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이네2’의 육각형 인재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광기 사이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민시야. 물은 마셨어?” tvN 예능 ‘서진이네2’에서 정신없이 몰려오는 손님들 때문에 쉬지 않고 요리를 내놓느라 탈탈 털린 최우식이 함께 일한 고민시에게 그렇게 묻는다. 그러자 고민시는 놀라운 답변을 내놓는다. “아니요. 전 화장실 갈까 봐도 못 마시겠어요.” 그 말에 최우식이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짐짓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미처 그거까지는 내가 생각을 못했다”며 무릎을 꿇는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사실 ‘서진이네2’에 새롭게 합류한 고민시지만 그가 영업 첫날부터 이만큼 놀라운 존재감을 드러낼 줄은 예상 밖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윤식당’이나 ‘서진이네’를 하면서 첫 날은 아직 소문이 나지 않아 손님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메인 셰프를 바꿔가며 하자는 새로운 룰을 제안한 이서진도 첫 날 셰프로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진 최우식을 세운 거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첫날부터 오픈런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 날의 메인셰프를 맡은 최우식과 인턴 주방 보조인 고민시는 넉다운될 정도로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위기가 그 사람의 진가를 드러낸다고 했던가. 고민시는 다양한 알바 경험들을 했다는 말이 그냥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빠릿하게 모든 상황들을 알아서 보조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건 고민시라는 육각형 인재의 진가가 이제 겨우 첫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 불과했다.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메인 셰프만 정유미, 박서준으로 바뀌고 모든 날 주방 보조로 일을 하게 된 고민시는 갈수록 진화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재료 준비에서부터 메인 셰프가 바쁠 때는 직접 요리까지 했고, 시간이 걸리는 음식은 손님이 오기도 전부터 미리미리 준비해놓음으로써 모든 상황들을 물 흐르듯 막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서진이네2’라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어느 순간 적응한 그는 그 날의 메인 셰프에 맞는 다양한 케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즉 어딘가 서툴지만 그래도 해내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최우식과는 빵빵 터지는 남매 케미를 보여줬다면, 안정감 있는 주방을 만들어내는 정유미와는 전혀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는 든든한 자매 케미를 선사했다. 반면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가 온 듯한 박서준과는 마치 새롭게 창업한 청춘들의 가게 같은 동료로서의 케미를 그려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서진이네2’는 여러모로 고민시라는 배우가 가진 저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를 드러낸 면이 있다. 그건 못할 것처럼 보여도 막상 뛰어들어 열심히 해내는 데서 나오는 저력이다. 첫 날 그 고생을 하고도 “내일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무엇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가를 줄줄이 이야기하는 고민시에게서는, 배역을 맡았을 때의 그의 모습이 슬쩍 비춰진다. 연기에 있어서 쉬운 역할이 어디 있으랴. 다만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고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마침 ‘서진이네2’와 함께 서비스된 두 작품에서의 고민시가 새롭게 보이는 건 그래서다. ‘스위트홈3’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가 그 두 작품으로 둘다 넷플릭스를 통해 소개되었다. ‘스위트홈’은 사실상 처음으로 고민시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극 중 고민시가 연기한 이은유라는 캐릭터는 발목 부상으로 발레의 꿈을 접은 인물이다. 그래서 발레를 하는 짧은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걸 위해 고민시는 7개월 동안 발레를 배웠다고 한다. 작품이 끝난 후에도 계속 발레를 하고 있다는 그는 그래서인지 ‘서진이네2’에서 스트레칭을 할 때 엄청난 유연성을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유연한 피지컬은 시즌3까지 이어진 ‘스위트홈’은 물론이고 최근 서비스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의 액션 연기가 자연스러운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고민시는 특유의 강인한 이미지가 매력적인 배우다. 단호한 얼굴로 부릅 뜬 눈은 그래서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결연함 같은 게 느껴지게 만든다. ‘오월의 청춘’은 이 강인함이 김명희라는 생명력 넘치는 간호사 역할로 그려졌다. 80년 5월 광주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백의의 전사’에 가까운 강인한 면모를 가진 간호사여서 희태(이도현)와의 비극적이고 절절한 사랑이 더욱 먹먹하게 느껴지게 하는 그런 연기를 펼쳤다. 마찬가지로 이 강인한 이미지는 ‘스위트홈3’에서 모든 게 무너지고 오빠마저 잃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여전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아마도 고민시의 이런 매력적인 이미지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으로 이제는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꼽아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에서 고민시는 섬뜩하면서도 어딘가 신비롭기까지 한 미스테리한 인물 유성아를 실감나게 표현해냈다.  

 

어느 고요한 숲속에 자리한 전영하(김윤석)가 운영하는 펜션에 유성아가 한 아이와 함께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을 그린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는 실로 고민시로 시작해 고민시로 끝을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의 지분이 확실한 작품이다. 평화롭던 숲속의 펜션을 순간 긴장감으로 가득 채움으로서 이 스릴러를 연 고민시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거의 광기에 가까운 폭주를 보여줌으로써 극을 파국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섬뜩하게 아름다운 미장센으로 연출된 작품 안에서 고민시는 반쯤 풀린 듯한 눈빛과 순간 노려보는 눈빛으로 허무와 광기를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한다. 분위기로 만들어내는 공포감은 물론이고 후반부에 벌어지는 육박전은 웬만한 액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실감을 담아낸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났겠는가?” 매 회 이러한 화두에 가까운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사건 사고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세상을 꼬집는 스릴러다. 분명 큰 사건이 터졌지만 그걸 모른 척 한 것이 어떤 비극으로 돌아오는가를 말해주는 작품. 그런데 이 화두는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고 나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고민시의 연기를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요 속의 강렬함이라고 해야할까. 고민시가 가진 그런 이미지가 끝내 쿵 소리를 내며 시청자들의 가슴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뭐든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서도 금세 적응해내고 마치 본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여겨질 정도로 빠져드는 이 몰입의 힘은 이 배우가 향후 확장해나갈 무한한 가능성을 예상케 하는 면이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응답하라1988’ 덕선에서 ‘빅토리’ 필선으로 돌아온 혜리

빅토리

2015년 ‘응답하라 1988’이 메가히트를 기록했을 때 필자는 몇몇 기자들에게 혜리의 매력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불어본 적이 있다. 그 때 돌아온 답변은 ‘순수하다’는 것이었다. 다소 막연하게 들리는 ‘순수하다’는 표현에 대해 좀더 자세히 물었다. 그러자 그건 마치 ‘아기 같은 백지상태의 순수함’이라고 했다. 그 말에 당시 거의 신드롬에 가깝게 생겨난 혜리에 대한 대중적인 인기가 단박에 공감이 됐던 적이 있다. 백지상태라는 건 다른 시각으로 보면 모든 게 가능성이라는 말도 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일이지만, 그래서 혜리는 그 백지상태의 가능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어느 순간에 그 존재가 빛을 발하게 됐다. 

 

지금도 혜리를 이야기할 때 회자되고 있는 ‘진짜사나이’의 이른바 ‘앙탈애교’로 불리는 한 장면을 떠올려보라. 그 한 장면은 순식간에 군대라는 조금은 격식이 요구되는 곳에서 그걸 뚫고 나오는 마음의 한 부분을 드러내줌으로써 보는 이들의 기분을 활짝 피어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유튜브 방송 ‘덱스의 냉터뷰’에 출연한 혜리가 말한 것처럼 그건 애교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간 훈련을 받으며 정이 들었던 터라 퇴소식에서는 좀더 유하게 그 친분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된다고 빡빡하게 대하는 상사의 엄격함에 소심한 짜증을 드러낸 것이었다. 사실 그 누구도 그 상황에서 그런 리액션이 나올 거라는 걸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순간이 보여준 틈입의 카타르시스는 컸다. 엄격한 군율이 존재하는 곳이긴 하지만 결국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혜리의 그 감정표현이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혜리는 그 순수한 백지상태여서 어느 순간 솔직하게 꺼내지는 감정이 특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응답하라 1988’에서 혜리가 덕선이라는 캐릭터에 캐스팅된 것 역시 ‘진짜사나이’ 덕분이었다. 올해 초 채널 십오야에 출연한 신원호 감독은 ‘진짜사나이’에 나온 혜리를 보고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느꼈고 그래서 애초부터 혜리를 덕선으로 점찍어 뒀다고 했다. 이런 선택에는 예능PD 출신이었던 신원호 감독과 또 역시 예능을 함께 해온 이우정 작가가 가진 독특한 드라마 작법과도 연관이 있다. 드라마를 예능 방식으로 제작하는 이들은, 매력적인 인물을 먼저 캐스팅하고 그 인물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캐릭터를 창출하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그 자체로 순수한 매력을 갖고 있는데다, 배우라는 영역에 있어서 거의 백지상태의 가능성을 가진 혜리는 너무나 좋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혜리를 캐스팅한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덕선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그건 예상한대로 엄청난 시너지로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이로써 걸스데이로 데뷔했지만 ‘진짜사나이’로 예능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또 ‘응답하라 1988’로 배우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된 혜리는 멀티 엔터테이너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어언 데뷔 14년 차가 됐지만 최근 영화 ‘빅토리’로 돌아온 혜리는 여전히 해맑은 소녀의 풋풋함과 건강함을 보여줬다. 이번 작품에 그가 맡은 배역의 이름이 ‘필선’이라는 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 이번에는 필선으로 돌아온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빅토리’ 역시 혜리가 가진 그 순수한 매력이 찰떡같은 캐릭터를 만나 힘을 발휘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에 맞춰 오락실 DDR 게임기 위해서 춤을 추는 첫 등장부터 관객들의 시선은 이 매력적인 인물에 여지없이 포획된다. 그건 걸그룹을 해온 데서 나오는 춤선의 내공과, 또 여러 작품을 통해 쌓여진 연기의 내공이, 그와 딱 어울리는 캐릭터와 만나면서 생겨나는 시너지다. ‘빅토리’ 역시 혜리라는 인물이 가진 매력들이 가장 잘 보여질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걸 영화 시작 몇 분만에 관객들을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딱 맞는 캐릭터와 만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건 과연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 혜리 역시 그 필모를 들여다보면 만만찮은 실패와 좌절로 인한 상처를 겪은 바 있다. 예를 들어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캐릭터를 연기했고, ‘딴따라’는 시청률이 저조해 잊혀진 작품이 됐다. 영화 ‘물괴’에서는 작품의 완성도도 떨어져 흥행에 실패하면서 연기력 논란까지 겪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투깝스’의 기자 역할에서는 괜찮은 평가가 나왔고, ‘간 떨어지는 동거’, ‘꽃피면 달 생각하고’, ‘일당백집사’에서도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즉 실패의 경험 속에서도 꿋꿋이 힘을 잃지 않고 달려온 결과 ‘빅토리’의 필선 같은 그의 에너지가 200% 발휘될 수 있는 배역을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빅토리’가 1999년 거제상고의 치어리딩 동아리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혜리라는 인물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느낌을 준다. 그건 ‘응원’이라는 키워드 때문이다. 이 작품 속 필선이 이끄는 치어리딩 팀은 만년 꼴찌팀인 거제상고 축구부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그 응원은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필선의 아버지처럼 조선업을 근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거제 사람들 모두에게 그 응원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또한 댄서의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필선이 걸그룹으로 데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앞두고 다시 거제로 돌아와 못다한 치어리딩을 친구들과 함께 하는 모습은 어떤 가능성에도 열려 있는 이 인물의 건강한 에너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혜리라는 인물과도 잘 어울린다. 그간 제대로 해준 게 없다는 얘기를 꺼내 놓는 아버지에게 “고만 해라-”를 반복하며 결국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에서는 심지어 저 ‘진짜사나이’에서 살짝 짜증을 내면서도 거기에 따뜻한 마음이 얹어지는 혜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혜리라는 인물이 응원과 가능성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응원한다. 내를 그리고 느그를.” 영화에서 필선이라는 캐릭터로 혜리가 던지는 그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을 스스로 응원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응원하는 것이 자신의 가능성은 물론이고 누군가의 가능성을 열게 해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건 또한 14년의 시간 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를 응원하며 늘 새로운 가능성 앞에 세웠던 혜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글:국방일보, 사진:영화'빅토리')

‘언니네 산지직송’과 ‘크로스’로 돌아온 맏언니의 존재감

언니네 산지직송

요리는 그 사람을 닮는다던가. ‘삼시세끼’ 산촌편에 나왔던 염정아는 특유의 ‘큰손’으로 상다리 부러지는 한 상을 내놓은 것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 면모는 ‘언니네 산지직송’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웃집에서 가져다 준 감자를 단번에 다 삶아서 자신들은 물론이고 촬영 스텝들까지 나눠주는 모습에서부터가 그렇다. 함께 출연한 박준면이 고추장찌개를 하려고 하자 대뜸 대용량 냄비에 하라는 이 맏언니는 요리에 있어 아낌이 없다. 뭐든 푸짐하게 하는 게 습관이 된 듯 한데, 그건 보는 이들마저 군침돌 게 만든다. 

 

특히 ‘언니네 산지직송’에서 염정아의 요리가 어떤 스타일인가를 가늠하게 해주는 건, 이미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화제가 된 식혜를 만드는 장면이다. 남해에서 행복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등굣길 아이들에게 공짜로 빵을 나눠주는 ‘빵식이 아재’ 김쌍식의 가게를 찾은 염정아는 자신도 식혜를 만들어 아이들이 함께 먹게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그래서 갑자기 커다란 솥단지에 식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고두밥을 만들어 식힌 후, 엿기름을 면보에 넣고 물 속에서 손으로 하염없이 주물러 효소를 우려내고 그 엿기름물을 미리 당을 넣어 둔 고두밥에 넣어 삭힌다. 그렇게 다섯 시간을 밥통에서 삭힌 후 다시 식혀 끓여 내야 하는 일이다. 아침부터 일터에 나가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서는 특유의 큰손으로 저녁 한 상을 요리해내놓고, 그 와중에 식혜를 만든다고 새벽까지 잠을 설쳐가며 일을 한다. 그 과정은 실로 피곤해보이지만, 그렇게 정성이 가득 들어간 식혜는 작은 페트병에 가득 가득 채워져 아침 등굣길 아이들의 손에 들려진다. 

 

‘언니네 산지직송’을 통해 염정아가 식혜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어떻게 미스코리아로 시작해 연기자의 길로 들어와 현재의 톱배우가 되었는가를 가늠하게 된다. 사실 지금은 염정아가 미스코리아 출신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서게 되었지만 그의 연기의 길이 처음부터 꽃길이었던 건 아니었다. 당대의 시선들이 그러했지만 미스코리아로 열린 그의 시작점은 배우라기보다는 연예인의 이미지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천국’에 나왔지만 금세 유학 가는 설정으로 하차하게 된 그가 미스 인터내셔널에 참가해 3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 그런 심증을 더 갖게 만든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염정아는 처음부터 연기자의 길을 꿈꾸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이 가진 다소 날카롭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염정아는 기회를 만나게 됐다. 바로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을 통해서였다. 염정아 특유의 날카로운 이미지가 이 작품 속 히스테릭한 계모 역할과 만나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영화계는 염정아라는 배우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후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으로 매혹적인 역할을 연기했고, ‘여선생VS여제자’에서는 코미디를 선보이면서 염정아는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결혼 후 염정아는 꽤 오래 공백기를 거쳤다. 일보다는 육아에 더 집중했고 그래서 배우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들도 나왔다. 하지만 그것 역시 섣부른 오해였다. 드라마 ‘로열패밀리’로 돌아온 염정아는 강력한 카리스마에 복합적인 욕망을 가진 김인숙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단박에 그 공백을 채워버렸다. 초재벌가에서 갖은 굴욕을 당하며 살아온 전형적인 비련의 며느리처럼 등장하지만, 남편이 죽고 나서 회장과 전면전을 치르는 괴물 같은 캐릭터를 염정아는 마치 제 옷을 입은 듯 연기해냈다. 그 연기는 아마도 공백기 동안 온전히 일보다 육아에 집중하면서 채워진 삶의 경험들이 묻어난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 염정아는 이제 기혼여성의 역할로 보다 원숙해진 연기의 세계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SKY캐슬’은 그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SKY캐슬’에서 김주영(김서형)이라는 학생은 물론이고 학부모까지 가스라이팅하는 코디네이터에게 빠져들어 아이를 맡겼다가 그 실체를 알게 되면서 곤경에 처한 한서진이라는 인물을 염정아는 복합적인 연기로 풀어냈다. 어딘가 이상해 김주영을 밀어내다가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릎까지 꿇어가며 다시 그를 코디로 받아들이지만 끝내는 진실을 밝혀 그를 감옥에 보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염정아는 무리 없이 납득하게 해줬다. 특히 김서형과 팽팽하게 만들어내는 대결구도는 이 작품을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었다. 

 

‘SKY캐슬’로 정점을 찍은 후 염정아의 연기는 훨씬 여유가 생겼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에서는 조우진과 함께 도술을 쓰는 신선 역할로 등장해 코믹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 연기를 선보였다. 또 류승완 감독의 ‘밀수’에서는 김혜수와 투톱으로 출연해 언니들의 워맨스 액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될 ‘크로스’에서는 황정민과 함께 부부 로맨스액션을 선보인다. ‘크로스’는 전직 블랙요원이었지만 그 사실을 숨긴 채 은퇴해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남편 강무(황정민)와 과거 사격 국가대표 출신으로 강력계 에이스 형사인 아내 미선(염정아)가 모종의 국가적인 사건을 함께 공조해 해결하는 이야기다.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오락영화지만 그 웃음과 카타르시스가 강력하게 느껴지는 작품으로 이를 가능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황정민과 염정아의 현실 부부 같은 케미 덕분이다. 여기서 염정아는 맨몸 액션은 물론이고 사격 선수 출신의 총기 액션 등을 선보이며, 동시에 황정민과 티격태격하면서도 그래서 더 진하게 느껴지는 부부애를 그려낸다. ‘언니네 산지직송’에 황정민이 게스트로 출연한 건 그래서 여러모로 ‘크로스’를 함께 한 의리 차원이라고 보이는데, 여기서도 두 사람이 떡벌어지는 한상을 내놓는 요리 공조가 돋보인다. 

 

요리에 있어 큰손으로 유명해졌지만, 염정아가 식혜를 만들 때 보여주는 그 정성을 들여다 보면 이 배우가 가진 시간과 노력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그저 아무 생각하지 않고 계속 이렇게 주물러 줘야 해.” 엿기름을 녹이며 그가 툭 던지는 그 말은 지난한 노력의 시간들을 그가 어떻게 버텨냈는가를 드러내는 것만 같다. 고민하기 보다는 그저 계속 해나가는 것. 그것이 요리에서도 연기에서도 큰손인 맏언니 염정아를 만들어냈다. (글:국방일보, 사진:tvN)

‘슬기로운 감빵생활’부터 ‘스위트홈3’까지, 이도현의 연기도전사

스위트홈3

도대체 군백기가 있기는 한 걸까. 이도현은 지난해 8월 입대했지만 그가 찍은 작품들은 계속 쏟아져 나왔고 또 좋은 반응들을 얻었다. 영화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도현은 MZ세대 무당 윤봉길 역할로 관객들을 열광케 했고, 최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3’에 신인류 캐릭터로 등장해 사실상 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게 가능했던 건 그가 입대 전 출연한 마지막 작품으로 드라마 ‘나쁜 엄마’를 찍으면서 동시에 ‘파묘’, ‘스위트홈3’까지 소화했기 때문이다. 말이 쉽지 세 작품을, 그것도 서로 다른 장르의 다른 캐릭터를 오가며 동시에 연기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열일’을 한 결과는 달콤한 과실로 돌아왔다. 군대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도현이라는 배우에 대한 대중적 신뢰감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도현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현재 같은 믿고 보는 배우로 등극하기까지 너무나 그 기간이 짧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의 연기 필모는 약 7년 정도다. 2017년 신원호 감독이 연출한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정경호가 연기했던 이준호라는 인물의 청년 시절을 연기했다. 고교 야구선수로 주목받았지만 교통사고로 결국 꿈을 포기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스포츠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청년 역할을 자주 맡은 바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는 야구선수였고, ‘18어게인’에서는 농구를 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스포츠와 그의 이런 인연은 과거 그가 농구선수로서의 꿈이 있었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그 꿈을 접고 연기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 때의 경험들이 연기에도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짧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이도현은 ‘호텔 델루나’에서 장만월(아이유)이 좋아했던 호위무사 고청명 역할로 사극 연기에 도전하면서 대중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 그 후 이도현은 ‘위대한 쇼’에서 송승헌이 연기한 위대한이라는 인물의 10대 시절 역할을 했는데, 송승헌 같은 연기 베테랑의 젊은 시절을 이도현이 맡았다는 사실은 드라마업계가 그에게 가진 신뢰가 분명했다는 걸 말해준다. 주인공의 젊은 시절은 그 서사의 결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그만큼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8어게인’에 와서는 드디어 이 배우의 진가가 발휘된다. 고등학생 고우영 역할로 홍대영이라는 중년 아저씨가 그 몸으로 빙의되는 판타지로, 겉으론 고등학생이지만 속은 아저씨인 역할을 잘 소화해 ‘고저씨’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딸하고 같이 학교를 다니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래서 딸이 학교에서 하는 행동에 못마땅해하는 아빠의 모습이 슬쩍슬쩍 등장하기도 하며, 나아가 아들이 왕따를 당하는 걸 알고 이를 가만히 보지 못하는 아빠의 마음이 표현되기도 한다. 게다가 김하늘과의 멜로 연기도 들어 있었는데 이것까지도 이도현은 별다른 이물감없이 소화해냈다. 이 작품으로 이도현은 그 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신인 연기상을 받았다. 올해 ‘파묘’로 영화부문 남자 신인 연기상까지 받았으니 이도현은 백상에서 TV와 영화 부문 모두 신인상을 받은 연기자가 됐다. 

 

‘18어게인’ 이후 이도현은 하는 작품마다 도전의 연속이었지만, 그 하나하나 성공시키는 놀라운 성과들을 보여줬다.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으로 크리처물에 도전했는데, 거기서 이도현이 맡은 이은혁이라는 인물은 다른 캐릭터들과는 사뭇 차별화된 존재였다. 괴물들이 여기저지 출몰하는 그린맨션에서 모두가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이 인물은 흔들리지 않는 차분한 모습으로 오히려 주목받았다. 그 흐름을 이어받아 시즌3에서는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신인류로 부활해 돌아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리는 엔딩을 그려냈다. 

 

‘5월의 청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으로 그 시대의 아픔과 더불어 청춘들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소화했고, ‘멜랑꼴리아’에서는 자폐를 가진 수학 천재로 역시 임수정과의 멜로 연기를 풀어냈다. ‘18어게인’에서는 김하늘과 ‘멜랑꼴리아’에서는 임수정과의 멜로 연기로 연상연하 커플의 남자주인공 역할로 급부상한 이도현은 ‘더 글로리’로는 송혜교와의 멜로 연기를 펼쳤다. 물론 ‘오월의 청춘’에서는 고민시와 또 ‘나쁜 엄마’에서는 안은진과 멜로 연기를 했지만 상대역과의 나이차에 있어서 이도현에게는 장벽이 별로 없었다.

 

이 이도현이 걸어온 7년 간의 짧다면 짧은 연기 여정을 들여다 보면 그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도전의 연속이었다는 게 느껴진다. 고등학생과 아저씨를 오가는 연기는 물론이고(18어게인), 나이 차이가 훌쩍 나는 연상과의 멜로 역할(18어게인, 멜랑꼴리아, 더 글로리)도 자연스럽게 풀어냈고, 장르적으로는 멜로에서 판타지(18어게인), 크리처물(스위트홈), 복수극(더 글로리), 시대극(오월의 청춘), 회귀물(이재, 곧 죽습니다)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영역들을 경험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했을까. 

 

두 가지 장점이 결합한 결과다. 그 하나는 이도현이 이미 갖고 있는 자질이다. 그가 가진(이것도 연습에 의해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중저음 보이스는 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신뢰감을 주고, 명쾌한 딕션은 대사전달력에 있어서 탁월한 그의 장점을 드러내준다. 또 그와 같이 작업을 한 감독들이 자주 말하는 ‘좋은 눈빛’도 빼놓을 수 없고, 입꼬리에 따라 다정하게도 보이지만 때론 악마적인 서늘함을 주는 입매도 연기자로서의 장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자질들이 힘을 발휘하게 된 건 두 번째 장점으로 꼽히는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성장이다. 매번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어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확장시키는 과정들이, 7년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에 이도현이 이토록 급성장하게 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심지어 군복무 중에도 전혀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성장에는, 그만한 도전과 노력들이 숨겨져 있었을 테니 말이다. (글:국방일보,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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