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의 비현실적 판타지, 그 어려운 걸 해낸 원동력은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내지 말입니다.” 사지에서 돌아온 유시진(송중기)의 대사처럼 KBS <태양의 후예>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많은 드라마적 난점들을 신기하게도 봉합시켜나가는 일들을 해냈다. 죽을 위기를 그토록 겪으면서도 죽지 않는 인물들이나, 우르크라는 가상의 분쟁지구에서 벌어졌던 전투상황과 재난, 사고, 전염병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과한 설정들. 종영한 후 찬찬히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가 가진 현실성이나 개연성이 상당히 부족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부족함들이 드러날 때마다 마치 마법처럼 그걸 덮어버리는 보이지 않는 힘들이 등장했다. 사지에서 1년 만에 포로로 있다 탈출해 나온 유시진(송중기)을 본 강모연(송혜교)말도 안돼라고 말하고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잠시 후 강모연이 유시진에게 토라지고 짐짓 헤어지겠다고 말하다가 다시 사랑한다고 껴안는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그럴 듯한 이야기처럼 봉합된다. 사실 그건 개연성 같은 합리적인 판단을 유예시켜버리는 두 사람의 강력한 판타지 멜로의 중독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건 연기자들이다. 그걸 어느 정도의 리얼리티를 담은 연기로 보여줄 것인가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일정한 현실성과는 거리를 둔 농담 같은 설정이 들어가 있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 선마저 농담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감정은 살리되 자칫 실소가 나올 수 있는 과도한 진지함은 오히려 살짝 덜어내야 시청자들과 모종의 합의(?)’를 이룰 수 있다. 드라마 주인공들도 원하고 시청자들도 원하는 해피엔딩. 그 강력한 판타지 앞에 드라마의 비현실성은 살짝 덮여버릴 수 있고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건 그 적절한 선을 유지하는 능숙한 연기라는 점이다.

 

사실 이렇게 보면 <태양의 후예>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낸가장 큰 원동력은 송중기, 송혜교, 진구, 김지원 같은 연기자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상남자의 면면에 특유의 여유 있는 농담을 툭툭 던지는 유시진 캐릭터는 사실 세상 어디에도 없는이상적인 남성상이지만 송중기가 있어 그걸 가능하게 했고, 때론 귀엽고 때론 사랑스러우며 한없는 상심에 눈물을 뚝뚝 흘릴 때는 보는 이들마저 마음이 아프게 해준 강모연이란 캐릭터 역시 송혜교가 있어 가능했다는 것이다.

 

또 무뚝뚝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서대영(진구) 상사나 사랑을 위해 온몸을 던지는 윤명주(김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만일 송중기나 송혜교, 진구나 김지원 같은 기꺼이 몰입하고 싶은 연기자들의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하는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 비현실적인 드라마는 그대로 무너져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이 드라마의 성공은 적당한 코미디적인 가벼움을 유지하면서도 순간 순간 진지해지는 상황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연기자들의 공이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수훈 갑은 역시 김은숙 작가다. 황당한 이야기 설정이나 급 전개가 가진 무리함에도 불구하고 역시 김은숙 작가는 놀라운 대사의 힘으로 이 많은 난점들을 돌파해냈다. 사지에서 돌아온 유시진과 강모연이 마지막회에서 보여주는 폭풍 멜로의 향연은 그것이 너무 달달해 모든 드라마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을 유예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머나먼 길을 돌아와 이제 남은 해피엔딩의 행복감을 충분히 느끼게 함으로써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어버렸다. 물론 그것이 김은숙 작가의 단점으로 지적되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멜로의 대가라는 그 지칭이 틀리지 않다는 걸 입증한 셈이다.

 

<태양의 후예>는 무려 38.8%(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아마도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많은 것들이 불가능한 일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가진 난점들도 또 지상파 드라마가 늘 고민하던 시청률과 화제성의 문제도 시청자들의 시선과 연기자를 포함한 제작진의 최선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

<태후>, 새드엔딩 싫지만 그래도 불사신 주인공이라니

 

불멸의 유시진’, ‘좀비 유시진’, ‘불사조 유시진’. KBS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송중기)을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유시진은 이제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되어가고 있다. 교전 중 총에 맞아 의식을 잃었고 원대복귀 하지 못했으며 사망 통지까지 날아온 그지만 1년 후 알바니아에 의료봉사를 간 강모연(송혜교) 앞에 그는 멀쩡히 살아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그렇게 돌아온 유시진에게 강모연이 말도 안돼라고 말하는 대목은 아마도 시청자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게다. 이미 죽은 줄 알고 깊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1년을 지낸 그녀가 아닌가. 그런 그녀 앞에 다시 돌아온 유시진은 그녀에게 그 어려운 걸 또 내가 해냈습니다라고 말하는 여유를 보였다.

 

사실 유시진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강모연에게 전해지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고 해도 그가 진짜로 죽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 모두 바라는 엔딩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금껏 수차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우르크에서 강모연이 납치되었을 때도 그녀를 구하다 총에 맞은 바 있고, 국내에서 벌어진 총격전에서도 총에 맞았던 전력이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툭툭 털고 돌아와 여전히 농담을 날렸다. 그러니 그가 전장에서 총에 맞아 쓰러져도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누구나 예상했을 것이다. 만일 살아 돌아오지 않고 끝난다면 그건 지금껏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유시진이라는 캐릭터의 일관성(?)에서도 벗어나는 일이다.

 

유시진이 이렇게 죽을 고비를 끝없이 겪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것이 이 달달한 멜로드라마에 긴장감을 유발하고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삼각, 사각의 멜로 구도를 쓰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멜로드라마에서 삼각, 사각 구도를 사용하는 이유는 긴장감을 만들기 위함이지만, 이 드라마는 대신 전쟁, 재난, 전염병 같은 것들이 사랑의 장애물로 활용된다. 따라서 유시진이나 강모연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긴장감은 높아진다.

 

특히 유시진이 불사조가 된 까닭은 그가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 때문이다. 강모연이 일하는 병원이라는 공간보다 유시진이 뛰어들어야 하는 전장이 훨씬 더 위험하다. 그러니 멜로의 장애로서 그가 끝없이 위험 속에 들어가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되자 문제가 생긴다. 삼각, 사각 멜로의 장애라고 해봐야 남녀의 마음이 돌아섰다 다시 돌아오는 정도로 그럴 듯한 이야기의 개연성이 만들어지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는 장애라면 계속 해서 살아 돌아온다는 것이 그럴 듯한 개연성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알바니아의 어느 풍광 좋은 곳에서 추모의 꽃다발을 내려놓는 강모연 앞에 갑자기 나타난 유시진의 몰골은 방금 어딘가에서 탈출해 돌아온 듯 초췌해 있었다. 아무리 극적인 상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라지만 바로 유시진이 강모연에게 달려온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물론 김은숙 작가는 <태양의 후예>판타지라고 못 박은 바 있다. 하지만 판타지도 어느 정도의 개연성은 갖춰져야 공감이 가지 않을까. 그 누구도 새드엔딩을 바라지 않지만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 되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자칫 지금껏 잘 달려온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방송이미지는 득표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냥 배우로만 살면 편한 걸 왜 저러시나? 그랬던 나를 어머니께서 말보다 행동으로 바꾸셨다. 어머니는 지난 4년간 그 예뻐하는 손주들을 한 달에 한 번 볼 정도로 열심히 일하셨다. 어머니의 진심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길게 말씀드렸다.” 배우 송일국은 4.13총선에서 송파 병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어머니 김을동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사진출처:KBS)'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삼둥이 아버지로서 송일국은 확실히 대중들에게 존재감이 있는 배우다. 최근에는 KBS 대하사극 <장영실>에도 출연해 주목받았다. 그런 그의 지지 발언은 어찌 보면 어머니 김을동 후보에게는 천군만마의 힘이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김을동 후보는 40.3%의 득표율을 기록해 44.3%를 득표한 남인순 더불어 민주당 후보에게 밀려났다.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지한다는 송일국의 메시지는 결과적으로 보면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삼둥이에 대한 대중들의 호감도는 높다. 하지만 그런 호감을 바탕으로 한 가족관계를 통한 지지 호소가 국민의 일꾼을 뽑는 선거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던 것도 사실이다. 선거는 보다 냉철하게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관계를 통해 지지를 얻을 수는 없다는 걸 이번 선거는 잘 보여줬다.

 

경남 김해시 을 새누리당 후보로 나왔던 이만기 역시 34.4%의 득표율을 얻어 62.4%의 압도적인 득표율을 얻은 더불어 민주당 김경수 후보에게 밀려났다. 이만기는 이번이 무려 4번째 정계 도전이었지만 또다시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졌을 지도 모른다. SBS <백년손님-자기야>를 통해 투덜대면서도 장모님의 머슴(?) 역할을 확실히 보여주며 좋은 이미지를 쌓았던 그였다. 하지만 역시 투표는 냉철했다. 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그의 방송 이미지와는 상관없이 유권자들은 소신대로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반면 가끔 방송에 출연했던 표창원 후보는 경기 용인시 정에서 51.4%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됐다. 그 역시 방송 이미지로 좋은 평판을 얻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그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그저 방송 이미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가 해온 행보들과 일치하는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꿈꾸는 정의로운 사회는 방송에서도 또 선거유세에서도 그가 줄곧 주장해온 이야기다.

 

사실 방송만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건 없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방송인들이 정치일선으로 나갈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방송 이미지와 실제가 항상 같지만은 않다는 걸 대중들도 간파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또한 정치와는 상관없이 방송으로 쌓여진 이미지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때 대중들이 그 방송인을 외면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번 선거는 이렇게 달라진 대중들의 시선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집밥 백선생>, 국진이도 한다 그러니 우리도

 

김국진은 방송 이미지는 귀여운 푸들 같은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상남자다. KBS <남자의 자격>을 할 때 여러 도전들 속에서도 의외로 서슴없는 모습들을 우리는 여러 번 발견한 바 있다. 최근 그가 출연해 강수지와 달달한 멜로 구도를 보여주고 있는 SBS <불타는 청춘>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가 강수지를 배려하는 모습에서는 숨길 수 없는 남자다운 모습이 드러나곤 한다.

 


'집밥 백선생2(사진출처:tvN)'

그런 그가 tvN <집밥 백선생>에서는 모든 게 낯선 쑥맥이다. 계란 프라이조차 직접 해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는 그다. 늘 어머니가 챙겨주는 밥상을 당연하게 받으며 지금껏 살아왔지만 이제 연로하신 어머니를 보면서 스스로 밥을 챙기고 나아가 어머니께 음식을 만들어드리고 싶다고 그는 말하기도 했다. 그건 그의 진심이다.

 

부엌 문턱도 넘지 않던 그가 스튜디오 자체가 하나의 부엌인 <집밥 백선생>에 있는 것 자체가 어색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첫 출연에 냉장고 문도 제대로 열지 못해 낑낑댔다. 그러니 요리라는 걸 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 그가 냉이를 소재로 했던 지난 회에 냉이 된장국을 끓여 얼떨결에 1등을 했다.

 

이번 주에는 냉동실에 들어 있는 삼겹살을 갖고 하는 요리에서 2등을 했다. 그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고추장 삼겹살을 만들겠다고 마음먹고는 고추장에 마늘을 넣어 해동한 삼겹살을 버무려 구워내는 단순한 방법으로 의외의 맛을 냈다. 그 맛에 자신도 놀라 김국진은 오랜만에 춤을 추기도 했다.

 

사실 이런 결과가 의외처럼 여겨지겠지만 어찌 보면 그것은 김국진이 더 오랫동안 여러 요리들을 먹어본 결과이기도 하다. 냉이 된장국을 그가 그럭저럭 잘 끓일 수 있었던 건 어머님이 해주시던 된장국에 멸치가 들어 있었다는 걸 맛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원한 멸치 향을 담아내자 냉이 된장국의 맛이 두드러질 수 있었던 것.

 

<집밥 백선생>에서 요리에는 문외한인 김국진이 이처럼 그럴 듯한 요리를 내놓은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는 솔깃한 이야기다. 그저 요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직접 해보는 것이 목적인 이 프로그램에서 그 진입장벽을 가장 낮춰주고 있는 인물이 김국진이기 때문이다. 그를 보고 있으면 나도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든다.

 

요리의 경험은 없어도 음식을 먹은 경험은 누구나 충분할 것이다. 특히 중년 남성이라면 김국진의 입장이 너무나 이해될 것이고, 그러면서도 어머니나 아내가 해주던 음식들이나, 맛집이라고 직장생활을 하며 다녔던 음식점의 음식 맛들이 어쩌면 요리에는 가장 큰 자산이 된다는 걸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예 애초부터 요리 쑥맥인 사람도 없다. 누구나 삼시세끼를 먹으며 그 맛을 기억함으로서 기본은 되어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시도해보는 것만으로 의외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김국진은 보여준다. 어쩌면 자신이 만든 음식 맛에 놀라 절로 춤을 추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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