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극의 새로운 도발, 착한 주말극이 반가운 이유

'글로리아'의 첫 장면은 요즘 드라마에서는 보기 드문 달동네 풍경에서 시작한다. 그 불빛이 반짝거리는 동네의 원경에서 안으로 들어가면 새벽부터 일어나기 위해 맞춰놓은 서너 개의 알람시계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주인공 나진진(배두나)이 부스스 일어난다. 그녀 옆에서 같이 일어나는 언니 나진주(오현경)는 어딘지 상태가 온전치 못하다. 척 봐도 알 수 있는 나진진의 곤궁함. 하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새벽부터 신문배달에 김밥장사, 게다가 세차 알바까지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가끔 진주가 사고를 치지만 진진은 그렇다고 절망하지 않는다.

반면 이 달동네 풍경과 대비되는 또 다른 그림으로 '글로리아'는 시작한다. 그것은 어딘지 절망적인 얼굴로 비행기에 앉아 있는 정윤서(소이현)다. 그녀 옆에 우연히 앉게 된 이지석(이종원)의 말대로 그녀는 "창문이라도 열려 있으면 꼭 뛰어내릴 것 같은 표정"이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황으로 보면 그녀는 하고 싶던 발레를 못하게 되었다. 나진진과 비교해보면 절망의 이유조차 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녀는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한다.

달동네의 이웃들은 가족 같다. 사고뭉치지만 하동아(이천희)는 진진의 오빠나 되는 것처럼 그녀를 챙기려 들고, 그의 조카인 하어진(천보근)은 아침마다 진진의 김밥 장사를 돕고 진주와는 연인(?)처럼 친하게 논다. 김밥을 만들어 진진에게 납품(?)하는 셋집 주인 오순녀(김영옥)는 진진의 할머니 같다. 셋집에서 살며 나이트클럽 '추억 속으로'에서 일하는 손종범(이성민)이나 밴드마스터인 이윤배(김병춘), 웨이터인 박동철(최재환) 역시 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의 일원이다. 그들은 가난해도 가족 같은 끈끈한 정이 있다.

반면 정윤서의 집안이나 이강석(서지석)의 집안은 모두 마치 모래알 같은 관계를 보여준다. 정윤서의 엄마(정소녀)는 딸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윤서가 자살을 기도하자 그녀는 "사는 게 힘들어서 수면제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도 살아!"하며 딸을 나무란다. 이강석은 집안에서 이른바 서자다. 그의 친모는 자신을 찾아주지 않는 강석의 아버지 이준호 회장(연규진)의 관심을 끌려고 늘 사고를 친다. 아마도 그래서 홍콩으로 보내졌지만 질리게 술 마시고 도박하고 하는 것도 질려버린다. 그녀는 사는 게 너무너무 지겹다고 말한다. 서자 취급받는 이강석은 의붓형제인 이지석이 귀국하자마자 자신의 자리를 빼앗자 절망한다.

이 피 한 방울 안 섞여도 가족처럼 지내는 달동네 가족들과, 가족이란 테두리로 묶여있어도 모래알처럼 반목하는 상류층 가족들은 '글로리아'라는 드라마의 선명한 주제의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돈 천 만원이 없어서 감방에 가게 된 진진을 빼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에는 진진의 월셋방 보증금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을 알게 되자 절망하는 진진에게 "그 천 만원 없다고 사람이 죽겠냐? 지금까지 살던 것처럼 어떻게든 살겠지 뭐."하고 말하는 하동아의 대사는 이 드라마가 가진 정서를 말해준다.

절망의 바닥에서도 서로를 위무해주며 어떤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달동네 월셋방이지만 기타 하나 들고 "떡볶이를 사랑한 계란. 떡볶이 당신을 닮고 싶어서 난 하얀 얼굴에 고추장까지 뒤집어썼지. 아- 무정한 당신은 어묵에게로..." 같은 얼토당토않지만 이웃들을 웃게 만드는 노래를 멈추지 않는 것. 나진진의 말대로 솔잎을 먹고 살게 태어난 송충이라도 태어난 이유는 있는 법. 그래서 '추억 속으로'라는 한 물 간 나이트클럽은 이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무대가 된다.

"너희들은 여기가 삼류 나이트라고 비웃겠지만 난 아냐." 이 한 물 간 나이트클럽을 여전히 쥐고 놓지 않는 정우현(이영하)은 그래서 이 '글로리아'라는 조금은 구식의 드라마를 여전히 손에 쥐고 어떤 희망을 꿈꾸는 정지우 작가의 분신처럼 보인다. 이것은 세련된 상류층의 이야기들로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해왔던 주말극들에 대한 신선한 도발이다. '글로리아'라는 착한 주말극이 반가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해피투게더' 속 유재석, 박명수, 박미선, 신봉선의 진면목

'해피투게더'의 고정MC 네 사람은 지금 예능 세상에서는 아마도 가장 핫한 인물들일 것이다. '무한도전'과 '놀러와', 그리고 새로 시작한 '런닝맨'까지 합쳐 무려 일주일에 네 편의 예능 프로그램을 자기 식으로 소화해내고 있는 유재석은 물론이고, '무한도전'과 최근에 주목받는 '뜨거운 형제들'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박명수, '해피투게더'를 통해 아줌마 파워를 보여주고는 '세바퀴' 같은 주말 예능의 강자를 이끌고 있는 박미선, 그리고 여성 개그맨으로서 '패밀리가 떴다2'에 이어 '영웅호걸'에도 출연하고 있는 신봉선까지 '해피투게더'는 실로 쟁쟁한 MC들의 경연장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정작 이 당당하고 화려해보이기까지 하는 MC들이 '해피투게더'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지극히 소박하고 심지어 지질해 보이기까지 하다. '무한도전'이나 '뜨거운 형제들'에서 때로는 독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버럭 대고 상대방을 몰아세우던 박명수는 '해피투게더'에 앉기만 하면 심하게 위축된 중년 남자로 돌아간다. 다닥다닥 붙어 앉을 수밖에 없는 자세지만 그래도 심하게 쪼그리고 앉은 그는 유재석이 만들어놓은 멍석 위에서 바보처럼 웃거나 스스로를 아낌없이 망가뜨림으로써 찾아온 게스트들을 편안하게 만들어놓는 역할을 한다.

집단토크쇼 '세바퀴'에서 그 집단적인 게스트들을 좌지우지하며 때론 아줌마 특유의 뻔뻔함으로 톡톡 쏘기도 하고, 때론 뻣뻣한 몸으로 춤을 추는 등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몸 개그를 선보이는 박미선도 마찬가지. 그녀는 '해피투게더'에 앉으면 얘기 들어주는 푸근한 아줌마로 변신한다. 때론 엉뚱한 소리를 함으로써 면박을 받기도 하는 그녀 역시 이 프로그램에서는 모든 촉수를 게스트의 일거수일투족에 맞추고 있다. 이것은 가수들이 나오면 여지없이 망가지는 춤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젊은 세대 특유의 발랄함과 나이 든 세대까지 끌어안는 특유의 입담을 가진 신봉선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녀 역시 '해피투게더'에서는 '영웅호걸' 같은 조금은 독하달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편안함을 선사한다.

이것은 이미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캐릭터를 순발력 있게 콕콕 찍어내는 것으로 그것이 캐릭터로 굳어져 있는 유재석도 예외는 아니다.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 특유의 편안함은 '무한도전'이나 '런닝맨' 같은 때론 절박해보이기까지 하는 상황보다는 '해피투게더'에서 더 잘 드러나는 편이다. 유재석의 진두지휘 아래 네 명의 MC들이 만들어내는 조합은 그래서 게스트들에게 유독 친절한 '해피투게더'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세대와 성별이 아무리 달라도 이 속에 들어오면 누구나 무장해제 되고 마는 그 분위기.

독한 예능들이 경쟁적으로 등장하는 상황에서 그 예능을 이끌어가는 MC들 역시 독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해피투게더'라는 마치 친정 같은 편안함을 연출하는 프로그램 속으로 들어온 이 네 명의 MC들의 모습이 이들의 진면목이라 느껴지는 것은 말이다. 경쟁 사회 속에 내던져진 자극의 피곤함에서 벗어나자 오히려 더 드러나는 진가처럼. 이것은 지금 목요일 밤 예능의 선두주자로서 17%에 가까운 시청률을 내고 있는 '해피투게더'가 가진 독특한 아우라라 할 수 있다. 이런 아우라 속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MC들의 진심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쁜 남자', 유리가면 뒤에 숨겨진 자본의 얼굴

'여기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기억에서 조차 사라진 이들은 이렇게 작고 초라한 죽음으로 남아있는데 그들은 죽음으로 몬 사람들은 여전히 평온하다...(중략) 그들에게서 모든 걸 빼앗을 수만 있다면 난 기꺼이 악마이길 선택한다. 신이 그들 편이라면 악마는 나의 편이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나쁜 남자'의 심건욱(김남길)이 살해된 부모의 묘 앞에서 오열하며 하는 이 내레이션은 일종의 선언문 같다. 심건욱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다른 사람 인생 따위는 벌레보다 더 하찮게 여기는 해신이라는 그 껍데기를 쓴 그 인간들"을 무참히 부숴버릴 것이라 선언한다.

도대체 해신(으로 대변되는 인간들)은 무엇이고, 그들이 심건욱과 그 가족들에게 한 짓은 무엇일까. 그들이 무엇을 했기에 심건욱이라는 남자를 나쁘게 만든 걸까. 어린 시절 그를 입양했다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후 파양했다는 사실 때문일까. 아니면 그렇게 파양되면서 돌아가려던 부모마저 죽음에 이른 그 비극적인 운명 때문일까. 물론 그것이 심건욱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그것이 이 나쁜 남자가 그토록 부숴버리려는 해신의 실체를 전부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해신은 좀 더 보편적으로 바라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의 얼굴을 대변한다.

높은 빌딩과 화려한 파티, 값비싼 스포츠카와 요트, 갖고 있지만 사용하지도 않는 오피스텔. 해신이라는 자본이 가진 외모는 실로 유혹적이다. 거기 살아가는 이들은 명품백에 우아한 옷, 게다가 자본에 의해 잘 관리된 외모로 보는 이들을 선망하게 만든다. 문재인(한가인)이라는 캐릭터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의 시선으로 이 해신을 기웃거린다. 이 단단한 자본의 틀 안에서 태생적으로 평범하게 살도록 운명 지워진 그녀가 홍태성(김재욱)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신여사(김혜옥)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그 해신이라는 자본 속으로 자신도 편입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판타지일 뿐이다. 홍태성에게 접근해 그 어떤 선을 넘어서는 순간, 신여사는 그녀의 뺨을 때리며 "네까짓 게 뭔데 선을 넘어오려고" 하느냐며 다시 선을 긋는다. 그렇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다음날 다시 회사에 출근한 그녀는 오히려 신여사에게 사과를 한다. 잘못한 것도 없지만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가 문재인이라는 조금은 속물적인 캐릭터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는 그녀가 우리 같은 보통 샐러리맨들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번 자본의 세계 속으로 출근해 때론 모욕을 받으면서도 그 쥐꼬리 만한 월급으로 대변되는 자본의 줄 한 자락을 잡기 위해 오히려 고개를 숙이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해신으로 대변되는 자본의 추악한 이면을 드러내기 위해 그 유리가면을 깨버리려는 나쁜 남자 심건욱은 경험적으로 그 실체를 아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이 자본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문재인이 홍태성에게 접근하고 그 해신으로 편입되려는 욕망을 이해한다. "나는 어떻게든 홍태성이랑 결혼해서 저 사람들 가족으로 만들 테니까. 나까지 밟고 올라오고 싶으면 어디 니 마음대로 한번 해봐." 심건욱이 해신에 복수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문재인이 그에게 하는 이 말은 그래서 자본에 대한 두 태도의 대결처럼 보인다. 편입되려는 욕구와 파괴하려는 욕구. 이 양반감정은 우리네 현대인들이 자본에 대해 동시에 갖는 두 가지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심건욱이 본래 홍태성이었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문제는 극적 재미를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시지에는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다. '나쁜 남자'가 말하려는 것은 겉보기에는 우아해 보이지만 그 실체는 추악한 해신이라는 얼굴을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사표를 내고 나오면서 신여사에게 "멀리서 봤을 때 그 우아해보였던 모습의 실체를 본 게 가장 실망스러웠던 일"이라고 말하는 건, 그녀 역시 이제 심건욱이라는 나쁜 남자를 통해 막연히 동경했던 세상의 실체를 보게 됐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나쁜 남자'는 마치 제목만 두고 보면 현 트렌드를 반영하는 멜로처럼 보이지만 그 멜로 이면의 사회극을 담고 있는 드라마다. "나쁘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진짜 나쁜 것은 그를 그런 '나쁜 남자'로 만든 세상이다. 물론 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러 신여사로 대변되는 절대악에 의해 만들어진 불행한 한 가족사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가 벗겨낸 자본의 유리가면은 여전히 우리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멜로라는 가면을 쓰고 사회의 부조리함을 거침없이 끄집어낸 '나쁜 남자'는 이 장르를 넘나들며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낸 대본의 힘과, 미스테리와 스릴러적인 요소에 절절한 멜로를 잘 연결한 연출력, 그리고 무엇보다 김남길에서부터 오연수, 한가인, 김재욱은 물론이고 드라마를 팽팽하게 만들어낸 악역으로서의 김혜옥 같은 연기자들의 발군의 연기력(사실 이 드라마를 통해 발견된 것이나 다름없는)이 잘 어우러져 보기 드문 수작을 만들어냈다.

"어떻게 천 원짜리도 하나 안 갖고 다니냐. 동그라미 하나 적다고 무시하면 못써요." 재인의 동생 원인(심은경)의 요구에 홍태성이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를 꺼내 주자 그녀가 건네는 이 말은 유머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 깊은 페이소스를 담고 있다. 뭐든 손만 내밀면 다 가질 수 있고 할 수 있는 돈. 하지만 그래서 추악해질 수 있는 돈의 세계는 우리가 늘 경험하는 바로 그 세계의 실체다. 우리가 '나쁜 남자'에 깊게 공감했던 이유는 바로 이 세계를 나쁜 남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봤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극과 캐릭터, 그리고 보편적 가족애

'자이언트'에서 박소태(이문식)라는 캐릭터는 독특하다. 그는 주인공 이강모(이범수)와 어린 시절 함께 구두닦이를 하며 생존해온 인물. 어찌 보면 가까운 절친이지만, 그 하는 짓은 영락없는 강모의 적이다. 그는 정식(김정현)이 살인을 저지르고 그 혐의를 강모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을 알면서도 돈 몇 푼에 친구를 팔아먹는다. 심지어 강모를 살해하라는 사주를 받고는 감옥까지 일부러 들어오기까지 한다. 그 때마다 강모는 위기를 모면하는데, 그렇다고 강모가 박소태를 처벌하지는 않는다. 박소태는 그런 강모 앞에 참회하는 듯 보이다가도 기회만 잡으면 다시 강모의 적으로 돌아서곤 한다. 결국 노역장에서 다리를 절단하게 될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한 강모 앞에 드디어 박소태는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적으로도 보이고 절친으로도 보이는 박소태라는 인물의 끝없는 심적 갈등과 변화는 '자이언트'의 캐릭터들이 왜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지를 잘 말해준다. '자이언트'에는 박소태처럼 주인공은 물론이고 적까지 평면적인 인물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인물들은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절대악인 것처럼 보이던 인물이 어떤 순간에는 아주 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보통 드라마의 캐릭터가 한 일면으로 극화되는 경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조민우(주상욱)는 조필연(정보석)의 아들로서 강모와 대립하는 인물이지만, 미주(황정음)와의 관계 속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캐릭터에 대한 다차원적인 조명은 단지 캐릭터를 생생하게 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어떤 틀에 묶이지 않는 캐릭터들은 이야기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킨다. 캐릭터들의 변화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이야기도 복수극이라면 늘상 반복되는 선악구도 그 이상을 넘어선다. '자이언트'를 보면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천변만화의 스토리가 놀라웠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자이언트'만의 캐릭터들 때문에 가능해진 것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스토리가 자칫 대중들에게는 복잡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자이언트'는 여기에 두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었다. 그 하나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시대적 사건을 배경으로 채용한다는 점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이나 삼청교육대 같은 시대적 비극 속에서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그 어떤 가상의 사건들보다 더 잘 이해가 된다. 이것은 거꾸로 얘기하면 시대극이 가진 한계(이미 결과를 다 알 수밖에 없는)를 오히려 가능성으로 바꿨다는 얘기다.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시대극의 사건들 속에 조금은 복잡한 심리변화를 겪는 인물들을 집어넣어 긴박감을 살려낸 것.

이밖에 또 다른 안전장치는 가족이다. 시대극은 자칫 그 거대한 흐름 때문에 사건들이 응집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질 수 있지만, '자이언트'는 그 시대를 온몸으로 겪는 가족을 통해 그려냄으로써 그 위험성을 벗어난다. 게다가 이 가족이란 코드는 자칫 정치적으로 흐를 이야기를 보편적으로 되돌려놓는 장치이기도 하다. 인물들은 권력과 욕망을 향해 달려가지만, 거기에는 끈끈한 가족애가 궁극적인 목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에서 면죄부를 얻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가족코드가 좀 더 폭넓은 시청층을 끌어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자이언트'의 강모와 성모(박상민) 그리고 미주가 만나는 그 시점부터 시청률이 상승곡선을 그렸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자이언트'가 초반 부진을 깨고 대반전에 성공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지점들이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대극이라는 조금은 느슨할 수 있는 시대적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그 위에 천변만화하는 캐릭터들의 치열한 심리전이 긴박감을 높이면서도, 가족애 같은 보편적인 정서를 놓치지 않은 점. 이것이 바로 '자이언트'라는 거인을 다시 일으킨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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