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NS’, 이솜과 안재홍의 솔직 과감 19금 블랙코미디가 통한 까닭

LTNS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LTNS>는 시작부터 과감하다. 지금껏 티빙에서 이런 드라마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솔직 과감한 19금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전개된다. 그래서 수위 높은 장면들과 직설적인 성적 내용들을 담은 대화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불쾌하거나 음습하지 않고 유쾌하다 못해 발칙하다. 도대체 이런 톤 앤 매너는 어떻게 가능하게 된 걸까. 

 

<LTNS>는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Long Time No Sex’를 뜻하는 제목처럼 우진(이솜)과 사무엘(안재홍)은 섹스리스 부부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자극이 되지 않아 다양한 ‘노력’을 한다. 그런데 잘 들여다 보면 이들이 섹스리스가 된 이유가 특이하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져서도, 또 나이들어서도, 나아가 무슨 성적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현실에 쪼들려서다. 

 

“집이 이제는 애물단지가 돼가지고 이자를 맨날 100만원씩 내는데 여기서 일해봐야 그 돈을 갚기가 제가 너무 버겁고, 코로나는 제가 뭐 어떻게 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저는 그냥 열심히... 지금 너무 답답하고 어디다가 얘기해도 뭐 어떻게 되는 건지...” 결혼 후 7년이 지난 이들 부부는 TV 속 한 시민의 하소연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대출까지 무리하게 해서 집을 샀는데 집값은 뚝뚝 떨어지는데다 대출 금리는 치솟는 상황이다. 

 

우진은 김치 볶음 반찬 하나에 맨 밥을 먹고 있고, 사무엘은 아내의 옷에 떨어진 단추를 꿰매주고 있다. 그러면서 밖에서 커피를 사먹었다고 우진의 지청구를 듣는다. 택시운전을 하는 사무엘은 졸려서 사고가 날 것 같아 그랬다고 했지만 이들은 커피 한 잔도 밥 한 끼도 심지어 집에서 쓰는 물도 아껴 써야 할 정도로 쪼들려있다. 그 시민의 울먹이는 하소연을 보던 우진이 소화 안된다며 다른 거 보자고 돌린 채널에서는 웃음소리가 왁자하게 흘러나오지만 이들의 표정은 굳어있다. 뭘 해도 감흥조차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여유 없는 현실 속에서 이들은 위로하듯 각자 자위를 한다. 

 

즉 이들의 ‘LTNS’에는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이 끼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현실의 밑그림 위에 매 회 그려지는 불륜 커플들의 이야기에도 이러한 사회적 함의가 더해진다. 물론 그 방식은 블랙코미디다. 그래서 우진과 사무엘의 짠하디 짠한 ‘불륜 추적’과 이를 통해 불륜 커플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과정은 음습하기보다는 유쾌하면서도 페이소스가 담긴 웃음을 전해준다. 실제 현실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딘가 꽉 막힌 현실에 ‘섹스’와 ‘불륜’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던지는 일침 같은 통쾌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평범했던 이들 섹스리스 부부가 불륜 커플들을 추적해 그 증거를 찾아내고 그걸로 협박해 돈을 버는 일을 함께 하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 정수(이학주)의 바람 이야기를 사무엘이 듣고 아내 우진에게 이야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우진이 친분이 있는 정수의 아내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겠다고 말하자 정수가 찾아와 돈을 주겠다며 그걸로 해결하자고 제안하고 실제로 그게 이뤄지면서 ‘이렇게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다. 

 

여기서도 주목되는 건 정수가 바람을 피우면서 했던 사랑에 대한 얼토당토한 이야기다. “두 개까지는 사랑이지만 세 개부터는 사랑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즉 두 명을 만나는 건 불륜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하는 정수의 이야기는, 여유가 없어 섹스의 욕구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무엘과 우진의 처지를 두고보면 ‘부익부 빈익빈’의 감정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우진과 사무엘은 그런 불륜까지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이들에게 좀 뜯어내는게 뭐 어떠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예측불허 고자극 불륜 추적 활극’. 정수와의 첫 번째 불륜 에피소드에서 그려지듯이 드라마는 한 줄로 된 소개처럼 사건이 어떻게 튈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나간다. 매 회 벌어지는 불륜 에피소드들은 사내 불륜커플, 중년의 불륜커플, 동성커플 등등 그 소재도 자극적이고 다양한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또 예사롭지 않은 사회적 맥락들이 담겨있다. 이를 테면 두 번째 에피소드인 사내 불륜커플의 경우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20분 안에 차에서 먹으면서 섹스하는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그건 ‘연애 비용’이라는 부제처럼 연애에 있어서도 시간과 돈을 아끼게 된 현실 세태에 대한 블랙코미디적 시선이 더해져 있다. 

 

세 번째 에피소드인 중년 불륜 커플의 경우에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한 채 살아온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키스조차 해보지 못한 중년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그려내고,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의 동성 불륜 커플 이야기에는 사랑을 ‘나쁜 짓’으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에 대한 일침이 숨겨져 있다. 그저 19금의 수위 높은 자극이 아니라 이러한 깊이있는 접근이 있었기 때문에 ‘고자극 19 불륜’을 담은 드라마가 유쾌한 웃음을 빵빵 터트리게 만들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이런 유쾌한 지점들은 이솜과 안재홍이 이토록 과감한 수위의 작품을 선택하고 나아가 작정한 듯 과감한 연기에 도전한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특히 안재홍의 경우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스크걸>을 통해 ‘은퇴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변태적인 성적 이미지로 그려진 면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그가 본래 갖고 있었던 코믹하고 유쾌한 이미지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19금 드라마라고 해도 충분히 유쾌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가능하다는 걸 이 작품이 증명하고 있고, 안재홍 역시 거기에 화답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니. (사진:티빙)

웰컴투 삼달리

 

“내가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이곳. 나의 고향. 나의 사람들. 내 사람들을 들여다 보는 것. 그 안에 내가 있고 내가 살아가야할 길이 있다.” 종영한 드라마 JTBC ‘웰컴투 삼달리’ 마지막회에서 조삼달(신혜선)이 내레이션으로 하는 이 말은 마치 배우 신혜선의 다짐 같다. 그는 드라마 종영 후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이 “심신이 지쳐있던 나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고 했고, 결국 자신에게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준 작품”으로 남았다고 했다. 

 

실제로 ‘웰컴투 삼달리’는 스타 사진작가로 떠올랐지만 후배의 거짓 갑질 폭로로 하루 아침에 나락을 가버린 조삼달이 도망치듯 고향 제주도 삼달리로 와 상처를 회복하고 잃었던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제주 해녀들의 ‘숨피소리’는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이 담겼다. “해녀들을 교육할 때 가장 강조하는 말이 있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라고. 평온해 보이지만 위험천만한 바다 속에서 당신의 숨만큼만 버티라고. 그리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땐 시작했던 물 위로 올라와 숨을 고르라고.” 경쟁적이고 각박한 삶에 지친 도시인들에게는 울림을 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면서, 이 작품이 쉼 없이 달려온 배우 신혜선에게도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웰컴투 삼달리’에서 조삼달이 어려서부터 제주를 개천으로 생각하고 자신은 그 곳을 떠나 용이 되겠다는 큰 뜻을 가졌던 것처럼, 신혜선 역시 어려서부터 연기자의 꿈을 꿨다고 한다. 하지만 꿈을 꾸는 것과 이루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그의 데뷔작인 ‘학교 2013’을 보면 첫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데, 그가 이미 연기에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이런 재능을 갖고 있는 인물이 24살에 이르러 데뷔를 했다는 사실은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는 걸 말해준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늘 서류에서 떨어져 오디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고한 바 있다. 

 

하지만 ‘학교 2013’ 이후 ‘고교처세왕(2014)’을 통해 양희승, 조성희 작가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재능은 조금씩 피어올랐다. 이듬해 양희승 작가가 쓴 ‘오 나의 귀신님(2015)’에서 발레리나가 꿈이었지만 사고로 두다리를 잃고 장애인이 된 강은희 역할로 대중들에게 확고한 눈도장을 찍은 신혜선은 그 후로 ‘그녀는 예뻤다(2015)’, ‘아이가 다섯(2016)’, ‘푸른바다의 전설(2017)’을 거쳐 드디어 ‘비밀의 숲(2017)’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갖는 배우로 성장한다. 때론 절절한 눈물샘을 자극하는 인물에서부터 때론 코믹하고 때론 시원시원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물까지 다양한 역할들을 소화해낸 신혜선의 배우로서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들뜨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고교처세왕’에서의 인연으로 ‘그녀는 예뻤다’에서도 신혜선을 감독에게 추천한 조성희 작가는 그가 보여주는 ‘힘을 빼고 담백하게 하는 연기’가 너무 좋다고 말한 바 있다.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가 주는 신뢰감에, 때론 ‘또라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웃음을 주거나 혹은 카타르시스를 주기 위해 당돌하게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면모로 변신을 거듭하면서도 무엇 하나 겉도는 느낌일 주지 않는다는 것이 신혜선의 장점이다. ‘비밀의 숲’은 그래서 그에게 ‘영또(영은수+또라이)’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그건 극중 그가 연기한 영은수라는 인물의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캐릭터를 그가 찰떡 같인 소화해서 생긴 일이었다. 

 

‘비밀의 숲’을 연기한 이듬해에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2018)’의 주인공 서지안 역할을 연기함으로써 신혜선은 미니시리즈든 장편주말극이든, 장르물이든 가족드라마든 상관없이 넘나들 수 있는 전천후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단, 하나의 사랑(2019)’에서는 발레리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하루 평균 7시간 발레 연습을 하며 몸을 만들어냄으로써 연기력만이 아닌 노력파라는 걸 입증해냈다. ‘신혜선이 개연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영화 ‘결백(2020)’은 이 말이 허명이 아니라는 걸 입증한 작품이다.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엄마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나선 변호사 딸 역할을 연기한 신혜선은 냉정한 얼굴에서 차츰 엄마를 이해하게 되면서 감정이 폭발하는 그 변화를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또 드라마 <철인왕후(2021)>에서는 조선시대 왕후의 몸으로 영혼이 깃들게 된 현재의 허세남 역할로, 남성과 여성, 현대극과 사극, 정극과 코미디를 넘나드는 연기를 소화했고, 심지어 ‘이번 생도 잘 부탁해(2023)’에서는 전생을 기억하며 19회차 다양한 인생을 살아가는 판타지적 인물을 연기해내기도 했다. ‘결백’ 같은 작품이 말해주는 것처럼 영화에서도 신혜선은 주어진 역할에 따른 자유자재의 변신을 보여줬는데, ‘타겟(2023)’에서는 중고거래를 하다 살인자의 타겟이 되어버린 피해자 역할을 소화한 반면, ‘용감한 시민(2023)’에서는 평범한 기간제 교사로 살아왔지만 불의를 보고는 본색을 드러내는 복면 히어로의 시원시원한 액션을 선보였다. 이처럼 신혜선은 이제 개천을 벗어나 어떤 모습으로도 변신이 가능한 한 마리의 용으로 승천한 배우가 됐다. 

 

하지만 신혜선이라는 배우가 가진 진짜 저력은 용처럼 떠오른 배우이면서도 ‘들뜨지 않는 한 결 같은’ 모습에 있다. 그건 조성희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그의 연기가 가진 힘의 원천이기도 한데, 판타지로 가든 사극이든 남자의 영혼이 깃들든 천년의 전생 기억을 가지고 있든 차분하게 제 안으로 소화시켜내는 저력이 거기서 나온다. 이제 겨우 10년 차 배우로서 그 짧은 기간을 쉬지 않고 도전해온 결과 이제는 뭐라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역할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배우로 성장했지만 그럼에도 변함없는 차분한 자세는 그의 타고난 천성일까 아니면 노력의 소산일까.  

 

조삼달이 삼달리에서 작은 공간을 빌어 연 첫 사진전시회의 제목은 ‘人: 내 사람, 그리고 날씨’다. 본래 서울에서 스타사진작가로 성공해 열려 했지만 논란에 휘말려 무산됐던 전시회 제목이었던 ‘人: 내 사람’에 ‘날씨’가 더해졌다. 서울에서 하려던 전시에는 그간 자신을 스타로 만들었던 연예인 사진들로 채워질 것이었지만, 삼달리에서 한 전시에는 대신 제주도 삼달리 사람들로 채워졌다. 제 아무리 멀리 새로운 환경 속에 놓이더라도 제 본분을 늘 잊지 않고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준 사람들을 잊지 않는 자세. 현재의 신혜선을 만들어준 그 삶의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도 곱씹어볼만한 일이다.(글:국방일보, 사진:JTBC)

‘싱어게인3’가 발굴해낸 가수들, 이번 시즌은 레전드였다

싱어게인3

JTBC <싱어게인3>의 최종 우승은 홍이삭에게 돌아갔다.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소수빈은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젤은 톱3에 들어갔다. 톱3에 들진 못했지만 톱7, 아니 톱10까지 이번 <싱어게인3>는 순위를 매기기 어려울 정도의 매력적인 가수들이 가득했다. 4위를 차지한 신해솔, 5위 리진, 6위 강성희 7위 추승엽은 물론이고, 아깝게 톱7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호림, 임지수, 채보훈도 사실상 이번 시즌이 배출해낸 가수들이나 다름 없었다. 

 

사실 <싱어게인>은 ‘다시 부른다’는 그 특징에 걸맞게 실력자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충분한 실력을 가졌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무명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가수들에게 제공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특히 이번 시즌에 실력자들이 쏟아져 나온 건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위상과 인지도가 그만큼 분명했다는 말해주는 것이고, 코로나19가 지나간 후 무대가 더 간절해진 가수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싱어게인3>가 특히 좋았던 건, 출연자들의 개성이 저마다 겹치지 않고 선명하게 대중들에게 전해졌다는 점이다. 그것은 본래 가수들이 개성적이기도 했지만, 그걸 심사위원들과 제작자들이 하나의 캐릭터로 묶어내는데 있어서 성공적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듣기 불편한 목소리’라고 스스로도 말했지만 그걸 강한 개성과 매력으로 극복해내 ‘추진수와 이승엽을 합쳐놓은 듯한’ 한 방을 보여줬던 추승엽이 그렇고, 특유의 쓸쓸하지만 다정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외로웠던 나날들을 깨치고 나와 점점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응원을 받아 성장해온 리진이 그렇다. 

 

연습생으로 활동하며 무수한 오디션에 참여했지만 거절당하며 8년 간을 지하 연습실에서 보냈지만 <싱어게인3>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의 한계없는 가능성을 펼쳐보였던 이젤은 물론이고, 한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첫 등장부터 듣는 이들의 폐부를 찌르는 노래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만든 강성희도 마찬가지였다. 또 산골 캠핑장에서부터 매주 그 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노래부르며 꿈을 키워오다 <싱어게인3>에서 꾹꾹 눌러왔던 끼를 발산한 신해솔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여러 차례 라이벌로 지목되어 경합을 치르고, 마지막까지 최종우승 자리를 놓고 대결한 소수빈과 홍이삭의 서사는 <싱어게인3>의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이었다. 2위에 머물렀지만 소수빈은 처음 등장부터 자신을 설명했던 ‘쉬운 가수’라는 표현의 의미를 완전히 달리 들리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윤종신의 표현처럼 좋은 음색에 테크닉까지 갖춘 가수이고 김이나가 말했듯 여기에 감정까지도 잘 얹는 이 괴물 같은 발라더는 그러나 그 뒤에 엄청난 노력이 숨겨져 있다는 걸 매 무대마다 증명했다. 

 

‘본인을 쉬운 가수라고 소개하셨지만 듣는 사람에게 쉽게 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지...’라는 한 시청자의 평이 너무나 공감될 정도로 그는 한 음 한 음에 공을 들이는 무대를 선보였다. 그가 마지막 무대를 서면서 남긴 “저만 어려우면 되는 거니까”라는 말은 그래서 향후 소수빈이라는 가수의 시그니처처럼 각인될 것으로 보인다. 정성어린 무대가 주는 남다른 감동의 실체가 바로 거기서 나올 테니 말이다. 

 

최종우승을 차지한 홍이삭은 물론 마지막 무대에서 약간의 음이탈을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간 <싱어게인3>의 매 무대에서 보여줬던 그만의 색깔이 이미 막강한 팬덤을 만들어냈던 것으로 보인다. 무슨 노래를 해도 그의 색깔로 바뀌는 마법 같은 무대를 선사한 홍이삭은 낮게 읊조리듯 시작되던 노래가 어느 순간 광활한 벌판 위에서 외침으로 바뀌는 시원하면서도 감동적인 장면들로 이어지곤 했다. 

 

이번 <싱어게인3>에서 임재범 심사위원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만들었던 ‘참 잘했어요’라는 칭찬처럼, 이번 시즌은 참가자들도 또 제작진도 심사위원들도 모두 ‘참 잘한 오디션’으로 남았다.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싱어게인3>라는 프로그램의 막강한 영향력 속에서 이미 강력한 팬덤을 갖게 된 이 가수들의 향후 행보가 더더욱 기대되는 건 이들 모두가 잘 해낸 덕분이 아닐까 싶다. (사진:JTBC)

요즘 드라마들 사투리에 푹 빠진 이유

소년시대

“아오, 환장하겄네. 진짜..”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시대>에는 찰진 충청도 사투리가 드라마 전체의 정서를 만들어낸다. 온양에서 늘 맞고만 지내던 장병태(임시완)가 부여농고로 전학오면서, 전설의 싸움꾼 ‘아산 백호’로 오인받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는데, 마치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왕이라도 된 듯 어색하게 허세를 부리는 이 인물이 페이소스 가득한 웃음을 준다. 그런데 여기서 도드라지는 건 특유의 해학 가득한 충청도 사투리다. 학원 액션물로서 학교폭력이 일상이었던 1989년 어두운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드라마를 밝게 만들어주고 나아가 코미디의 웃음이 피어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충청도 사투리다. 두드려 맞으면서도 어딘가 여유가 느껴지고, 센 척 하면서도 허술함이 느껴지는 충청도 사투리의 맛이 드라마의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 때 정확한 언어 전달이 최우선이었던 시절에 사투리는 방송에서는 피해야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정확한 발음을 요구하는 아나운서 같은 직업에 사투리는 진입장벽이 되기도 했다. 물론 간간히 전원드라마에서 사투리가 등장하곤 했지만 그것도 너무 심해 알아듣기 어려운 수준의 사투리는 피하는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사투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드라마들이 늘고 있는 것. 최근 방영된 드라마만 해도 <소년시대>를 비롯해 <웰컴투 삼달리>, <모래에도 꽃이 핀다>, <무인도의 디바>가 모두 유창한 지역 사투리들로 채워졌다. 지역도 다채로워서 <소년시대>가 충청도 사투리를 썼다면, <웰컴투 삼달리>는 제주 사투리를,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경상도 사투리를 또 <무인도의 디바>는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최근 드라마들만 해도 강원도 빼고 거의 전 지역의 사투리가 TV를 통해 흘러나온 셈이다. 

 

그런데 지역 사투리는 그냥 쓰인 게 아니고 그 작품의 색깔과 어우러져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소년시대>의 충청도 사투리는 특유의 해학적 어감으로 최양락이나 김학래 같은 개그맨들이 개그 소재로 자주 사용했을 정도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만큼 코미디에 착착 붙는다는 뜻이다. <웰컴투 삼달리>의 제주 사투리는 해녀들의 풍진 삶을 대변하듯 지역 특유의 정감과 더불어 억센 삶과 비감이 뒤섞인 정서를 만들어낸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조삼달(신혜선)의 엄마가 해녀로 등장하고 그 세대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억센 제주 사투리와 잘 어우러진 이유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에 등장하는 경상도 사투리는 이미 <응답하라 1997>에서부터 쿨한 멜로의 정서를 잘 드러내는 사투리로 자리잡았다. 경상도 특유의 퉁명스러운 사투리의 어조는 이른바 ‘츤데레’라고 불리는 무심한 듯 다정한 사랑표현에 적합하게 활용되곤 했다. 또 <무인도의 디바>에 쓰인 전라도 사투리 역시 투박하지만 시골 정서를 가득 품은 서목하(박은빈)라는 캐릭터의 도시와는 다른 정감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이처럼 사투리를 써야만 하는 지역 기반의 드라마들이 많아지면서 이를 구사해야 하는 배우들의 자세도 달라졌다. 그저 흉내내는 정도가 아니라 드라마의 정서를 대변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사투리를 익히는데 공을 들인다. 박은빈은 그래서 캐스팅 이후 사투리 선생님과 함께 하며 말을 익혔다고 했고, 임시완은 부산 출신이지만 정서까지 담아내는 사투리를 준비해와 감독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주연배우인 장동윤은 대구 출신이고 상대역인 이주명 역시 부산 출신이라 아예 드라마와 맞춤인 경우도 적지 않다. 아예 해당 지역 출신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사투리가 이렇게 드라마에 많아지는 건, 역으로 보면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많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청춘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들이고, 이들 드라마에는 도시의 경쟁적인 삶에서 밀려나 지역으로 내려온 청춘들이 적지 않다. 소외되고 상처받은 청춘들에게 지역은 이제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때론 소진된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곳으로 그려지곤 한다. 물론 실제 현실에도 도시를 떠나 지역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생겨나곤 있지만 그게 하나의 흐름이라고 보긴 어렵다. 따라서 드라마가 그리는 건 현실 그 자체라기보다는 일종의 판타지로서의 지역이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어간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다양한 지역들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거기에 서울 중심의 표준어를 벗어나 지역 정감을 살리는 사투리가 전면에 배치되는 건 문화 다양성 차원에서만 봐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그만큼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고, 그것이 도시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반복하면서 드라마 자체의 다양성도 사라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역으로 가는 드라마들의 등장은 더 다채로운 이야기와 소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한 국가 안에서는 도시와 지역 간의 문제지만, 글로벌 콘텐츠 시장 안에서는 미국 할리우드 중심의 콘텐츠들과 변방으로 여겨진 아시아권이나 유럽, 남미의 콘텐츠들 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글로벌 OTT가 콘텐츠 소비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떠오르면서, 콘텐츠 시장 역시 영어권 중심만으로는 그 다양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K콘텐츠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담은 콘텐츠들이 생산되어 시장 안에 들어서게 됐다. 애플이 1천억원을 들여 제작한 <파친코> 같은 작품은 단적인 사례다. 재일한인들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애플이 투자한 드라마지만, 한국인의 문화와 더불어 경상도, 제주도 사투리는 물론이고 당대의 재일한인 특유의 어투까지 고증을 통해 재현해내는 노력을 선보였다. 이런 노력이 결국 한국 고유의 진한 정서를 가능하게 했고, 그것이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사투리는 이제 더 이상 변방의 언어가 아니다. 콘텐츠를 통해 그 다양한 목소리들이 되살아나고 있으니 말이다. (글:이데일리, 사진: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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