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드라마들이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호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들이 유난히도 돋보인 한 주였습니다.

역시 배종옥, 변신 김정민
SBS의 월화드라마,‘내 남자의 여자’는 극의 흐름을 김희애의 독한 연기가 끌어왔는데 이번 주에는 반격에 나선 배종옥의 연기가 돋보였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겪는 상처와 분노, 하지만 “그래도 용서해주세요”하는 아이의 애원에 흔들리는 엄마라는 복합적인 내면연기를 ‘역시 배종옥!’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소화해냈습니다. 배종옥은 과장되지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가라앉지도 않는 역할에 딱 맞는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MBC의 ‘히트’는 전문성에 대한 비판여론 탓인지 분위기를 멜로에서 전문직쪽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소강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새롭게 전면에 나선 김영두 역의 김정민이 가수답지 않은(?)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거칠고 강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는 멜로로 말랑말랑해진 ‘히트’에 조금은 강력계다운 강한 면모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성숙 공효진, 소름 주지훈
수목드라마에서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맙습니다’는 달라진 공효진, 장혁의 물오른 연기가 시청자들을 감동에 젖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전 드라마에서 조금은 되바라진 캐릭터를 보였던 공효진은 이 드라마에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한 모성애 강한 미혼모역을 실감나게 소화해내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장혁의 깊어진 연기와 서신애의 아이답지 않은 연기력,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신구, 강부자의 연기력들이 맞물려 따뜻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데 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시청률은 낮아도 여전히 화제에 중심에 있는 ‘마왕’은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캐릭터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를 보이다가, 순간 순간 씩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며 보이는 악마적인 느낌은 시청자들을 전율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아픔을 떠올릴 때면 그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내면연기 역시 돋보이면서 이제 막 시작한 신인배우라고는 믿기기 어려운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캐릭터와 연기력이 드라마를 살린다
TV 프로그램의 성패가 된 리얼리티는 이제 드라마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리얼하냐는 것이 공감의 바로미터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캐릭터가 극의 중심으로 오면서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과거 스토리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적당한(?) 연기력을 가진 외모출중한 배우들이 포진했던 반면, 최근에는 외모가 아닌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야말로 드라마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착한 척하는 배우, 예쁜 척 하는 배우보다는 자신은 망가지더라도 극중 캐릭터를 100%로 살릴 수 있는 연기를 보이는 배우가 아름다운 시대입니다.
월화수목 드라마들이 중반을 치닫고 있는 지금이, 이제 제 궤도에 오른 연기자들의 명연기를 보는 맛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 ‘고맙습니다’ 뒤에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빛나기 마련! 그러나 시청률과 상관없이 취향에 따라 그 다양한 맛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요.

재미로 보는 기대감 수치
▶ ‘내 남자의 여자’(기대감 80%) : 새로운 남자, 이종원이 등장하면서 배종옥의 갈등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배종옥과 김희애의 대결구도는 여전히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 ‘고맙습니다’(기대감 80%) : 연기로 보자면 이 드라마 만큼 기대감을 높이는 드라마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연기자들이 연기 9단의 모습을 보이는 드라마입니다. 공효진과 그 가족을 사이에 둔 장 혁과 신성록 간의 대결구도도 관전포인트입니다.
▶ ‘히트’(기대감 50%) : 아직까지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긴박감이 살아나지 않는 반면, 김정민의 역할이 얼마나 그걸 해줄지 기대가 되는 드라마입니다.
▶ ‘마왕’(기대감 50%) :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강오수’와 ‘형사로서의 강오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태웅의 연기도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부족함을 따뜻함으로 채운 인물들

MBC 수목드라마, ‘고맙습니다’에는 캐릭터가 아닌 사람들이 보인다. 드라마에서 스토리를 극화하기 위해 캐릭터들은 어떤 한 부분이 극대화되어 그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천사표 캐릭터는 한없이 천사가 되고, 악역은 한없이 악역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 우리가 흔히 ‘진부한 선악구도’라고 말하는 설정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선악구도를 의도했다기보다는 드라마라는 또 하나의 세계 속에 스스로 움직이는(작가들은 어느 순간부터 저 스스로 인물들이 움직인다고 한다) 인물들을 드라마의 극적 구도라는 명목으로 억압한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고맙습니다’는 살아있는 인물들이 꿈틀대는 드라마이다. ‘악역 없는 드라마’는 극중 인물을 어느 캐릭터로 규정되는 한 측면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인물들을 다각도로 조명함으로써 어떨 때는 천사가 되고 어떨 때는 악역이 되는 살아있는 성격을 구축해 그 안에 저 스스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다. ‘고맙습니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렇다.

강한 모성애를 가진 미혼모, 영신
영신(공효진)은 어딘지 답답한 구석이 있는 미혼모이다. 자신에게 섬을 떠나라고 하고, 또 이상한 남자를 소개시켜주면서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석현모(강부자)는 분명한 가해자지만 그런 그녀에게 영신은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봄이(서신애)와 미스터리(신구)를 위해서는 한없이 강해지는 면모를 보인다. 그것은 강력한 모성애다. 몸살을 앓으면서도 가출한 딸을 찾아 나선 영신이 꾸역꾸역 밥을 먹는 장면이 공감을 주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제 정신을 차린 영신이 옷과 신발을 새로 사 신고 민기서 앞에 나와 “이제 봄이 엄마 같아요?”라고 묻는 대사는 그녀의 모성애를 강하게 드러낸다.

미혼모가 강한 모성애를 보여준다는 설정은 영신이란 인물을 살아있게 만든다. 모성애가 부여되자 그녀는 미혼모라는 굴레 속에 갇히지도 않고 또 그 자체를 부정하지도 않는 인물이 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강한 모성애로서의 그녀를 그저 긍정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모성애는 때론 자신을 부정하는 희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 그녀는 “전 여자가 아니에요. 봄이 엄마일 뿐이에요”라고 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삶에 의미가 없지만 생명을 살리는 의사, 민기서
반쯤 감은 눈이 초점을 허공에 두고 읊조리듯 말하는 민기서라는 인물은 까칠함의 대명사이지만 그 까칠함은 종종 따뜻한 마음을 숨기는 은폐물로 활용된다. 이 인물 속에는 유달리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다. 환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버지가 선택한 안락사로 인해 당한 가족의 고통을 옆에서 본 민기서로서는 환자는 환자일 뿐이라는 냉정함으로 의사 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그것을 깨준 것은 차지민(최강희)의 죽음이었다. 그녀는 환자이자 자신의 연인이었던 것. 이로써 그의 마음 속에는 환자에 대한 냉정과 열정이 공존하게 된다.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절대로 의사 짓 안 하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푸른도로 들어오면서 죽음 앞에 놓인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삶을 포기한 듯한 민기서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린다는 설정은 아이러니다. 영신의 집에 하숙하는 그가 저 자신은 대충 살아가면서도 곤경에 처한 영신네 가족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에서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이를 부정하고 아이를 그리워하는 석현
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석현(신성록)은 그 사실을 부정한다. 민기서의 “넌 도대체 뭐냐?”는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민기서는 그런 자신이 당황스럽고 미워진다. 지나가는 아이와 아빠의 얼굴을 보면서 거기에 봄이와 자신을 끼워 넣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 그를 가로막는 것은 현실이다. 현실의 그가 가진 것들이 아이를 인정하고 영신을 맞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석현이 사장이자 민기서의 어머니인 강혜정(홍여진)에게 찾아가 푸른도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겠다며 그 이유로 “다 시시하고 무의미해졌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강혜정의 말대로 민기서가 푸른도 보건소에서 일하겠다면 떠날 때 했던 말과 같은 것이다. 비즈니스 자체를 시작한 그가 그 비즈니스에서 손을 떼는 상황은 그간에 석현이란 인물 속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는 석현을 통해 엘리트의 전형처럼 보이는 인물 속에도 남겨져 있는 따뜻한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이밖에도 이 드라마 속에서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물들이 많다. 보건소 의사인 오종수(류승수)는 돌팔이로 매도되면서 자학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인물이지만 푸른도에서 봄이로 촉발된 에이즈에 대한 편견 앞에 온몸을 던지는 능동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늘 영신네 집 사람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하던 석현모는 봄이의 에이즈가 잘만 관리하면 오래 살 수 있다는 말에 패물을 끄집어내며 “일단 살리고 봐야된다”고 말한다. 욕심과 소유욕에만 불타던 박씨(김하균)는 봄이를 껴안고 자신보다 오래 살아달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들이 한 인물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것은 그 인물을 보는 시선이 아이의 그것처럼 편견이 없기 때문이다. 봄이가 에이즈라는 사실에 난리법석인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은 아무런 편견이 없다.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 에이즈라는 병은 그저 병일 뿐, 질시와 배척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마치 에이즈라는 병에 걸린 듯 위협적으로 혹은 배타적으로 보이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지면서 ‘완벽하지 않은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기서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 바로 따뜻한 인간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미혼모지만 모성애가 강한 것이 아니라 미혼모이기 때문에 모성애가 강해진 것이고, 삶의 의미가 없으면서도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아니라 삶의 의미가 없어진 연후에야 오히려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며, 아이를 부정한 후에야 아이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영신네 가족이 가진 온갖 부족함은 작가의 시선으로는 가능성이다. 그 부족함을 따뜻하게 채워줄 많은 살아있는 인물들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란 제목은 바로 그 부족함을 채워준 인물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인사이자, 부족하기에 꽃보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헌사이다.

멜로도 전문성도 아닌 형사란 직업에 천착해야

‘히트’는 지금 고민중이다. 기획의도에서 밝혔듯이 직업인으로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남녀, 즉 검사인 김재윤(하정우)과 형사인 차수경(고현정)의 사랑이야기는 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특히 김 검사의 귀여운 모습은 털털한 이미지의 차수경과 어우러지면서 마치 풋사랑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반면 전문직 드라마를 기대했던 남성들에게 이 낯간지러운 멜로는 극에 대한 긴장감을 풀어놓는 방해꾼이 된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멜로가 풀어놓은 극적 긴장감을 다시 묶어줄 만한 전문적인 에피소드가 보이지 않는다. 첫 회의 헬기 추격 신에서부터 나왔던 비판은 홍콩 에피소드에서 더 강해졌다.

치밀한 디테일이 보이지 않는 수사장면들이 반복된 데 이어 한가한 멜로 신이 덧붙여진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즉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에피소드가 약한 전문직 드라마에, 주인공 남녀의 강한 멜로 라인이 붙여지자 우리는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게 되었다. 혹 이거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 아닌가 하는.

‘히트’는 멜로와 전문직 봉합 실패
‘히트’의 시청자게시판에서 연일 멜로와 전문직 드라마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는 것은 이 드라마가 이 둘을 동시에 껴안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멜로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멜로를 본격적으로 내세우고 만든 전문직 드라마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 전문성을 갖고 비판하지는 않았다. 즉 이것은 멜로와 전문직 드라마가 어떻게 잘 엮어지느냐의 문제이지 멜로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잘 하면 멜로도 살고 전문성도 사는 그래서 적절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거머쥐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히트’가 고민했던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을 것이다. 전문성으로만 가면 매니아 드라마가 될 가망이 높고, 따라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멜로를 가미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잘 엮느냐는 문제. 작가가 ‘대장금’이란 역사 속의 전문직 드라마를 썼던 김영현인 만큼 멜로와 전문성 그 둘 다를 기대해볼 만한 문제였다. ‘대장금’도 수라간이라는 공간에서 임금님에게 음식을 만들어 올리는 한 여성의 전문성에, 민정호(지진희)와 장금(이영애)의 멜로 라인이 엮어지지 않았던가.

‘히트’는 대장금도 봉달희도 아니다
하지만 ‘히트’는 ‘대장금’도 아니고 ‘외과의사 봉달희’도 아니다. 전문분야는 형사나 의사나 요리사나 대동소이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문분야를 다루는 시각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대장금’은 요리사는 요리사지만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것도 임금님의 요리사를 선택했다는 점이 차별적인 요소이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의사를 다루되 병 고치는 의사로서의 의사만이 아닌 ‘똑같이 병을 앓는 한 인간으로서의 의사’라는 측면을 조명한 것이 차별화 되었다.

그러나 ‘히트’ 속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우리가 이미 많은 영화 속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모습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에피소드 역시 마찬가지. 쉽게 유추되고 추리될 수 있는 평이한 사건들이 반복되고 어느 정도 끌다가는 범인을 검거하는 식이다. 여기에 4부 정도의 분량으로 한 사건씩 마무리를 지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구조는 매회 압축되지 않은 스토리 전개로 인해 끝 부분에 와서 미완적으로 급하게 처리되는 느낌이 있다. 홍콩 에피소드에서도 좀더 장형사의 상황을 드라마적으로 눌러 주었다면 후반부의 해결에 있어서 더 진한 감동과 페이소스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조과장(손현주)과 최반장의 에피소드 역시 최반장의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나 빨리 드러나면서 긴장감을 급격히 떨어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히트’는 형사들이 맡게 되는 사건보다는 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건이 끝날 때쯤이면 그 에피소드가 사건이 아닌 인물들 간의 관계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게된다. 홍콩 에피소드가 부녀간의 가족애였다면 조과장과 최반장 에피소드는 유사 부자(아버지 같은 분)간의 갈등이다. 이러한 관계설정을 통해 드라마는 처음부터 형사라는 직업이 갖는 삶의 페이소스를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히트’의 경우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싱거워서인지 그 효과는 반감된다.

‘히트’, 멜로나 전문직 아닌 형사에 집중해야
이러한 비판들을 감지했기 때문일까. 그간 히트 팀의 빛나는 캐릭터들에 가려져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영두(김정민)가 사건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현재 진행되는 ‘히트’는 이전 에피소드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김영두란 캐릭터가 다른 점은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희화화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차수경이란 여성 강력반 반장 캐릭터를 위시해 김재윤과 히트 팀원들은 모두 조금씩은 만화 같은 면면을 보여왔다. 그 아기자기한 맛이 ‘히트’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형사라는 직업상 총과 칼이 날아다니는 현장 속에서 그것은 또한 단점도 된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김영두는 다르다. 그는 진짜 형사 같다. 평상시엔 한 여성을 짝사랑해온 평범한 남성처럼 보이지만 급박한 상황에 들어가면 거칠고 과격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는 과거의 형사였지 지금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가 살해당한 연쇄 성범죄자와 벌인 난투극은 과거엔 수사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유력한 용의자로 자신의 발목을 쥔다. 형사라는 직업이 가진 이중성, 즉 법을 지키기 위한 폭력과 범법 사이에서 김영두라는 캐릭터는 이 드라마 속에서 좀더 진전된 에피소드를 끄집어낼 가능성이 있다.

전문직 드라마와 멜로를 같이 끌고 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히트’는 저 ‘외과의사 봉달희’의 길을 예고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까지 주목되어온 에피소드들은 뒤통수를 치는 놀라운 스토리보다는 ‘형사들의 애환’쪽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차수경이란 형사가 갖는 여성성의 억압, 장형사가 보여준 형사란 직업의 현실, 조과장과 최반장이 그려낸 형사와 범인간에 벌어지는 미묘한 관계 같은 것은 모두 형사란 직업이 부여한 어려움이다. 이것은 저 ‘외과의사 봉달희’가 의사들의 인간적인 고민을 다룬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히트’의 멜로 역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형사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안 되는가 하는 점이다. 게다가 그 대상이 검사라면 미묘한 직업적 관계 속에서 멜로와 전문직이 부딪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히트’는 이제 더 이상 멜로니 전문직이니 하는 것에 대한 소모적인 비판을 끝내고 오로지 형사라는 직업에 더 충실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것이 현재 ‘히트’가 처한 고민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대화형 개그가 담은 개그맨의 진심

언제부턴가 개그맨들은 자기 현실을 개그의 한 요소로 끼워 넣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중간에 어색해지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애드립. “이거 또 편집인데...” 물론 그 어색한 장면은 편집되지 않는다. 웃기지 않는 상황을 애드립 한 방으로 뒤집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집의 공포’라는 소재는 오랜 전통을 가진 개그맨들의 단골 메뉴가 되어버렸다.

개그맨, 시청자들과 대화를 시작하다
이러한 경향은 여타의 공개개그 프로그램 중에서도 ‘개그콘서트’에서 유독 돋보이는데 ‘마빡이’를 비롯해, ‘착한 녀석들’, ‘개그두뇌 트레이닝’,‘개그전사 300’등은 그 계보 상에 있다. 이들 개그의 특징은 대화형 개그라는 점. 진정으로 상대방을 웃기기 위해서 자신의 상황을 100% 활용하는 이 개그들은 관객 혹은 시청자들을 향해 질문을 던지거나 심경을 토로한다.

물론 대화형 개그는 이제 일방향적 소통으로는 공감될 수 없는 작금의 상황을 반영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요즘은 UCC를 통해 시청자가 개그에 직접 참여하는 시대, 저들끼리 떠들고 저들끼리 웃긴다고 깔깔대는 개그는 이제 그만큼 효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개그맨들은 이제 옆으로 서지 않고 정면으로 서서 시청자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마빡이’, ‘착한 녀석들’ 편집이 두려워?
그들이 시청자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한 가지. “웃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빡이’는 시청자들을 웃게 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마빡을 때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 개그맨들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마치 자학처럼 보이지만 그 동작에는 개그맨들이 처한 실제 상황에 대한 진심이 담겨 있기에 공감의 틀이 만들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개그맨들이 처한 현실 또한 제각각의 캐릭터로 보여준다는 것. 마빡이(정종철)와 얼빡이(김시덕), 대빡이(김대범)가 힘겨운 동작을 하며 웃기려 안간힘을 쓸 때 갈빡이(박준형)는 쉬운 동작으로 관객을 웃긴다. 같은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층위를 만들어내자 이것은 단순한 개그맨들만의 현실이 아닌 사회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현실로 확장된다.

이들이 가진 직업으로 인해 생기는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조직에 몸담은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살아가는 강박관념과 유사하다. 누군가 그들에게 ‘웃기지 못하면(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편집 당한다(살아남지 못한다)’고 강요하는 현실을 이 개그는 꼬집고 있다.

그런 면에서 ‘착한 녀석들’은 그 강요하는 자에 대한 반란을 꿈꾼다. 개편을 앞에 둔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절대로 개편되지 않기 위해 안티 관객들의 입을 막거나, 심지어는 코너의 종료를 알리는 밴드의 음악연주를 못하게 막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억압된 이들 존재들이 보여주는 작은 반란은 현실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던져준다.

‘개그두뇌 트레이닝’, 간파 당한 개그 뒤집기
개그맨들이 웃기지 못하는 이유는 수많은 개그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그들이 만든 개그들이 이미 관객들에게 간파 당했기 때문이다. ‘개그두뇌 트레이닝’은 5초 후를 예측한다는 설정으로 이 상황을 전복시켜 버린다. 5초 후의 상황을 간파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는 관객을 개그 속으로 끌어들인 개그맨들은 거기에 오히려 급수를 매겨준다. “이 정도를 예측했으니 당신은 초급 수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쉽게 간파 당하며 썰렁한 분위기를 만들었던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쉬운 수준의 개그조차 이 형식 속에 들어가면 웃음을 유발한다. 거기에는 새로운 요소, ‘예측한 일이 벌어진다’는 기대감과, 개그맨과 관객간의 퀴즈대결형식 속에서 ‘맞췄다’는 만족감이 새롭게 창출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몸 개그’라는 새로운 형태의 개그가 필수적이 된다. 개그라는 언어적 기능에 충실한 웃음의 요소에 몸이라는 표현수단이 접목된 형태인 ‘몸 개그’는 과거의 저질이라 비난받던 슬랩스틱과는 다른 형태를 띤다. 슬랩스틱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맞고 넘어지는 동작을 보이는 반면에, ‘몸 개그’는 몸으로 언어의 한 부분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이것은 오히려 마임에 가까운 것이다.

‘몸 개그’는 따라서 ‘개그두뇌 트레이닝’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퀴즈 형식에서 단순히 말로 해결되는 해답은 그다지 우스운 상황을 연출하지 않지만 ‘몸으로 표현된 해답’은 그 장면 자체가 우스꽝스럽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코너가 이러한 형식을 가지고 하려는 이야기는 무얼까. 늘 간파되기에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상황 속에서 이 코너 역시 “웃기기 어렵다”는 말의 다른 표현을 하고 있다. 이 코너의 특징은 개그맨이 웃음을 준다기보다는 관객들이 ‘스스로 웃음을 찾는다’는 점이다. ‘웃기기 어려운 상황’을 개그맨들은 관객의 머릿속에 기대된 장면을 끄집어냄으로써 웃기는 상황으로의 바꾸어놓은 것이다.

‘개그전사 300’, 같은 현실 앞에 신인과 기성이 껴안다
더 어려운 상황은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해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신인들이 있다는 점이다. ‘개그전사 300’은 이 상황을 영화 ‘300’을 패러디해 보여준다. 기성개그맨들은 치고 들어오는 신인개그맨들에 맞서 자칭 새롭다는 아이디어를 끄집어낸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신인개그맨들의 왕(?)으로 등장하는 윤성호에 의해 ‘식상한 개그’로 치부된다.

기성개그맨들은 방패로 무대 한 구석에 수성의 자세를 유지하고 신인개그맨들이 등장해 공격(?)을 감행한다. 신인개그맨들의 개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개그콘서트 분석’ 코너이다. 기성 개그맨들을 하나씩 들추어내 그 면면을 비하하면서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이 코너는 ‘개그콘서트’의 자기반성시간이라 할 수 있다.

‘개그전사 300’은 마치 신인개그맨이 기성개그맨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신인개그맨들의 개그에 윤성호는 역시 “뻘쭘하다”는 말로 비판을 가한다. 이 코너의 진짜 의도는 신인개그맨들이 설 자리를 기성개그맨들이 마련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기성개그맨들은 사실 자신들을 비하해 신인개그맨들의 자리를 마련한 셈이 된다. 이로써 이들의 대결은 대결이 아니라 ‘웃기기 어려운’ 개그맨이란 자리에서 보여주는 선후배간의 끈끈함으로 재확인된다.

개그맨들이 개그하기 어려운 상황을 개그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상황과 연결해보면 이 개그가 우리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는 지금 무언가를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칼 쥔 사람들 앞에서 잘릴 걱정 앞에 놓인 사람들을 꼭 껴안아주는 따뜻함이 있다. 누구나 할말은 있고, 잘 될 수 있지만 단지 상황이 그걸 막는 현실에서도 할 말은 하자는 것이다. 이 웃기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개그맨들의 처절한 개그가 공감을 주는 건 그 속에 그네들의 진심이 담겨있고, 그 진심이 현실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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