으로 무언의 압력 속에 만들어지는 프로그램들은 자기 검열에 빠질 수도 있다. 이것은 방송의 사유화 혹은 정치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중들은 동원되고 호도될 수 있다.

 

결국 좋은 프로그램이란 프로그램의 내적인 환경으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외적인 환경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결국 최재형 PD의 선택은 나무가 아니라 가지를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다. 당장 가지 살리려다가 나무를 죽게 하면 결국 가지가 살 수 있을까.

 

또한 요즘처럼 프로그램 제작자에 대한 팬덤이 프로그램의 성패에 작용하는 시기도 없다. '무한도전'이 무려 13주째 결방을 하고 있지만 대중들은 방송 복귀보다는 그런 선택을 한 김태호 PD를 응원하는 쪽이다. 만일 김태호 PD가 방송에 복귀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면 대중들은 '무한도전'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대중들이 현재의 파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물론 '1박2일'은 프로그램의 성격이 '무한도전'과는 다르다. '무한도전'이 어딘지 마니아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면, '1박2일'은 거의 전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예능적인 속성(여기서 국민 예능이라는 표현이 좋은 의미만 갖는 건 아니다)을 갖고 있다. 그러니 파업에 대한 호불호도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적어도 제작자만은 자신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중들은 어쩌면 최PD의 선택 때문에 '1박2일' 그 자체에도 실망할 수 있다.

 

결국 '1박2일'을 구하겠다는 최재형 PD의 선택은 자칫 잘못하면 '1박2일'을 죽일 수 있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최재형 PD가 복귀해서 만들어낸 '1박2일'은 대체 편집진들이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완성도가 높을 것이고, 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추락하기 시작한 시청률이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선택에 의해 그간 그래도 '개념 있는 예능'으로 생각되던 '1박2일'의 이미지에 손상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제작진에 대한 호불호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르기도 하는 요즘 같은 환경에서, 최PD의 선택은 과연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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