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잇값 못하는 그들에게 슬럼프란 없다

 

대상의 위엄 따윈 잊은 지 오래? KBS 연예대상을 받은 김종민이 <12>을 대하는 태도는 그 전과 후가 똑같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기분에 신나 들떠하는 그였고 스스로 바보스러움을 드러내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대상을 받았을 때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를 믿을 수 없다고 한 그의 말은 그러고 보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이었던 듯싶다. 그는 진짜 아이 같고 천진한 나잇값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1박2일(사진출처:KBS)'

신년을 맞아 첫 방송으로 KBS <12>이 이른바 나잇값특집을 마련한 건 그래서 매우 시의 적절했다고 보인다. 그것은 신년이 되면 늘 먼저 생각하는 한 살 더 먹은 나이에 대한 생각들을 아이템화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를 대하는 출연자들의 한결 같은 천진난만함을 통해 그런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이 아이템은 <12>이 그토록 긴 세월을 방송을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재미있는 이유가 바로 그 아이 같은 모습들 때문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심지어 대상까지 받았지만 그것도 아랑곳 않는 김종민의 모습이라니.

 

속초 영금정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한 살 더 먹은 새해의 풍광을 보여준 <12>은 곧바로 전문가를 통해 그들의 정신연령을 체크했다. 흥미로운 건 실제로는 가장 나이가 어린 동구가 정신연령이 가장 높았고 김종민이 가장 정신연령이 낮은 것로 나타났다는 것. 이러한 실제나이와 정신연령의 괴리는 정신연령대로 형 동생 서열을 정하면서 웃음의 포인트로 바뀌었다. 서열 놀이만큼 코미디의 본령이 없는 법. 이어진 서열대로 음식을 물려 먹는 물림상은 복불복의 또 다른 풍경을 가능하게 했다. 사실상 가장 서열이 낮은 김종민은 거의 먹을 게 없어 울상이 되었던 것.

 

하지만 이 나잇값 서열은 어찌 보면 <12>에서 누가 더 강력한 웃음을 주는가를 역순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대상의 위엄에 빛나는 김종민이 가장 큰 웃음을 주었고 그 다음으로 정신연령이 낮게 나온 데프콘이 그리고 김준호가 그 뒤를 이었다. 이 순서가 말해주는 건 <12>의 웃음이 여행이라는 일상을 벗어난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소 퇴행적일 수 있는 아이 같은 모습들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새해 첫 방송이고 바닷가에 갔으니 입수가 빠질 리 없다. 그런데 그 입수 복불복에도 여지없이 나이를 두고 벌어지는 게임이 한 몫을 차지했다. 나이가 적혀진 게임복을 입고 먹물로 칠하면 거기 적혀진 숫자만큼의 나이를 빼앗는 콘셉트의 그 게임에서도 단연 주목되는 인물은 역시 김종민과 데프콘 그리고 김준호였다. 특히 김종민과 데프콘이 경기와 상관없이 서로의 뺨을 마구 때리는 장면은 보는 이들을 폭소하게 만들었고, 동구의 머릿칼을 부여잡고도 결국 점수 계산을 통해 보니 입수자가 된 김준호의 황당해하는 모습 역시 큰 웃음을 주었다.

 

칼바람이 돋는 바닷가에서 살을 내놓고 벌어지는 복불복 게임에, 심지어 차디찬 바닷물에 입수까지 하는 그 모습이 유쾌한 웃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나잇값과는 상관없는 그들의 아이 같은 즐거운 모습이었다. 특히 김종민의 거의 진심이라 보이는 즐거운 모습은 그가 대상을 받은 인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여전함이 묻어났다.

 

KBS 연예대상은 한 때 대상의 저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상을 받았던 이들이 추락을 거듭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적어도 김종민의 경우에는 걱정할 일이 없을 듯 싶다. 결국 추락이란 높은 곳에 있을 때 생기는 일이다. 대상을 받든 안 받든 늘 밑바닥에 자신을 두고 기꺼이 웃음을 위해 신나게 한바탕 뒹구는 그의 모습에서 슬럼프는 있을 리가 없다.

 

이건 또한 <12>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그간 KBS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꼽아져 왔지만 늘 낮은 자리를 찾아가는 그 자세. 그것이 <12>을 지금껏 꾸준히 사랑받는 프로그램으로 만든 경쟁력이다. 나잇값?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새해가 와도 여전히 아이처럼 즐거울 수 있다면.

연말 시상식, 수상소감보다 뭉클했던 시국소감들

 

새해가 밝았다. 연말 시상식들도 모두 끝이 났다. 방송사들의 시상식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사의 한 해 성과들을 자축하고 그간 고생한 분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또 다음해를 기약하는 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 시상식 분위기가 과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드리워진 연말 시상식은 유독 시국소감들이 넘쳐났다.

 

'2016 SBS연기대상(사진출처:SBS)'

<무한도전>으로 <MBC 연예대상>을 수상한 유재석은 “<무한도전>을 통해 많은 걸 보고 배운다. 역사를 통해서, 나라가 힘들 때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소수의 몇몇 사람이 꽃길을 걷는 게 아니라 내년엔 대한민국이 꽃길로 바뀌어서 모든 국민들이 꽃길을 걷는 그런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소감은 최근 <무한도전>으로 했던 위대한 유산특집을 통해 역사를 다시금 들여다봤던 것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지금 현재에 전하는 울림이 적지 않았다. 결국 역사란 과거가 아닌 현재를 반추하는 거울이 아니던가. 그의 개념 소감은 그래서 대상 수상만큼이나 많은 박수를 받았다.

 

<MBC 연기대상>에서 <W>로 황금연기상을 받은 김의성은 마지막 MBC 드라마가 1997년인데, 20년 만에 다시 출연하게 된 것도 영광인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집과 직장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부당한 이유로 집을 떠나고 직장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 내년에는 그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미 SNS를 통해 수차례 현 시국에 대한 날선 발언들을 해왔던 김의성이었다. 또한 드라마 <W>에서 웹툰 작가 역할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주인공 못잖은 존재감을 드러냈던 그였다. 수상 소감에서도 자신보다는 현실에 상처 입은 대중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려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김의성을 올해 <MBC 연기대상>의 진짜 숨은 주역이라고까지 일컫게 된 건 연기와 개념 모두가 박수받을만 했기 때문이다.

 

<SBS연기대상>에서 5년 만에 대상을 수상한 한석규는 하얀 도화지, 검은 도화지의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문득 직업란에 제 직업을 쓸 때가 있는데 연기자라고 쓰곤 한다. 그때마다 제 직업이 연기자구나 하고 생각한다. 신인 시절, 하얀 도화지가 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자신의 색깔을 마음껏 펼치라는 의미에서다. 검은 도화지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낯선 표현이었지만 그것은 여러모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비참한 현실을 에둘로 꼬집는 이야기였다.

 

한 번 상상해보라. 밤하늘 같은 암흑이 없다면 별은 빛날 수 없을 것이다. 어둠과 빛은 한 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제 연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우는 문화종사자로서 엉뚱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 후, “이 다르다는 걸 불편함으로 받아들인다면 배려심으로 포용하고 어울릴 수 있겠지만, ‘위험하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사회, 국가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실로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시국 소감이었다. 그는 <낭만닥터 김사부>의 기획의도가 된 시인 고은의 글의 한 구절로 수상 소감을 마쳤다. “가치가 죽고, 아름다움이 천박해지지 않기를...”

 

한편 <KBS연기대상>에서 라미란과 베스트커플상을 받은 차인표는 유머 섞인 시국 소감을 내놔 화제가 되었다. “50년을 살며 느낀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어둠을 빛을 이길 수 없다. 둘째,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다. 셋째, 남편은 결코 부인을 이길 수 없다.” <월계수양복점 신사들>의 배삼도라는 유쾌한 인물이 바로 현실로 나온 듯한 느낌이라니.

 

연기는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연기자들 역시 그 현실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 현실이 대중들에게 주는 애환들을 그들은 연기로서 풀어내는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그 애환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연기자라면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상소감이 시국소감이 된 건 당연하다. 그들에게 박수를.

역사와 힙합의 콜라보, <무도>의 역대급 도전

 

역시 고수는 고수다. 이 어려운 시국에 이런 도전을 기획으로 내놓는다는 건 역시 <무한도전>이 아니면 그 누가 할 수 있을까. 역사와 힙합의 콜라보는 그 의미와 재미에 있어서 역대급이었다. 역사 교육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현재가 아닌가. 그러니 역사를 다시 배운다는 의미만으로도 이 도전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여기에 힙합이 일종의 교육적 도구로서 활용된 건 신의 한 수였다. 힙합 장르의 특성상 가사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 용이하고, 또 무엇보다 올바른 역사 교육과 인식이 상대적으로 더 요구되는 젊은 세대들을 자연스럽게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힙합이 또한 갖고 있는 저항정신은 역사를 통한 현실 인식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점이 주효했다.

 

개코와 광희 그리고 오혁이 피처링한 당신의 밤같은 곡은 윤동주 시인의 삶에 빗대 현재의 우리들을 되돌아보는 가사를 담고 있었다.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던 시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개코는 자신의 부끄러운 머뭇거림과 두려움을 털어놨다. ‘비판이나 비아냥이 싫어 머뭇거리던 입가 뒤돌아 걸어가는 시대 뒤에 고개 숙인 내가 밉다같은 가사나 오늘 밤은 어둡기에 당신이 쓴 시가 별이 돼. 광장 위를 비추는 빛이 돼.’ 같은 가사는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힙합을 통해 역사의 한 자락을 소환해와 현재를 이야기하는 가사들.

 

이는 또한 세종대왕의 삶을 통해 현재를 이야기한 지코와 정준하 그리고 넬의 김종완이 피처링한 지칠 때면이란 곡에서도 그대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시력을 포기하며 모두 눈 뜨게 했어. 난 글도 읽을 줄 알면서도 보지 못 했어. 눈앞에 놓인 현실을 말이야.” 같은 가사는 역사를 등한시해왔던 우리를 반성하게 했고, “명령보단 대화를, 회피 대신에 책임을... 통치가 아닌 보살핌을같은 가사들은 세종대왕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현재의 국정운영을 꼬집었다.

 

<무한도전>의 이번 위대한 유산특집이 역대급이라 여겨지는 대목은 그것이 예능적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안겨주면서도 동시에 역사 교육과 현실 인식 그리고 힙합이라는 장르까지도 끌어안은 종합 예술의 성격을 띠었다는 점 때문이다. 무대 하나하나는 그래서 숙연함을 느낄 만큼 진지함을 담고 있었지만 또한 힙합 특유의 흥이 넘쳐흘렀고 그러면서도 같은 시간 광화문 광장에 모여 있는 대중들의 간절한 마음까지 어루만지고 있었다.

 

어려운 시국을 맞아 예능 프로그램들은 저마다 날선 풍자들을 쏟아내 놓고 있다. <개그콘서트>가 그렇고 <SNL코리아>가 그러하며 또한 <웃찾사>가 그랬다. 하지만 여러 모로 <무한도전>이 이번 내놓은 위대한 유산만큼 이 시국을 정조준하면서도 예능적으로 완성도 높은 성취를 보여준 아이템이 있었을까.

 

2016년의 마지막 날, <무한도전>이 쏘아 올린 이 도전은 그래서 현 시국에 지친 많은 분들을 위로하고, 또 실망과 좌절을 느끼는 분들에게는 역사적 영웅들을 소환해옴으로써 다시금 자긍심을 불어넣어주는 계기가 되면서도 또한 현실에 대한 냉엄한 비판까지 담고 있었다. 역시 어려운 시국일수록 더욱 빛나는 고수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MBC연기대상>, 이종석 대상 당연히 받을 만 했지만

 

2016<MBC연기대상>의 대상은 이종석에게 돌아갔다. 누구나 공감하는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상 올해 MBC드라마에서 <W>만큼 독보적인 성과를 드러낸 작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웹툰과 현실을 뛰어넘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화제가 끊이지 않았던 데다, 성공적인 시청률까지 거뒀다는 점이 그렇다. 혹자는 <W>가 올해 그나마 MBC드라마의 유일한 명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MBC연기대상(사진출처:MBC)'

그래서인지 실제 <MBC연기대상> 전반에 있어서도 <W>의 존재감은 두드러졌다. 올해의 작가상으로 송재정 작가가 받았고, 베스트커플상으로 한효주, 이종석이, 황금연기상 미니시리즈 남자 부문에 김의성이, 최우수 남녀 연기상에 나란히 한효주, 이종석이 받았다. 게다가 올해의 드라마로 <W>가 선정됐고 대상까지 이종석이 받았으니.

 

그나마 자존심을 지킨 건 <쇼핑왕 루이>로 우수연기상을 받은 서인국과 <역도요정 김복주>로 역시 우수연기상을 받은 이성경, <가화만사성>으로 나란히 연속극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이상우, 김소연 그리고 <결혼계약>으로 특별기획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유이 정도다. <몬스터><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전체 시상에서 제외되었다. 전반적으로 <W>로 시작해서 <W>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결과였던 것.

 

물론 이런 시상은 맥락 있는결과였다고 보인다. 전반적으로 장편 드라마들을 많이 포진시켰던 MBC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작품성과 완성도에 집중하고 또 실험을 하는 작품들이 적었다. 시청률은 나왔을지 몰라도 시청자들의 화제성이 그리 높지 않았고 또 MBC드라마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던 건 그래서다. <W>에 이토록 이번 연기대상이 집중된 건 어쩌면 MBC드라마가 내부적으로도 어떤 변화를 생각하고 있는 반증이 아닐는지.

 

하지만 시상 방식에 있어서 이번 <MBC연기대상>은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한 미진함을 남겼다. 대상을 수상한 이종석이 무대에 올라 한 수상 소감이 어째 대상 수상소감 같은 느낌으로 남지 않았다. 그는 내가 남들처럼 멋들어진 소감을 잘 못한다. 감사드린다.”며 간략하게 수상소감을 끝내려 했고, 그러자 분위기가 이상하게 끝나는 걸 알아챈 MC 김국진이 더 할 말이 있지 않냐고 계속 말을 이어가려 했다. 이종석의 수상소감에 대해 성의가 없었다는 시청자들의 말들이 쏟아졌다. 물론 그것이 그의 성격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어쨌든 대상 수상을 너무 간단하게 처리해버려 마치 인기상같은 느낌을 준 건 사실이다.

 

최우수연기상으로 이미 상을 받은 이종석이 다시 대상으로 상을 받는 그 과정이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을 주기도 했고, 대상을 온전히 네티즌 투표로 뽑은 것도 이 상을 인기상처럼 느끼게 만든 이유가 됐다. 물론 이렇게 네티즌 투표를 내세운 이유는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항상 대상 수상에 대한 많은 구설수들이 나왔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아예 나오지 않게 직접 투표 방식을 썼던 것.

 

누구나 다 대상 감으로 지목했던 이종석이 상을 받은 것이지만 그 시상 방식이나 수상 소감 같은 그 시상의 과정들은 오점을 남겼다. 이종석이 대상을 탄 건 맥락 있는 일이었지만, 그 시상 과정은 시청자들을 맥 빠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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