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왜이래>, 뻔해 보여도 눈을 뗄 수 없는 까닭

 

<가족끼리 왜이래>는 전형적인 KBS표 주말드라마다. 여전히 대가족이 등장하고 자식들은 저마다 부모 맘 같지 않아 속을 썩인다. 가족 갈등은 드라마의 메인 테마이고 거기에 신데렐라 상황과 결혼 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이 정도는 KBS 주말드라마의 공식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무수히 많이 봐왔던 가족드라마와 <가족끼리 왜이래>는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가족끼리 왜 이래(사진출처:KBS)'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이 드라마는 한 번 보면 눈을 떼기가 어렵다. 거기에는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불효자식들부모 맘 몰라주는행동들이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들여다보지도 않고, 또 언제나 늘 그렇듯이 도움을 주던 부모라는 존재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라면 이 뻔해 보이는 이야기가 가진 울림이 의외로 커질 수 있다.

 

주말 가족드라마 같은 장편 드라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드라마의 운용이다. 어떤 갈등을 전면에 내세우고, 또 그 갈등이 향후에 가장 큰 이야기 줄거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더 큰 폭발력을 만들어내는가 같은 효과는 드라마 운용의 능력이 좌우하기 마련이다. 또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너무 무겁거나 우울하게만 흘러가도 문제이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기만 한 것도 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가족끼리 왜이래>는 드라마 운용 면에서 작가의 노련함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특히 드라마의 분위기를 적절히 유지해내는 균형 감각이 탁월하다. 아버지 차순봉(유동근)이 자식들에게 뭐든 오냐오냐 해주며 자신은 정작 바보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던 초반부만 해도 이 드라마가 지나치게 아버지 신파로 흘러가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차순봉이 갑자기 자식들을 상대로 불효자식 소송을 단행하면서 드라마는 침체된 분위기를 다시 띄웠다. 그래서 그 기조에 이 차순봉이라는 아버지의 가슴 아픈 부성애를 바탕에 깔아놓고는 그 위는 코믹한 전개로 흘러가게 하는데 성공했다. 차강심(김현주)과 문태주(김상경)의 밀고 당기는 관계는 로맨틱 코미디의 설정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드라마에 전형적인 혼사장애 문제를 심어 넣어 유쾌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김상경이 왜 문태주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이토록 과장된 연기변신을 했는가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 가볍게 터치해나가는 드라마의 분위기는 결국 차순봉의 시한부 인생이 밝혀지는 그 순간의 폭발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 것도 모르고 웃고 즐기던 그 분위기가 사실은 아버지 차순봉의 희생과 배려 안에서 가능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자식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 것인가는 그래서 이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KBS 주말드라마의 성격상 전통적인 시청층인 부모 세대들이 이 드라마의 주 시청층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차순봉으로 대변되는 아버지의 입장은 고스란히 부모 세대의 마음을 울린다. 자식이 유명한 의사지만 정작 그 자식이 아버지의 병조차 모르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이 시대 모든 잠재적 불효자들의 부채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불효자들의 회한은 의외로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

 

죽음이란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어찌 보면 뻔해 보이기까지 하는 소재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 뻔하게 여겨온 우리의 잘못이 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신드롬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그 죽음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과거보다 훨씬 더 깊어졌다. 그만큼 우리가 주변에서 죽음을 더 많이 접하게 되면서 생겨난 자각일 것이다. <가족끼리 왜 이래>의 차순봉이란 아버지가 매일 적어가는 버킷 리스트는 그래서 너무 뻔하게 여겨지면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위기를 기회로, 놀라운 <무도>의 역발상

 

대담한 기획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보통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불미스런 일로 하차를 하거나 하면 프로그램 입장에서는 그 사실을 되도록 빨리 잊게 하고픈 게 인지상정이다. 그것이 자칫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져와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노홍철의 음주운전 하차를 오히려 하나의 기회요소로 바꿔놓은 것.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녹화 전날 술자리로 불려나온 출연자들은 과연 술을 마실 것인가.’ 사실 이 몰래카메라의 주제는 그 자체만으로 보면 아무런 아이템이 될 수가 없다. 사실 녹화 전날이라고 해도 맥주 한 잔 정도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박명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게 뭐 이상한가하는 반응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노홍철이 음주운전으로 하차한 <무한도전> 입장에서 이 아이템은 굉장히 흥미로운 몰래카메라 소재가 되었다. 그것 자체가 술에 대한 경각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노홍철이라는 맥거핀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단순한 몰래카메라는 보는 이들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술을 마시는 출연자를 몰래카메라로 당황하게 만들고 싶은 욕구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몰래카메라를 실패로 만드는 출연자를 기대하는 욕구다.

 

즉 이 몰래카메라는 실패해야 성공이고 성공하면 또한 실패하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혹의 거인으로 나선 서장훈이 무려 3주 간이나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몰래카메라를 장기 프로젝트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거꾸로 말하면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상당한 자기 관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3주째에 결국 몰래카메라에 걸려든 박명수, 정형돈, 하하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기본은 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몰래카메라가 가져오는 효과다. 그것은 노홍철의 음주운전 물의를 오히려 꺼내 공론화하고 심지어 거기에 불편한 정서를 가진 시청자들까지 이 몰래카메라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힘을 발휘하게 했다는 점이다. 몰래카메라라는 어찌 보면 악취미 같은 이 기획은 그래서 대중들이 길에 이어 또 터진 노홍철의 음주운전 사건으로 <무한도전>에 갖는 불편한 욕구마저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몰래카메라가 출연자들에게도 괜찮은 경각심을 주었다는 점이다. “이제 애가 아프다고 해도 의심 해야겠다고 말한 박명수처럼 이 몰래카메라를 통해 출연자들은 평소의 자기관리에 대해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그게 몰래카메라가 되어 찾아올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즉 이 <무한도전>의 몰래카메라 역발상은 어찌 보면 이 위기상황을 회피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직시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에서 놀라움을 준다. 사실 사건이 터지면 기억하기보다는 잊으려는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특히 특권층들이 어떤 불미스런 사건을 터트렸을 때 서둘러 덮어오기만 했던 건 어쩌면 이런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발생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의 역발상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잊기보다는 기억하라는 것.

 

<삼시세끼>, 수수밭에 수수노예들은 없다

 

<삼시세끼>는 드디어 수수지옥을 벗어났다. 이서진과 옥택연에 이승기와 김광규라는 두 노예(?)를 충원한 노예 수수F4’는 끝끝내 수수밭에 남은 수수들을 모두 베었다. 그 과정에서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을 보다 못한 제작진까지 모두 수수밭에 투입되기도 했다. 일을 해본 나영석 PD는 뒤늦게 노동 강도가 외외로 세다는 걸 깨닫고는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다. 왜 그들은 굳이 그 수수밭을 끝까지 베었을까. 수수를 갖고 뭔가 만들어먹는 것도 아니다. 설혹 그 수확한 수수를 내다 판다고 해도 그런 돈벌이가 프로그램에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수수에 그렇게 집착했는가가 궁금해진다.

 

그 의문은 그러나 의외로 쉽게 풀린다. 그 수수밭을 베는 장면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엄청난 수수밭 앞에 마름처럼 나타난 나PD고기 한 근에 수수 한 가마라고 얘기하는 장면은 우습다. 그것은 물론 예능의 코드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또한 제작진과 출연진 사이에 일종에 암묵적으로 허용된 놀이를 하는 듯한 뉘앙스도 들어있다. 고기를 먹으려면 수수를 베어야 하는 놀이.

 

여기에는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놀라운 매력의 원천이 숨겨져 있다. 많은 이들이 <삼시세끼>가 시골 라이프를 권장하는 귀농 프로젝트처럼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사실 <삼시세끼>와 귀농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나영석 PD 또한 인터뷰를 통해 밝힌 사실이다. <삼시세끼>는 시골에서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바쁜 도시생활에 지쳤을 때 나도 하루 정도는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단순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그 소박한 소망을 채워준다.

 

이것은 생활이라고 하기 보다는 23일 정도의 작은 여행이라고 보는 편이 낫다. 그것은 아마도 나영석 PD가 일관되게 해온 여행이라는 소재의 또 다른 버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삼시세끼>는 이처럼 먹고 살아야 하는 실생활과는 조금 거리를 둔 프로그램이다. 거기서 출연자들은 <12>처럼 한 끼를 먹기 위해 돈을 벌거나 미션을 수행할 필요는 없다. 필요하다면 읍내에 나가 음식 재료들을 사와도 된다. 나영석 PD는 의외로 거기에 기꺼이 주머니를 열어준다.

 

만일 <삼시세끼>귀농처럼 먹고 살아야 하는 리얼리티를 갖고 만들어졌다면 이처럼 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현실 자체보다는 그것을 잠시 벗어나 소소한 삶이 주는 또다른 풍요로움을 누려보게 한 것이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성공 포인트다. 그래서 그들이 하루 종일 삼시세끼를 챙겨먹으며 하는 일들은 하나의 어른들을 위한 소꿉장난의 성격을 갖는다.

 

소꿉장난이라고 하면 어딘가 너무 한가로운 이야기가 아니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이 일이나 생산성에서 벗어나 온전히 놀이로서 접하는 <삼시세끼>의 세상은 우리에게 그동안 잊고 있던 삶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면이 있다. 그토록 외치던 생산성이 사실은 우리를 삶의 주인이 아닌 노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거기서 깨닫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성과 무관한 수수밭 베는 일에 투입된 네 사람을 노예라 부르고 수수 F4’라고 부르지만 거기 진짜 노예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을 했다기보다는 하나의 게임 같은 놀이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수수밭은 그래서 노동의 공간을 놀이의 공간으로 바꿔놓은 <삼시세끼>의 상징물처럼 보인다. 그들은 물론 허리가 빠지게 수수를 베었지만 그것이 고기 한 점이라는 흥미로운 놀이 때문이라는 점은 이 수수밭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늘 일과 생산성 관점으로만 살아온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이런 놀이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을 위한 소꿉장난은 그래서 어쩌면 그 어떤 위로나 위안보다도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미생>, 우리에게 대리란 어떤 존재인가

 

회사에서 대리란 중간에 애매하게 서 있는 위치다. 이제 회사생활에 적응해 그 누구보다 정력적으로 일할 때이자, 조직 안에서 인정받아 승진해야 하는 미래를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위로는 상사를 모셔야 하고 아래로는 사원을 이끌어야 한다. 위로 치이고 아래로부터도 치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리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운 위치다.

 

'미생(사진출처:tvN)'

<미생>의 김대리(김대명)가 딱 그렇다. 그는 직장상사인 오차장(이성민)을 끔찍하게 챙긴다. 실적 위주로 일을 따오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그런 성정을 갖고 있어 뒤늦게 차장을 단 오차장을 걱정하는 인물도 김대리다. 그의 직장에서의 선택은 온전히 오차장을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한 투표에서 많은 직장인들이 김대리 같은 인물과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한 건 그런 캐릭터가 주는 따뜻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장 내에서 대리라는 존재가 본래 그런 위치에 놓여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밑으로 장그래(임시완)를 챙겨주고, 그의 작은 성장조차 기뻐하는 인물도 김대리다. 장그래가 뭔가 일을 척척해냈을 때 김대리의 싱글벙글한 얼굴을 보면 마치 자식을 보는 부모 같다. 낙하산 인사인 장그래를 탐탁찮게 여기던 김대리가 어느 날 장그래의 집을 방문해 그가 살아왔던 바둑 인생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장면은 그래서 <미생>이란 드라마에서 작은 숨통이 터지는 순간이다. 장그래라는 스펙 없는 계약직을 이해하고 봐주는 인물이 비로소 생겨났기 때문이다.

 

특별히 드라마에서 대단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김대리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는 것도 이런 대리라는 위치에 서서 그가 위아래로 바른 성품을 보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박과장(김희원) 같은 비리에 연루된 상사를 파헤치면서도 그것이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지극히 공적인 일로서 접근해야 한다고 장그래에게 말하는 인물이다. 그는 상사와 사원의 중간에 서서 일하는 데 있어서 놀라운 균형감각을 가졌다.

 

그런 김대리의 에피소드가 오차장의 꽉 막힌 직장생활로 인해 주재원 발령을 받지 못하는 이야기라는 점은 그래서 더 큰 공감을 준다. 사실 제 아무리 일을 잘해도 그 평가는 그가 모시는 상사에 의해 결정 나는 게 바로 대리라는 위치다. 그러니 오차장처럼 실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일을 자꾸 가져오는 상사는 대리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도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상사라도 다른 이들에게 험담을 들을 때면 마치 제 부모 욕을 들은 것 마냥 발끈하는 김대리다. 그가 대리들과의 술자리에서 너희가 내 상사에 대해 뭘 알아!”하고 술에 취해 소리치는 장면은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을 짠하게 만든다. 어찌 보면 자신을 힘겹게 하는 이가 오차장일 수 있지만 그런 그를 끝까지 믿고 따르는 마음이 거기서 우러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열심히 일하고 있어도 티는 잘 나지 않는 위치가 대리라는 위치일 것이다. 회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만 공은 대부분 상사에게 가기 마련이고 과는 자신에게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바로 회사생활의 대부분이 김대리가 하는 일처럼 여겨지는 것은. 지극히 조용하지만 김대리에 특히 대중들이 열광하는 건 거기서 어떤 동일시를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공기처럼 없어선 안 될 존재지만 눈에는 잘 띄지 않는 대리란 존재가 주는 먹먹함이 그에게서는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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