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하는 황광희, 빈자리 꽉 채워준 양세형

이제는 양세형의 존재감을 인정해야할 것 같다. 사실 양세형은 아직까지도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정식 멤버라고 소개된 적이 없다. 그저 언젠가부터 빈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무한도전>에 서 왔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됐다. 그만큼 <무한도전>의 멤버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지만, 양세형은 어느새 <무한도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7주간의 ‘정상화’ 기간을 거치고 돌아온 <무한도전>은 광희의 군 입대 소식과 함께 어떤 불안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새 그 빈자리를 제대로 채워주고 있는 양세형이 존재한다는 건 실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양세형이 없는 상황에서 광희마저 군 입대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의 다섯 명 체재로도 쉽지 않은 <무한도전>은 네 명 체재로 돌아갈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아마도 김태호 PD는 이러한 앞으로 닥칠 상황들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양세형을 차근차근 <무한도전>의 한 자리에 세워두고 자연스럽게 그 적응과정들을 겪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그런 시간은 <무한도전>의 기존 멤버들은 물론이고 양세형에게도 필요한 일이고 나아가 프로그램과 늘 함께하는 팬들에게도 필요한 일이다. 광희가 ‘식스맨 특집’이라는 아예 내놓고 하는 검증시스템을 거쳐 <무한도전> 멤버로 들어왔다면, 양세형은 그런 거창한 특집이 아니라 차라리 프로그램에 실전 투입해 겪는 일종의 인턴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양세형은 장난기 가득한 어린이 캐릭터를 갖고 있다. 하하와도 약간 겹치는 면이 있지만 양세형이 다른 점은 ‘전문 패널’이라는 별칭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그럴듯한 리액션과 설명을 덧붙인다는 점이다. 제법 진지하게 말하지만 그가 갖고 있는 어린이 같은 캐릭터는 그 진지함마저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는 <무한도전>에서도 그렇지만 <집밥 백선생>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그 누구보다 재밌는 리액션과 패널 같은 맛 설명으로 자기 색깔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어떤 게임이나 대결에 들어갔을 때 양세형의 존재감은 더욱 빛난다. 그건 유치할 정도로 상대방을 놀리고 감정을 건드리는 모습으로 한편으로는 웃음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대결에 불을 붙인다는 점이다. 7주간의 정상화 기간을 거치고 돌아와 <무한도전>이 보여준 ‘하나마나 대결’ 특집에서 양세형이 특히 도드라졌던 건 그래서다. 

그는 끊임없이 뭐든 잘 한다는 식의 허세를 드러내며 상대방 팀을 약올렸지만 유재석과 함께 연거푸 게임에서 지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 어찌 보면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대결이지만 그 대결을 팽팽하게 만드는데 있어서 양세형의 ‘도발’이 꽤 큰 역할을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지막 철인3종경기 대결에서 양세형은 수영 종목에서 말도 안되는 접영을 보여주며 웃음을 주었고 끝까지 아슬아슬한 대결 속에서 광희가 마라톤 주자로 나서 마지막 피니시 라인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입대하는 광희를 향한 <무한도전> 멤버들의 헹가래가 이어졌다. 광희와 양세형의 성공적인 이어달리기를 보는 듯한 그 광경은 마치 <무한도전>이 앞으로도 빈자리 없이 계속 달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광희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고, 떠나는 그 빈자리를 양세형은 충분히 채워주고 있다.

'터널', '시그널'과 비교되는 지점들

OCN 주말드라마 <터널>에서 시청자들이 여러 작품들의 잔상들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30년 전 1980년대의 정경이 환기시키는 영화 <살인의 추억>과 드라마 <시그널>. 특히 <시그널>은 이러한 과거의 정경과 함께 현재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터널>이 떠올리게 하는 작품일 수밖에 없다. <시그널>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가 등장하지만, <터널>은 과거에서 현재로 통과하는 터널이 등장한다. 

'터널(사진출처:OCN)'

우연인 건지 의도한 것인지 <터널>의 남자주인공 박광호(최진혁)의 아내 역할로 나온 이시아는 <시그널>에서도 이재한(조진웅)의 첫 사랑으로 등장한다. 하드보일드한 형사지만 아내 혹은 연인에 대한 사랑을 가진 존재라는 특징은 이 두 주인공들이 가진 공통점이다. 이들은 그만큼 사람 냄새가 나는 형사라는 캐릭터로 시청자들 앞에 서 있다. 

이처럼 유사한 느낌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터널>의 이야기가 새로운 면이 없는 건 아니다. 그건 이 작품이 타임슬립 장르를 덧붙여 박광호가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재로 온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이다. 박광호가 현재에 맞닥뜨릴 형사는 그와는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김선재(윤현민)다. 그는 사람수사에는 관심이 없고 대신 스마트폰, SNS, 이메일, CCTV, 내비게이션 등 디지털 증거를 뒤져 수사 단서를 잡는다. 

박광호를 타임슬립시켜 김선재 같은 형사와 붙여 놓는 이유는 명백하다.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아날로그 형사와 인간미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디지털(?) 형사를 대비시키려 함이다. 몸으로 현장에서 부딪치며 뛰는 수사가 여러 형사물에서 과학수사와 대비되며 한때 과거의 유물로 그려졌던 것과 비교해보면 <터널>의 선택은 정반대다. <터널>은 오히려 차갑디 차가운 과학수사라는 틀을 쓴 채 사람의 생명이 과학적 수치로만 보이는 그런 현재를 아날로그 형사를 데려와 꼬집는다. 

그래서 결국 <터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박광호라는 아날로그 캐릭터 그 자체다. 30년 전 연쇄살인을 목도하며 그 피해자와 유족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했던 그는 “어떻게든 잡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는 이미 범인을 눈앞에서 봤지만 안타깝게도 놓치고 만다. 그 열망은 그래서 그가 시간을 뛰어넘는 터널을 통과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 설정이나, 다른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갖는 유사성의 한계를 과연 <터널>은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것은 이 작품이 굳이 그런 설정들과 요소들을 가져온 이유가 납득되는 지점에서 그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즉 사람 냄새 나는 형사가 온몸으로 보여주는 현재에 대한 어떤 비판적 성찰 같은 것이 성공적으로 그려져야 이 모든 한계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 

일단 첫 회를 통해 박광호라는 형사의 인간미는 충분히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범인을 잡고픈 열망과 아내에 대한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과 생명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 같은 걸 제대로 드러내줬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시그널>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도봉순’, 어째서 멜로에 대한 기대가 커진 걸까

본격 장르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본격 장르물에도 멜로나 가족극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런 멜로의 틈입에 대해 시청자들은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며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최근 방영됐던 <피고인>이나 <보이스> 같은 본격 장르물이 멜로 없이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끈 건 그래서다. 

'힘쎈여자 도봉순(사진출처:JTBC)'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JTBC <힘쎈 여자 도봉순>의 경우는 멜로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커지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본격 장르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여러 장르들, 이를 테면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와 코미디, 게다가 가족드라마적 요소들과 멜로까지 복합적인 장르를 보인다. 

그래도 그 메인으로 깔려 있는 건 여자들만을 공격대상으로 삼는 사이코패스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 사이코패스와 맞서는 강력계 형사 인국두(지수)와, 재벌가의 승계를 두고 벌어지는 테러 앞에서 위협을 느끼는 안민혁(박형식)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에 도봉순(박보영)이 양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로 서 있는 구도. 

이미 도봉순은 자신이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힘을 제대로 써야 한다는 걸 각성했고, 안민혁과의 트레이닝을 통해 그 힘을 조절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러니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사실상 이 드라마 상의 어떤 악역들에게도 없다. 수십 명의 조폭들을 단신으로 상대하며 모두를 병원 중환자실로 몰아넣는 그녀가 아닌가. 백탁(임원희)은 그래서 그녀 앞에 일찌감치 무릎을 꿇는다. 

그렇다면 이미 자신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도봉순에게 진짜 목표는 무엇일까. 드라마는 결국 주인공의 결핍을 욕망으로 삼아 그것을 어떻게 쟁취하는가에 따라 동력을 얻기 마련이다. 물론 여자들을 감옥 같은 철창에 가둬두고 마치 전리품처럼 여기는 사이코패스가 버젓이 살아있지만 그를 잡는 건 이 드라마의 한 과정일 뿐, 목표 그 자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봉순은 사실 정의의 실현 같은 것에 목을 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그 자체로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것에 더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다. 힘이 세다는 것을 그녀는 숨기며 자라왔다. 여자가 힘이 세다는 것을 마치 무언가 대단히 잘못된 일인 양 받아들였던 것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그녀는 자신을 부정하고 있었던 것. 

우리가 <힘쎈 여자 도봉순>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도봉순의 멜로를 더욱 기대하게 되는 건 바로 그것이 그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에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다. 숨기고 왔던 괴력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그런 그녀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남자의 등장은 바로 도봉순이 꿈꾸는 것일 테니 말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의 멜로는 그저 남녀 간의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남녀 간의 성별로 나뉘어지는 역할이나 선입견들을 깨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남녀의 성역할에 따라 누가 누구를 보호해주고 보호받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멜로가 그려내려는 것이다. <힘쎈 여자 도봉순>이 스릴러 장르물의 틀을 가져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로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는 건 그래서다.

‘윤식당’, 익숙한 듯 낯선 나영석 PD의 명민한 선택

‘나도 저런 데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아마도 tvN 새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을 보면서 내내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을 지도 모르겠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어느 한적한 섬. 유럽과 호주에서 온 여행자들이 북적대며 오로지 여행의 설렘으로 가득 채워진 그 곳에서 작은 한식당을 연다는 건 나영석 PD가 기획의도로 밝힌 것처럼 누구나 한번쯤 꿈꿔보는 일이 아닐까. 

'윤식당(사진출처:tvN)'

여기서 키워드는 이 복잡한 도시를 ‘떠난다’는 것이고, 낯선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이다. 가끔 삶이 지긋지긋해지고 막막한 현실 앞에서 “이번 생은 글렀어”라고 얘기하게 될 때, 우리는 이 곳을 떠나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진다. 사실 그건 ‘이번 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 곳’이 잘못됐을 수 있고, 그래서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생을 가져다줄 기회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못한다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어떤 메뉴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며 점점 빠져든 <윤식당>의 사장 윤여정과 그녀를 옆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챙기는 밝고 맑고 명랑한 정유미, 그리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의외로 사려 깊고 그래서 어딘지 든든함을 주는 이서진. 이런 구성원이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들이니 함께 무언가를 도모한다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이겠나. 

나영석 PD는 명민하게도 이렇게 낯선 곳에서 식당을 열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마치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처럼 그려냈다. 제아무리 요리를 못하는 사람도 불고기 하나를 메인으로 만들어 덮밥, 면, 햄버거로 만드는 건 할 수 있을 게다. 게다가 불고기는 호주인들 같은 경우에는 ‘코리안 바비큐’로 이미 유명해진 메뉴다. 쉽게 할 수 있지만 그 효과도 좋은 <윤식당>의 기본 메뉴는 그래서 이들의 ‘개업’에 시청자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아닐 수 없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과 정착이 그간 나영석 PD 예능의 핵심이었다면 <윤식당>은 이 두 가지를 엮었다. 나영석 PD표 예능의 또 다른 반복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윤식당>에는 기존 예능들과 달리 ‘개업’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집어넣었다. 힐링 예능으로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왔던 나영석 PD표 예능은 그래서 이 ‘개업’이라는 장치를 통해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긴장감을 더했다. 

게다가 <윤식당>은 윤여정, 이서진, 정유미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 곳을 찾는 손님들과 벌어지는 교감이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이 된다. 그들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을 보면서 느낄 어떤 보람 같은 것들은 <윤식당>을 보는 시청자들의 기대가 아닐 수 없다. 일에 있어서 보람 같은 걸 느껴본 게 도대체 언제였던가 싶은 분들에게는 더더욱. 

손님이 얼마나 올 것인가. 너무 많이 와도 걱정이고 너무 안와도 걱정이라는 윤여정에게 이서진은 긍정적인 비전을 내놓는다. 생각보다 더 많은 손님들이 올 것 같다는 것. 그 말에 윤여정은 기분좋아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윤식당 개업 바로 전날 교차하는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개업일 손님을 기다리며 한없이 물을 들이키는 윤여정의 그 기분 좋은 긴장감. 그래도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주는 즐거움. <윤식당>은 나영석 PD표 예능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가져와 또 다른 세계를 열고 있다. 그런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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