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건 토크쇼, 왜 잘 안될까

<고쇼>의 시청률을 갖고 벌써부터 난리들이다. 프로그램에서 시청률은 여러 가지 이유로 떨어질 수도 있고 올라갈 수도 있다. 나들이가 많아지는 봄철이라는 계절적 요인이 작용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너무 많아진 토크쇼들로 인해 토크쇼 자체에 대한 매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또 이렇다 보니 생겨난 높아진 게스트 의존도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잘 나가는 <힐링캠프>도 게스트에 따라 어떨 때는 12% 이상의 시청률을 내다가도 단번에 7,8% 대의 시청률로 떨어지기도 했다.

 

 

'고쇼'(사진출처:SBS)

그러니 시청률 등락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시청률과 상관없이 <고쇼>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고쇼>는 그 이름으로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그 순간부터 어쩌면 어려운 길을 자초한 면이 있다. 본래 특정 인물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는 그만큼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인지도 있는 유명인이 MC로 자리한다는 것은 물론 큰 장점이지만, 그것을 간판에 버젓이 내거는 건 다른 문제다.

 

이것은 토크쇼에서 대중들이 어디를 먼저 집중하는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고쇼>를 예로 들어 얘기하면, 이 토크쇼가 고현정쇼로 인식되는 점 때문에 대중들의 시선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먼저 고현정이 토크쇼를 한다고 하니 얼마나 잘 하나 보자는 대중들의 시선이 있다. 그렇게 고현정에게 집중된 시선은 고현정 당사자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제 아무리 편안하게 진행해보자 마음먹어도 그녀에게 떨어지는 다양한 시각들을 모두 받아들이는 건 정말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고현정으로 분산되는 시선 때문에 정작 주목되어야 할 그날의 게스트에 대한 집중도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 점은 치명적이다. 토크쇼는 기본적으로 MC라는 상수와 게스트라는 변수로 유지되는데, 변수에 대한 주목도가 사라지면 토크쇼는 매번 그게 그거인 비슷한 것으로 인지될 수밖에 없다. 결국 토크쇼라는 정체성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박중훈쇼>나 <주병진 토크콘서트>가 모두 힘겨웠던 것은 물론 그 토크쇼들이 작금의 대중들의 화법을 따라가지 못한 점이 가장 크지만, 근본적으로는 거기에 이름을 걸었을 때 생겨나는 MC와 게스트로 분산되는 집중력이 작용한 탓이기도 하다. 결국 토크쇼에는 자기 이름을 걸 때 그만큼 불리한 지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을 빗겨나간 지혜로운 토크쇼들도 있다. 예를 들어 <강심장>은 누가 봐도 강호동을 전면에 내세운 쇼였지만, 제작진은 한사코 강호동쇼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김승우의 승승장구>도 처음에는 김승우를 전면에 세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자 <승승장구>라고 이름을 바꾼 후 김승우를 MC들 중 한 명으로 위치시켰다. 어느 정도 부담감이 사라진 현재 김승우는 <승승장구>에서 과거와는 확실히 나아진 토크쇼 진행을 선보이고 있다. <무릎팍 도사>도 결국은 강호동 혼자 했던 것이지만 강호동쇼라 지칭하지 않았고 캐릭터를 사용했다. 이것은 사실상 유재석이 모든 걸 이끌고 있는 <놀러와>나 <해피투게더>도 마찬가지다.

 

실제적으로는 토크쇼 전체를 이끄는 MC라고 하더라도 그의 이름을 내걸지 않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것은 단지 이름을 거는 문제가 아니다. <무릎팍 도사>를 굳이 강호동쇼라고 했을 때는 강호동이 뭔가 보여줘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하지만 <무릎팍 도사>로 세우면 그의 역할이 달라진다. 그는 그를 찾아온 게스트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게스트를 중심에 세워두고 자신은 살짝 비껴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쇼>의 문제는 고현정에 너무 집중된 시선에서 생겨난다. 결국 토크쇼의 주인은 MC가 아니라 게스트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고현정이 주인이라도 그녀의 역할은 게스트의 이야기를 최대치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스스로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토크쇼라는 형식에서 심지어 자신이 중심이라도 MC가 해야될 역할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고쇼>는 토크쇼 본질에 가깝게 고현정의 역할을 다시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민폐된 캐릭터들, 신에게 도전하다

 

<신들의 만찬>은 결국 화해를 그리며 종영했지만,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을 남겨다. 배우와 작가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기사화된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제작진은 이것이 사실 무근이라 밝혔다. 어느 쪽 이야기가 사실인 지는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직접적인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러 기사가 나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어딘가 균열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신들의 만찬'(사진출처:MBC)

아마도 최재하(주상욱)라는 캐릭터의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최재하는 주인공인 고준영(성유리)과 어린 시절부터 이미 엮어진 캐릭터다. 하지만 진짜 하인주인 고준영이 부모를 잃은 채 다른 삶을 살아오는 동안, 가짜 하인주(서현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당연히 최재하는 가짜 하인주와 결혼을 약속한 관계가 된다.

 

하지만 진짜 하인주인 고준영이 나타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최재하는 고준영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 가짜 하인주를 버리게 된다. 이 지점에서 최재하라는 캐릭터는 조강지처를 버린 인물로 낙인찍히게 된다. 게다가 최재하가 고준영이 진짜 하인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그는 핏줄은 다르지만 어쨌든 한 부모의 자식인 자매를 좋아하게 된 것. 마치 언니를 버리고 동생을 사랑하는 것 같이 되어버린 관계는 최재하를 옴쭉달싹 못하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린다.

 

여기에 김도윤(이상우)이란 캐릭터가 비집고 들어오자 최재하는 모든 걸 잃어버리는 캐릭터가 되어버린다. 고준영에게 김도윤이 과감하게 접근하면서 그 둘 사이는 급물살을 탄다. 물론 운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지는 신만이 알 일이지만, <신들의 만찬>의 캐릭터들이 겪는 관계의 변화는 너무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이것은 관계가 바뀐 것이 본래 의도대로건, 아니면 갑작스럽게 바뀐 것이건 상관없는 문제다. 그저 작가가 보는 캐릭터 설정 자체가 무리하다는 문제이다.

 

이 의도된 관계 속에서 최재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고, 김도윤은 갑자기 끼어든 인물이 되어버렸으며, 고준영은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는 일관성 없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물론 여기에는 인물이 뒤바뀌었고 그 바뀌어진 인물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복잡한 과정이 작용한 탓이다. 캐릭터가 민폐로 전락하는 과정에는 결국 이런 과도한 애초의 설정 자체가 무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른바 '출생의 비밀'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그 운명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때로는 작가의 악취미 같다는 인상을 받는 건, 바로 이 과도한 설정 탓이다. 작가들은 그것이 드라마의 극성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시청률을 위해서 선택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현실이기도 하다. 실제로 '출생의 비밀'은 시청률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캐릭터들은 힘들어도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번 <신들의 만찬>에서 일어나는 불협화음(그것이 가시화되었건 그렇지 않건)은 그런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사건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일이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니다. 이미 배우와 작가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어 사건으로 번진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이것은 신으로 존재하는 작가들의 설정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던 캐릭터들이 일으킨 반란처럼 보인다. 결국 민폐나 불쌍한 존재가 되어버린 캐릭터들은, 그것을 연기하는 연기자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때론 캐릭터 논란은 연기력 논란으로 전화하기도 한다.

 

<신들의 만찬>의 캐릭터 논란은 그런 점에서 작가가 작품을 대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잘 드러내준다. 캐릭터는 물론 작가가 창출한 존재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휘둘릴 수 있는 그런 허수아비는 아니다. 신들이 벌이는 만찬도 어느 정도다. 그것이 과도하거나 제 멋대로일 때 캐릭터들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밝은 이승기, 어둠까지 품는다면

 

이승기에게 <더킹 투하츠>는 그가 연기에 도전했던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물론 첫 연기 경험이었던 <소문난 칠공주>의 황태자 역이나, 그에게 트리플 크라운의 영광을 안겨준 <찬란한 유산>의 선우환 역, 그리고 코믹 연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의 차대웅 역에서 모두 이승기는 무난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더킹 투하츠'(사진출처:MBC)

아니 무난하다기보다는 호평이었다. 거기에는 당시 이승기가 갖고 있는 독특한 위치가 한 몫을 차지했다. 즉 이승기는 본격적인(?) 배우는 아니었다. 가수가 본업이었고 <1박2일>을 통해 가수 이외에 예능인으로서의 새로운 매력을 드러내는 중이었으며, 여기에 배우라는 새로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있다는 것이 호평으로 이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더킹 투하츠>의 이재하 역할을 연기하는 이승기는 상황이 이때와는 다르다.

 

이승기는 사실상 그의 가치를 세워주었던 예능을 모두 접었다. <1박2일> 시즌2에 잔류하지 않았고, <강심장> MC도 내려놓았다. 가수로서의 활동도 전무하다. 오로지 <더킹 투하츠>라는 드라마 하나에 전력 질주하는 모습이다. 즉 이승기는 가수와 예능인을 잠시 접어두고 제대로 배우라는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더킹 투하츠>에서의 이승기의 연기가 이전의 연기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이 드라마에서 이승기는 꽤 준비된 연기를 보여주었다. 드라마 초반에 그는 어딘지 왕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바람둥이의 모습을 얄미울 정도로 잘 연기해냈다. 김항아(하지원)에게 "넌 여자가 아냐"라고 하는 대사에서는 보는 이마저 화가 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갑자기 한 나라의 왕제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예를 들면 미국의 간섭에 대해 속 시원한 한 방을 날렸을 때 같은)는 그 가벼운 겉모습 밑에 숨겨진 믿음직한 구석을 느끼게 해주었다. 자유를 구가하려던 왕제가 형의 죽음 이후 곧바로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겪게 되는 그 변화를 연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건 왕이 아닌가. 왕이라는 위치에서는 상당 부분 겉모습(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어야 하는)과 실제 내면(한 인간으로서의)이 다를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재하는 그 양자를 오가면서 김봉구(윤제문)라는 희대의 악당과 때로는 대면해야 하고 그 고통 속에서도 웃으며 상대방을 제압해야 한다. 게다가 이제 결혼할 사이인 김항아와의 멜로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배우로 서려는 이승기로서는 제대로 된 역할을 만난 셈이다.

 

이승기는 잘 알려진 대로 그 특유의 노력과 근성으로 이 복잡한 연기를 잘 해내고 있다. 김봉구가 형인 이재강(이성민)을 죽였다고 제 입으로 말할 때도, 이승기는 그 분노를 억누르며 김봉구에게 맞서는 재하의 왕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주었고, 믿었던 비서실장 은규태(이순재)의 배신 사실을 알고는 분노를 터트리면서도 그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믿음과 정을 놓지 않는 재하의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왕으로서의 얼굴과 한 인간으로서의 얼굴, 이 둘을 한꺼번에 보여준다는 것. 이승기는 확실히 이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도 한 단계 더 내디딘 셈이다.

 

이처럼 배우로서도 이제 어엿한 면모를 보여주는 이승기에게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연기는 물론 노력과 연습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 연기자에게서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는 그 특유의 느낌은 대본과 캐릭터를 연구하는 것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삶의 경험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승기의 장점으로 여겨지는 늘 밝은 모습, 선한 심성 같은 이미지는 배우로서는 한편으로 단점이 되기도 한다.

 

아픔을 연기할 때 진짜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걸 표정으로 연기해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연기자의 안에 있는 진짜 아픔을 끄집어냈을 때 그것이 비로소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왜 이승기가 이처럼 연기 호연을 펼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조정석의 눈물 한 방울에 더 가슴이 와 닿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조정석은 밝은 이미지가 있지만 동시에 어두운 구석도 갖고 있는 배우다. 그것이 보는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마음 시리게 다가온다.

 

아마도 이것은 노력하는 이승기가 배우로서 서기 위해 마지막으로 넘어야할 한 가지가 아닐까 싶다. 인간적인 매력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폐허'라고 표현했고 누군가는 그것을 '우수(憂愁)'라고 표현한다. 밝은 껍질 아래 무언가 아프고 무너질 것 같은 면면. 그것이 배우가 연기 연습을 통해 얻어내는 기술적인 성취만큼 중요할 수 있다. 그것은 능력이 아니라 매력의 영역이다.

이승기는 예능에서의 다분한 끼와 순발력, 가수로서의 감성 또 배우로서 갖추어야 할 성실성을 다 갖추었지만, 단 한 가지 그 자체로 뿜어져 나오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한없이 보듬어주고픈 마음을 갖게 하는) 아픈 매력이 부족하다. 물론 지금도 충분한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바로 이 '우수' 깃든 매력이 덧붙여진다면 이승기는 독특한 자신만의 아우라를 갖는 배우로서 설 수 있을 것이다.

'1박2일'이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국민 예능으로 거듭나고 있을 때, 또 그 여파를 몰아서 '해피선데이'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남자의 자격'이 하모니 특집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때, 그 뒤에서 실질적으로 이 남자들의 예능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 있었다. 프로그램 전면에 나와 있는 이명한 PD나 나영석 PD가 한창 주목을 받을 때, 그들 옆에 앉아 있던 인물. 바로 이우정 작가다. 그녀는 당시 이 두 남성적인 예능의 14명의 남자 MC들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안방마님으로 알려져 있었다. 2008년 KBS 연예대상 쇼 오락부문 방송작가상, 2010년 한국방송작가상 예능 부문을 거머쥐면서 그녀는 예능 작가계에서는 드물게(드물지만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새로운 스타 작가의 탄생을 알렸다.


 

오른쪽부터 이우정,모은설,이현희 작가(사진출처:시사저널)

하지만 업계에는 이처럼 이미 스타 작가로서 자리매김한 이우정 작가였지만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예능의 대세였던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성격상 예능 작가라는 존재는 어딘지 드러나면 안되는 비밀스러운 어떤 것이었으니까. 당시 터졌던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 논란은 리얼 예능에 있어서 그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해 대본의 존재를 숨겨야만 하는 상황이었고(그것이 그저 가이드라인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도), 따라서 대본을 쓰기 마련인 예능 작가도 숨겨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또 달라졌다. 이제 예능에 있어서 대본은 반드시 필요한 가이드라인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고, 예능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대중들의 선망도 생기고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예능 작가의 세계. 도대체 이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스타 작가들은 어떻게 그 위치에 오르게 되었을까.


이우정 작가는 무역학과 출신으로 사회의 첫발은 광고 카피라이터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MBC아카데미에서 작가 교육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이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에 방송작가들의 등용문은 MBC아카데미 같은 방송사 산하 교육기관이나 방송작가교육원 같은 곳이 하나의 거쳐 가는 길로 정해져 있었다. 아카데미 같은 교육기관으로 방송사에서 인력을 요청하면, 예비 작가들이 자신의 이력서와 간단한 포트폴리오(대본구성안)를 제출하고 거기서 발탁되면 일을 하는 식이다. 그렇게 이우정 작가는 2000년도에 MBC의 파일럿 프로그램인 '백만 송이 장미'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 세계적인 추세였던 서바이벌 형식을 따와 만든 연예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을 쌓은 이우정 작가는 '21세기 위원회'로 사실상 입봉(?)을 했고, 후에 KBS로 와서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운명(?)적인 두 PD와의 만남을 갖게 된다. 바로 이명한 PD와 나영석 PD다. 그 후로 나영석 PD의 '여걸파이브', '여걸식스' 작업을 했고 후에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으로 우뚝 섰다. 현재는 이명한 PD와 '더 로맨틱'을 하고 있고 또 '남자의 자격'을 함께 했던 신원호 PD와 시트콤 '응답하라 1997'을 준비 중이다.


어찌 보면 이우정 작가의 성공은 좋은 PD를 만났던 것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 예능 작가의 성공이 어떤 PD를 만나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우정 작가의 경우는 어떤 면에서는 PD들을 확실히 뒷받침해줌으로서 오히려 돋보이게 하는 작가로 이름나 있다. 같이 작업을 한 PD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이 한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으로 서슴없이 이우정 작가를 지목하곤 한다. 그만큼 확실한 자기 역량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우정 작가가 주로 리얼 예능쪽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는 점도 그녀의 성공에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마침 리얼 버라이어티가 예능의 대세로 자리하면서 예능 작가들에게도 새로운 자질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이우정 작가는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예능 작가들이 하는 일이 다르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주로 하는 일이 게임을 개발하는 거였어요. 그게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거의 하는 일이 PD와 비슷해요. 물론 PD의 고유영역이 분명 존재하지만 기획에서부터 심지어 편집에까지 예능 작가가 들어가지 않는 곳은 없죠." 또 리얼 예능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대본을 쓰는 일보다는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일과 후반작업이 더 중요해졌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대본은 분명 존재하지만 대본을 상세하게 쓰거나 아니면 느슨하게 쓰는 것은 작가와 프로그램의 성향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했다.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의 경우 작가들은 대본을 쓰기 보다는 현장을 읽고 발견하는 작업에 더 집중한다고 한다. 예능 작가라고 하면 '작가'라는 타이틀이 의미하듯이 무언가를 집필하는 것을 떠올리지만 리얼화된 예능의 트렌드 속에서 이런 역할은 변화를 겪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리얼 버라이어티 같은 예능이 아니라 토크쇼 같은 주로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예능작가들은 어떨까. 작년 KBS 연예대상 방송작가상 쇼 오락부문을 수상한 '김승우의 승승장구'의 모은설 작가는 이 분야에서 베테랑이다. 96년도에 기자시험을 준비하던 그녀는 선배의 권유로 'TV는 사랑을 싣고'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이 길로 들어섰다. 당시에는 아르바이트였어도 너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이 길을 계속 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프로그램 성격 때문에 재연대본(과거 이야기를 재연하는 대본)과 추적대본(실제 과거 인물을 쫓아가는 대본)을 써내는 게 당시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프로그램을 관장하시던 PD분이 바로 개그맨 김준현의 아버지인 김상근씨였는데, 대단한 능력을 가진 워커홀릭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 프로그램을 하면서 알던 분들이 연결이 되어 그 후로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 '뮤직플러스', '감성채널' 등을 한 후 '비타민'과 '미녀들의 수다'는 기획부터 참여했다고 한다. 여기에도 역시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부터 인연이 된 이기원 PD와 줄곧 같이 작업을 했다고. 그 후로 윤현준 PD와 '상상플러스', '승승장구'를 하게 됐다고 한다.


스튜디오물에 있어서 작업은 리얼 버라이어티처럼 예전과 그렇게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즉 과거에도 섭외와 대본 작업이 주였던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토크쇼라면 특히 섭외, 조사, 큐시트 작업이 거의 주라는 것. 하지만 연차가 달라지면서 하는 일은 거의 전방위적인 것이 되었다고 한다. 기획에서부터 편집 자막 작업에까지 관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방송국이 파업을 하는 와중에도 방송이 그나마 나갈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이런 모든 작업에 관여했던 예능작가들이 있기 때문이죠. 방송사에서는 그 작업 자체를 외주를 주겠다는 생각이지만 그렇게 하면 방송 자체가 망가질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예능작가들이 그 편집 작업까지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죠."


사실상 거의 모든 일을 하는 등 전방위에서 뛰어야 하는 고충이 있지만 그래도 예능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과 관계된 것이라 한다. 결국 예능의 핵심은 그 안에 담겨진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토크쇼 같은 경우에는 섭외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데, 모은설 작가는 심지어 쇼에 나오기로 하고 대본 작업도 다 끝났는데 촬영 하루 전에 게스트가 못나오겠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유가 황당했죠. 작업한 대본을 보냈더니 자기 인생이 이렇게 초라한 줄 몰랐다며 이렇게 자신이 비춰지는 게 싫다는 거였어요. 결국 밤새 설득해서 다음 날 촬영을 할 수 있었죠." '안녕하세요'의 이현희 작가는 그래도 연예인들은 준비된 이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는 낫다는 말한다. '안녕하세요'는 일반인들이 게스트로 출연하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그들이 나중에는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모든 걸 다 체크할 수가 있겠어요. 사실 증명서 같은 걸 떼어서 보자고 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죠." 현재 tvN에서 일반인들의 러브 리얼리티쇼인 '더 로맨틱'을 하고 있는 이우정 작가 역시 일반인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고 말한다. "프로그램 성격상 그들의 속내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방송으로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점에 있어서 늘 고민을 하게 되죠."


예능작가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그들의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궁금증도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예능작가들은 현재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고 있으며 또 이들의 직업은 향후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99년 스크립터로 시작해 2001년 '동물농장'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스펀지', '상상플러스', '미녀들의 수다', '안녕하세요'를 작업해온 이현희 작가는 최근 예능 작가들의 활동 영역이 과거에 비해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주변에도 예능작가출신의 드라마 작가, 시트콤 작가, 뮤지컬 작가까지 다방면에서 예능작가의 영역이 많아지고 있죠." 실제로 예능작가 출신으로 현재 '넝쿨째 굴러온 당신'으로 전체 시청률 1위(36%에 육박)를 기록하고 있는 박지은 작가도 예능작가 출신이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작가도 초기에는 '사랑의 스튜디오'의 예능작가를 해던 인물이다. 이현희 작가의 경우 네이버와 합작으로 '환타스틱 어른백서'라는 책을 쓴 적도 있고, '서태지 8집 다큐' 작업을 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이렇게 된 것은 여러 모로 다양한 분야에서 예능작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우정 작가가 시트콤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예능작가의 영역이 거의 음지에서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에만 국한됐다면 요즘은 범위가 거의 무한대로 넓혀지고 있다는 것. 이렇게 된 것은 예능작가라는 특성상 다방면에 대한 경험이 많다는 점과, 또 늘 대중들과의 공감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 자질로서 중요하게 어필되는 지점이다. 물론 이것은 현재 방송 트렌드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즉 '드림 소사이어티'로 접어들면서 삶의 가치로서 펀(fun)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고, 따라서 모든 콘텐츠가 펀을 지향하는 흐름이 방송에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드라마들은 상당 부분 코미디를 필요로 하고 있고, 대다수의 교양 프로그램들은 이른바 인포테인먼트로 전환되고 있다. 모은설 작가는 이런 변화 때문에 예능작가들의 영역이 점점 넓혀지고 있는 반면, 교양작가들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교양작가들이 했던 것들을 지금은 예능작가들이 하고 있죠. 예를 들어서 '비타민' 같은 경우 이제는 교양이 아니라 예능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점점 교양작가들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예능작가들의 처우는 하는 일에 비한다면 결코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확실히 좋아진 게 사실이고, 그 비전은 앞으로 방송 전체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장밋빛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이 분야에 뛰어든다고 처음부터 이런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 이우정 작가나 모은설 작가 그리고 이현희 작가 모두 '적어도 10년'을 버틸 수 있는 예능에 대한 열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세상과 인간과 사물에 대한 호기심은 필수이고, 사람들과 서슴없이 친근해질 수 있는 친화력도 중요하며, 또 예능이라고 해서 그저 웃고 떠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름의 철학과 생각을 갖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펀 사회로 접어들면서 예능의 시대의 문은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존재들로서 그간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되었던 예능작가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나갈 드림 소사이어티는 어떤 세계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예능작가 얼마나 벌까-------------------------------------------------------
예능작가의 벌이를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마치 연예인들 중에도 A급의 수입과 B급의 수입이 천지차이인 것과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프리랜서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그 능력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의 반향에 따라서 예능작가들의 수입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충의 기본적인 수입의 수준은 분명 존재한다. 보통 처음 들어온 예능작가의 경우에는 주당 30만 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한 주에 한 프로그램을 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10년차 정도가 되면 주당 100만 원 이하의 수입을 벌고, 메인급이라면 100만 원 이상 200만 원 이하의 수입을 번다고 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예능작가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메인급 작가들은 한 주에 한 프로그램만 하는 게 아니라 이른바 두 탕을 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물론 한 편에 집중하는 것만큼의 수입보다는 낮게 책정되지만 두 편을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수입이 많아진다는 것. 이런 기본적인 수입 구조를 통해 볼 때 최고로 잘 나가는 작가들은 연봉 1억을 넘긴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물론 이것은 예능작가의 메인 잡이라고 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으로 버는 수입만을 추산한 것이다. 여기에 때때로 들어오는 강연 수입이나 책 출간으로 생기는 인세수입, 혹은 각종 원고료를 더하면 수입은 더 많아진다. 게다가 시트콤 같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면 수입의 단가가 달라진다. 시트콤은 드라마의 영역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쳐주기 때문이다. 향후 예능작가들의 비전은 아이디어에 대한 저작권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는 방송사와의 문제 같은 풀어야할 여러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법률적인 조항이 생긴다면, 향후 예능작가들은 이른바 '포맷' 장사를 할 수 있게 된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까지 자신이 만든 포맷과 아이디어를 팔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게 되면 예능작가들처럼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는 분야의 향후 비전은 훨씬 좋아지게 되는 셈이다.

 

예능대본 과연 어떤 걸까----------------------------------------------------
리얼 예능으로 접어들면서 대본의 존재는 그 자체로 마치 리얼리티가 없는 것처럼 오인되곤 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예능대본은 모든 방송대본이 그러하듯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심지어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나가도 미리 사전 인터뷰를 통해 대본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대부분 현장에서 작업하면 대본대로 가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리얼 예능에서 대본이란 하나의 설계도 같은 것이다. 그 안에 목적이 있고 목표도 있지만 거기에 집착해서는 리얼 예능의 재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예능 작가들은 대본대로 움직이는 방송분량은 사실상 건진 게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어떤 프로그램의 경우 PD의 성향이나 프로그램의 성격 상 좀 더 상세한 대본이 만들어지고 실제로 행해지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토크쇼 같은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좀 더 상세한 대본이 만들어진다. 물론 충분한 사전 인터뷰를 통해서다. 이렇게 대본이 충만해야 토크쇼도 다양한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해진다. 예능 작가들은 이처럼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에 따라 보다 상세한 설계도를 만드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예능대본이 반드시 존재하고 또 있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대로 방송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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