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 그 캐릭터가 가진 예능에서의 가치

'런닝맨'(사진출처:SBS)

연기자 최민수를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그 첫 번째는 그가 겪은 일이 그는 물론이고 그의 팬들에게도 웃음조차 사라지게 만들만큼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그가 '런닝맨'이나 '강심장'에 나와 좌중을 압도하며 웃음폭탄을 날리는 모습은 그만큼 편안해진 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제 아문 상처가 더 굳어진 살이 되어 강건한 마음을 만들기를.

최민수를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는 두 번째 즐거움은 그가 실제로 예능에 딱 적합한 캐릭터인데다 또 그 캐릭터를 잘 살리기 때문이다. '런닝맨'에 출연한 최민수는 그가 카리스마있는 캐릭터로서 예능에서 할 수 있는 두 가지 기능을 모두 보여주었다. 첫째 날에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최민수만이 할 수 있는 이른바 '런닝맨 헌팅' 미션을 효과적으로 수행했다.

최민수라는 모두를 떨게 하는(물론 이미지일 뿐이다) 캐릭터는 그저 세워놓기만 해도 미션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웃음의 본질이 바로 '두려움에서 벗어났을 때 생겨나는 이완감'에서 비롯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왜 최민수 같은 캐릭터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큰 웃음을 만들어내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정극에서의 섬뜩할 정도의 카리스마는 예능에 들어오면 겁먹는 상대방을 조명해주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최민수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상대방을 겁주는 것만으로 웃음을 만드는 건 아니다. '런닝맨' 둘째 날에 최민수가 보여준 웃음 포인트는 첫째 날과는 정반대였다. 즉 어딘지 무서울 것 같은 이 카리스마의 대명사가 보통 사람과 다를 것 없는 허술한 면모를 드러냄으로서 이른바 반전 캐릭터로 웃음을 주었다. 최민수는 둘째 날 모습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편안하고 남다를 바 없는 사람인가를 보여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웃음이 만들어졌다.

최민수가 카리스마를 활용해 웃음을 주는 이 두 가지 방식(상대방을 겁먹게 하거나, 본인이 무너져 반전 캐릭터를 보여주는)은 '강심장'에서도 여전했다. 이 토크 배틀 형식에서 최민수는 슈퍼주니어와 10대1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냈고, 강한 캐릭터인 강호동을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여줘 웃음을 주면서 동시에 귀요미의 표정을 짓거나 자신이 망가졌던 이야기를 통해 반전의 웃음도 만들어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최민수를 예능에서 보는 것은 그래서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최민수를 예능에서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그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최민수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강한 캐릭터의 아우라에 갇혀 있었다. 지나간 일이라 웃으며 할 수 있는 얘기지만, 최민수가 실제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기 2년 전에 죄민수라는 캐릭터가 '개그야'에 등장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결국 이 개그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죄민수가 실제 상황으로 비화되는 아이러니를 겪은 셈인데, 그만큼 최민수의 강한 캐릭터는 대중들에게 뭔가 닫혀있어 개그로라도 인간적인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소문에 의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린 상황도 어찌 보면 이 욕망의 발현이었는 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며 소통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최민수의 이미지에 균형감을 만든다.

"나 떨고 있냐?" '모래시계'에서 그가 내뱉은 이 한 마디의 대사는 최민수의 아우라를 만들었다. 죽음 앞에서도 남자다움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그래도 인간이라 어쩔 수 없이 떨고 있는 그 모습은 바로 최민수가 가진 양면적인 매력의 결정체다. 때론 마초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카리스마를 내뿜으면서도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태왕사신기'에서의 화천회 장로로 보여준 카리스마나 '무사 백동수'에서 천을 통해 보여주는 강렬함은 드라마를 이끄는 힘을 만들어줄 정도로 강렬하다. 하지만 그런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그는 또한 '결혼이야기'나 '사랑이 뭐길래'로 살짝 망가지는 털털한 모습을 연기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자칫 소문에 의해 잃을 뻔 했지만 다시 돌아온 최민수. 그가 앞으로도 계속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세 가지 즐거움을 주기를 바란다. 그것은 어쩌면 그의 연기자로서의 편안하고 탄탄한 삶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을 테니까.


인순이의 '아버지', 상처가 눈물을 넘어 노래가 될 때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인순이 스스로 방송에서 밝힌 것처럼 그녀에게 '아버지'라는 말은 그 자체로 상처다. 그녀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떠났고 그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가끔 편지왕래를 했었다지만 그것이 이 땅의 혼혈로 태어나 아버지 없이 겪은 그 세월을 위로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그녀의 '아버지'라는 곡은 바로 그 꺼내기만 해도 아픔이 되는 그녀의 트라우마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의 첫무대에서 꺼내든 이 곡은 가수로서의 그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면서, 동시에 아마도 어쩌면 그녀가 불렀던 그 어떤 곡보다 어려운 곡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산이었습니다. 지금 제 앞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은 어느새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습니다." 이 낮은 읊조림으로 시작한 그녀의 '고백'은 노래가 그 어떤 기교나 과장 없이 담담하게 가사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과거 인순이의 존재감을 갑자기 우리 가 느낄 수 있었던 '거위의 꿈'을 그대로 재연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하는 자한테만.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꿈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꿈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2006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이 낮은 읊조림으로 시작해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쳐왔던 자신을 노래 속에 담아냈던 것처럼.

조관우의 말처럼 "인생을 알면서 그 아픔을 딱 담을 수 있는 현존의 음악하시는 분의 최고"라는 찬사는 그저 듣기 좋은 수사가 아니다. '아버지'라는 곡이 가진 그 담담함을 이처럼 절절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로 인순이 만한 가수가 있을까. 곡에는 그녀의 '눈물' 속에 담겨진 아버지에 대한 미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다른 것이 아닌 같은 것이라는 긍정이 담겨져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진실. 인순이는 그것을 스스로의 삶을 담아 노래로 전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미워했었다"고 고백하고, 또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마음을 전했다.

이 무대가 모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바로 그녀의 곡을 통해 그간 우리가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왔던 존재, '아버지'를 각자 다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순이의 '아버지'는 이제 그녀의 특별한 이야기에서 우리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녀가 노래 시작 전에 읊조렸던 그 말, '커다란 산'이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다는 그 말은 아마도 모든 아버지를 가진 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물론 이 의미도 이중적이다. '커다란 산'은 든든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아픔으로 가진 이들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막막함'을 뜻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다는 인순이의 진술은 이제 그 고통을 넘어 트라우마마저 관조할 수 있는 자신을 얘기하는 것이다. '점점 멀어져 가버린' 아버지지만, 이제는 그 '쓸쓸했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흘렀고, 그래도 여전히 가슴이 다시 아파오게 하는 존재. 바로 누구나의 아버지일 것이다. 이제 꺼내는 것만으로도 상처인 '아버지'를 노래로 부르며 긍정하고 있는 인순이를 통해, 물론 그 감회의 크기나 정서는 다르겠지만 우리도 저마다의 아버지를 꺼내보게 된다.

그녀는 노래 첫머리에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부디 사랑한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노래는 이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또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 이 사랑한다는 말을 못내 후회한다. 인순이는 자신은 "사랑했었다"고 과거형으로밖에 못했던 그 말을 '지금' 우리에게 꺼내놓는다. 이것은 자식이 부모에게 하지 못한 그 말만을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부모가 자식에게 하지 않은 그 말이기도 할 것이니까. 그러니 이제 사랑한다는 말은 모두에게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카네기홀에서 두 번씩이나 공연을 가진 인순이는 그 두 번째 무대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모셔놓고 "여러분은 모두 제 아버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상처는 아물면서 더 단단해졌고 그것은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로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여전히 가수임을 고집하는 '천상 가수'에 의해 고스란히 하나의 노래로 승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 위에서 이 노래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상처가 눈물이 아닌 노래가 되었을 때 그것은 상처의 토로가 아닌 우리의 마음까지 다독이며 두드리는 소통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된 이유다.


패러디의 힘을 가장 잘 활용한 '나도 가수다'

'나도 가수다'(사진출처:MBC)

패러디는 낮은 자의 전술이다. 즉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은 권위 있는 어떤 것을 끌어와 패러디를 함으로써 시선을 집중시키고 동시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나도 가수다'는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를 패러디한다. 신정수 PD가 '신들의 공연'이라고 추켜세웠던 그 무대. '는'이라는 조사를 '도'로 바꾼 것뿐이지만 그 뉘앙스가 주는 절절함은 이 사골 같은 개그의 밑바탕이 된다.

'나도 가수다'에서 이소라를 패러디한 이소다(김세아)는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한다. "공연장에 와주신 관객여러분 그리고 청중평가단 여러분... 어디 계십니까?" 그렇다. 그들이 선 무대에는 관객도 청중평가단도 없다. 물론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도 많지 않다. '나도 가수다'가 코너로 들어있는 '웃고 또 웃고'는 금요일 자정 12시35분에 편성된 프로그램. 시청률은 2%대로 거의 케이블 수준이다. 그러니 이소다의 이 한 마디는 늦은 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시청자를 빵 터지게 만든다. 그것이 스스로의 처지를 가장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가수다'는 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자신들의 개그 무대를 패러디 대상으로 올린다. 즉 패러디라면 희화화되는 대상이 있기 마련인데, 물론 이 코너는 '나는 가수다'를 희화화하는 것이 아니다. 늦은 밤 아무도 보지 않아 관심조차 없는 자신들을 희화화한다. '나는 가수다'라는 놀라운 가창력의 가수들을 패러디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그 어려움을 드러낸다. 임재범을 패러디하는 정재범(정성호)은 그가 단 세 곡을 부르고 자진 하차했다는 데서 소재고갈로 인한 위기를 토로한다. 또 박정현을 패러디하는 방정현(정명옥)은 이 장수가수(?)로 인해 소재고갈의 문제는 '해피'하지만, 그 절정의 가창력을 패러디하는 데 전혀 비슷하지 않다는 난점을 토로한다. 이 자신의 처지를 희화화하는 모습은 '나는 가수다'의 장면들과 병치되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이 패러디 개그가 가진 강점은 그 간결한 형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코너는 패러디 대상이 '나는 가수다'이기 때문에 노래를 바탕으로 깔고 그 중간 중간에 인터뷰를 삽입한다. 절묘하게 패러디되는 노래를 듣는 즐거움과 함께 인터뷰 속에 담긴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 형식은 그 간결함 덕분에 인터넷 동영상으로서의 강점을 확보한다. 자정 시간대로 밀려 아무도 보지 않는 이 코너가 인터넷에 확산되는 전략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데는 이 앞뒤 없이 뚝 잘라놔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단출한 형식 덕분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패러디가 멋지다고 해도 거기 깔린 패러디의 메시지가 참신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공감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가창력 빼고는 놀랄 만큼 비슷한 이들의 패러디는 그들의 위태로운 처지와 맞물리면서 웃음과 함께 묘한 페이소스를 남긴다. 정재범이 말끝마다 "웃겨야죠"하고 말하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그 생존의 무대 위에서 누군가를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드러내는 건 우습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을 찡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를 패러디해서 '나도 가수다'라고 얘기하지만, 이 코너의 진짜 제목은 '나는 개그맨이다'라고 여겨지게 된다. 거기서 개그맨들이 절절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나도 가수다'는 짧고 단출한 형식이지만 '나는 가수다'를 우리고 우려 또다시 재창조해낸 사골 같은 개그다. 거기에는 최정상 실력파 가수들과의 비교점에서 희화화되는 개그맨들의 진한 웃음이 있고, 여기에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서 다음 무대를 걱정하는 그들의 절실함이 뒤섞여 아주 깊은 맛은 낸다. 그러니 '나도 가수다'를 그저 잘 나가는 프로그램에 기대 살아가는 프로그램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그 상황 자체까지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이 개그는 어쩌면 그 패러디가 가진 힘을 가장 잘 활용하고 적용한 사례가 될 테니까.


명불허전, 역시 '슈퍼스타K'인 이유

'슈퍼스타K3'(사진출처:Mnet)

과연 케이블은 한계일까. '슈퍼스타K3'를 보면 케이블은 한계가 아니라 또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무려 8.5%의 첫 방송 시청률에 이어 2회에 10%를 간단히 넘겨버린 이 금요 오디션의 최강자는 케이블의 장벽을 뛰어넘어 오히려 케이블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 있다.

사실 첫 회에 난동녀로 나와 논란을 일으켰던 최아란은 지상파라면 감히 내보내지 못했을 장면들이다. 자신이 떨어졌다며 욕을 하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난동을 부리는 장면은 그러나 케이블이라는 매체에 대한 상대적인 관대함(?) 때문에 논란 자체도 화제로 전환되었다. 이것은 단적인 예이지만, 편집과 연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로 케이블만이 가능한 과감함을 엿볼 수 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하늘이 합격 티셔츠를 나눠주는 여성을 두고 하는 농담은 어찌 보면 지나치다고 여겨질 정도다. 하지만 '슈퍼스타K3'는 이마저도 재미요소로 연출해버린다. 즉 이하늘의 농담을 통해 이 여성의 캐릭터를 만들어놓은 후, 오디션 참가자가 나왔을 때 이하늘의 반응에 이 여성의 리액션을 살짝 끼워 넣는 식이다. 이 절묘하면서도 독하기 그지없는 연출은 지상파라면 시도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적어도 '슈퍼스타K'에서는 가능하다. 케이블에 대한 대중들의 암묵적인 허용치가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적인 독한 연출은 심사위원에게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서인영은 마치 잘 생긴 남자들만 나오면 '합격'을 주고, 예쁜 여자가 나오면 '불합격'을 주는 것처럼 연출되는 것도 그것이 서인영 당사자의 이미지에는 어떨 지 모르지만 시청자들에게는 묘한 재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승철이 '슈퍼스타K'의 대표적인 심사위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케이블적인 허용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늘 선택과 지적에 있어 과감하고 또 그러면서도 정말 괜찮은 가능성의 후보자가 나타났을 때 한 발 물어날 줄도 아는 심사위원이다. 이 독설가의 이미지와 멘토로서의 이미지가 모두 선명하게 드러나는 건 역시 과감한 케이블의 연출 덕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찌 보면 지상파가 좀체 버리지 못하는 '품격'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슈퍼스타K'는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인데다 시청률에 있어서도 이미 지상파를 압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깨에 힘을 주는 연출을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엔터테이너들의 세상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좀 더 본성에 솔직한 그림들을 잡아낸다.

이것은 어쩌면 B급의 '저렴한' 프로그램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슈퍼스타K'는 그 외관으로서의 규모를 강조하고 세련된 영상을 위한 제작비를 아끼지 않는다. 헬기와 리무진이 동원되고, 엄청나게 운집한 참가자들의 모습이 말 그대로 스펙터클하게 보여진다. 총 상금 5억 원, 오디션 참가자 수 197만 명, 제작비 100억 원, 제작 기간 1년. 이런 스케일 속에서 B급 프로그램의 이미지는 휘발되어버린다. 지상파도 선뜻 만들어내기 어려운 특 A급의 스케일에, 역시 지상파가 그려내기 어려운 B급 정서의 연출. 이것은 케이블에 자리한 '슈퍼스타K'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도 '슈퍼스타K3'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도저히 지상파가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을 이 프로그램이 개척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스타K'는 그래서 케이블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대체불가능의 프로그램이 된다. 김용범 PD의 "우리의 경쟁자는 타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 슈퍼스타K 시즌1, 시즌2"라는 말이 단지 수사가 아닌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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