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마치 디카프리오 같았던 장근석의 하드캐리

 

살아있는 뱀을 맨입으로 뜯어먹고, 똥통에 빠지고 갯벌에 몸이 처박혀진 채 생게를 씹어 먹는다. 사실 이런 장근석은 낯설다. 지금껏 아시아 프린스라고 불리던 그가 아닌가. 곱상한 외모에 꽃미남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던 장근석이지만 이번 SBS 월화사극 <대박>에서는 아예 작정을 한 듯싶다. 마치 영화 <레버넌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보는 듯 했으니.

 


'대박(사진출처:SBS)'

<대박>은 갈수록 배우 장근석의 하드캐리가 되어가고 있다.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고 자신마저 손목과 발목이 꺾이고 칼을 맞은 채 벼랑 위에서 차가운 강물로 떨어진 대길(장근석)이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지만 그는 홍매(윤지혜)에 의해 염전에 팔려 인간 이하의 가혹한 노동과 착취 속에 내던져진다. 그 염전의 수장인 아귀(김뢰하)는 반항하는 대길에게 혹독한 매질과 벌을 일삼는다.

 

대길이라는 가련한 청춘이 수도 없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복수의 일념으로 원수인 이인좌(전광렬) 앞에 살아 돌아오는 과정은 처절하다. 하지만 그것이 처절하면 처절할수록 <대박>이라는 사극은 확실히 힘이 생겨난다. 그 힘은 대길이라는 청춘의 고통과 그 고통을 부여하는 이인좌라는 어른의 폭력이 마치 지금의 우리네 현실 같은 구도를 그려내면서다.

 

이것은 왕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왕좌를 꿈꾸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 연잉군(여진구)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야심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술과 여자만 밝히는 한량처럼 꾸며 살아간다. 숙종(최민수)은 연잉군에게 왕좌의 뜻이 있는가를 묻지만 그는 끝내 그걸 부정하며 속내를 숨긴다.

 

대길이라는 청춘이 어른들이 만들어내는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도박판 같은 밑바닥으로 내던져졌다면 연잉군은 어른들의 시선에서 자신의 속내를 숨기기 위해 스스로 도박판으로 들어온다. 청춘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세상을 배회하고 이인좌나 숙종 같은 어른들은 세상을 제 손에 넣고 제 맘대로 주무른다.

 

물론 이런 구도는 의도한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사극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현재의 시청자들과의 공감대를 맞춰가는 과정에서 청춘의 이야기는 현재의 현실과 우연히도 조우했을 수 있다. <대박>에서 엽전 한 냥이 전 재산인 대길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해서 내기를 거는 이야기들은 그래서 슬프다. 가진 것 없는 청춘들은 그렇게 제 몸뚱어리 하나를 걸고 살아간다.

 

아마도 지금의 청춘들은 저마다 대길 같은 하드캐리를 멍에처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길이 그러한 것처럼 포기하지 않는 삶만이 기회도 가질 수 있는 법이다. 그 험난한 고통 속을 헤쳐 나와 이인좌 앞에 팔모가지를 걸고 한 판 승부를 벌이는 그런 기회.

 

고구마 현실 때문인가. 사이다 드라마들이 넘쳐난다. 드라마라는 가상을 통해서나마 잠시 현실을 잊고 속 시원함을 느끼고픈 욕망이 거기에는 어른거린다. 하지만 사이다 드라마가 고구마 현실을 바꿔주진 않는다. 오히려 드라마가 얘기해주고 있듯이 현실은 포기하지 않을 때 변화의 조짐을 보일 수 있다. 선거에 즈음해 장근석이 투표가 대박이라는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이 특히 의미심장해 보이는 오늘이다.

송혜교, CF보다는 개념을 선택하다

 

새삼스럽게 연예인의 영향력이 느껴진다. 서경덕 교수가 개념 배우라 칭송한 송혜교 이야기다. 사실 연예인에게 CF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어떤 경우에는 CF를 몇 개 하는가가 그 연예인의 위상을 말해주기도 한다. 드라마 한 편이 잘 되면 주인공들에게 줄줄이 따라붙는 광고들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듯 받아 들여왔지 않은가.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하지만 송혜교 이야기에서 CF 개수와 위상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광고를 하는 것보다 때로는 광고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 배우의 개념을 드러내는 일이 되었다는 것. 일본의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제안한 거액의 CF 모델 제의를 단칼에 거절한 송혜교에게서는 그녀의 남다른 위상이 엿보인다.

 

송혜교의 개념 행보는 또한 CF라는 것이 얼마나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가를 에둘러 말해준 것이기도 하다. 연예인이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 CF는 그 자체로 대중들을 현혹시킬 수도 있다. 만일 미쓰비시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배우의 얼굴 뒤로 전범기업의 이미지는 숨겨졌을 것이다.

 

그러니 한 번 떴다고 이런 저런 광고에서 섭외 1순위로 오르는 걸 그저 무작정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광고를 하더라도 그 광고가 과장된 것은 없는지 또 나아가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지 우선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그 자리에 있는 연예인들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예의이기도 하다.

 

만일 그 최소한의 도리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이제 대중들도 그저 넘어가지 않는다. 작년 9월 일본의 대부업체 광고 출연 계약을 해서 엄청난 비판을 받고 결국은 출연을 취소했던 고소영의 사례나, 2014년 김수현과 함께 백두산을 중국 명칭인 창바이(長白)으로 표기한 중국의 생수 광고에 출연해 비난받은 사례를 생각해보라. 대중들은 연예인들이 그런 개념 없는 선택을 하는 것에 기대한 만큼의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정반대로 송혜교 같은 개념 행보는 그 자체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미쓰비시가 대표적인 전범기업이라는 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미쓰비시가 강제노역한 중국인들에게는 보상금을 지급했고, 미국과 영국 전쟁포로들에게는 사과를 했지만 우리에게는 보상은커녕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번 송혜교의 이야기를 통해 더 널리 알려지게 됐다.

 

송혜교는 과거에도 아파트 광고 재계약을 포기함으로써 개념을 드러냈던 바 있다. 아파트의 가격 거품을 만드는 것이 아파트 광고에 연예인들이 얼굴을 내미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광고 출연을 자제해달라는 경제실천시민연합의 편지를 받고 그녀는 광고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광고의 개수는 그 연예인의 위상과 무관하다. 오히려 개념 있게 할 수 있는 광고가 해서는 안되는 광고를 선택하는 모습. 그것이 그 연예인의 위상을 더 말해준다. CF보다는 개념을 선택한 송혜교에게 대중들이 박수를 치는 이유다

<SBS스페셜> 유령수술, 그들에게 사람은 생명 아닌 돈

 

유령수술. <SBS스페셜>이 보여준 이 끔찍한 수술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흐릿한 화면 속에서 전신마취가 되어 누워 있는 환자의 허벅지에 무언가를 마구 쑤셔 넣는 간호사. 지방흡입수술을 하는 장면이지만 응당 면허 있는 의사가 해야 할 그 일을 간호사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다. 마치 너무 익숙하다는 듯 손놀림에 주저함이 없는 그 간호사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몸에 손을 댔던 걸까.

 


'SBS스페셜(사진출처:SBS)'

유령수술이란 성형외과에서 벌어진다는 수술의 행태들이다. 본래 면담을 했던 의사가 수술실까지 들어와 마치 그가 수술을 할 것처럼 보이지만 갖가지 이유를 들어 쓸데없는 전신마취를 시켜놓고 다른 의사 심지어 의사 면허도 없는 간호조무사가 수술을 하는 놀라운 일들을 일컫는 말이다. <SBS스페셜>에 살짝 공개된 수술 장면은 마치 스릴러 영화 속에서 조폭들이 사람을 납치해 장기를 떼어내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물론 장기 매매와 유령수술이 같을 수는 없지만 돈벌이가 된다면 생명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몸에 마구 칼을 대고 깎아내고 잘라내는 행위는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워지고 싶어 성형외과를 찾은 이들은 이러한 유령수술 앞에 심각한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상담한 의사에게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했던 턱을 떡 하니 깎아 철심까지 박아놨다는 한 환자는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어 늘 자살을 생각한다고 했다.

 

간단한 쌍꺼풀 수술을 하기 위해 들어갔던 여고생은 의사가 수술을 하는 도중 다른 환자의 상담을 하러 나가는 사이 필요 없는 전신마취를 시켜버리는 바람에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버렸고 결국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치아교정을 하려다가 15분이면 끝난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수술을 한 한 환자는 심각한 후유증 때문에 하루도 진통제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병원을 찾아가 호소해도 억울하면 고소하라는 식의 병원측 이야기에 절망했다.

 

심지어 한 피해자는 의심스러워 녹음기를 갖고 수술방으로 들어갔는데 그 녹음된 내용을 들어보니 듣기도 민망할 정도의 성희롱, 성추행이 들어 있었다. 앞에서는 고객님이라고 불렀을지 모르지만 일단 수술대 위에 눕혀지는 순간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가격이 매겨지는 돈벌이의 대상 정도처럼 보였다.

 

물론 이건 모든 전국의 성형외과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성형외과협회에서 나온 의사들은 그 시술 장면을 보면서 그 끔찍함에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일벌백계를 얘기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몇몇 유령수술이 행해지는 병원들 때문에 많은 다른 성형외과 병원들 역시 똑같은 병원 취급을 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일까. 그들은 이러한 유령수술이 성공여부를 떠나 범죄행위라고 못 박았다.

 

이들이 이렇게 버젓이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유령수술을 하는 뒤에는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법적으로 대응하는 변호사들이 아예 팀으로 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에게 오히려 고소하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미 돈은 다 받았고 심각한 후유증에도 사죄는커녕 법을 방패막으로 내세워 피해자들이 고통을 혼자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이런 뻔뻔한 범죄행위들이 버젓이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건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SBS스페셜>이 보여준 유령수술의 실체는 끔찍한 공포영화 같았다. 그것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그 살벌한 시술 장면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런 일들이 돈벌이라면 아무렇게나 자행되고 있다는 그 인간실종의 현실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에게 사람은 생명이 아니라 그저 돈이었을 것이다. 가장 끔찍한 것이 바로 그런 생각이다

<욱씨남정기>의 갑질들, 현실적이라 더 슬프다

 

갑의 권력을 이용한 각종 갑질들. 그 갑질에 의해 몸도 마음도 상처 입는 을들. 하지만 갑질은 갑을관계에 놓인 회사들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같은 회사로 심지어 늘 을의 입장에 있는 회사 안에서도 갑질이 벌어진다. JTBC <욱씨남정기>가 보여준 계약직 여직원 장미리(황보라)에게 정규직 평가를 내리는 위치에 있다는 권력을 이용해 접대자리에 데리고 나가 술을 따르게 하고 심지어 성추행까지 하는 신팀장(안상우)의 이야기가 그렇다.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러블리코스메틱이라는 회사에 대외적으로 늘 갑질을 해온 황금화학의 김환규(손종학)상무가 있었다면 신팀장은 마치 러블리코스메틱의 리틀 김상무 같은 존재다. 밖에서 당하는 갑질은 그나마 안에서의 위로와 격려라도 받지만, 안에서 당하는 갑질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는 비참한 일이다. 신팀장이 장미리에게 성추행하는 모습을 보고도 불이익을 당할까봐 입을 열지 못하는 박현우(권현상)는 사내에서 벌어지는 갑질이 왜 더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잘 드러내준다.

 

물론 이렇게 대놓고 술자리로 불러내 겁탈을 시도하는 극단적인 사건들은 예외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눈에 띄는 사건이 아니라도 부지불식간에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접대나 성희롱의 사례들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일 게다. 많은 이들이 그런 피해를 당하면서도 더러워서 피한다는 식으로 넘기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남정기(윤상현)와 조동규(유재명) 사장이 소셜커머스 업체의 담당자에게 자신들의 배너를 좀 더 위쪽에 배치해달라고 청탁하며 벌이는 접대와 향응은 또 어떤가. 그것은 남성들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만일 그들이 여성들이라고 생각해보면 그건 엄청난 희롱과 폭력의 현장이라는 게 그 실체라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죽을 듯이 술을 마셔대고 갑을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그 익숙한 장면은 그래서 너무 현실적이라 슬프다.

 

러블리코스메틱의 옥다정(이요원) 본부장이 접대없이 영업을 하라는 이야기를 강조하게 된 건 스스로도 그토록 했었던 접대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걸 몸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남정기와 조동규가 접대하는 그 담당자는 같은 시간에 김상무와도 자리를 함께 하는 더블 접대를 받고 있음이 드러난다. 사실 이것도 극화된 내용일 수 있지만 이건 아마도 실제 현실일 게다. 경쟁사들의 경쟁적인 접대자리를 갑들은 이리저리 옮겨가며 받아왔을 테니.

 

<욱씨남정기>의 옥다정이 원리원칙을 추구하고 모든 갑을관계에서 관행처럼 벌어져온 갑질과 을의 행태들을 부정하는 캐릭터인 것은 거꾸로 우리네 부끄러운 현실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옥다정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이다로 느껴지는 건 그것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그런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는 고구마 현실 때문이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욱씨남정기>는 코미디지만 웃음 끝에 남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옥다정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속 시원한 한방을 선사하지만 그것이 지목하는 일들이 너무나 현실적이라 남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옥다정 같은 원리원칙이 상식이 되는 현실은 요원할까. <욱씨남정기>가 웃음 끝에 전하는 메시지의 무게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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