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 업고 튀어’로 연기 앙상블의 힘을 보여준 김혜윤

선재 업고 튀어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최곤(박중훈)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하는 이 대사는 스타가 빛날 수 있는 게 무엇 때문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 스스로 빛나서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를 빛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빛난다는 것이다. ‘라디오스타’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게 스타를 빛나게 하는 존재로서 매니저 박민수를 말하지만,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최애인 유명 아티스트 류선재(변우석)를 빛나게 하는 존재는 다름 아닌 임솔(김혜윤) 같은 열성 팬들이라고 말한다. 갑작스러운 선재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 임솔이 선재를 되살리고싶은 그 간절한 마음이 더해져 15년 전 과거로 되돌아가고 그렇게 과거를 바꿔 현재의 비극을 막으려는 이야기가 바로 ‘선재 업고 튀어’이기 때문이다. 최근 타임리프 같은 판타지를 장치로 활용한 드라마들이 나오고 있는데, ‘선재 업고 튀어’는 여기에 ‘팬심’이라는 강력한 동인을 소재로 끌어왔다. 최애와 팬의 사이가 그것이다. 팬이라면 최애의 비극을 막기 위해 뭐든 못할까. 

 

‘선재 업고 튀어’는 이처럼 타임리프라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장르로 끌어왔지만, 그 비현실이 만드는 황당함 같은 것들을, 그걸 훌쩍 뛰어넘는 팬심으로 채우는 드라마다. 팬들이라면 심지어 가상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진짜처럼 받아들일 정도로 마음을 다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선재 업고 튀어’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두 가지다. 임솔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선재에게 진심인가 하는 걸 믿게 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재가 임솔이 그렇게 최애할 정도로 멋지게 느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 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걸 소화해내는 연기력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선재 업고 튀어’는 그걸 성공시킴으로써 최근 시청률 급상승과 더불어 화제성에서 압도하는 드라마로 떠올랐다. ‘눈물의 여왕’이 방영 내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던 화제성을 그대로 이어받는 드라마가 됐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5월 1주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결과 1위의 드라마로 등극한 것. 또 주인공 역할인 변우석과 김혜윤에 대한 화제성도 급상승해 각각 출연자 화제성 1,2위를 차지했다. 

 

변우석이 출연자 화제성에서 1위로 떠오른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변우석은 2017년부터 다양한 작품들에 얼굴을 보였지만 두드러졌던 건 2020년 ‘청춘기록’을 통해서였다. 그 후로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악역을 선보였지만 생각만큼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비로소 ‘선재 업고 튀어’로 현재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신인배우로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변우석이 이러한 인기를 순식간에 얻게 된 데는 물론 그가 가진 매력과 노력이 우선되었기 때문이지만 김혜윤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고 보인다. 김혜윤은 임솔 역할로 변우석이 맡은 선재를 더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줬다. 가만 있어도 멋진 배우이긴 하지만 끝없이 애정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김혜윤의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를 통해 변우석이라는 배우에 입덕하게 되는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선재 업고 튀어’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래서 처음 팬심을 공감시키는 김혜윤의 연기에 빠져들고, 그를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변우석에 스며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물론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선재 역시 임솔을 처음부터 사랑해온 첫사랑 순애보의 주인공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선재에 대한 매력이 갈수록 커졌고 그건 고스란히 변우석에 대한 인기로 이어졌다.

 

김혜윤은 지금껏 해온 작품들 속에서, 배역에 대한 몰입도가 좋고 그걸 표현하는데 있어서 군더더기가 없는데다 명확한 딕션에 의한 대사 전달력 또한 좋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래서 이번 ‘선재 업고 튀어’에서도 그렇지만 시시각각 감정 변화가 많은 연기에 있어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곤 했다. 때론 소녀처럼 수줍어했다가 때론 명랑하고 때론 슬픔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런 다양한 감정 표현들을 자유자재로 표현해내는 저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김혜윤의 첫 주연작이었던 ‘어쩌다 마주친 하루’는 이러한 그의 역량이 온전히 돋보인 작품이었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 만화 속 단역인 은단오와 자아를 가진 은단오 그리고 작가의 전작만화 속 은단오라는 1인3역을 연기했는데, 만화 속 세계를 그리고 있는 판타지의 난점까지 생각해본다면 이 작품이 김혜윤에게 얼마나 큰 도전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 때도 김혜윤은 특유의 다양한 감정연기를 선보이면서 극중 상대역할들을 돋보이게 했다. 이 작품에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로운, 이재욱 같은 배우들이 그 후로 인기가 급상승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혜윤은 이제 27세의 나이지만 2012년부터 다양한 단역, 조연 등을 거치며 배우로서의 길을 넓혀왔다. 공식 데뷔작은 2013년 SBS에서 방영된 ‘TV소설 삼생이’로 그 후로 ‘야왕’, ‘너의 목소리가 들려’, ‘수상한 가정부’, ‘왕가네 식구들’, ‘나쁜 녀석들’, ‘오만과 편견’, ‘펀치’, ‘닥터스’, ‘푸른바다의 전설’, ‘쓸쓸하고 찬란하시니 도깨비’ 등 다양한 작품들을 거쳤다. 꽤 유명한 성공작들이지만 대부분 단역을 했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던 김혜윤은 2018년 ‘SKY 캐슬’을 통해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이 작품을 연출한 조현탁 감독이 “김혜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설득시킨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는 드디어 주연으로서의 김혜윤이라는 배우의 역량을 분명히 보여줬고, 영화 ‘불도저를 탄 소녀’로 청룡영화상, 한국영화제작협회상, 대종상, 들꽃영화상 등에서 신인여우상을 휩쓸었다. 아직도 교복을 입고 나오는 학생 역할에 어울릴 정도로 동안인데다 20대의 나이지만 연기 폭은 꽤 넓다. ‘SKY캐슬’과 ‘어쩌다 발견한 하루’ 그리고 ‘불도저를 탄 소녀’의 캐릭터가 모두 상이한데다 그 연기 색깔도 다르다는 점은 이 배우가 가진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혜윤의 페르소나가 특히 우리에게 말해주는 건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는 ‘라디오스타’의 대사처럼 연기도 삶도 앙상블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그가 반짝반짝 빛나는 별로 떠오른 건, 그 역시 함께 연기해온 배우들을 빛나게 해주는 그의 연기 덕분이었다. 타인을 빛나게 해줌으로써 자신 또한 빛날 수 있다는 앙상블의 힘을 김혜윤만큼 잘 보여주는 배우도 없다. (글:국방일보, 사진:tvN)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지배종’으로 새로운 얼굴 보여준 한효주

지배종

큰 키에 잘 관리된 몸 그리고 작은 얼굴에 빛나는 피부까지... 딱 봐도 우리와는 다른 유전자를 가진 것 같은 배우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영상으로 볼 때마다 감탄하게 만드는 아우라를 가진 배우들을 직접 만나보면 너무나 다른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그건 화면과 실물 사이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배우들이 그 모습 자체가 아니라 작품 속 캐릭터라는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캐릭터에 몰입한 배우들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실제로 봤을 때 심지어 못알아볼 정도로 캐릭터의 색깔을 온전히 채우고 있는 배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효주는 그런 배우다. 작품을 하지 않을 때면 가볍게 차려 입고 여행을 다니는 걸 즐긴다는 이 배우는 그렇게 다녀도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동이’룰 촬영할 때 생긴 유명한 일화가 그걸 잘 말해준다. 어느 식당에 당시 함께 촬영했던 배수빈과 같이 갔는데 식당 아주머니들이 배수빈은 알아보면서 자신은 알아보지 못하더란다. 그래서 한효주가 머리를 묶으며 “저 동이에요”라고 말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그는 작품을 할 때마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다른 느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한다. 

 

물론 초창기 한효주 하면 우리에게는 인이 박혀 버린 하나의 이미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건 바로 ‘미소천사’다. 특유의 건치에 환한 미소가 잘 어울리는 한효주는 초창기 윤석호 감독의 ‘봄의 왈츠’나 ‘찬란한 유산’ 그리고 ‘동이’ 같은 작품들을 통해 건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배우로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주로 어려워도 슬퍼도 꿋꿋이 웃으며 살아가는 캔디형 이미지랄까. 특히 ‘동이’ 같은 사극으로 20대에 MBC 연기대상은 물론이고 백상예술대상 같은 상들을 휩쓸면서 한효주의 이미지는 바로 그 건강한 미소로 대변되는 단아하고 여성스런 이미지로 상당부분 굳어진 면이 있었다. 

 

하지만 한효주는 그 이미지 하나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2013년 영화 ‘감시자들’에서 그는 감시반의 신참에서 점점 전문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통해 설경규, 정우성 사이에서도 도드라진 연기를 선보였다. 또 2015년 개봉한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무려 123인 1역의 연인과 사랑에 빠지는 역할로 배우 21명과의 감정연기를 소화해냈다. 또 6년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었던 ‘W’를 통해서는 웹툰 속에서 튀어나온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 장르의 연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한효주의 다양한 시도에도 한 가지 고정된 연기 영역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멜로다. 그는 자타공인 멜로퀸으로서의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그건 살짝 미소만 지어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그의 외모와 이미지가 만들어준 축복이었지만, 배우로서 그런 틀은 족쇄나 다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작년과 올해 한효주의 행보는 이러한 족쇄를 확실히 끊어버리고 또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간 시간들이 아닐 수 없었다. 디즈니+에서 작년에 방영된 ‘무빙’과 올해 방영되고 있는 ‘지배종’에서의 한효주는 이전의 멜로퀸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다른 새로운 얼굴들이었으니 말이다. 

 

‘무빙’에서 한효주가 연기한 이미현이라는 인물은 젊어서는 안기부 엘리트 요원으로 활동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성장한 김봉석(이정하)의 어머니이자 김두식(조인성)의 아내로 돈가스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이다. 연령대의 폭이 넓을 수밖에 없고, 또 그 상황과 연령에 맞는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젊은 날의 이미현은 같은 안기부 엘리트 요원으로서 김두식과 함께 액션과 더불어 달달한 멜로를 그려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공중부양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그는 칩거해 평범한 돈가스 식당 사장이자 헌신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로 변신한다. 그렇지만 아들을 지켜내고 남편인 김두식을 구하기 위해 다시 총을 든 모습에서는 안기부 엘리트 요원다운 액션에 모성과 사랑이 더해진다. 그래서 그저 멜로 퀸이라는 평범한 수식어로는 규정할 수 없는 한 사람의 다양한 삶과 인생이 느껴지는 연기에 도전할 수 있게 됐고 한효주는 그걸 보기좋게 해낸다. 

 

‘지배종’은 이제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미소천사’로 불리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웃음기 빠진 모습으로 윤자유라는 인물을 설득시킨다. 2025년 생명공학기업 BF가 성공시킨 인공 배양육 기술을 두고 벌어지는 여러 각계의 욕망과 갈등을 다룬 이 작품에서 한효주는 이 새로운 근미래의 세계관을 단박에 몰입시키는 연기로 드라마의 문을 연다. 드라마 시작과 함께 BF의 기술을 윤자유가 소개하는 장면을 위해 한효주는 테드 영상을 연구하고 모든 대사를 외워 연기에 임했다고 한다. 이로써 윤자유가 보다 전문적이면서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걸 보여주면서 동시에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이 세계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물론 우채운(주지훈)이라는 인물과의 섬세한 감정 교류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한효주는 ‘지배종’을 통해 그간의 멜로 이미지에서 자유로워진 연기를 선보였다. 웃던 얼굴이 굳게 입을 다물자 진지함은 더 깊어졌다. 또한 시시각각 벌어지는 위기 속에서도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모습은 윤자유라는 인물이 얼마나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소신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줬다. 

 

‘지배종’을 통해 한효주의 연기가 보여주는 페르소나는 이 작품의 배역인 윤자유라는 이름에 그대로 녹아 있다고 여겨진다. 그는 이제 가슴을 설레게 하는 멜로는 물론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액션에, 치열한 심리를 보여주는 내면연기까지 자유로운 배우로 성장했다. 그 성장 과정이 우연이 아니고 매너리즘을 벗어난 부단한 도전과 치열한 노력 속에서 이뤄진 것이란 점에서 어떤 영역에서의 자유란 그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이 배우의 페르소나는 보여준다. 그저 미소 한 번 지으면 주변을 환하게 만드는 걸 타고난 이가 그 미소를 거두자 거기 가려져 있던 단단한 내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어떤 영역에서 지배종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자유로움을 얻기 위한 노력의 시간들이 전제 되어야 한다는 걸 한효주의 페르소나는 말해주고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디즈니+)

‘나혼자 산다’부터 ‘전현무계획’까지 가장 방송을 많이 하는 예능인

전현무계획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는 예능인은 누구일까. 유재석도 신동엽도 아니다. 바로 전현무다. 그는 현재 고정출연하는 프로그램만 무려 21편이다. 이게 가능한 건 그가 감당하는 프로그램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그는 ‘히든싱어’나 ‘팬텀싱어’, ‘트로트의 민족’ 같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맛깔나게 진행하는 MC이면서,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의 메인 출연자다. ‘강심장VS’나 ‘전지적 참견 시점’ 같은 웃음과 재미에 특화된 프로그램에서도 특유의 깐족과 재치를 자랑하지만, ‘톡파원 25시’나 ‘성적을 부탁해:티처스’, ‘선을 넘는 녀석들’ 같은 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진행 능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니 예능가에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런칭하면 몇 개 중 하나는 전현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의 영역은 전방위적이다. 

 

이게 가능해진 건 그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특유의 이력 때문이다. 흔히 ‘트민남(트렌드에 민감한 남자)’이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하듯 그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놀라운 추진력을 보여줬다. 손범수를 롤모델로 삼아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꿈을 일찍이 갖게 된 그는 그가 다니는 연세대학교에 들어갔고 거기서 선배 손범수가 했던 것처럼 대학방송국(YBS)에서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리고 2003년 조선일보 공채로 입사했지만 1주일만에 그만두고 YTN에 들어가 1년 간 앵커로 활동했고 2006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 들어갔다. 결국 손범수처럼 되겠다는 꿈을 끝없는 도전 끝에 이루게 된 셈이다. 기자부터 앵커, 아나운서를 모두 섭렵한 이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다. 향후 그가 정보나 지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도 특출난 진행능력을 선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나운서가 된 후 그는 그 직종의 역할이 방송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뉴스 앵커가 되려는 거라면 모를까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의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아나운서들의 자리를 연예인들이 점점 차지하기 시작했고, 프로그램을 여러 개 해도 같이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수입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작은 출연료(방송사에 소속된 직장인이라 당연한 일이지만)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방송국에서 벗어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려는 아나운서들이 생겨났고 그 중에는 연예인들처럼 교양은 물론이고 예능 프로그램에까지 진출하는 이른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들이 탄생했다. 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다 프리 선언을 한 김성주는 그 성공사례가 됐다. 특유의 스포츠 진행 능력이, 대결과 결과발표가 이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데서 유용한 능력이 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전현무는 KBS 아나운서 시절부터 차분히 아나테이너로의 전향을 준비한다. 마침 ‘비타민’이나 ‘스타골든벨’ 같은 교양과 맞물린 예능프로그램들이 나오던 시절에 그는 그런 예능 프로그램을 전담하다시피하며 자신의 이력을 쌓는다. 그러면서 때때로 아나운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촐싹대는 이른바 ‘깝’을 보여줘 그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 방식으로 오히려 큰 웃음을 준다. 그리고 2012년에 드디어 프리선언을 하고 KBS를 퇴사한 후에는 본격적인 예능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나운서라면 피해야 할 비호감, 밉상 캐릭터를 선보이면서 초반에는 팬과 더불어 많은 안티팬도 생겼지만 차츰 캐릭터가 정착되고 적당하게 선을 넘는 방법들을 찾아나가면서 전무후무한 방송인이자 예능인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경연 프로그램의 진행 능력을 인정받았고,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토크쇼는 물론이고 리얼 버라이어티, 관찰 예능까지 섭렵한 예능인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의 ‘트민남’ 캐릭터가 가장 도드라진 건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프로그램을 시대의 조류에 맞는 형태로 이끌어낸 점이다. ‘나 혼자 산다’는 전체 가구의 4분의 1이 1인가구로 들어온 시대에 혼자 사는 삶을 관찰카메라 방식으로 들여다 본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러한 취지가 갖는 명분의 이면에는, 연예인의 내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겠다는 리얼리티쇼의 태동이 있었다. 즉 리얼리티쇼를 하기 위한 명분으로서 1인 라이프를 앞세웠던 것. 하지만 점차 관찰카메라로 불리는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명분보다 중요해진 건 더 리얼한 내용들이었다. 노홍철이 하차하고 시청률이 떨어지는 추락기를 거치면서 일찍부터 합류해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전현무를 중심으로 기안84, 박나래, 이시언 같은 인물들이 영입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고정 출연자들을 중심으로 세우고 간간히 새로운 인물들을 소개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고정 출연자들 간의 케미가 리얼하게 만들어지는 과정들이 담기게 됐다. 리얼리티쇼에 캐릭터쇼가 더해진 느낌이랄까. 이 두 가지 형식 모두에 최적화된 전현무는 여러 위기 국면을 돌파하며 최근 다시 ‘나 혼자 산다’의 부흥기를 만든 장본인이 됐다. 트민남, 무스키아, 무든램지, 프레디 무큐리 같은 캐릭터들을 탄생시켰고, 박나래, 이장우와 함께 이른바 ‘팜유라인’을 만들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까지 먹방여행을 다니는 모습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최근 그는 여행유튜버인 곽튜브와 함께 무작정 길을 떠나 맛을 즐기는 ‘전현무계획’에 출연했다. ‘길바닥 먹큐멘터리’라는 프로그램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제목처럼 ‘무계획’과 ‘계획’을 넘나드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 예능의 영향을 받아 대본대로 움직이는 계획적인 프로그램들보다는 계획 없이 돌발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프로그램들이 더 주목받는 상황이다. ‘전현무계획’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예능 트렌드에 발맞추면서 동시에 기존 예능의 방식(계획이 있는)을 오가는 형태로 기획되었다. 그래서 ‘전현 무계획’을 바탕으로 길거리에서 아무 곳이나 무작장 찾아들어가 먹방을 선보이며 사람을 만나다가, ‘전현무 계획’으로 미리 계획한 누군가를 특정 장소에서 만나는 모습 또한 보여준다. 

 

‘전현무계획’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은 여러모로 아나운서에서 예능인으로, 캐릭터쇼에서 관찰예능으로 뻗어나가는 전현무의 강점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 같다. 계획을 하면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끈질긴 추진력을 보여주면서도, 때론 계획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유연함을 갖는 일.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분들이라면, 계획과 무계획을 넘나드는 전현무의 행보가 시사하는 점이 분명 있을 게다. (글:국방일보, 사진:MBN)

‘수사반장 1958’, 순수한 청년 형사라는 서민 영웅의 탄생

수사반장 1958

“파하-” 이제훈이 그렇게 웃는 모습에 최불암의 모습이 겹쳐진다. MBC ‘수사반장 1958’의 한 장면이다. 1971년부터 89년까지 방영됐던 레전드 드라마 ‘수사반장’. ‘수사반장 1958’은 그 리메이크작으로 극중 최불암이 연기했던 박영한 반장 역할을 이제훈이 맡았다. 당시 ‘수사반장’에 첫 출연했던 최불암의 나이는 삼십대 초반이었지만, 박반장이라는 지위에 걸맞게 극중 연령은 좀더 많은 40세로 설정되어 있었다. 원작을 그대로 배경으로 가져왔다고 하면 이제훈이 맡아서 연기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 배역의 연령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시간을 과거로 더 되돌렸다. 1958년. 박영한 반장의 이십대 시절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 인물이 반장이 되었는가 하는 걸 다루는 프리퀄이다. 

 

그런데 1958년으로 굳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건, 이제훈에 걸맞는 이미지의 연령대를 찾기 위함만은 아니다. 그 시대상과 그것 때문에 도드라지는 이제훈의 돈키호테 같은 순수한 아웃사이더의 이미지가 그 자체로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불의에 굴복하거나 방관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시대라면, 순수함이란 그 자체로 ‘반항’의 의미가 되기도 하지 않던가.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되지도 않은 1958년은 대혼돈의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범죄와 불의가 일상이던 치안 부재의 시대나 마찬가지였다. 상권을 폭력으로 접수해 돈을 뜯어가는 깡패들이 심지어 공권력과도 결탁해 돈과 권력을 구가하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전국에서 소도둑을 가장 많이 때려잡은 형사로 알려진 황천시의 촌놈 형사 박영한이 서장마저 깡패의 눈치를 보는 서울 종남경찰서의 꼴통 형사로 떠오르게 되는 건 그저 형사로서의 본분을 지키려하는 것 때문이다.

 

최불암의 젊은 모습이 좀체 연상되지는 않지만 이제훈에게서 훗날 인간적인 수사반장의 씨앗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건 이 배우가 가진 순수한 청년 같은 이미지다. 이제훈은 ‘파수꾼’이라는 영화로 그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등장함으로써 ‘충무로의 신데렐라’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여기서도 특유의 표현이 서투르고 그래서 반항기 가득한 아웃사이더 같은 청년 역할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제훈의 순수한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확고해진 건 영화 ‘건축학 개론’이다. 이 작품으로 상대역할이었던 수지가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것처럼 이제훈 역시 순수한 청춘의 아이콘이 되었다. 특유의 동안에 무해함이 느껴지는 눈빛과 미소는 수지와 10살이나 많았지만 이제훈을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동갑내기 대학생으로 믿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훈은 그 후에도 ‘파파로티’ 같은 영화나 ‘비밀의 문’ 같은 드라마로 새로운 영역의 역할들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과정을 거쳐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로 또다시 주목받았다. 미제전담팀의 프로파일러 역할로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무전기라는 판타지 설정 자체를 믿게 만들어주는 진지하고 묵직한 연기를 선보였다. 여기서도 이제훈 특유의 순수한 이미지는 미제사건을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형사라는 배역과 맞물려 효과를 발휘했다. 이 캐릭터가 가진 간절함을 보다 절절하게 시청자들이 느끼게 해준 것이다. 

 

이러한 간절함은 영화 ‘박열’이나 ‘아이 캔 스피크’에서는 불의의 시대에 목소리를 내는 모습으로 펼쳐졌다. 이제훈의 순수한 청년 이미지는 이제 불의한 시대에 저항하는 이미지로 확장되었다. “내 육체는 자네들 마음대로 죽일 수 있겠지만 내 정신은 어찌할 수 있겠는가”라며 일제 앞에서 일갈하는 박열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옥분 할머니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던 민재를 통해 이제훈은 시대에 저항하고 싸워나가는 청년의 이미지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이 이미지의 확장은 ‘모범택시’의 김도기라는 인물과 만남으로써 부정한 정의가 심판하지 않는 이들을 처단하는 서민영웅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모범택시’가 특히 이제훈에게 새겨넣은 정의의 페르소나가 강렬할 수 있었던 건, 그 판타지적 캐릭터의 밑그림으로 제공된 실제 현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사건들이 있어서였다. 신안염전노예사건, 위디스크에서 벌어진 갖가지 엽기적인 사건들, 김명철 실종사건,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등등 실제 신문 사회면에 나왔던 사건들이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했다. 현실에서 공분을 일으켰던 사건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이를 사적 보복이라는 판타지로 처리하는 김도기라는 인물에 대한 열광이 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이제훈은 저 ‘건축학개론’의 그 풋풋하기만 했던 청년이 아니라, 불의한 세상에 분노하는 서민 영웅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그가 연기해온 역할들을 이처럼 하나씩 꿰어 들여다 보면, ‘수사반장 1958’의 박영한 형사 같은 레전드 캐릭터에 왜 그가 캐스팅되었는가가 이해된다. 당대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박영한 형사는 마치 의적 홍길동 같은 서민 영웅에, 돈키호테 같은 타협없는 이상주의자, 게다가 형사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고 지켜나가는 우직한 순수함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이미지가 이제훈이 그간 해왔던 필모 안에서 발견된다. ‘모범택시’의 김도기가 가진 서민 영웅적 면모에, ‘박열’의 주인공 같은 이상주의자가 더해지고 ‘시그널’의 순수한 열정을 가진 어떤 이미지의 결합체랄까. 

 

이 모든 이제훈이 가진 페르소나의 가장 밑그림으로 놓여진 것은 결국 ‘순수한 청년’의 모습이다. 조금 서툴러도 올바르다 믿는 것을 순수하고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청년의 모습. 어쩌면 이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다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 우리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누구나 첫 걸음은 다 그 청년의 모습이었을게다. 세파에 흘러가다 보니 조금씩 변하게 되었을 뿐. 어느 날 문득 너무 멀리 왔다 느껴질 때 순간 얼굴을 보여주는 저마다의 청년들이 있을 게다. 때론 그 순수한 청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것도 복잡한 세상을 뚫고 나가는 길이라고 이제훈의 페르소나는 말해주는 듯하다. (글:국방일보,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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