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라수마나라’, 괴물신인 최성은의 마법이 던지는 질문

안나라수마나라

뮤지컬 드라마라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라수마나라>가 뮤지컬 드라마라는 이야기는 어딘가 이 작품이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진지한 장면에서 대사가 아닌 노래를 부르는 광경이 만들어내는 비현실적 풍경. 마치 인도 영화를 보다보면 갑자기 출연자들이 튀어나와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광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나라수마나라>? 제목이 뭐 이래?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제목은 더더욱 이 드라마가 그릴 세계가 현실에서 몇 발짝 위 허공으로 띄워 올려진 그런 세계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리고 그건 실제로도 그렇다.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는 빚쟁이에 몰려 역시 도망친 윤아이(최성은)가 어느 날 폐쇄된 유원지에서 대뜸 “당신은 마술을 믿습니까?”라고 묻고는 갖가지 마술을 보여주는 마술사(지창욱)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 

 

고등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현실이지만 동생 유이까지 챙겨야 하는 윤아이는 가끔씩 찾아오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학교에서는 돈이 없어 구멍 난 스타킹을 신고 다니는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반 아이들의 시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알바를 전전하다 편의점 사장에게 성추행까지 당할 뻔한 윤아이는 다행히 마술사의 도움을 받고, 마술사가 보여주는 마법 같은 시간 속에서 잠시 현실을 잊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그건 잠시 동안의 행복일 뿐, 부모 없이 살아남아야 하는 윤아이는 이름과 나이와는 걸맞지 않게 점점 어른 같은 고민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반면 어른이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해맑은 얼굴로 나타나 마술을 믿냐고 묻는 마술사는 윤아이에게 마술과 마법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무언가를 나타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건 마술이지만, 그걸로 누군가 행복해하고 웃는 건 마법이라고. 

 

<안나라수마나라>는 마술이라는 소재를 가져와 그걸 믿느냐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아이와 어른을 구분한다. 마치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는 아이와 그런 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른의 차이를 마술이라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광경들로 구분해내는 것. 그러면서 마술이라는 어찌 보면 그다지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일과, 이른바 지위나 돈 같은 걸로 평가되는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일 앞에서 힘겨워하는 아이들을 보여준다. 

 

윤아이를 좋아하는 나일등(황인엽)은 검사장인 아버지(유재명)가 재력과 지위의 힘으로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앞서 달려 나가는 삶을 살아왔다. 늘 일등인 것만 중요하고, 그 끝에는 아버지가 원하는 법조인이 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삶. 하지만 윤아이를 통해 마술사를 만나면서 나일등을 깨닫게 된다. 정작 그 삶에 ‘나’는 없다는 걸. 내가 원하는 삶은 애초부터 지워져 있었다는 걸. 그는 윤아이가 마술사에게 마술을 배우며 행복해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자신도 그런 꽃밭 같은 길을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안나라수마나라>는 오로지 성공해 돈과 지위를 얻어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폭력을 이야기한다. 그 모두가 정해놓은 길과 틀을 벗어나며 실패자가 되고 정신병자가 되며 심지어 범죄자로 몰린다. 그래서 그 공포 속에서 아이들은 꿈을 꾸지 않고 그저 어른들이 정해 놓은 길을 더 앞서 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만든 건 어른들이다. 윤아이는 어른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해도 제멋대로 왜곡되는 현실을 겪으며 말한다. 자신이 힘든 게 돈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른들 때문이었다고. 

 

과연 당신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안나라수마나라>는 부모 없는 세상에 내던져진 윤아이와 부모가 깔아놓은 아스팔트 위만을 달려오며 정작 저 편의 꽃길로는 들어가 볼 엄두도 내지 않았던 나일등, 그리고 무거운 현실로부터 튕겨져 나가버림으로써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사람처럼 되어버린 마술사가 겪는 사건들을 통해 그런 질문을 던진다. 

 

뮤지컬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던 요소들은 이러한 묵직한 현실적인 질문을 마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던지는 과정에서 정말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한다. 믿을 수 없는 마술적인 풍경들이 음악과 더해지면서 오히려 믿고 싶은 광경으로 바뀐다고나 할까. 마술사 역할을 연기한 지창욱이야 이미 여러 다른 작품들을 통해 그 연기력이 잘 알려진 배우지만, 이 작품에서 놀라운 건 윤아이라는 역할을 연기한 최성은이다. 

 

아직 아이지만 어른들의 세상에 내던져져 갖게 되는 깊은 슬픔을 그가 작품 전체에 깔아줬기 때문에 마법 같은 많은 순간들이 ‘믿고 싶게’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그의 눈물과 환한 웃음에 담겨 강렬해진 이 작품의 질문이 그렇다. 끝내 버텨낸 윤아이는 그래서 이 작품 속 어떤 어른들과도 다른 어른의 면모를 갖게 된다. 

 

흔히들 마술에 비유되는 영화나 드라마의 영상들은 편집과 CG와 촬영술의 결합으로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건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일 수 있지만 믿고 싶은 세계다. 꿈보다는 돈과 지위를 얻는 성공을 믿고, 마술 같은 행복감을 주는 경험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수치들로 채워진 경험들만을 믿는 세상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안나라수마나라>는 꿈을 믿고 산타클로스를 믿으며 마술을 믿는 아이 같은 순수한 세계를 화두로 던짐으로써 우리가 마주한 차가운 ‘어른들의 현실’을 보게 해준다. 6부작의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윤아이라는 인물이 외운 주문으로 마법 같은 위로를 주는. 안나라- 수마나라.(사진:넷플릭스)

‘붉은 단심’, 허성태와 손잡은 이준, 강하나 질녀삼은 장혁

붉은 단심

“국혼은 전하께서 세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닙니까?” KBS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에서 박계원(장혁)은 병판 조원표(허성태)와 술자리를 하며 국혼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한다. 실로 조선의 12대왕 이태(이준)는 중전 간택이 자신의 세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오래도록 연모해온 유정(강한나)이 연심을 드러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에겐 혼인해야 할 여인이 있습니다.” 그렇게 유정을 밀어낸다. 

 

이태가 말한 ‘혼인해야 할 여인’이란 병판 조원표(허성태)의 딸 조연희(최리)다. 그는 좌의정 박계원과 대적하기 위해 거의 유일하게 자기 세력을 갖고 있는 조원표를 택한 것이고, 그래서 조연희와 정략결혼을 하려 한다. 일부러 조연희를 위기에서 구해내며 마음을 흔든다. 이태에게 마음을 빼앗긴 조연희는 조원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혼에 처녀단자를 넣어달라며 중전이 아니면 죽어버리겠다고 떼를 쓴다. 

 

조원표는 이 일이 좌의정 박계원과 자신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비화될 거라는 걸 예감한다. 그래서 애써 이태가 국혼을 통해 만들어낸 박계원과의 틈새를 부정하려 하지만 이태는 이제 그 틈을 더욱 벌려 놓는다. 좌의정 사람이면서 병판의 명을 듣는 겸사복에게 자신이 병판의 여식을 만난다는 말을 전하게 한 것. 왕이 잠행 시 어딜 갔는지를 추궁하기 위해 겸사복을 고신하는 박계원과 이를 막으려는 조원표의 갈등은 정면에서 부딪친다.

 

결국 이태를 찾아온 조원표는 그런 계획이 무모하다며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 말하지만 이태는 조원표를 설득한다. “중전이 승하한 후 과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병판의 여식을 만나는 거였다오. 두 번째 만남에서 병판에게 발각된 것도 과인의 의도였소. 좌의정을 몰아서 겸사복장을 파직하게 만든 사람도 과인이오. 그래서 지금 병판이 여기 오게 만든 이가 과인이오. 병판을 여기까지 오게 만드는 게 과인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었소. 가장 힘든 판을 해냈으니 다음 판은 이보다 쉬울 터. 병판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과인을 믿고 이 손을 잡아 주시오.”

 

<붉은 단심>이 엮어내는 정치와 멜로는 유정을 연모하지만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정략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태의 이야기를 통해 그려진다. 이태는 조정을 장악한 반정공신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국혼을 이용해 그들 사이에 균열을 낸다. 병판의 딸을 중전으로 삼음으로써 병판과 손을 잡고 박계원과 대결하려는 것. 그래서 박계원이 자신의 숨겨둔 질녀를 중전으로 세우려 한다는 걸 알고 있는 이태는 그에게 드디어 본모습을 드러내며 저주 같은 말을 쏟아낸다. 

 

“국혼은 과인을 가장 비싸게 사줄 집안과의 거래요. 좌상. 뭐라 해도 이번 간택만은 좌상의 뜻대로 안될 것이오. 어떤 여인이든 데려와 보시오. 안지 않을 것이오 만나지 않을 것이오. 얼굴조차 보지 않을 것이오. 평생 구중궁궐에서 지아비의 그림자도 못 본 채 늙어 죽을 것이외다. 하여 좌상은 후대의 권력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이오. 후대의 권력을 잃으면 현재의 권력도 약해진다는 걸 잘 아시죠?”

 

이태가 꺼내든 칼 같은 말들은 추상같지만 만만하게 당할 좌의정 박계원이 아니다. 그는 이태가 데려와 보라는 ‘어떤 여인’으로 유정을 세우려 한다. 유정을 질녀로 삼고 국혼에 내보내 중전이 되게 하려 한다. 그가 오래 전부터 이태를 만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박계원은 차마 이태가 유정을 밀어내진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왕이 중전을 간택하는 국혼이지만, <붉은 단심>에서 이 일은 핏빛 권력다툼으로 그려진다. 누구를 중전으로 맞이하느냐가 누구의 세력을 갖는가의 문제가 되고, 그건 조정의 권력 구도가 달라질 수 있는 일이 된다. 하지만 애써 마음속의 정인인 유정을 밀어내고 정략결혼을 하려는 이태에게, 유정을 질녀 삼아 정략결혼을 시키려는 박계원의 선택은 앞으로의 파란을 예고한다. 과연 이태는 권력을 선택할까 아니면 정인을 선택할까. 권력을 선택한다면 향후 맞서는 입장이 되어야할 유정과 어떤 관계를 이어갈까. <붉은 단심>이라는 정치와 엮어진 멜로가 갈수록 쫀쫀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사진:KBS)

‘우리들의 블루스’, 우울증의 심연 속으로 손을 내민 해녀 같은 

우리들의 블루스

“고등어 고등어- 오징어 오징어- 계란 계란- 순두부 순두부- 비지 비지- 시금치 시금치 윗도리 아랫도리...” 트럭을 몰고 제주 구석구석을 다니며 갖가지 물건을 파는 동석(이병헌)은 그렇게 녹음을 해 가져온 물품들을 알린다. 아마도 저마다 하루의 노동 속에 있던 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트럭으로 달려올 게다. 고등어도 사고 계란도 사고 옷도 사고... 그 순간을 놓치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외진 동네에서 나중이란 너무 멀다.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동석이 하는 일은 바로 그런 일이다. 그런데 그가 깊은 우울증에 빠져버린 선아(신민아)를 마주한다. 어려서 서울에서 내려왔던 선아를 동석은 좋아했다. 재가한 엄마를 따라 함께 살던 배다른 형제들은 매일 같이 동석을 두들겨 패곤 했지만 동석은 그저 참고 맞기만 했다. 선아도 엄마가 죽고 나락에 빠져 있는 아빠 때문에 힘겨워하며 자신을 망가뜨리려 한다. 그래야 아빠가 정신을 차릴 거라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건 동석에게도 잊히지 않는 상처가 된다. 

 

결혼을 했지만 우울증 때문에 힘겨워하던 남편과 결국 이혼하고, 아이까지 빼앗기자 선아는 살 의미를 잃어버린다. 아이만이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이었지만 그마저 사라진 것. 그래서 제주도에 온 선아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우울증 증상이 물에 빠진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선아에게 물은 죽음과 심연의 이미지다. 그 깊은 어둠 속으로 저도 모르게 빠져든다. 

 

그런데 그렇게 바다 속에 빠졌을 때 마침 그 곳을 지나던 해녀들이 그를 찾아내 구해낸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동석은 119를 부르고는 괜한 심술을 부리듯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괜스레 차 안에 있는 침구들의 먼지를 거칠게 털어낸다. 바다에 빠진 선아를 해녀가 구해냈지만, 물밖에 나왔다고 선아는 산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우울의 심연 깊숙이 빠져 있다. 그게 못내 걱정된 동석은 그를 병원에도 데려다주고 모텔 방도 잡아주고 때때로 전화해 “살아있냐?”고 묻는다. 바다는 아니지만 지금 동석은 우울의 심연 깊숙이 빠진 선아를 끌어내려 안간힘이다. 

 

선아는 매 번 ‘나중’을 이야기한다. 나중에 아이를 다시 데려와 함께 살 집을 고치고, 나중에 아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말을 함께 탈 생각을 한다. 그런 선아에게 동석은 나중은 없다며 지금 당장 말을 타러 가자고 말하는 사람이다. 당장 말 탈 시간이 있으면 아들 열이와 함께 살 집을 더 짓고 싶다 말하는 선아에게 동석은 자기 말 타는 사진을 찍어 달라 한다. 막상 즐겁게 말 타는 동석을 보니 선아도 웃는다. 그리고 동석의 강권에 못 이겨 말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별 일 아닌 것처럼 찍은 말 사진은 그 날 아이를 만났을 때 의외의 즐거움으로 돌아온다. 수족관에 갔지만 아이는 거기 수조를 유영하는 가오리보다 말이 더 좋단다. 그래서 그날 동석 때문에 억지로 찍은 말고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즐거워한다. 그 때 동석이 ‘지금 하자’고 했던 그 일이 없었으면 선아가 말하는 지금 같은 ‘나중’도 없었을 일이다. 

 

동석은 선아에게 나중은 없다는 이야기를 어려서 죽은 누나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아버지가 죽고 엄마랑 누나랑 셋이 살 때, 없는 형편에 엄마가 돼지 내장을 얻어다 볶았는데 그걸 누나가 다 챙겨먹어 화가 나서 요강 단지를 누나 얼굴에 부어버렸다고 했다. 그게 미안해서 다음날 학교 갔다 와서 미안하다 하려 했는데, 그 날 누나가 바다에서 물질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것. “그게 누나랑 나랑 마지막. 그 때 알았지 썅. 나중은 없구나...”

 

배를 타고 제주에서 뭍으로 나오면서 선아는 하염없이 바다만 쳐다본다. 그러면서 계속 파도만 보고 있으니 멀미가 난다는 선아에게 동석은 이렇게 말한다. “너도 울 엄마처럼 바보냐? 뒤돌아. 나중에도 사는 게 답답하면 뒤를 봐 뒤를. 이렇게 등만 돌리면 다른 세상 있잖아. 그저 바다만. 바보처럼. 아 우리 엄마 얘기야. 아버지 배타다 죽고 동희 누나 물질하다 죽고 엄만 매일 바다만 봤어. 바로 등만 돌리면 내가 있고 한라산이 저렇게 떡하니 있는데, 이렇게 등만 돌리면 아부지 동희누나 죽은 바다 안볼 수도 있는데, 매일 바다를 미워하면서도 바다만.”

 

엄마 얘기라고 했지만 그건 사실 선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일 터였다. 양육권을 두고 남편과 벌인 소송에서 진 선아는 절망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밥도 먹지 않는다. 점점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선아를 동석은 애써 잡아 끌어올리려 하지만 제아무리 설득해도 먹히질 않는다. 결국 동석은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선아를 인정하며 “그래 이렇게 살다가 죽든 말든 니 맘대로 해”라고 쏘아댄다. 그러면서 선아가 가장 아파할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아들도 우울증에 빠진 엄마처럼 될 거라는 것. 

 

너무 아픈 이야기지만 부정할 수 없는 말. 그래서 오열하는 선아에게 동석은 말한다. “슬퍼하지 말란 말이 아니야. 울엄마처럼 슬퍼만 하지 말라고. 슬퍼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러다가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썅. 어쩌단 웃기도 하고 행복도 하고 애랑 같이 못사는 것도 대가리 돌게 승질나 죽겠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엉망진창 네가 망가지면 니 인생이 너무 엿 같잖아 새끼야!”

 

선아는 동석과 함께 걸으며 우울증을 치료해보겠다는 생각을 한다. 동석의 끝없는 너스레에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 물건 파는 걸 녹음하는 동석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프라이판 프라이판 뺀찌 망치 도라이바 윗도리 아랫도리-” 그건 제주 구석구석에 사는 주민들에게 물건 파는 트럭이 왔다는 목소리지만 또한 지금 아니면 나중은 없다는 목소리처럼도 들린다. 자잘한 일상의 욕망들을 일깨우는 소리.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던 선아를 마치 해녀처럼 포기하지 않고 찾아낸 동석은 그렇게 그를 현실로 끌어올리는 중이었다.(사진:tvN)

‘어게인 마이 라이프’, 검사 미화? 검찰개혁에 칼 들었나

어게인 마이 라이프

세상에 이런 검사가 있나. SBS 금토드라마 <어게인 마이 라이프>는 초반 김희우(이준기)라는 검사 영웅을 그린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검사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온 바 있다. 실제고 김희우는 대통령도 쥐고 흔드는 조태섭 의원(이경영)에게 칼을 들었다가 오히려 죽음을 맞이했던 검사다. 

 

하지만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던 김희우가 저승사자의 도움으로 또 한 번의 생을 얻게 되고,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 인생 전체를 새롭게 디자인(?)한 그가 검사가 되어 펼쳐가는 복수극은 어쩐지 검사 미화가 아니라 검찰개혁에 칼을 드는 모양새다. 조태섭 의원의 라인을 잡은 김석훈(최광일) 중앙지검장과 그 측근들인 장일현(김형묵) 검사 그리고 최강진(김진우) 검사를 김희우가 하나하나 날려버리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의도적으로 김석훈 중앙지검장의 눈에 들고 그 라인에 들어간 것처럼 꾸몄던 김희우는, 함께 뜻을 합친 전석규(김철기)와 함께 검찰의 비리들을 척결해 나간다. 장일현 검사는 그 첫 번째 타깃이 된다. ‘스폰서 검사’로 기업의 상납을 받아온 데다, 사귀고 있던 국대예술재단 성진미(박나은) 이사장의 비리를 덮어줘 온 일로 장일현 검사는 사면초가에 이르게 된다. 

 

결국 위기에 몰린 장일현 검사는 살아남기 위해 최강진 검사의 성상납 비리를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김희우는 최강진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SHC 엔터의 비리를 캐고 소속 연예인들의 성상남 비리는 물론이고 조직적인 병역비리 또한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즉 <어게인 마이 라이프>가 그리고 있는 검찰은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갖가지 비리검사와 정치검사들이 판을 치는 곳이다. 김희우나 전석규 같은 인물만이 예외적일 뿐.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로 보면 김희우는 ‘판타지’를 캐릭터화한 인물이다. 그는 한 번 죽었고 되살아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죽은 이유는 조태섭 의원의 비리를 캐려 했지만 검찰 내부까지 다 손이 닿아 있는 영향력 때문이다. 이미 검찰은 썩어 있었고 김희우의 죽음은 그래서 일개 한 검사의 의지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검찰 개혁이나 사회 정의의 현실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드라마가 판타지로서 다시 살려낸 김희우가 긴 세월 동안 차근차근 힘을 키우고 자기편을 만들어가며 검찰로 돌아와 드디어 하나하나 비리 검사들을 척결해나가는 과정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는 사이다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현실에서 벌어지기 힘든 일들을 말 그대로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어서다. 

 

그래서 <어게인 마이 라이프>의 이야기는 때론 결코 일어나기 어려운 우연과 기연들이 주인공 김희우에게는 벌어진다. 조태섭 의원과 맞서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황진용 의원(유동근)의 등장과 그를 만나게 되는 과정이 그렇다. 우연히 길을 가다 마침 조태섭의 추종자에 의해 테러를 당하는 여자를 구해주는데 하필이면 그가 황진용 의원의 딸이었던 것. 

 

‘하늘의 뜻인가 이렇게 황의원과 연결되다니!’ 김희우는 이런 우연이 스스로 놀랍다는 듯 그렇게 생각한다. ‘하늘의 뜻’. 사실은 작가의 뜻이다. 이처럼 이런 우연이 개연성이 없다는 걸 작가도 알고 시청자들도 알지만, 이 이야기 자체가 일어나기 어려운 판타지고 무엇보다 김희우라는 인물 자체가 판타지적 존재라는 점에서 하늘도 돕는 이야기는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되돌아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가 드러내는 현실에 대한 날선 비판의식이 새삼스럽다. 결국 검찰개혁을 하고 이를 통해 조태섭 같은 비리 정치인을 척결하는 일을 하려면 이런 판타지와 우연까지 더해진 말 그대로 ‘하늘이 도와야’ 가능할 정도라는 걸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애초 검사 미화가 아닐까 생각됐던 이야기가 김희우 같은 검사는 판타지에나 존재한다는 이야기로 분명히 드러나면서 오히려 이토록 어려워진 검찰개혁에 대한 작가의 열망을 읽어낼 수 있게 해주는 것. 실로 드라마 속은 시원시원한 사이다지만 현실은 퍽퍽한 고구마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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