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은데 뺨 때린 <님아, 그 강을..>

 

도대체 무엇이 대중들로 하여금은 손수건을 챙겨 영화관으로 향하게 했을까.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신드롬을 들여다보면 시쳇말로 울고 싶은데 뺨 때린영화들이 가진 힘에 새삼 놀라게 된다. 물론 이 독립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는 영화지만 그것이 신드롬의 차원으로 이어진 데는 외적인 요인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출처: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작년 말에 개봉해 올해 초에 신드롬을 이끌었던 <변호인>이나 올 여름 신드롬을 만든 <명량>도 마찬가지다. 영화적인 가치를 떠나 이들 작품들은 모두 현실의 대중들이 갖고 있던 정서의 뇌관을 건드렸다. <변호인>이 서민들을 향해 있지 않은 법 정의의 문제로 대중들을 울렸다면, <명량>은 세월호 정국으로 드러난 리더십 부재의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소환했다. 영화를 보러간다기보다는 억눌린 정서를 잠시나마 풀어내기 위해 극장에 가는 기현상이 벌어졌던 것.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신드롬 역시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유난히 많은 사건사고들로 점철된 한 해를 겪어내며 애써 눈물을 참아왔던 대중들이 아닌가. 이 영화는 마치 그 한 해를 참았던 묶은 눈물들을 쏟아내는 일종의 씻김굿의 현장처럼 다가왔다. 사람들은 이미 입소문에 의해 그 내용들을 거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이 영화는 내용을 확인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안에 들어가 비로소 함께 울고 있다는 그 공존의 위안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모두를 함께 울게 만드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 죽음 같은 우리네 삶의 본질적인 것들에서 나온다. 결국은 모두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 서서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본질. 거기에 헛된 욕망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좌절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취업전쟁과 팍팍해진 현실, 경제적 불황과 양극화 같은 좌절들마저 죽음 앞에서는 소소해진다.

 

그 앞에서도 어르신들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은 실로 아름답다. 그것은 현실로부터 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현실이 가려놓은 삶의 본질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은 그것이 우리가 진짜 살아가야할 본질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더욱 큰 울림을 갖는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현실에서 발 하나를 떼어 밖으로 나와 비로소 그 현실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모인 자식들이 의견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이제 죽음을 앞둔 어르신이 그 메마른 눈에서 펑펑 눈물을 쏟는 모습은 그래서 삶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돌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강을 건너가려는 님을 앞에 두고서야 비로소 그 님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이 우리네 미천한 삶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님이란 존재는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리네 소중한 삶 그 자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삶이 힘들고 지쳐서 도무지 견디기 힘든 서민들이 작정하듯 손수건 하나씩을 들고 이 영화관을 찾는 것이다. 85분 동안의 웃음과 눈물은 우리네 삶의 본질을 찾는 시간이 된다. 먹먹한 감동에 영화관을 나서는 발길이 들어갈 때보다 가벼워져 있는 건 그래서다.

 

 

<피노키오>, 장르가 멜로를 쓰려면 이 정도는 해야

 

네가 혹시 기하명이야? 너 진짜 이름이 기하명이야?” 최인하(박신혜)는 결국 최달포(이종석)가 자신의 어머니 송차옥(진경)의 악의적인 오보에 의해 희생당한 가족의 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사실을 알고 흘리는 최인하의 눈물은 어떤 의미일까. 그건 불행한 일을 겪은 최달포에 대한 연민일까, 아니면 그 일에 자신의 어머니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예감케 하는 두 사람의 비극적인 관계에 대한 슬픔일까.

 

'피노키오(사진출처:SBS)'

아마도 둘 다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 더 큰 것은 최인하가 송차옥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최달포가 그녀에게 보여준 사랑에 대한 눈물일 것이다. 최달포에게서 멀쩡히 웃고 있어도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해지는 이유는 바로 그 복수심조차 눌러버린 사랑의 위대함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최인하가 이 진실 때문에 받을 상처를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감추고 싶은 진실을 가장 알면 안 되는 사람이 알아버렸다고 그는 말한다.

 

이것은 <피노키오>라는 장르물이 멜로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피노키오>는 그저 양념으로서의 멜로가 아니라 장르적 상황을 더 극적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멜로를 사용한다. 기자와 언론의 세계를 다루는 드라마이니만큼 <피노키오>진실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이라는 것은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피노키오>는 멜로라는 틀을 가져와 보여준다.

 

거대담론으로서의 진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어쩌면 드라마로서는 그다지 효과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큐나 르뽀의 영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노키오>는 그래서 이 진실의 문제에 최달포와 최인하의 사랑이라는 코드를 깔아놓음으로써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공적인 이야기까지를 보여준다. ‘진실의 문제는 지극히 이성적일 수밖에 없겠지만, 이렇게 멜로로 엮어놓으면 지극히 감성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로 재탄생된다.

 

최달포와 최인하의 멜로는 어찌 보면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피노키오>라는 드라마에 가벼움을 만들어주는 장치로서도 활용되었다. 즉 두 사람이 툭탁대며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알콩달콩한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로맨틱 코미디가 주는 소소한 재미들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 소소한 관계들의 축적은 숨겨진 진실과 맞닥뜨리게 되면 거대한 비극으로 돌변하기도 하지만.

 

흔히들 장르물에 멜로가 들어가면 왠지 장르물을 망치는 것처럼 얘기되지만, 사실 멜로가 무슨 죄가 있을까. 다만 그 멜로를 어떻게 장르와 잘 붙여서 운용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이어 복합장르를 연달아 선보인 박혜련 작가는 이 부분에서는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다. <피노키오>가 멜로를 끌어들여 장르물의 극적 긴장감과 이완을 적절히 풀어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박혜련 작가의 공이다.

 

긴박감 넘치는 언론의 기막힌 이면들을 보여주면서도 그 속에 사랑하는 남녀의 때론 코믹하고 때론 달달하며 때론 절절해지는 멜로를 이물감 없이 봉합해내는 것. 멜로를 쓰려면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을까. <피노키오>는 그걸 잘 보여주고 있다.

 

<미생>, 멜로, 지상파, 스타가 아니어도

 

요즘 지상파 드라마 관계자들을 만나면 한결 같이 나오는 얘기가 <미생>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이미 밝혀진 것처럼 <미생>은 지상파에 모두 제안되었다가 결국 tvN에서 리메이크된 작품이다. 지상파 관계자들은 이때만 해도 과연 그게 드라마로도 성공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대성공을 거둔 <미생>을 놓친 것에 대해 지금은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미생(사진출처:tvN)'

<미생>의 성과는 단지 한 드라마의 성취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 제작자들이 해왔던 관습적인 접근을 대부분 깬 데서 나온 성과이기 때문이다. <미생>을 통해 배워야할 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는 멜로 없이도 된다는 것이다. 애초에 <미생>이 지상파에서 제작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멜로의 부재때문이었다. 지상파 관계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멜로를 넣어달라고 주문했지만 멜로 없이 해달라는 윤태호 작가의 강력한 요구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수락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tvN에서 방영된 <미생>에 만일 멜로가 들어갔으면 그 집중력이 상당부분 흩어졌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직장동료로서의 장그래(임시완)와 안영이(강소라) 그리고 장백기(강하늘)가 각각 서 있었기 때문에 그들 각자가 가진 직장생활의 고충들과 성장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삼각 멜로에 허우적대게 하지 않은 건 윤태호 작가의 말대로 작품의 성패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던 셈이다.

 

두 번째로 <미생>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건 리메이크도 하기 나름이라는 점이다. 사실 <미생>은 드라마로 제작되기 전부터 이미 1백만 부가 팔린 만화였다. 이것은 그만큼 인지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드라마 제작자들에게는 이미 많이 알려진 작품이라는 장애요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다메 칸타빌레>를 리메이크했다가 실패한 <내일도 칸타빌레>를 보라. 그만큼 원작의 무게감은 리메이크에게는 짐이 되는 법이다.

 

하지만 <미생>은 원작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고 평가받았다. 그것은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다기보다는(물론 약간 다른 내용들이 있지만), 드라마적인 극적 구성을 강화했다고 보는 편이 낫다. 이 극적 구성 때문에 웹툰이 가진 마치 바둑을 두는 듯한 지적인 흐름은 감정선이 묻어나는 장면들로 보여질 수 있었다. 같은 내용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미생>은 실증해보인 것.

 

세 번째는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라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미생>이 만일 지상파에서 했다면 그만한 성과를 얻었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즉 지상파는 상대적으로 시청층의 연령대가 높고 드라마 소비에 있어서도 패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상파가 <미생>에 멜로를 요구한 것은 기획적인 패착이 아니라 바로 이런 플랫폼적인 특성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어떤 드라마는 지상파보다는 아예 케이블 같은 비지상파가 훨씬 더 플랫폼으로서 우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플랫폼에 끼워 맞추는 콘텐츠가 자칫 바로 그 점 때문에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플랫폼보다 우선되는 것이 콘텐츠라는 점이다. 콘텐츠가 먼저 완성되고 거기에 맞는 플랫폼을 선택한 <미생>은 그래서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미생>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미 발굴된 얼굴들이 오히려 낫던이 드라마의 캐스팅이다. 김대명, 변요한, 박해준, 류태호, 김희원, 손종학, 정희태, 최귀화, 전석호, 오민석, 태인호, 황석정, 이승준... 우리는 <미생>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무수한 배우들이 이토록 많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깨달았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봤던 얼굴들이 여기저기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그림이다.

 

이렇게 미 발굴된 얼굴들은 이미지 노출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작품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웹툰에서 지금 막 걸어 나온 것 같다는 평가는 바로 이 미 발굴된 얼굴들의 미친 존재감 덕분이었다. 즉 지상파 드라마들도 새로운 얼굴의 발굴이 드라마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미생>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생>의 성공은 드라마의 새로운 성공방정식을 만들었다. 기존의 틀을 고집하며 깨지 못했던 지상파들로서는 한번쯤 숙고해야할 부분이다. 멜로가 없어도 지상파가 아니라도 또 스타가 아니라고 해도 작품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미생>은 보여주었다.

 

MBC, 왜 새 예능 트렌드 열고도 유지 못할까

 

올해의 예능 트렌드에서 주목됐던 두 가지를 고르라면 단연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대변되는 육아예능과 <비정상회담>이 촉발시킨 외국인 예능이 아닐까. 육아예능은 작년 <아빠 어디가>가 돌풍을 일으키며 생겨난 트렌드지만 올해 들어 그 과실은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가져갔다. 송일국과 삼둥이 부자 대한, 민국, 만세의 출연은 육아예능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외국인에 대한 주목 역시 작년 <진짜사나이>의 샘 해밍턴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올해 들어 그 과실은 <비정상회담>으로 돌아갔다. 한국 사람들보다 더 한국적인 정서를 잘 이해하고, 우리말에도 능통한 외국인들은 회담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견해와 각국의 문화를 비교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외국인 예능 전성시대를 만들었다.

 

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MBC가 연 이 새로운 예능 트렌드는 지금 흔들리고 있다. <아빠 어디가>는 폐지를 두고 이견이 엇갈리는 상황이고, <진짜사나이> 역시 예전만한 주목도나 화제성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이것은 과거 <나는 가수다> 때도 똑같이 벌어졌던 일들이다. 그 때도 <나는 가수다>가 연 레전드 가수 붐<불후의 명곡2>가 그 과실을 따먹었다. 이쯤 되면 MBC 예능이 무언가를 잘 열어놓고도 그 과실을 따먹지 못하는 유지관리에 구멍이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그 문제는 역시 최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일밤><아빠 어디가><진짜 사나이>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아빠 어디가>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시즌2를 구성하면서부터다. 새로운 출연진들이 구성되었지만 그 파괴력이 시즌1과 비교해 너무 약했다. 게다가 김진표의 출연으로 괜한 소모전을 반복하느라 시즌1의 기대감까지 상당 부분 상쇄됐던 것이 사실이다.

 

아쉬운 일이지만 시즌2에는 시즌1의 성선비 성준이나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4차원의 매력을 가진 준수, 그리고 모범생처럼 보이지만 자주 눈물을 터트렸던 민국이 같은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시즌1이 만들어낸 과도한 자신감 때문인지 시즌2의 아이들은 그다지 주목되지 못했고 대신 아빠들이 전면에 보이면서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소박했던 시골 여행에서 갑자기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그 소시민적인 시선이 점점 놀면서 예능하는느낌으로 바뀐 것도 <아빠 어디가> 시즌2의 패착이었다.

 

<진짜 사나이>가 흔들린 것 역시 시즌2에 해당하는 새로운 인물군들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비롯되었다. 물론 군 관련 논란들이 사회사건으로 터져 나오면서 생겨난 외부적인 요인들도 많았지만, 내부적인 문제 또한 없지 않았다. 샘 해밍턴의 바톤을 이어받은 헨리는 군 무식자로 들어왔지만 몰라도 너무 모르는 캐릭터로 <진짜 사나이>의 실감을 상당 부분 상쇄시켰다. 샘 해밍턴이 군대 체험을 통해 호평을 얻었던 것과는 상반되게 헨리의 출연은 무리수였다는 게 많은 이들의 지적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가수다>가 고개를 숙인 것 역시 시즌2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인물군들이 초창기의 전성기 멤버들의 빈 자리를 채우지 못하면서 생겨났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나중에는 경합에 경합을 이어가는 서바이벌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더 혹독한 무대를 자꾸 만들려 했지만 그것이 대중들이 <나는 가수다>에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좀 더 지지하고픈 가수들의 놀라운 무대를 확인하고픈 대중들의 욕구는 결국 만족되지 못했다.

 

<아빠 어디가><진짜 사나이>, 그리고 <나는 가수다>의 경우에서 보이는 것처럼 MBC 예능은 시즌2의 성격을 갖게 되면서부터 흔들리는 특징을 보인다. 새로운 기획에 있어서는 KBSSBS 같은 타 지상파에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그렇게 나와 호평 받은 기획이 계속 유지되는 데는 그만한 인프라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KBS<개그콘서트><12>을 떠올려보면 MBC의 예능 시스템이 얼마나 연약한가를 실감할 수 있다. 계속 새로운 PD들이 들어와 프로그램의 바톤을 이어받고 있지만 그래도 KBS의 예능은 쉽게 무너지지 않고 어떤 위치를 지켜내는 데는 성공하고 있다. 물론 타 방송사가 시도한 예능을 고스란히 가져다가 비슷하게 만들어내는 것을 잘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MBC는 새로운 걸 만드는 것만큼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 역시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과실은 계속 다른 곳에서 얻어갈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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