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드라마가 그리웠나, ‘테리우스’에 빠져드는 이유

드라마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작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수목은 어느새 지상파에서부터 케이블까지 가세해 각축전을 벌이는 형국. 그런데 그 대전의 결과로서 MBC 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가 전체 드라마들 중 9.4%(닐슨 코리아)로 시청률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건 흥미롭다. 어찌 보면 조금은 가벼운 스파이액션이 가미된 로맨틱 코미디라, 상대적으로 심각한 경쟁작들과 비교해 약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주효했다는 생각이 든다. 

숨 쉴 틈 없이 전개되는 SBS <흉부외과> 같은 작품은 생사가 오가는 수술방에서의 사투에 가까운 수술들과 그 속에서 갈등과 선택을 해야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한번 보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지만 그걸 계속 들여다보는 일이 무겁고 힘겹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tvN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은 주인공 캐릭터가 가진 섬뜩함과 미스터리가 뒤섞인 독특한 매력이 시선을 잡아끌지만 어딘지 일본드라마 원작이 갖고 있는 정서적인 차이가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 뒤에 테리우스>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여기에도 심각한 사건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주인공인 고애린(정인선)은 그 남편이 살해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서 살인범인 케이에게 살해당했다. 결국 혼자 남게 된 고애린은 남은 아이들을 위해서 일도 해야 하고 육아도 책임져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이 현실적인 상황의 심각함은 코미디 장르가 만들어내는 적당한 판타지로 유쾌하게 풀어진다. 고애린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육아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는 워킹맘들에게는 한번쯤 상상하고픈 판타지적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전직 요원이었던 김본(소지섭)은 대표적이다. 고애린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시터가 된다는 설정은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지만, 코미디 장르가 가져오는 그 특징들 속에서 ‘꿈꾸고픈 판타지’가 된다. 

거기에는 국가를 위해 총을 들고 싸우는 일만큼 아이를 키우는 ‘육아’가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가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뉴스를 보면 저게 과연 나와 무슨 상관일까 싶은 거대담론들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것보다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더 중대하게 다가오는 건 경력단절이나 육아, 살림 같은 현실들이 아닌가. 

고애린을 돕는 이웃들 또한 판타지들이다. 심은하(김여진)나 봉선미(정시아) 그리고 남성 주부 김상렬(강기영)은 고애린이 위기에 처하거나 힘들 때마다 모여 힘이 되어주는 이웃들이다. 살림을 하는 주부들만의 모임은 마치 국정원의 조직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유괴된 아이를 구해내주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 경력단절로 취업이 어려웠던 고애린이 갖게 되는 일자리 또한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남편이 살해됐다는 걸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해 하며, ‘적을 가까이 두려고’ 고애린을 비서로 채용하는 진용태(손호준)는 전형적인 코미디 캐릭터다. 그가 운영하는 J인터내셔널이 사실은 무기거래의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위장기업이기 때문에 고애린이 하는 주업무가 진용태의 점심 메뉴에 맞는 음식점 예약을 하는 일이라는 설정은 일자리의 무게감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통쾌한 웃음을 주는 면이 있다. 또 거기서 해고된 고애린이 김본이 채용공고를 갖다 줘 입사하게 된 ‘킹스백’ 매장도 마찬가지다. 역시 요원업무를 위한 위장기업이라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지만, 고애린이 심은하와 봉선미 그리고 김상렬의 도움으로 백을 완판시키는 성과(?)를 냈다는 설정은 빵 터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내 뒤에 테리우스>가 이처럼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힘은 그것이 비현실일지라도 상상하고픈 유쾌한 판타지이자 코미디로 풀어내진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 일등공신은 역시 심각한 액션과 웃음을 넘나들 수 있는 소지섭이지만, 의외의 발견으로서 정인선의 공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현실적인 눈물과 더불어 이토록 사랑스럽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인물의 매력을 제대로 연기해내고 있어서다. 정인선이 끌고 소지섭이 밀고. 이 유쾌한 드라마가 잘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사진:MBC)

‘수미네 반찬’, 김수미표 레시피가 왜 집밥에 최적인가 하면

처음에는 tvN <수미네 반찬>이 김수미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그 독특한 캐릭터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알다시피 김수미는 어딘가 욕을 해도 기분 좋은 느낌의 엄마 같은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실제로 이런 캐릭터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수미가 심심찮게 출연해 웃음을 줬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요리 프로그램이 하필이면 김수미를 거기 세워둔 뜻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집밥’이라는 본질에 가깝게 다가가려는 의도가 들어 있었다. 김수미는 알다시피 요리연구가도 아니고 셰프도 아니다. 그저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해왔던 엄마일 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집밥’이라는 요리의 특징에는 가장 최적인 선택이 된다. 

<수미네 반찬>이 진짜 집밥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걸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김수미가 시전하는 이른바 ‘요만치’ 계량법이다. 한 숟가락, 반 컵 같은 구체적인 레시피가 아닌 ‘요만치’, ‘는 둥 만 둥’, ‘노골노골’, ‘색깔 봐가며’ 같은 김수미의 레시피는 요즘 같은 이른바 ‘스마트 레시피’가 넘쳐나는 세상에 역행하는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 김수미의 그런 레시피를 따라하는 이 프로그램의 셰프들은 처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황의 순간들은 예능 프로그램이기도 한 이 프로그램의 웃음이 되어주기도 했다. 김수미가 ‘요만치’라고 얘기할 때 옆에서 장동민은 그 정확한 계량을 자기 식으로 ‘번역(?)’해주며 셰프들에게 ‘완장 찬’ 김수미 측근 캐릭터로 웃음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계량법은 단지 웃음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엄마들이 집에서 요리를 할 때보면 마치 몸에 익은 듯 설렁설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마다의 맛을 낼까 하는 그 비밀이 거기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언젠가부터 요리책을 대신하기 시작한 인터넷에 널려 있는 ‘스마트 레시피’들은 저마다 정확하게 계량된 재료의 수치들을 알려준다. 그래서 그런 수치들은 요리 초보들에게는 절대적인 것처럼 다가오는 면이 있다. 물론 그렇게 요리를 시작하게 만들고, 어느 정도의 맛을 담보해준다는 건 이러한 스마트 레시피들의 중요한 효용가치다. 

하지만 입맛이라는 건 집집마다 다르고 개인마다 또 다 다르기 마련이다. 사실상 요리는 계량화될 수 없다. 결국 엄마들이(아니 꼭 엄마가 아니더라도 집에서 요리를 하는 이들이) 가장 맛있는 집밥을 만들 수밖에 없는 건, 그 집에 맞는 입맛에 맞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집은 마늘을 더 많이 넣고, 어느 집은 좀 심심하게 간을 하기도 하며, 어느 집은 매운 맛을 좋아하기도 한다. 결국 <수미네 반찬>이 내세우는 ‘요만치’ 계량법이 어떤 면에서는 이렇게 저 스스로 입맛을 맞춰나가는 집밥에 있어서는 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이전에 tvN에서 방영됐던 <집밥 백선생>과는 정반대의 느낌이다.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은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며 정확하게 계량된 레시피를 소개한 바 있다. 그래서 요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남자들이나, 요리 무식자들도 그대로 따라함으로써 신기하게도 맛을 내는 음식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요리 초보들에게 이 프로그램이 각광받았고, 특히 그 화학공식 같은 요리법은 남성들도 열광하게 만든 이유였다. <집밥 백선생>은 실로 요리 초보들에게 요리에 입문하게 만든 공적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는 한계는 역시 계량화된 레시피가 절대적인 것처럼 오인되면서 생겨날 수 있는 ‘획일화’의 문제다. 이건 <집밥 백선생>의 문제라기보다는 이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검색해 레시피를 찾아내고 그대로 요리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는 이른바 ‘스마트 레시피’ 시대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정확한 레시피만을 따라하다 보면 내게 맞는 맛을 찾아내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는 확장해서 생각하면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의 음식들이 갖는 ‘맛의 획일화’의 문제로도 귀결된다. 우리가 프랜차이즈 음식들이 맛은 있지만 한두 번 먹는 정도이지, 역시 집밥을 찾게 되는 건, 내게 맞는 맛이 나에게 맞춘 저마다의 요리법에서 나오는 거라는 걸 부지불식간에 몸이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수미네 반찬>이라는 프로그램이 다시 보인다. 거기 ‘요만치’라고 얘기함으로써 저마다의 기준에 맞추게 하려는 김수미의 레시피가 다시 보인다. 또 셰프들이 그대로 따라 했는데도 저마다 맛이 다르게 나타나는 요리들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보게 된다. 집밥의 맛이란 그렇게 하나로 일반화 혹은 획일화될 수 없는 거라는 걸, 이 프로그램이 셰프나 요리연구가가 아닌 한 엄마의 레시피를 그대로 시연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보여주고 있어서다. 넘쳐나는 스마트 레시피의 세상에서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흉부외과' 어째서 이 병원엔 의사가 고수·엄기준밖에 없을까

SBS 수목드라마 <흉부외과>의 박태수(고수)와 최석한(엄기준)은 닮았다. 일종의 평행이론처럼도 보인다. 둘 다 태산병원 흉부외과 전문의지만, 그 곳에서 일하는 다른 의사들과 달리 출신대학이 태산대가 아닌 해원대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병원에서 일종의 왕따를 당했다. 그럴수록 실력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져 그 누구보다 좋은 수술 실력을 갖고 있지만, 둘 다 가족에 얽힌 아픈 사연들을 갖고 있다. 

최석한은 자신의 딸을 잃었다. 그 순간 이사장의 딸 윤수연(서지혜)을 수술하게 되면서다. 박태수 역시 어머니를 잃을 뻔했다. 당장 수술이 필요했지만 자신이 내부고발해 정직처분을 받은 황진철(조재윤)은 수술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타 병원들을 수소문 하던 끝에 겨우 태산병원 최석한과 연결이 되어 그 곳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갔지만, 마침 병원장은 자신의 VIP 환자를 바로 수술하라고 최석한에게 명령한다. 최석한은 갈등하다 결국 “너희들이 의사야?”라는 박태수의 절망적인 항변을 듣고는 그 어머니를 수술해 살린다. 그로 인해 그는 병원장의 눈 밖에 나버린다. 

최석한에게 병원장이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보내지 않도록 조처하자, 최석한이 일일이 자기 명함을 뿌려 직접 환자를 영입해 수술을 했던 것처럼, 박태수 역시 태산병원에서 오프일 때도 돈을 벌기 위해 타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다 비행기에서 쓰러져 위급하게 온 환자를 당장 살리기 위해 접착제를 쓰는 무리수를 쓴다. 그리고 태산병원으로 이송해 최석한과 함께 수술을 하는 와중에 어머니가 쓰러진다. 박태수는 또 어머니를 향해 달려 가야할 지, 당장 하던 수술을 계속 해야할 지 선택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흉부외과>의 이야기는 이렇게 보면 일종의 도돌이표 같은 느낌을 준다. 최석한의 이야기가 나오고 나면 다시 그 상황을 박태수가 또 겪게 된다. 그것은 당장 수술이 필요한 위급한 환자가 눈앞에 있는데, 역시 생사를 오가는 자신의 가족이 마침 쓰러져 갈등하게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능력 있는 두 의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의 기득권층으로부터 배척받는다. 심지어 황진철 같은 인물은 박태수가 위급해서 접착제를 쓴 환자의 동생으로 나타나 또 다시 과거의 상황을 반복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이야기들은 <흉부외과>의 스토리가 처음에는 굉장히 큰 몰입감을 주었지만, 다음번에는 조금씩 그 몰입이 빠지는 이유가 된다. 가족을 살릴 것인가, 환자를 살릴 것인가의 선택상황만큼 절박한 순간이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는 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그것은 어쩌면 새로운 이야기 구조나 대립 상황들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어째서 이 병원에는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이들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것이 진짜 ‘흉부외과’라는 과가 처한 현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워낙 위험이 동반되는 과인지라 지원자들이 실제로 거의 없는 현실이 그렇고, 이미 흉부외과 전문의들이라고 해도 워낙 병원 내에서 실적 압박이 크기 때문에 사망 위험이 있는 환자는 실제로도 배척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현실을 투영해 들여다보면 <흉부외과>에서 환자만을 생각하는 박태수와 최석한 같은 의사가 반복적으로 ‘선택의 상황’에 놓이는 것이 이해가 된다. 실제로 의사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있어도 위험한 수술을 꺼리는 의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 같은 의사들에게 수술이 몰리게 된다. 그래서 <흉부외과>가 앞부분에서 보여준 본인이 실력이 있음에도 가족조차 살리지 못하는 현실은 이 과가 처한 문제를 잘 그려낸다. 의사가 가족도 살리지 못하는데, 타인은 오죽할까. 자본의 관점으로 의사들의 실적을 비교하는 병원의 문제는 이처럼 우리와 무관한 문제가 아니다.(사진:SBS)

‘배드파파’, 장혁은 공감 가는데 어째 손여은은 영

한 때는 존경받던 챔피언이었지만 승부조작 사건으로 협회에서조차 영구제명 된 권투선수 유지철(장혁). 먹고 살기 위해 심지어 신약 임상실험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된 이 인물은 그 약물이 가진 괴력을 도박 격투기장에서 경험한다. 부작용 때문에 피실험자들이 죽어나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걸 이겨낸 유일한 그는 온갖 비난을 다 받으며 다시 격투기 선수로 링 위에 오른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가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사실이다. 

MBC 월화드라마 <배드파파>는 몇 가지 이야기 코드들이 합쳐져 있다. 하나는 한 집안의 남편이고 아빠라는 ‘가장’의 무게감을 담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지만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격투기 소재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제이슨 스타뎀 주연의 <아드레날린24>처럼, 약물 투여를 통해 변신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더해져 있다. 

이미 헤밍웨이가 매료됐던 것처럼, 사각의 링은 하루하루 세상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가장들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기에 적당한 장소다. 그 위에 선 유지철은 가족을 위해 두드려 맞아도 결코 쓰러질 수 없다. 자신이 쓰러지는 순간, 가족이 무너진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자신이 욕을 먹어도 가족이 살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족의 행복은 딸이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또 아내가 그 글 쓰는 재주를 돈을 벌기 위해 야설을 쓰는데 소모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벌어다주는 일이다.

이것은 다소 과장되게 그려진 ‘가장 판타지’다. 돈이 좋은 가장의 최우선 조건으로 대두되는 건,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그는 그 흔한 드라마의 클리셰들 중 하나인 친구에게 재산을 전부 투자했다가 망했고, 딸은 이미 연예인급으로 알려진 친구와 다투다 그를 다치게 해 그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물어줘야 할 처지가 되었다. 게다가 아내에게 옛 친구이자 자신의 라이벌인 성공한 격투기 선수 이민우(허준)가 자서전을 미끼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유지철을 둘러싼 이 모든 불운들은 결국 ‘돈’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유지철은 ‘돈’을 벌기 위해 또다시 부정한 방법을 쓰기로 한다. 해서는 안 될 신약을 복용한 후 그 힘으로 경기에서 이기는 것. 무슨 일인지 종합격투기 프로모터인 주국성(정만식)은 그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7번의 경기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마치 유지철 앞에 나타난 구세주처럼 보이지만 그는 어딘가 유지철의 뒤통수를 칠만한 사연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다. 어쩌면 신약의 비밀을 알고 있고 그 약의 부작용을 유지철이 이겨냈다는 걸 알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인물일 지도 모른다. 

돈에 의해 불운해지고, 그 돈을 벌어 다시금 행복을 찾으려 링 위에 오르는 유지철이라는 가장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소 과장되고 극화된 면들이 있지만 우리네 현실을 그대로 상징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아마도 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가장들이라면 이 유지철이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선택들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약점은 바로 이 유지철이라는 가장에 대한 짠한 공감을 위해 희생되는 주변인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주변인이 바로 그의 아내인 최선주(손여은)다. 다시 시작하려는 남편을 말리는 최선주가 이민우의 자서전을 빌미로 강릉까지 함께 가고, 바닷가에서 서로 물을 끼얹으며 까르르 웃는 장면은 이 인물이 유지철이라는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불륜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을 세우는 건, 유지철과 이민우 사이에 대립각을 세우기 위함이다. 

또 승부조작 사건으로 이름만 올라와도 구설에 시달리는 아빠 때문에 발레를 포기했지만, 댄서의 꿈을 꾸고 있는 딸 유영선(신은수)도 마찬가지다. 명품가방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딸의 이야기는 사실상 유지철이라는 가장을 위한 에피소드로만 처리된다. 모든 이야기가 ‘배드파파’ 유지철에게 집중되어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를 위해 주변인물들이 능동적으로 보이지 않고 소비되는 건 너무 작위적인 느낌을 만든다. 

시청자들이 장혁 때문에 보긴 보는데, 불륜 설정까지 들어가 있는 것에 영 공감하지 못하는 건 그 설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작위성의 문제 때문이다. 최선주라는 인물이 능동적인 선택으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라, 유지철의 이야기를 전제로 해서 이리저리 동원되는 캐릭터처럼 보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가장의 이야기라 반가운 면이 있으면서도, 한 편으로 남는 아쉬움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들이 겪는 어려움을 링 위의 극적인 이야기로 담겠다는 그 의도는 좋지만, 그러기 위해 지나치게 그 가장을 중심으로 세워두고 주변인물들을 거기에 맞춰 배치하는 건 전체적인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유지철이라는 가장에 공감하면서도 남는 아쉬움이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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