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애에서 사랑으로 넘어가는 그 설렘의 순간

‘지붕 뚫고 하이킥’의 멜로 라인은 꽤 복잡한 편이다. 황정음과 이지훈(최다니엘)은 서로 사사건건 다투고 싸우면서 멜로가 이어진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레지던트 3년차 이지훈과, 서운대라는 자격지심에 늘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황정음은 외적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바로 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황정음은 이지훈 앞에서 늘 굴욕적인 상황을 연출하는데, 술을 마시고 떡실신녀가 된다거나, 서운대생이라는 게 들통 나 그것을 감추려고 생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좀 더 완벽해지고 싶어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지훈은 정반대다. 완벽하다 못해 건조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그는 오히려 빈틈을 많이 보이는 황정음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 그들은 서로에게 부재한 부분을 상대방을 통해 찾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관계가 발전해 결국 키스라는 사건(?)으로 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술이라는 매개체다. 술은 황정음이 이지훈에게 마구 들이대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데, 그녀는 그것이 술 때문이라며 핑계를 댄다. 이지훈은 또 그럴 때마다 황정음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 역시 그녀가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한다. 저게 멜로일까 아닐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상황은 흔한 멜로가 갖는 직접적인 사랑고백 방식의 상투성을 살짝 벗어나게 해준다. 그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따뜻한 마음 정도로 처음에는 인식되다가 차츰 그 인간애가 사랑으로 변해가는 식이다.

이것은 이지훈과 신세경이 보여주는 멜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관계에서 이지훈은 신세경의 어려운 삶을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인물로 그려지는데, 신세경의 휴대폰을 사주고 요금을 대신 내준다거나, 그녀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계속 하라고 조언해주고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모습은 따뜻한 인간의 순수한 호의로 다가온다. 그런 호의에 신세경의 마음은 흔들리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손수 짠 목도리 같은 정성으로 보여준다. 즉 이 멜로에서도 그저 말이나 몸으로 전해지는 직접적인 남녀 간의 사랑표현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인간애의 모습이 휴대폰이나 목도리 같은 매개물로 전해질 뿐이다.

한편 황정음과 신세경, 그리고 정준혁(윤시윤)이 엮어가는 멜로는 실로 그 전파되는 방식이 흥미롭다. 신세경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녀의 학업을 도와주려는 정준혁은 자신이 그럴 만큼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 때문에, 성적을 올리고 싶어하고 황정음에게 도움을 청한다. 황정음은 자신을 누나라 부르지 않고 실제로 자신의 보디가드 역할까지 해주는 정준혁을 내심 마음에 둔다. 그런 마음을 전하는 방식으로 그녀는 잠까지 설쳐가며 정준혁의 시험을 도와준다. 그렇게 해서 성적이 올라가자 정준혁은 신세경을 찾아가 그걸 자랑하고, 황정음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어딘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함을 느낀다.

즉 이 세 사람 사이에 매개로 끼는 것은 바로 공부가 된다. 마치 먹이사슬처럼 연결된 이 관계 속에서 그것이 흔한 멜로가 보여주는 질투와 집착으로 이어지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서로가 서로의 학업을 도와주는 형식으로 이들의 사랑과 정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황정음, 신세경, 이지훈, 정준혁이 보여주는 멜로는 직접적이지 않고 그 사이에 어떤 매개물을 넣음으로써 세련되면서도 훈훈한 인상을 주게 된다. 그 매개물은 때론 술이 되기도 하고, 때론 휴대폰이나 목도리 같은 물질적인 것이 되기도 하며, 때론 학업을 도와주는 식의 무형적인 도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남녀 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한 인간 대 인간의 정으로 보인다.

이 시트콤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렇게 네 사람이 엮어가는 멜로가 인간의 정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 그래서 그 마음이 오고가는 것을 볼 때, 보는 이의 마음 또한 흡족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사람을 처음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서, 어떤 거리두기가 가능할 때 유지되는 것이다. 보편적인 인간애에서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연결되어가는 과정, 이것이 우리가 삶 속에서 알아가는 사랑의 과정이 아닐까. ‘지붕 뚫고 하이킥’의 멜로는 바로 그 지점, 거리두기가 가능한 인간애의 차원에서, 이제 막 거리가 좁혀져 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넘어가는 그 곳의 설렘과 떨림을 담아내고 있다.

다른 듯 닮은 꼴, '다함께 차차차'와 '천사의 유혹'

"오늘은 드디어 비밀이 밝혀질까?" '다함께 차차차'를 보는 분들의 마음은 한결 같다. 하지만 이 일일드라마가 끝나는 지점에서의 반응도 한결 같다. "또 저러고 끝나네?" 이것이 '다함께 차차차'가 지금껏 시청자들을 끌고 온 방식이다. 120여회 동안 이 드라마가 해온 이야기는 실로 앙상하다. 가족드라마가 담기 마련인 다양한 세대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결혼을 하려는 진우(오만석)와 나윤(조안)을 끝없이 가로막는 점입가경의 인물들로 점철되면서 퇴색해버렸다.

처음에는 너무나 격차가 나는 집안이라서, 또 이미 정해놓은 배필이 있다는 이유로 그들의 결혼을 반대하던 나윤의 모친인 은혜(이응경)는, 점점 잃었던 기억을 되찾아가는 자신의 남편이 진우의 작은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제는 거꾸로 결혼을 빨리 시키려 한다. 그렇게 하면 남편인 신욱(홍요섭)이 본래의 처인 윤정(심혜진)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진우와 나윤의 결혼을 허락해주자고 했던 신욱은 자신이 윤정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이제는 거꾸로 결혼을 반대하기 시작한다.

마치 마구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하나를 끌어당기면 다른 하나가 엉켜버리는 식의 이 드라마 구조는 가족과 가족 사이에 만들어지기 힘든 인연의 줄을 과도하게 이어놓음으로써 결혼이라는 지상과제를 가운데 두고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아마 몇 개월 전에 이 드라마를 보다가 지쳐서 한동안 보지 않던 분이라면 다시 드라마를 봤을 때 "아직도 그대로야?"하는 반응이 나올 법한 일이다. 지나치게 질질 끌어가는 드라마에 지치면서도 "그래도 오늘은.." 하는 마음에 자꾸 보고는 "또 낚였다"는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얄팍한 편법으로 이 드라마는 30% 이상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반면 '천사의 유혹'은 그 속도감에 있어서는 '다함께 차차차'와는 정반대다. '다함께 차차차'를 보고 '천사의 유혹'을 연달아 시청해보면 그 속도가 얼마나 다른 지를 실감할 수 있다. '다함께 차차차'가 120여회 동안 했던 이야기는 '천사의 유혹'의 1회분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만큼 '천사의 유혹'은 속도가 빠르고,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나간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다함께 차차차'와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천사의 유혹' 역시 비극적인 두 가족사를 얼기설기 엮음으로써 끊임없는 극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주아란(이소연)에 의해 사지에 던져지는 신현우(한상진), 가까스로 살아나 안재성(배수빈)으로 변신(?)하여 주아란에게 다시 복수하려는 신현우, 그러나 신현우가 사랑하는 윤재희(홍수현)와 주아란이 자매지간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주아란의 정부로 그녀를 돕던 남주승(김태현)은 신현우의 모친의 숨겨진 아들이고... 이 비밀로 점철된 관계의 실타래는 실로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다.

그러니 그 관계 하나하나를 들추는 것만으로도 드라마는 쉬지 않고 달려 나가는 힘을 발휘한다. 그나마 이 드라마의 미덕이라면 질질 끌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만일 '다함께 차차차' 같은 속도로 이 드라마가 전개된다면 1년 이상을 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쉬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속도감이 가져오는 부작용도 크다. 인물들은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고 있고, 따라서 드라마는 점점 후반부로 오면서 연극적인 느낌으로 변모하게 된다. 비장한 대사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게 연극이 아니라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연극적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나름 게임처럼 재미를 주는 구석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실험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험이라는 말로 기본을 무시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나는 너무나 느리고, 다른 하나는 정반대로 너무 빠르다. 그런데 그 속도감 이면을 바라보면 그 설정들이 너무나 비슷하다. '다함께 차차차'와 '천사의 유혹'의 이 다른 듯 닮은 구조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지나친 관계에 대한 집착이다. 특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들에 우리가 지나치게 관용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그 관계들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게 될 때 우리는 지치게 되고, 빠른 속도로 보게 될 때 우리는 그 자극적인 상황만을 보면서 그 본질이 가진 진지한 문제를 놓치게 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런 이야기들이 이제는 상투적인 것이 될 만큼 드라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장방영이 드라마에 미치는 영향

'선덕여왕'에서 미실(고현정)이라는 존재는 절대적이다. 이 사극의 구조 자체가 미실이라는 거목을 세워두고 그것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면서, 동시에 여왕이라는 자리까지 성장해가는 덕만(이요원)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애초에 '삼한일통'을 목적으로 세워지지 않은 것이라면, 미실의 죽음과 함께(즉 덕만의 여왕즉위와 함께) 극은 끝나는 것이 정상이다. 극의 절정과 결말 사이가 길어지면 극이 흐트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의 선택은 연장방송이었다. 그리고 이 연장이 방송사에는 일정의 혜택으로 돌아간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네 사극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선덕여왕'에게는 불운이었다. 연장방송 속에서 미실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여운도 사라져갔고, 그러자 거기에 바락바락 대들면서 때론 그녀를 닮으려하고 때론 그것을 넘어서서 여왕의 자리에 오른 덕만 역시 매력을 잃게 되었다. 이것은 덕만을 도와주던 일련의 인물들, 예를 들면 유신(엄태웅)이나 비담(김남길), 춘추(유승호), 알천(이승효), 월야(주상욱) 같은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연장에 들어가면서 이 미션사극이 가진 최대의 난점은 바로 미실 같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입 꼬리만 조금 틀어도 위기상황이 연출되는 적수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즉 미션사극은 주인공을 끝없이 위기상황 속으로 밀어 넣고 그 위기를 헤쳐 나오면서 생겨나는 국면전환을 반복하면서 드라마의 추진력이 생기는 것인데, 이미 미실 같은 품격 있는(?) 위기상황을 경험해본 터라, 새롭게 제시되는 위기가 그다지 매력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비담을 그 자리에 세워 유신을 몰아내는 위기상황을 연출한 것 역시 "사랑한다면 아낌없이 빼앗으라"는 미실의 한 마디가 실어준 힘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유신의 위기와 백제의 침공, 염종(염효섭)의 책략으로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그 안에 소소한 수수께끼 같은 에피소드들(흑(黑)자로 시작되는 백제 스파이 에피소드나 일거에 백리를 가는 백제의 기마부대 에피소드 같은)을 집어넣지만, 그것이 극을 팽팽하게 하기보다는 어딘지 산만한 느낌을 주는 것은 미실 같은 진중하고 매력적인 위기를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미실의 빈 자리를 채우려는 강박적인 느낌마저 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이 과도해지는 것은 여전히 그 약해진 스토리의 힘을 보충할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방증인 셈이다.

당장의 위기 상황 만들기에 급급하다보니, 미실이라는 거목 아래 만들어진 여유 속에서 위기가 가진 대의나 현실풍자, 시대정신을 두고 벌이는 논쟁 같은 품격 있는 과거의 대결구도는 찾기가 어려워졌다. 드라마가 여유를 잃은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은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 같은 캐릭터들의 극의 긴장을 풀어주는 유머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의 존재 역시 팽팽한 긴장감이 먼저 전제된 후에라야 빛을 발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렇게 되자, 그 빈 자리를 차고 오는 것은 비담과 덕만이 뒤늦게 만들어가는 멜로다. 물론 이 멜로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덕만은 여왕이라는 존재로서 한 개인의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아킬레스건이 있다. 그러니 덕만에게 사랑으로서 접근하는 비담은 여왕으로서의 덕만에게는 위기상황이 아닐 수 없다. 즉 덕만의 여왕와 여인 사이에서의 갈등은 이 사극에 새로운 위기를 제공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비담이 덕만에게 밀서를 통해 순정을 보임으로써 온전히 멜로의 틀로 바뀌었다. 대신 이 사실을 안 비담의 무리들이 그를 자기 편에 세우기 위해 모함하게 되면서 위기는 덕만의 위기가 아니라 비담의 위기로 바뀌었다. 비담의 절절한 사랑이 대중들에게 다가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지금껏 '선덕여왕'이 달려온 이야기 틀거리에 잘 맞는지는 의문이다. 이들의 갑작스런 멜로가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 미실 사후에 '선덕여왕'은 또 하나의 새로운 사극을 쓰고 있다. 덕만의 성장을 다루는 사극으로서의 '선덕여왕'은 미실이 죽는 지점에서 일단락되었다. 여왕이 된 후에 겪게 되는 공신들 사이의 갈등과 새로 왕이 된 자가 겪게 마련인 신하들과의 갈등, 그리고 갑자기 등장한 백제와의 갈등은 또 한 편의 사극으로 만들어도 충분한 소재거리가 된다. 기계적으로 보면 미실이 죽기 전과 죽은 후의 이야기가 연결은 되지만, 안타깝게도 드라마에는 그것이 추구하는 일관된 통일성이라는 것이 있어 감성적으로는 앞과 뒤가 잘 연결되지 않는다.

이것은 사극이 그리는 세계가 현실과 다른 점이다. 현실의 역사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흘러가지만, 사극은 그 역사의 한 단면을 하나의 이야기 맥락으로 꿰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미실 사후부터 삼한일통까지의 과정을 '선덕여왕' 시즌2로 그릴 수는 없었던 것일까. 미실의 죽음과 함께 끝났으면 하나의 신화로서 미실도 살고 덕만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것이 '선덕여왕'의 연장방영이 안타까운 이유다.

 ‘여배우들’, 진실과 설정 사이를 걸어가는 아찔한 즐거움

이재용 감독의 새 영화 ‘여배우들’에서 고현정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무릎팍 도사’를 녹화하는데 비몽사몽 간에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놨다는 이야기. 그녀의 일상이 인서트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도 막 깨어 피곤한 얼굴로 ‘무릎팍 도사’를 보며 깔깔 웃는 모습이 나온다. 그녀의 그 대사는 바로 그녀가 진짜로 출연했던 ‘무릎팍 도사’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실제로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이른바 코현정(연실 코를 푸는 고현정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닉네임)이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거침없이 솔직하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영화 ‘여배우들’이 상기시키는 ‘무릎팍 도사’의 이미지는 고현정에서 윤여정으로 이어진다. 최근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무릎팍 도사를 무릎 꿇리는 입담을 보여준 그녀는 자신의 젊었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장희빈’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당대에는 최고의 여배우로서 알려진 그녀였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신을 잘 모른다며 “장희빈에 출연했었다고 하니까, 그런 장희빈에서 역할이 뭐였냐고 묻는 후배 연예인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것이 영화 ‘여배우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김옥빈은 ‘장희빈’ 얘기를 꺼낸 윤여정에게 “장희빈에서 역할이 뭐였냐”고 묻는다.

즉 이 윤여정의 ‘무릎팍 도사’에서의 진술과 ‘여배우들’ 속에서의 대사는 기묘한 리얼리티를 구성한다. 즉 리얼 토크쇼를 주창하는 ‘무릎팍 도사’에서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드러낼 때, ‘여배우들’이라는 영화 속 상황 역시 짜여진 대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리얼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주게 된다. 실제로 ‘여배우들’은 물론 영화적 구성이 되어 있지만, 상황만 던져주고 대본은 따로 없는 말 그대로의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속에서의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는 설정이겠지만 분명 진실된 영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윤여정이 해준 일련의 ‘담배 에피소드’가 이 영화와 만나는 지점이다. 윤여정은 ‘무릎팍 도사’에서 두 가지의 ‘담배 에피소드’를 얘기했는데, 그하나는 “‘가루지기’에 출연하게 된 이유가 감독이 자신의 담배 피는 손이 그토록 섹시할 수 없었다는 말에 넘어가서”라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한 선배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함께 피워주면 고맙다고 한 말에 자신이 감복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는 ‘여배우들’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윤여정은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 무는데, 카메라는 의식적으로 그녀의 담배를 쥔 손가락을 분위기 있게(?) 잡아낸다. 또 김옥빈과 함께 담배를 태우는 장면을 통해 ‘무릎팍 도사’에서의 세대를 넘는 훈훈한 이야기를 실제로 보여준다.

한편 이미숙이 영화 속에서 한 “100살이 되어도 여자로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는 지난 2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했던 그녀의 진술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이혼한 그녀에게 “현재 교제 중인 남자친구는 없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직도 자신 뒤에 뭔가 숨겨둔 남자친구가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건 아직도 나를 여자로 본다는 얘기”라며 기뻐했던 적이 있다. ‘무릎팍 도사’에서 보여준 진솔한 모습과 영화 ‘여배우들’의 솔직한 모습이 겹쳐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최지우에게 가장 라이벌 의식이 느껴지는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에 중국시장을 가진 이영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최지우에게 윤여정이 “지우는 중국시장을 지키고 나는 재래시장을 지키마”하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아찔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기에는 진실과 설정 사이를 걸어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짜릿함이 느껴진다.

‘무릎팍 도사’가 그 한정된 세트 안에서 그토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그 속으로 들어오는 인물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화 ‘여배우들’은 화보 촬영장이라는 좁은 공간에서의 몇 시간 동안이라는 시공간의 한정에도 불구하고, 실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그 형식 자체가 ‘무릎팍 도사’를 닮아있다. 여배우들 간에 벌어지는 팽팽한 대결구도, 듣는 이를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이야기들, 여배우 자체가 갖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 그 아우라를 깨고 나오는 소박한 모습들, 그리고 여배우라는 삶이 주는 공감의 눈물까지, 이 영화는 한 편의 잘 만든 ‘무릎팍 도사’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배우라는 특수한 위치의 존재들과 우리 같은 서민들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한 인간으로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지점에서 ‘무릎팍 도사’를 닮은 ‘여배우들’만의 독특한 매력이 생겨난다. 이들과 함께 하는 백여 분이 이질적인 존재들을 엿보는 판타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한 공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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