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장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도 쏟아져 나왔다. 물론 여기에는 먹방, 쿡방 같은 음식예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그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영향도 적지 않다. 그 본격적인 첫 번째 시도는 tvN <윤식당>이 열었다. 낯선 타국에서 음식점을 열고 외국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콘셉트는, 그 개업의 과정이 주는 흥미진진한 좌충우돌과, 과연 장사가 성공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내놓은 한식이 외국인들에게도 먹힐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더해지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그 후 <윤식당>을 패러디한 <신서유기> 제작진의 <강식당>이 제주에서 음식점을 열었고, <현지에서 먹힐까>가 시즌1을 태국에서 촬영한데 이어 시즌2로 중국에 갔다.
사실 홍석천이 만드는 팟타이가 태국에서도 먹힐까라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현지에서 먹힐까> 시즌1은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시즌2는 다르다. 매회 화제가 이어지고 있고, 꾸준히 상승하는 시청률은 시청자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걸 수치적으로 보여준다. 3.7%(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시청률은 현재 5.3%를 넘어섰다.
흥미로운 건 이 프로그램이 애초에 내세웠던 ‘짜장면이 중국에서 먹힐까’라는 호기심만큼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요소는 바로 이연복 셰프라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간 JTBC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이름이 알려졌고, 최근에는 KBS <주문을 잊은 음식점>에서 초기 인지장애를 가진 어르신들과 함께 음식점을 하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연복 셰프가 어떻게 장사를 해왔고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를 <현지에서 먹힐까>처럼 자연스럽게 그 일상을 통해 보여준 프로그램은 없었다.
<현지에서 먹힐까> 중국편의 방송 분량은 마치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반복적이다. 매회 특정 장소에 푸드트럭을 열고, 그 날 시도할 새로운 음식을 준비하고 선보인다. 손님이 찾아오고 그 음식을 맛보며 경탄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때론 매운 짬뽕처럼 현지인들의 입맛에 잘 맞지 않아 실패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연복 셰프는 그 손님들의 반응에 맞춰 메뉴를 바꾸는 임기응변을 선보이며 장사를 해나간다.
물론 그 디테일들은 다를 수밖에 없다. 메뉴가 짜장면에서 짬뽕으로 또 탕수육에서 짜장밥으로 게다가 이연복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할 수 있는 멘보샤 같은 음식으로 매일 바뀌고, 장소도 바뀌니 찾는 손님들도 달라지고 그 반응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패턴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매 회가 반복되면서 오히려 주목되는 건 그 일상 속에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준비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이연복 셰프와 그를 보조하는 김강우, 허경환, 서은수 같은 인물들의 면면이다. 특히 매일 신선한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 ‘장사의 기본’임으로 말하며 아침마다 현지 시장에서 장을 보는 장면이나, 그렇게 가져온 재료들을 손수 손질해서 다음날 장사 준비를 끝마치고 겨우 잠자리에 드는 모습, 아침 일찍 일어나 당일 준비해야 더 맛있는 음식재료를 손질하는 모습 등이 인상적이다.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건 결국 그 기본을 지키는 것이지만 그걸 꾸준히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하는 이연복 셰프의 말은 그가 장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최근 방영된 분량에서 이연복 셰프는 이제 그 매일 같이 하던 재료 손질을 후배들이 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 과정들을 하나하나 다 자신이 준비하게 된 이번 방송이 ‘초심’을 일깨워줘서 너무나 좋다고 했다.
이연복 셰프가 자신의 시그니처 메뉴로 멘보샤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니, 어째서 그 요리가 그의 성공적인 레시피가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멘보샤는 그 하나하나의 과정들이 오로지 수작업을 통해서 해야 그 맛을 내고, 튀기는 것만도 초벌, 재벌을 거쳐 나오는 요리였다. 그만큼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만들어지기 어려운 메뉴라는 것.
물론 천하의 이연복 셰프도 메뉴 선정을 잘못해서 파리를 날리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됐을 때 그는 이를 부정하기보다는 선선히 “오늘 장사는 망했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그 망한 이유를 확인하고 바로 수정에 들어간다. 매일 같이 준비하는 성실성과 반복된 장사 속에서 잘되는 것들을 찾아내고 안 되는 것들은 보완점을 찾거나 과감히 포기하는 노력들을 멈추지 않고, 무엇보다 초심 그대로 계속 장사를 해나간다는 것. <현지에서 먹힐까>는 중국 현지에서 우리식의 중식이 팔릴 것인가 만큼, 이연복 셰프라는 인물과 그의 장사에 대한 생각이 우리의 관심을 끈 면이 있다.(사진:tvN)
못이기는 채 미팅에 나왔지만 그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온준영(서강준). 딱 봐도 그럴 법한 모습을 보여준다. 두꺼운 안경에 치아교정을 한 채 그 자리에서도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한 문제집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누가 봐도 연애 숙맥에 의외로 자존심 강하고 섬세하지만 깐깐한 성격처럼 보이는 그런 인물이다. JTBC 금토드라마 <제3의 매력>이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는 건 둘 중 하나다. 드라마가 시시하던가 아니면 그 시시해 보이는 인물이나 일상들이 사실은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 매력을 갖고 있는가를 보여주던가.
그 온준영 앞에 나타난 이영재(이솜)는 그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지하철 치한을 그냥 보고 넘어가지 못해 경찰서까지 가는 오지랖의 소유자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오빠 이수재(양동근)와 함께 살아가면서 대학은 포기했다. 대신 헤어샵에서 일하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간다. 그러던 그가 온준영을 만나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매일 같이 일하느라 쉴 틈 없던 그는 온준영과 신나는 하루를 보낸다. 뒤늦게 가방이 바뀐 걸 알고 헤어샵에서 다시 온준영을 만난 이영재는 그 어색한 분위기에서 그의 머리를 해준다. 머리가 성감대인 것도 모른 채. 그 달달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은 첫 키스를 나눈다.
<제3의 매력>이 담고 있는 연애담은 이처럼 우리가 많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봐왔던 그런 판타지들과는 사뭇 다르다. 신데렐라가 등장하고 왕자님이 등장하는 그런 로맨틱 코미디와는 더더욱. 여기에는 그저 우리와 똑같은 서민들의 삶이 있고, 그 삶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사랑의 순간들이 있다. 온준영과 이영재의 사랑은 그런 것이다. 사랑으로 신분이 상승하는 신데렐라나 원하는 건 뭐든 해줄 수 있는 왕자님 같은 이야기들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평범한 서민들의 연애담이다. 그것은 평범해보여도 한 사람의 운명을 뒤흔드는 사건들이라는 점에서 결코 소소한 게 아니다. 다만 더 거창하고 화려하게만 보이던 으리으리하고 운명적인 사랑의 판타지들만이 그럴 듯하게 드라마에서 다뤄져 소소하게 여겨져 왔을 뿐이다. 실상 그 소소해 보이는 것들을 깊게 들여다보면, 거기 놀랍게도 우리의 가슴을 휘어잡는 놀라운 ‘제3의 매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온준영이 다니는 대학의 화학과에서 주최한 일일호프에 참석하는 것으로 두 사람은 ‘오늘부터 1일’의 연애를 시작하는 듯 보였지만, 이영재가 사실 대학생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 자리에 함께 온 고등학교 동창에 의해 폭로되고, 두 사람의 1일은 그렇게 끝나버릴 위기에 처한다. 온준영은 이영재를 찾아가 대학생인지 아닌지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너희들처럼 한가하게 연애할 시간도 없다며 “꺼져버리라”는 이영재의 독설을 들은 채 뒤돌아서게 된다.
그리고 7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저마다의 위치에 서 있다. 온준영은 형사가 되었고 이영재는 헤어디자이너가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그 아픈 헤어짐의 상처를 안고 살아왔던 온준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옛날처럼 대하는 이영재가 밉게 다가오지만, 그 때 벌어졌던 사건을 듣고는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이영재가 독설을 던진 그 날, 사고로 그의 오빠가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온준영은 자기 생각만 했던 자신이 오히려 미워진다. 그래서 한달음에 이영재에게 달려가 사과한다. “미안해. 아무 것도 몰라서... 내가 너무 미안해.”
그 순간 이영재는 뭉클해진다. 그래서 울컥하는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지지만 이내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 짧은 순간, 이영재와 온준영의 소소해 보였던 사랑은 위대해진다. 너무나 평범한 한 형사와 헤어디자이너가 만나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머리를 매만져주고 그래서 입맞춤을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마법처럼 느껴진다. 스물의 나이에 ‘1일’을 겪은 두 사람은 그렇게 스물일곱의 나이에 다시 ‘2일’을 시작한다.
<제3의 매력>을 보면 우리가 어째서 누구에게나 위대했던 저마다 가졌을 법한 ‘사랑의 연대기’를 소소하게 치부하고 타인의 판타지만을 욕망했던 자신에게 미안해진다. 어째서 그 많은 멜로드라마들이 주인공들에게 재력, 외모, 권력만을 중요한 매력으로 그려냈을까. 그래서 사랑 속에 그 헛된 신분상승 판타지를 담아내려 했을까.
그래서 이 드라마는 마치 그간 매력으로 그려지지 않던 보통 서민들의 일상적인 사랑담과, 그 속의 평범한 사람들이 내적으로 보여주는 너무나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제3의 매력’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스펙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려 애쓰며, 너무 다른 취향을 가졌어도 그것이 오히려 너무나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그런 매력. 뽀글파마를 해도 귀여워 매만져주고 싶고, 오지랖이 넓어도 그것이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보고 싶은 그런 매력.
이 드라마는 ‘제3의 매력’을 가진 많은 배우들을 다시 보게 만든다. 먼저 서강준을 다시 봤다. 이렇게 매력이 넘치는 배우인 줄은 몰랐다. 코미디와 멜로를 버무릴 줄 아는 이 배우는 술에 취해 토악질을 해도 귀엽게 느껴진다. 이솜을 다시 봤다. 평범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그 평범함 속에 이토록 매력적인 면면이 있었다는 걸 이 드라마를 주의 깊게 보신 분들은 이해할 것이다. 그밖에도 이 드라마에는 ‘제3의 매력’을 뽐내는 조연들이 넘쳐난다. 남다른 추리능력으로 오빠를 당황하게 만드는 동생 온리원을 연기하는 박규영, 워낙 생활연기의 진수를 보여줘 왔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더더욱 빛나는 이영재의 오빠 이수재를 연기하는 양동근, 톡톡 튀는 매력으로 웃음까지 책임지는 이영재의 절친 백주란 역할의 이윤지, 온준영의 절친으로 귀여운 카사노바 같은 현상현 역할의 이상이 등등... 실로 드라마 제목과 걸맞는 조연 구성이다.
1.8%(닐슨 코리아)로 시작했던 시청률이 3회에 2.8%로 뛰더니 4회에는 3.3%를 기록했다. 이 수치적 지표가 말해주는 건 아마도 시청자들도 이 드라마가 가진 ‘제3의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다는 게 아닐까. 볼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제3의 매력>은 그렇게 지금껏 멜로드라마들이 소외시켜왔던 보통 서민들의 판타지가 가진 놀라운 매력을 끄집어내고 있다.(사진:JTBC)
“메디치가는 피렌체 지역의 만석꾼. 우리 개념으로 하면 만석꾼이죠. 왜 유명해졌냐하면 이 만석꾼이 그냥 돈만 밝힌 게 아니고 예술적인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고 예술가를 키우고 후원하고 그 사람들이 실력발휘를 할 수 있게 뭘 짓고 이런 걸 엄청 많이 한 거예요. 예술을 아는 그래서 돈을 좀 쓴 만석꾼.” tvN <알쓸신잡3>가 찾아간 피렌체의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나누는 수다에 이 지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디치가를 유시민은 그렇게 평가했다.
실제로 피렌체 곳곳에는 메디치 가문의 흔적들이 남아있었고, 이들이 후원한 예술가들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도나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포함해 브루넬레스키, 기베르티, 미켈로소, 마사초, 알베르티, 마르실리오 피치노, 베로키오, 프란체스카, 프라안젤리코,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등 부지기수였다. 두오모 성당으로 유명한 피렌체가 왜 그토록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적 풍모를 갖게 되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피렌체로 오는 길 버스 안에서 나눈 대화 속에서 김진애 교수는 “다른 예술도 그런 점이 많겠지만 건축은 특히 자본과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 바 있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위대한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에 의해 상상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건 그 도시를 움직이는 자본과 권력이 어떤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피렌체는 그 역할을 메디치 가문이 했다. 예술에 지원한 이 가문으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했고, 도시 곳곳에서 무언가를 지을 때마다 공정하게 이뤄지던 일종의 오디션을 통해 그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들이 받아들여졌다.
물론 개발이라는 것이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피렌체의 현재 모습을 우리의 서울과 비교해보면 여러모로 씁쓸해지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의 우리네 서울의 모습은 과거를 밀어내고 특징 없는 고층아파트들이 도처에 세워진 풍경이 아닌가. 도시의 정취보다는 아파트의 가격이 그 도시를 특징 짓게 만든 현실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결정권자들이 해온 일련의 선택들이 물론 당대에는 중요한 일이었을 수 있으나 후대에는 깊은 후유증을 남기고 있으니 말이다.
두오모 성당 설계에 얽힌 브루넬레스키의 이야기 역시 우리로써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이러한 건축에 있어서 모든 걸 ‘설계 경기(일종의 오디션)’를 통해 했다는 김진애 교수는 두오모 성당의 상부 원형 구조의 덮개 아이디어가 천재가 아니면 가져올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지붕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이중 구조를 만들고 비계가 필요 없이 격자형태(헤링본)로 벽돌을 쌓는 방식을 채택했으며 윗부분에 구멍을 만들어 내부에서 생길 수 있는 압력문제까지 해결했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천재적인 아이디어보다 더 놀라운 건 이 두오모 성당이 브루넬레스키가 지은 첫 번째 건축물이었다는 점이었다고 김영하는 말했다. 그 설계 경기가 얼마나 공정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금공예가로 이름을 날렸던 브루넬레스키였지만 건축 분야는 처음이었다는 것. 그럼에도 그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는 건 그만큼 이 오디션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스펙사회로까지 불리는 우리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더욱 놀라웠던 건 김영하와 유시민이 방문했던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인노첸티 고아원의 이야기였다. 1445년에 시민들의 후원으로 개원해 지금껏 600년 간 실제로도 운영되고 있는 인노첸티 고아원. 그 곳 2층에는 놀랍게도 보티첼리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영하와 유시민을 놀라게 한 건, 은행 개인 금고처럼 된 작은 상자들 속에 무려 몇 백 년 전에 아이를 놓고 갔던 부모가 놓고 간 증표를 지금껏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반쪽만 있는 증표들 중에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단추 같은 것들도 있었다. 김영하는 “이런 고아원은 있지만 이런 걸 보존한 고아원은 여기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유시민은 “이탈리아라는 이 사회가 500년, 600년 기록을 이렇게 유지하는 사회인데 국가는 1500년 넘게 없었지만 근데 우리보다 1인당 GDP도 높고 인구도 많은 나라인데 이렇게 되는 게 무엇 때문인가를 느끼며 한 대 얻어맞았어요.”라고 말했다. 유시민은 이어 “이탈리아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졌다. 이탈리아 시민 사회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도 이런 시설이 있냐”고 묻는 직원분의 질문을 잘못 들어 “많다”고 말했지만 “몇 년 됐냐”는 질문에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남기는 것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탈리아도 1992년에 부패척결운동으로 벌어진 ‘마니 풀레테’처럼 큰 곤욕을 겪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근간에도 남아있는 인노첸티 고아원 같은 곳에서 느껴지는 문화적 저력은 부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조선의 그 찬란하고 예술적이었던 공간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내져 점점 사라져가고, 과거의 유산들을 예술적으로 받아들여 보존해나가기보다는 당장의 자본적 이익으로 바꿔나가는 우리네 현실이 가진 경박함이 못내 씁쓸하게 다가왔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숲을 만들고 거기서 모자라 4대강까지 밀어버린 이들이나, 예술가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해주기는커녕,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핍박했던 이들이 사실상 개발시대를 이끌었던 권력가와 그 가문들이라는 점은 그래서 아프게도 다가온다. 지금 현재에 이르러 초라한 끝을 보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피렌체가 가졌던 예술과 문화와 시민사회의 위대함을 우리도 깊이 숙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알쓸신잡3>가 피렌체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것들이다.(사진:tvN)
한꺼번에 드라마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월화에 JTBC <뷰티 인사이드>, SBS <여우각시별>, MBC <배드파파>가 수목에 SBS <흉부외과>, MBC <내 뒤에 테리우스>에 이어 tvN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이 경쟁에 합류했다. 너무 많아 어떤 걸 봐야할지 고민스러운 분들을 위해 각 드라마들의 중요 캐릭터와 그 장단점들을 정리했다.
◆ 이제훈의 <여우각시별>, 그 평범과 비범 사이
월화극의 최강자가 된 건 놀랍게도 tvN <백일의 낭군님>이다. 무려 9.2%(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비지상파의 이런 선전에 그간 주춤했던 지상파들도 일제히 전열을 가다듬고 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SBS <여우각시별>은 첫 회 5.9%로 시작해 4회 만에 8.6%를 찍을 만큼 그 관심의 상승곡선이 가파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이수연(이제훈)이라는 미스터리한 ‘무쇠팔’의 소유자다. 팔 하나로 사고로 날아든 자동차를 막아설 수 있을 만큼의 괴력을 보이는 이 인물은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보인다. 그 비범함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숨어 평범하게 자신을 숨기고 싶어 공항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그 곳 역시 매일같이 사건이 벌어지고 그래서 그 비범함을 숨길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특히 너무 평범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한여름(채수빈)이 같은 부서로 오면서 그의 사수가 된 이수연은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휘말려 그 비범함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수연의 정체가 실로 궁금한 가운데, 비범과 평범을 대변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차츰 멜로 관계로 바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이 드라마의 중요한 특장점이고, 무엇보다 공항이라는 공간이 주는 막연한 판타지와 그 현실 사이의 경계가 슬쩍 슬쩍 드러나는 묘미 또한 쏠쏠하다. 우리에게 <낭만닥터 김사부>로 확실한 믿음을 준 강은경 작가와 과거 <연인> 시리즈부터 김은숙 작가와의 작품들을 통해 알려진 신우철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도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다만 초반부터 너무 오지랖을 보이며 민폐캐릭터 역할을 하게 된 한여름이 불안요소일 뿐.
◆ 장혁의 남자 냄새 물씬 나는 <배드파파>, 중년 가장이라면
MBC <배드파파>는 한 때는 유명한 복서였지만 승부조작으로 은퇴하고 형사 생활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한 가장 유지철(장혁)의 이야기. ‘Badman or Hero’라는 부제를 단 첫 회 첫 장면은 사고 난 버스에서 아이와 엄마를 구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돈을 챙겨 도망칠 것인가 고민하는 유지철로 시작한다. 그는 살아가기 위해서는 영웅 따위는 포기하고 나쁜 놈이 되어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돈을 구하기 위해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했다가 그 파란 약을 먹고 순간적으로 엄청난 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유지철은 격투기 도박장에 올라 거구의 상대를 무너뜨리고 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어쩐지 이 신약은 부작용이 만만찮을 듯싶다. 그저 자신은 평범하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얻기 힘들어 집에서는 나쁜 아빠이자 가장이자 남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유지철은 가족을 위해 뭔가 찜찜한 이 신약을 먹고 ‘Family man’이 되려 한다.
이 드라마는 오랜만에 보는 남자 냄새 물씬 풍기는 액션을 선보이고 있다. 유지철 역할의 장혁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절권도 실력으로 슈퍼히어로 액션을 보여준다. 또 남자들에게는 오래된 이야기 소재였으나 지금은 많이 사라져버린 ‘사각의 링’의 이야기가 아드레날린을 자극할만한 드라마다. 물론 가족을 위해 뛰고 또 뛰는 가장의 피곤함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네 샐러리맨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아쉽게도 여성 시청자들을 동시에 잡아끄는 고리들은 약한 편이다. 시청률이 4% 정도에 머물러 있는 건 아마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 서현진의 <뷰티 인사이드>, 변신하는 그녀와의 로맨스
이미 원작 영화로도 그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JTBC <뷰티 인사이드>는 서현진의 매력으로부터 시작한다. 스포트라이트가 터지며 눌러대는 셔터 소리 속에서 보여지는 한세계라는 인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서현진의 매력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그 공유점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이 한세계에게는 한 달에 한 번씩 변신을 하는 마법에 걸리는데, 때론 할머니가 되었다가 때론 중년 미시가 되기도 하고 때론 아이가 되기도 한다. 사랑을 다루는 멜로드라마에서 한 사람의 존재 근거가 되는 외모가 바뀐다는 건 쉽지 않은 장애물이 놓여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문제는 이 한세계의 ‘변신’만이 아니다. 그와 사랑에 빠질 서도재(이민기)라는 인물은 젊은 나이에 가질 것 다 가진 재벌3세지만 사고로 인해 타인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를 갖게 되었다. 얼굴이 계속 바뀌는 인물과 누군가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물 간의 로맨스가 <뷰티 인사이드>다.
<뷰티 인사이드>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멜로드라마는 어떤 인물의 외형(외모를 포함한 현실적 조건들)을 뛰어넘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그로 인해 피어나는 사랑의 이야기를 담으려 하고 있다. 톱 연예인과 재벌3세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그 흔한 멜로드라마에서 늘상 주인공으로 자리해온 이들이다. 하지만 그 외형적인 조건들과 상관없이 저마다의 공평한(?)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은 과연 무엇으로 서로에게 끌리게 될 것인가. 외모지상주의에 스펙사회를 슬쩍 뒤틀어놓은 판타지 코미디가 달달하고 유쾌한 멜로와 엮어지게 된 이유다. JTBC가 월화드라마 시간대를 9시30분으로 바꿔 공격적으로 편성된 드라마지만, 경쟁작인 tvN <백일의 낭군님>에 밀려 다소 낮은 2.8%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서도재 역할을 연기하는 이민기의 연기는 다소 호불호가 나뉠 법하다. 코믹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다소 과장된 면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 소지섭의 <내 뒤에 테리우스>, 첩보·멜로·육아까지 다 잡았다
수목드라마에서 MBC <내 뒤에 테리우스>가 9% 시청률로 초반 시청률 1위에 오른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소지섭이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이다. 그 이름 석 자만으로도 어딘지 강렬한 액션과 절절한 멜로가 가능할 것 같은 배우.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살짝 망가뜨려 코믹한 웃음까지도 줄 수 있는 배우. 그게 바로 소지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초반 시청률 1위에 오른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여타의 수목극들과 달리 경쾌하고 유쾌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게 가능해진 건 전직 정보원이었으나 지금은 쫓기는 신세가 된 김본(소지섭)이라는 캐릭터가 킹캐슬 단지에서 숨어 지내다 우연히 고애린(정인선)의 아이들을 챙겨주는 시터가 된다는 설정 때문이다. 살해된 전 국가안보실장 사건을 목격한 이유로 고애린의 남편 차정일(양동근)이 역시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본은 시터로 일하면서 동시에 자신과도 얽혀있는 사건들을 파헤쳐나간다.
정보원이 시터가 됐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가 가진 색깔이 온전히 코믹과 멜로라는 걸 잘 드러내준다. 그래서 실제로 이 킹캐슬 단지의 아줌마 모임인 KIS(Kingcastle Information System)같은 조직(?)은 우스꽝스러운 패러디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패러디 뒤에는 국가 안보를 위해 하는 일만큼 어렵고 중차대한 것이 ‘육아’라는 공감대가 깔려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코믹과 멜로에서 때때로 진짜 ‘본 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첩보물과 액션 장르로의 변신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소지섭이라는 배우의 다채로운 매력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빛날 수 있게 되었다. 가벼움과 무거움, 진지함과 코믹함,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결합된 흥미로운 드라마. 다만 옥에 티라면 너무 흔한 첩보물의 뻔한 설정들이 주는 클리셰의 반복이 많다는 정도.
◆ 고수의 <흉부외과>, 심장이라도 훔치고픈 절절함
수목에 동시에 만나 <내 뒤에 테리우스>와 1,2위 각축을 벌이고 있는 SBS <흉부외과>는 의학드라마의 디테일이 빛나는 작품이다. 과거 <종합병원>에서부터 차츰차츰 특정 과로 축소되고 디테일이 더해져왔던 우리네 의학드라마의 흐름은 <흉부외과>에서는 실제 의사들의 제대로 된 감수와 취재들을 통해 더더욱 생생해졌다. 좋은 스펙을 갖지 못해 늘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심장이식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엄마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며 살아가는 박태수(고수)와, 조작된 진단서로 당장 조치를 취해야 했던 아픈 딸 대신 이사장의 딸 윤수연(서지혜)을 수술함으로써 딸의 죽음을 바라봐야 했던 최석한(엄기준)의 얽히고설킨 절절한 관계들이 흉부외과라는 특정과의 특성과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박태수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그 먼 길을 달려 최석한에게 왔을 때 갑자기 병원장으로부터 내려진 오더로 어느 쪽을 수술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상황이나, 공항에서부터 쓰러진 환자를 긴급 처치해 수술을 하는 도중에 어머니가 쓰러져 수술을 그만둘 수도 그렇다고 어머니를 방치할 수도 없는 박태수의 상황처럼 이 드라마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있어도 위험한 수술에는 나서지 않으려는 흉부외과의 특성을 담아낸다. 하지만 거기에 얽혀 있는 스펙사회와 조직의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이전투구 속에서 환자의 생명만을 보는 의사들이 소외되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심장을 훔친 의사들’이라는 부제처럼 이 드라마는 심장이라도 훔치고픈 절절함을 담아낸다. 워낙 긴박한 상황들의 연속이라 한번 보면 한 시간이 순삭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드라마지만, 그 팽팽함과 절절함은 다소 시청자들이 바라보기가 힘들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인 드라마.
◆ 서인국의 눈빛이 다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시작 전부터 화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일본 원작 드라마가 바로 tvN 수목드라마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이다. 2002년 방영되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던 기무라 타쿠야 출연작. 우리식 리메이크에는 그 기무라 타쿠야가 한 역할을 서인국이 연기하게 됐다. 드라마 외적인 이야기지만 군 면제 사실 때문에 논란을 겪고 있는 서인국에게는 이 작품이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이 드라마는 수제맥주 회사에서 일하는 김무영(서인국)이라는 인물이 가진 미스터리하고 때론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그 캐릭터에게 집중되어 있다.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적인지 그는 HJ그룹 계열사 부사장의 딸 백승아(서은수)와 만나 순식간에 그를 빠져들게 만들었고, 그의 친구인 유진강(정소민)과도 점점 알아가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유진강의 오빠인 형사 유진국(박성웅)에게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섬뜩함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존재인 김무영의 미스터리함은 이 드라마가 후반부까지 흘러가며 그려낼 이야기 속에 꽤 많은 숨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감지하게 한다. 그것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리게 만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다가와 친절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고는 또 그렇게 훅 지나가버리는 김무영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시쳇말로 ‘츤데레’ 그대로다.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그 캐릭터가 빛나 보이는 건 서인국이 보이는 그 미소와 눈빛 속에 그 두 가지 요소가 잘 버무려져 있어서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그 성패만큼이나 궁금해지는 것이 서인국이 과연 많은 논란들을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여성 시청자들이라면 빠져들 수 있는 매력. 물론 이 작품이 가진 리스크 역시 그 논란에 있지만.(사진 : MBC, SBS, JTBC,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