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이 보여준 가수의 생존법

가수가 노래만 해서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은 예능 프로그램에 대거 진출해 있는 가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적확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1박2일’이다. 강호동과 이수근을 빼고, 은지원, 김C, MC몽, 이승기가 모두 가수들이기 때문이다. 이들 가수들은 ‘1박2일’이라는 예능의 한 배를 타면서 그 주가 또한 급상승했다. 은지원은 은초딩이란 별명을 얻으면서 동시에 “밤에 비와-”로 더 알려진 ‘ADIOS’도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승기는 ‘다 줄거야’, ‘추억 속의 그대’등 리메이크곡을 수록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앨범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편 MC몽은 최근 발표한 ‘서커스’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호응은 음으로 양으로 ‘1박2일’과 떼어놓고 보기가 어려워졌다. 도대체 ‘1박2일’의 어떤 점들이 이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가수들, 살아있는 무대를 만나다
만약 이들이 가수들이 아니었다면 ‘1박2일’의 재미는 분명 반감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경남 거창 편에서 갑작스레 결정된 ‘전국노래자랑’ 출전(?)에 이어, 경북 문경 편에서 우연히 들르게 된 충주대에서 이루어진 게릴라 콘서트 같은 독특한 살아있는 재미는 주지 못했을 테니까. 가수들이지만 예능을 하게된 그들이 그 속에서 무대를 만났을 때 주는 감흥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무대가 그들이 늘 노래부르던 화려한 무대와는 거리가 먼 지극히 서민적인 무대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낮은 무대는 단지 ‘1박2일’에게만 수혜를 준 것이 아니다. 늘 정해진 안무와 정해진 계획대로 짜여진 틀 속에서 노래하던 그들이, 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무대에서 발견하는 것은 진짜 ‘라이브’라는 말에 걸맞는 살아있는 무대다. 충주대에서 즉각적으로 이루어진 게릴라 콘서트는 바로 그 우연성으로 인해 더 빛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새로운 무대이다. 늘 보던 스튜디오와 조명들과 안무들을 모조리 떼어낸 자리에 남는 것은 마치 연예인들의 맨 얼굴 같은 가수들의 날 것의 모습이다.

가수들, 맨 얼굴을 드러내다
‘1박2일’이 보여준 가수들의 얼굴은 실제로도 맨 얼굴이었다. 추운 야생에서의 하룻밤을 지내고 난 그들의 부스스한 얼굴들에서 과거 가수들이 써왔던 신비주의 전략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 언저리에 새롭게 지지대를 형성하는 것은 바로 친근한 가수들의 얼굴이다. 은지원이나 김C, 그리고 MC몽이 이 예능 프로그램을 만나 시너지를 이룰 수 있었던 원인은 그들의 전략이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먼 친근함에 있었기 때문이다. 은지원의 악동 같은 이미지, 김C는 보헤미안적 이미지, MC몽의 거침없는 자유로움의 이미지는 ‘1박2일’이 주창하는 야생과 잘 어울렸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맨 얼굴 전략’이 주효했던 가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승기다. 이승기는 은지원이나 김C, 그리고 MC몽과는 다른 이미지, 즉 귀공자 이미지를 가진 가수이지만 과감히 전략을 수정하면서 오히려 친근한 이미지까지 얻어냈다. ‘내 여자라니까’를 부르며 ‘누나들 사이에서’ 머물렀던 이승기가 ‘1박2일’에 합류함으로써 바뀌어진 것은 이제 ‘형들 사이에서도’ 귀여운 이미지를 얻어냈다는 점이다. 이로써 이승기의 팬층은 좀더 폭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그의 리메이크 앨범인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가 중년층까지를 소화할 수 있는 옛 노래들을 가지고, 여자가수들의 노래와 남자가수들의 노래를 차례로 부르면서 호응을 얻어낸 팬층과 잘 맞아떨어지는 결과다.

가수들, 가능성을 만나다
무엇보다 ‘1박2일’이 가져온 가장 큰 효과는 이들이 팀을 이루면서 서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강호동을 맏형으로 유사가족을 형성한 이 가수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동시에 상대방의 캐릭터를 서로 강화해주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가수들은 ‘1박2일’을 떠나서는 저마다 각자의 가수의 영역 속에서 활동하면서, 동시에 이 프로그램 속에서는 강력한 팀으로서 활약한다. ‘1박2일’이 리얼 버라이어티로서 애초부터 이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가수들의 외적인 활동은 고스란히 ‘1박2일’의 확장으로도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가수들의 외적 활동이 ‘1박2일’의 확장된 형태가 되면, 거꾸로 ‘1박2일’은 마치 가수들의 이미지를 매주 제고시켜주는 프로그램으로서도 기능하게 된다. 프로그램 측이나 가수들이나 모두 바람직한 지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정해진 안무대로 인형처럼 움직이는(인간이 아닌 듯한 존재) 가수들은, 이제 어떤 식으로든 ‘1박2일’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낼 필요를 느낄 지도 모른다. 물론 가수는 노래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만 이제 더 이상 노래만 잘한다고 성공하는 가수가 되기는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연기자가 연기를 통해 리얼한 모습(멋지게 보이는 모습이 아닌)을 보여주고, 개그맨들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통해 그 리얼리티를 드러내는 사이, 늘 똑같은 순위 프로그램의 형식 속에서(그것마저도 거의 사라졌다) 얼굴을 드러내야했던 가수들에게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점은 바로 그 리얼한 모습이었다. 그런 면에서 ‘1박2일’의 기획되지 않은 맨 얼굴, 기획되지 않은 무대를 통해 가수들이 만난 것은 이 시대 가수들의 새로운 생존법이면서 동시에 가능성이다.

‘개그야’, 무의미의 실험이냐 의미의 공감이냐

‘개그야’가 생긴 건 분명 ‘개그콘서트’가 열어 놓은 공개무대개그의 영향이 크다. 개그의 무한경쟁 시대를 열어놓은 KBS ‘개그콘서트’가 독주하고, 그 분위기를 감지한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등장한 후에도 MBC는 꽤 오랫동안 ‘웃으면 복이 와요’가 가졌던 콩트 개그류의 전성기가 다시 도래하기를 꿈꾸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대세가 기운 상황에서 MBC가 내민 카드가 ‘개그야’다. ‘개그야’가 여타의 공개개그와 차별점을 두었던 것은 내러티브 속에 잡아넣는 말 개그, 즉 유행어였다. ‘죄민수’의 “아무 이유 없어!”, “MC계의 슈레기"나 ‘사모님’의 “운전해 어서!” 같은 유행어들은 ‘개그야’가 가진 말 개그가 낳은 것들이다.

무대개그의 실험성은 단연 ‘개그콘서트’가 독보적인 상황이었으며, 그 주축을 이룬 개그맨이 정종철, 박준형이었다는 점에서 현재 그들이 이적한 ‘개그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하지만 시청률면에서나 관심도면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는 무얼까. 이들의 실험성과 ‘개그야’가 본래부터 갖고 있던 유행어 제조기를 방불케 하는 내러티브형 말 개그는 과연 시너지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유행어 면으로만 보면 현재의 ‘개그야’는 과거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인지도를 예감케 한다. 벌써부터 ‘천수정 이뻐’나 ‘없어’ 그리고 ‘끊지마’같은 코너는 그 제목 자체가 유행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처럼 누구나 한번 들으면 귀에 쏙쏙 박히는 중독성을 갖고 있다. 특히 ‘천수정 이뻐’는 “힘들어? 오 내 새끼 오 남의 새끼” 이런 식으로 유행어 조짐을 보이는 말들을 연쇄적으로 풀어내는 묘미를 선사한다.

문제는 이런 입에 쩍쩍 달라붙는 말들이 독특한 발성과 높낮이를 통해 강한 중독성을 내포하기는 하지만, 어떤 의미를 도출하지 못하는 점에 있다. 개그가 반드시 모든 사회적 의미를 내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무거운 것이 아닌 간단한 것이라도 의미망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자칫 말장난에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장난 또한 웃음의 한 요소인 것은 분명하지만 의미는 바로 그 말장난을 좀더 강력하게 각인시키는 힘이 있다.

의미 형성을 이루지 못하는 재미있는 말들의 상찬은 즉각적인 웃음은 불러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만들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러한 말의 무의미성이 극대화된 것은 바로 ‘나카펠라’다. ‘나카펠라’가 가진 실험성은 아카펠라의 패러디, 노래의 재해석, 그리고 몸 개그의 결합 등등 간단히 겉으로만 봐도 실로 극대화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정종철이 가진 다양한 개인기가 아니면 풀어내기 어려운 개그의 형식이다. 하지만 한바탕 웃고 나서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길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딱히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이러한 실험적인 코너가 한두 개 있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미가 극대화된 풍자나 세태개그가 주류를 이루는 ‘개그콘서트’ 같은 경우에 이런 ‘무의미의 실험개그’가 주는 신선함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이른바 4차원 개그에 대한 주목도는 나머지 코너들이 대비효과를 주어야 비로소 더 빛나는 법이다. 하지만 ‘개그야’가 선보이는 코너들은 거의 대부분이 4차원에 머물고 있다.

IQ가 430이라 자처한 한 황당한 정치인에서 따온 것이지만 그 내용은 풍자와 세태와는 거리가 먼 ‘IQ430’라는 코너에서, 개그우먼이 “기분 많이 좋아?”하고 물어볼 때 유행어를 예감케 하는 재미에 비해 그 무의미함으로 인해 그 이상으로 남지 못하는 건 그 때문이다. ‘개그야’에 대한 떨어진 호응도는 아직까지 섣불리 그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제 정종철과 박준형이 투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무대개그의 속성상(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의미의 실험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웃음의 의미가 만들어내는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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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프로그램, 카더라 통신을 프로그램화하다

‘해피투게더’에는 사우나에 모여 수다를 떠는 동네 아줌마들이란 설정으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설정토크, ‘웃지마 사우나’라는 코너가 있다. 절대로 웃으면 안되며 웃으면 물총 세례를 맞는 몸 개그가 주 컨셉트이지만, 실상 재미의 요소는 그 설정 자체에 있다. 설정이라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 출연진들의 이야기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를 얻는다. 그 안에서 진담은 농담처럼 이야기되고, 반대로 농담 역시 진담처럼 이야기된다. 이른바 ‘-카더라’통신의 이야기조차 이 안에서는 용인되고 회자된다. 단 마지막에 가서 “콩트는 콩트일 뿐 오해하지 말자~ ”는 구호만 외치면 깔끔하게 한바탕 웃고 넘기는 토크로 정리되는 것이다.

카더라 통신과 가상TV의 닮은 점
이 설정 상황 속에서 가지는 토크의 강점은 ‘카더라 통신’이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지는 그 이유와 맞닿아 있다. 그 속에서는 무엇이든 말할 수 있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무엇이든’ 속에 시청자들의 욕망이 꿈틀댄다. 연예인 누구와 누가 연결되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이런 상황이라면 연예인은 어떤 반응을 할까 같은 상상의 욕구이다. 그리고 때론 진짜 사실이 이 욕망 속에 포함되기도 한다. 어떤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나, 혹은 이미 ‘카더라 통신’으로 회자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등장했을 때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은 욕구이다. 이 설정 속에서는 바로 그 화제의 주인공이라도 편안하게 얘기를 할 수 있다. 상황 자체가 진위를 떠난 설정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시작한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의 ‘허락해주세요’라는 코너 역시 가상의 설정이 등장한다. 그 설정은 신봉선네 집에 사윗감을 데려와 허락을 얻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동엽은 아버지로, 조형기와 이수근은 삼촌으로, 노사연은 고모로, 티파니는 막내동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코너의 특징은 현실의 토크쇼와 가상의 설정 콩트가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신동엽은 각각의 출연진들에게 어떤 사안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가, 가상의 콩트 상황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설정의 강점은 여느 사윗감이 첫 방문을 하는 집안에서 그러하듯이 매주 다른 사윗감으로 출연하는 연예인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을 설정(허락을 구하는 사위의 설정) 속에서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 코너에 출연했던 지현우는 자신의 실제 옛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사윗감이 장인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콩트로 얘기한다. 중요한 것은 신봉선이란 캐릭터의 역할이다. 콩트적 설정으로 용인되는, 자기 딸을 줘야 하는 아버지의 격한 질문들 속에서 신봉선은 여자친구라는 설정으로서 적당한 방패막이가 되어주거나, 때로는 푼수 같은 처신으로 남자친구를 당황하게 만드는 균형자 역할을 한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게스트에게 하는 신봉선의 뽀뽀는 이 상황이 가상, 즉 콩트였다는 것을 오히려 드러낸다. 입맞춤을 하게 된 MC몽의 과장된 반응은(이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이 가상이었다는 걸 말해주는 셈이다. 신봉선의 입맞춤은 ‘웃지마 사우나’의 “콩트는 콩트일 뿐 오해하지 말자~ ”와 같은 역할을 해낸다.

가상TV는 콩트다, 하지만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코너는 그 설정을 결혼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이 가상TV 프로그램들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토크보다는 실제 영상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또한 MC들의 간여를 배제해 리얼리티적 요소를 더 강화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가상 결혼이라는 설정 속에서 커플들로 등장한 연예인들은, 매번 다른 특정 상황을 미션으로 삼아 진심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반응들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것 역시 콩트적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이 커플들이 가진 일관된 캐릭터에서 드러난다.

귀차니스트 정형돈의 일관된 모습이나 자상한 알렉스의 모습은 극명한 대비효과를 보일 만큼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 진짜 현실에서의 사람의 성격은 드라마나 콩트처럼 극대화된 일관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상황에 따른 서로 다른 반응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편집의 결과일 수도 있다. 실제 반응은 다양하게 보였을 지도 모르지만, 편집이 일관되게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 불분명해지는 진위가 바로 설정의 힘이다.

가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위에서, 아니면 말고
설정 혹은 가상의 상황을 토크쇼나 버라이어티 쇼에 부여하는 것은 가상보다는 리얼리티를 더욱 요구하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TV가 꺼내든 일종의 묘안이다. 리얼리티를 끄집어내면서도 어떤 안전판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따라서 이것은 그토록 연예인들을 원치 않는 상황으로 몰아넣었던 ‘카더라 통신’을 프로그램 속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폭로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해명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이 자체가 ‘카더라’ 즉 콩트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간의 토크와 상황을 가상과 현실의 중간지대로 돌려놓는다.

프로그램들이 이처럼 진위와는 상관없이 설정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자극적인 연출의 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가상과 현실에 대한 이분법적 구도가 점차 희미해지는 요즘의 환경 속에서 시청자들이 이를 무리 없이 수용하고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게임은 가상이지만 게임을 할 때의 감정적 반응은 현실이다. 그러니 가상 속에서 말해지는 많은 이야기들은 그 속에 있을 때는 현실적인 모습으로 어떤 잠재된 욕구를 건드리기도 하는 것이다. 현실로 느끼던 가상상황 속에서 빠져나왔을 때 그것이 가상이었다는 것만을 알면 그뿐이라는 말이다. 만일 여기에 대해 “순 거짓말 아니냐”는 시대에 뒤떨어진 비판을 한다면 ‘카더라 통신’에서 흔히 보았던 반응이 나올 것이 뻔하다.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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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연예인과 대중을 싸잡아 비하하나

광우병이 의심되는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해 연예인들이 자신의 의견을 블로그나 카페에 올린 것을 가지고 언론들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유는 연예인들의 이성적이지 않은 감정적인 대응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몇몇 언론들은 이 연예인들이 대부분 최근 활동이 뜸하다는 점을 들면서, 연예인들의 이런 대응을 마케팅의 일환으로까지 몰고 가는 형세다.

물론 어느 정도 그런 면은 없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간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던 연예인이라면 이러한 민감한 사안에 대해 거침없는 의견을 내보이는 것으로 시선을 끌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꼭 그런 식으로만 보아야 할까. 달라진 미디어 환경 속에서 연예인들이 자신의 삶과 관련된 이 사안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중요한 것은 이 자체가 설혹 마케팅의 요소가 끼여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결국은 대중과의 공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연예인의 발언은 그것이 인기발언이든 아니면 진심이든 모두 대중의 정서를 따라서 한 것이다. 즉 언론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영향력 있는 몇몇 연예인(이들의 논리로 보면 활동도 뜸했기에 영향력도 별로 없다)의 힘으로 대중 정서가 움직인 것이 아니라, 대중정서와 함께 연예인이 동참한 것뿐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들 연예인들의 발언에 대한 몇몇 언론들의 불쾌한 심사는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이들 언론들은 ‘연예인-블로그-인터넷’을 어떤 비슷한 수준으로 몰아대는 경향이 있다. 즉 ‘가볍고 천박한 그 무엇’으로 치부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인터넷의 영향력을 보는 눈에는 스타로서의 연예인을 보는 눈과 비슷한 지점이 있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낮게 보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득권을 가진 기관이나 언론들이 대중을 보는 눈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권위와 신뢰’를 운운하면서 언론이나 정부기관들은 아직도 자칭 어른으로서 아이 같은 이 가벼운 존재들에게 회초리를 꺼내들기 일쑤다. 맞다. 이들은 참 아이 같다. 그래서 어른들처럼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나오기 일쑤며, 품위 있고 정제된 논리 정연한 글보다는 과격하게만 보이는 비문 가득한 글들을 쏟아낸다. 함부로 글들을 긁어다가 여기 저기 도배를 해놓는 건 일상이고, 그걸 가지고 대단히 창조적인 방법으로 괴담에 가까운 확대재생산을 해내기도 한다. 기득권을 가진 자가 스스로를 어른이라 자처하며 그 눈으로 삐딱하게 보면 대중들은 통제하기 어려운 불량아가 된다.

그러니 어른이라 자처한 자들은 이 아이 같은 대중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강제만을 통한 독단의 길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소고기 수입에 대한 갑작스런 결정은 아무런 설득도, 사전 이해도 구하지 않은 채, 마치 불도저식으로 저지르고 보는 개발시대의 그것을 닮아있다. ‘정했으니 따라 오라’는 것이 그 때의 논리였다. 그 때 연예인들은 어떤 역할을 했던가. 불행히도 그 때의 역할이란 오락과 재미로 대중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 연예인들의 행동은 굉장한 진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그 시대를 경험했고 아직도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착각하는 기득권층들에게 연예인들의 정치적 성격을 띨 수도 있는 이러한 발언이 얼마나 위험하게 비춰질지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직도 그들에게 정치란 생활이 아닌 국회에서 하는 일이고, 몇몇 엘리트들에 의해 결정되고 대중들은 따라오는 것이라 믿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연예인은 연예나 하라’는 말처럼 들리는 일부 언론들의 반응은 또한 ‘대중들은 1%의 기득권 엘리트들이 한 결정을 따르라’는 뉘앙스로도 읽힌다. 연예인도 TV가 아닌 자기 삶의 문제로 돌아오면 언제나 대중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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