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의 독한 혀와 정치인과의 거리두기

 

원래 표방하는 바가 독한 혀들의 전쟁이라면서요? 그런데 그 독한 혀라는 것이 나쁜 뜻에서의 독한 혀가 아니라 서로 토론을 통해서 실체적인 어떤 것에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독한 혀겠죠. 그렇게 계속 유지해나갔으면 좋겠어요. 다만 부탁드릴 것은 녹화를 월요일에 한다면서요? 그걸 하루나 이틀 정도 늦추면 제작진들이 굉장히 힘들다면서요? 도저히 못하나요? 대개 노력하다 보면 되거든요.”

 

'썰전(사진출처:JTBC)'

손석희 앵커는 200회를 맞은 JTBC <썰전>에 대해 한 마디를 요구하는 제작진에게 그렇게 바람을 전했다. 이 날 방송은 200회답게 수많은 정치인들의 축하 영상이 잇따랐다. 현재 대선주자 지지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문재인은 물론이고 정세균 국회의장, 유승민 의원, 노회찬 의원, 김성태 의원, 표창원 의원, 장제원 의원 등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역시 이 축하 영상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이 프로그램에서 유독 많은 얼굴을 보였던 손석희 앵커였다. 그가 던진 몇 마디 말 속에 그간 <썰전>이 해온 적지 않은 공적들과 또 앞으로 나가야할 길까지가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썰전>이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말 그대로 독한 혀의 의미는 시사 토크를 하되 좀 더 센 이야기, 즉 자극적인 면을 강조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이철희 소장은 좀 더 진지한 정치 토론의 자세를 유지하려 했지만, 강용석 변호사는 주로 정치인들의 뒷얘기, 가십쪽에 치중하는 면이 많았다. 물론 그것이 정치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깨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손석희 앵커가 말하는 독한 혀의 진짜 의미는 아니었을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독한 혀가 시작된 건 그래서 이철희, 강용석이 하차하고 새롭게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가 진용을 짜게 되면서다. 이때부터 <썰전>은 좀 더 본격적인 시사 정치 문제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썰기 시작했다. 물론 예능적인 재미의 틀들이 편집을 통해 가미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건 우리가 그간 썰어내지 않으면 잘 몰랐던 그 시사 정치 문제들의 실체를 그들의 독한 혀를 통해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손석희 앵커가 말한 진정한 의미의 독한 혀가 만들어낸 변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실체적 진실에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뉴스룸>도 이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그저 팩트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팩트에 담겨진 다양한 의미들을 상식적인 추론에 의해 짚어보고 있는 것처럼, <썰전>은 그 특유의 예능적 방식을 통해 팩트에 담긴 실체를 추적한다. 저들만의 용어처럼 여겨지던 정치 언어들을 유시민과 전원책은 우리들의 언어로 풀어준다.

 

결국 <썰전>을 통해 시청자들이 얻은 가장 큰 것은 그간 너무 복잡해보이고 때로는 저들만의 언어로 되어 있어 소외감을 주는 시사나 정치 이야기를 이제는 누구나 회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정치는 실제 그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들의 참여로서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썰전>의 영향은 실로 지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0회를 맞아 축하영상을 보내온 많은 정치인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썰전>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어찌 보면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썰전> 출연은 굉장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썰전>의 이런 위상을 계속 유지해가기 위해서는 저 손석희 앵커가 말했던 본질에 충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체에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독한 혀를 표방하고, 또한 정치인들과도 일정 부분의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썰전에 출연하실 의향은 없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손석희 앵커는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비판과 견제를 다하는 일. 손석희 앵커가 던진 몇 마디 말 속에는 <썰전>이 나갈 방향성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푸른바다>가 갖고 있는 흥미로운 심청전의 재해석

 

심하게 멍청해서 심청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간세상으로 나온 인어에게 허준재(이민호)는 그렇게 반 농담을 섞어 심청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사실 바다와 관련 있는 심청이란 고전소설의 인물이 인어의 이름으로 떡하니 붙여진다는 건 흥미로운 접근방식이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바다로 뛰어든 효녀. 하지만 용왕에 의해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인물. 인어란 가상의 존재가 결국은 그렇게 바다로 사라져버린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그리움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심청 역시 그 부활의 기저에는 비슷한 맥락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그저 코미디의 하나로 농담 반 진담 반 심청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니라는 게 명확해진 건 그녀가 사랑하는 허준재의 아버지 허일중(최정우)이 처한 위기가 하필이면 눈이 멀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희대의 악녀인 강서희(황신혜)가 바꿔치기한 약으로 인해 서서히 눈이 멀어간다. 허일중이 심봉사의 재해석이라면, 강서희는 뺑덕어멈의 재해석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은 그래서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담령과 얽힌 인어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심청전의 모티브들을 상당 부분 끌어와 재해석한다. 허일중과 그 가족이 처한 위기가 인어 심청(전지현)이 처한 위기보다 더 긴박하게 전개된다. 허일중과 허준재 그리고 모유란(나영희)의 단란했던 집안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건 강서희와 그의 아들 허치현(이지훈)이다. 강서희는 상습적으로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유산을 가로채는 꽃뱀에 가까운 인물. 친구였던 모유란과 그 아들까지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에 자신과 자신의 아들 허치현을 세웠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보여주는 건 그래서 허준재의 진짜 가족이 다시금 회복되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건 아들 행세를 하고 아내 행세를 하며 사실은 허일중이 가진 것들을 빼앗아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는 가짜 가족을 몰아내야 하는 일이다. 흥미로운 건 마대영(성동일)이라는 인물이 강서희, 허치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초반 이 연결고리는 의문스럽기 그지없었으나 차츰 그들이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닐까하는 심증이 점점 확증이 되어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대결구도를 보면 허일중-허준재-모유란이라는 진짜 가족과, 마대영-허치현-강서희라는 또 하나의 가족이 드러난다. 허준재의 가족이 사랑으로 얽혀있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욕망으로 얽혀있다. 허준재의 가족이 각각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면, 허치현의 가족은 그 연결고리들이 욕망으로만 이어져 있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심청전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가족 대 가족의 대결을 그리게 된 건 이 드라마가 메시지로 제시하고 있는 진정한 인연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생의 좋은 인연은 현생의 좋은 인연으로 또 이어진다. 하지만 전생의 악연은 현생에서도 또 다른 악연으로 반복된다. 좋은 인연과 악연을 가르는 건 그 관계가 무엇에 의해 형성되었는가에 의해서다. 단순한 구도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이 내세우는 그 두 개의 관계 축은 사랑과 욕망이다.

 

인어와 사랑의 관계를 맺은 허준재가 있는 반면, 인어를 물욕의 대상으로 관계를 맺은 마대영이 있다. 그리고 이런 구도는 역시 심청전에서 심청의 효와 공양미 삼백 석이라는 물질이 등가를 이루는 그 이야기 속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인어가 어떤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라면, 우리 식으로 그런 사랑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보여준 인물이 심청이 아닌가.

 

그래서 <푸른바다의 전설>은 서구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어유야담의 담령과 인어의 이야기로 재해석하고는 이제 심청의 이야기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과연 심청의 자기희생적인 도움으로(허준재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뭍으로 나온 그녀의 자기희생은 눈 먼 아비를 위해 바다로 뛰어든 심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허준재는 잃었던 자신의 가족을 회복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전설이 담고 있는 건 그 어떤 욕망보다 더 간절한 진짜 가족의 회복인 셈이다. 어쩌면 우리 시대에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어 더 간절해진.

<말하는대로>, 이들의 소소하지만 위대한 이야기들

 

어느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홍대의 한 카페에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그걸 듣고 느끼며 공감하는 시간. 이건 어쩌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눈 뜨면 늘 하는 것이 바로 그 말하고 듣는 일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이 그 말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는 건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각자 다른 사람들이지만 때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어떤 알 수 없는 위로나 위안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하는대로(사진출처:JTBC)'

JTBC <말하는대로>는 아주 소소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필요로 하는 건 마이크 하나면 충분하니까. 누군가 초대된 인물이 그 마이크를 들고 어떤 생각을 이야기하면 모여든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반응한다. 카메라는 그들을 담담히 담아내고 그 공감의 순간들을 기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 담담하고 소소한 프로그램은 바로 그렇기 때문인지 갈수록 더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이재명 시장은 이미 유력한 대권 주자로까지 거론되는 인물이지만, <말하는대로>에서는 그리 거창한 정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다만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우리 현실이 그것을 상식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담담히 전한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지만, 또 그 국민 중 가장 미래에 대한 꿈을 펼칠 이들이 바로 청춘들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는 그 청춘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좌절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가장 고통받고 있는 청춘들이 직접 나서서 세상을 바꿔보자고 제안한다.

 

샘 오취리는 방송에서 늘 보여주던 그 쾌활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의 화두는 우리’. 아프리카에서 온 이 청년은 물론 한국말이 여전히 유창하지는 않지만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에게 우리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을 받으며 겪은 그 아픔이 있었지만, 또한 그 아픔을 보듬어주는 우리가 있었다고 했다. 결국 한국을 아름다운 나라로 만드는 건 바로 이 우리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고.

 

김윤아는 소소한 행복과 성공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이른바 소행성토크를 보여줬다. 그녀는 자신 역시 어린 시절 많은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고, 바로 그런 결핍 때문에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창한 행복이 아닌 작은 행복들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고, 거기 앉아 있는 청중들로부터 그 소소하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하고 듣는 순간에 그들의 얼굴은 똑같이 행복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혹자는 <말하는대로>가 이번 국정농단 사태의 시국을 겪으면서 새삼 주목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는대로>에 나온 연사들이 시국 이야기만을 줄창 늘어놨던 건 아니다. 오히려 소소한 자신들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자리.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에 어느 순간부터 시청자들은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정치는 말에 의해 구현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지금 같은 시국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는 이른바 말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큰 목소리와 거창한 이야기들이 힘 있는 권력자들에게서 흘러나와 세상을 농단한 현실이어서인지 우리는 오히려 작고 소소하지만 진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더더욱 갈급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거짓이 난무하는 연설과 담화가 쏟아지는 지금, <말하는대로>는 그것과는 정반대의 진짜 말이 가진 가치를 드러내주고 있다.

'신년토론' 전원책 후폭풍 왜 생겨난 걸까

 

시청률 11.8%. 이 수치만 봐도 신년을 맞아 JTBC가 마련한 신년특집 대토론 2017년 한국 어디로 가나는 분명 성공적인 기획이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 토론 자리에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승민 개혁보수신당 의원을 앉힌 행보는 여러모로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 의미 있는 포석이었다고 보인다. 떠오르는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그들의 JTBC 토론 프로그램 출연은 다른 대선 주자들의 출연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신년특집 대토론(사진출처:JTBC)'

하지만 시청률면에서도 또 향후 대선 정국을 앞두고 내놓은 좋은 포석의 기획면에서도 괜찮다 여겨졌던 이 특집 프로그램은 또한 방송 이후 꽤 큰 후폭풍을 낳았다. 그것은 전원책 변호사의 막무가내식 토론 태도에서 빚어진 일이었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답답한 대중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사이다 예능으로 급부상한 <썰전>의 주역인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작가가 토론에 함께 참여한다는 소식은 그것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지만 어째 방송에서 보여주는 전원책 변호사의 모습은 <썰전>의 그것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거침없는 언변이야 <썰전> 그대로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대방의 말을 막거나 끊고 자기 할 말은 누가 뭐래도 끝까지 하는 모습은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진행을 맡은 손석희 앵커조차 전 변호사님!”을 여러 차례 외치다 듣지도 않는 모습에 실소를 터트렸고, 유시민 작가는 역시 여러 번 <썰전>을 통해 전 변호사의 그런 모습에 익숙하다는 듯 능숙하게 진짜 보수는 잘 안 듣는구나, 그런 오해를 유발하게 돼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신년토론에서 전 변호사가 한 이야기들은 그 내용만으로는 문제될 것이 별로 없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날카롭게 이른바 대선 후보들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질문들이 던져지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은 이런 내용들만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말에 담겨진 매너와 태도다. 시청자들은 전원책 변호사의 일방통행식 토론 태도를 보고는 비난을 쏟아냈다. 심지어 <썰전>의 시청자게시판에는 하차 요구가 빗발쳤다.

 

이렇게 된 건 물론 전원책 변호사가 이번 신년토론에서 무언가 다른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신년토론<썰전>이 방송 형식 자체가 다른데다, 생방송과 편집의 차이가 극명하게 다른 느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썰전>은 시사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형식 자체가 시사 프로그램은 아니다. 예능이라는 형식으로 시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다소 과한 표현들이나 유머들도 모두 수용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썰전>의 편집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이슈들이 쏟아져 나와 추가촬영이 계속 이어지자 전원책 변호사는 생방송을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때 김구라는 일언지하에 그건 불가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어느 정도 편집이 되어야 방송이 그나마 어떤 균형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김구라는 베테랑 방송인답게 알아차리고 있었을 것이다.

 

편집은 다소 부적절한 말들이나 너무 오래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모양새들을 잘라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막과 CG까지 사용해서 거기 앉아 있는 인물들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단두대같은 발언으로 전원책 변호사는 <썰전>에서 시청자들을 속 시원하게 해주었지만 그런 발언이 아무런 편집과정 없이 그냥 내보내지면 그 느낌은 사뭇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썰전>은 이렇게 예능이라는 틀과 편집이라는 마법을 부릴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신년토론은 그런 장치를 걷어내 버림으로써 그 민낯을 보여준 셈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전원책 변호사는 예전 MBC <100분토론>에 나왔을 때도 여전히 일방통행식의 토론 태도를 보였었다는 시청자들의 새삼스런 반응들이 나왔다.

 

신년토론은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썰전>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준 면이 있다.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예능적인 편집이 얼마나 토론자들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드러내줬다는 것이다(이러한 이미지 세탁 논란은 예전 강용석 변호사가 나왔을 때도 그런 지적들이 있었다). 항간에서는 그래도 전원책 변호사와 합을 맞춰가는 유시민 작가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더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신년토론의 후폭풍을 경험한 시청자들로서는 <썰전>이 다시 보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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