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가 보여주는 기막힌 미국사회에 대한 통찰

 

미국식 막장이라는 표현은 <나를 찾아줘>라는 영화에 온당할까. 아마도 끝없는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고, 숨겨졌던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져 나오며, 멀쩡했던 인물들이 끔찍할 정도로 변신하는 그 과정들이 우리네 막장 드라마를 떠올렸던 모양이다. 심지어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MBC <왔다 장보리>의 연민정(이유리)과 비교하기도 한다.

 

출처 : 영화 <나를 찾아줘>

하지만 한 마디로 얘기하면 <나를 찾아줘><왔다 장보리> 같은 우리네 막장드라마는 비교 불가다. 다만 그 속도감과 놀라운 반전에 반전이 유사하게 여겨질 뿐, <나를 찾아줘>라는 작품이 그려내는 세계의 밀도는 우리네 막장드라마들의 그 허술함과는 비교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나를 찾아줘>의 이러한 빠른 전개와 반전요소들이 그저 자극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이 하려는 주제의식과 딱 맞아떨어지는 완성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찾아줘>는 평범하게 잘 살아가는 듯 보였던 부부 닉(벤 애플랙)과 그의 아내 에이미가 보여주는 거의 막장에 가까운 그네들의 연기적인 삶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에이미 때문에 그녀를 찾아 나선 닉은 사랑하는 아내를 절절하게 찾고자 하는 남편처럼 보이지만 차츰 그와 그들의 부부생활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건이 전개되면서 점점 에이미의 실종은 마치 닉의 살인이라는 심증으로 흘러가는데, 이것은 이 2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가 본격적인 반전을 만들어가는 데 거의 시작 부분에 해당할 뿐이다.

 

아주 담담하게 시작했는데 영화가 흘러가면서 점점 사건들이 중첩되고 그로인해 예측과 배반이 계속되는 이 흐름은 특별한 스펙타클 없이 이야기로만 흘러가는 이 긴 영화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이토록 이야기의 세계에 푹 빠지게 만드는 그 힘은 영화가 가진 놀라운 스토리텔링 능력 덕분이다. 영화는 한 쪽으로 이야기를 몰고 나갔다가 그 지점에서 다시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틀어버리는데 대단히 능하고, 그것은 또한 작품이 말하려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놀랍기까지 하다.

 

영화가 반전을 모티브로 삼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야기는 스포일러에 해당되는 것일 게다. 하지만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이 영화는 연기하는 삶의 끔찍함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들 쇼윈도 부부라고 부르는 그 연기하는 삶이 어떻게 자본주의와 결탁하고 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끔찍한 짓들이 자행되면서도 전혀 도덕적으로 둔감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 <나를 찾아줘>라는 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도대체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삶. 그것은 이 영화의 극적인 전개만을 빼놓고 본다면 우리네 현대인들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그 복잡한 삶 속에서 겉으론 멀쩡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잘 살아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본색이 숨겨진 채 연기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지 않던가.

 

<나를 찾아줘>를 보면서 또 한 가지 떠오르는 건 미국이라는 사회가 가진 이중적인 얼굴이다. 겉으로 보면 미국(美國)’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의 외견을 보여주지만 어디 실체가 그런가. 로맨틱한 사랑의 이면에서도 쿨하다는 시대적 연기 강령을 가진 미국은 그 속에 자본의 욕망을 버리지 않는다. 사랑한다 하면서 모든 걸 제 손에 쥐고 통제하려는 욕망은 그래서 때로는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를 찾아줘>는 그래서 한 멀쩡해 보이는 부부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미국 사회가 가진 이중적 얼굴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미국식의 자본주의를 이식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문제가 아니다. 이 기막힌 미국사회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영화가 막장이라고? 만일 이런 게 막장이라면 매일 보고 싶다.

 

화생방 닮은 '진짜사나이', 그 최루와 진정성 사이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여러 차례 해도 도무지 적응 안 되는 것이 화생방 훈련이라는 걸 잘 알 것이다. 물론 유격훈련이든 혹한기훈련이든 야전으로 나가기만 하면 늘 새롭게만 느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래도 이 눈물, 콧물 쏙 빼고 그 안에서 꼭 시키는 어머니의 마음을 부를 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라는 가사에서 울컥할 수밖에 없던 화생방 훈련의 추억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그래서일까. MBC <진짜사나이>여군특집으로 한껏 상승했다 빠져버린 기대감을 신병특집으로 이어가면서 부랴부랴 화생방 훈련의 추억을 끼워 넣었다. 역시 늘 봐도 어쩔 수 없는 그 짠함은 이번 신병특집에서도 여지없이 힘을 발휘했다. 파이터라는 이미지와는 상반되게 때때로 여성적인 면(?)을 보여주는 김동현은 화생방 교장 안에 가득한 CS가스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분리한 정화통이 끼워지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김동현을 돕겠다고 나선 임형준은 그러나 제대로 끼우지도 못해 오히려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아내 홍은희가 여군특집때 화생방 교장 안에서 의연하게 버티던 모습에 자극받은 유준상은 꿈틀대면 지는 거다라며 고통을 참아냈고, 그 와중에도 주변 훈련병들을 챙겨주는 자상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호기심에 들떴던 육성재는 훈련을 받고 나서는 할 것이 못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천식이 있어 자신은 정화통을 분리하고 다시 채우는 훈련에서 열외된 문희준은 동료들이 힘겨워하는데 자신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 말 때문에 울컥한 유준상이 눈시울을 붉히자, 그걸 본 임형준은 말문이 막혀 버렸고, 결국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동료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여군특집에서 굳건하게 버텨내던 홍은희와 김소연에게서 느껴졌던 그 뭉클함이 신병특집의 군대 복학생(?)들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졌다. 해병대를 나왔다는 김동현도, 그들이 훈련받고 있는 이기자 부대를 나온 유준상도 신병이라는 딱지를 받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어리버리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임형준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적지 않은 나이들은 그 어리버리함마저 짠함으로 바꿔버린다.

 

그런데 궁금해지는 대목이 있다. 과연 이 뭉클함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군대를 다시 가 체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청자 입장에서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본다는 것은 짠한 감정을 동반한다. ‘힘겨워도 포기하지 않고 애쓴다는 그 힘겨운 몸들의 언어들은 모든 몸 가진 자들의 똑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억지로 짜낸 땀과 눈물, 콧물은 아닐까.

 

바로 이런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순간부터 <진짜사나이>가 주는 그 짠함과 뭉클함은 하나의 최루성의 신파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 안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연예인들은 그 노력하는 모습의 진정성이 분명 있다. 그들은 직업인으로서 방송인으로서 온 몸을 던져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 부재한 한 가지는 이런 눈물 콧물을 빼는 장면들을 보여주는 제작진의 진정성이다. 화생방 훈련이 한 번 보여질 때만 해도 마치 꼭 느껴봐야 할 군대 체험의 백미처럼 느껴졌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반복해서 계속 보여질 때 슬쩍 보이는 것은 역시 화생방의 고통을 드러내줘야 시청자들이 주목한다는 제작진의 학습효과다.

 

그래서 화생방 교장 안에서 눈물 콧물을 흘려대며 동료들을 챙기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뭉클한 마음을 갖게 되다가도, 그 뭉클함이 혹시 저 교장 안에 퍼져 있는 CS가스 같은 자극을 통한 최루성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이것은 어쩌면 <진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특징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군대라는 화생방 교장 속으로 들어가 사회에서의 안전한 방독면을 벗고 CS가스 같은 훈련들 속에서 땀과 눈물을 쏟아낸다. 그 최루와 진정성 사이. 그곳이 <진짜사나이>가 서 있는 곳이다. 그렇게 보면 왜 이 프로그램이 그토록 호평과 논란을 동시에 가져오고 있는가 하는 게 새삼 이해될 것이다.

 

MBC 교양국 해체에 왜 이승환은 분노했을까

 

좋은 다큐멘터리 한 편이 가진 힘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가수 이승환에게는 각별했던 모양이다. 2006MBC <휴먼다큐 사랑>에서 방영된 너는 내 운명편 이야기다. 간암 말기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서영란씨와 이를 알고도 결혼한 정창원씨의 이야기를 본 이승환은 깊은 감동을 받고 다큐멘터리를 보자마자 곡을 써내려갔다. 그 노래가 바로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히든싱어3(사진출처:JTBC)'

아마도 이 감흥은 이승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게다. 당시 너는 내 운명을 본 시청자들이라면 당시 죽음을 앞둔 서영란씨와 정창원씨가 보여줬던 병원에서의 결혼식이 다시금 눈앞을 가릴 것이고, 앞에서 차마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인터뷰 도중 PD를 껴안고 울어버린 정창원씩의 모습이 여전히 아른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영란씨는 서둘러 떠나버렸지만 우리 모두의 가슴에 여전히 살아있다.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라는 이승환의 곡은 그래서 이제 그에게만 특별한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당시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토록 간절하게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했던 모든 이들을 위한 곡으로 남았다. 이것은 좋은 다큐멘터리 한 편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일이다. 떠나버린 그녀는 다큐멘터리를 남겼고, 그 다큐멘터리는 노래로 탄생됐으니 말이다.

 

이승환이 MBC 교양국 해체에 대해 분노하는 건 그래서다. 그 기적 같은 일들을 가능하게 했던 그 PD들이 제작과는 무관한 부서로 보내진다는 사실이 어찌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일까. 교양국이 해체되어 PD들은 예능국으로 보내지거나 아니면 그간 해왔던 일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보내지게 되었다. 당시 <휴먼다큐 사랑>은 물론이고 <아마존의 눈물> 같은 대작을 기획했던 윤미현 PD는 지금 어느 부서로 가있는지 조차 모르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시청자들에게 좋은 감동을 선사하고 시청자들을 위해 올바른 시각을 전달하기 위해 외압과 싸워온 분들이 좌천되고 사라져가고 있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런 점에서 MBC 교양국의 해체는 말 그대로 교양 없는’ MBC를 상징하는 사건처럼 보인다. 이승환의 곡을 빌려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그래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또 누구보다 자기 일에 소신을 갖고 일해 온 사람들이 눈앞에서 밀려나는 세상에 희망을 갖기는 어렵다. 지난 정권부터 계속되어온 MBC의 추락은 그래서 단순한 시청률 몇 프로의 수치만으로는 더 이상 회복될래야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매회가 공감, <미생> 수직상승의 비결

 

아이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워킹맘은 죄인이다. 회사에서는 야근시간에 아이를 챙겨줄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에게 사정하기 바쁘고, 그도 안 되면 잠깐 나와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집에 데려다놓고 다시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회사에서도 눈치를 보지만 워킹맘은 집에서도 눈치를 본다. 맞벌이 하는 남편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지만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슈퍼우먼이어야 하고, 아침부터 바쁜 업무로 전화 통화를 하다가 엄마를 보내는 아이의 슬픈 눈빛을 마주하기도 해야 한다. 그것이 tvN <미생>이 보여준 워킹맘의 비애다.

 

'미생(사진출처:tvN)'

첫 회부터 장그래(임시완)를 통해 스펙 없는 청춘의 비애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 <미생>, 2회에서 인턴 장그래가 누명을 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진실이 한 가장을 곤란하게 만들 것을 알고는 술자리 푸념으로 풀어내는 팀장으로서 가장으로서 살아가는 중년의 비애를 오과장(이성민)을 통해 보여준 바 있다. 그리고 3회에서는 부하직원의 징계를 막기 위해 싫어하는 상사에게 고개를 숙이는 오과장을 통해 팀장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4회에서는 인턴들의 PT를 통해 경쟁과 협력이라는 직장생활의 양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5회는 여자로서 회사생활을 한다는 것의 비애를 선차장(신은정)과 신입사원 안영이(강소라)가 겪는 차별과 모욕을 통해 보여주더니, 6회에서는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해, 비즈니스를 위해 친한 친구를 접대해야 하는 오과장의 이야기와, 착하고 여린 심성 때문에 거래처에게 오히려 휘둘리는 박용구 대리(최귀화)와 그를 돕는 장그래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었다.

 

회사 생활에서 부딪치는 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미생>이 담아내는 건 완전히 새로운 사건들이 아니라 바로 그 우리네 샐러리맨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회사 생활의 편린들이다. 거기에는 부하직원으로서의 괴로움도 있지만 팀장으로서의 고충도 있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기 마련인 사회적 차별의 시선도 있다. 갑을 관계라고 하면 무조건 을에게 갑질 하는 것만을 떠올리지만 <미생>은 때로는 갑을 두고 을질 하는 거래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낸 그들이 그래서 저녁 시간에 너 나랑 술 한 잔 할래?”하고 물어보는 그 말에는 깊은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미생>에서 종종 나오는 팀장과 부하직원 간의 선술집에서의 소주 한 잔은 그래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그 소소한 한 잔만이 하루를 견뎌낸 그들이 갖는 유일한 위안과 위로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 취한 체 돌아온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은 늘 사직서를 책상 한 귀퉁이에 넣어두고도 그 하루를 버텨내는 힘이 된다.

 

이것은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매 회 수직상승하는 비결이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카메라는 아주 가까이 다가가 하나하나 포착해내고, 그 이면에 담겨진 소소한 기쁨과 커다란 아픔들을 공감하게 해준다. 이 샐러리맨들의 하루하루 이야기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그 이야기가 완전히 새롭다거나 극적이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좀 더 가까이 그 이야기에 다가간 바로 그 따뜻한 시선에서 나온다.

 

<미생>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길거리에서 회사에서 혹은 집에서조차 지나치고 마는 샐러리맨들에게 보내는 헌사다. 그들의 일상이 그저 그렇게 지나칠 정도로 가치 없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드라마의 디테일은 그래서 그 자체로 샐러리맨들에 대한 이 작품의 태도를 담아낸다. 그러니 이제 주변에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그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그들의 삶에서 특별함이 발견될 것이니. 밥벌이 앞에 그 누구도 위대하지 않은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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