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대첩’, 이 퓨전사극은 무엇이 달라 정주행을 부르나

혼례대첩

퓨전사극은 뻔하다? 글쎄 적어도 KBS 월화드라마 <혼례대첩>은 예외다. 아니 예외 정도가 아니라 이 퓨전사극은 과거의 것들과 확연히 선을 긋는 진화의 면면들을 갖췄다. 거기에는 몇 가지 근거들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옛이야기 사극’을 흥미롭게도 복원해냈다는 점이다. 사극하면 언제부턴가 옛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와 관련된 어떤 것이라는 경향이 생겼다. 역사를 제대로 다루는 정통사극, 역사와 상상력을 적절히 섞은 퓨전사극, 현대적 장르를 옛 역사적 시공간에서 재해석하는 장르사극 등등. 그래서 역사에 무게를 주면 무거워지고 상상력에 무게를 주면 가벼워지는 방식의 사극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과거에 사극 중에는 <전설의 고향>처럼 옛이야기나 설화 등을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것처럼 풀어내는 사극도 있었다. <혼례대첩>은 바로 그 “옛날 옛적에...” 하며 전개되는 옛이야기 같은 면모들이 있다. 등장하는 임금(조한철)이 그저 ‘임금’으로 불리는 것도 그렇고, 특히 ‘맹박사댁 늙은 아씨들’ 결혼시키기 서사 같은 게 그렇다. 또 혼례 첫날 공주가 사망하는 사건을 겪어 재가도 못하고 출사도 못하게 되어 ‘울분남’이 된 심정우(로운)의 이야기도 그런 푸근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옛이야기의 느낌을 준다. 

 

이 옛이야기 같은 사극은 그래서 편안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마치 심정우에게 갑자기 닥친 저주를 정순덕(조이현)이라는 인물과 만나 인연을 엮어가며 풀어내는 수수께끼 같은 재미가 있다. 겁도 많고 무술 실력은 아예 없지만 뭐든 글로 쉽게 배우고 익히는 심정우는 그래서 천재과에 속하는 주인공으로 복잡미묘한 사건들을 풀어나간다. 

 

결국 정순덕이 좌상 조영배(이혜영)의 며느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래서 좌상이 역모를 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저 살인죄로 처벌하기 위해 임금을 설득시키고 또 묘안을 제시하는 심정우는 풀어야할 난관들을 재치와 슬기로 풀어내는 옛이야기 주인공을 닮았다. 그는 조선사회의 완강한 유교적 문화 속에서 울분남이 된 자신이 양반집(그것도 좌상댁의) 과부 며느리인 정순덕과의 사랑을 이룰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야 하고, 또 공주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풀어냄으로써 임금의 정적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몰입감을 줄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이 이야기를 구현해내는 데 있어서 미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장센을 사극에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모든 시청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눈이 즐거운’ 사극이다. 연등회나 단오날 풍경은 그 아름다운 등불들과 그네 타고 씨름하는 풍속들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처럼 드라마에 담겨졌다. 색감이 뛰어난데다, 조명이 더해지고 게다가 색색의 한복들이 멋을 살린 이 드라마의 미적인 연출은 아마도 해외에서 보면 반색할만한 것일 게다. 당장 한국에 와서 한복을 입어보고 고궁을 걸어보고 싶을 만큼. 

 

이러한 미적인 완성도를 더해 넣자, 퓨전사극이라고 하면 어딘지 가볍게 느껴졌던 것들이 무게감을 갖게 됐다. <혼례대첩>은 물론 보는 이들을 계속 미소짓게 만드는 코미디적 요소들이 곳곳에 등장하지만, 심정우와 정순덕이 때론 진지해지고 애틋해지는 순간에는 아름다운 한옥 정경과 어우러져 기막힌 심도를 만들어낸다. 고즈넉한 한옥 대청마루에 앉아 고개를 한껏 숙인 소나무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래서 그 정조까지 담아낸 한 폭의 풍속화 같은 느낌을 준다. 

 

세 번째는 현대적인 연출과 균형감 있는 연기자들의 연기다. 이 드라마는 특이하게도 매회 도입 부분에 현대적인 로맨틱 코미디에서나 자주 쓰던 ‘인터뷰 형식’의 연출이 등장한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이 연출방식은, 그 회차에 벌어질 사건 속에서 이 인물들이 어떤 역할을 할 거라는 걸 암시하면서, 동시에 이 작품이 사극이긴 하지만 현대적인 장르적 해석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걸 분명하게 해준다. 또 연등회에서 ‘광부1호’ ‘광부2호’ 같은 지칭이 등장하는 대목은, <짝> 같은 연애 리얼리티에 대한 패러디로서 이 작품이 가진 연출의 발랄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자유자재로 풀어내는 연출의 묘미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도 균형감 있는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박씨부인 역할의 박지영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계속 이어가는 강력한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준다면, 임금 역할의 조한철은 준엄한 권위를 내보이다가도 순식간에 긴장을 풀어냄으로써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양면을 쥐락펴락 연기해낸다. 맹박사댁 조씨부인(최희진)이 엄격한 자애로움을 드러낸다면, 그 딸들인 맹하나(정신혜), 맹두리(박지원), 맹삼순(정보민)은 저마다 톡톡 튀는 개성으로 시청자들을 기분좋게 만든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칭찬받아 마땅한 연기자들은 주인공들이 로운과 조이현이 아닐 수 없다. ‘안구 정화’의 배우로 ‘얼굴 공격’만으로도 팬들을 반색하게 만드는 로운은 이 작품에서 진지함과 장난끼 가득한 양면을 보여주면서 연기의 폭을 넓혔다. ‘능청스러움’을 더한 연기는 앞으로 이 연기자의 연기에 보다 다채로운 면들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주목받았던 조이현은 이 작품을 통해 한없이 귀여우면서도 주체적인 면과 동시에 양반가 며느리로서의 기품까지 역할에 부여하는 연기를 보여줬다. 

 

그래서일까. <혼례대첩>을 애초 그저 그런 퓨전사극이라 여겼다 막상 보고 난 이들이 정주행을 하게되는 건 당연해보인다. 이건 그저 그런 퓨전사극이 아니라, 퓨전사극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역사의 진지함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고, 또 그렇다고 상상력의 가벼움으로 한없이 휘발되지 않는 ‘옛이야기’ 같은 매력을 복원한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차근 차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그 맛이 오랜만에 떠올랐으니. (사진:KBS)

‘사랑한다고 말해줘’, 신현빈의 연기와 정우성의 그림이 말해주는 것

사랑한다고 말해줘

“공연하면서 알았어요.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데 왜 위로받는 느낌이 드는지. 이렇게 내가 별거 아닌 말을 해도 한 단어, 한 단어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정모은(신현빈)은 연극을 보러와준 차진우(정우성)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다친 배우 대신 갑작스레 오르게 된 무대. 정모은은 그 낯설음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 순간 객석에 있는 차진우가 정모은에게 수어로 말한다. ‘잘 해낼 거라고 믿어요’라고. 정모은은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연기를 하게 된다. 

 

이 장면은 <사랑한다고 말해줘>가 그리고 있는 사랑과 소통의 이야기의 특별한 결을 보여준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인 정모은과 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사람인 차진우의 사랑. 그들은 너무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니 그 일상적 관계조차 편할 수가 없다. 정모은이 애써 배운 어설픈 수어로 소통하려 해도 엇나가기 일쑤고, 보다 정확한 표현을 전하기 위해 핸드폰에 글자를 찍어가며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소통하는 것이 반드시 말을 통한 표현일 필요는 없다고 이 장면은 말해준다. 정모은의 말처럼, 듣지 못하는 차진우는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정모은이 말할 때 그 입모양을 읽으려 집중한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읽어내려 한다. 말이 너무나 익숙해 아무렇게나 내뱉고 아무렇게나 지나치곤 하는 우리에게 차진우의 ‘애쓰는 집중’은 그 마음을 읽게 만든다. 한 단어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사랑한다 말해줘>가 정모은이라는 인물을 굳이 스튜어디스 일을 포기하고 대신 연기의 꿈을 시작하려는 배우로 세운 것도 그런 의미가 있다. 그는 배우라고는 하지만 단역, 엑스트라로 불린다. 그래서 배역의 이름도 없고 심지어 대사도 거의 없다. 그러니 그 세계에서는 마치 차진우처럼 침묵 속에 있는 사람 같다. 대사가 없어도 배역의 이름도 없어도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해내려는 마음이 있고, 그렇게 꿈을 향해 가는 진심이 있지만 그걸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듣지 못하는 침묵의 세상에 사는 차진우는 정모은의 연기를 말이 아닌 몸의 언어로 그 마음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그래서 말이 아니다. 누군가의 몸이 하는 말을 애써 들어준다. 제주도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보다가 끝내 생을 마감한 어느 사내가 온 몸으로 전하는 말을 들을 줄 알고, 몸이 아파 친구와 함께 학교 가는 게 소원이었지만 끝내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아이가 생전에 전한 말을 들을 줄 안다.

 

그는 부재한 것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침묵한다고 말이 없는 것이 아니고, 하지 못한다고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또 사라졌다고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도. 그래서 이제는 부재한 그들을, 그들이 평소 마음이 머물던 그 곳에 벽화로 되살려 놓는다. 그 마음들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걸 새겨 넣는다. 한 단어 한 단어 애써 들으려하듯, 붓 한 획 한 획에 애를 쓰며.

 

하지만 세속적인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하고 차별한다. 오랜만에 스튜어디스 제복을 입고 공항에서 그 역할을 연기하는 정모은을 본 옛 회사 동료 스튜어디스는 단역에 대사 하나 없는 그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그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정모은의 연기에 대한 꿈이나 노력 같은 걸 보지 못한다. 볼 수 있지만 보지 못하고 들을 수 있지만 듣지 못하는 세상이다. 

 

반면 진정한 예술의 세계는 이런 속물적 관점을 벗어나 보지 못해도 볼 수 있고 듣지 못해도 들을 수 있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과 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 만나 그 불편할 수 있는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건 그래서 이들이 세속적인 세상 바깥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굳이 드라마가 정모은을 연기의 세계에 꿈을 가진 인물로 세우고, 차진우를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세운 이유다. 

 

예술은 속물적 세상에 무뎌진 우리의 감각들을 다시금 깨워주는 힘이 있다. 그래서 정모은과 차진우가 하는 사랑과 소통의 과정은 바로 그 예술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서로 만나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속물적 세상에 무뎌졌던 우리의 눈과 귀를 다시 열어주고 단지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놓여진 마음들을 읽게 해준다. 사랑스런 것들 앞에서조차 그걸 보지 못하고 사랑한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눈과 귀를 열어준다. (사진:지니TV)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질문, 우린 과연 진짜 말하고 듣고 있는 걸까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 얘기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정모은(신현빈)은 차진우(정우성)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저 평범하게 누구나 할 법한 그 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차진우는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농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듣는다’는 건 그래서 다른 의미로 들린다. 그저 소리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마음’일 수 있다는.

 

그 날은 정모은에게는 너무나 힘들 날이었다. 배역 캐스팅이 되어 기뻐하며 촬영장에 갔지만 알고 보니 뺨 맞고 물세례를 받는 역할이라 빠른 촬영을 위한 더블 캐스팅이었다. 그래서 수없이 번갈아가며 뺨을 맞고 물세례를 받으며 촬영을 끝냈지만 자신이 나올지 더블 캐스팅된 다른 엑스트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없이 초라해진 마음,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모은은 차진우를 떠올린다. 힘들 때 부르면 오겠다고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문자를 남겨도 보지 않는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던 차에,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정모은은 집 앞에 그가 서 있는 걸 보고는 꾹꾹 눌렀던 감정이 터져나온다. 돌아선 그의 등을 살짝 잡은 채 눈물을 쏟아낸다. 정모은은 돌아볼까봐 등뒤로 숨으려 하고, 차진우 역시 그에게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는 걸 직감하며 그 눈물을 보이기 싫어하는 정모은을 위해 돌아서지 않는다. 

 

감정을 추스른 정모은은 자신도 모르게 차진우에게 그 날의 일들을 늘어놓는다. “저 오늘 처음으로 대사있는 역할 촬영한다고 엄청 신났었거든요. 근데 막상 가보니까 긴장도 많이 되고 정신도 하나도 없고 잘 하고 왔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좀 서러웠나 봐요. 그래도 씩씩하게 잘 참고...” 그렇게 이야기를 늘어놓던 정모은은 깨닫는다. 말을 듣지 못하는 차진우에게 자신의 말이 너무 많았다는 걸.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차진우는 아니라며 미소를 지어주고는 핸드폰에 이렇게 찍어준다. ‘수고했어요. 잘 쉬길 바라요.’ 그 말은 힘겨운 날을 보낸 정모은에게 작지 않은 위로가 됐을 게다. 

 

그래서 훗날 만나 그 날 일을 이야기하며 고맙다는 정모은에게 차진우는 의외의 답변을 핸드폰을 찍어 보여준다. ‘사실... 거의 듣지 못했어요.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고 노력은 했는데...’ 실상은 너무 어둡고 말이 빨라서 입술 모양을 읽을 수 없었다는 거였다. 하지만 정모은은 그 답변에서 ‘노력’이라는 단어에 더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차진우에게 이렇게 익숙지 않은 수어로 말한다. “더 고마워요. 내 얘기를 들으려고 노력해줘서.”

 

자신이 듣지 못해 대화를 하는 것이 답답하지 않냐는 차진우의 물음에 정모은 역시 의외의 말을 꺼낸다. “솔직히 저는 핸드폰 없이 얘기하는 것도 좋아요. 왜 그런지 한 마디로 설명할 순 없지만 정말이에요. 음.. 나도 모르게 한 혼잣말도 다 알아주는 것 같고. 그래서 가끔 잊어버려요. 당신이 듣지 못한다는 거.” 그러면서 오히려 차진우에게 수어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수어를 잘 못해서 힘드시겠지만.”

 

타인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건 무슨 의미일까. 정모은이 말하는 ‘듣는다’는 건 단지 귀로 소리를 듣는다는 그런 의미는 아닐게다. 우리는 매일 같이 많은 말들을 듣지만 과연 그건 진짜 듣는 걸까. 그저 지나가는 소리들일 뿐인 건 아닐까. 들을 수 있어도 듣지 못하는 건 정모은이 콕 짚어낸 것처럼 ‘노력’이 없어서다. 마음을 쓰지 않으면 들을 수 있는 것도 듣지 못한다. 

 

그래서 정모은의 자기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해줘서 더 고맙다는 그 말을 곱씹으며, 차진우는 생각한다. ‘딴 생각에 빠지는 순간 눈앞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무례한 사람이 되고 만다.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되묻기가 미안해 가끔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까지 다시 말해달라 부탁하지 않는 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믿었으니까. 그래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듣기 위해 노력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껏 무엇을 위해 마음에 선을 긋고 누구로부터 거리를 두려 애썼던 걸까. 나는 듣지 못하는 게 아니라 듣고 싶은 이야기에만 귀 기울이며 살아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차진우의 이 생각은 <사랑한다고 말해줘>라는 멜로드라마가 손으로 말하는 농인 화가 차진우와 마음으로 듣는 배우 정모은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진짜 건네려는 질문을 끄집어낸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듣고 말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이 사랑은 더 설레면서도 뭉클하다. 그저 쉽게 ‘사랑한다’는 말로는 다 담겨질 수 없는 진심을, 그래서 말이 아니라도 더 노력하고 마음을 다 하는 것으로 전해질 수 있는 진심을 꺼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모은이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완벽히 알아듣지 못해도 차진우와 핸드폰 없이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느끼는 그 순간들처럼.(사진:ENA)

‘운수 오진 날’이 담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의미

운수 오진 날

“저, 고통을 못 느껴요.” 금혁수(유연석)는 사고로 편도체에 문제가 생겨 공포도 고통도 못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금혁수(유연석)는 그걸 ‘신기한 능력’이라며, 운전을 하고 있는 택시기사 오택(이성민)에게 굳이 손바닥을 칼로 긋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며 오택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른다. 마치 제 손을 긋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금혁수는 무표정하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운수 오진 날>이 이 살벌한 논스톱 스릴러를 통해 담고 있는 게 무엇인가를 정확히 드러낸다. 그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다. 한 평범한 택시기사가 연쇄살인범을 손님으로 태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스릴러의 근간은 바로 금혁수라는 사이코패스에서 나온다. 별 이유 없이 재미로 무고한 이들을 살해한 이 사이코패스는 이제 해외로 밀항을 하려 하고, 거기에 택시기사가 말려들게 된 것. 

 

금혁수가 살인까지 아무런 감정없이 하게 된 건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저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다. 하지만 그와 달리 오택은 자신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이코패스가 자랑하듯 제 손을 긋는 장면을 보면서도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 금혁수와 오택 사이에는 고통과 공포에 대한 간극이 극명하게 존재한다. 바로 이 간극이 이 작품의 스릴러가 극대화된 이유다.

 

휴게소에서 누군가 시비를 걸어와 분노를 느낀다고 해도 오택은 화가 날 뿐 그 이상의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만일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이 타인에게 미칠 고통을 그가 알고 있고, 또 그 폭력이 자칫 자신에게도 돌아올 상처에 대한 공포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고통도 공포도 없는 금혁수는 다르다. 그는 기분 나쁘게 한 그를 그저 살해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마치 자신이 대신 한 것이라는 식의 무용담처럼 오택에게 늘어놓는다. 

 

<운수 오진 날>은 이 차이에서 오는 공포감을 다양한 상황 속에서 스릴러로 꺼내놓는다. 오택이 지나는 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금혁수 모르게 비상등을 켜고 달리고, 무언가 위급한 상황에 놓였다는 걸 알게 된 한 차량의 사내들은 두려우면서도 오택을 도우려 한다. 오택이 처한 고통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혁수는 그들마저 잔혹하게 살해한다. 

 

원작 웹툰에는 없는 캐릭터지만 드라마 리메이크에 새롭게 창조된 황순규(이정은)는 그래서 금혁수와는 정반대에 서 있는 인물이다. 아들을 죽인 금혁수를 추적하는 이 엄마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만큼 오택이 느낄 고통도 공감한다. 금혁수가 오택의 딸마저 납치 감금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복수와 처벌만큼 딸에 대한 오택의 절절한 마음을 이해한다. 금혁수에게 협박받으며 어쩔 수 없이 그를 돕는 오택이 자신마저 따돌리려 해도 그걸 이해하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어떤 지를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아는 황순규는 금혁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공격받아 죽어가는 한 사내를 발견한다. 황순규는 죽어가는 사내의 손을 잡고는 하는 말은 그래서 너무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내가 옆에 같이 있어 줄게요. 좋은 것만 생각해.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들 떠올려 봐요.” 그건 마치 죽어가는 아들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사내를 빌어 하는 말처럼 들린다. 

 

아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기에 낯선 사내의 고통 또한 절감하며 그 옆을 지켜주려는 황순규의 모습은, 아무런 고통도 공포도 없는 걸 ‘신기한 능력’이라 치부하며 살인행각을 벌이는 금혁수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리고 그 공감은 죽어가는 사내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 황순규의 말을 듣던 사내가 힘겹게 그의 손을 잡아주는 것.  

 

<운수 오진 날>은 눈을 뗄 수 없는 스릴러의 진가를 보여준다. 그래서 전체 10부작 중 6부작까지 공개했지만 그 6회를 단번에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몰입이 나오는 건 여기 등장하는 금혁수라는 괴물에 의해 끔찍한 고통과 공포를 겪는 오택이나 황순규 그리고 무고한 피해자들을 바라보며 그 고통과 공포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운수 오진 날>은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의 고통만큼 타인의 고통이 어떠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거다. 그리고 이건 굳이 연쇄살인범 같은 살벌한 범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게다. 자신이 하는 어떤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와 고통을 주는 지 모르는 이들을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서 마주하고 있으니.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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