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 국가의 자격 위정자의 자격

 

배신은 장군이 하셨소. 자식새끼 살리겠다고 가짜 왜구질까지 한 이 놈을 살리시면서 장군께서 뭐라 하셨소. 내 자식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자식들 식구들 모두 살리며 속죄하라고 가별초에 남기셨소. 근데 이게 뭡니까. 여기 5만 명의 남의 집 자식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겐 10만 명의 어머니 아버지가 있습니다. 이 전쟁 계속 하면 10만 부모에게서 5만 명의 자식을 빼앗고 그 피눈물을 어찌하시려고 이러십니까.”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SBS 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요동정벌이라는 무리한 전쟁에 차출되었으나 불어난 압록강을 건너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병사들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이성계(천호진)에게 과거 배신의 경험을 가졌던 충길은 그렇게 말한다. 새로운 국가의 창업보다는 명을 따르는 장수의 길을 택했던 이성계다. 태산처럼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던 그는 결국 병사의 목소리 앞에 마음을 돌린다. “나 이성계는 압록강을 건너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한 것.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드디어 조선 창업의 첫걸음이 되는 이성계(천호진)의 위화도 회군의 이야기가 다뤄졌다. 이미 역사를 통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쩌면 역사 책에 단 몇 줄로 남아있을 이야기.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이 몇 줄에 국가란 무엇이고 또 위정자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을 담아낸다.

 

최영(전국환) 장군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요동정벌이라는 전쟁을 이성계는 어떻게든 막아보려 한다. 이 무리한 전쟁으로 결국 나라가 절단날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전쟁에 차출될 장정 5만 명이면 그 나라의 농사는 어찌할 것이며, 만일 전쟁 중 왜국들이 뒤통수라도 치는 날이면 무고한 백성들이 죽어나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심도 없지만 백성도 없는최영은 대업을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도당에서 논의도 없이 독단으로 밀어붙인 전쟁은 위정자의 잘못된 선택 하나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잘 보여준다. 전쟁에 차출된 백성들은 전쟁도 치르기 전에 죽어나간다. 불어난 압록강에 무리하게 말뚝을 박다가 죽고, 역병에 죽는다. 전공을 세우고 돌아오겠다던 무휼(윤균상)은 전쟁의 실상을 보고는 이딴 게 무슨 전쟁이야라고 말하지만, 조영규(민성욱)이딴 게 바로 전쟁이라고 말한다. 요동정벌이라는 그럴 듯한 대업을 얘기하지만 전쟁은 참혹하다.

 

역사에서 위화도 회군은 역사적 기록 속에 조선이 어떻게 세워졌는가를 하나의 사건으로 다루고 있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그 회군에 대한 결정이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극화한다. 그래서 거기에는 현재적인 관점 또한 들어가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참 많은 대중문화의 콘텐츠들이 현실을 지목하며 던진 질문이 여기서도 등장한다.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아니 무엇이어야 하는가.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국가(國家)’의 한자를 풀이하며 그 의미를 설파한다. “장군 나라 국자는 창으로 땅과 백성을 지키라는 것이지요. 이게 나라입니다. 이 나라 국에 이 글 자(집 가)를 더하면 땅과 백성을 창으로 지켜내어 가족을 이룬다. 이것이 국가입니다.” 너무나 명쾌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명쾌한 국가의 정의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한 현재에도 그만큼의 무게를 가진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국가란 과연 무엇일까. 아니 그 국가의 자격은 무엇일까. 나아가 위정자들의 자격은 무엇일까.



<오마비>, 아름다움이 산업이 된 시대의 사랑이란

 

KBS <오 마이 비너스>에서 남자 주인공 영호(소지섭>은 세계적인 헬스 트레이너이자 가홍 의료 재단의 후계자 물망에 올라 있는 인물이다. 어찌 보면 헬스 트레이너라는 직업과 재벌가 후계자라는 위치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조합이 굳이 만들어진 건 이 직업과 조합이 우리 시대에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석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

 


'오 마이 비너스(사진출처:KBS)'

부유함이야 이미 멜로드라마의 고정적인 남성 주인공 레퍼토리였으니 굳이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을 게다. 즉 부라는 요소는 <오 마이 비너스>가 새로운 로망으로 자리하고 있는 미를 어떤 면에서는 보완해주는 로망 정도일 것이다. 사실상 <오 마이 비너스>가 다루려고 하는 건 그 제목에도 이미 들어가 있듯이 미, 즉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미는 두 인물로 표상된다. 하나는 역변해 뚱뚱한 몸이 되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자신만만하고 매력적인 여주인공 강주은(신민아)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를 질시해 살을 쪽 빼고 몸짱으로 거듭났지만 어딘지 속내는 과거와 다름없이 배배 꼬여있고 여전히 자신도 없어 보이는 오수진(유인영)이다. 드라마가 이 두 인물을 통해 하려는 얘기는 명백하다. 살이 쪘는가 아니면 살을 뺐는가와 상관없이 마음의 문제가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주제의식은 그리 대단할 것이 없지만 이 드라마는 이들 여성들만의 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여성 시청자들을 이 드라마에 끌어들이는 강력한 유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보다 사실 더 흥미로운 캐릭터는 남자주인공인 영호다. 그는 이제 가홍을 물려받아 사업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사업은 다름 아닌 우리의 몸을 관리하는 영역에 특화된 사업이다.

 

병원은 아프면 가는 곳이 아니라 이제는 건강을 유지하고 몸을 가꿔주는 의료서비스의 공간이 된 지 오래다. 병원과 피트니스 센터는 그래서 몸 관리와 아름다움이 하나의 산업으로 만들어진 시대를 표상하는 공간이 되었다. 영호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철저히 자기의 몸 관리를 하는 인물이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지도 못하고 힘들어도 죽을 듯이 트레이닝을 한다.

 

물론 건강을 위해 몸 관리를 한다는 것이야 당연한 것일게다. 하지만 영호가 그런 것처럼 빨래판 복근을 만들고 얼굴 윤곽의 가름한 선을 유지하기 위해 거의 굶듯이 살아가는 건 어딘지 과도한 느낌을 준다. 물론 이건 지금 현재 우리에게 마치 강박처럼 강요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몸꽝은 몸이 망가진 것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어느새 그 사람이 어딘지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까지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좋고 아름다운 몸을 갖는 것이야 누구나의 욕망이겠지만 그것이 하나의 사업으로 연결되어 있는 부분은 어딘지 의심스럽다. 영호가 가홍 그룹의 후계 역할을 두고 고심하는 건 어쩌면 이런 아름다움을 위해 끝없이 관리하고 돈을 쓰게 된 삶이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강주은은 얼굴 살이 쏙 빠진 기념으로 영호와 그 동료들에게 하루 동안 자신처럼 살아보기를 권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어본다. 영호는 그동안 살아왔던 그 관리된 삶 때문에 그렇게 마음껏 하고 싶은 걸 하는 자신을 용납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자신을 의심한다. 크림 가득 얹은 커피를 떠올리고 무엇 때문에 자신이 그토록 강박적으로 몸에 집착하는가를 의심한다.

 

<오 마이 비너스>는 물론 강주은이라는 인물이 영호라는 시크릿 트레이너를 통해 살을 빼고 사랑 또한 얻는 그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만일 이 드라마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 아름다움을 강박적으로 가꾸는 것이 사업화되고 있는 우리 시대의 풍경을 건드려 준다면 거기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강주은이 갖고 있는 변호사라는 직업과도 연결되는 일이다. 번지르르 해보여도 사실을 가진 자들의 편에서 변호함으로써 약자를 짓밟는 변호사의 또 다른 얼굴과 맞서게 된 강주은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거기서도 우리가 발견하는 건 진정한 아름다움의 실체일 것이다. 돈으로 화려해 보이는 커리어우먼의 번지르르함이 아니라, 진정한 변호인으로서 아름다운 모습.



<육룡><응팔>, 좋은 드라마엔 버릴 캐릭터가 없다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김명민)과 이인겸(최종원)이 대결할 때 갑자기 등장한 캐릭터가 하나 있다. 이름 하여 남꼴통(진선규)’. 앞뒤가 꽉 막혀 수사에 있어서 치우침이 없다는 뜻에서 지어진 별칭이다. 그런데 순군부의 남꼴통은 이방원(유아인)을 잡아다 고신을 통해 아버지 이성계(천호진)를 옭아매려 하는 이인겸과 결탁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남꼴통은 사실 정도전과 뜻을 같이하는 인물로 이인겸의 뒤통수를 친다. 그리고 그 남꼴통의 이름이 뒤늦게 실제 역사의 인물인 남은이라는 게 밝혀진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 남은이 등장하는 과정을 보면 이 드라마가 얼마나 인물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는가가 느껴진다. 사실 애초에 남은이라는 이름을 밝혔다면 이 캐릭터가 그리 돋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이미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들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꼴통이라는 별칭을 장치로 쓰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남은이란 캐릭터는 확실하게 매력적인 인물로 세워진다.

 

사실 이 드라마의 남꼴통 캐릭터를 연기한 진선규는 2010년부터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단역이 많았고 따라서 그리 주목되는 배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남꼴통이란 캐릭터를 통해 드러난 모습은 이 배우가 꽤 단단한 연기 내공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사극의 인물로서 진선규는 진짜 고려시대에서 막 되살아난 듯한 리얼함을 잘 살려냈다고 여겨진다. 물론 이것은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캐릭터 하나까지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육룡이 나르샤>라는 작품의 특징일 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육룡 역할을 하는 캐릭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악역으로서 길태미(박혁권), 이인겸(최종원), 홍인방(전노민) 같은 인물이나 중심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는 이방우(이승효), 조영규(민성욱) 같은 인물들까지 저마다 매력을 갖추고 있다. 악역이라고 해서 의미 없는 악역을 세우지 않고 조역이라고 해서 보조적인 역할에만 놔두지 않는다. 이건 아마도 좋은 드라마가 갖고 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tvN <응답하라1988> 역시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에는 덕선(혜리)과 보라(류혜영)와 정환(류준열), 선우(고경표), 택이(박보검), 동룡(이동휘)이 젊은 세대 주인공으로서의 중심에 서 있지만 그들의 부모인 성동일, 이일화, 라미란, 김성균, 김선영, 최무성 같은 어른 세대들도 결코 변방의 캐릭터가 아니다. 김선영과 최무성은 아마도 <응답하라1988>이 되살려 놓은 중견배우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선의 절친인 장만옥 미옥(이민지)과 정환의 형인 정봉(안재홍)이 비오는 날 운명적으로(?) 만나는 이른바 <늑대의 유혹> 패러디 장면은 이들 캐릭터에 대한 관심 또한 높여 놓았다. 미옥을 연기하는 이민지는 캐릭터 설정 상 못생김을 연기하고 있지만 실제 공개된 얼굴은 완전 반전의 모습을 보여줘 화제가 되고 있다. 그것 자체가 그녀가 가진 연기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딘지 바보스런 캐릭터인 정봉은 심장병 에피소드를 통해 그 따뜻한 모습을 그려낸 바 있다. 자신보다 타인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드러났던 것. 그런데 정봉을 연기한 안재홍은 이미 영화 <족구왕>에서 전역 복학생 역할로 충무로의 신예로 떠오른 바 있고 최근에는 <도리화가>에서 이동휘와 감초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육룡이 나르샤>의 남꼴통이나 <응답하라1988>의 장만옥처럼 중심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캐릭터들이 많은 드라마는 좋은 드라마다. 게다가 이것은 우리 시대에 달라진 중심과 주변에 대한 시각이 투영되어 있다. 주인공은 어쨌든 드라마 구조상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주변 인물들을 허투루 세워두지 않는 것. 이제는 좋은 드라마의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지 않을까.



스토리보다 캐릭터, <응답>의 핵심은 예능 유전자

 

형만한 아우 없다고 했다. 속편이 본편을 앞지르지 못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응답하라> 시리즈는 다른 것 같다. 시청률로만 봐도 시즌을 거듭할수록 이 <응답하라> 시리즈는 갈수록 강력해진다. 신원호 PD는 애써 겸손하게 망할 작품이라고까지 말했지만 시청자들의 선택은 그 말을 결국 뒤집어버렸다. 6% 시청률(닐슨 코리아)부터 시작한 드라마는 어느새 11%를 훌쩍 넘기고 있다. 케이블 드라마로서도 놀랍고 본편을 뛰어넘은 속편으로서의 <응답하라> 시리즈로서도 놀라운 일이다.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거기에는 이 시리즈가 가진 기존 드라마와는 완전히 다른 작법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응답하라>시리즈는 기존 드라마들이 하듯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드라마가 아니다. 스토리라인보다는 오히려 캐릭터에 포인트가 맞춰진다. <응답하라1988>의 핵심 경쟁력은 그래서 쌍문동 골목집에 살아가는 제각각 개성강한 인물들에서 나온다. 덕선(혜리)을 중심으로 하는 정환(류준열), 선우(고경표), (박보검), 동룡(이동휘)이 젊은 세대에 맞춰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라면, 그들의 부모인 성동일-이일화, 김성균-라미란 그리고 김선영과 최무성은 윗세대에 맞춰진 캐릭터들이다. 이 캐릭터들이 같은 세대끼리 우정과 정으로 엮어지거나 애정으로 엮어지는 그 관계의 변주는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힘이 된다.

 

쌍문동 골목집이라는 판타지적인 공간에 강력한 캐릭터를 만들어놓지만 어떤 일관된 스토리라인의 흐름을 만들어놓지 않은 건 <응답하라> 시리즈가 기존 드라마들과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매회 이야기가 이어지고 앞으로 어떤 전개가 나올 지를 기대하게 하는 구성을 갖고 있다면, <응답하라> 시리즈는 매 회 하나의 주제가 주어지고 그 주제에 맞는 에피소드들이 매력적인 인물들을 통해 보여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구조는 마치 시트콤을 닮아있지만 그렇다고 <응답하라> 시리즈가 시트콤은 아니다. 단지 시추에이션이 있고 코미디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을 움직이는 드라마가 있다는 게 차별점이다. 그래서 덕선의 언니인 보라(류혜영)가 데모를 하고 경찰에게 잡혔을 때 엄마인 이일화가 딸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천재바둑기사 택이가 아버지 최무성과 무뚝뚝하지만 비디오테이프에 담겨진 기자 인터뷰를 통해 진심을 나누는 장면은 그 자체로 뭉클한 드라마적인 감동을 주지만 그것이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연속성 있는 이야기를 통해 다음 이야기는 뭘까 하는 궁금증을 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대신 그 궁금증은 누가 덕선과 결혼했나 하는 등의 인물들의 관계에서 나오고, 나아가 이것은 이 드라마의 힘이 결국 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시청자들은 <응답하라>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 아니고,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너무 사랑스러워 그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건 다분히 예능적인 그림이다. 예능은 애초에 어떤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청자를 끌 수 없는 구조다. 대신 캐릭터를 세워두면 그 인물의 매력에 의해 시청자들이 어떤 기대를 갖게 된다.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예능에서 잔뼈가 굵어온 인물이라는 점은 <응답하라> 시리즈가 어떻게 이들에게 최적화되어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가늠하게 만든다.

 

이렇게 스토리라인을 잘 몰라도 인물의 매력을 알게 되면 빠져드는 드라마는 새로운 시청자들의 중간유입이 용이해진다. <응답하라1988>이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해나가는 건 그래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미 시청자들은 세대를 불문하고 이 쌍문동 골목집에 사는 이들에 대한 아련한 판타지를 경험하고 있다. 스토리보다 먼저 캐릭터에 매료시키는 이 예능의 유전자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속편이 나와도 본편보다 더 강력해지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 글은 PD저널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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