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무서운데 웃긴다? 에너지 넘치는 문제작

 

간만에 보는 문제작이다. 무당, 퇴마, 귀신 같은 하나만 나와도 섬뜩해질 소재들이 <곡성>에는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러니 무서울 수밖에 없다. 공포와 스릴러가 주요 장르지만 나홍진 감독은 여기에 코미디적인 요소도 빼놓지 않았다. 마치 공포의 집에 들어가 호들갑을 떠는 납량특집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장면들이 곳곳에 깃들어 있어 숨 막힐 듯 소름 돋는 영화지만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사진출처:영화<곡성>

영화는 낚시를 하는 한 사내를 비춰주며 시작한다. 사내가 낚시 바늘에 미끼를 꿰는 장면은 <곡성>이라는 영화가 가진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끊임없이 주인공 종구(곽도원)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미끼를 던진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이야기들에 차츰 종구가 깊숙이 들어가고 그것은 결국 종구와 그 가족을 송두리째 삼켜버린다.

 

<곡성>을 문제작이라고 부르는 건 그 이야기가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귀신이나 퇴마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종구가 그러하듯 관객들도 갑자기 마을에 깃든 어두운 기운과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등장하는 무당은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종구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종구가 끊임없이 미궁 속에 빠져버리고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에너지가 커진다. 사실 3시간 짜리 영화에서 이토록 강력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곡성>이란 영화를 명쾌하게 해석하는 건 쉽지 않고 또 이 영화에 합당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렇게 난해한 문제를 미끼로 던져놓는 것 자체가 <곡성>이라는 영화의 힘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관객은 도대체 저런 일은 왜 벌어진 것일까를 궁구하면서 영화 속에 깊게 빠져든다. 그것은 마치 낚시 바늘에 걸린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관객이 누가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것과 닮아있다. 이유를 알기 위해 또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럴수록 낚시 바늘은 더 깊게 상처를 파고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영화가 건드리고 있는 건 믿음혹은 현혹에 대한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그러한 미지 앞에서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나홍진 감독은 그 미지의 공포들을 관객 앞에 죽 세워두고 우리를 현혹시킨다. 이 영화가 두렵지만 시선을 돌릴 수 없는 건, 미지의 세계 앞에 두렵지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곡성>은 그래서 나홍진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진 미끼처럼 느껴진다. 영화 자체가 하나의 미끼이기 때문에 일단 영화관에 들어서는 순간 헤어 나올 수 없는 미궁의 엄청난 에너지를 체험하게 된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영화 체험이 아닐 수 없다

<탐정 홍길동>, 한국형 판타지 히어로물의 탄생

 

사실 <탐정 홍길동>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낮설다. 홍길동이라는 고전적 영웅 서사의 인물에 탐정이라는 현대적인 직업(?)을 덧붙였으니 그런 낯선 느낌은 어쩔 수 없을 게다. 게다가 <탐정 홍길동>은 사극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대극이라고 할 만큼 현실적인 바탕을 내세우고 있지도 않다. 마치 <배트맨>의 고담 시티 같은 가상의 공간이 <탐정 홍길동>에도 주요 배경이 된다.

 

사진출처:영화<탐정 홍길동>

마치 프랭크 밀러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만들었던 <씬시티>를 우리 식으로 재해석한 것 같은 장르의 혼용과 만화와 실사의 결합이 놀랍게도 <탐정 홍길동>에는 그리 부자연스럽지 않게 시도되어 있다. 이야기는 그래서 배경보다는 홍길동(이제훈)이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에 맞춰지고 그가 속한 활빈당이라는 비밀조직과 그들이 대항하는 광은회의 대결구도가 영화의 주요골격이 된다.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사건 때문에 기억과 두려움을 모두 잃어버린 홍길동이 한 마을로 들어가 자신의 과거를 캐고 복수를 하는 일련의 단순한 과정들이 영화의 내용이지만, 영화는 의외로 흥미진진하다.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들이 무지막지한 액션들을 선보일 때 관객들은 그 비현실성도 잊은 채 카타르시스에 빠져든다.

 

이미 영화의 장르적 문법들에 익숙한 관객들은 <탐정 홍길동>이 아무 것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현실적 소재나 공간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게임을 하듯 인물들이 부딪치고 추리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또 어떤 반전을 이루는 그 과정들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는 그 캐릭터가 갖는 함의는 분명 존재했을 터다. 왜 이 현대적인 판타지 히어로물에 굳이 홍길동이라는 고전적 영웅 서사를 붙였는가 하는 건 활빈당이라는 그가 속한 조직의 성격과 맞닿아 있다.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싸우는 정의 조직.

 

바로 이 지점에서 <탐정 홍길동>은 하나도 직설적으로 현실적인 부분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우리네 현대사의 현실성을 상징적으로 유추하게 만든다. TV를 통해 나오는 정치인의 모습이나 군인의 모습은 80년대의 어느 한 시점을 떠올리게 하고, 광은회가 한 마을에 퍼붓는 엄청난 폭력 역시 우리네 현대사의 아픈 지점을 건드린다.

 

결국 <탐정 홍길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사건들은 우리네 뒤틀어진 현대사의 상징처럼 보인다. 무고한 마을 주민들이 있고 그들에 대한 엄청난 폭력과 착취가 행해지며 그렇게 얻어진 부는 정치권과 군부에 맞닿아 있다. <탐정 홍길동>은 어쩌면 현대사를 겪어온 우리네 심연 속 어느 마을로 찾아가 그 아픈 기억들을 헤집고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이를 극복하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영화는 전형적인 판타지 히어로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어찌 보면 서구의 장르적 문법이라고 할 수 있는 갱스터 무비의 성격을 우리 식으로 해석한 점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대목이다. 하지만 <탐정 홍길동>은 이런 장르적 재미를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그 안에 우리네 정서와 메시지들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수작이라 할만하다. <늑대소년>에서 어떤 장르적 경계를 허무는 실험을 보였던 조성희 감독은 <탐정 홍길동>을 통해 한층 더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 구축해 보여주고 있다.

<시빌워>, 무엇이 마블의 압승을 만들었나

 

새로 개봉한 마블사의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이하 시빌워)>는 여러모로 지난 3월 개봉했던 DC 코믹스의 <배트맨 대 슈퍼맨>을 떠올리게 한다. 어벤져스와 저스티스 리그로 뭉쳐 심지어 외계인들과 싸우던 슈퍼히어로들은 이제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끼리의 대결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출처:캡틴 아메리카-시빌워

이렇게 대결의 상대가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 바뀌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너무 많은 슈퍼히어로물들이 쏟아져 나와 이제는 비슷한 패턴들이 생긴데다가 이제는 악당 대 슈퍼히어로라는 대결의 스토리텔링이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현재의 달라진 세계의 정세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냉전시대에서 한참 벗어나 자유롭게 교류되는 지구촌에서 이제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게 되었다. 테러리즘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 희미해진 경계 사이로 넘나들며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력해진 한 국가의 힘은 세계 정의를 부르짖지만 때로는 그것이 약소국을 파괴하는 또 다른 폭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빌워><배트맨 대 슈퍼맨> 모두 그 이야기의 전제로 슈퍼히어로들이 전 지구적인 적들과 맞서 싸우는 그 과정에서 무고하게 죽어나가는 인명이라는 딜레마를 깔아놓는 건 그래서다. 슈퍼맨이 우주에서 날아와 지구를 구한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그가 불러들인 우주인들의 전쟁에 지구가 황폐화되어간다는 걸 인식한 배트맨이 복수를 꿈꾸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이야기나, 슈퍼히어로가 가진 힘의 통제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어 대결하는 <시빌워>는 그래서 동일한 전제 위의 다른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배트맨 대 슈퍼맨>이 전반의 흥미진진한 대결구도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로 가면서 요령부득의 결말을 보여주어 전 세계 관객들을 실망시킨 것과 달리, <시빌워>는 캡틴 아메리카로 대표되는 자유파와 아이언맨으로 대표되는 통제파가 끝까지 대결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훨씬 더 흥미로웠다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선과 악의 대결 같은 평이한 결말로 흘러가지 않고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의 차이가 팽팽히 대결함으로써 어떤 논점들을 관객들이 선택하게 한 것은 <시빌워>의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렇게 갈라진 슈퍼히어로들 때문에 관객은 혼란을 느끼게 되지만, 바로 그 혼란이야말로 어느 한쪽을 선택해 다른 한쪽을 적으로 상정하는 흑백논리를 넘어서게 해주는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그래서인지 팽팽한 대결 속에서도 슈퍼히어로들이 어떤 유머를 보여주는 장면이나, 이 대결을 야기한 인물에 대해 처절한 응징이 아닌 법적 절차와 선택을 요구하는 장면들은 대결양상을 충분히 사변적으로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공동의 적을 세워 대결을 멈추는 <배트맨 대 슈퍼맨>의 이야기보다는 공감대가 커지는 이유다.

 

이런 메시지를 제대로 담으면서도 영화는 관객들의 주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 슈퍼히어로들끼리의 대결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대결하고, 스파이더맨과 앤트맨이 한 판 붙는 그 스펙터클은 충분히 즐거우면서도 유머가 넘쳐난다. 결국 DC와 마블의 슈퍼히어로 대결 이야기의 성패를 가른 건 그 균형 감각이다. 볼거리와 대결 양상이 선명하게 보이면서도 시대를 통과하는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 확실히 마블사 <시빌워>의 압승이다.

중국에 최적화된 <몽상합화인>, 장태유 감독의 차이나드림

 

북경에서 열린 장태유 감독의 <몽상합화인> 시사회에 쏠린 중국인들의 관심은 컸다. <별에서 온 그대>PD로서 많은 제작자들이 러브콜을 보냈던 장태유 감독이다. 그러니 그가 만든 영화에 대한 기대감 역시 클 수밖에 없다.

 


장태유 감독(사진출처:위에화 엔터테인먼트)

현장에 온 중국기자는 영화가 상영되기 전 <몽상합화인>에 대해 “<별에서 온 그대>처럼 초월적인 존재가 등장하느냐고 물었다. 장태유 감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몽상합화인>은 지극히 평범한 중국인들이 등장한다고 했다.

 

영화의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였지만 장태유 감독은 이런 장르가 중국에서는 낯선 장르라고 말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들이야 늘 있었겠지만 아마도 평범한 여성의 성공스토리를 담은 로맨틱 코미디가 낯선 장르라는 얘기였을 게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만 두고 보면 소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작품이 얼마나 중국에 최적화된 영화인가 하는 게 단박에 느껴졌다. 중국의 한 시골에서 자라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뉴욕까지 가게 되지만 결국 실패하고 돌아와 중국에서 MBA 과정을 밟으며 차이나 드림을 이뤄간다는 이야기다.

 

아메리칸 드림에 대응하는 차이나 드림을 넣었다는 건 현재 변화하고 있는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서 중국을 그대로 영화 속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평범한 여성이 한 교수의 지도아래 하나하나 사업을 일으키고 키워나가는 과정은 일종의 스타트업에 대한 가이드라인 역할도 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적인 효과를 갖고 있다고 해도 이 영화는 상업영화로서의 코미디, 감동 같은 많은 정서적 감흥을 주는 요소들을 거의 다 갖추고 있다.

 

즉 한 평범한 여성의 좌충우돌 성공기를 웃고 울며 따라가다 보면 차이나 드림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메시지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영어 자막으로 봐도 이해될 만큼 대단히 쉽고 빠른 전개로 흘러가지만 요소요소의 감정들을 놓치지 않고 살려나가는 점은 역시 장태유 감독의 저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느껴졌던 이야기들이 점점 인물에 몰입하게 되고 그들의 성장을 보면서 빠져드는 과정들은 사실 할리우드의 그 어떤 시각적 스펙터클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장태유 감독은 보여주기보다는 캐릭터에 빠져들기를 선택했다고 보인다.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인들을 저격했던 그 취향들, 이를테면 여성들의 관점에 최적화되어 있는 유쾌함과 성공에 대한 욕망 같은 것들이 <몽상합화인>에는 잘 녹아들어 있었다.

 

사실 중국과 우리의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몽상합화인>의 중국에서의 성공을 미리 예단하기는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다가오는 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확실히 <몽상합화인>이 정서적 공감대를 주고 있다는 것을 중국 현지의 시사회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중국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한참 웃다가 뒷부분에 가서는 눈물을 짓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몽상합화인>은 우리가 갖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많은 노하우들을 그냥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중국인의 감성에 맞게 재구성해낸 작품이다. 이미 웨이보 등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지대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만일 이 영화가 중국에서 성공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장태유 감독의 철저한 현지화 전략 덕분일 것이다. 장태유 감독의 차이나드림. 그것은 과연 많은 중국 진출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괜찮은 성공사례로 남을 수 있을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