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7>, 팬의 관점과 일반 관객의 관점은 다르다

 

미국에서는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이하 스타워즈7)>의 놀라운 흥행기록이 연일 타전되어 들어오고 있다. 지난 월요일까지 <스타워즈7>은 무려 61,080달러(7,186억원)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한 매체에서는 <스타워즈7><아바타(278천만 달러)>의 기록을 넘어설 거라는 장밋빛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사진출처:영화<스타워즈>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흥행만 놓고 보면 <스타워즈7>은 그다지 폭발적인 반응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130만 관객 정도가 <스타워즈7>을 보았다. 200만 관객을 훌쩍 넘기고 순항하고 있는 <히말라야>와는 대조적인 분위기다. 흥행 성적이야 나라마다 정서가 다르니 그렇다 치고, 영화적으로 <스타워즈7>은 어떨까.

 

<스타워즈7>은 호불호가 분명히 나뉠 수밖에 없는 영화다. 만일 1977년 개봉된 <스타워즈 에피소드4>를 봤던 관객이고, 그래서 어느 정도의 팬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스타워즈7>은 보는 내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분명할 것이다. 글자들이 뒤로 죽 물러나며 음악과 함께 줄거리를 알려주며 시작하는 그 장면에서부터 <스타워즈>라는 세계에 들어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J.J. 에이브럼스 감독은 이번 <스타워즈7>에서 상당부분 <스타워즈 에피소드4>를 연상시키는 요소들을 많이 배치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적이 되어 광선검으로 싸우는 장면이나, 퍼스트 오더로 출격해 날아가는 비행선들이 적의 우주선들과 싸우는 장면 같은 <스타워즈> 팬들을 설레게 만드는 장면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게다가 한 솔로(해리슨 포드), 레아 공주(캐리 피셔)는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스타워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여기에 알투디투나 쓰리피오 같은 로봇 캐릭터들이 가세하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스타워즈7>은 이 추억들을 끄집어내 하나하나 재배치한 듯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별로 없다. 사라진 스카이 워커를 찾는다는 대명제가 있고 그 안에 과정들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

 

이렇게 되다보니 <스타워즈>의 팬이라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추억들이 보통 일반인들이라면 너무 심심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해진다. 도대체 왜 스카이 워커를 그토록 찾는지도 알 수 없고 우주선 몇 대가 편대를 이뤄 날아가 별 하나를 폭파시키는 그 <스타워즈> 팬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관습적인 장면이 영 이해가 가지 않게 된다. 너무 허술하게까지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스타워즈7>이 하려는 것은 이제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이 스토리의 중심에 설 수 없는 한 솔로나 레아 공주 그리고 루크로부터 레이(데이지 리들리), (존 보예가), (오스카 아이삭) 같은 새로운 인물들로 세대교체를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스타워즈> 팬이라면 향후 이어질 <스타워즈>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는 그 기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지만, 일반 관객이라면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할 것이 뻔하다.

 

<스타워즈7>에 대한 관객들의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뉘게 된 것은 바로 이 팬으로서의 입장과 일반 관객으로서의 입장이 너무나 다른 데서 비롯된 일이다. 결국 영화는 일반 관객들을 끌어모아야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 <스타워즈>가 하나의 국가적인 설화나 되는 것처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미국이라면 상황은 다를 수 있을 것이지만 우리에게 <스타워즈>는 하나의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콘텐츠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장영실>, 송일국으로서도 KBS로서도 중대한 도전인 이유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송일국과 삼둥이 부자다. 애초에 예능과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송일국이지만 삼둥이 앞에서 남다른 교육방식으로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해내면서 오히려 우려는 기대로 바뀌었다. 관찰카메라의 특성상 예능을 잘 모르는 편이 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삼둥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송일국에 대한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장영실(사진출처:KBS)'

그 송일국과 삼둥이가 이제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하차한다고 밝혔다. 여러 차례 하차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입장 번복이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하차 수순을 차근차근 밟아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장영실>이라는 사극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었으니 말이다. 드라마와 예능을 병행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노동 강도가 높은 사극이라면 더더욱.

 

이미 캐스팅이 되는 순간부터 어느 정도는 결정된 사안이라고도 볼 수 있다. KBS 입장에서는 <슈퍼맨이 돌아왔다><장영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라고 여겼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다. 잘못 하다가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송일국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포기하고 <장영실>을 선택했다. 개인적으로는 예능이 아닌 드라마를 선택한 것이고, 본인의 본업인 연기자로 돌아가겠다고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이 선택에서 송일국이 소기의 성과를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예능에서의 송일국이 아닌 연기자로서의 송일국으로서 그 가능성은 어떨까.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송일국은 <주몽>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 이후 거의 10년 가까이 연기자로서 그다지 주목할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로비스트>는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건 작품이었지만 별 성과가 없었고, <바람의 나라>도 사극이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는 심지어 그 막장스러움에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본인은 심각한데 보는 사람은 웃기는 드라마가 되었다.

 

이런 사정은 영화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그가 연쇄살인범으로 나왔던 영화 <타투>는 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송일국의 연기자로서의 성취는 사실상 약 10년 전 사극인 <해신><주몽>에 있을 뿐, 그 이후에는 주목할 만한 연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혹자들은 송일국이 작품을 보는 눈이 없다고들 말한다. 운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을 보는 눈도 연기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본다면 송일국의 연기자로서의 능력은 그다지 출중해 보인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나마 사극이 현대극보다는 훨씬 나았다는 점이 그가 <장영실>을 선택한 것에 어떤 일말의 기대를 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결국 <장영실>은 송일국에게는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장영실이라는 인물은 지금의 대중들에게도 분명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그의 이번 작품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다만 남은 건 그 인물을 얼마나 연기로 잘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건 송일국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KBS로서도 중요한 일이 된다. 만일 <장영실>을 통해 송일국이 어떤 성과를 만들어낸다면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KBS로서는 중요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하차가 좋은 선택으로서 평가받을 수 있겠지만, 만일 그렇지 못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게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응팔>이 만든 만만찮은 파장, 향후 드라마 판도는?

 

예능 드라마? 한 때 이 이상한 조어의 드라마는 드라마판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에게는 비하의 대상이었다. 드라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어찌 보면 너무 가볍게도 느껴지고 어찌 보면 만화 같기도 한 이 근본 없는(?) 드라마에 예능 드라마라는 어설픈 이름을 붙인 것에도 아마도 그 비하의 의미는 어느 정도 들어있었다고 여겨진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응답하라> 시리즈 이야기다. 처음 <응답하라1997>을 신원호 PD가 만든다고 했을 때 필자 역시 그건 드라마가 아니라 시트콤일 것이라 섣불리 예단했던 적이 있다. 예능 PD가 드라마를 한다는 걸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과거 <올드 미스 다이어리>를 했던 경력을 떠올리며 <응답하라1997> 역시 시트콤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이런 섣부른 예단은 첫 회가 방영된 후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그건 시트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존 드라마 문법을 따르는 드라마도 아니었다. 드라마와 예능 사이 애매모호한 경계를 밟고 있는 <응답하라1997>은 그러나 성공적이었다. 2012년에 <응답하라1997>이 방영된 후 3, <응답하라1988>은 이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가 결코 드라마 바깥에 놓여진 돌연변이가 아니라 어찌 보면 달라지고 있는 미디어 환경과 시청자들의 취향 때문에 점점 힘을 잃어가는 드라마들의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하게 만든다.

 

올해 드라마 판도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지상파의 고민과 비지상파의 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상파들은 기존 플랫폼 헤게모니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새롭게 적응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MBC는 기존 지상파 주 시청층의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했다. 그래서 익숙한 자극적인 코드들을 버무려 주말드라마 헤게모니를 만들었다. MBC 주말드라마는 그래서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가져갔지만 잃은 것도 만만찮다. 결코 미래지향적이라고 판단할 수 없는 그 선택이 MBC 드라마의 위상을 깎아먹은 것이다.

 

SBS는 이른바 복합장르라는 새로운 드라마의 틀을 만들어내며 이 변화하는 시청자들의 취향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기존 지상파의 헤게모니를 이어가려 노력했다. 현재 하고 있는 <리멤버 아들의 전쟁> 같은 복합장르의 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별에서 온 그대>, <너의 목소리가 들려>, <피노키오>, <냄새를 보는 소녀> 같은 SBS가 시도해온 일련의 복합장르의 실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KBS는 이런 변화를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본래 지상파 드라마 헤게모니의 핵심이랄 수 있었던 가족드라마, 일일드라마, 정통사극 안에 머물렀다. 그나마 올해의 성과라고 하면 <프로듀사> 같은 예능과 드라마의 접목을 통해 탄생한 작품 정도일 것이다. KBS 드라마의 부진은 이제 점점 사라져가는 지상파 플랫폼의 힘과 새로운 드라마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취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지상파 드라마들이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고민하며 이런 저런 선택을 하고 있을 때 비지상파 드라마들은 그 틈새를 통해 비상했다. JTBC는 작년 <밀회>를 통해 확고한 드라마의 강자임을 증명했지만 올해는 <송곳> 이외에 이렇다 할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변화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일이다. JTBC는 지상파와의 차별점으로 정통드라마를 주창해왔지만 올해는 <라스트><디데이> 같은 장르물의 실험을 시도했다. 물론 그 장르물이 성취를 갖지 못했지만 정통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려 노력한 점은 역력해보였다.

 

비지상파 드라마의 비상을 전면에서 이끈 건 다름 아닌 tvN이다. tvN<응답하라1997>의 성취에 이어 끊임없이 예능적인 성격을 가진 드라마들과 영화적인 드라마들을 공격적으로 포진해왔다. 작년 <미생>이 드라마 전체에 파장을 일으킨 것은 물론 그 원작이 가진 힘을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올해 <오 나의 귀신님>이나 <두 번째 스무 살>이 모두 7%대의 시청률을 낸 것은 tvN표 드라마의 지속적인 투자가 성과를 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점은 모두가 인정하듯 <응답하라1988>이다. 이 드라마는 마치 비지상파 드라마의 상징처럼 세워져 있고, 또한 지상파 본방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케이블과 종편이 새롭게 등장한데다 모바일이나 IPTV 시청이라는 새로운 시청패턴이 등장하고 있는 혼돈기에 이 드라마는 하나의 대안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자는 <응답하라1988>의 구성이 너무 허술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기존 드라마 문법 안에서 이 드라마를 판단하기 때문에 생기는 착시현상이다. <응답하라1988>은 예능의 좋은 유전자들을 가져와 드라마에 이식한 작품이다. 마치 예능이 그러하듯이 캐릭터가 선명하게 세워져 있고 매회 한 가지 주제의 이야기를 마치 한 편의 완결된 영화처럼 구성하고 있다. 이것은 시트콤적인 구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응답하라1988>은 시트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지함과 무게감을 갖고 있다.

 

이렇게 캐릭터를 선명하게 세우고 매회 끊어지는 에피소드로 구성하게 되면 드라마 전편을 굳이 다 보지 않아도 중간 중간에 들어와 충분히 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틀이 가능해진다. 마치 <12>을 몇 주 못 봤다고 해서 다음 회를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한 회 분량의 에피소드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개의 이야기들로 짧게 짧게 끊어질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이른바 한 회를 다 보지 않아도 이른바 짤방을 통해서도 충분히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응답하라1988>은 현재 16%(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다. 게다가 이만한 화제를 매일 같이 쏟아내는 드라마도 없다. 지상파도 내기 힘든 시청률과 화제성. <응답하라1988>은 현재 플랫폼 변화와 시청자들의 취향 변화 속에 혼돈에 빠진 드라마계의 새로운 대안이 아닐 수 없다. 한때 예능 드라마라고 비하했던 이들 드라마들은 이제 향후 드라마계의 새로운 판도를 예고하고 있다



<히말라야>가 주는 결코 작지 않은 위로와 위안

 

기다려... 우리가 꼭 데리러 갈게...” 영화 <히말라야>의 포스터에는 꽁꽁 얼어붙은 황정민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사진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황정민은 그 포스터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만 같은 얼굴이다. 그런데 그 얼굴은 슬픔이라기보다는 반가움이 서려있다. ‘우리가 꼭 데리러 간다는 문구와 이 슬픔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황정민의 얼굴은 명쾌하게 <히말라야>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드러내준다. 거기에는 눈물이 있고 감동이 있다. 그리고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깊은 공감까지.

 


사진출처 : 영화 <히말라야>

<히말라야><스타워즈> 같은 대작보다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은 건 당연한 일이다. <스타워즈>는 본래부터 우리네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킬러 콘텐츠였던 적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 된 건 여러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것이 일련의 흐름으로서 대중들이 꿸 수 있을 만큼 우리네 극장가에서 화제가 되지 못했고, 또 개봉시기도 들쭉날쭉 했기 때문이다. 이번 <스타워즈-깨어난 포스>는 사라진 스카이워커를 찾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네 관객에게는 스카이워커를 찾는 일이 그다지 절박하게 느껴지질 않는다.

 

반면 <히말라야>는 엄홍길 대장의 휴먼원정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절박감이 훨씬 피부로 와 닿는다. 그 절박감은 보통의 산악영화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정상에 오르느냐 아니냐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절박감은 정상에 오르는 일과는 상관없이 그 언저리에서 쓰러져 방치되어 버린 동료를 시신이나마 수습하려는 그 인간애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절박감은 지금 현재 우리네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우리네 현실에서 어떤 성취를 하고 정상에 오르는 일은 이제 어려운 정도를 떠나 심지어 포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하루가 죽을 것 같은데 정상을 쳐다볼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현실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위로 오르지 않으면 도태될 것만 같은 공포감으로 가득하다. 서로가 서로를 살벌한 경쟁자로 내모는 사회에서 함께 한다는 의미는 점점 퇴색해간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히말라야>가 심지어 산 위에서 내려오지 못한 고인이 된 그들을 찾아내 산 아래로 함께 내려가기 위해 심지어 목숨을 거는 모습에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도대체 이 삭막한 현실 어디에서 그런 동료애를 발휘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명예를 얻는 일도 아닌 단지 동료와(그것도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함께 산에서 내려오기 위해 목숨을 건다.

 

함께라는 단어는 아마도 지금의 대중들에게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단어가 아닐까. <응답하라1988>이 신드롬에 가까운 화제를 내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이 함께라는 단어가 그 안에서 큰 울림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쌍문동 골목의 이웃들이 마치 가족처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대중들이 느끼는 그 엄청난 감동은, <히말라야>에서 함께 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산악인들을 통해서도 똑같이 느껴진다.

 

대중들은 울고 싶었을 것이다. 서로를 보듬고 싶지만 서로를 경쟁자로 만드는 이 삭막한 현실에서 마음이 무거워졌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는 함께라는 뇌관이 눈물로 터져버렸을 것이다. <히말라야>가 주는 결코 작지 않은 위로와 위안 속에서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렸을 것이다. 포스터에 황정민이 하고 있는 그 얼굴, 슬픔과 반가움이 영화를 보는 내내 똑같이 교차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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