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 자연스러움을 잃었지만 이야기를 얻었다

 

<정글의 법칙-미크로네시아> 편의 초반부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추리하는 이야기를 바탕에 깔았다. 첫 생존지였던 난마돌에서는 ‘92개 섬의 비밀을 또 코스라에에서는 ‘1617분의 비밀을 찾고 밝히는 것이 그 미션이었다. 사실 이런 미션은 이전 <정글의 법칙>에서도 종종 등장했었다. 이를테면 야수르 화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던가, 아니면 나미비아의 악어섬에서 뗏목을 만들어 자력으로 탈출하는 것 같은 것이 모두 미션의 일부였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하지만 그 미션들이 자연스럽게 정글에서 생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반면, <정글의 법칙-미크로네시아> 편이 보여준 미션은 약간은 인위적인 느낌을 주었다. 비밀을 밝히는 것은 실제 먹거리를 구하고 잠자리를 확보하는 것 같은 실제 생존에 필요한 일은 아니다. 물론 미크로네시아 편에서도 병만족은 생존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생존은 기본일 뿐 <정글의 법칙>에서 그다지 새롭다거나 특별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생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추크섬에서 미션으로 주어진 김병만 족장 없이 50시간 분리생존은 이제 <정글의 법칙>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걸 말해준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저 정글이라는 혹독한 환경에 들어가 추위와 폭염, 비바람과 고산지대의 환경 또 벌레와 사투를 벌이며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정글의 법칙>은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언 100회를 바라보는 지금 업그레드된 김병만과 병만족의 생존기는 어느덧 이 프로그램의 기본을 채워줄 뿐이다.

 

이제는 그 생존기 위에 또 다른 스토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래서 김병만 없이 분리해 50시간을 생존하라는 식의 미션은 제작진의 인위적인 개입이 시작됐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분리시켜놓자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병만의 섬에서의 독거생활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마치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뚝딱뚝딱 배를 만들고 바다로 나가 문어를 잡고 조개를 캐 혼자 외롭게 먹는 장면이 가능해진다. 혼자 생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양할 병만족이 없어 여유롭고 풍요롭게마저 느껴지지만 외로움 때문에 입맛까지 잃어버리는 상황.

 

한편 김병만이 없자 임원희를 임시족장으로 하게 되면서 어딘지 부실한 생존기가 가능해진다. 먹을 것을 구하러 김병만이 바다로 나간 틈을 이용해 그 섬을 약탈(?)하는 동생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들이 약탈해간 흔적 속에서도 오히려 그들이 더 가져가게 먹을 걸 챙겨두지 않은 걸 후회하는 김병만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지기도 한다. 즉 인위적으로 부여된 미션과 설정이지만 바로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다음 주부터 이어지는 <정글의 법칙> 100회 특집은 헝거게임을 모티브로 끌어들였다. 지금껏 나왔던 정글 체질(?) 출연자들 예를 들어 추성훈이나 여전사 전혜빈 같은 인물들이 제작진이 제시하는 미션을 수행해내는 과정을 담을 것으로 보인다. <헝거게임>이 그런 것처럼 일종의 게임 미션이 정글이라는 생존 환경 속에서 제시되는 것. 그 게임 상황은 인물들 간의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이야기로 전개될 가능성이 많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렇게 변화된 <정글의 법칙>은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었다. 잃은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가는 공간에 따라 다른 야생의 자연환경과 인간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나던 것이 상당부분 희석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를 통해 얻어낸 것은 새로운 스토리의 가능성이다. 인위적인 설정은 물론 제작진이 부여하는 미션이기 때문에 <헝거게임>처럼 마치 정글에서 펼쳐지는 서바이벌 게임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얼마나 <헝거게임>을 흉내내는 것이 되지 않고 <정글의 법칙>만의 이야기로 풀어내느냐가 관건이 된다.

 

자칫 잘못하면 정글에서 벌이는 <런닝맨>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뉴질랜드편에서부터 불거져 나온 리얼리티 논란이 좀체 사그라들지 않는 현 상황에서 <정글의 법칙>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자연스러움을 잃은 대신 새로운 스토리를 추구하기 시작한 <정글의 법칙>은 향후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대단히 궁금한 대목이다.

<별그대> 새드엔딩 가능성 희박한 이유

 

<별에서 온 그대>의 엔딩은 과연 어떻게 될까. 물론 그 결과는 작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흘러온 흐름을 통해 들여다보면 조심스럽게 그 결과의 가능성들을 유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이질적인 존재들의 사랑. <별에서 온 그대>가 그린 것은 궁극적으로 그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친형을 죽이고 모든 것을 빼앗은 소시오패스 이재경(신성록) 같은 인물이 들어있어 스릴러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었고, 또 그의 위협을 받는 천송이(전지현)를 초능력으로 보호해주는 도민준(김수현)이 있어 슈퍼히어로물의 판타지가 섞여 있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이 드라마의 궁극적인 장르는 멜로, 그것도 로맨틱 코미디다.

 

천송이와 도민준의 밀고 당기는 감정 놀이가 그 중심에 있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판타지적인 즐거움을 목표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새드엔딩은 이 작품이 흐름 상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것이 지금껏 이 작품에 몰입해온 시청자들의 흥취를 깨버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피엔딩일 가능성이 높은데, 여기에는 또한 두 사람의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존재한다. 이재경 같은 소시오패스의 위협이나 이휘경(박해진) 같은 애정의 라이벌은 겉으로 드러난 장애물일 뿐 근본적인 장애물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이 이 두 사람이 외계인과 인간이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과거 <ET> 같은 외계인과 소년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 있었지만, 최근 들어 이질적인 존재들의 우정이나 사랑을 다루는 작품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지고 있다. 뱀파이어와 소년의 사랑을 그린 <렛미인>이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그리고 인간 같은 여러 종족이 뒤엉킨 사랑이야기를 다룬 <트와일라잇> 시리즈도 같은 부류.

 

과거 제거되어야 할 공포의 대상이었던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같은 이질적인 존재들이 사랑의 대상으로 고민되는 것은 지금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대에 돌입해 있다는 징후다. 다른 존재들은 배척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다양성으로 존중된다. 그러니 <X> 같은 존재들도 어떻게 그 다름을 서로 인정하며 공존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별에서 온 그대>는 궁극적으로 이 이질적인 존재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또 장애를 극복하거나 혹은 감수하는가를 보여준다. 인간과의 신체접촉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도민준이 천송이와 키스를 하고, 또 지구를 떠나지 않으면 죽게 될 위험에도 떠나지 않겠다 선언하는 것. 사랑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도민준은 그래서 이질적인 존재들의 사랑이 결국은 희생을 전제한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외계인과 인간으로 극화되어 있지만 사실 이건 우리네 인간들의 사랑이야기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결국 우리 각각의 인간들은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정부분을 희생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내는 것일 테니 말이다.

 

도민준은 이미 그 희생을 보였고 그 희생의 대가로서 일어날 수 있는 징후들을 복선으로 깔아놓았다. 그는 점점 능력을 상실해간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천송이가 도민준에게 자신을 다시 초능력으로 띄워달라고 요구하지만 도민준은 그녀를 띄우는 걸 오래 버텨내지 못한다. 물론 그 장면은 마치 남자의 성적 능력 상실을 패러디한 것처럼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사랑이 가진 한 단면이기도 하다.

 

그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고 늙어 간다는 것. 그리고 어느 날 눈을 감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네 삶이고 사랑이다. 도민준이 살아온 4백년의 시간과 아무 일도 없었다면 앞으로도 계속 살아낼 무한한 시간들 속에서 그와 그녀가 만난 그 짧디 짧지만 강렬했던 순간이 없었다면 그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간은 실로 양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질적인 개념이다.

 

그러니 도민준이 <ET>처럼 천송이와의 이별을 고하고 제 별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렛미인>처럼 훗날 어떤 비극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 순간을 함께 하는 걸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비극이 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해피엔딩 속에 담겨진 비극적인 요소는 그래서 그들의 행복을 방해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강렬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더욱 삶이 누군가의 사랑이 간절해지는 것처럼.

KBS <예체능>SBS <힐링캠프> 소치효과 있었나

 

다음의 연예 홈에는 소치로 간 예능들 이 팀이 제일 기대된다라는 제목의 투표란이 눈에 띈다. 이번 소치 동계 올림픽에 간 예능 프로그램들에 대한 기대감을 묻는 투표다. KBS<우리동네 예체능>, SBS<힐링캠프>, MBC<진짜 사나이>가 그 대상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흥미롭다. 지금까지 68백여 명이 투표한 결과에서 67%가지 말았으면...’을 눌렀다는 점이다. <우리동네 예체능>15%, <진짜 사나이>11%, <힐링캠프>7%에 불과했다.

 

사진출처:Daum

물론 방송 3사가 거둬간 투표결과는 팬덤이 작용한 면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미미한 수치의 순위는 사실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무려 67%가지 말았으면...’을 눌렀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투표란 밑에 달린 댓글 중에는 가지 말았으면...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 줄 알았다는 결코 웃지만은 못할 뼈있는 농담까지 달려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사실 예능 프로그램의 국가적인 스포츠 행사 참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MBC <일밤>이경규가 간다는 월드컵 경기 현장에서의 생생한 응원을 찍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국가적인 스포츠 행사가 갖기 마련인 국민적인 관심과 예능 특유의 중계방송과는 차별화된 시점의 제공은 이런 류의 프로그램의 승승장구를 알렸다.

 

그래서일 것이다. 방송3사는 이번 소치 올림픽에 저마다 예능 프로그램을 투입시켰다. <우리동네 예체능>은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현장에서 강호동이 일일 해설자로, 박성호가 일일 기자로, 또 줄리엔 강과 존박이 응원자로 나서 다각적인 시각으로 경기장의 풍경을 전해주었다. 강호동의 온 몸으로 하는 해설은 말이 주지 못하는 진심을 드러내주기도 했고 끝까지 서기철 캐스터와 나윤수 해설위원에게 혹여나 폐가 됐을까 부족한 저를 잘 이끌어주셨습니다라고 거듭 말하는 강호동의 조심스러움도 느껴졌다.

 

하지만 좋은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동네 예체능>은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이 방송이 나가기 전에 아무런 사전 고지 없이 KBS의 이상화 경기 중계에 강호동이 일일 해설자로 들어갔다는 점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동네 예체능> 프로그램의 일환이고 그의 역할이 그저 보조적인 감초의 역할이라는 것을 충분히 대중들에게 알리지 못한 점은 마치 강호동이 허락 없이 해설자의 자리에 앉게 된 것처럼 대중들을 불편하게 했다. 물론 <우리동네 예체능>이 방영되면서 그 실상이 보여졌지만 이미 엇나간 대중정서를 잡기는 어려웠다는 것.

 

<힐링캠프>는 그런 점에서 보면 무리하지 않은 시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경규는 과거 <이경규가 간다>처럼 현장으로 뛰어들기보다는 보다 차분하게 <힐링캠프>라는 토크쇼 안으로 금메달리스트 이상화와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규혁 선수를 초대했다. 국민적인 관심을 갖게 만드는 이상화 선수의 출연 그 자체가 속보적인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이 날 <힐링캠프>10.6%(agb닐슨)의 높은 시청률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왜 예능 프로그램이 소치에 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더 많이 보일까. 이렇게 된 것은 좀 더 스포츠 중계로서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대중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예능적인 포인트가 가미된 스포츠 중계는 자칫 몰입을 방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 중계만의 묘미는 예능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김연아 선수 경기중계에서 배기완-방상아 콤비가 보여준 것은 바로 그 전문성과 경험이 가진 힘이다.

 

또한 달라진 것이 과거에는 예능 프로그램의 올림픽 같은 국제적인 행사 참여가 그 행사에 대한 지원처럼 여겨졌지만, 요즘은 정 반대로 그 행사에 그저 숟가락을 얹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연예인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과거와는 달라진 점도 한 몫을 차지한다. 즉 연예인 프리미엄이 그 어느 때보다 빠져가고 있는 시대에 연예인은 도움을 주는 인물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인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도움을 주는 것과 민폐를 주는 것은 방송에 있어서는 종잇장 한 장 차이처럼 미세한 대중정서에 의해 판가름 나기도 한다. 보다 생생한 현장을 보여주겠다는 좋은 의도로 접근해도 어떤 작은 오해의 틈입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것은 민폐로 돌변한다. ‘가지 말았으면...’ 하는 대중들의 마음은 바로 이런 정서에서 출발한다. 예능에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면 스포츠에 도움이 될 것인가. 대중들은 이제 스포츠 제전을 온전히 스포츠로서 즐기고픈 욕구가 더 커진 것 같다.

김연아와 안현수, 숟가락만 얹는 부끄러운 대한민국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 너는 48초 동안 숨죽인 대한민국이다. 너는 11번을 뛰어오르는 대한민국이고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다. 너는 1명의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

 

'패러디영상(사진출처:Olive Oh)'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무려 여섯 개나 들어가 있는 모 기업의 이미지 광고는 지금 대중들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해 있다.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너는 1명의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으로 바뀌는 이 광고는 김연아를 상찬하는 것 같지만 그 자체로 지나친 국가주의적인 생각이라는 것이다.

 

실로 김연아가 그 정상에 오르기까지 국가가 해준 것은 별로 없다. 지금까지 그녀가 해온 일들은 그녀의 가족과 그녀 자신이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이지 제대로 된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이룬 성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느 날 갑자기 정상에 서게 된 김연아라는 세계적인 선수를 통해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해외에 알려지는 판이다.

 

그런데 김연아가 아니라니. 김연아라는 개인을 부정하고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투입시키는 건 너무 노골적인 국가주의 마케팅이다. 물론 김연아는 대한민국라는 등호는 그만큼 김연아 선수가 대한민국 그 자체일 만큼 대단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의 생각은 다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호명이나 칭호가 그다지 달갑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러시아로 귀화해 금메달을 딴 안현수 선수가 만들어낸 국내 빙상연맹에 쏟아지는 후폭풍은 지금 현재 국가에 대한 민심을 드러낸다. 세계적인 선수가 귀화를 결심하고 마치 보란 듯이 절치부심해 금메달을 따는 과정은 마치 국가에 대한 한 개인의 투쟁처럼 보여진다. 우리 선수들과도 경쟁해서 따낸 금메달이지만 지금 우리네 대중들은 러시아 국적을 가진 안현수 선수를 거꾸로 응원해주고 있다. 왜 그럴까.

 

국가라는 이름을 호명해 자리 하나씩을 차고 앉아 있는 관료들의 행태를 이미 대중들은 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현수 선수의 귀화는 그래서 국가를 저버린 행위가 아니라 국가로부터의 탈출로 받아들여진다. 지긋지긋해서 살기 싫다며 이민을 생각하는 수많은 이들이 갖는 그 생각.

 

국가가 무언가를 해주는 것을 대중들은 이제 그다지 바라지 않게 되었다. 다만 그냥 내버려두길 원하는 것이다. 잘 하는 이들이 그저 잘 할 수 있게 내버려달라는 것이다. 김연아 광고에 쏟아지는 비난과 안현수 선수에 대한 응원 속에는 해준 것 없이 숟가락만 얹으려는 국가에 대한 반감이 들어가 있다.

 

국가는 국민입니다!”라고 <변호인>에서 일갈했을 때 그 단순한 말 한 마디가 대중들의 마음을 울렸던 것은 국가를 제 멋대로 해석해 그 권력으로 국민을 심지어 고문하기도 하는 세상에 대한 당연한 분노가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우선이 아니라 국가가 우선인 세상에 대한 분노.

 

그래서 김연아 광고를 뒤집어 놓은 한 패러디에는 국가에 대한 대중들의 혐오와 그 어려움 속에서도 최고의 경기를 보여주는 김연아라는 개인에 대한 찬사가 들어가 있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당신은 피겨약소국의 한 운동선수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챔피언이고 당신은 어린 후배를 위해 기꺼이 다시 뛰어오르는 선구자입니다. 당신은 김연아입니다. 당신이어서 고맙습니다.’

 

힘겨운 대중들에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힘을 늘 안겨주는 김연아 선수의 선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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