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세금문제, 정서적 지지가 관건인 <삼시세끼>에는 큰 부담

 

장근석의 세금신고누락 관련 보도에 관해 소속사에 확인해 본 결과 고의성은 없었다. 이미 과징금을 납부하여 법적인 책임 없이 완료가 된 사안이라는 해명을 들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장근석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시기상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장근석 측과 합의해 프로그램 하차를 결정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삼시세끼> 하차를 결정한 tvN측의 이야기 속에는 제작진의 고충이 엿보인다. <삼시세끼> 어촌편은 이미 몇몇 티저 예고들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이미 시작 전부터 대중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터져 나온 장근석의 세금 논란은 이 모든 열광의 불씨를 순식간에 꺼버릴 수 있는 문제로 다가왔다.

 

이미 찍어놓은 분량에서 장근석만을 편집해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삼시세끼>는 무엇보다 인물들 간의 관계와 거기서 발생하는 정서적인 교감이 절대적인 프로그램이다. 특별한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프로그램 콘셉트가 아니기 때문에 이 방송 편집의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제작진들 입장에서는 작품을 스스로 망가뜨려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영석 PD는 장근석의 하차를 결정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대중들에게는 민감하게 다가오는 세금문제가 정서적인 지지가 관건일 수밖에 없는 <삼시세끼>에는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거라는 걸 그 역시 똑같이 느끼기 때문이다. 나영석 PD<삼시세끼>는 강원도편이 그랬던 것처럼 정서적 지지가 프로그램의 전제가 되고 그 위에 재미요소들을 얹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러니 이 기반이 되는 정서적 지지가 깨진다면 재미요소는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게 된다.

 

장근석의 세금누락관련 사안은 tvN측이 밝힌 것처럼 법적인 문제를 동반하는 사건은 아니다. ‘이미 과징금을 납부해 법적인 책임 없이 완료가 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들의 정서는 법적인 것과는 무관하게 움직인다. 물론 장근석의 소속사인 트리제이컴퍼니측은 이 사안이 장근석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회사의 회계상 오류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대중들에게도 납득될 수 있는 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시기상 적합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판단에는 나영석 PD 특유의 보편타당한 시선이 느껴진다. 나영석 PD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대중들의 눈높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연출자다. 그의 프로그램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힘도 여기서 나온다. 끊임없이 대중들의 생각과 공감하려는 노력.

 

그러니 장근석의 세금 논란을 대하는 대중적인 정서가 결코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나영석 PD가 첫 방송 하루를 앞두고 하차라는 결정을 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 된다. 결과적으로 재편집 때문에 한 주가 늦춰지게 되었고, 또 편집을 하게 되면 그만한 프로그램의 손실을 겪게 마련이지만 그러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나영석 PD는 대중들과의 지속적인 공감대를 지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대중들 입장에서도 지지할만한 선택임은 분명하다.

 

<피노키오>, 진경의 개과천선 왜 <펀치>를 닮았을까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와 월화드라마 <펀치>를 보다보면 그 유사한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피노키오>는 언론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이고, <펀치>는 법 정의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다. 물론 소재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그 배경이 되고 있는 정치, 언론, 법은 같은 드라마인 것처럼 똑같다.

 

'피노키오(사진출처:SBS)'

<피노키오>에서 언론은 대기업 회장과 결탁해 여론조작을 일삼으며, 그 대기업 회장은 그 위에 정치인과 맞닿아 있다. 이 커넥션으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양으로 고통 받는다. 기하명(이종석)과 최인하(박신혜)는 이 커넥션을 폭로하고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무고한 이들의 희생을 막고 정의를 실현하려 한다.

 

<피노키오>가 그나마 어떤 풍자를 섞어 약간의 여유를 보여주고 있다면, <펀치>는 쉴 틈 없는 진지함과 무게감으로 법 정의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권력 투쟁만이 남은 현실을 두드려 댄다. <펀치>의 이태준(조재현) 총장이나 윤지숙(최명길) 법무부 장관은 그 과정에서 결탁된 언론들을 움직여 여론을 조작한다. 그들과 맞서 박정환(김래원)과 신하경(김아중)은 그들의 결탁을 밝혀내려 한다. <피노키오>와 다른 얘기 같아도 주인공의 관점만 다를 뿐 대동소이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이 두 드라마에서 내부고발자가 가진 파괴력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펀치>의 박정환은 이태준을 검찰총장으로 세운 인물로서 그를 감옥으로 보내기 위해 마음을 바꾼 내부고발자다. <피노키오>의 송차옥(진경) 부장은 대기업 회장인 박로사(김해숙)와 결탁한 부패언론인이었지만 딸 최인하로 인해 개과천선해 오히려 내부고발자로 나선다. 박정환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이태준 총장을 감옥에 보내려 하고, 송차옥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 박로사 회장의 비리를 폭로하려 한다.

 

작년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도 잘 살펴보면 이 구조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정치-언론-법이라는 커넥션에서 변호사의 입장을 통해 들여다본 <펀치><피노키오>의 현실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서도 김석주(김명민)라는 내부고발자가 등장한다. 그는 권력자들에게 붙어 그들의 죄를 덮는 역할을 해온 인물이지만 드라마 제목처럼 어떤 계기를 만나 개과천선하면서 오히려 이들과 싸워나간다.

 

드라마에서 내부고발자가 더 힘을 발휘하고 오히려 현실적이라 여겨지는 건 선악 구도가 그다지 리얼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착한 이들이 나쁜 놈들과 싸워 이기기에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펀치>가 보여주는 것처럼 나쁜 놈덜 나쁜 놈이 맞붙는 형국이 훨씬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펀치>의 박정환이 내가 살아왔던 세계의 방식으로 더 나쁜 놈들과 맞서는 장면이나, <피노키오>의 송차옥이 박로사가 취할 일련의 방식들을 모두 꿰면서 거기에 맞는 대처방식을 얘기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통쾌하면서도 현실감을 만든다.

 

드라마 속 내부고발자들이 해결사로 등장하는 이 상황은 씁쓸한 현실을 담아낸다. 시스템 바깥에서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스템 안을 경험한 이들만이 그들과 싸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현실이다. 최근 대한항공 사태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이들 드라마들의 커넥션 구조가 꽤나 현실감이 있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준 사건이 되었다. 박창진 사무장을 위시한 대한항공 전현직 사원들의 내부고발은 이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끄집어낸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들 덕분이라는 걸 드라마도 현실도 말해주고 있다.

 

강호동보다 최대리, <투명인간>의 가능성

 

대중들은 특히 강호동에게 인색하다. 한 때 국민 예능이라고도 불렸던 <12>로 무려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던 그 기억이 여전히 그에게는 꼬리표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로운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첫 회 4%를 기록한 강호동의 <투명인간>은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급한 이들은 강호동이 출연한 프로그램의 낮은 시청률을 그대로 실패로 단정하곤 한다.

 

'투명인간(사진출처:KBS)'

이것이 강호동의 딜레마다. 다른 출연자가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첫 회에 4%를 기록하면 요즘 같은 지상파 상황에서는 가능성을 보였다고 평가될 수 있지만 강호동은 다르다. 이것은 그와 쌍두마차를 이뤄 한 시대를 구가해온 유재석도 마찬가지다. 한때 최고의 시청률로 기억되던 그들을 시청자들은 좀체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한때 이들을 섭외하려고 줄을 섰던 방송가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물론 여전히 이들에 대한 매력은 분명하지만 또한 부담감도 그만큼 크다는 걸 일선의 제작진들이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은 올해 강호동이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으로서 주목됐다. 하지만 첫 회에 4%, 2회에 3.5%(닐슨 코리아)로 떨어지면서 벌써부터 실패를 단정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렇지만 프로그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첫 회와는 조금 달라진 2회의 변화를 통해서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첫 회가 문제가 됐던 것은 웃음과 재미의 포인트가 약했다는 점이다. 웃음을 잃은 직장인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준다는 그 취지와 의도는 대중들이 공감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간 회사에서 억지로 웃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진짜 웃음의 포인트들이 별로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문제로 지목되었다. 웃음은 상당부분 리액션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웃지 않으려 작정한 직장인들을 웃긴다는 건 전문 예능인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였다.

 

2회는 첫 회와 달리 그냥 무작정 웃기는 게 아니라 어떤 미션을 부여함으로써 약간의 준비를 시키는 모습을 보여줬다. 강호동에게 김우빈의 극중 대사를 하게 하고, 강남에게 노래를 통해 반응을 이끌어내게 하며 또 게스트로 출연한 이유리에게 국민 악역 연민정의 연기를 하게 하는 설정은 확실히 준비 없이 웃기는 맨땅의 헤딩식의 첫 회보다는 더 많은 웃음의 포인트를 찾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성공이냐 실패냐의 결과를 떠나서 그 과정 자체가 훨씬 나아졌다는 점이다. 웃기려는 투명인간과 웃음을 참으려는 직장인의 대결 그 자체를 통해 보는 이들이 웃을 수 있다면 성패는 사실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빛난 건 로션 최승진 대리가 하하와 정태호의 로션 공격을 막아내면서 준 큰 웃음이다.

 

소개에서부터 학창시절 부처라 불렸다는 최승진 대리는 삼둥이를 닮은 외모에 어딘지 초탈한 듯한 평정심을 보이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최대리의 얼굴부터 머리까지 로션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하하와 정태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콩트 코미디를 구성하는 힘을 발휘한다. 여기서 웃음은 하하나 정태호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래 그 와중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는 최대리에게서 나온다.

 

이것이 <투명인간>이 발견해낸 새로운 웃음의 포인트다. ‘부처 핸섬이 된 최대리의 모습은 <투명인간>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만들어낸다. 우스운 상황에서 웃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웃긴 일인가. 그 사실을 묵묵히 버텨내는 직장인들을 통해 찾아낼 수 있다면 이 프로그램의 취지도 재미도 거기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4%에서 3.5%로 떨어진 시청률의 수치가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다. 또 지나친 강호동에 대한 의지는 강호동 본인에게도 또 프로그램에도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연예인과 직장인이 유리되는 것이 아니라 대결과정 속에서도 하나의 팀이 되어 웃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강호동보다 더 최대리가 <투명인간>의 가능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펀치>, 정의와 진실을 빙자한 끝없는 난타전의 현실

 

이것은 난타전이다. 한쪽에서 스트레이트를 날리면 다른 한쪽에서는 어퍼컷을 올린다. 주먹이 날아갈 때마다 피가 튀고, 맞은 자는 휘청거리지만 금세 자세를 잡고 회심의 일타를 날린다. 게다가 이 난타전의 주인공은 절박하다.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 시간 내에 상대방을 넘어뜨리지 않으면 자신은 허망하게 링을 내려와야 한다.

 

'펀치(사진출처:SBS)'

드라마 <펀치>는 바로 이 권력의 링 안에서 벌어지는 난타전이다. 제 멋대로 해석되고 활용되고 이용되는 법은 스트레이트이자 어퍼컷이고, 국민의 여론을 만들어내는 언론은 카운터펀치가 된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박정환(김래원)과 그와 함께 하게 된 전처 신하경(김아중)이 한 편이라면 서로의 약점을 쥔 채 동거에 들어간 이태준(조재현) 검찰총장과 윤지숙(최명길) 법무부장관이 다른 한 편이 되었다. 하지만 이 난타전은 처음부터 편이 이렇게 정해져 있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박정환과 이태준이 한 편이었고, 신하경과 윤지숙이 다른 한편이었지만 이태준이 박정환을 배신하고, 윤지숙의 숨겨진 본색이 신하경에게 드러나자 판이 바뀌었다. 오션캐피털을 가지려는 이태준 총장과 아들의 병역비리를 덮으려는 윤지숙 장관을 움직이는 동력은 돈과 권력이다. 그들은 번지르르한 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 한다.

 

그런 그들을 끌어내리려는 박정환과 신하경은 목적이 약간 다르다. 신하경이 정의와 진실을 추구한다면 박정환은 오로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얼마 남지 않은 삶. 박정환이 날리는 펀치는 그래서 절박하면서도 두려움이 없다. “어차피 사람은 다 죽어.” 이렇게 말하는 박정환에게는 죽음을 앞둔 자의 욕망에 대한 무상함이 담겨 있다. 정의로운 검사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순진한 싸움 따위는 하지 않는 박정환이 그나마 이 살벌한 링 위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이태준, 윤지숙과 맞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정의를 얘기하지만 드라마의 재미는 저마다의 목적 앞에서 끝없이 변화하고 부딪치는 인간군상의 이야기에 담겨져 있다. 적어도 <펀치>는 정의로운 자가 승리한다는 식의 순진한 이야기를 던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대중들이 세상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일 것이다. 정의 운운하며 발표되는 사안들은 겉치레일 뿐이고 그 내막은 그네들의 끝없는 욕망들이 꿈틀댄다.

 

가끔씩 뉴스로 보여지는 대기업 회장의 병보석 이야기나, 병역 브로커를 두고 벌어지는 밀고 당기기의 거래, 인사권을 갖고 벌이는 장관과 총장의 갈등 같은 것들은 우리가 현실에서도 늘 뉴스로 보던 것이지만 그 내막을 드러내는 드라마는 그것을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달한다. 아마도 땅콩 회항을 염두에 둔 시퀀스인 듯한 브로커의 해외도피를 막기 위해 비행기를 돌리려 하자 이를 막는 윤지숙 장관의 대사는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괴물을 잡으려다 괴물이 된 윤지숙 장관은 항공보안법 42조를 얘기하며 회항을 막는다. “항공보안법 제 42조 위계 또는 위력으로 항공기의 정상 운행을 방해하는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얘기했듯이 어차피 링이란 현실의 또 다른 축소판일 것이다. <펀치>라는 링은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축소해 보여준다. 그러면서 저들의 입에서 툭하면 호명되는 정의와 진실의 이야기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가를 아프게도 드러내준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박정환처럼 저들의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다 알고 있는 자가 죽음 같은 어떤 계기를 만나 마음을 돌리고, 저 자신마저 함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려 해야 겨우 가능성을 보인다는 걸 <펀치>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쁜 놈과 덜 나쁜 놈 그리고 더 나쁜 놈이 있는 현실. <펀치>는 그 난타전의 현실에 날리는 주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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