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 예능에선 얍쓰, 후배들에겐 든든한 버팀목

 

웃기기 위해 웃통을 벗고 한없이 망가지는 광대의 진짜 얼굴은 어떨까. 심지어 부모의 부고를 들을 때도 웃는 얼굴 분장을 한 채 무대에 올랐다는 과거 코미디언의 삶은 지금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웃음을 주는 이들이다. 그러니 자신의 눈물조차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그 맘은 얼마나 무너질 것인가.

 

'김준호(사진출처:KBS)'

김준호의 마음이 딱 그랬을 것이다. 코코엔터테인먼트는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대표이사 김모씨가 회사자금을 횡령해 도주한 후, 어떻게든 회생해보려 애썼지만 회사의 부실경영이 점점 더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도저히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 개그맨들과 함께 이 일을 헤쳐 나가기 위해 자비를 털어서까지 일부 연기자들의 출연료를 정산해주었다고 한다.

 

그는 <12>을 통해 얍쓰라는 캐릭터를 갖게 되었다. ‘얍삽한 쓰레기라는 다소 거친 이 캐릭터로 인해 본인은 항상 망가지는 입장에 처했다. 마치 노출증 환자나 되는 것처럼 자꾸 웃통을 벗어젖히는 모습은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지어 대표이사 김모씨가 도주를 한 상황에서도 그는 프로그램에 단 한 번도 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왜 마음고생이 없겠는가. 열심히 해왔던 일들이 한순간 날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은 더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건 자신을 믿고 묵묵히 따랐던 후배 개그맨들에 대한 책임감이다. 그들과 함께 앞으로 코미디계의 큰 비전을 공유하려던 그 꿈이 커다란 걸림돌을 맞이하면서 큰 좌절감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연말 시상식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김준호가 뿌린 신뢰의 씨앗은 후배들의 든든한 지지로 돌아왔다. <개그콘서트>의 김준현을 비롯해 김대희, 조윤호, 김지민이 김준호에 대한 감사와 신뢰의 뜻을 전했고, <웃찾사><코미디 빅리그>에서 활동하는 김현정, 홍윤화, 이국주가 변함없는 마음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후배들의 응원은 김준호에게는 천군만마의 힘을 보태주었을 것이다. 한때 그 개그맨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렇게 성장한 개그맨들은 이제 거꾸로 김준호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었다. 그러니 힘들어도 내색 한 번 안한 채 여전히 <12>의 얍쓰로 또 <개그콘서트> ‘닥치고의 교장선생님으로 나와 기꺼이 망가질 수 있었을 게다.

 

코코엔터테인먼트라는 개그맨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던 회사의 폐업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비온 뒤 땅은 더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이번 위기 상황은 오히려 김준호와 후배 개그맨들 사이의 신뢰를 더욱 돈독하게 해준 격이 되었다.

 

물론 개그맨으로 살아가는 것과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 충분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어떤 방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쪼록 그가 후배들과 꿈꾸었던 코미디계의 비전을 함께 이뤄나가길 기원한다.

 

TV 앞의 여론, <작정하고 본방사수>

 

미쳤네. 저 여자.” 어린이집 폭행 교사의 뉴스를 보던 김기용씨는 그 충격적인 CCTV 장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곽희경씨는 저거 저거 정신 나갔네. 저게 선생이야?”하고 되물었고, 이학규 할아버지는 저게 진짜인가? 진짜?”라며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김부선의 딸 이미소가 엄마 내가 저러면 어떻게 할 거야?”하고 묻자 김부선은 마치 자기 일이나 된다는 듯이 내가 저거 죽여. 내가 죽여버려.”라고 말했다.

 

'작정하고 본방사수(사진출처:KBS)'

장동민의 아버지인 장광순씨는 우리 손자를 그랬다면 나는 때린 손모가지를 딱 부러뜨려야지.”라고 했고, 어린이집 교사 10년차인 박은주씨는 보호자가 어떻게 아동을 학대하냐? 직장 다니는 어머니들을 얼마나 답답할까. 잘하는 교사들도 많은데.. 저런 일 터지면 맥 빠진다니까.”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KBS <작정하고 본방사수>의 한 풍경. 마침 흘러나온 어린이집 폭행 교사 뉴스에 쏟아진 반응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분노한 얼굴들이었다. 김치를 안 먹는다며 훈육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는 뉴스와 아이들의 무릎 꿇은 모습에 김부선은 저 봐봐. 아기들 다 무릎 꿇고 앉았어. 때리니까. 얼마나 많이 때렸으면하고 혀를 찼고, 변호사인 박설아씨는 저기 있는 애들 다 정신과 치료 받아야 돼라고 말하며 되게 웃긴 게 저기가 보건복지부에서 95점 받았대. 평가에서.”라고 어이없어 했다.

 

장동민은 격앙된 목소리로 법을 넘어서야 돼. 이건 국민투표해서 공개적으로 때려죽일까 말려죽일까 김치만 먹여 죽일까 김칫독에 묻을까 이런 걸 투표해야 돼.”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나아가 시청자들은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김부선은 더 웃긴 건 관할 구청이야. 저런 걸 적발해도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했고, 마침 어린이집에서 현장 간담회를 여는 장면이 나오자 성진욱 변호사는 저런 때만 보여주려고 어린이집에서 간담회열고. 아주 쇼하고 있네 진짜.”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부선은 나는 저 사람들이 더 역겨워. 정치인들이. 저 사람들이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못 해냈기 때문에 이렇게 힘없는 사람들이 사서 고생당하는 거야. 꼭 국민들이 들고 있어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거야.”라고 말했고, 그러자 딸인 이미소는 외양간 고치는 척만 하지.”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린이집 폭행 교사에 대한 시청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담아낸 장면은 <작정하고 본방사수>라는 프로그램이 흥미로워지는 대목이다. 사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여론을 운운하지만 그 여론의 실체를 직접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작정하고 본방사수>TV를 본다는 그 간단한 방식 하나로 손쉽게 여론을 뽑아낸다. 젊은 10대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지역과 세대와 성별을 아울러 TV 앞에 앉혀 놓고 그 반응을 관찰한다는 것은 가감없이 드러나는 민심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너무 자극적이라 못 보겠다고 하면서도 시선을 놓지 못하는 시청자들이나, 걸 그룹에게 빤스만 입고 나와 춤춘다선정적이라고 말하지만 그걸 보며 환호를 보내는 사내들의 모습이 동시에 보여진다. <작정하고 본방사수>TV를 보면서 있는 그대로의 리액션을 담아내기 때문에 발언 수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자사나 타사에 상관없이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 또한 신랄한 편이다. 지난 2회에 <12>을 보는 두 명의 외국인의 반응은 실로 따끔한 면이 있었다. 엉덩이에 젓가락을 끼워 줄로 잡아당겨 부러뜨리는 게임을 오래도록 방영하자 한 외국인이 왜 계속 남자 엉덩이만 봐야 되냐며 자신은 그들이 갖던 여행지인 여수가 보고 싶은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임성한 작가의 <압구정 백야>의 막장 전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신랄한 비판과 비아냥이 쏟아졌다. 백야가 친모를 찾아와 출생의 비밀을 밝히는 장면에서 친모가 딸인지 모르고 무차별 구타를 하는 모습에 모두가 혀를 찼고, 그렇게 두 사람이 온전히 한 회 분량을 채운 것에 대해 막장 중의 막장이라며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작정하고 본방사수>TV 비평의 새로운 지점을 보여주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방송사마다 옴부즈만 프로그램들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자사의 프로그램 비평이 행해지고는 하지만 그것을 다양한 계층과 성별 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건 새로운 일이다. 또한 비평가의 목소리가가 아니라 시청자 개개인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TV는 이제 세상을 보는 창이 되어 있다. 그 창을 향해 내는 <작정하고 본방사수>의 목소리가 주목되는 이유다. 거기서 우리는 민심을 발견할 수 있다.

 

섹시 이미지면 다 통용되는 사회의 위험성

 

“SNS에 올리고 기사 안 된 적 없어요. 항상 메인에 뜨고요.” 디스패치가 공개한 클라라의 메시지 내용 중에는 이런 글이 들어가 있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녀를 그 자리에까지 순식간에 올린 것이 다름 아닌 섹시 이미지라는 걸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클라라 시구(사진출처:SBS)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몸에 딱 붙는 줄무늬 레깅스를 입고 시구를 하면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시구를 잘 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대단한 발언을 해서도 아니다. 착 달라붙는 옷이 만들어내는 섹시 이미지의 힘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노이즈도 따라붙었다. 시구라는 기능적인 일에 어찌 보면 전혀 무관할 듯한 섹시 이미지의 등장은, 이후 너도 나도 섹시한 의상을 입고 시구를 하는 연예인들로 이어졌다. 섹시한 이미지로 단 한 번의 눈도장이 그만한 파괴력을 갖는다는 걸 인지한 까닭이다.

 

클라라의 사례는 지금 현재 우리 사회의 섹시와 노출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잘 드러내준다. 일단 섹시라는 단어가 붙은 기사는 우선 들여다보게 되는 본능적인 욕망을 생산하지만, 동시에 불쾌감도 만들어낸다. 뭐 특별한 능력이나 준비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이미지만으로 영화에 덜컥 캐스팅되거나 가수로 음원을 발표하는 걸 보면, 오랜 시간동안 엄청난 노력과 준비를 하면서도 캐스팅되지 못하는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얼마나 클 것인가.

 

클라라는 시구 하나로 주목받은 후 최근에는 영화도 찍고 음원도 발표했다. 그러다가 이중계약으로 소속사와의 분쟁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사적인 메시지들이 공개됐다. 클라라가 주장한 성적 수치심의 진위를 떠나서 그 메시지들 속에는 우리 사회가 섹시 이미지 하나면 얼마나 손쉽게 일들이 처리되는가에 대한 단초들을 읽어낼 수 있다.

 

걸 그룹들의 노출경쟁에 대한 논란과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끊임없이 터져 나옴으로써 오히려 그 비판마저 홍보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있다. 이제 쩍벌에 엉덩이를 실룩이는 장면들은 노출경쟁속에서 심지어 식상한 이미지가 될 정도다. 그들의 노래가 가진 감흥보다도 섹시 이미지가 우선되는 사회다.

 

심지어 나인 뮤지스 같은 걸 그룹은 앨범 재킷 표절이라는 사안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바로 다음날 란제리룩의 티저를 내보냈다. 그 후로 이어지는 건 얼마나 뇌쇄적인가를 강조하며 공개하는 안무동작이다. 이런 일련의 행보에서는 표절이라는 사안의 심각성도 섹시 이미지라면 쉽게 덮어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과연 이건 합당한 일일까.

 

최근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클라라라는 인물에 대한 감정 속에는 그래서 섹시노출에 경도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씁쓸함이 깔려있다. 메시지에 삽입된 란제리 화보를 두고 유혹이다 업무다 라는 공방이 오고가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엿보이는 건 우리 사회에서 섹시 이미지가 갖는 파괴력이다. 때로는 심각한 문제나 사건들도 가려버릴 수 있는 그 힘.

 

유지태도 주진모도 가리지 못한 지창욱의 존재감

 

어딘지 어눌한 듯한 모습과 동시에 강인한 면을 갖고 있는 배우. 바로 지창욱이다. 그의 연기는 그래서 약하고 비굴하고 때로는 바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단단한 내면을 숨기고 어떤 목적을 수행하거나 야망을 드러낼 때 더욱 돋보인다. <기황후>에 이어 <힐러>의 지창욱은 그래서 완전히 다른 연기 도전처럼 여겨지지만 그의 특징을 여전히 잘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힐러(사진출처:KBS)'

그의 연기가 평범한 데서 시작해 비범하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데서 돋보이듯이, 그의 드라마에서의 존재감은 조금씩 커져간다는 특징이 있다. <기황후>에서는 그래서 시작은 조연처럼 했지만 뒤로 가면서 주연인 주진모의 존재감을 흐리게 만들만큼 그의 파괴력이 전체 드라마를 흔들었다.

 

이것은 <힐러>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힐러>는 시작부터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보여주는 야마카시를 통해 그의 강렬한 액션을 보여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얼굴을 가린 힐러라는 다크히어로로서였다. 그런 그가 점점 얼굴을 드러내며 여심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봉수라는 어딘지 어눌한 가면의 얼굴을 한 채 영신(박민영)에게 본격적인 접근을 하면서부터다.

 

그는 그렇게 종이에 물기가 스며들 듯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늘 어둠 속에 있어야 하는 힐러라는 존재는 그래서 그에게는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는데 맞춤이다. 어둠 속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던 그가 영화관을 나서는 영신(박민영)의 손을 덥석 잡는 장면이나, 건물 옥상에서 눈을 가린 영신에게 키스하는 장면에서는 여심을 녹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슈퍼맨처럼 일상의 어눌함과 이면의 비밀스런 신비로움을 가진 존재로서의 힐러는 그렇게 조금씩 영신이라는 여성 앞에서만 자신의 비밀을 걷어내면서 한 남자로서 다가온다. 이 양면적인 모습을 지창욱이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건 그의 남다른 디테일들 덕분이다. 그는 작은 눈빛 하나 손끝의 떨림 하나로 숨겨진 내면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배우다.

 

흥미로운 건 이번 <힐러>가 유지태의 오랜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존재감이 드라마 전체를 채울 것이라 여겨졌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것은 유지태가 맡은 역할이 이 드라마의 중심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멜로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 지창욱의 액션과 멜로를 오가는 연기가 돋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가운 얼굴처럼 무심한 표정이 어느 순간 바보처럼 편안하게 변신하고, 그 얼굴이 또 한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지해졌다가, 자신의 부모를 위협하는 이들을 향해 분노로 일그러지고, 부모처럼 자신을 키워준 영재(오광록)의 죽음 앞에 오열하면서 영신의 품 안에 무너져 아이처럼 우는 이 일련의 연기 변화의 과정은 그래서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연기에 있어서는 한 획을 그었던 선배들이 할 수 있는 주진모도 또 유지태도 그의 존재감을 가리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선배들의 배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창욱이라는 괜찮은 몰입을 가진 배우의 잠재력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늘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여주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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