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혜, 신은경, 노홍철, 박명수, 그들의 사과 뭐가 달랐나

 

왜 어떤 사과는 받아들여지지만 어떤 사과는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연예계 논란은 연말이라고 해서 비껴가지 않는다. 연예계에 대한 투명함은 점점 더 요구되는 상황이고, 따라서 방송에서 잠깐 나온 영상이나, 어느 날 갑자기 들춰진 사생활은 여지없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다. 언제든 논란이 나오는 것이 연예인이라는 직업의 숙명이 된 상황이다.

 


'내방의 품격(사진출처:tvN)'

완벽할 수는 없다. 제 아무리 철저히 자기관리를 한다고 해도 한 번의 실수는 저지를 수 있다. 물론 논란은 가급적 나오지 않아야 마땅하겠지만 논란이 불거졌을 때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오히려 중요한 문제가 됐다. 그런데 논란에 사과를 하고 나와도 오히려 비난만 가중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선선히 넘어가는 이들도 있다. 도대체 무슨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의상표절이 논란이 벌어졌던 윤은혜의 사과는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사과가 정식으로 한 것이 아니라 모 행사장에서 그 사과의 주체나 대상이 생략된 채 툭 던져진 한 마디 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대중들은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논란이 벌어진 이후에도 윤은혜의 모습은 중국에서의 그것과 국내에서의 그것이 사뭇 다르다. 이 점 역시 그녀의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사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보다 신속해야하고 또 그 진심이 담겨야 한다는 점이다. 윤은혜는 그 시기를 놓쳤다. 국내에서 이미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이 점은 마치 중국시장에 대한 태도와 상반되게 국내 팬들을 무시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전 소속사와의 분쟁과 함께 전 시어머니가 한 인터뷰 내용이 기화가 되어 거짓 모성애논란에 휩싸인 신은경 역시 사과의 시점을 놓친 점과 그 진정성이 아직 대중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는 두 가지 점에서 사과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시점을 놓친 건 드라마 촬영 때문이라고 해도 여러 방송사 연예 프로그램을 통해 했던 사과와 해명에는 납득 갈만한 명쾌함이 없었다.

 

게다가 해외여행과 쇼핑의 과소비는 명확한 물증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신은경의 해명이 변명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이에 대한 문제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이 해외여행과 쇼핑 문제가 야기하고 있는 신뢰성의 추락은 이 문제까지도 믿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노홍철은 새롭게 정규편성된 tvN <내방의 품격> 제작발표회에 나와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그는 어떤 말로 사과를 드려도 제가 저지른 큰 잘못이 씻기지 않을 거라는 걸 느꼈다. 여러분께 드린 실망감을 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90도로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그는 기자들의 민감한 질문에도 피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답변하는 모습이었다. 대중들의 입장은 호의적인 편이다.

 

이것은 단지 사과의 방식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간 자숙의 기간을 통해 계속해서 보여줬던 진심어린 행동들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몇 차례 시민들이 찍은 사진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대중들과 소통을 하면서도 자숙 중인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물론 MBC 파일럿 프로그램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으로 공감을 얻지 못했지만 그는 제작발표회에서 여기에 대해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선선히 인정하기도 했다.

 

한편 <무한도전>에 등장한 가발업체가 사실은 동생이 하는 회사라는 게 밝혀져 논란에 휩싸인 박명수는 즉각적인 사과와 함께 그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한 이유를 해명했다. 급하게 장소를 구하는 과정에서 깊게 생각하지 못한 것이 논란을 일으킨 원인이라고 했으며 홍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며 재차 사과했다. 박명수의 경우는 사과의 내용보다는 그간 <무한도전>에서 해왔던 그 일련의 과정들이 그 사과의 진정성을 믿게 해준 것이라고 봐야 될 듯싶다.

 

이처럼 어찌 보면 똑같은 사과의 모습이지만 상황과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는 뭘까. 똑같으 사과라도 그 차이를 만드는 건 평상시의 행동이라는 점이다. 그가 어떤 행동과 과정을 보여 왔는가에 따라 사과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사과의 정석이란 어쩌면 말이 아니라 그간 쌓여진 행동들에 의해 판가름 나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사람의 평상시 모습이 바탕이 되어야 그 진정성도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대호>, 단순한 카타르시스가 아닌 성찰을 택한 까닭

 

영화 <대호>는 그 제목이나 포스터만으로도 압도적이다. 포스터 한 가득 얼굴을 채운 최민식에게서 느껴지는 카리스마는 영화 속 대호와 그 이미지가 절묘하게 겹쳐진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의 마지막 호랑이라는 문구는 그 압도감에 비장미까지 흐르게 만든다. <대호>라는 영화에서 어떤 강력한 액션과 스펙터클 그리고 포스와 맹수 사이에 오가는 긴장감을 기대하는 건 그래서 당연한 일일 게다.

 


사진출처:영화<대호>

하지만 생각만큼 <대호>는 관객들에게 쉽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일본군들이 마치 전쟁을 치르듯 대호 한 마리를 잡겠다고 산으로 진군하고 그들을 성난 호랑이가 궤멸시키는 장면은 잠깐의 카타르시스가 제공하지만 이야기의 서사는 그 시각적인 쾌감이나 액션의 장쾌함에 맞춰져 있지 않다. 대신 이야기는 인간과 자연의 대결과 공존이라는 진중한 문제의식을 담아낸다.

 

지리산 깊숙이 살고 있는 산군(山君)이라 불리는 대호를 최고의 전리품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본군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는 열을 올리고 지리산은 삽시간에 일본군들의 군화발로 짓밟힌다. 도포수 구경(정만식)은 그 대호를 잡는 데 앞장서지만 조선 최고의 명포수인 천만덕(최민식)은 자신의 오발로 아내가 죽게 된 후 사냥에 나서지 않고 약초를 캐며 근근이 살아간다. 이야기는 결국 이 천만덕이 대호 사냥이라는 사건 속에 어떻게 휘말려 들어가게 되는가를 다루고 있다.

 

즉 영화 속 지리산이라는 공간은 일제 치하의 우리 땅을 표상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파괴적인 자본과 인간에 의해 짓밟히는 자연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필요하면 올무라도 놓아 무조건 잡으려는 구경이라는 사냥꾼과, 사냥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선별적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 천만덕이라는 사냥꾼의 대결구도 역시 자본화된 세상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직업의식의 문제를 담아낸다.

 

대호와 천만덕은 그래서 동일시된다. 이 두 서로 다른 존재는 똑같이 사냥을 하지만 그것은 생존을 위한 것 그 이상이 아니다. 게다가 이들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 입장을 공감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법칙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치를 밀어버리고 들어오는 이들이 구경과 일본군들이다. 그들은 생존과 상관없이 욕망에 의해 상대를 포획하고 죽이려 한다. 조선을 침범하고 있는 일본군들처럼.

 

이러한 명쾌한 대결구도와 주제의식을 갖고 있지만 <대호>는 그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보다는 다양한 해석을 열어놓는다. 즉 일본군을 물리치는 조선 마지막 호랑이 같은 단순한 그림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영화는 통쾌함보다는 진지함이 더 많이 묻어나고 그 스러지는 생명들에 대한 처연함 감정들이 피어난다.

 

아마도 이 부분을 공감하는 이들이라면 <대호>는 꽤 먹먹함을 안겨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해 막연한 카타르시스만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적잖은 실망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성찰적인 시선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더 대중적인 면들을 부각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 마지막 호랑이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마지막 포수가 주는 공감은 충분하다고 여겨지지만.



<리멤버> 남궁민과 박성웅, 거악과 거악 잡는 소악

 

SBS 수목극 <리멤버-아들의 전쟁(이하 리멤버)>에서 극의 힘을 만들어주는 장본인은 남규만(남궁민)이다. 재벌 망나니 후계자로서 갑질금수저의 면면들을 보여주는 이 캐릭터는 시청자들을 공분하게 만든다. 사람을 죽이고도 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비아냥대는 사이코 패스 같은 모습이나, 술집에서 접시에 술을 따라놓고 개처럼 마시면 차키를 주겠다고 하는 장면에서는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갑질이 그렇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사진출처:SBS)'

남규만이라는 캐릭터는 여러모로 올 여름 영화 시장을 강타했던 <베테랑>의 조태오(유아인) 캐릭터를 연상시킨다. <베테랑>의 성공은 어쩌면 이 조태오라는 악역에 의해 가능했다고도 여겨진다.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악을 캐릭터화한 그 인물이 어떻게든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픈 욕망은 이 땅에 살아가는 서민들이라면 인지상정일 것이다. 남규만이란 조태오를 잇는 유사한 악역 캐릭터가 등장했다는 건 이제 이런 공분의 대상이 새로운 흥행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는 걸 말해준다.

 

그런가 하면 이 남규만이라는 자본의 힘을 거머쥔 악역을 잡는 인물로서 박동호(박성웅)라는 캐릭터 또한 특이하다 여겨진다. 그는 그저 악에 대항하는 선한 인물이 아니다. 변호사지만 조폭들과 손이 닿아 있고 사실상 그들을 변호한다는 점에서 조폭 변호사라는 지칭이 그리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등짝에 커다란 문신을 한 변호사라는 캐릭터 설정은 이 인물의 위치를 정확히 설명해준다.

 

박동호는 법을 꿰고 있는 변호사지만 그의 변호가 법이라는 정상적인 틀로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그는 오히려 변호인의 상대가 가진 약점을 잡아 협박을 하거나 심지어 불법적인 도촬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유능한 변호사란 법정에서 이기는 변호사가 아니라 의뢰인을 법정에 세우지 않는 변호사다. 이 캐릭터에 의하면 법은 판정만 내릴 뿐, 진실이나 정의라는 순수한 단어만으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박동호라는 캐릭터 역시 최근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영화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내부자들>의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가 그 캐릭터다. 안상구는 불법을 자행하는 나쁜 놈이지만 정재계와 언론, 법조계가 형성하고 있는 카르텔이라는 거악(巨惡)과 대적하게 되면서 긍정적인 캐릭터가 된다. 거악과 대항하는 소악(小惡)은 오히려 그 악에 대한 이해나 칼에는 칼로 대적하는 거친 면면들에 의해 환영받는다.

 

박동호는 법의 세계도 알고 있지만 동시에 범법의 세계도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 남규만처럼 보통의 평범한 서민들이 대적하기에는 버거운 악인과의 대적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거악과 거악 잡는 소악 캐릭터가 하나의 흥행 캐릭터로 자리한 이유는 뭘까. 거기에는 안타깝게도 순진한 선의만으로는 이제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대중들의 법 집행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리멤버>를 보다보면 이 거악과 싸워 나가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모두 범상치 않은 능력을 갖고 있다는 데 놀라게 된다. 서진우(유승호)는 뭐든 한 번 보기만 하면 사진처럼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는 절대 기억의 능력자이고, 박동호는 앞에서 말했듯 법도 알고 범법의 생리도 아는 승률 100%의 변호사다. 이런 능력자들이 등장한다는 건 그들이 대적할 남규만 같은 상대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거악과 거악 잡는 소악. 남규만과 박동호 같은 캐릭터는 우리네 현실이 가진 정의의 문제를 다루는 콘텐츠에서 점점 하나의 흥행 캐릭터로 자리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로는 이들 캐릭터들이 깊은 몰입과 잠시간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평범한 변호사들이 법대로만 해도 불의가 척결되는 그런 현실은 우리에게 너무나 먼 일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이들 새로운 흥행 캐릭터에 씁쓸함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히말라야>, 인간은 어째서 인간인가

 

<히말라야>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없는 영화다. 물론 중간에 극적인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 극화된 부분이 있지만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엄홍길 대장의 휴먼원정대를 소재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의 한계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실제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영화가 그려내는 극적인 이야기의 감동을 지워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영화는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 실제라는 것에 더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면이 있다.

 


사진출처:영화<히말라야>

산에 왜 오르는가라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답한 에베레스트 첫 등반자인 영국의 조지 리 맬러리의 유명한 말은 이 영화 속 인물들에게도 농담처럼 회자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산에 왜 오르는가에 대한 질문보다는 왜 함께 내려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엄홍길 대장이 실제로 했던 휴먼원정대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거기서 내려오지 못하고 누워있는 우리네 동료들과 함께 무사히 내려오는 것이 목적이다.

 

이 영화 속에서 정복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엄홍길(황정민) 대장이 극도로 싫어하는 표현이다. 마치 명언을 하는 자신을 과시하듯 농담처럼 표현하지만 그에게 등산은 실제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시 내준다면 머물다 내려오는 것뿐이다. 아마도 엄홍길 대장이 세계 최초 히말라야 8000미터급 16좌 완등이라는 기록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 아닐까.

 

그럼 내려와야지 거기서 살 순 없는 일 아닙니꺼.” 엄홍길 대장과 함께 4번이나 정상에 올랐던 동료 박무택(정우)은 농담처럼 그런 말을 남겼지만 결국 8000미터 고지에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버린다. 그를 구하기 위해 눈보라를 뚫고 올랐던 동료 박정복(김인권) 역시 돌아오지 못한다. 아마도 엄홍길 대장의 마음속에는 그 8000미터 고지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을 것이다. 그 곳에 누워 있을 동료들이 못내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

 

정상의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건 휴먼원정대의 이야기가 건드리고 있는 건 동료애다. 16좌 등정 같은 대기록이 도전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다룬다면, 휴먼원정대는 함께 하는 인간의 위대함을 다루고 있다. 그것이 어떤 생존이거나 혹은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온전히 인간이 왜 인간인가에 대한 자기 증명 같은 일이 된다.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이것이 특히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팍팍함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점점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잠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고 어찌 보면 동료들이라는 걸 깜박 잊고 있었다는 것. 엄홍길 대장과 대원들이 8000미터 고지에 누워 있는 동료를 끝내 찾아내고 온몸에 부상을 입어가면서까지 함께 산에서 내려오려고 하는 그 몸부림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한 라디오 MC는 엄홍길 대장에게 산에 대해 묻는다. 엄홍길 대장은 대단한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건 없다고 말한다. 대신 단 한 가지 보이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극한의 상황에 서 있으면 현실에서는 여러 가면을 쓰고 있어 몰랐던 진짜 자기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고. 엄홍길 대장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기보다는 함께 하는 이들을 끝까지 챙길 수 있을까.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다 할 수 있을까.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의 정상에서 했던 질문은 어쩌면 요즘처럼 혹독한 현실 앞에 서 있는 관객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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