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국을 예감한 듯, <낭만닥터>가 정조준한 것들

 

참 이상하죠? 우리 모두가 도윤완이 틀렸다는 걸 아는데, 지금 누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다 아는데, 왜 그는 지금도 저 자리에서 저렇게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걸까요?”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돌담병원의 여원장(김홍파)이 툭 던지는 이 말 한 마디는 의외로 현 시국과 중첩되면서 묘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가끔 이런 대사를 누군가의 캐릭터를 통해 던질 때마다 문득 문득 놀라게 된다. 이 드라마는 현 시국을 예감이라도 했던 걸까.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돈이 실력이고 부자 엄마가 스펙이고 다 좋은데, 그래도 최소한 양심이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니?” 6중 추돌 사고 에피소드에서 사고를 내고도 부모가 권력자라고 그 치마폭에 숨는 2세에게 윤서정(서현진)이 던지는 이 일갈은 또 어떤가. 현 시국에서 누군가 SNS에 올렸다는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던 그 기가 막힌 문구가 떠오르지 않는가.

 

병사’. 군대에서 구타가 의심되는 환자의 사망진단서에 병사라 적어놓고 주치의인 강동주(유연석)에게 사인을 하라고 내미는 도윤완(최진호) 원장의 그 장면에서는 무엇이 떠오르는가. 최근 물대포에 맞아 안타깝게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기막힌 사망진단서가 떠오르지 않던가.

 

우리 모두가 이렇게 명명백백하게 잘못된 것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저들은 지금도 저 자리에서 저렇게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걸까. 여원장의 토로는 마치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현실을 두고 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어째서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야기들은 그저 드라마가 아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정조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걸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현실이 믿기 힘들 정도로 드라마 같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낭만닥터 김사부>가 애초부터 우리 사회가 가진 부조리한 점들을 조목조목 담아내려 작정을 했었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시국은 사실상 우리 사회가 가진 부조리의 총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낭만닥터 김사부>가 정조준한 것들의 과녁이 되고 있다.

 

어떻게든 권력으로라도 몰아붙여 김사부(한석규)와 돌담병원을 무너뜨리려는 도윤완 원장의 기도는 신회장(주현)이 깨어남으로 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상황을 뒤집기 위해 도윤완 원장은 이제 김사부와 강동주를 이간질하기 시작한다. 강동주 부친의 사망과 김사부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것.

 

이것 역시 탄핵의 사유가 명명백백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거짓 진술과 말 바꾸기로 시간 끌기를 기도하며 마지막까지 상황을 뒤집으려 하는 현 정권을 고스란히 닮았다. 극한으로 몰리자 병원폐쇄를 기도하는 도윤완 원장 같은 이들에게 애초부터 환자나 생명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다. 다만 권력을 유지하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목적일 뿐. 도의나 명분이 없는 그들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물불 안 가리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를 지키는 것.

 

하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일까. 배를 띄우는 것도 가라앉히는 것도 결국은 물이다. 환자나 진정한 의사가 없는 병원이 있을 수 없고 국민 없는 권력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를 통해 조금은 낭만적이지만 뒤틀어진 현실에 대해 거침없는 일침을 날리는 김사부에게 지지하는 마음을 갖는 건 그래서다. 한 환자의 부름에 의해 지어진 그의 이름처럼, 그는 우리 시대의 사부 역할을 하고 있다.

 

참 이상하죠? 우리 모두가 도윤완이 틀렸다는 걸 아는데, 지금 누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다 아는데, 왜 그는 지금도 저 자리에서 저렇게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걸까요?” 여원장의 질문 속에 답이 있다. 이미 우리는 그들이 틀렸다는 걸 알고 있고 또 잘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점점 많은 이들이 그것을 인지하는 것으로 인해 배를 띄우던 물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또 현 시국이 어떤 결말을 낼 것인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겠는가.

캐릭터에 여행 더한 <신서유기3>, 상상초월 놀이 한 판

 

대체 왜들 이러는가.’ tvN <신서유기3>가 중국 계림에서 벌인 첫 번째 기상미션에는 이런 제목이 붙었다. 아침 8시 이후에 미션이 시작된다고 전날 나영석 PD가 얘기했지만 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7시가 되기 전부터 일어나 스스로들 기상미션을 수행한다. 6명 중 3명만 아침으로 나올 완탕을 먹을 수 있다는 말 한 마디에 은지원은 다른 방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버리고 안재현과 강호동은 가까스로 문을 열고 나와 역습을 가한다.

 

'신서유기3(사진출처:tvN)'

뒤늦게 일어난 송민호가 잠긴 방문 대신 창문으로 나오자, 이수근과 은지원은 아예 숙소 바깥으로 나가 그 대문을 철사로 잠그려 한다. 그걸 알아차리고 송민호와 안재현도 문밖으로 나오고 뒤늦게 문이 잠기는 걸 본 강호동은 얼굴을 내밀다 문틈에 머리가 끼어버린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강호동이 괜스레 달리는 척 하자 모두들 어딘지도 모른 채 달려가고, 놀랍게도 우연히 당도한 주차장에서 그들은 버스를 발견하고 올라탄다.

 

대체 왜들 이러는가라는 제목이 붙은 건 당연하다. 미션 자체가 제시되지도 않았는데 도무지 밑도 끝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뛰고 달리는 그들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이언 버전의 손오공 분장(?)을 하느라 뒤늦게 나온 규현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면서 이 알 수 없이 뛰고 또 뛰는 기상미션에 참여한다. 그런데 이 미션의 끝을 보면 결국 선택에 의한 복불복이다. 두 개의 버스로 3명씩 나눠 탄 그들에게 9시 쯤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나영석 PD는 한 버스에 올라탐으로써 그 버스에 탄 3명의 승전보를 알린다. 이 버스에 탄 규현, 은지원, 안재현이 완탕으로 먹으러 갈 때, 나머지가 탄 버스는 아침도 못 먹고 답사를 하러간다.

 

이 아침 기상미션은 <신서유기3>라는 나영석 PD표 예능 프로그램이 얼마나 출연자에게도 또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하게 됐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속고 속이고 뛰고 달리는 뜬금없는 기상미션을 하는 것에 대해 출연자도 시청자도 그다지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미 <신서유기>도 시즌3를 했지만, 이런 식의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복불복은 <12> 시절부터 지금껏 익숙한 것들이다. 그래서 이런 익숙함은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거두절미하고 게임에 들어간다고 해도 새로 들어온 규현이나 송민호 모두가 쉽게 동화될 수 있게 됐다.

 

그러고 보면 이들은 중국 계림으로 떠나긴 하지만 그 목적이 따로 없다. <12>이나 <꽃보다 청춘> 같은 시리즈의 주목적은 여행이다. <삼시세끼>는 여행보다는 시골 살이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신서유기3>는 그 목적이 무엇일까. ‘서유기라는 중국 고전을 끌어옴으로써 그 목적지를 중국으로 정해놓고 있지만 <신서유기3>의 목적이 여행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어딘지 부족하다. 게다가 이들은 서유기혹은 드래곤볼캐릭터를 가져와 분장을 시킨다. 이런 분장은 일반적인 여행과는 <신서유기3>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는 걸 분명히 해준다.

 

그건 바로 놀이다. 이들은 아예 시작부터 대놓고 놀이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고, 중국의 어느 지역을 놀이의 장소로 정한 것이며 심지어 그 놀이 속에서 캐릭터까지 설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놀이에 중국이라는 낯선 여행지가 덧붙여지고 거기에 서유기의 캐릭터까지 더해지면서 평시에는 하기가 쉽지 않은 놀이들이 가능해진다. 물론 <무한도전>은 서울 도시 한 복판에서도 캐릭터 분장을 하며 대로를 활보하기도 했지만, <신서유기3>는 그래도 여행이라는 현실에서 살짝 벗어날 수 있는 틈을 벌려주고 거기에 캐릭터까지 부여해줌으로써 놀이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 이제 왜 이들이 낯선 계림의 한 공간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뛰고 또 뛰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가가 이해가 된다. 또 그들의 이상한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게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이유도 알게 된다. 핵심은 여행에 캐릭터를 더하고 아예 목적을 즐거운 놀이로 정해놓은 것이다.

 

이것은 <신서유기3>가 가진 색다른 나영석 PD표 예능의 또 다른 버전이다. 여행이라는 바탕 위에 서 있지만 <꽃보다> 시리즈가 해외 배낭여행의 진수에 방점을 찍고, <삼시세끼>가 시골살이를 통해 우리네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면, <신서유기3>는 캐릭터 놀이를 더해 아잇적 순수한 즐거움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다. 다음 날 출근할 일에 한껏 무거워진 마음을 잠시 동안 잊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의 세계로.

<12> 정준영 복귀 공식화, 넘어야할 산들

 

진짜 너니?” KBS <12>의 다음 주 예고에 낯익은 발걸음으로 등장하는 정준영을 보고는 출연자들이 반색하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그들은 진정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그간 동고동락해오다 한 순간의 실수로 나락에 떨어진 동료이니 다시 돌아온 그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을 게다. 하지만 그들의 반가움이 시청자들의 반가움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정준영이 복귀를 선언했다. 지난 9월 사생활 문제로 자진하차한 지 어언 4개월여 만이다. 보통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의 자숙 기간으로 보면 지나치게 짧은 게 사실이다. 물론 그가 저지른 사회적 물의는 법적인 차원이 아니다. 그저 사적인 일들이 드러나면서 생겨난 해프닝에 가깝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갖게 된 정준영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는 <12> 시청자들에게 그를 보는 것 자체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아이와 부모가 다 함께 즐기는 <12>의 성격상 그런 불편함은 당연할 것이다. 이것은 잘잘못과는 무관한 일이다. 드러난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불편함이 <12>처럼 진정성을 추구하는 예능 프로그램과 상충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의 이런 정서적 불편함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12> 측은 말 그대로 전격적으로 정준영의 복귀를 선언하고 실제 방송도 찍었다. 이런 불편함을 호소했던 시청자들로서는 이런 방송의 일방통행적인 태도를 불쾌하게 느낄 수 있다. 예고편에 잠깐 등장한 반색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자칫 시청자들을 소외시킨 저들만의 반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준영의 복귀는 당사자나 <12> 양자에 모두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12>에서 정준영이 했던 캐릭터를 떠올려보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4차원 캐릭터로 거침없는 자유로움이 그가 가진 매력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물의를 일으킨 사건의 기억이 채 지워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의 행동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만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유롭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이런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부자연스러움은 정준영 본인의 캐릭터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기가 어렵다. 그런 점으로 보면 정준영이 굳이 <12> 복귀를 서두르기보다는 본업인 가수로서의 활동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이것은 또한 <12>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한 명의 멤버가 갖는 불편함이나 부자연스러움은 고스란히 다른 멤버들에게도 또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12>은 지금 현재 주말예능에서 경쟁자를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 위치에 서 있다. 시청률이 19.3%(닐슨 코리아)까지 오를 정도다. MBC <진짜사나이>가 빠지고 대신 들어선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SBS <런닝맨>은 이제 종영수순에 들어갔다. 그러니 <12일에 쏠리는 시선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독보적 행보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라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런닝맨> 후속으로 SBS가 새로운 예능을 준비하고 있고, MBC 역시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궤도에 올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르는 건 외적 요인 때문이 아니다. 내적인 문제들은 의외로 프로그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12>이 정준영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계속 이어오고 있었다는 건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 등장했던 멤버들의 그리움을 토로하는 장면들에서 이미 느껴졌던 사실이다. 관건은 그들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감정을 시청자들이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느냐는 점이 될 것이다. 이 점은 정준영의 <12> 복귀가 남긴 가장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왜 그토록 <너의 이름은>의 공감에 간절해졌을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에 대한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겨우 개봉한 지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애니메이션이고 그것도 우리 대중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런 흥행은 이례적인 느낌이다. 물론 대중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있어서 국가 간의 정서가 앞세워질 필요는 없을 것이지만.

 

사진출처: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이런 국가 간의 정서를 떼놓고 오로지 작품만으로 들여다보면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꿈을 통해 타인의 몸과 자신의 몸이 바뀐다는 판타지 설정은 사실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스위치> 같은 영화가 그런 소재를 다룬 바 있고, 우리에게도 <시크릿 가든>으로 익숙해진 소재가 아닌가.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해온 일련의 작품들이 가진 극도로 현실적이고 섬세한 감정들이 심지어 문학적으로까지 느껴지던 전작들을 염두에 놓고 보면 이런 판타지 설정은 조금은 과하게 다가온다. 몸과 몸이, 그것도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바뀌는 그 상황은 유머러스하게 전개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으로 보면 너무 복잡하고 장황하다.

 

물론 그런 변화는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만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 중 <언어의 정원>이나 <초속5센티미터>를 본 관객이라면 너무나 스펙터클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게다. <언어의 정원> 같은 작품이 놀라웠던 건 사실 그 안에 담겨진 스토리가 지나치게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거기 있는 인물들의 감정표현이 그 어떤 스펙터클보다 더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초속5센티미터>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는 같은 학교에서 지내던 두 아이가 어쩌다 서로 떨어져 멀리 전학을 가게 되고 서로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다 어느 눈 오는 날 그 먼 거리를 달려가 서로 만나는 이야기가 전부다. 하지만 그 단순한 이야기 속에 여자 아이를 만나러 가는 남자 아이의 감정은 마치 문학작품 속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깊게 요동친다. 이런 내적인 감정 표현들이 빛의 마술사라고도 불리고 배경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섬세한 붓놀림에 의해 완성된다. 그의 작품은 실로 인물이 내면을 직접 말하기보다는 그 인물이 서 있는 배경을 통해 말하는 것으로 놀라운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이런 점을 두고 보면 <너의 이름은>은 이런 내면의 이야기보다는 훨씬 행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이건 아마도 단편과 장편의 차이일 수 있지만 그래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문학적인 그림들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너의 이름은>이 우리네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그 나마 이 작품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추구하는 또 하나의 지점으로써, ‘타인에 대한 공감이라는 주제의식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의 몸이 바뀌어진 것을 알게 된 남녀가 서로의 입장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그 과정은 사실 이 애니메이션이 그리고 있는 스펙터클의 스토리보다 더 우리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이 서로에 대한 공감은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벌어지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사적인 차원을 넘어 공적인 차원으로까지 나아간다. 세월호 참사 같은 아픈 기억을 가진 우리에게 바로 이 부분은 특별히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그 마지막 장면의 간절함은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적인 사랑의 차원을 뛰어넘어 공적인 마음으로까지 간절하게 읊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우리 안의 말들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하다.

 

공감에 대한 간절한 마음. 아마도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에게 이만큼 큰 건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지워버리려 하고 또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지울 수 없고 기억 하겠다 다짐하게 되는 그 간절한 공감의 마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도호쿠 대지진을 겪으며 갖게 된 트라우마를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내려 했다고 한다. 그건 그가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지금껏 들여다봤던 바로 그 방식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들도 알고 있다. 바로 이 트라우마 역시 공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통해 겨우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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