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무색한 현실, 그들의 상식에 열광하는 까닭

 

보편 타당, 옳다고, 상식이라고 판단했던 내 생각이 그게 아니라고 판단되면 내 판단의 근거 모집단은 나랑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다수인 곳이었을 뿐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향한 조롱, 공격은 그들을 더 뭉치게 하고 무엇인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의 부정적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꾸준한 설득, 논리, 매너 그리고 힘들어도 열심히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95% 정도가 가진 생각은 상식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특별대담(사진출처:JTBC)'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윤종신의 글이 화제다. 이 글은 우리 시대가 접하고 있는 상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최근 우리가 처한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고, 또한 마침 있었던 미국 대선에서 모두의 상식을 뒤엎고 공화당 후보 도날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결과를 염두에 둔 듯한 글이다. 윤종신의 이 글에는 상식이 무너진 현실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는 노력과 그럼에도 꾸준히 설득논리’, ‘매너로 살아가겠다는 자기다짐이 들어있다.

 

윤종신이 올린 이 글이 화제가 되고, 많은 대중들의 공감대를 일으킨 건 아마도 지금의 시국에 대한 소회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에게 상식을 묻게 만들었다. 대단한 어떤 일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상식적인 것들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목도하게 됐기 때문이다. 강남의 한 아주머니에 의해 착복되고 농단된 국정운영은 그 많은 정책들에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상식은 무너졌다.

 

정치나 경제 사안들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국정이라는 것이 대단히 복잡하고 전문적인 소양들을 갖춘 이들만이 파악되는 어떤 것이란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그것이 일종의 은폐였다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JTBC <뉴스룸>에서 교차 편집해 보여준 최순실과 차은택 같은 인물들이 권력을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을 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이 했던 연설과 담화 내용을 보면 이런 점들은 확연히 드러난다. 창조경제문화융성이니 하는 미사여구를 동원해 마치 어마어마한 국가적 사안들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것은 허탈하게도 결국 특혜와 관련이 있었던 내용들이었다.

 

결국 바리바리 각종 좋은 문구들로 된 포장을 뜯어내고 나면 그 안에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뉴스룸>이 이런 포장들을 떼어내고 그 어마어마해 보이는 정치적 경제적 사안들을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로 풀어내 실제는 이런 것이었다고 밝혀주지 않았다면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은 은폐됐을 지도 모른다. 현재 <뉴스룸>에 쏟아지는 찬사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정치나 경제 사안처럼 거대담론으로 보이는 일들 역시 사실은 지극히 상식적인 선 안에 있는 것이고 결국 그 사안들을 위해 세금을 낸 국민들이 납득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간단하게 보여줬다는 것이다.

 

최근 <썰전>에 나와 총리를 하라면 하겠다. 대신 조건이 있다. 대통령이 총리에게 모든 실권을 넘겨주고 자신은 의전만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하면 총리를 하겠다. 모든 행정 각부의 임무를 총리에게 넘겨주겠다는 대통령 조건이 있으면 국민과 국가를 위해 14개월 정도 희생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유시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역시 그가 항상 상식에 근거해 갖가지 사안들을 풀어내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이야기하고, 물 타기 하듯 논지를 흐리고, 갖가지 전문용어를 동원해 실상을 가리는 논제들에 대해 그는 서민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 논리의 가장 기본적인 근거는 역시 상식이다. 그는 트럼프 당선으로 긴급하게 마련된 특별 대담 2016 미국의 선택 그리고 우리는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명쾌하게 이 사안을 정리했다. “세계1차대전 이후 미국이 100여 년 동안 지구촌의 자율방범대장을 했다. 트럼프의 당선은 이젠 집안일에 신경 쓰라는 미국 국민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의 대선 이후 치러질 정상들 간의 외교 회담에 대해서도 그는 자기 집안에서 왕따 당하는 리더를 어느 나라 정상이 제대로 대해주겠나.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 국민의 걱정과 근심의 근원지다. 책임 총리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 그다지 중요하다 여겨지지 않을 상식들이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한 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윤종신의 상식에 대한 고민, <뉴스룸>의 상식적인 추론을 통한 합당한 문제제기, 유시민의 복잡해 보이는 사안을 상식으로 풀어내는 명쾌함. 이들에게 쏟아지는 대중적 열광은 상식이 무색한 현실의 갑갑함을 에둘러 드러내주고 있다.

<낭만닥터>,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의 대결구도가 말하는 것

 

복수하려면 저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돈 없고 빽 없어 아버지의 죽음을 맞게 된 어린 강동주(윤찬영)에게 다가와 남긴 김사부(한석규)의 그 말 한 마디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결국 이 드라마는 한 편의 복수극이라는 것. 하지만 그 복수극이 여타의 복수극들과는 사뭇 다르리라는 것.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이 예감을 보다 확실하게 만드는 건 이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이라는 대결구도다. 어찌된 일인지 거대병원에서 예사롭지 않은 실력을 가진 외과의였던 김사부는 산 속에 위치해 환자들이 전혀 찾아올 것 같지 않은 돌담병원의 외과과장으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프로포즈를 받는 날 난 사고로 남자가 죽고 상심한 윤서정(서현진)이 등산을 하다 낙상해 손을 다친 채 이 병원에서 살아가고,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보려 무리하게 VIP 수술을 하다 사망한 환자 때문에 좌천하게 된 강동주(유연석)가 이 병원으로 온다. 결국 이 구도는 거대병원에서 어떤 사정들로 인해 밀려나게 된 인물들이 돌담병원을 통해 무언가를 이룬다는 이야기의 전제처럼 보인다.

 

거대병원과 돌담병원. 이 대결구도는 그래서 이 작품이 리얼리티를 추구한다기보다는 한 편의 우화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는 걸 잘 말해준다. 물론 김사부를 중심으로 어린 강동주와 청년이 된 강동주가 인연을 이어 돌담병원에서 다시 만나고, 또 산에서 낙상한 윤서정을 하필이면 김사부가 발견해 돌담병원에서 치료해주고 함께 지내게 되는 이야기에 개연성 부족을 지적하는 건 타당한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개연성보다는 이 구도가 가진 우화적 메시지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대결구도는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고 구축된 것일까. 이미 강동주가 겪음으로써 알게 된 것들이지만, 그는 현실이 실력보다는 스펙이나 집안 같은 관계에 의해 다른 대우를 받는 차별의 시대라는 걸 드러내는 인물이다. 제 아무리 수석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는 집안 좋은 친구에게 늘 밀리게 되는 현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런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도 성공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지 못했을 바에는 차라리 힘 좋은 VIP와 친분을 쌓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래서 무리하게 시도한 수술에서 그는 실패해 좌천하게 되지만.

 

거대병원이 권력과 성공을 지향하고 그 시스템은 실력이 아닌 스펙과 집안 같은 태생이 무엇이냐는 것에 의해 굴러간다면, 돌담병원은 그런 권력이나 성공 따위는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고 오로지 환자를 살린다는 목적이 중요하며 나아가 실력만이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곳이다. 그래서 김사부라는 캐릭터는 권력과 성공 같은 욕망이 아닌 의사의 본질적인 직업적 소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의사로 상징되는 인물이다. 그의 밑에서 진정한 의사의 길을 배워나가는 강동주와, 트라우마를 극복해내는 윤서정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중요한 스토리다.

 

돌담병원 같은 우화적인 공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역시 우화적인 인물들을 이 드라마가 굳이 구축해 보여주는 이유는 그것이 거대병원 같은 현실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다. 어딘지 성공지향적인 과거의 시스템에 머물러 있으며, 생명보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굴러가는 거대병원은 어쩌면 우리네 현실의 축소판 같은 뉘앙스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시스템을 벗어나 온전히 생명으로서의 인간에 집중하는 돌담병원의 휴머니티는 그 자체로 비판적 우화의 틀을 만들어낸다.

 

김사부에게 어떤 힐링과 위로를 기대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부조리하고 비뚤어진 욕망의 시대에 김사부가 전하는 휴머니즘이 만만찮은 의미를 던져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실력 있는 그들이 저 산골로 좌천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우화가 가진 웃픈 현실의 단면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복수하려면 저들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는 말은 단순한 복수를 뜻한다기보다는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복수라는 뜻이 아닐까.

<뉴스룸>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건

 

JTBC <뉴스룸>이 시청률 9%(닐슨 코리아)를 넘겼다. 요즘은 화제성 지수니 뭐니 해서 시청률의 의미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이지만, <뉴스룸>에 있어서 시청률은 중요하다. 어찌 보면 결국 지금의 최순실 게이트를 열어놓고 박근혜 정부의 갖가지 전횡이 낱낱이 국민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던 기반이 바로 이 시청률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청률에는 단순한 수치적 기록이 아니라 그간 억눌려왔던 민심들과, 숨겨져 온 허수아비 정부에 대한 울분과, 이런 문제적 사안들을 쉬쉬해온 이들에 대한 분노 같은 것들이 드리워져 있다.

 

'뉴스룸(사진출처:JTBC)'

최순실 게이트의 포문이 열린 연설문 유출 의혹제기부터 지금까지 달려온 <뉴스룸>의 행보를 보면 그래서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다. 엄청난 국가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뉴스를 쥐고는 있지만 거대 권력 앞에서 제대로 보도를 통해 사실을 알리는 작업은 쉽지만은 않았을 터, 그 행보는 조심스러우면서도 순차적으로 이어져 결국 지금의 드라마 같은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연설문 유출 의혹제기, 국가기밀 유출 증거 제시, 태블릿 PC가 최순실 소유라는 증거 제시, 이번 최순실 게이트가 이미 그녀의 부친인 최태민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술술 풀려나온 그녀의 수족처럼 움직였던 정관계 인사들과 그들의 압력으로 출연된 대기업의 자금들이 그녀의 측근에게 흘러들어간 정황들이 줄줄이 보도되었다. <뉴스룸>은 이미 최순실의 태블릿 PC를 통해 대부분의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이를 뉴스화하기보다는 순차적으로 정부의 대응에 맞춰 맞대응하는 형식으로 뉴스를 내보냈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사안처럼 보였던 연설문문제가 대응-맞대응을 거치면서 점점 거대한 사안으로 커질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국민들에게는 한 편의 영화 같은 극적인 효과를 만들었고, 그래서 더더욱 <뉴스룸> 앞으로 국민들의 시선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점차적으로 확대된 지지기반은 <뉴스룸>이 계속해서 더 구체적인 사안들을 보도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고, 여타의 다른 방송사 뉴스들도 이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뉴스룸>의 시청률은 그래서 다른 어떤 프로그램의 그것보다 중요했다.

 

<뉴스룸>이 몇몇 증거들을 갖고도 사안의 중대함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건, 이 뉴스가 갖고 있는 독특한 접근 방식 덕분이다. 그것은 상식에 기반 한 추론이다. 8일 보도된 우병우 전 수석, 최씨 의혹 모를 수 있나?’라는 아이템으로 채워진 팩트체크를 보면 <뉴스룸>이 가진 추론의 힘이 얼마나 큰 가를 잘 알 수 있다.

 

이 팩트체크에서는 검찰 앞에서도 웃을 수 있었던 우병우 때문에 흘러나오는 전직 민정수석이 요새 검찰총장보다 더 세다는 이야기를 화제로 던지며 추론의 포문을 열었다. 먼저 민정수석이라는 자리가 대통령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위치라는 걸 조직도를 통해 설명한 후, 그 업무 중에는 대통령 측근 감찰도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는 당연히 해야 할 그 일이 수행되지 않은 것에 대해, “우 수석이 이미 알고서도 묵인했으면 직무유기이고, 몰랐다면 청와대 민정수석도 사실상 허수아비였다고 추론한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결론이다.

 

그러면서 뉴스는 여기에 마치 드라마의 한 대사 같은 뉘앙스를 담은 이야기를 덧붙인다. 지난 9<신동아>에 우 전 수석이 했던 인터뷰 기사 내용 중 여러 사건을 접해 세상 보는 눈이 다를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우 전 수석이 저는 세상에 도() 통한 사람이라고 할까요..”라고 답했다는 것. 앵커는 그 말에 의문을 제기한다. “도통. 그러니까 어떤 일에 통달했다는 얘기입니다. 도통함이 왜 하필 최순실 사건에서는 통하지 않았을까요?”

 

또 당시 인터뷰에서 권력의 생리를 보여준 <펀치>라는 드라마를 언급하는 기자에게 우 전 수석이 답했던 검찰총장도 2년짜리 권력이라고. 그게 지 자리고 지 거냐? 국민이나 대통령이 거기 잠시 앉아 있어라이런 거지, 지 권력이냐고요?”라고 했던 말에 대해서도 앵커는 짧게 한 마디를 붙인다. “이런 걸 부메랑이라고 하죠?”

 

정보를 순차적으로 보도하면서 상식적인 추론을 통해 그 문제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친절하게 분석해주고, 때로는 촌철살인의 사이다 발언으로 속 시원함까지 안겨주는 뉴스라니. 이렇게 만들어진 국민적 관심을 서서히 지지기반으로 끌어 모으면서 중차대한 국가적 사안이 묻히지 않고 제대로 국민에게 알려질 수 있게 해준 <뉴스룸>의 드라마틱함은 그래서 한 편의 드라마 같다. 그런데 이 드라마 같은 <뉴스룸>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건 결코 드라마가 되어서는 안 되는 현실이 아닌가.

몇 회 분을 한 회로, <낭만닥터> 서현진의 감정연기

 

요즘처럼 드라마를 봐도 영 몰입이 안 되는 시기가 있었던가. 시국이 극도로 자극적인 한 편의 막장드라마니 웬만한 드라마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래도 새로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빠져들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서현진이라는 배우 덕분이 아니었을까. <또 오해영>에서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지만 이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는 믿고 보는 배우로 다가온다. 그것도 단 1회 만에.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우리에게는 <제빵왕 김탁구>로 잘 알려진 강은경 작가의 작품은 몰아치기의 속도감 넘치는 사건 전개가 특징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첫 회는 바로 그 힘을 제대로 보여줬다. 보통의 드라마였다면 한 몇 회 분량은 되었을 사건 전개가 단 한 회 속에 전개되었으니 말이다.

 

제 때 처치를 해주지 않아 응급실에서 죽어간 아버지 때문에 난장판을 벌이던 어린 강동주를 실력으로 상대하라는 말로 자극시키는 김사부(한석규). 그 강동주(유연석)는 어느새 자라 골통 인턴으로 병원에 들어와 선배들과 분란을 일으키고, 그 와중에 철근에 관통당한 채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를 가까스로 살려낸 윤서정(서현진)에게 빠져버린다. 보통의 의학드라마였다면 이런 만남과 응급실에서의 상황 하나만으로 충분히 한 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먼저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를 그녀가 무시했다는 보고에 선배의사는 윤서정을 질책하고 그런 그녀는 강동주에게 JS 환자들(진상환자)을 몰아주어 응급실의 현실을 알게 해준다. 사사건건 부딪치던 두 사람은 전문의가 자리를 비운 사이 들어온 응급환자를 힘을 모아 살리면서 가까워지고 급기야 강동주는 그녀에게 키스한 후 사랑을 고백한다. 첫 회에 만남부터 사랑고백까지 순식간에 이야기가 진행된 것.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건에 사건으로 계속 이어진다. 윤서정이 이미 만나고 있던 문선생(태인호)과 같이 차를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당하고 결국 죽게 된 문선생이 그 때 차 안에서 자신이 강동주의 고백을 듣고 설렜었다는 말을 한 때문이 아닌가 자책하게 된다. 그리고 자학하듯 산을 오르다 삐끗해 낙상을 하게 된 그녀 앞에 김사부가 나타난다.

 

어마어마한 속도감의 사건 진행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사건들이 그저 휙휙 지나가며 스토리 전개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인물들의 감정 선이 하나하나 녹아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 전체를 이끌어간 윤서정이라는 캐릭터의 감정 변화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변화한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살려냈을 때는 어떤 성취감과 압박감을 동시에 보여주고, 절차를 무시했다는 선배의사의 질책에는 억울함과 분노감을 드러내며, 강동주의 대시를 받을 때 당혹감과 설렘으로 이어지다가 문선생의 죽음 앞에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우리가 보통 막장드라마라고 얘기할 때 가장 불편함을 호소하게 되는 이유는 엄청난 속도감의 이야기 전개로 흘러가지만 정작 인물들의 감정이 이입되지 않아 마치 작가가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이리저리 휘둘리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인물은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은 불편함을 준다. 마치 작가에 의해 전횡되는 꼭두각시가 된 듯한 그런 느낌. 하지만 이런 속도 속에서도 <낭만닥터 김사부>가 그런 불편함을 주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 폭풍전개 안에 작가가 인물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연기로 몰입시켜 준 서현진이라는 배우의 공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제아무리 작가가 도처에 인물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해내 잡아넣었다고 해도, 그걸 연기자가 구현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 아닌가. 드라마 몰입이 도무지 안 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그래도 1시간 동안 <낭만닥터 김사부>에 빠져들 수 있었던 힘은 어느새 믿고 보는 배우로 돌아온 서현진 덕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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