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시청률로 함부로 실격이라 부를 수 없는 드라마

인간실격

“산에요. 산에 갔다가 바다에 갔다가... 음 집에 갔죠.” 한밤중 아무도 없는 기차역에서 철길을 하릴없이 걸으며 마지막으로 타본 기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부정(전도연)이 그 때 “기차를 타고 어딜 갔냐?”고 묻자 강재(류준열)는 그렇게 말한다. 산에 갔다가 바다에 갔다가... 집에 갔다고. 

 

“산에 갔다가 바다에 갔다가...” 라고 강재가 말하곤 잠시 뜸을 들일 때 부정은 살짝 긴장했다. 그 마지막으로 기차를 타본 게 아버지 장례 치르고 화장한 날 엄마와 함께 그 곳에 왔을 때였다는 강재의 말 때문이다. 어딘가 쉽지 않았을 상황이었을 테니 그가 갔다는 산과 바다가 마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런 길처럼 느껴지진 않았을까 걱정해서다. 하지만 그러고는 “집에 갔다”는 강재의 말에 안심한다.  

 

부정이 강재의 말을 들으며 걱정하고 안도하는 건,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도 죽은 정우(나현우)의 사연이 있는 그 작은 기차역이 있는 마을 저수지를 찾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절망적이었을 것이고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을 게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이 주는 허함과 절망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같은 감정을 가졌지만 그 때 저수지를 찾았던 걸 지금은 후회한다고 했다. 강재가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부정이 똑같은 안도감을 느낀 이유다.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이 그린 어느 저수지와 작은 기차역이 있는 마을에서 강재와 부정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천문대에 오르고 어쩌다 한 텐트 안에서 같이 밤을 지새게 되는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가 담아내려는 위로의 메시지를 잘 보여준다. 아픈 아들을 위해 호스트 일을 하며 번 돈으로 비싼 병원비를 충당해오다 결국 아들이 저세상으로 떠나고 절망감에 저수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정우. 정우와 저수지는 그래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을 상실한 듯한 절망을 은유하는 인간과 공간으로 그려진다. 

 

정우의 죽음은 아마도 부정과 정우가 자신의 실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을 터다. 정신없이 살아내기 위해 살았지만 알 수 없는 ‘허한 마음’. 정우는 ‘역할 대행’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자신의 존재는 지워진 채 살아가고 있었고, 부정은 아란(박지영)의 책을 대필한 후 그와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출판사에서도 쫓겨났다.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숨을 쉬며 살아가곤 있지만 자신이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존재가 지워져 있다는 걸 알게 되곤 느끼게 되는 허한 마음. 

 

그래서 부정과 강재는 그 정우가 풍덩 뛰어들었던 저수지를 통해 다시 만난다. 우연히 저수지 근처를 지나다 부정은 그 곳에 마음이 이끌렸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은 모습에 누군가 신고해 파출소에 가게 됐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자신을 데리고 가줄 보호자 한 명을 찾기 힘든 부정이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강재에게 ‘보호자 역할 대행’을 요청했고, 놀랍게도 그 먼 길을 강재가 달려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절망의 공간에서 <인간실격>은 부정과 강재를 통해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위로를 건넨다. 아무 것도 아닌 관계처럼 보였고, 마치 돈을 주면 역할을 대행하는 그런 관계처럼 보였던 두 사람은 서로가 겪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서 ‘삶’의 의지를 다시금 끄집어낸다. 과거 아버지를 화장된 날 어머니와 무작정 기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가게 된 그 길을 이야기해준 강재는 부정에게 문득 이렇게 묻는다. “어디 집 말고 가보고 싶은데 있어요?” 모르겠다는 부정의 말에 강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산에 갔다가 바다 갔다가 그리고 집으로 갈까요?”

 

그 말은 절망하기도 하고 허한 마음을 갖기도 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그 마음을 채우기 위해 산에도 가고 바다도 가지만 그럼에도 결국 집으로 간다는 위로가 섞인 제안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천문대를 향한다. 강재는 엄마와 함께 오르던 그 길을 부정과 함께 걸으며 그 때 엄마가 천문대에서 하늘 가득 채워진 별을 올려다보며 한참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 때 어린 강재는 왜 엄마가 울었는지 진짜 몰랐을 터다. 하지만 버스에 두고 온 크림빵과 우유가 아까워서 울었다고 둘러댔다는 엄마의 말을 부정에게 해주는 강재는 이제 어렴풋이 그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늘 가득 반짝 반짝 빛나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엄마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가녀린 존재인가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너무 거대한 세상 속에서 먼지처럼 보이지도 않을 인간들이 살아간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먼지들이 마치 저 우주의 별들처럼 반짝인다. 그것이 너무 작고 소소하고 가녀려서 갖게 되는 아름다운 슬픔. 엄마는 그걸 느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정과 강재도 그 엄마가 걸었던 그 길을 걸으며 같은 걸 느끼고 있었을 지도. 

 

도대체 무엇이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소중한 존재들인 인간을 이토록 ‘자격 운운’하며 실격 처리하는 것일까. 어째서 돈과 지위와 성공의 기준으로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저수지 밑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것일까. <인간실격>은 그런 무례한 세상을 에둘러 일갈한다. 작디작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위대해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위로’의 말과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

 

안타깝게도 <인간실격>은 시청률이 낮다. 그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지금의 드라마 시청이 지나치게 당장의 사이다 같은 자극적인 지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답답한 현실에 사이다 한 잔 같은 작품들이 의미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실격>처럼 묵직한 밥 같은 무게감을 가진 작품을 낮은 시청률로 섣불리 ‘실격’이라 부를 순 없을 게다. 최근 들어 이만큼 진지하게 가슴을 건드리는 드라마를 본 적이 없으니. (사진:JTBC)

‘유미의 세포들’, 김고은과 안보현에 더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

유미의 세포들

‘윰며들다’라는 표현이 생길만큼 tvN 금토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이 유발하는 ‘과몰입’은 기분 좋게 시청자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어딘가 <인사이드 아웃>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만, <유미의 세포들>은 더 다양하게 캐릭터화된 세포들이 등장하고, 남녀 관계에서 벌어지는 감정들에 따라 세포마을에서 벌어지는 판타지급 사건들이 <인사이드 아웃>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전개된다. 그래서 일단 이 ‘세포들’과 공존하는 유미(김고은)의 세계에 발을 디디면 마치 그 세계의 세포 일부분이 된 것처럼 그 감정을 공유하며 ‘시간순삭’을 경험하게 된다. 

 

<유미의 세포들>에서 평범한 재무부 대리인 유미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사실 여타의 멜로드라마들과 비교해보면 그다지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어려서부터 이어진 인연의 운명적인 재회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계의 틀 속에서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로맨틱 코미디의 사건들도 그리 많지 않다. 이것은 첫 회만 봐도 단박에 드러난다. 첫 회 이야기는 유미의 어느 평범해 보이는 하루를 담는다. 

 

3년 전 연애를 끝내고 그 후유증으로 사랑의 감정을 억누른 채 지내온 유미. 영업부 채우기(최민호)에게 관심이 가던 차에 그가 유미가 살고 있는 일산 갈 약속이 있어 같이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유미는 데이트를 기대하지만 역시 그에게 관심이 있는 루비(이유비)가 끼어들어 기대는 깨지고, 다음 날 초연해 보이려 했지만 루비가 채우기와 꽃 축제에 가기로 했다는 말에 흔들린다. 그런데 우기가 유미에게도 같이 가자고 제안하고 데이트가 무산된 루비가 남과장(정순원)까지 초대해 일을 키우면서 일정을 조율하다 꽃 축제 약속은 엉뚱하게도 유미와 채우기 둘의 데이트가 되어버린다. 

 

어찌 보면 유미의 이 첫 회 이야기는 직장인의 평범한 하루에 불과하지만, 시청자들은 이 평범한 하루를 눈을 뗄 수 없는 드라마틱한 반전의 반전의 이야기로 보게 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귀여움 한도초과 세포들의 세계가 있어서다. 빨리 일을 끝내고 채우기와 데이트를 하기를 기대하는 유미의 모습은, 맷돌을 열심히 굴리는 세포들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모든 감정과 생각을 무화시키는 직장인들의 출출함은 거대한 출출세포가 세포마을을 휘젓는 광경으로 묘사된다. 

 

3년 전 연애를 끝낸 유미의 상심은 사실상 이 세포마을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세포’가 겪는 좌절로 극화된다. 헤어진 이후의 슬픔은 세포마을을 홍수로 휩쓸어버린 비로 표현되고, 채우기에 의해 설레는 감정을 갖게 된 유미는 산소호흡기에 유지한 채 깨어나지 못했던 사랑세포가 3년 만에 눈을 뜨는 장면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중간에 루비가 끼어들고 그래서 다음 날 만난 루비 앞에서 표정을 관리하는 유미의 모습 역시 세포마을에서 표정관리 레버를 힘겹게 붙들고 있는 세포들로 그려진다. 이처럼 <유미의 세포들>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으로 드러내던 감정과 생각들을 구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진 세포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시청자들을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역시 멜로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일 게다. <유미의 세포들>에서도 채우기가 성 소수자라는 걸 밝히고 소개해준 구웅(안보현)과 유미가 다소 이상했던 첫 만남부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고 나아가 첫 키스까지 하는 그 과정 역시, 유미의 세포마을에 어느 날 찾아온 개구리(사실은 구웅의 세포마을 사랑세포)가 마을을 복원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그 감동이 컸고, 첫 스킨십에 대한 욕망 역시 응큼이 세포와 응큼이 사우르스 세포라는 귀여운 캐릭터들로 그려져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었다. 

 

<유미의 세포들>은 멜로 단계에서 벌어지는 감정과 생각들을 세포마을에서 벌어지는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퓨전화된 작품의 훌륭한 성공사례가 아닐 수 없다. 감정과 생각이 구체화됨으로써 멜로는 더 생생해진다. 특히 주목되는 건 영상 위에 덧대진 애니메이션이나 자막 같은 구성물들이 실사 멜로의 몰입을 방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연출요소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마치 웹툰의 연출적 표현요소들이 이제는 드라마에서도 충분히 먹힐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미의 세포들>의 멜로가 효과적이라는 건, 유미와 구웅의 연기를 하는 김고은과 안보현이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마치 세포들이 이들의 연기를 든든히 지지해줘 200% 이 캐릭터들의 감정과 생각을 전해주고 있어서다. 시청자들은 유미의 표정 하나 손짓 하나가 그저 지나치지 않는 그의 감정과 생각을 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건 또한 우리가 일상을 다시금 보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누군가 한 마디를 했을 때 그 안에 어떤 세포들이 움직였을까를, 이 드라마를 본 이들이라면 한번쯤 떠올려 봤을 게다. 내 안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하는 타인들의 마음까지 ‘세포들 차원’에서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 <유미의 세포들>은 그래서 유쾌하고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지만, 그것이 유발하는 ‘타자에 대한 감수성’은 그 이상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진:tvN)

예능 출연이 대선주자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

집사부일체

정치인들에게 대중들이 카리스마가 아닌 친숙한 이미지를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대선주자들의 예능 출연은 이제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자리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이러한 흐름은 대선주자의 당락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까.

 

‘집사부일체’가 연 대선주자들의 예능행

SBS <집사부일체>는 ‘대선주자 빅3 특집’을 마련해 윤석열 전 총장, 이재명 지사 그리고 이낙연 전 대표를 ‘사부’로 모셨다. 물론 최근 들어 뒷심을 발휘하고 있는 홍준표 의원이 빠졌지만(그는 그래서 TV조선 <와카남>에 출연했다) 현 대선 경쟁의 유력한 인물들을 섭외해 그들의 정치인으로서만이 아닌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기획의도다. 시청자들로서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기획이 아닐 수 없다. 내년 치러질 대선 후보들이 어떤 사람인가를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보여서다. 이런 호기심과 기대감은 <집사부일체>의 급등한 시청률에 그대로 반영됐다. 3.6%(닐슨 코리아)였던 시청률은 7.4%(윤석열 편), 9%(이재명 편)로 훌쩍 뛰었다. 

 

워낙 네거티브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는 현 시점이라 예능 프로그램이라 해도 어디까지 질문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듯싶다. <집사부일체>의 선택은 그 각각의 후보들에게 이익이 될 만한 옷을 입혀주는 것이었다. 윤석열 전 총장은 그간의 행적으로 인해 다소 날카롭고 권위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그래서인지 <집사부일체>는 그의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자택으로 초대해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직접 요리해 나눠먹고, “그냥 형이라고 해”라고 했던 장면이 인상 깊게 남았다. 또 사법고시 9수를 했던 일화를 통해 낙천적인 성격을 강조했다. 물론 대선주자로서 유권자들에게 자신만의 정책이나 생각을 제대로 들려주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윤석열 전 총장의 입장에서는 예능을 통해 얻어갈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를 최대한 드러냈던 건 사실이다. 

 

이재명 지사도 역시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했지만 그가 <집사부일체>로 얻어가려는 건 유독 많았던 그와 관련된 구설과 이슈들을 오히려 풀어내보겠다는 거였다. 사이다 발언으로 정평이 난 이재명 지사는 그래서 친형 강제 입원, 형수 욕설 논란은 물론이고, 김부선 스캔들에 대한 해명에도 거침이 없었다. ‘욕설 논란’에 대해서는 형님이 자신을 진짜 간첩으로 믿고 있었고 어머니까지 협박하는 상황이라 욕을 했다고 선선히 인정하면서 이제는 화해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김부선 스캔들’에 대해서는 “몸에 점이 없는 것이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훌륭한 재산”이라는 말로 신체 특정부위에 점이 있다며 ‘내연관계’를 주장한 김부선의 주장을 부인했다. 이재명 지사는 예능이 허용하는 ‘유머’까지 잘 활용해 논란이라는 위기를 오히려 해명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대선 홍보영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치인들의 예능행

대선에 미디어를 통해 비춰지는 이미지가 중요하게 작용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부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2년 대선 홍보영상에서 고 노무현 후보가 ‘상록수’의 첫 구절을 통기타를 치며 부르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 정책 중심으로 만들어지던 홍보영상이 감성적인 이미지로 바뀌며 큰 반향을 일으켰던 사례다. 물론 이런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당시 노무현 후보가 대쪽 이미지를 가졌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박빙의 대결을 벌여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대선 후보의 미디어 이미지 전략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 대선이었던 2007년에도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있어 이른바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 홍보영상은 큰 힘을 발휘했다. 훗날 그 할머니는 사실 연기자였다는 게 밝혀졌지만 이 국밥집 홍보영상은 이명박 후보에게 친 서민 이미지와 더불어 경제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후에 <MB의 추억>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면서 거짓 이미지 논란이 생겼고, 이미지 정치가 갖는 문제들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2년 대선에는 당시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문재인 후보가 차례로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박근혜 후보는 국밥집 토크부터 썰렁 개그에 폭탄주 제조법까지 이야기하며 친근함을 드러냈고, 문재인 후보는 아내와 동반 출연해 부부애를 과시하는가 하면 특전사 시절의 식스팩 사진 공개는 물론이고 격파 실력까지 선보이며 인간미를 과시했다. 물론 이 때는 이미 예능 출연을 통한 소탈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 정치인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 되고 있을 때였다. 2013년부터 방영됐던 JTBC <썰전>은 일찌감치 시사, 정치가 예능과 어떻게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가를 보여줬고, 2017년 대선에서는 당시 유력주자였던 유승민, 문재인, 안철수, 안희정 등이 출연했다. 그만큼 이제 정치와 예능은 일상적으로 섞이기 시작했고 이 흐름은 정치인들의 유튜브 개인방송 러시로도 이어졌다. 

 

정치인의 친근한 이미지? 부캐일 뿐

그렇다면 현재 정치인들이 방송이나 홍보 영상을 통해 부각시키려는 친근한 이미지들에 대해 대중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번 <집사부일체>에 나오는 반응들을 보면 과거만큼 정치인들의 예능 이미지를 무게감 있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포장된 ‘거짓 이미지’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 이미지가 그들의 정치인으로서의 행보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는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것. 즉 예능의 이미지와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시선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 변화는 정치가 예능 같은 방송과 그간 지속적으로 밀월관계를 해옴으로써 지금은 거기서 보이는 서민적인 이미지의 효용이 과거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대선을 겪으며 그 때마다 나왔던 ‘친서민적 이미지’가 실제 정치에서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는 걸 경험하면서 갖게 된 ‘무덤덤함’이다. 

 

여기에는 또한 최근 본캐와 부캐를 나누어 보는 대중들의 달라진 시선도 작용하고 있다. 일상에서의 친근한 부캐가 정치인으로서의 본캐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예능에 출연한 대선주자들의 면면을 그저 저들의 부캐를 발견하는 재미 정도로 볼뿐, 본캐와 혼동하지는 않게 됐다. 결국 이러한 시선의 변화 속에서 대선주자들은 정책과 정치철학으로서 대중들의 선택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예능 출연은 일종의 대선주자들이 선 넘는 네거티브전으로 지친 국민들에게 보상하는 일종의 ‘서비스’라고나 할까. 적어도 한번쯤 웃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만으로도.(글:시사저널, 사진:SBS)

‘오징어 게임’과 ‘오십억 게임’ 그리고 아빠 찬스

오징어 게임

“저는 너무나 치밀하게 설계 된 <오징어 게임> 속 말일뿐.” 곽상도 국민의 힘 의원의 아들 곽병채씨가 퇴직금 명목으로 50억 원을 수령했다는 사실에 대한 해명에 갑작스레 <오징어 게임>이 등장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현재 넷플릭스가 서비스되는 전 세계 83개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아마도 곽상도 의원의 아들 역시 이 드라마를 봤던 모양이다. 

 

그가 ‘오징어 게임 속 말’이라고 했던 건 이 드라마에서 기훈(이정재)은 노모의 카드를 빼내 현금 서비스를 받은 돈으로 경마를 한다. 드라마 첫 회에 등장하는 이 시퀀스는 <오징어 게임>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고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제 456억을 두고 이른바 VIP들의 재미를 위해 경주마가 되어 죽고 죽이는 데스 서바이벌 게임이 펼쳐질 거라는 예고. ‘오징어 게임 속 말’은 그래서 기득권자들이 만들어놓은 경쟁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절박하게 목숨을 걸고 달릴 수밖에 없는 보통 서민들을 은유한다. 물론 저 경쟁 시스템을 만든 기득권자들에 대한 환멸에 가까운 냉소를 포함해.

 

하필이면 <오징어 게임>의 비유를 들었지만, 대중들은 그것이 결코 적확한 비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6년 근무하고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는 일이 상식적일 수 없어서다. 게다가 이런 그가 진정으로 ‘오징어 게임 속 말’처럼 절박한 청년이라 보기도 어렵다. 곽씨는 “제가 입사한 시점에는 화천대유는 모든 세팅이 끝나 있었다”며 “돌이켜 보면 설계자 입장에서 저는 참 충실한 말이었다”고 했다. 또 “한 번은 운전 중에, 또 한 번은 회사에서 쓰러져 회사 동료가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했다”며 “일 열심히 하고, 인정받고, 몸 상해서 돈 많이 번 것”이라고 했다. 그가 <오징어 게임> 운운한 건, 설계자는 따로 있고 자신은 그 안에서 열심히 달린 것뿐이라는 걸 피력하기 위함이다. 

 

그는 마치 자신이 <오징어 게임> 속 기훈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드라마를 본 분들은 알 수 있듯이 기훈이 그런 결과를 얻게 되는 건 보이지 않는 설계자의 손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운’이다. 하지만 곽씨가 하필이면 그 회사에 입사해 6년 가량 일하고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은 걸 어떻게 운으로 볼까. 본인 스스로도 ‘설계자’가 있음을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대중들이 이 사안을 ‘아빠 찬스’로 보는 이유다. 

 

곽상도 의원은 공석에서 취준생들의 박탈감을 대변한 일이 있다. “수십 수백 대 1 경쟁 뚫고 어렵게 입사한 직원과 채용에서 탈락한 취업준비생과 그 부모들은 가슴을 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평등, 공정, 정의를 물었다. 놀랍게도 <오징어 게임>에서 456억을 두고 벌이는 게임에 룰로서 제시되는 가치들이 바로 평등, 공정 같은 것들이다. 그것을 어기면 즉결심판에 처해진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을 끝까지 보다 보면 평등, 공정 같은 가치들이 일종의 ‘선언’일 뿐, 결코 실현되는 가치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경쟁사회라는 시스템 자체가 이런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게 한다. 특히 시스템 꼭대기에서 오징어 게임의 말들을 내려다보는 기득권자들의 선언과는 다른 ‘내로남불’이 존재하는 한 더더욱.

 

며칠 전 벌어진 장제원 의원의 아들 노엘 사건 역시 청년들에게 <오징어 게임>을 떠올리게 했을 게다. 무면허 운전, 음주측정 불응, 경찰관 폭행 게다가 그는 이미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황이었다. 2017년 래퍼로 데뷔한 후 지금껏 그만큼 많은 범죄행위들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연예인도 드물다. 하지만 그는 그 때마다 버젓이 활동을 이어갔다. 이것이 어떻게 노엘이라는 한 연예인의 힘만으로 가능할까. 보통의 연예인이라면 수년을 자숙해도 복귀가 가능할까 싶은 수준이 아닌가. 여기서도 청년들은 두 단어를 떠올린다. ‘내로남불’과 ‘아빠 찬스’. 한때 조국과 그 딸을 ‘부모찬스’를 언급하며 맹공했던 장제원 의원에게 이제 고스란히 그 화살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오징어 게임>은 ‘오십억 게임’이 되었다. 누군가 시작한 패러디는 지금의 청년들이 느끼는 분노와 허탈감을 가득 담은 일종의 놀이처럼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 뉴스 속 댓글들도 “미안해 아빠가 곽상도가 아니라서...”, “곽상도 아들로 못 태어난 죄”라는 글이 유행처럼 번져간다. “곽씨와 화천대유는 깐부 사이냐”,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은 목숨을 걸었는데, 곽씨는 무엇을 걸었나” 같은 <오징어 게임> 속 이야기를 꺼내와 분노를 표한다. 

 

지금 <오징어 게임>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건, 그 세계에서 어떤 희망을 보고 있어서가 아니다. 대신 현실을 똑 빼닮은 그 세계를 냉소하고 있어서다. 어쩌면 우리는 저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라고 결코 믿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어떤 공정이나 평등을 부르짖는 힘 있는 자들의 목소리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기훈이 설계자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듯이, 태생적으로 계급이 나뉘어져 ‘아빠 찬스’가 그 사람의 ‘운’처럼 치부되는 경쟁사회 속에서 <오징어 게임>은 불쾌하지만 적어도 폭로의 쾌감을 선사한다. 

 

청년들이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는 그 정서 속에는 분노와 허탈감, 조롱, 냉소 같은 감정들이 깔려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오징어 게임>은 지금 현재 현실 버전으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러니 그 누가 이 냉소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건 어쩌면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닐 게다. 전 세계의 청년들이 <오징어 게임>의 냉소에 열광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진짜 말처럼 뛰고 또 뛰는 서민들은, 게임 바깥으로 튀어나오지 않고서는 결코 끝나지 않을 현실 버전의 경쟁 게임 속에서 몇몇 기득권자들의 즐거움(행복)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으니.(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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