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혁 탈락한 <슈스케6>, 곽진언과 김필의 대결 그 의미

 

사실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그림 그대로일 것이다. <슈퍼스타K6>의 파이널에서 만날 곽진언과 김필의 대결. 아니 이미 이전에 임도혁까지 들어간 톱3 역시 벗님들당신만이를 이들이 함께 불렀을 때부터 많은 이들이 예상한 그림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스타일이 달랐지만 각자 가진 스타일만으로도 매력이 충분했다.

 

'슈퍼스타K6(사진출처:Mnet)'

어찌 보면 이번 <슈퍼스타K6>를 되살린 장본인들이 바로 이 세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혼자서 부르거나 함께 부르고 또 흩어져 다른 출연자와 경쟁 또는 협력을 보여주면서 <슈퍼스타K6>의 전체 흐름을 만들어왔다. 곽진언은 마치 프로듀서 같았고, 임도혁은 절정의 가창력으로 새롭게 곡을 조명해내는 역할을 했으며, 김필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인물 같았다.

 

그러니 이미 톱3에 이 세 사람이 들어간 연후에는 사실 누가 우승자가 된들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이들이 톱3 무대에서 도입부분에 함께 다시 콜라보레이션을 한 비틀즈의 렛 잇 비(Let it be)’처럼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두어도 아무 상관없는.

 

<슈퍼스타K6>가 이전 시즌에는 좀체 하지 않았던 5억 원 상금을 강조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이 누가 되도 상관없는 인물들에게 어떤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5억 원이라는 상금은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들에게도, 또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도 훨씬 주목을 이끌어내는 요인임에 분명하다.

 

3에서 임도혁이 탈락하게 된 것을 두고 가창력이 아닌 외모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슈퍼스타K>는 지금껏 이 외모적인 부분 또한 중요한 변수라고 늘 강변해왔다. 실제로 임도혁의 첫 무대를 보고 난 후 이승철은 살을 빼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것이 당락에 변수를 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모 또한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지 임도혁이 외모 때문에 떨어졌다는 건 너무 과한 이야기다. 대신 곽진언, 김필, 임도혁의 톱3에 대해 갖는 대중들의 취향이 반영됐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곽진언이 저음과 가사전달, 감성 등의 취향을 자극한다면, 김필은 가사 전달력은 상대적으로 약해도 강력한 고음과 그만의 특별한 필이 우리의 취향을 자극한다. 임도혁은 그런 점에서는 가창력에 더 무게중심이 얹어지는 출연자다.

 

결국 완벽한 가창력이 우선이던 시대는 과거 <슈퍼스타K2>의 허각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어떻게 최대치로 끌어내는가가 더 중요한 시즌으로 접어들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곽진언과 김필의 양대 대결구도는 바로 이 개성과 개성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탈락했지만 임도혁은 이미 소울풀한 가창력을 가진 가수의 탄생을 보여주었다. 남은 건 이제 두 사람이다. 만일 곽진언이 우승을 한다면 오디션 역사상 이렇게 저음으로 승부한 사례를 찾기가 어렵다는 진기록을 남길 것이다. 김필이 우승한다면 우리는 독특한 컬러를 가진 매력적인 고음 감성 보컬의 탄생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취향에 손을 들어주게 될 것인가. 다음 주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12>부터 <꽃할배>, <삼시세끼>까지, 이서진의 매력

 

이서진씨가 완전히 물이 올랐어요.” <삼시세끼>의 승승장구에 대해 나영석 PD는 이렇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신기한 일이지만 이서진이라는 인물은 나영석 PD만 만나면 반짝반짝 빛난다. 최근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은 최근 <삼시세끼>로 인해 재조명되는 느낌이다. 이 드라마에 출연했던 이서진을 중심으로 함께 삼시세끼를 해먹는 옥택연과의 조합이 만들어졌고 윤여정, 최화정, 김광규, 김지호가 연달아 출연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참 좋은손님들은 이 MSG 없는 예능 프로그램에 괜찮은 양념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양념으로서 기여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 이서진이라는 손맛이 있었다는 점이다. 열심히 하려는 택연에게 노예근성운운하는 말로 캐릭터를 부여한 것도 이서진이고, 김광규가 왔을 때 수수밭만 베라고 그를 자꾸 부추긴 것도 바로 이서진이며, 김지호에게 뱃속에 거지 앉았냐고 투덜대며 텃밭 브레이커의 탄생을 알린 것도 이서진이었다류승수는 이서진에게 속아 아궁이 일꾼이 되었다. 이서진은 하다못해 염소 잭슨과의 러브라인(?)까지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나영석 PD 말대로 물이 오른 것(?)이 분명하다.

 

이서진의 가능성을 처음 나영석 PD가 발견한 건 <12> 때다. <12>에서 이서진은 미대 형이라는 캐릭터로 불렸다. 전혀 웃길 것 같지 않은 진지함을 보이는 인물이지만 엉뚱한 면으로 웃음을 주었다. 이 때부터 투덜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러면서도 특유의 선한 이미지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기도 했다.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은 조커 역할을 했다. 어르신들에게 대놓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상황을 나영석 PD는 이서진을 중간에 놓음으로써 해결했다. 이서진을 끊임없이 힘겹게 만들고 또 깐족대는 것으로 나영석 PD는 이 어르신들의 여행에 톡톡 튀는 재미를 만들어냈다. 이서진의 매력은 투덜대면서도 할 건 다 하는(심지어 아주 잘 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어르신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나영석 PD에게는 으르렁대는 모습에서 이서진의 양면적 매력이 탄생했다.

 

<삼시세끼>는 악덕 마름 같은 나영석 PD와 투덜대는 노예 같은 이서진 캐릭터의 조합이 흥미진진한 재미를 만들어낸다. 고기 한 점에 수수 빚을 받는 마름 나영석 PD, 빚이 불어남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손님들 때문에 점점 고기를 찾게 되는 이서진이 곤란해지는 그 상황을 한껏 즐기는 모습이다.

 

즉 이서진이라는 대체 불가의 매력이 탄생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그 악역을 자처한 나영석 PD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악역처럼 보인다. 물론 그 악역에게서 실제 악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중요하다. 나영석 PD는 악당이라기보다는 악동 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그저 순응하기보다는 투덜대는 캐릭터가 훨씬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결국은 시키는 일을 하는 캐릭터는 더더욱 재미있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점점 노예처럼 길들여가는(?) 악동 캐릭터는 마치 시청자들의 욕구를 반영하듯 은근한 쾌감까지 선사한다. 하지만 이들의 전체 그림이 주는 느낌은 살풍경한 것이 아니라 참 좋은훈훈함이다. 이렇게 좋은 캐릭터들이니 승승장구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이서진이 나영석 PD만 만나면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다.

 

<피노키오>, 제2의 <너목들>? 그 이상인 까닭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사회적 범죄를 다루면서 타인의 속내를 읽어내는 초능력과 그 과정에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멜로까지를 다 잡은 이른바 복합장르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준 바 있다. 박혜련 작가가 다시 들고 온 <피노키오>라는 작품을 대중들이 기대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피노키오(사진출처:SBS)'

기대한대로 <피노키오>는 그 첫 회만으로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만큼의 잘 봉합된 복합장르의 틀을 보여주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져왔다면 <피노키오>는 기자라는 직업을 다루었다. 다루는 내용도 사회적 범죄에서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언론의 문제로 바뀌었다. 남다른 명석한 두뇌와 암기력의 소유자인 최달포(이종석)와 벌써부터 핑크빛 기류를 만들고 있는 최인하(박신혜)와의 멜로도 있다.

 

하지만 <피노키오>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단순한 복합장르때문이 아니다. 이런 복합장르를 통해 이 작품이 전하려는 이야기가 가진 힘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피노키오>가 첫 회에 던져놓은 것은 거짓말이라는 화두다. MSC 보도국의 송차옥(진경)은 기자로서 진실 그 자체보다는 보도의 효과에 더 집중하는 거짓말을 대변하는 기자다. 그녀의 캐릭터는 이 한 마디로 정리된다. “팩트보다 중요한 게 임팩트야!”

 

최달포는 바로 이 송차옥의 거짓말 보도 때문에 가족을 모두 잃고 섬 마을로 들어와 자란 인물이다. 그런데 달포는 자신을 아들로 착각하는 최공필(변희봉)에게 거짓으로 아들인 척 함으로써 결국 입양된다. 거짓말로 피해를 본 인물이지만 그는 때론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기자가 된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거짓말의 효용도 알지만 폐해도 알고 있는.

 

반면 최인하는 피노키오 증후군을 갖고 있어 거짓말 자체를 못하는 인물이다. 그래서는 그녀는 가질 수 있는 직업이 별로 없다. 그녀의 등장인물 소개란에는 이런 재치있는 인물설명이 들어있다. ‘변호사, 국회의원, 작가, 배우, 그 어떤 직종도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기자가 된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는.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초능력을 가졌다면 <피노키오>는 역발상이다. 초능력이 아니라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능력의 부족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이 능력의 부족일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초능력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실 거짓말의 유혹이란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넘기 힘든 한계처럼 여겨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거짓말을 못한다는 건 또 다른 능력이 될 수 있다.

 

결국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그러했듯이 <피노키오>가 다루는 것 역시 소통의 문제. 아예 대놓고 기자들을 등장시켜 언론과 진실의 문제를 다루겠다는 건 그만큼 진일보한 <피노키오>의 야심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유독 사건사고와 논란이 그리도 많았던 올해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과연 진실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매체를 통해 매번 보고 듣고 접하는 모든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

 

범접할 수 없는 경지 보여준 <유나의 거리> 김운경 작가

 

요즘 드라마 중견작가들에게는 찬사보다는 비난이 더 가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아온 실력을 어느새 부턴가 시청률 좇는데 쓰고 있는 중견작가들이 많아진 탓이다. 특히 최근 들어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한 이른바 막장드라마들의 전면에 나선 작가들이 다름 아닌 중견작가들이라는 점은 씁쓸하다. 임성한, 문영남, 서영명은 대표적이다. 그 중에서도 임성한 작가는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드라마 문법 자체를 파괴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유나의 거리(사진출처:JTBC)'

중견 작가 중에서도 김수현 작가는 거장이다. 확실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김수현 작가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여러모로 김수현 작가답지 않은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다. ‘세 번째 결혼은 나와 한다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문학적일지는 몰라도 드라마로서는 너무 작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도 김수현 작가는 지킬 것은 지키는 작가다.

 

사실 중견 작가로서 오랜 세월 자리하면서 현 세대와 소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또한 그 정도의 공력을 쌓아왔다면 자기만의 세계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세계가 여전히 지금도 통한다는 것 역시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종영한 <유나의 거리>는 김운경 작가의 범접할 수 없는 경지를 보여준 작품이면서 동시에 지금의 세대와도 소통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나의 거리>를 쓴 김운경 작가를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라 부르는 건 그의 작품이 그 어떤 작가도 따라할 수 없는 세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나의 거리>는 그저 소소한 가족드라마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난 하나의 사건으로 흘러가는 극적 구조도 아니다. 또 우리가 흔히 봐왔던 재벌가 이야기나 그저 그런 신데렐라 이야기는 아예 찾아보기도 힘들다. 바로 우리 옆에서 살아갈 것 같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상적인 수준에서 다루는데 이처럼 흥미진진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김운경 작가가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예리한 관찰력에서 비롯된다. 제목이 유나가 아니라 <유나의 거리>가 된 데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거리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포착하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우리는 <유나의 거리>를 통해 보기 드물게 건실한 청년 창만(이희준)은 물론이고 한 때 소문난 조폭두목이었지만 인간적인 정이 느껴지는 만복(이문식), 과거엔 잘나가던 건달이지만 마지막엔 치매를 앓으며 기초수급생활자로 살아가는 장노인(정종준), 그밖에도 개장수 홍계팔(조희봉), 칠쟁이 변칠복(김영웅) 등등을 만났다. 그들은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들로 우리의 마음에 남았다.

 

다세대주택에서 이들이 서로 부대끼고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저 돈이나 성공에 대한 욕망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우리네 삶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누구나 고민 한 자락씩은 갖고 있고 그럼에도 서로서로 기대며 보듬고 사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는 걸 드라마는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 느끼게 해준다.

 

이런 것이 어쩌면 우리가 중견작가들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일 게다. 중견이라면 적어도 삶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 생길만한 위치다. 그렇다면 이들이 그리는 드라마는 무언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여전히 살생부를 휘두르며 비상식적인 드라마 전개로 시청률만을 노리는 중견이라면 없느니만 못할 것이다.

 

김운경 작가는 확실히 문학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번 <유나의 거리>에도 곳곳에서 느껴지는 문학적 상황들을 마주할 수 있다. 마치 소설가 이문구의 소설을 읽는 듯한 해학적인 상황들이 <유나의 거리>에서는 번뜩인다. 한창 잘나갈 때 서로 구역 다툼으로 으르렁대던 주먹들이 나이 들어 병원에 나란히 누운 채 서로의 몸을 걱정하는 장면 같은 건 인생이 갖는 시간의 무게감을 느껴보지 못한 젊은 작가에게서는 도무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김운경 작가는 <유나의 거리>를 통해 중견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를 지금 세대와 소통하려 애쓰는 그 모습에서는 중견의 품격이 느껴진다. 모쪼록 많은 중견들이 이런 노력을 보여주기를. 그것은 우리네 드라마를 제대로 빛내주는 일이고 또 후배들을 위한 길을 열어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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