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의 형식실험으로 얻은 긴박감, 의미, 재미

‘무한도전’과 스릴러가 만나면 어떤 형태가 될까.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이 그 형식으로 가져온 것은 최근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주목되고 있는 스릴러라는 장르다. 그것은 마치 인기 미국드라마 ‘24’나 ‘추격자’같은 쫓고 쫓기는 긴박한 스릴러를 연상시킨다. 아침에 경주에서 일어난 ‘무한도전’ 출연진들이 영문도 모를 게임에 빠져들고 하루 동안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형식이 그렇다.

스릴러라는 장르적 긴박감을 부여하면서 ‘무한도전’이 얻은 가장 큰 것은 속도감이다. ‘24’같은 리얼타임 액션을 보고 있다보면 그네들이 흘리는 땀과 심장박동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처럼, 비가 오는 상황 속에서 달리고 달리는 ‘무한도전’ 출연진들의 모습 또한 시청자들에게 그 긴박감을 전해주기에 모자라지 않았다. 최고의 자리에서 느슨해질 수도 있는 고삐를 바로 이 스릴러라는 형식을 끌어옴으로써 바짝 조일 수 있었다.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은 또한 퀴즈 프로그램의 진화된 형태로도 읽을 수 있다. 퀴즈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대개 떠오르는 것은 스튜디오에 출연진들이 모여 문제를 맞추는 폐쇄적인 형태. 하지만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은 그 퀴즈 형식이 마치 게임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은 현장성을 보여주었다.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던져지는 문제를 풀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그 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문제집 속에 박제화된 퀴즈를 살아있는 형식으로 바꿔주는 힘을 발휘한다.

여기서 퀴즈의 내용이 또한 중요하다. 기존 퀴즈 프로그램들이 내보냈던 그저 문제 맞추기를 위한 공감 없는 문제는 왜 그 문제를 풀어야 하나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즉 그것은 퀴즈의 과정(문제를 푸는 의미)보다는 결과(점수)에만 치중하는 퀴즈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은 그 의미를 부각시킨다. 잘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우리의 문화유산으로서의 경주의 보물들을 알아간다는 취지는 퀴즈의 과정 자체를 그저 몸 개그를 위한 것이 아닌 의미 있는 작업으로 만들어낸다.

또한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지역주민들과의 교류는 그 의미를 더욱 확장시킨다. 문제를 잘 풀어내는 일부 엘리트 지식인들만의 경연장으로서만 기능했던 퀴즈 프로그램은 이런 형태와 만나면 보통사람들의 지식에 대한 진짜 호기심을 끄집어낸다. 조금 어리숙하고 배운 건 적어도 알고 싶은 욕구는 그 배움의 많고 적음을 떠나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 아닌가. 이 부분은 분명 작금의 달라진 지식사회 속에서 누구나 참여시킬 수 있는 형태로서의 새로운 퀴즈 형식을 예감하게 만든다.

이러한 형식은 또한 여행 프로그램의 새로운 접근방식으로도 볼 수 있다. 예능과 여행의 만남으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1박2일’이 야생에 대한 도전이라면,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같은 지식여행에 대한 갈증이다. 답답한 일상탈출과 함께, 체험이 가져다주는 살아있는 지식의 경험은 바로 다름 아닌 여행 속에서 우리가 흔히 추구하던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은 따라서 예능에 스릴러, 퀴즈, 그리고 여행 형식을 접목시키는 실험을 통해, 프로그램의 긴박감(스릴러의 속도감)과, 재미(퀴즈형식의 호기심과 의미), 그리고 실제적인 지식(여행)을 전하는데 성공적이었다. 이것은 TV 프로그램으로서 과감한 형식 실험이면서, 예능의 최강자로서 그만한 힘을 가진 ‘무한도전’만이 가능한 도전임이 분명하다. ‘무한도전-경주보물찾기’편은 그 힘이, 청와대 같은 높은 곳으로 가는 것보다 저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보물들 속으로 내려가는 것에서 더욱 빛난다는 걸 보여준 시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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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포위된 청춘들, 혹은 우리들의 자화상

술이 잔뜩 취해 비틀대며 들어온 호스트 승우(윤계상)는 화장실 변기에 대고 토악질을 해댄다. 한 번, 두 번.... 구역질이 끄집어올린 욕망의 덩어리들이 입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 날 그가 마신 술은, 과거 별 볼일 없었으나 상전벽해한 부동산으로 대한민국 1%가 된 옛친구들이 준 불평부당함이 독처럼 퍼진 술이었다. 왜 누구는 갑자기 부자가 되고 왜 누구는 갑자기 날선 세상에 던져져 몸뚱어리 하나를 파는 대가로 욕망의 언저리만 핥으며 살아가야 하나. 이 구토의 장면이 ‘비스티 보이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승우가 가진 불평부당함과 조우하는 어떤 구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스티 보이즈’는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일상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것들을 세밀하게 보여줌으로써 구역질을 나게 만드는 영화다. 따라서 이 영화를 잘 생기고 멋진 호스트들이 벌이는 욕망의 질주와 그 끝장 정도로 본다면 치정극으로 치닫는 후반부의 스토리라인이 맥없어질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그렇게 쿨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영화가 아니며 어찌 보면 오히려 그 쿨함의 이면에 숨겨진 좀스러움을 드러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호스티스와 호스트들이 벌이는 관계의 뒤섞임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자본주의라는 상황 속으로 넣어지면 상식이 된다. 이 비논리적인 관계는 이렇다. 자본의 주인에게서 자신의 욕망을 얻어내기 위해 봉사하는 호스티스 혹은 호스트들은 자신이 욕망을 얻는 순간(자본을 얻는 순간), 자본의 주인이 되고싶어 한다. 호스트들이 우르르 호스티스들이 있는 룸살롱에 몰려가 질펀한 술판을 벌이고, 호스티스들이 호스트들이 있는 곳으로 몰려가 욕망의 유희를 즐기는 이 반복된 상황 속에서 자본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순환된다.

그 속에서 이들의 모습이 하나의 소모되는 육체로 보여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장면 속에서 그들은 끝없이 담배를 태우고 술을 마시며 섹스를 팔거나 사면서 육체를 소비한다. 그러니까 이 세계 속에 들어온 이들은 자본이라는 장작불을 계속 지피기 위해 소비되어야 하는 장작들이다. 관계는 오로지 자본의 논리 속에서만 세워진다. 승우의 누나인 한별(이승민)과 함께 살아가는 재현(하정우), 그리고 재현의 소개로 호스트일을 시작한 승우 이 둘의 관계는 재현의 표현처럼 ‘가족’이 되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는 ‘마이킹(선불금)’이나, ‘공사(돈을 갈취하는 것)’같은 불순한 단어들이 떠다니면서 언제든 관계를 자본 위에 세울 틈을 노리기 때문이다.

이 돈의 역할 놀이는 인간을 중심으로 두고 보자면 역겨운 것이 분명하지만, 돈이 권력이 되는 자본주의 상황 속에서는 절실한 현실이 된다. 그러니 그렇게 쿨하고 멋져 보이던 승우가 지원(윤진서)에게 “왜 그렇게 칫솔이 많아?”하고 반복해서 물을 때, 터져 나온 웃음 속에는 분명 자본의 사회 속에서 쿨하게 살길 강요받으며 살아왔던 관객들의 허허로운 마음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언제든 사람이 아닌 돈을 선택하는 재현이 이 자본의 사회 속에서 무한히 방전되는 장작으로 이미 굳어진 인물이라면, 이제 딱히 좋지만은 않은 호스트의 진짜 삶에 뛰어든 승우는 그 과정 위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 무한히 서로가 서로를 소비시키는 관계 속에서 그들의 분노가 향하는 지점이다. 그것은 사실은 자본이라는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체계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승우의 칼이 시스템이 아닌(예를 들면 호스트바나 룸살롱의 자본주들) 엉뚱한 곳을 향하는 것은 이 시스템의 정교함을 거꾸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쉬운 점은 영화가 그 시스템으로 표상될만한 인물을 세워놓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막연하게나마 네온사인이 가득한 도시풍경과 여기저기 복잡하게 얽혀있는 도심의 길들을 포착함으로써 그 안에 점처럼 존재하는 인물들을 포위하고 있는 자본의 냄새를 풍길 뿐이다.

그러니 그 포위된 공간 속에서 승우가 변기를 붙잡고 토해낸 것은 단지 술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꾸역꾸역 삼켜 넣은(혹은 누군가 삼키게 한) 욕망의 덩어리들이다. 그리고 몸이 소화시키지 못하는 그 욕망의 덩어리들을 토해내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어디 승우만의 것이랴. 사실상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느 누구든 깊은 밤 술 취해 돌아가는 길에 어느 전봇대 옆에서 그런 경험을 안 해본 이가 있을까. ‘비스티 보이즈’는 그러니까 슬프게도 이 자본의 세상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니 욕망의 대상으로서 ‘비스티 보이즈’를 보기를 원했던 관객이라면 끝에서 발견한 이 찝찝함의 정체에 난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찝찝함으로의 방향수정은 어쩌면 감독의 의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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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에어’, 동그라미 치는 그들의 사랑법

이경민 PD(박용하)는 늘 서영은 작가(송윤아)의 대본을 읽으면서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친다. 그것은 ‘재미있다’는 표현이다. 처음에 서영은은 그것이 무슨 숙제검사 하듯 대본 검사하는 것처럼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차츰 이경민의 동그라미가 점점 간절해진다. 동그라미의 의미는 점점 진화한다. 대사에 동그라미가 하나도 없는 걸 확인하고 실망하던 차에, 서영은은 대본 첫 장에 쓰여진 자기 이름 위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 걸 발견하고는 아이처럼 즐거워한다. 동그라미가 단 한 개만 있는 대본을 주며 이경민이 그 한 신만 빼고는 다 좋다고 할 때,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움직인다. 직업적인 관계와 사적인 관계가 차츰 엮이고 부딪치는 부분이다.

‘온에어’가 가진 멜로의 장치는 바로 이 직업적인 관계로 사적인 관계를 숨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경민과 서영은 간의 멜로는 대본을 통해 교감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되면 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감과 긴장감이 유지된다. 이것은 오승아(김하늘)와 장기준(이범수)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매니저는 응당 자기 배우를 챙기는 것이 직업이지만, 때론 “내 배우”라는 말이 가진 뉘앙스는 매니저와 배우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형성한다.

이것은 단순히 이경민-서영은, 오승아-장기준의 이분화된 라인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직업적으로 보자면 PD인 이경민은 당연히 배우인 오승아를 위해 신경을 써줘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오승아의 매니저인 장기준이 드라마 첫 방영을 끝내는 산고(?)를 치른 서영은에게 미역국을 끓여다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는 다 드라마가 잘 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으로 표면화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수면 아래 그들의 감정들은 조금씩 교차된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와 멜로의 공존에 있어서 수많은 비판을 받아온 것은 ‘전문직은 없고 멜로만 있는’드라마들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비판 때문인지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 멜로가 들어가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듯 드라마를 백안시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멜로 드라마는 뭔가 트렌디하고 뻔한 것이라는 암묵적인 시선까지 생겼다. 하지만 사실 어떤 드라마든 멜로는 있을 수 있다. 어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멜로가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문제는 멜로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느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온에어’는 전문직이라는 장치를 멜로에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유난히 이 드라마에서는 인물들 간의 팽팽한 대립이 많은데, 그것은 바로 직업적인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오승아와 서영은, 서영은과 이경민, 이경민과 오승아, 오승아와 장기준의 대립은 배우, 작가, PD, 매니저 간의 힘 겨루기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힘 겨루기 이면에는 그들이 가진 감정이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의 드러내지 않는 사랑법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멜로를 쿨하게 그려낸다. 초반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모습은 물론 어떤 사적 감정이 끼여든 것이 분명하지만, 직업적인 프로의식의 한 측면으로 가려진다. 이러한 대립적인 관계는 이제 실제로 드라마가 제작되는 단계로 넘어오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티켓 투 더 문’이라는 드라마에 동승한 이상, 서로를 격려하고 치켜 세워주는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역시 사적인 감정은 직업적 상황 속에서 가려진다.

‘온에어’가 보여주는 멜로가 쿨하게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직업적 관계에 동그라미를 치는 간접화법에 기인한다. 대본을 바꾸겠다며 애써 웃어 보이려는 서영은에게 지금 대본 대로 간다고 말하는 이경민. 그 말에 흘리는 서영은의 눈물은 직업적인 관계에서 끝까지 자신을 밀어주는 이경민에 대한 고마움일 수도 있고, 사적인 감정의 발로일 수도 있다. 아직까지 ‘온에어’의 멜로가 좋은 지점은, 그 울고 있는 서영은을 이경민이 끌어안기보다는 그 앞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거리감이 주는 일정한 긴장감, 그것이 전문직과 멜로가 만날 때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개그콘서트’, 권위가 무너지면 웃음이 터진다

이름도 요상한 ‘닥터피쉬’라는 록그룹. 마치 자신이 전설적인 록그룹인 양 건들대지만 정작 팬이라고는 단 한 명뿐이다. 숫자로 보면 팬(양상국)보다 그룹(유세윤, 이종훈)이 더 많은 셈이다. 재미있는 건, 그 한 명의 광적인 팬 때문에 경호원(송병철)이 무대 앞에서 과잉 경호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스타와 팬 사이에 팬덤이란 관계로 만들어지는 권력의 양상을 모두 뒤집어놓은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스타는 권위를 가진 존재이지만, 지금은 거꾸로 팬이 스타보다 더 권위를 가진 존재들이다. 그러니 ‘닥터피쉬’는 먼저 단 하나의 팬 앞에서 거들먹대는 것으로 과거에 비해 현저히 무너진 스타의 권위를 보여준 후, 따라서 팬덤으로 대변되는 권위 또한 허망한 것이라는 걸 드러낸다. 따라서 이 코너는 겉으로 보면 아무 의미가 없는 행위들의 반복으로 보여진다. 서로 세워진 양자(즉 스타와 팬)를 서로 부정하는 형태로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조선왕조부록’은 코너명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권위, 혹은 그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는 사극의 권위를 해체하는데서 웃음을 찾아낸다. 코너에서도 스스로 밝혔듯이 여기서 6개월이나 등장하고도 그 이름이나 얼굴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배역은 왕이다. 한번씩 왕이 등장하지만 그저 엉뚱한 소리 한 마디하고는 들어가기 때문이다. 대신 이 코너의 주역은 원빈(박지선)이다. 원빈은 저 스스로 못생긴 얼굴을 무기로 들이대면서 이른바 불꽃 싸다구(싸대기)를 연실 날린다. 박지선의 행보 하나하나는 왕조라는 거창한 텍스트에 거침없이 싸다구를 날리는 형국이다.

연예계가 또 하나의 권위가 되고 있다는 것은 ‘닥터피쉬’와 함께 지난 ‘리얼스토리 뭐’에서 선보인, ‘품바로 재해석한 연예인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코너는 TVN의 ‘리얼스토리 묘’를 패러디한 것으로, 르뽀 형식을 하고는 있지만 실상은 엿보기 취미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그 프로그램을 희화화했다. 품바의 각설이 타령으로 유명 가수들의 춤과 노래를 재해석하자 그것들은 순간적으로 거지의 이미지로 재포장되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연예계에 대한 이러한 희화화는 스스로 비호감을 작정하고 악플을 날리는 왕비호(윤형빈) 캐릭터에까지 이어진다.

‘출동 김반장’은 최근 유행처럼 등장하고 있는 스릴러 영화가 가진 인기의 또 다른 측면이다. 그것은 각종 유괴 살인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살인의 추억’이나 ‘추격자’같은 영화가 반영하듯, 불안하기만 한 사회와 그럼에도 미덥지 못한 경찰력에 대한 유쾌한 풍자다. 김반장(김준호)은 심각한 현장 속에서 엉뚱한 말과 비논리적인 추리를 해대면서 그 간극(긴장된 현실과 너무나 상반된 대응 사이의)에서 비롯되는 웃음을 포착해낸다.

이 밖에도 ‘개그 콘서트’에는 수많은 권위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다. ‘많이 컸네 황회장’은 깐죽대는 김실장(김기열)에 무너지는 황회장(황현희)을 통해 졸부 근성을 가진 권위를 꼬집고, ‘준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는 영어를 입에 달고 수업보다는 거의 성추행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준교수(송준근)를 통해 식자층을 꼬집는다. ‘박대박’과 ‘달인’은 포맷은 달라도 그 주된 내용은 전문가라 자칭하는 자들을 꼬집는 코너다. 차이가 있다면 그 권위자가 ‘박대박’에서는 말장난만을 일삼는 자인데 반해, ‘달인’에서는 거짓말을 밥먹듯 한다는 점뿐이다.

권위에 대한 풍자가 가득한 ‘개그 콘서트’는, 어찌 보면 웃음이라는 것이 본래 여기서부터 유발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많은 개그맨들이 바보라는 가면을 쓰고 세상을 비웃었으며, 저 스스로 권위자가 되어 여지없이 무너져주었다. 짧은 순간이나마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시원했다면 그것은 웃음이 제대로 작동한 것이다. 이것은 또 거꾸로 보면 사회가 구석구석 이상한 권위들(권위도 아니지만 권위인 척 하는)을 계속 양산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참으로 이런 통쾌한 웃음이란 못 가진 자들의 것이란 생각이 든다. 웃음의 대상이 되어버린 이상한 권위자들의 마음 한 구석은 그저 웃을 수만은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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