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츠’, 장동건도 박형식도 결국 서로를 성장시켰다

종영을 2회 남기고 KBS 수목드라마 <슈츠>는 최강석(장동석) 변호사에게 닥친 최대 위기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과거 비리에 연루되어 물러났던 함대표(김영호)의 복귀는 그 신호탄이었다. 그의 계략에 의해 가짜 증거를 발견하고는 최강석을 위해 그 증거를 입멸해버린 홍다함(채정안)은 결국 해고됐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 증거입멸의 책임이 결국은 최강석에게 돌아와 그의 해임과 변호사 자격 박탈이라는 요구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홍다함이 해고되고, 최강석까지 해임되게 되면 그 다음 타깃은 강&함 로펌을 이끌고 있는 강하연(진희경) 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에 대해 ‘재신임’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연쇄적으로 강&함을 이끌던 최강석과 그 주변사람들을 모두 위기에 몰아넣었다. 

이 모든 것이 함대표의 음모라는 걸 알고 있는 최강석은 분노했다. 그래서 평소 좀체 드러내지 않던 감정을 드러냈다. 자신의 방을 도청한 채근식(최귀화)의 멱살을 잡았고,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 상대측 변호사인 데이빗킴(손석구)이 자신의 부모 이야기까지 꺼내며 조롱하자 결국 주먹을 날렸다. 최강석의 흥분은 <슈츠>라는 드라마 속에서는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에 이 사안이 얼마나 그들에게 위기인가를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모두가 무너지고 위기에 몰리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냉정을 지키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고연우(박형식)였다. 그가 늘 타인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다가 일을 그르칠 뻔하기도 했던 과거를 떠올려보면 그의 이런 냉정은 그가 그간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함대표가 ‘살모사 같은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최강석으로부터 들었던 고연우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함대표에게 접근했다. ‘제 어미까지 잡아먹는 살모사’라는 존재는 어쩌면 고연우에게는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해답처럼 다가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의심하는 함대표를 설득시키며 고연우는 그의 편에 서서 최강석을 피고로 세우는 모의법정의 검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모의법정에 증인으로 홍다함을 세운 후, 그에게 최강석을 “사랑하냐”고 몰아붙였다. 여기서도 최강석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했다. “내가 시킨 걸로 할 테니까 그만하라”고 소리친 것. 어째서 고연우는 이토록 냉정하게 최강석과 홍다함을 몰아붙였고, 거기에 그들은 왜 그토록 감정을 드러낸 것일까. 

모의법정에서 최강석을 변호하기 위해 나선 강대표(진희경)는 토스트 트럭과 최강석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며 그의 성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면 약점이 늘기” 때문에 본래는 인간적인 최강석이 사건에 있어서는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는 걸 배심원들에게 설득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인간적인 모습이나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약점’으로만 작용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런 감정이 드러나더라도 진심을 끄집어내는 것이 오히려 이 위기를 넘을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건 아닐까.

만일 고연우가 그런 걸 의도하고 있고, 그래서 냉정하게 악역을 자처해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최강석의 인간적인 진심을 끄집어내려는 것이라면, 이 드라마가 그려내려는 두 인물의 성장이 흥미로워진다. 즉 공감능력이 뛰어나 오히려 감정적이 되던 고연우는 어느새 냉정 또한 갖춘 인물이 되었고,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던 최강석은 그를 통해 사실은 따뜻한 심성을 가진 인물이라는 게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남은 2회가 담아낼 결말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 역전된 고연우와 최강석의 면면이 보여주는 성장과정은 충분히 의미 있게 다가온다. 결국 냉정함과 따뜻함을 균형 있게 갖춰나가는 것이 진정한 변호사로서의 성장이라면, 고연우와 최강석은 처음 만났던 그 시점부터 서로를 ‘선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선택을 통해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게 된 것이고, 각자의 운명을 바꾼 것이니.(사진:KBS)

‘집밥 백선생’과는 다른 ‘수미네 반찬’이 지향해야할 것들

사실 스튜디오의 풍경만 보면 tvN 새 예능프로그램 <수미네 반찬>은 이전에 시즌3까지 방영된 <집밥 백선생>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백종원이 있던 자리에 김수미가 서 있고, 요리무식자들이 서 있던 자리에 최현석, 여경래, 미카엘 같은 스타 요리사들이 서 있다는 차이가 있지만, 그 정경 자체가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중심에 선 김수미가 자신이 수십 년 간 쌓아온 요리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이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형식이 비슷하다고 해서 내용도 같을까. 그렇지 않다. 그건 백종원이라는 인물과 김수미라는 인물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백종원이 ‘요리연구가’라고 불린다면 김수미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오랜 요리 경험을 축적해온 ‘엄마’에 가깝다. 요리연구가인 백종원은 그래서 요리무식자들에게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엄마의 손맛을 전면에 내건 김수미는 간편해지는 식문화에 의해 사라져가는 우리네 밥상을 되살리는 요리에 가깝다. 그래서 이미 요리에 정통한 스타요리사들이 ‘자격증 없는’ 이 엄마의 제자를 자처하는 이색적인 풍경이 가능해진다. 

물론 <집밥 백선생>에서도 일품요리가 아닌 반찬을 만드는 노하우가 공개되긴 했지만 <수미네 반찬>은 여기서 더 나아가 본격적인 ‘반찬 요리’에 집중한다. 사실 우리들의 식단을 보면 예전처럼 여러 반찬과 국 그리고 밥을 먹는 방식에서, 좀 더 간편한 일품요리를 해먹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게 사실이다. 워낙 바쁘게 살아가는 삶이다 보니 일일이 반찬을 여러 개 만들어 준비하는 밥상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서다. 그래서 <수미네 반찬>이 지향하는 바는 기획의도에도 들어가 있듯이 ‘조연으로 물러났던 반찬을 우리의 밥상으로 옮겨오자’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집밥 백선생>이 보여줬던 ‘집밥’과 <수미네 반찬>이 보여주려는 ‘집밥’의 개념이 달라진다. <집밥 백선생>은 ‘집밥’하면 괜스레 신격화해버린 ‘엄마의 밥상’ 같은 무게감을 덜어내고 ‘집에서 누구나 간편히 해먹을 수 있는 밥’으로서의 ‘집밥’을 전면에 내건 바 있다. 반면 <수미네 반찬>은 거꾸로다. 사라져가는 ‘엄마의 밥상’과 그 ‘손맛’을 전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미네 반찬>이 끄집어낸 ‘엄마의 밥상’이라는 소재가 요리라는 세계를 다시금 ‘엄마들의 의무’로 퇴행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건 이 프로그램의 풍경으로 제시되어 있듯이, 김수미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엄마들이 아니라 최현석, 여경래, 미카엘 같은 남성 요리사들이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요리는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다만 엄마들이 그간 쌓아놓았던 그 손맛의 노하우가 사라지지 않고 복원해보겠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속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미네 반찬>이 처음 선보인 고사리 굴비조림이나 연근전 같은 레시피는 생각보다 훨씬 쉬워 보였다. 우리가 막연히 ‘엄마의 손맛’이나 ‘엄마의 밥상’ 하면 떠올리던 그 어마어마한 ‘정성’의 무게 때문에 요리도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 여겼던 그 생각을 간단히 깨줬기 때문이다. 특히 연근의 그 구멍에 갈아서 양념을 한 고기나 명란젓을 채워 넣어 만드는 연근전은 간편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영양과 맛도 기대되는 레시피였다. ‘엄마의 손맛’이란 그 요리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오랜 세월동안 누적된 노하우가 있어 간단히 해도 맛을 낼 수 있는 요리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김수미가 보여주는 찰진 멘트들과 설렁설렁 하는 듯 보이지만 공력이 있어 보이는 요리 실력은 <수미네 반찬>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사실 엄마들에게만 부과되어 오던 집밥의 의무를 이제는 모두가 분담하는 것에 누구나 공감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깝게 느껴지는 건 그 의무 속에서 엄마들이 축적해온 노하우마저 사라지는 일이 아닐까. 쉽지만 확실한 효과를 내는 그 노하우를 이제 엄마든 아빠든 혹은 자녀들이든 상관없이 공유할 수 있는 시간. 이것이 <수미네 반찬>이 지향해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사진:tvN)

‘김비서’, 로코 이면에 감춰진 통쾌한 갑을 역전 로맨스

“왜 그럴까? 김비서가 왜 그럴까?” 사교파티처럼 보이는 모임에 등장한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나르시시스트 부회장 이영준(박서준). 모든 여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그는 그러나 소파에 앉아 그렇게 혼잣말을 한다. 거기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한 듯한 당혹감이 들어있다. 무려 9년 간이나 마치 조강지처처럼 그의 모든 걸 챙겨주던 비서 김미소(박민영)가 갑자기 퇴사 선언을 했다는 사실을 그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퇴사 밀당 로맨스’라는 독특한 예고 문구에서부터 tvN 새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어딘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분명했다. 그저 그런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만은 아닐 거라는 기대감이 생기기에 충분했으니까. 물론 이미 이 작품을 웹툰으로 접한 분들이라면 일찌감치 이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색다름을 알고 있었을 테지만.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색다른 로맨틱 코미디로 만드는 건, 그 역전된 관계 때문이다. 부회장이 비서를 좋아하게 된다는 그 설정 자체만 보면 이건 또 다른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신데렐라 이야기의 차원을 훌쩍 넘어서는 건 9년 간 이들이 지내온 직장 내 상하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려 9년 동안이나 부회장과 비서로서의 상하관계를 유지해왔던 그들이지만, 이제 비서가 그 관계를 깨버리려 하자 생겨나는 화학반응이다. 늘 ‘김비서’로 존재해왔던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김미소’라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자기 삶을 살아가겠다고 선언한다.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것들이 다 그대로 유지될 거라 믿어왔던 이영준 부회장이 당혹감은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물론 이런 관계의 역전이 다소 과장되게 그려지고 거기에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판타지가 섞여 있지만, 이런 비슷한 상황은 아마도 직장을 경험했던 이들에게는 낯설지 않을 것이다. 즉 회사 내의 상하관계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걸 감수해야 했던 이들도 딱 한 번 정도는 그 관계를 뒤집는 경험을 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사직서를 낼 때다. 그 때는 회사 내에서의 김대리, 김과장, 김부장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서 어떤 선언을 할 수 있게 된다. 

당혹감을 느끼는 이영준 부회장은 왜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고민하고 그래서 내놓는 결론이 참 엉뚱하다. 월급이 적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그 첫 번째다. 그래서 월급을 파격적으로 올려주고 빚도 갚아주고 차도 집도 사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김비서가 퇴사를 선언한 이유는 그런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즉 자신이 9년 간이나 ‘김비서’로 살아왔던 그 시간을 되돌려 이제 ‘김미소’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다.

돈보다 나의 삶을 선택하고, 커다란 성공보다 작아도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김미소의 선언과, 이로 인해 반전된 이영준 부회장과의 관계(오히려 그가 김미소를 붙잡으려 심지어 청혼까지 하는 상황)는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 그 이상의 유쾌함과 통쾌함을 담아낸다. 세상의 모든 위계들이 빈부와 직급으로 나뉘는 우리 시대에, 그걸 박차고 나옴으로써 마주하게 되는 진짜 나의 존재가치를 이 역전된 관계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또한 달라진 현 세대들의 삶의 방식을 제대로 투영하고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서 이른바 ‘포기세대’라고까지 불리는 현 세대들은 결국 ‘세상의 법칙’을 버림으로써 해결책을 찾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는 ‘세상의 법칙’을 버리는 것을 통해 비로소 나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이영준 부회장이 맞닥뜨리게 되는 당혹감을 통해 우리 시대의 청춘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고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이영준은 그래서 이제 김비서가 아닌 김미소를 알아가며 그가 갖고 있던 본질적인 문제들을 들여다보게 될 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상화관계 속에서 허덕이다 자기도 모르게 이름난에 ‘김비서’라 적어 넣는 그런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고 이 드라마는 묻고 있다.(사진:tvN)

소설보다 팩트, ‘검법남녀’ 정재영의 묵직한 존재감

좋은 인물 하나는 작품 전체를 살려낼 수도 있다고 했던가.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에서 “소설 쓰지 마”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는 백범(정재영)이 바로 그런 캐릭터다. 검사인 은솔(정유미)이 사건을 접하고 정황에 따라 추정을 하곤 할 때 백범은 그걸 ‘소설’이라고 일축한다. 그는 오로지 팩트만이 진실을 얘기한다고 믿는 법의관. 어찌 보면 직업적으로 당연한 태도라 생각되지만, 이 캐릭터는 <검법남녀>라는 드라마가 성공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냉철하게 오로지 팩트로만 판정해 진실에 다다른다는 그 캐릭터의 매력.

이를테면 백범의 라이벌인 법의조사과장 마도남(송영규)의 아들이 사체로 발견되고 자살보다는 타살을 의심하게 하는 정황증거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은솔은 그것이 늘 전교 1등자리를 빼앗겼던 친구들의 소행으로 단정 짓는다. 그리고 이것은 시청자들의 심증이기도 하다. 5명의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고 내려올 땐 4명의 아이들만 내려왔으며 몇 시간 뒤 그 한 명의 아이가 아파트 아래에서 사체로 발견됐다는 건 누가 봐도 4명의 아이들이 저지른 타살을 의심하게 만든다.

여기에 4명의 아이들 중 전교 2등을 하던 아이의 아빠가 굴지의 로펌의 대표변호사라는 사실이 더해지고, 그 힘을 빌어 은솔의 수사에 압력을 행사하는 아이의 엄마가 등장하면서 그 심증은 점점 굳어진다. 이 사건에서 은솔이 그러한 것처럼 시청자들도 똑같이 학내 성적을 두고 벌어지는 아이들 간의 갈등과 왕따 그리고 힘 있는 부모의 개입 같은 이야기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추정들에 대해 백범은 쉽게 단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건 ‘소설’일뿐이라고 일축하고 사체가 얘기하는 팩트들을 모아 진실에 접근해간다. 사체 검시를 통해 사망 당일 하얀 음식물만이 있다는 걸 확인한 백범은 그 날 마도남의 아들이 급식을 먹지 않았고 대신 백설기와 우유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그 음식을 먹고 음식물의 이동시간을 체크하면서 사망 추정시간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다음 회 예고편으로 살짝 등장한 것이지만 결국 아이의 사망은 타살이 아닌 자살로 판정된다. 물론 자살의 동기로서 아이들이 저지른 왕따사건이 있을 거라 여겨지지만.

<검법남녀>의 특별한 점은 사건 속에서 단지 시청자들이 보고픈 걸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학내 왕따 문제와 자살사건 그리고 그 사건에 연루된 힘 있는 부모의 아이가 등장하는 사건에서 시청자들은 은연 중에 가해자로 추정되는 아이의 단죄를 욕망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백범이 등장해 이를 가로막는다. 막연한 추정이 아닌 사체가 말해주는 팩트를 들고서. 

<검법남녀>가 흥미진진해지는 건 사건이 추정에 의한 소설들(?)로 인해 한 방향만으로 흘러갈 때 이를 뒤집는 반전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다. 그리고 그 반전은 다름 아닌 사체가 자신의 몸으로 남긴 메시지를 통해서 이뤄진다. 백범은 그 어떤 정황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체의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마치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더 믿을 수 있는 팩트를 전해준다는 것처럼.

법의학은 사체가 말하는 마지막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라고 했던가. 사체들에는 저마다의 아픈 사연들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죽은 후라도 그 마지막 메시지를 성실하게 읽어내는 백범 같은 법의관의 존재는 그 냉정함 속에 인간적인 면모를 갖기 마련이다.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어쩌면 그 냉정함이야말로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고, 나아가 그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사체에 대한 예우라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 <검법남녀>의 이례적인 성공은 사건전개의 쫄깃함과 반전에 더해 인간적인 따뜻함까지 담아내는 백범이라는 캐릭터와 이를 제대로 연기해내고 있는 정재영의 존재감에 기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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