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캠프>에서 <동상이몽>으로 달라진 토크쇼의 흐름

 

SBS <힐링캠프>가 결국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신작 <그래 그런거야>가 주말 시간대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 시간대에 있던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가 대신 월요일 밤 시간대로 편성될 것이 유력한 상황. SBS 측은 아직 결정된 건 없다는 입장이지만, <힐링캠프>는 밀려날 처지에 놓였고 <동상이몽>은 더 뜨거운 시간대로 옮겨갈 것이란 건 확실해 보인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사실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지만 이 변화는 작금의 토크쇼 트렌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힐링캠프>는 물론 김제동 체제로 바뀌면서 500인의 방청객이 MC 역할을 하는 대대적인 변화를 보여줬지만 생각만큼 효과를 드러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힐링캠프>라고 하면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건 과거 이경규, 성유리가 함께 했던 전형적인 연예인 토크쇼일 것이다.

 

연예인들을 게스트로 앉혀 놓고 MC들이 질문을 던져 그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게 만드는 <힐링캠프>는 당시에는 꽤 화제가 됐던 토크쇼였다. 1인 연예인 토크쇼 형식은 조금은 구시대적인 느낌을 줬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힐링트렌드를 끌어들여 상당히 트렌디하면서도 직설적인 어법으로 화제를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갈수록 시청자의 힐링이 아니라 게스트의 힐링처럼 보인 면이 추락의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김제동 체제로 바꿔 부랴부랴 변화를 준 것이 일반인들의 참여였다. 500인의 방청객이 그 날의 게스트에게 직접 질문하는 형식이 그것이다. 이렇게 일반인들의 참여를 시도했지만 이것 역시 결과적으로 보면 연예인 토크쇼라는 그 틀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드러냈다. 결국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연예인들이라는 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청자들 본인이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힐링캠프>가 힘겨워지고 결국 폐지 수순을 밟게 된 건 이러한 시청자들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보면 <힐링캠프>가 사라지는 마당에 <동상이몽>은 이 달라진 시대의 대안적인 토크쇼 형식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동상이몽>은 유재석, 김구라 같은 쟁쟁한 연예인 MC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 토크쇼의 주인공은 일반인들이다. 어떤 사연을 가진 일반인들이 출연하느냐에 따라 해당 프로그램의 성패가 갈리는 토크쇼. 연예인 MC와 패널들은 다만 일반인들의 이야기에 코멘트를 달거나 공감 혹은 비공감의 입장을 드러낼 뿐이다. <동상이몽>이 가진 이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소재는 이 프로그램이 빛을 발하는 가장 큰 이유다.

 

게다가 <동상이몽>은 스튜디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수다로만 일관하는 토크쇼와는 사뭇 다르다. 여기에는 최근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관찰카메라형식이 결합되어 있다. 일반인들의 사연은 이야기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관찰카메라로 가감 없이 찍혀져 부모의 입장과 자식의 입장이 나란히 보여 진다. 그러니 토크쇼가 가진 말과 스튜디오라는 한계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관찰카메라가 가진 실제 장면들과 현장이라는 생생함으로 대치되면서 극복된다.

 

<힐링캠프>의 시대가 가고 <동상이몽>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것은 한 때를 풍미했던 연예인 토크쇼 형식은 퇴조하고 일반인 토크쇼와 관찰카메라가 접목된 새로운 형식이 들어서고 있는 상황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이 달라진 트렌드 속에서 연예인들의 위치도 달라지고 있다. 그 전에는 중심에 섰던 연예인들이 이제는 일반인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대신 그 옆자리를 자처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번 더 해피엔딩>, 빠른 전개에도 감정몰입 괜찮은 까닭

 

거칠 것이 없다. MBC 수목드라마 <한번 더 해피엔딩>의 전개 속도는 그 어떤 로맨틱 코미디보다 빠르다. 첫 회에 만난 한미모(장나라)와 송수혁(정경호)은 낯 술 한 잔으로 결혼 직전까지 달려간다. 결혼서약서에 친구인 구해준(권율)까지 동석시켜 사인까지 한다. 물론 서약서는 다행히(?) 접수되지 않았지만 만남에서 결혼까지 조금씩 진행해가는(심지어 어떤 로맨틱 코미디는 이 과정이 전부인 경우도 많다) 드라마와는 너무 다른 빠른 전개다.

 


'한번 더 해피엔딩(사진출처:MBC)'

2회에서는 술이 깬 한미모와 송수혁이 모든 게 술 때문이었다며 전 날 벌어진 일들을 그냥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한 밤 중에 어지럼증을 느껴 응급실로 실려온 한미모가 송수혁의 친구인 구해준을 만나 첫 눈에 빠져버리는 이야기까지 흘러간다. 한미모는 구해준을 보고는 대놓고 재혼할 결심을 갖는다. 2회만에 결혼 직전까지 간 남자와 재혼 결심을 하게 만드는 남자, 그렇게 삼각관계가 일사천리로 이뤄진다.

 

<한번 더 해피엔딩>의 이런 빠른 전개와 속도감은 이 로맨틱 코미디가 다루고 있는 것이 한번 갔다 온(?) 재혼 커플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미 알 것 다 아는 남녀들이어서인지 숨기고 내숭 떨고 하는 것이 이 드라마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또 좋으면 뭐가 좋다는 식으로 직설적으로 드라마가 흘러간다. 그 호불호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심지어 성적인 면도 숨기지 않는다.

 

장나라라는 배우가 가진 로맨틱 코미디의 연장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른바 장나라표 로코는 귀엽고 솔직한 캐릭터로 여성들의 공감대가 크다. 그 솔직하게 망가지는 모습에 한껏 웃음을 주면서도 순간 짠해지는 공감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장나라는 원숙함을 덧붙였다. 이미 한 번 결혼하고 돌아와 재혼을 꿈꾸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거칠 것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간 지상파드라마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정경호는 JTBC <무정도시><순정에 반하다>에서 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한번 더 해피엔딩>에서 정경호는 훨씬 더 일상으로 내려온 듯한 편안한 얼굴이다. 의외로 웃음을 주는 과장 연기에도 능하고 동시에 아들을 가진 아빠로서의 진중한 연기도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이렇게 단 2회 만에 굉장히 많은 감정적 굴곡을 보여주는 빠른 전개의 드라마가 가능하려면 그것을 소화해내는 연기자가 그만큼 감정연기에 능수능란함을 갖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장나라는 물론 이런 역할에 베테랑이지만 정경호의 로맨틱 코미디 연기도 만만찮게 자연스럽다. 한껏 웃음을 주다가 갑자기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며 눈물을 터트리는 장나라나, 사별한 아내의 이야기 앞에 짐짓 아련해지는 정경호의 감정 연기는 빠른 전개 속에서도 드라마가 단단해보이게 만드는 이유다.

 

결혼만큼 이혼도 늘고 있는 현실이다. 당연히 결혼이나 재혼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밖에 업다. 남녀 사이의 때론 달달하고 아프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만큼 이 달라진 세태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그 중심을 잡아주는 장나라와 정경호의 연기력과 매력이 재혼이라는 소재와 잘 맞아 떨어지며 돋보이는 드라마다



<아는 형님>, <마리와 나>, 강호동에게 보이는 변화

 

강호동이 출연하는 JTBC <아는 형님>의 시청률은 낮다. 벌써 7회가 방영됐지만 1%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였다면 벌써부터 말들이 많이 나왔을 터였다. 강호동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가진 부담감은 그만큼 컸다. 시청률이 안 나와도 강호동의 문제였고, 프로그램의 재미가 떨어져도 강호동 문제였다.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강호동이 나와서 이 정도 했는데도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건 프로그램에 일찍부터 망작의 주홍글씨를 새겨 넣었다.

 


'아는 형님(사진출처:JTBC)'

하지만 <아는 형님>은 조금 반응이 다르다. 호불호는 분명 있지만 시청률이 안 나오는 게 적어도 강호동 탓이라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강호동 하면 떠오르는 시끄러운(?) 이미지는 분명 여전히 있지만 그 이미지는 이 프로그램 안에서도 옛날 개그맨으로 비하되고 비난받음으로써 오히려 웃음을 만들어내는 코드로 활용된다. 그가 중심에 서서 뭔가 프로그램을 끌고 갈라치면 그를 잡는 인물이 나타난다. 민경훈은 그런 점에서 수확이다. 이수근이 강호동이 툭하면 주먹을 들려는(?) 모습에 움찔하는 자세로 늘 상황극을 만들어내려 한다면 민경훈은 대놓고 아무 거리낌 없이 강호동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김영철은 끊임없이 일관되게 강호동에게 깐족대고 서장훈은 그 거구의 몸으로 강호동과 맞선다. 김희철은 심지어 강호동이 숨기고픈 과거까지 마구 끄집어내 폭로하면서 그를 곤란하게 만든다. 황치열은 강호동이 하는 행동에 100% 리액션을 보여주는 측근(?)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강호동을 추켜세우는 인물은 아니다. 확실한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어 오히려 강호동이 좋아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김세황은 이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오히려 병풍캐릭터화 했다. 이런 판이라면 강호동은 한결 마음이 편할 것이다. 조금 옛 이미지가 비춰져도 그걸 물고 뜯는 동료들이 있어 오히려 괜찮아질 테니 말이다.

 

강호동이 JTBC에서 하고 있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 <마리와 나> 역시 시청률은 아직까지 낮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역시 강호동에 대한 반응은 이전과는 다르다. <마리와 나>를 보다보면 강호동이 이렇게 조용한 인물이었나 싶은 느낌까지 갖게 된다. 물론 귀엽기 그지없는 작고 앙증맞은 강아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소리치고 할 필요가 전혀 없을 게다. 사실 혼잣말을 하는 것도 어색할 수 있다. 그래서 조금 쉬고 싶어 몸을 뉘일 때 마구 올라오는 강아지들이 강호동과 의외로 잘 어울린다. 마치 놀라기라도 할까봐 조용 조용 달래듯 강아지들과 교감하는 모습은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강호동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그 속에서 강호동이 예능의 포인트들을 놓치는 건 아니다. 만난 지 얼마 안되서 금방 친해진 강아지들이 강호동의 입에 뽀뽀를 해대자 아직까지는 안돼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서인국과 함께 고양이들을 돌보러 갔다가 고양이 세 마리에게 왕따를 당하는 그 기막힌 상황에 버럭 화를 내고 나오는 장면에서는 그의 공력이 느껴진다. 그는 어떤 포인트가 웃음을 만들어낼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강호동에게 웃음보다 더 중요한 건 정서적인 느낌이다. 물론 웃음을 많이 주는 것이 업이니 그 노력을 등한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웃음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느낌으로 주느냐가 지금의 강호동에게는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상파 바깥으로 나와 JTBC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들어온 강호동의 선택은 옳았다고 보인다. 아직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고민이겠지만 적어도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강호동의 새로운 면들이 보이기 시작한 건 사실이니 말이다



알 수 없는 분노와 <레버넌트>에 대한 기대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새 영화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심상찮다. 필자가 찾아간 극장에서는 외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자리가 없을 만큼 관객들로 가득 메워졌고 그 관객들은 상당히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개봉일 첫날 하루 동안 이 영화는 126599명을 동원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

 


사진출처: 영화 <레버넌트>

도대체 무엇이 이 이국적인 영화에 우리 관객들을 기대하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가장 큰 것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생존과 복수라는 두 가지 코드가 아니었을까 싶다. <레버넌트>는 서부개척시대 이전 그 혼돈의 미 대륙에서 펼쳐지는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사냥꾼의 놀랍고도 경이로운 생존기를 그리고 있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휴 글래스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한 겨울 눈보라가 몰아치는 그 곳에서 사냥을 하던 중 회색곰의 습격을 받아 온 몸이 찢겨진 채 동료들에게 버려지게 되는 것. 그 와중에 함께 사냥을 나갔던 아들 호크는 살해당하고 뒤에서는 인디언들의 추격을 받는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어려울 것 같은 그 만신창이의 그를 일으켜 세우는 건 다름 아닌 살해당한 아들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안해 보이는 그 상황에서는 그는 놀라운 생존력으로 조금씩 자신을 회복시켜나간다. 자연은 그에게 도전이지만 동시에 그에게 살 수 있는 무언가를 던져주고 때로는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세우기도 하는 신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동물의 내장을 생으로 뜯거나 뼈 속의 골수를 빼먹고 먹을 수 있는 풀들을 씹으며, 걷지 못하는 몸으로 기어서 다니다가 인디언을 만나 급류에 빠지고 얼어붙을 것 같은 몸을 모닥불에 녹여가며 심지어 절벽에서 떨어져도 버텨내는 그 극한의 생존기는 마치 베어 그릴스의 야생 버전을 보는 듯한 실감을 준다. 글래스를 쫓아다니며 거의 비슷한 눈높이에서 촬영된 영상들은 관객들의 몰입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꽃미남 따위는 잊어버리라고 선언하는 듯한 디카프리오의 미친 연기력은 그의 생존을 향한 절절함과 분노 같은 감정들까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나는 그런 끝없는 생존의 도전 속에서 글래스가 살아남는 그 과정들은 디카프리오의 온 몸을 던지는 연기로 생생하게 전해진다. 연기도 하나의 노동이라면 이 작품만한 노동 강도가 없을 정도로 힘겨운 연기들을 디카프리오는 진짜 글래스가 되어 보여준다.

 

최근의 대중문화 콘텐츠들을 보면 알 수 없는 분노같은 것들이 어른거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작년 1천만 관객을 동원한 <베테랑>이나,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850만 관객을 넘어선 <내부자들>이 그렇다. 드라마에서도 <리멤버-아들의 전쟁> 같은 드라마는 그 분노의 코드를 가져와 16% 이상의 시청률을 내고 있다. 이 분노의 정서는 <레버넌트>라는 영화가 우리네 관객을 매혹시키는 중요한 기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생존과 복수는 흔한 소재들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우리네 대중들의 마음을 가장 끌어당기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어려운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대중들은 저 글래스가 겪는 고통과 분노 그리고 그 죽음 같은 생존기에서 어떤 깊은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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